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수집가-유년시절> 5월의 구독자를 모집합니다.

이달에도 변함없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회, 월 16회 발행합니다.

 

모집기간은 11일까지.

구독료는 9000원입니다.

연재시작은 5월 13일이고,

연재종료는 6월 6일까지입니다.

 

과월호 3월호와 4월호는 각각 5천원입니다. 5월호부터 읽으셔도 상관없지만 연재인만큼 그전에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왔나를 알고 싶으신 분은 과월호도 추천해 드립니다. 물론 5월호를 읽지 않으시고 과월호만 신청하셔도 됩니다.

 

신청은 이메일 주소 stells15@never.com 으로 받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신청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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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5: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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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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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0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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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16: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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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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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 1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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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9 15: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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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9 1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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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6: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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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0 1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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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로 4월호를 마쳤습니다. 이메일 연재 두 달째를 보낸 셈이기도 한데 이즈음 참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글을 잘 쓰고 있는 건지, 독자는 내 글에 얼마만큼 만족하고 있는 건지, 무엇을 느꼈을지 매일 생각하고, 매일 반성합니다.

    

언젠가 어느 독자분께서는 제 글이 감질나다고 말씀하셨는데,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어느 정도 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렇다면 난 성공한 거라며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연재한 글을 한글 파일에 옮겨 담으면서 그렇게 생각한 게 너무 철이 없었던 건 아닐까 민망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구독료 9천원이면 그것에 합당하고 만족하게 글을 썼을까? 한편의 글을 쓰면 완결미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원래 짧게 끊어 읽어 가급적 독자들이 편하게 읽도록 해 보자는 게 의도였는데 너무 그 생각에 치우쳐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다시 읽어보니 얼굴이 좀 화끈거리더군요. 이렇게 완결미가 없고 불친절해서야 아무리 내 글이지만 나라도 읽을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명 같지만, 애초에 이 글의 모토는 짧은 글, 긴 생각이었습니다. 제 글이 하나의 자극제가 돼서 독자분들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거요.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저도 어린 시절에 빠져 기분이 좋아지면서 차분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어린 시절이 항상 좋고 아름다운 기억만 있는 건 아니지만, 지나간 추억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윌리엄 맥스웰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기억이란 마음속에서 반복해 들리는 어떤 이야기이며 말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종종 바뀐다. 가끔은 자기 안의 이야기꾼이 나서서 상황을 재배치하기도 한다. 어쨌든 과거에 관한 한 우리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그러므로 소설이란 본인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장이 아니라 과거를 재창조하여 독자를 매혹하는 것이다.’라고요.

    

정말 말이 좋아 기억 수집가지 저는 여러분에게 글을 보내려고 할 때마다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글을 쓰면서도 그때이랬는지 저랬는지 헷갈릴 때도 많거든요. 하지만 논픽션에도 얼마만큼의 픽션이 존재하고, 픽션에도 논픽션이 존재하는 만큼 이야기는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규명하는 것에 있기 보다는 작가와 독자가 함께 공감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 이야기의 축제를 벌이는 거죠. 실제로 전 그런 마음으로 쓰고 있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급적 많은)사람들이 저의 이야기를 읽고 나도 자서전을 써 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 좋겠다고. 자서전이라고는 했지만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까지 이메일 연재로 쓰면서 마음이 한 번도 안 흔들렸다면 그건 정말 거짓말입니다. 솔직히 말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순간 아찔해지고 기운이 빠져버릴 것만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의 선배격인 이슬아 작가를 많이 생각합니다. 그녀도 처음엔 이러지 않았을까? 저러지 않았을까? 사람 마음 똑같은 건데. 그러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또 그러면서 글 쓰는 근육을 키워 나가는 것이겠죠.

    

앞으로는 조금 더 촘촘하고 알차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최소한 이 연재를 6월까지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의 응원과 격려가 있다면 연장해 볼 수도 있지만.아무튼 그때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성실하게 쓰겠습니다.

