가끔 그런 꿈을 꿀 때가 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책 선물을 받는 것. 실제로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그중 한 번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전에 hnine님이 해 주셔서 어찌나 놀랐던지? 보통은 받는 사람이 놀랄까 봐 비밀글로 속닥거리곤 하는데 그렇게 받는 선물은 정말 서프라이즈다.ㅋ 

오늘 오전에도 그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나는 줄 알았다. 내 앞으로 예스24발 책이 한 권 도착한 것. 누구지? 나에게 이런 깜찍한 선물을 해 줄리가 없는데. 하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내는 이의 이름도 낮설다. 당장 예스24 내 블로그로 가 본다. 거기 쪽지에, "책 받으셨어요? 책이 마음에 드시는가 모르겠어요. 그동안 꼭 한 번은 님을 이렇게 놀래켜 드리고 싶었는데, 놀라셨나요?" 

그러면 난, "어머나, 님이 셨군요! 그럼요. 얼마나 놀라고 설랬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읽고 싶었던 책인데 넘 고마워요. 잘 읽을게요. 언젠가 저도 원수 갚을 날을 기대하며, 이만 총총..."  뭐 이런 거라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웬걸 내가 언젠가 위의 책을 서평 이벤트 한다기에 뭐 될까 싶어 이름만 올리고 까맣게 있고 있었던 것을 당당하게 당첨이 돼 내 품에 안 겼다. 물론 내가 꿈꾸던 그런 쪽지는 없다. 하지만 마냥 기쁘지마는 않다. 채무 의식을 가지고 무조건 읽어야 한다. 그래도 뭐 서프라이즈는 서프라이즈지.ㅜ  

책 이름 못지않게 책이 세련되고 콤팩트하다. 게다가 양장이다. 책값도 만만찮게 비싼편에 속하고. 좋다 뭐. 읽어 준다. 뭐라도 남겠지.  

지금 무척 땡기는 책이다. 꼭 내 얘기를 할 것만 같아서.  

정말 이렇게 해서 잃어버리고 놓쳐버린 사랑의 경험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하긴, 그렇다고 마음에 끌린다고 모든 사람을 내 사랑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이렇게 말하면 허허로운 자위일까?  

이 책을 읽는다고 앞으로의 나의 사랑이 서두르지도 않으며 머뭇거리지도 않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런지 그건 잘 모르겠다.  

난 솔직히 사랑에 실패한 이야기는 할 수 있어도 사랑에 성공한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에 실패한 이야기 조차 자신 있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도 찌질해서.ㅠ 

저자가 미국에서 꽤 유명한 인생 상담가인가 보다. 비슷한 제목의 책이 번역된 바 있는데 제목 역시 마음에 든다. <너무 일찍 나이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어쩌면 내 인생을 대변해 주는 문장 같이 끌린다. 마침 오늘 반값 세일을 한다고 해서 신청해 봤다.  

이 책에 대해 호불호가 조금은 갈리는 것 같은데, 나는 일단 좋을 것 같다에 무게를 둔다. 좀 더 자세한 건 읽어봐야 하는 일이고.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가 더 징하다. 먹고, 싸우고, 사랑하는 일에 관한 동물학적 관찰기 그나마 저 먹고 다음에 싸고라고 쓰지 않는 것이 다행이랄까? 

내가 징하다고 느끼는 것은 얼마 전 아는 넘하고 대판 싸웠기 때문이다. 사실 싸움은 어떻게 싸워도 후련한 건 없고 오히려 갈증만 증폭시키는 것 같다. 그래서 싸워 놓고도 내가 왜 그때 이런 말로 후려쳐주지 못했을까? 다음 번에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 해 줄까를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싸움을 잘하는 것도 인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는 아닐까 싶다.  

전쟁에 관한 권위있는 저술가라면 <전쟁의 기술>을 쓴 로버트 그린이다. 그는 이뿐만 아니라 권력에 관한 책도 썼는데 모두 훌륭한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저 <전쟁의 기술>은 번역이 문젠건지 읽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 녀석이 맹랑한 건, 어떻게 여자인 나를 상대로 싸울 생각을 했느냐는 거다. 그래봤자 질게 뻔한데. 왜냐구? 여자가 언어 감각이 뛰어나다 잖는가? 그리고 남자가 돼 가지고 여자랑 맞장 떠서 뭐하겠다는 말인가?  

어쨌든 이 모든 것에 대한 통찰이 이 책 안에 있는지는 이 또한 봐야 알 것 같다. 단지 내가 생각하는 건 그와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왜 그렇게 같이 웃고, 밥 먹고, 대화 했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꼭 이렇게 될 줄 예상했던 건 아니지만 내내 만나면 조심해야지 했는데. 

