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大기자, 연암
강석훈 지음 / 니케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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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 스스로를 기자라고 한다고 했을 때 난 좀 얼떨떨했다. 

그렇다면 난 이제까지 그를 무엇이라고 알고 있었을까? 실학자겸 문장가 아니었나? 소설가라고도 하고. 그것은 또 허균과 얼마나 많이 헷갈리던가. 기자가 그리도 오래된 직업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기자는 우리나라엔 적어도 20 세기 초에나 생겨난 직업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연암은 무려 1780년 건륭제의 70회 생일을 맞아 진하 사절단으로 북경으로 갈 때 자칭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것은 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거의 1 세기나 앞선 것이기도 했으니 긍지를 가져도 좋을만하겠다. 기자라는 직업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기자가 쓴 글을 좋아해서 이 책을 읽었다.  

기자가 쓴 글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내가 읽은 건 문학이나 출판 분야에 한정되었으니 이렇게 역사적 인물을 대상으로 쓴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게다가 저자는 중국 특파원이(었)다. 그러니 기자로 본 연암 연구라고나 할까. 책이 제법 묵직하다. 저자가 왜 주제를 그렇게 잡았을지도 알 것 같기도 하다. 중국 특파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니 과연 기자로서의 연암을 추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불어 기자는 과연 어때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연암은 1737년(영조 13년) 음력 2월 5일 처사 박시유와 함평 이 씨(?)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부 박필균은 지평, 교리 등 벼슬을 했지만 아버지 박시유는 벼슬에 별 뜻을 두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때문에 연암은 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연암 역시도 과거를 포기하기도 했으니 그 점은 아버지를 닮은 듯도 하다. 또 그게 과거를 볼만한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는 과거 시험장에서 답안을 쓰긴 했지만 내지는 않고 과감히 그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고 한다. <과정록>을 보면 그가 쓴 고체시가 하도 기이하고 뛰어나 친구들이 그것을 외웠을 정도라고 하니 가히 천재급 아닌가.  



그는 왜 그랬을까. 원래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므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무언의 항거 수단이었고 그러한 저항을 통해 양반 사회의 이중성과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진정한 선비 정신으로 가다듬고자 했을 것이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 시절이나 이 시절이나 입신양명은 보통 사람의 한결같은 꿈인가 보다. 연암이 멋있는 건, 그는 타고난 배경과 학식이 있음에도 그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했다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연암이 생각하는 기자는 어떤 사람일까.  

읽다 보면 그가 술을 부어 먹을 갈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딱 이것만 읽으면 멋과 풍유가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렇진 않다. 그때 하필 물이 없어 급한 대로 술을 썼던 것이다. 급하게 기록해야 할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필수인 적자생존이란 말은 최근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아니구나 싶다. 그나마 가까이 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도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인간의 기억이 그리 오래지 못하고 누구는 7초 이상을 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던데, 먹이 어디 7초 안에 갈아지는 물건이던가. 휘발되는 자신의 기억력을 어떻게 부여잡았을지 말이 좋아 멋이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에 비해 현대에 들어와서 아날로그 시대 땐 수첩과 볼펜을 썼을 것이고, 지금은 스마트폰을 필수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과연 기자의 적자생존이 그 옛 시대보다 나아졌는지 기자들에게 물어볼 일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고사성어가 있긴 한가 보다. 말안장에서 붓과 벼루를 꺼내 술로 먹을 간다는 뜻의 손주마묵. (그런데 한자사전에선 찾을 수가 없다. ㅠ) 과연 낭만적이다. 연암이 풍유 정신과 적자생존의 정신은 모두 갑이었으니 둘 다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연암의 기자 정신과 글쓰기 정신이다. 

그중에서도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연암이다. 