    

이달에도 변함없이 구독료는 9000원이구요, 5월호 신청은 11일까지입니다.

혹시 저의 계좌번호를 잃어버리셨다면 이메일로 알려주십시오.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달에도 변함없이 이메일 연재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기억 수집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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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구독자를 모집합니다

 

#싸움

가끔 동네가 싸움판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디서 싸움이 났다하면 삽시간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 동그랗게 둘러싸고 구경하느라 바글댔다. 세상에서 제일 볼만한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정말 볼만해서라기보다 왜 불이 났는지, 왜 싸움이 난 건지 그 원인을 알고 싶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건 우리 집과는 전혀 관련 없을 거란 모종의 믿음 같은 것이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아뿔싸. 우리 엄마가 싸움의 중심축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 날 피아노를 갔다 오니 우리 집 앞에 한 떼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웅성웅성 떠들고 있었다. 놀라 냉큼 달려가 보니 엄마가 한쪽 눈 밑이 파여서 빨간 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싸움의 상대는 며칠 전 우리 집에 한 포대의 밤고구마를 팔았던 아줌마였다.

 

그땐 밤고구마를 먹는 건 큰 행운처럼 여겨졌던 때라 그 아줌마 덕에 그걸 먹게 된 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너무 밤이라 잘못하면 목이 미어 먹다가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이러다 내 아이들 잡겠단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반품을 요구했던 모양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안 된다고 했었던 모양인가 보다. 그러다 뭐 때문인지 기습적으로 돌멩이 하나를 들어 엄마한테 던지더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렇게 맞기도 다행이지 잘못하면 실명이 됐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아줌마는 시장판에서 싸움꾼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아니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상대를 말 것이지 우리한테 제대로 된 밤고구마 사 먹이겠다고 하다 이런 엄청난 사단을 벌이다니. 그렇더라도 좀 심한 것도 사실이다. 화가 난다고 사람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돌을 던진단 말인가.

 

그렇게 한바탕 했음에도 성이 안 풀렸는지 엄마와 그 아줌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 2차전 했다. 다행인지 그땐 부천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와 계셔서 싸움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역시 오빠가 빠지지 않았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오빠는 그 아줌마의 뒤에 달라 붙어 머리끄덩이를 잡더니 한 뭉텅이의 머리카락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장난기가 역력했다. 오빠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웃어야할지 말아야 분간이 가질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악에 받혀 이것들아, 이년아.”하면서 쓰러졌는데 순간 신발이 벗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역시 할머니가 좀 웃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는 없고 아무튼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 맘도 나도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만 어렸더라도 잔뜩 겁을 먹고 엉엉 울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렇게 쓰러져서일까? 싸움은 생각 보다 빨리 끝났다. 요즘 같으면 누군가의 빠른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시작도하기전에 끝났을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는 혼이 나간 듯 마루 끝에 걸터앉아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후 언젠가 여름에 수영장을 다녀오다가 차멀미가 나서 시구문 시장에서 택시를 내리자마자 어느 맨홀 뚜껑에 한바탕 토를 했다. 정말 내 일생 그렇게 많은 토를 해 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는 급한 대로 물 한 양동이를 얻으려고 단골 야채 가게를 찾았는데 가는 날이 장난이었을까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예의 그 고구마 파는 아줌마가 여전히 누군가의 머리 끄덩이잡고 싸우는 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 놈의 버릇은 어디 안 가는구나 했단다. 글쎄, 지금 같으면 분노조절 장애라고 이해도 할 텐데 그런 이해가 없던 시절엔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할지 그냥 혀만 끌끌 찼다.

                   

엄마는 세월이 흐르고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하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안 그러겠는가. 나름 점잖은 마나님인데.