작가 박범신이 인간에 대해 설파는 잘했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처럼 추한 것이 없고, 사람처럼 독한 것이 없고, 사람처럼 불쌍한 것이 없고, 그리고 사람처럼 예쁜 것이 없다. 모든 게 영원하다면 무엇이 예쁘고 무엇이 또 눈물 겹겠는가?"라고 했다. 그 글을 읽으니 나도 어지간히 철이 없다 싶다.  

    

나의 지인 중에 번역가가 있는데, 그 분은 이 책의 리뷰에서 먹을 거리에 대한 환기와 더불어 글쓰기에 대한 환기를 느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평생 글을 써온 사람답게 노련하고 익은 글솜씨를 선사하며, 저자만의 시각이 분명하고 대차다.고 했다. 또한  자료를 모아 책 내는 게 무슨 풍조처럼 되어 버린 마당이라 더 그런 점이 가슴에 닿는다고 했다. 그분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그는 언제부턴가 TV에서 심심찮게 보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원래 직함은 팝칼럼니스트 겸 연애 코치이기도 한데 영화에도 나름 조예가 깊어보인다.  

나는 오래 전 모 산문에 연애한 연애 칼럼을 즐겨읽곤 했는데 확실히 톡톡 튀는 말솜씨가 일품이다. 

그런데 난 왜 이사람만 보면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특히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와 함께 진행하는 <무비'S 토커>를 보고 있도라면 그 잘 웃지 않는다는 나의 혈액형 B형을 확실히 무참하게 만든다. 

특히 이동진 씨가 뭐라하지도 않는데 시작은 기선을 제압할 듯하다 중반도 못 되어 알아서 꼬리를 내린다. 그게 어찌나 웃기던지.ㅎㅎ 

그가 얼마 안 있으면 독자와 티타임을 갖는단다. 어디 다니는 거 엄청 귀찮아 하지만 이 사람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어 신청했는데 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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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4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4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4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10-06-1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은과 미각의 제국이 궁금하네요.
어떨까.

stella.K 2010-06-14 21:42   좋아요 0 | URL
박범신 작가를 좋아하신다면 강추입니다.
미각의 제국은 저도 안 읽어봐서 뭐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술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

무해한모리군 2010-06-15 09:27   좋아요 0 | URL
박범신 작가를 안읽어본듯 ^^;;
이번에 도전해봐야겠어요.

blanca 2010-06-14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의 기술 ㅋㅋㅋ 제가 읽어봐야 될 것 같아요. 저는 무조건 도망가는 유형이라서요--;; 원래는 다혈질이었다고 하면 그 누구도 안믿을 정도로 겁쟁이가 되버렸어요. 깜짝책선물! 우아..너무 낭만적이다. 저는 누군가 읽고 싶은 책 말하면 사준다고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ㅋㅋㅋ 다 책을 왜 사서 읽냐고 하는 인간들만 주위에 즐비해서..흑흑.


stella.K 2010-06-14 22:56   좋아요 0 | URL
ㅎㅎㅎ 블랑카님 그거 생각하기 나름이어요.
당장 우리 알라딘에도 책선물 해 주시는 좋은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기다려 보세요. 블랑카님이 생각지도 않은 때에 불쑥 행운이 올지도 모르니.ㅋㅋ
저도 싸움은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예요. 하지만 제가 부당한 건 못 참는 성미라 참다 참다 못 참으면 꼭 짚고 넘어가죠. 전쟁의 기술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권해 드리고 싶네요. 역사 공부도 할 수 있거든요.^^
 
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구판절판


용이 될 때까지 춥고 배고픈 사람한테, 힘 약한 사람한테 해 준 것이 없다. 어려운 사람 위해 용이 피 흘리고 땀 흘리고 노력해서, 그래서 옥황상제가 '너는 용이 돼라' 했으면 자랑스러운 일이리라. 하지만 용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저 영의주를 물었기 때문에 용이 되었다. 되기 전에 착한 일 한 것이 없으면 되고 난 후에도 해 준게 있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그렇지가 않다. 처녀를 제물로 바치지 않는다고 성이 나서 꼬리를 휘둘러 둑이 터지고 홍수가 난 이야기는 있다. 전설로 내려오는 용 이야기는 전부 백성 괴롭힌 것뿐이다. 잘해 준 것이 없다. 그보다는 학이 차라리 낫다. 개구리라도 지켜 주지 않는가. -33쪽

남들은 성공한 인생이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다. 인생에서 성공은 무엇이고 실패는 또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기준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성공과 실패를 따지고 싶지 않다. 돌아보면 나는 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때로 제어하기 힘든 분노와 열저에 사로잡혀 피할 수도 없었던 상처를 받거나 입힌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양심과 직관이 명하는 바에 따라, 스스로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자 몸부림쳤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작은 흙집에 났고, 거기에 새로 지은 큰 빕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집에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이것이 내 운명이다.-34쪽

