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밤에 눈이 왔다는데 원래 첫눈은 알 길이 없게 오는 법. 내 눈에 띄는 첫눈은 언제쯤 발견될지 모르겠다. 오늘은 어제보다 풀렸다고는 하는데 그래봐야 겨울. 움츠리게 된다.
1. 이제 동네 붕어빵 장사는 더 이상 장사를 하지 않을 모양인가 보다. 해마다 11월 말 정도면 붕어빵을 개시하던데 올핸 12월이 시작됐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작년만해도 덤 없이 천원에 세 개하던데 지금은 천원에 한 마리 주는 곳도 있다고 하니 아예 장사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가 보다. 아니면 쥔할머니가 어디가 아프거나.
우리야 겨울 한철 동안 2번 많으면 3번 정도 밖엔 안 먹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이면 생각나는 게 붕어빵인데 이제 그것을 파는 광경을 볼 수 없다니 좀 아쉽긴 하다. 이런 것도 좀 장인으로 보호해 주고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뭐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장인은 너무 심했나? 솔직히 붕어빵 우리나라에서나 팔고, 해외에 혹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 우리나라에서 나간 거 아닌가. 그럼 국가 브랜드 아닌가. 이게 사라지면 좀 섭섭할 것 같다. 물론 아쉬우면 인터넷 뒤져 사 먹으면 되긴하다. 그렇잖아도 비대면 시대 아닌가. 그래도 옛날부터 이어져 온 정취라는 게 있는데 좀 쓸쓸하다.
2. 또 붕어빵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붕어빵 할머니가 더 이상 장사를 하지 않는 건 밀가루 폭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밀가루 정말 흔했는데. 마진이 남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장사를 시작도 않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어느 모임에 가니 그곳 캡틴이 어디서 얻어왔다며 어느 제과점 단팥빵 한 봉지를 내놓았다. 무슨 제과점인지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팥이 듬뿍 들어간 게 되게 실해 보였다. 근데 빵이 상당히 얉았다. 뭐 비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밀가루를 적게 쓰고 대신 팥으로 채운 느낌이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닭 대신 꿩이라고나 할까. 누가 생각해도 밀가루 보다 비싼 게 팥 맞지 않나. 그런데 그 상식 같은 게 깨진 것 같다는 느낌인 것이다.
하긴, 어제 요즘 사회적 지탄과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 가서 식빵 두 봉다리를 사긴했지만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그 젊은이에겐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ㅠ 잘못은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사측에 있는거지 이름만 빌려 쓰고 안 그래도 쎄 빠지게 일하고 먹고 사는 점주가 무슨 죄란 말인가.) 사면서 단팥빵을 우연찮게 보니 예전만 하던가 좀 작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모임에서 먹은 그 단팥빵은 그 제과점만 있는 거 같긴하다.
아무튼 붕어빵이나 단팥빵이나 보고 있자니 참 우리가 쉽지 않은 세월을 살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참고로 우린 우리집 가장 덕분으로다 가끔씩 호도과자와 안흥찐빵을 주문해 먹는데 그 때문에도 붕어빵을 사 먹을 기회를 더욱 차단 당해 온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도 붕어빵 생각 날 때마다 대신 호도과자를 더 열심히 사 먹게 될 것 같다. 이만하면 닭 대신 꿩 맞지 않나. 그 확인되지 않은 유명한 마리 앙트와네트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이라고 했던 말도 생각나고.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녀의 시대엔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이 시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3. 요즘 아침이면 한동안 보지 않았던 K 본부의 <인간시대>를 다시 보곤한다. 이 프로가 한 30년 넘은 장수 프로인 걸로 아는데, 초기엔 보다가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 같아 꽤 오랫동안 보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었을까, 다시 보니 그도 볼만하고 사람이 꽃이라더니 과연 그런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주 전엔 어느 70대 노부부가 밭농사를 하면서 2년제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모습이 나왔다. 할아버지는 내년이면 8순을 맞이해서일까? 공부엔 딱히 뜻이 없는데 곧 70대 중반에 돌입하는 할머니는 뒤늦게 한글을 깨우치고 새 인생을 살고 있다.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그냥 할머니 병풍이 된 셈이고, 그 학교는 비슷한 사연을 가진 만학도들의 배움터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렇게라도 공부를 마치면 좋은 거지 뭐.
아무튼 그걸 보니 나도 다시 학교를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물큰 들었다. 물론 배우는데 나이가 상관이 없다고는 하지만 공부는 오히려 나이들어 해야 효율성이 더 놓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나는 어렸을 때 학교를 정말 싫어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싫다기 보단 두려워 했던 것 같다. 아침에 눈만 뜨면 학교 갈 생각에 오늘 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한숨으로 시작하곤 했다.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못하면 회초리감이다. 그리고 난 결코 후자면 후자지 전자는 못 됐다. 그나마 친구 사귀는 재미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딱히 그럴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한동안 시험에서 정답을 못 써 발을 동동구르는 악몽도 꽤 꿨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도 들었고 그동안 누구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 산전수전 겪을만치 겪었으니 세상을 보는 눈도 생기고, 무엇보다 이제 인생을 아껴야 할 때 아닌가. 다시 공부하면 정말 재밌게 공부할 것 같다. 그 프로를 보니 삼삼오오 조금씩 간식들을 싸 와 서로 나눠먹고 의 좋은 형제 자매들마냥 소풍 나온 분위기로 공부하더라. 나 때 저런 분위기가 어디 있는가? 경쟁심만 시퍼렇게 살아서 우열을 가르고 가능성 있는 놈들만 살아살리고 나머지는 학교 제정 충당원들로 만드는 게 다지.졸업장은 줄께 하는.
뭐 그런 게 아니어도 중고등 과정은 다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도대체 학 과정이 나 때랑 달라지면 얼마나 달라졌는지 문득문득 알고 싶을 때가 있다. 위의 경우는 만학도들의 모임이지만 어떤 만학도는 진짜 사춘기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도 하더라. 그건 왠지 용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그렇게 섞여서 공부하면 서로 뭔가 윈윈이 될 것 같다. 앞으로는 공부하는데 나이 제한 초입학, 재입학 뭐 이런 거 따지지 말고 원하면 언제든지, 어느 과정이든 공부할 수 있는 뭔가 획기적인 학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또 얼마 전 읽은 그 알량한 세계사를 읽은 효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