 

#엘리제를 위하여

그렇다고 내가 피아노를 단 1도 안 좋아했냐면 그렇지는 않다. 1 정도는 좋아했다. 그건 하논, 바이엘 이런 걸 치다가 피아노 명곡집인가 하는 악보집을 칠 때다. 특히 거기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란 곡이 있었는데 난 그것을 빨리 배우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다. 난 그때까지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당시 선생님께 같이 배웠던 나 보다 나이 많은 언니가 둘 있었는데(그들은 친자매지간이었다) 그들은 피아노를 유창하게 쳤을 뿐 아름답게 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나도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유독 <엘리제를 위하여>는 뭔가 낭만적이며 동시에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조바심을 냈던 것도 당연했다. 물론 선생님은 악보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르치셨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아무데나 내키는 대로 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훑었는데 몇 곡은 뛰어넘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는 없었다. 그런 곡은 재미없다고 생각하신 건지 아니면 가르쳐 받자 내가 따라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지.

 

아무튼 그 곡으로 인해 처음으로 피아노에 의욕을 보였으니 선생님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배운지 얼마 안 돼 선생님은 무슨 사정에 의해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나를 선생님의 친구에게 인계했다. 새로운 선생님도 나쁘진 않았지만 워낙에 내가 피아노를 싫어하니 엄마가 어느 날 결단을 한 것 같았다. 더 이상은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기로. 처음엔 그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정말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되다니. 이제 겨우 의욕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난 좀 아쉽긴 했지만 미련 같은 건 없었다.

결국 내가 처음으로 의욕을 보인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엄마를 위한 내 마지막 헌정 곡이 된 셈이다.

 

                                                           <기억 수집가- 유년시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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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를 갔다오니˝ - 피아노 학원에 갔다왔다는 말이죠? 그 시대에 피아노를 배웠다면 유복한 집에서 자란 걸로 생각됩니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저도 칠 줄 압니다. 저는 제 친구들 결혼식에서 웨딩 마치를 쳐 줬어요.(남의 서재에 와서 내 자랑질을 하고 있음.ㅋ)

그런데 피아노를 친 지 너무 오래돼서 지금은 못 칠 거예요. 다행으로 여기는 건 피아노 배울 때 왼쪽 손의 손가락도 같이 치니까 오른쪽의 두뇌가 발달했을 거라는 거죠. 대부분 왼손은 잘 안 쓰잖아요. 타자를 처음 배울 때 피아노를 양손으로 치던 경험이 있어서 쉽게 배웠어요. 뭐든 배워 두면 안 배운 것보다 나은 것 같아요. 요즘 부모들이 애들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건 피아니스트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두뇌 발달을 생각해서일 거예요. 양손을 쓰고 발은 페달까지 밟고 눈은 악보까지 보니 두뇌가 얼마나 바쁘겠어요. 그만큼 두뇌는 발달하죠. 머리는 쓸수록 발달하니까요.

저도 애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게 했어요. 오른손을 쓰면 왼쪽 두뇌가 발달하고, 왼손을 쓰면 오른쪽 두뇌가 발달하고. 두뇌 한 쪽은 이성과 논리 영역이고 다른 한쪽은 감성, 상상력 영역으로 알고 있어요. 양손을 쓰면 이성과 감성, 다 발달하겠죠. 저는 지금도 왼손을 많이 쓰려고 걸레질도 왼손으로 할 때 많아요.

어머님 싸움. 재밌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경험이겠습니다. 저는 불 구경은 재밌는지 모르겠고 - 안타까운 마음에 - 싸움 구경은 재밌을 것 같습니다.
기억수집가. 연재 제목이 좋습니다.
(쓰다 보니 댓글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ㅋ)



stella.K 2019-04-05 14:42   좋아요 0 | URL
긴글 고맙습니다. 저도 제목은 마음에 듭니다.^^

2019-04-04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4-0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모 인간이 쓴 ‘창녕‘이라는 제목의 요상한 잡설이랑 느낌은 비슷한데 삼만 배 정도 더 좋네요

stella.K 2019-04-05 14:22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마워요. 제가 스요님으로부터 칭찬도 듣고.
그런데 좋긴 좋은데 구독하실 의향은 없으시고~ㅎ
전에 스요님이 글을 팔기 위해 꼭 책이란 물질적 요소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해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독자의 눈은 높은 것 같습니다.
감히 작가가 따라 갈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흐흑~