세속적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찾고 싶었다. 마음을 닦아 죽음과도 같은 이 고통을 극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배우지 못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실패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내 인생의 실패는 노무현의 것일 뿐,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진보의 실패는 더더욱 아니다. 내 인생의 좌절도 노무현의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민주주의 좌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이 진보의 모든 것을 망쳤다고 덮어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노무현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것도 옳은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노무현은 정의나 진보와 같은 아름다운 이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나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
나의 실패가 모두의 실패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실패는 뼈 아픈 고통을 준다. 회복할 수 없는 실패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 나는 이 고통이 다른 누구에겐가 약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쓴다. -36~37쪽

버림받은 사람은 도덕적 성숙을 이루기 어렵다. 자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자부심이 있어야 모범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책임있는 주체로 참여시켜야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기회, 참여, 책임...... 대통령을 하면서도 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했다.-58쪽

계보를 챙기고 개인적 이해관계로 사람을 묶어 둔다고 해서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도자는 공정해야 한다. 신뢰, 헌신, 책임, 절제와 같은 덕목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129쪽

조선 건국 이래 600년 역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정권교체가 없었다. 권력의 편에 서야만 비로소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역사였다. 권력에 맞섰던 사람 가운데 패가망신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손들의 앞길까지도 막아 버렸다. 적어도 무사하게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권력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시비를 가리지 말고 납작 엎드려 살아야 했던 기회주의 역사가 무려 600년이었다. ......
나는 이런 역사를 마감하고 양심과 신념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세상을 만들려면 정권교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권교체를 하면 권력에 줄을 대는 방식이 아니라 나름의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살아온 유능한 사람들을 국가 운영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140~141쪽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해방과 통합을 위해 목숨을 빼앗기는 순간까지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의 권력에서 패배했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 현대사의 존경받는 위인은 왜 패배자뿐인가? 우리 역사는 정의가 배패해 온 역사란 말인가? 정의가 패배해 온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나는 남북전쟁 종식을 눈앞에 두고 했던 링컨 대통령의 두번째 취임 연설문을 읽으면서 '정의를 내세워 승리한 사람'을 발견했다. 링컨은 선거에서 숱하게 떨어졌다. 대통령 재임중에는 누구보다도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노예제 폐지론자와 노예 소유론자들이 모두 그를 공격했다. 인기도 없었다. 그러나 링컨은 내전에서 패한 남부를 적으로 몰아 세우지 않앗다. 남과 북을 선과 악으로 갈라치지도 않았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도 쓰지 않았다. 정의와 평화, 연방의 통합을 위해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자고, 모든 이를 사랑하자고 호소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노예제 폐지와 연방의 통합, 둘 모두를 이루었다.
-162~161쪽

링컨의 연설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다. 역사를 보면 정치인들이 집단적 불신과 적대감을 부추기는 곳에서는 언제나 불행한 일이 생겼다. -161쪽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였다. 우리 역사에 그런 지도자는 없었다. 정말 오랜 기간 동안 독재와 싸웠다. 암살 위기도 겪었다. 구속당하고 연금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래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국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면 그런 사람은 보통 투표할 필요도 없는 수준의 지도자가 된다. 건국의 아버지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 비츨라프 하벨, 레흐 바웬사 대통령이 모두 그랬다. 그것이 정상이다.-188쪽

진보적인 대통령이라도 보수의 네트워크에 포위되어 고립당하면 힘을 쓰기 어렵다. 변명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는 그런 조건에서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낮은 것도 같은 원인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5쪽

한나라당과 보수신문들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집권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다. 진실이 아니다. 그 반대가 진실이다. 우리가 집권하기 전 한국경제는 엎어져 있었다. 2003년과 2004년에 카드채 위기가 닥치면서 다시 휘청거렸지만 참여정부가 붙들어 똑바로 흔들리지 않을 만큼 탄탄한 체력을 길럿다. 이것이 진실이다.-208쪽

검사들이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을 온 국민에게 보여 줌으로써, 적어도 내가 검찰을 정치적으로 악용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해소하는 효과 정도는 있었다. 나는 검찰의 중립을 보장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273쪽

그들은 임기 내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했다. 나는 그 신문들과 끝없이 싸웟다. 그들은 몇 백만 부의 발행부수로 표현되는 막강한 미디어의 힘으로 나를 공격했다. 논리의 힘, 사실의 힘, 진실의 힘이 아니엇다. 그러나 나는 그 싸움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인의 권리, 시민의 권리만 가지고 싸웠다. 사실의 힘, 논리의 힘, 진실의 힘만으로 싸웠다.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역사적으로 전치적으로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믿었기에, 패배했지만 끝까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276쪽

언론은 시민의 권력이어야 한다. 시민을 대신해 정치 권력과 시장 권력을 감시하고 제어함으로써, 권력이 시민의 권리와 가치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그리고 정치 권력과 시장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도록 공론의 장을 관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보수신문들은 과거에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거기에 풀려난 다음에는 이 권력 저 권력에 유착하고 제휴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제휴해서 가다가 김영산 후보로 옮기면서 노태우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망가뜨렸다. 그 다음에는 이회창 카드를 쥐면서 김영삼 대통령을 완전히 밟아 버렸다. 공정한 심판이라는 본연을 내던지고 권력의 대안과 결탁해 직접 그라운드로 뛰어든 것이다.-279쪽

정책의 차이가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감정싸움은 몸싸움으로 전환한다. 모든 정당에서 강경파가 발언권을 장악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발붙이기 어렵다. 국회의원을 대폭 물갈이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경험한 대한민국 전치의 근본 문제였다.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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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2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2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원래는 이 책을 먼저 읽을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 보다 일찍 우리 곁에 온 자서전 

이 책은 자서전이라고는 하지만 좀 특별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도 밝혔거니와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했다고는 하지만 자서전을 그리 빨리 쓸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현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자신의 자서전으로 인해 그 모든 이들에게 누가 될까 봐 극히 꺼려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분은 자서전을 언젠가는 낼 생각을 하고 계셨고, 그것을 위해 틈틈히 그 윤곽을 구상하고 조금조금씩 메모하듯이 글을 써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유시민 씨가 그것을 모아 대신 썼기 대문에 사후 자서전이면서 동시에 대필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우리 곁에 온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분이 이 책에서도 밝혔다시피, 자서전이라고 하면 성공한 사람의 화려한 성공기가 되어야겠지만, 당신 스스로도 이것은 실패한 사람의 자서전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상처와 굴욕의 수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전자의 자서전이 얼마나 허울 좋은 겉치장에만 치중하고 있는지. 인간의 진실은 그런 것에 있지 않고 아픔과 상처 속에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이 책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낮은 목소리를 담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서도 풀어내지 못했다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우리 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란 생각을 했었다. 사람 누구든 말 못할 진실은 다 가지고 있다. 그분은 일국의 대통령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슴에 묻어었야 했을까? 그것을 글로서도 풀어낼 수 없다면 그분의 한은 죽어서도 풀 수 없었을 것이고, 그분이 부엉이 바위에 자신을 던지기 바로 직전에 썼다는 유서 조차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며, 그분의 애끊는 가슴을 우리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그분은 이 글을 쓰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더 슬프고 참담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랬다고, 잠시 잠깐이나마 위로를 받아을까?  

너무나 부침이 많았던 대통령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곳곳에 그분은 낮은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국민에게 미안해 하셨고, 노동자들에게 미안해 하셨으며, 자신과 함께한 가족들과 참모들에게 미안해 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들, 이를테면 형 건평 씨를 비롯해 친분이 있었던 기업인들에겐 미안함을 떠나서 일종의 죄책감까지 느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랬다. 보수에서 진보의 첫 대통령, 평화적 정권이양이란 상징적 인물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재임 시절 사람들에게 늘 그렇게 나약한 대통령으로 비춰졌다. 나는 이런 대통령이 솔직히 싫었다. 더구나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까지 그의 입에서 나왔다지 않은가?(그것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이 책에도 언급되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 말이 반드시 무책임한 말은 아닐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했던 말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 국민 누구도 대통령에게서 이 말을 들어야 할 책임이나 권리는 없다. 그분을 직접적으로 응원하진 않았지만 힘들어도 맡은 바 대통령의 임무를 다해주길 바랐다. 보라. 세상에 어느 대통령도 스스로 하야한 대통령은 있었어도 지레 못해 먹겠다고 팽개쳐버리듯 하는 대통령이 있었는가?   

하지만 그분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분의 지나온 발자취를 보면 너무나 부침이 많았었다. 세상은 그를 가만 놔 두지 않았다. 특히 그분은 임기 시작 때부터 언론이란 철창에 갇혀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이 나라의 모든 언론이 그분을 일제히 비난할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는 가짜다. 노무현이 가짜거나 언론이 가짜거나.  