후애(厚愛) 2019-04-1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시고 감기조심하세요.^^

stella.K 2019-04-15 14:15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후애님도요.^^

2019-04-21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2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3월부터 구독자를 모집하여 이메일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기억 수집가-유년 시절>입니다. 저는 주로 유년 시절을 70년대에 보냈는데요. 그 시절 조그만 계집애가 문화와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며 성장해 가는가를 아카이브 형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미 구독해 보신 분들은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옛날 어렸을 때가 많이 생각난다고 대체로 재미있어 하셨습니다. 마치 예전에 우리가 TV에서 즐겨 보았던 <응답하라 시리즈> 같다고.이미 3월부터 시작했으니 뭔가 시간적 맥락이 있는 것 같은데 중간부터 읽어도 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디부터 읽어도 부담 없이 끊어 읽기가 가능하도록 구성하였습니다.

 

그래도 앞에 무슨 내용으로 썼는지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과월호를 한글 파일에 담았습니다. 4500원에 판매하오니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4월은 8일부터 52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이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분량은, 요즘 시중에 원고료는 A4용지 한 장당 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그 A4 용지 2매 반 내지 3매 정도의 분량입니다. 구독료는 지난달과 변함없이 9000원입니다.

 

모집 기간은 6일 토요일까지 받겠습니다stells15@never.com 로 신청하시거나 댓글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독료 납입 방법을 알려드리구요, 댓글로 신청하실 분들은 본인이 가장 잘 쓰는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구독하신 분은 이메일 주소는 따로 알려 주실 필요는 없으시구요, 구독료 납입 유무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메일에 각종 요금 청구서나 스팸 또는 업무 관련된 메일이 주를 이루지 않나요? 그 가운데 작가인 제가 보내 드리는 메일을 받아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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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싸움 / #엘리제를 위하여
    from 네 멋대로 읽어라 2019-04-03 18:54 
    #싸움가끔 동네가 싸움판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디서 싸움이 났다하면 삽시간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 동그랗게 둘러싸고 구경하느라 바글댔다. 세상에서 제일 볼만한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정말 볼만해서라기보다 왜 불이 났는지, 왜 싸움이 난 건지 그 원인을 알고 싶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건 우리 집과는 전혀 관련 없을 거란 모종의 믿음 같은 것이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아뿔싸. 우리 엄마가 싸움의 중심축이 될 줄
 
 
 

 

 

<장기하와 얼굴들>이 작년 말로 해체했다. 꼭 10년만의 일이라고 한다. 해체 이유가 쿨하다. 진정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음악의 완성도가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될 때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나 뭐라나.

 

그러고 보면 참 많이 다르다 싶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무슨 그룹이 해체한다고 하면 내부 불화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하다못해 그렇게 위대하다던 그룹 <비틀즈>도 불화설로 해체하지 않았나? 1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그들를 좋아했던 대중들로선 아쉬움이 클 것이다. 아직도 이들이 쏟아 놓을 음악은 많지 않나? 2, 30년 하는 밴드들도 많은데 10년이면 긴 기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더 이상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다.

 

이들의 마지막 공연이 작년 말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있었다. 나는 뒤늦게 TV 다시보기로 최근에서야 봤다. 그들이 처음 데뷔 무대도 이곳이었다. 2008년 '헬로 루키'란 신인 발굴 프로젝트에서. 그 무렵 '싸구려 커피'와 '별일없이 산다'를 들었을 때의 충격이란. 한마디로 신선했다. 내가 중학교 시절 그룹 <산울림>의 음악을 처음 들었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솔직히 그때 '산울림'의 음악은 좀 낮설었다. 무슨 동요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가요라고 할 수도 없고. 성인 동요쯤 된다고 해야하나? 의아스러웠고 그런 노래라면 나도 만들겠다 싶은 것도 있었다. 특히 그들의 공전의 히트곡 '산 할아버지' 같은 경우. 그런데 나이들어 다시 들어보니 이건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런 충격과 느낌이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고스란히 다시 떠오른 것이다. 이들의 음악과 <산울림>의 음악은 색깔이나 취향이 좀 다르긴한데 분명 당대의 음악이 추구했던 것과는 명백히 차별됐다. 바로 그런 점에서 <장기하...>에서 '산울림'의 데자뷰를 느낀 것일 테고.