더구나 '탄핵'이라고 하는 이 치욕스럽고도 유치한 정치쇼는 정말 피해 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분을 탄핵 소추하는데 앞장 섰던 몇몇의 정치인들. 그들은 아예 그분의 하야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명분이 마땅치 않았고, 그분을 탄핵 소추하면서 그것이 마치 국민 전체의 뜻을 대변하는 양 거들먹거렸다. 지금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분의 장례식 때 오기나 했을까?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악과 언론의 악에 대하여          

물론 그분은 정의의 사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분의 올곧은 성품으로 볼 때 불의에 대해서는 단호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그분은 이 나라가 정권이양은 했을지 모르나 정치인의 의식이 보수든 진보든 하나도 나을 것이 없는 것에 대해 개탄했고, 이 나라 언론에 대해선 단호했으며 그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특히 조선일보 신문을 나르던 소년에게서 촉발된 조선일보와의 끝나지 않은 싸움은 읽는 나 조차도 분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분의 언론에 대한 메스는 가차없어 보인다. 지난 시절 언론은 군부 독재에 꼭두각시 노릇만 하더니 독재 시대가 끝나고 민주화가 되면서 자생할 줄 모르고 힘있는 권력에 붙어 기생하더니 그 사이 힘을 키워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려 한다고 몰아 부쳤다. 그러면서 그분은 언론이 자신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것은 여지없이 맞아 떨어져 이명박 대통령을 지금도 갈구고,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느 항생제로도 듣지 않고 변신이 가능하며 한번 변신할 때마다 곱절로 그 크기를 늘려나가는 수퍼 바이러스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언론의 그런 고질적인 병폐를 알아서일까? 그분은 국정원에 대해선 중립적인 거리감을 유지 하셨다. 그것은 확실히 잘한 일이라고 보아진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살아생전 그분의 정적들은 또 어떠했는가? 누구에게든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정적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정적들 개인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권력에 철저하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운명이었기에 그분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은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럴 수 있어도 눈을 가렸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인 악인 동시에 필요악처럼도 보인다. 그만큼 정치는 비정한 것이다.

노무현과 전태일 

이 글은 정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읽어낼 수 없었던 책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은 신파는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가급적 감정을 절제하고, 자신이 보고 느끼고 체험한 것에 충실히 썼다고 봐진다. 그래서 오히려 더 슬펐다. 읽으면서 내내 내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치를 몰라요." 내지는 "정치에 관심없어요."라고 말하는 건 결코 자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 사이 우린 나라의 대통령을 비명에 보내야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더 정확히는, 정치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외침과 그 사람의 영혼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전태일을 생각했다. 노동자와 노동현실의 개선을 위해 기꺼이 그의 몸과 영혼을 불살랐다던 전태일과 부엉이 바위에 몸을 날렸던 노무현.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그토록 애쓰셨던 분이 그렇게 비명에 가셨다는 것에서 뭔가 모르게 전태일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어 보였다. 그분 역시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그분은 죽지 말았어야 했고, 동시에 죽어야만 했었다고 생각한다. 죽지 않고서야 그분의 결백과 자신으로 인해 고초를 당했던 많은 사람은 어찌 구할 수 있겠으며,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민주화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한 일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검찰과 언론이 그분을 압박해 올 때 오죽했으면 그분은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을 버려달라고 호소했을까?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관하여 

그분이 탄핵에서 풀려났을 때 노사모 많은 회원들은 그를 환영했다고 했다. 그것에 대해 영부인 권양숙 여사는 흥분했지만 그분은 두려워 했다고 했다. 자신을 보고 환호하는 저 무리들. 저들이 또 무엇을 달라고 할지 몰라서. 원했다면 무엇을 원했을까?  

책 말미에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예방을 받던 날, 그는 전 대통령의 예우 문화를 확실히 세우겠노라고 약속했다고 했다. 그것은 그분을 당황스럽게 만들긴 했지만 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것을 지켜주길 속으로 바랬다고 한다.  

그분은 당황했을지 몰라도 나는 그 부분에선 당시 대통령 당선자로서의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을 보라. 그들의 화려한 재임과 굴욕적인 퇴임 이후는 극명하게 갈린다. 왜 나라를 위해 일해놓고 후에 가서 그처럼 굴욕을 당해야 하는지? 물론 그들 중엔 반드시 심판 받아 마땅한 독재의 주역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바라는 대통령에 대한 예우란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퇴임 후에도 국민들로 부터 인정 받고 사랑 받는 대통령.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동안 그것에 근접해 가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분이 재임 시절 단 한 시도 편한 적이 있었는가? 이제 퇴임을 했으니 그분는 이후에 평화로운 노후를 꿈 꿨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대통령도 인간일진데 잘한 것이 있으면 못한 것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 잘못한 것이 나라를 말아먹는 잘못이 아닌 다음에야 차기 대통령이 잘해 주길 바라면서 덥어 갔어야 했다. 전 대통령의 예우를 약속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그분의 여전한 적인 언론과 검찰이 결탁을 해서 하지만 검찰과 언론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밖았다.   

모르긴 해도 그 예우를 스스로 깬 건 이명박 대통령이었으니 그의 퇴임 후도 그다지 안정적여 보이지 않느다. 그리고 우린 또 한 번 대통령의 불명예를 지켜봐야 할 것도 같다. 

별이 된 대통령       

알고보면 노무현 대통령만큼 똑똑한 대통령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박식하기로야 노무현 대통령도 인정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을 꼽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노무현 대통령만큼 저술을 많이 남긴 대통령이 또 있을까? 물론 거기엔 타의에 의해 씌어진 책들도 있긴 하지만 그만큼 그는 미디어를 이용할 줄 알았고(TV를 통한 검찰과의 대화도 시도를 했다. 비록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지만) 그만큼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분은 재임 시절이나 퇴임 후에도 할 일이 정말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한채 운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 들였다. 그래서 전설이 되었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분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고 해도 나 개인적으론 자살만큼은 용납하기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그냥 저 어두운 밤하늘의 한 점 별이 되었다고 하자. 사실 이 책은 개인 자서전인이고 또 여러 가지 특수한 배경 때문에 온전히 감정을 배제하고 읽어 내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만큼 이제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든 자리는 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더니 그 분의 빈 자리에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그래도 모르긴 해도 앞으로 한 20년 안에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나오지 않겠는가? 바라건데 그때가 되면 정치적 상황이 지금 보다는 훨씬 나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또 한 번 한 한 대통령을 비운에 보내는 그런 불행한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이 지면을 빌어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고 노무현 대통령께 사죄를 드리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을 몰라 뵈서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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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요것이 어떻게 된 셈판이냐." 시골에서 올라온 형님이 말씀하셨다. "방송법이나 신문법 내용이 뭔지 나는 잘 모른다만, 좌우간 헌법재판소 판결은 투표 관정이야 '개판'이지만 그 결과인 방송법은 살아 있다 그 말이라는데, 허어, 적삼 벗고 은가락지 끼는 미친 것들도 더러 있는 세상이라지만, 나는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축구로 치면 오프사이드 해서 골을 넣었다고 해봐라. 그 골이 골이냐 노골이냐." 기침하는 형님에게 튕겨내는 침방울이 자꾸 내 앞으로 날아와 한 발 슬쩍 비켜서면서 내가 추임새를 넣는다. "그게 아니구요, 형님. 헌재의 판결은 말하자면 과정이 잘못됐으니깐 국회에서 다시 검토해 뒷말나지 않게 처리하라, 뭐 그런 뜻이겟지요." "아이구, 얘가 명색이 작가라면서 여드레 삶은 호박에 송곳도 안 들어갈 소리 하고 자빠졌네." 형님의 침방울이 한 자쯤 더 뻗어 나온다. "다시 모여 선(先)은 이렇고 후(後)는 이렇고 하니 이리 처결하자 할 국회면, 그 문제가 헌재까지 갔겠냐, 국회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은 헌재도 알고 온 백성도 알고 우리 집 똥 강아지도 안다. 그러니까 헌재가 책임에서 쑥 빠지자 하면 일테면 구렁이 담 넘어갔다는 것인데, 앗다, 돼지 우리에 주석자물쇠도 유분수지, 내겐 니 핵석이 더 아리송하다.. 야." 

형님은 실눈을 뜨고 창 너무 노란 은행님이 무더기로무더기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잠시 보다가, 다시 암팡진 눈빛이 되더니 "한편"하신다. 화제를 전환할 때 "한편"하고 변사 같은 목소리로 포석을 놓는 것은 형님의 평생 버릇이다.  

  "한편, 세종시 말인데, 세종시 하면 여야가 숙의한 끝에 이리저리 하기로 법까지 만들어 통과시킨 것 아니냐. 뭐 우리 같은 사람도 나라에서 그렇게 한다니까 진즉에 다 동의했던 것이구. 한데 이제와서 계획대로 안 하겠다고 하면, 내 밥 먹은 개가 발뒤축 무는 격 아니고 무엇이냐." 형님은 세종시 때문에 농토를 팔고 다른 대토를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다. 

  "참 형님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계획을 바꿔 하겠다는 거지요." 

  "헛, 너까지 시골 사람이라고 나를 눙치려는 수작인 모양이다만 그럼 못쓴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 수가 있어., 야, 배운 것 없으나 내게 자부심 하나 있다면 평생 곤바닥 뒤집듯이 말 바꾼 적 없고 말과 행동을 따로 나눈 적이 없었다는 거야. 자고로, 말의 선후가 딱 맞아떨어져 일관성이 있게 해야 백성이 믿고 소금 섬을 물로 끌라고 해도 끄는 법이다!" 형님의 결연한 눈 속에 여전히 은행잎들이 지고 있다. 나는 말없이 형님의 빈 잔에 막걸리를 따른다. 