 

글쎄, 굳이 <장기하...>와 <산울림>이 같은 거라면 성인 아이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몸은 이미 성인이 됐지만 정서나 감정까지 성인이 되지 않고 철없는 아이로 남아 그 느낌과 시각으로 세상을 노래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공통점은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사랑하면 실연이 따라오는 법인데 실연을 겪고나면 어른으로 되어버리는 거니까.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을 노래하던가.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산울림>은 아예 어린 아이의 시선 그 자체라면 <장기하...>는 루저라는 거다. 루저의 삶을 노래하고 나아가서 루저가 뭐 어때서 하는 당당함 내지는 저항을 얘기한다. 어찌보면 세상에 잘 나가는 사람에게 늬들이 루저를 아냐고 묻는 것도 같다.

 

이들의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난 이들의 초기 음악 몇 곡 외엔 잘 몰랐다. 공연을 보면서 이들이 참 많은 곡들을 만들었구나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그 곡들은 초기의 곡들 보다 훨씬 발전되고 스킬이 좋아졌다고나 할까? 그냥 이야기하는 것처럼 중절대는 것도 좋았다. 

 

방송은 1시간 남짓이지만 실제 공연은 못해도 한 시간 반 이상은 하지 않았을까? 이들이 걸어 온 발자취를 보여주는데 처음 데뷔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말쑥하고 더 젊어뵌다. 특히 팀의 리더 장기하가 평소 조금 독특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실제 공연 모습을 보니 생각 보다 더 독특한 느낌이다. 무대에서 전혀 쑥스러워하거나 굳이 잘 보이려 하거나 꿀리는 것이 없다. 그게 카리스마라면 카리스마이긴한데 본인은 카리스마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10년 동안 늘 같이 하다가 이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는데 멤버들 저마다 어느 길로 갈 건지 알려지지 않아 좀 궁금하기도 하고 은근 걱정도 된다. 참고로 장기하는 큐레이팅 공연을 할 거라는데 나머지는...? 이러다 몇 년 있다 재결합할 것은 아닌지? 아무튼 잘 갔으면 좋겠다. 

 

특별히 이 무대는 주최측에서 '박수칠 때 떠난다'란 타이틀을 붙여줬다고 한다. 이건 분명 영화 제목을 패러디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박수칠 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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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11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2008년 초반부터 군에 입대했어요. 그해에 일어난 모든 사건과 이슈가 정확히 뭐 있었는지 몰라요. 내무반에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누군지 처음 알았어요. 이 밴드가 나왔을 당시에 대중의 충격적인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저는 그거 보면서 ‘그냥 특이하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구나’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

stella.K 2019-03-11 18:00   좋아요 0 | URL
충격적이었나? 그런 것도 같고.
<산울림>이 처음 나왔을 때 꽤 유명했거든.
그때 유행하던 음악과 괘를 달리했으니
그 특이함에 사람들이 놀랐지.
그래도 그 보다는 덜하지 싶기도 해.
2008년도면 어느 정도 음악의 다양성이 추구되던
시절이었으니. 그래도 인디 밴드 치고는 갑이지.
더구나 장기하가 서울대 출신이잖아.
노래 부르는 스타일도 독특하고.
나중에 기회되면 한 번 봐봐. 팬들이 꽤 있어.
그리고 혹시 인디 음악에 관심있으면
목요일 밤늦게 KBS1에서 하는 <올 댓 뮤직>함 보고.
<스페이스 공감> 본 딴 거긴한데 우리나라 음악이
이렇게 다양한가 새삼 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