  "폐일언하고"라고 한참 만에 형님이 덧붙인다. 

  "폐일언하고, 방송법은 과정이야 불법이라 할만정 법이 통과됐으니, 선후 재론할 것없이 그 '결과'를 우직하게 밀고 나가 시행해야 하겠고, 세종시 문제는 이러저러하니 그 '결과'를 뒤집어야겠다 하는데, 자가당착이라, 이를 어찌받아들여야겠냐, 일구이언(一口二言)은 이부지자(二父之子)라 했거늘, 나는 도무지 어찌 된 셈판인지 모르겠다. 나야 뭐 이를 어떻게 처결해야 나라에 보탬이 되는지 딱 부러지게 말할 만한 식견은 없다마는, 혼자 누워 있으면 괜히 잘난 지도자님들이 나 같은 백성 갖고 노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찜찜하더라. 너는 최소한도로다가 한 입으로 두말하며 살지 마라. 너야 글장이니 당(黨)을 바꿔 타고 말고 할 일은 없겠지만, 언젠가 글만 쓰겠다면서 대학 선생을 관두더니 몇 년 지나고 다시 기어 들어간 일 있어 당부를 해두는 것이야, 응." 

  형님의 말씀이 여기에 이르자 "아이고요, 형님!" 하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만다. 기어코 신종플루 의심환자인 형님의 침방울이 그놈의 '지도자님들' 때문에 난데없이 내 정수리로 날아오고 만 것이다. 정수리가 송곳에 찔린 듯 아프다. 

                                  형님 말씀, 이게 어찌 된 셈판인가- 박범신의 <산다는 것은.>중에서

  

참, 촌철살인의 기막힌 산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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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6-1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산문인가요? 마치 재미있는 소설 한 자락 같아요. 정말 너무 구수하고 날카롭고...작가의 형님도 범상치 않군요. 읽다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stella.K 2010-06-10 13:03   좋아요 0 | URL
네. 재밌죠? 박범신에 매료되다 보니 그만...ㅋㅋ

무해한모리군 2010-06-10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네요.

stella.K 2010-06-10 15:0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렇게 평생 초야에 묻혀 살았을 어르신도 이런 말씀을 하는데
그 잘난 지도자님들은 뭘 하시는 건지...ㅠ

카스피 2010-06-11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는 말이네요^^

비로그인 2010-06-1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흑~~
쫙쫙 감기네요.
 

SBS의 <커피하우스>다.  

표민수PD야 더 말해 뭐하겠는가? 이미 명품 드라마 만들기로 유명한 사람 아니던가? 하지만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난 이 사람과는 인연이 없었다. 더 정확히는 이 사람과 인연이 없는게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과 손잡고 일하는 작가들이 오히려 내 취향이 아니었으니 그럴 밖에.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취향이 뭘까? 그걸 특별히 분석해 본적은 없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건, 애절한 사랑은 소녀 취향이라 그다지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표민수 피디야 그런 쪽에서 베테랑이 아니었던가? 

사실 이 드라마도 그다지 오래 봐 줄 생각은 없었다. 잠시 보다가 맘에 안 들면 후꺼덕~ 채널 바꿔 탈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유명한 표민수 피디가 만든 것이니 신고식을 어떻게 하나 봐줘야 하지 않겠는가?  

헉, 근데 이거 제법 뭔가 한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볼 생각을 했던 또 다른 이유는, 예전에 윤은혜와 공유가 출연했던 <커피프린스 1호>점을 너무 재밌게 본 기억이 있어서다. 과연 그 드라만큼 또 그 이상으로 재미있을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강지환이 작가로 나온다기에 보기 시작했던 것도 나름 한몫했다. 그런데 더 정확히는 강지환이 작가로 나온다는 게 중요했던 건 또 아니다. 단지 등장인물 중 작가가 있다는 것이고, 그 작가의 역할을 강지환이가 한다는 것뿐.  그렇다고 내가 꼭 작가가 나오는 드라마를 선호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냥 강지환이가 작가로 나온다기에...그렇다고 강지환이를 내가 좋아하느냐면 그것도 아니고...... 아,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꼬여버렸다. 그냥 결론은 강지환이가 드라마에서 연기를 너무 잘한다는 것이다. 약간은 맛이 갈랑 말랑한 작가 역을 말이다. 그래서 이 배우에 대한 매력을 새삼 발견하는 것도 나름 드라마를 보는 재미를 쏠쏠히 더한다. 

 


 


 

 

 

 

 

 

 

 

 

강지환의 상대역 겸 극 중 작가의 비서로 나오는 함은정(오른쪽)은 전에 무슨 사극에서 몸종으로 나왔던 것 같은데 이번엔 나름있는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다. 첫회 때는 과연 역할을 잘 소화해낼까 싶었는데 가면 갈수록 연기를 잘 소화해 내고 있어 믿음이 간다. 

이쯤되면 작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군가 했더니 송재정이란다. 얼핏 들으면 남자 같은데 그는 명백히 여자였다. 그녀는 지난 세월 시트콤 작가로 유명했다던데 잘 알려진 작품으론 <크크섬의 비밀>이란 게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이것을 보았겠는가? 당연 보지 않았다.  

나는 매일 연속극은 보지 않으며 시트콤은 더더욱 내 관심 밖이었다. 그 억지 웃음 자아내는 건 <개그 콘서트>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나다. 그거야 이미 그러자고 작정하고 만드는 것이니 가끔이라도 봐 줄 수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시트콤을 명품 드라마로 봐 주긴 좀 뭐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송재정 작가 만만찮은 것 같다. 드라마는 자고로 스토리 보다 캐릭터다. 특히 우리나라는 스토리는 좋을지 몰라도 캐릭터가 살아있지 않아 드라마를 깎아 먹는 일이 너무 많다. 물론 내가 끝까지 보는 드라마가 왜 적은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느 부분까지 보다 내팽개친다. 그게 인내심의 부족인건지? 캐릭터가 약해서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내가 보는 이유는 확실히 캐릭터다. 캐릭터가 살아있다. 

찌질이고, 어딘가는 치우쳐져 있으며, 어딘가는 그늘져 있다. 그런데 웃긴다. 그리고 말이 되는가? 30대 초반에 출판사 사장이라니?(박시연)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그런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출판사 사장이 되도록 훈련 받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캐릭터다. 그렇지 않고서야 출판사 사장을 날로 먹어? 이렇게 드라마는 좀 황당하고 비합리적 역할을 감행하도록 하지만, 내가 이 드라마가 좋은 이유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무조건 멋지고, 예쁜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라. 강지환의 비서 역의 함승연. 외모는 평범 그 자체인데다가 사이코 고용인을 만나 악전고투 중이다. 그런데 이 정도하니 볼 맛이 난다는 거다. 주인공이 예쁜데 파리하고 병까지 있어. 뭐 이런 캐릭터 이제 좀 식상하지 않나? 

암튼 난 한 드라마에 꽂히면 그 드라마를 쓴 작가가 궁금해지고 그 사람이 이전에 어떤 작품을 썼나? 궁금해진다. <크크섬의 비밀>이라. 찾아 봐야겠는걸?  

<커피하우스> 아직까지는 선전하고 있다. 초반엔 시트콤 후반엔 미니시리즈라고 하더만 그 설정이 다소 불안하다. 부디 끝까지 좋은 드라마로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켜주고 종영했으면 한다.

덧) 드라마가 뜨면 꼭 그 드라마를 소설로 푼 책이 나온다. 지문 하나 토시 하나 달라지지 않고 드라소설로 나온 소위 말하는 드라마 소설 읽는 맛이 나던가? 전에 한번 읽으려다 그만 엎어버리고 만 쓰라린 추억이 있어서 감히 좋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다 개인의 취향의 문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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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09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드라마까정?
드라마도 이렇게 분석적으로 시청하시는군요~~ㅋㅋ

stella.K 2010-06-09 14:15   좋아요 0 | URL
헉, 저 원래 이랬는데요...긁적긁적.

야클 2010-06-09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이'가 쵝오!

stella.K 2010-06-09 14:57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전 이게 또 잘 안 봐지더라구요.
문제는 그노무 장옥정과 순조 때문입니다.ㅜ

카스피 2010-06-10 09:35   좋아요 0 | URL
근데 장옥정과 숙종아닌가요^^

stella.K 2010-06-10 11:11   좋아요 0 | URL
크, 그렇군요.ㅜ

Forgettable. 2010-06-09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섬의 비밀은 은근히 매니아층이 있었는데 많이 뜨지 못했었어요.
시즌2가 당연히 나올법하도록 결말을 내는 모험을 감행했지만 아직 시즌2소식은 없고ㅠ
여튼 크크섬의 비밀 정말 최고였는데 ㅎㅎ 요즘 그 작가가 이런 드라마를 하고 있군요,

stella.K 2010-06-09 14:33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크크섬 시즌 2가 좌절 됐다고 하더군요.
님께서도 이리 말씀하시니 저도 늦게나마 한번 보도록 하겠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