기자들 사이엔, 'Something about everything, everything abdut something'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기자는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어떤 것은 모두 알아야 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 같기도 하다. '모름지기 기자라고 하면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어떤 분야에서라도 예측 불허의 뉴스거리가 발생하면 언제든 취재할 수 있는 일정 정도의 상식과 교양이 필요하며 달팽이 촉수처럼 늘 안테나를 세우고 기사를 취재할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너럴리스트로서의 기자다. 그리고 이것의 진가는 열하일기가 보여준다.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연암은 어떠한가. 앞서, 과거에서의 제출하지 않은 시험답안을 친구들이 외울 정도라고 했던 것처럼 연암은 박학다식 박람강기(다양한 책을 읽고 기억을 잘함)의 스페셜리스트였다. 대형 르포르타주인 열하일기의 큰 주제는 바로 신진 문물제도 도입과 이용후생을 통한 부민 강국을 모색하는 '조선의 국부론'이었다. 그런 만큼 연암은 탁월한 경제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기자는 과연 어떠한가. 연암 같은 기자 어디 없냐고 찾는 것이 아니다. 과연 오늘날의 기자에게 자기 전문분야는 있는지, 일부러 자기 분야 외엔 다른 것엔 일체의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우물 안의 개구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또 그것은 기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인이라는 사람일수록 외골수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통섭을 외치기도 한다.  



오늘날의 기자를 두고 사람들은 기레기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기자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가짜 뉴스도 많아졌고, 직접 보고 발로 뛰기보다 인터넷 어디선가 있을 법한 기사를 자기 구미에 맞게 살짝 고치고 자기가 쓴 양 하는 기자도 많다고 한다. 또한 진실을 파헤친다는 미명 하에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거나 사람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보도도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내 주위엔 신문과 뉴스 안 보고 산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골치가 아프다는 거다. 그때마다 기자는 한숨을 지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 이런 기자만 존재하겠는가. 분명 좋은 기자도 많을 것이다. 매스컴이란 게 워낙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다 보니 부풀려지고 때문에 좋은 글을 쓰는 기자의 글이 묻힐 때도 많을 것이다. 어떤 기자가 됐건 기사의 기술만을 배우지 말고 기자의 정신을 배웠으면 좋겠다. 연암은 나라의 부국강병과 실사구시를 추구하며 글을 썼다. 어떤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항상 발로 뛰며 현장을 중시했다. 그저 지면이나 겨우 채우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은 기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로 연암에게서 배웠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기자 역시 여느 작가 못지않게 글 쓰기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연암은 법고창신의 작법을 강조했다. 즉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그는 법고만 있어도 안 되고, 창신만 고집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글을 쓰기를 격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암의 시대에도 남의 글이나 베끼거나 글의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사실 오늘 날도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노하우만을 전수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아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글 쓰기에 관한 책은 잘 골라야 한다. 가급적 노하우는 글 쓰기 초보 때 읽고 이렇게 옛 선인들이나 창작의 정신에 대해 다루어 놓은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이건 나도 잘 안 된다.ㅠ)



고백하자면 난 지금 이 책을 다 이해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한 3분의 1이나 이해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못한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두 마리 토끼를 염두했다. 기자의 글을 좋아한다고 했던 만큼 저자의 글을 즐기고 더불어 연암도 알게 되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건 저자가 글이 못 써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연암에 대한 이해가 일천해서다. (솔직히 저자가 조금 더 풀어썼다면 하는 욕심도 없지 않다.) 그래도 내가 저자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건 저자가 정말로 연암을 좋아하는가 보다. 그리고 그런 저자의 자세가 좋았다. 누군가 닮고 싶은 모델이 있어 그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건 단순히 기술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고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번 정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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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2-11-18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저도 무척 좋아해요. 20대부터 꾸준히 읽고 있는데 느낌이 매번 달라요. 박지원 선생은 문이과 통합형 천재가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의 작가도 박지원 선생을 사랑하시는 모양이에요. 이해가 됩니다.^^

stella.K 2022-11-18 18:2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박지원은 잘 몰라서 읽는데 좀 그랬습니다.
mokl2000님은 박지원을 좋아하시니
이 책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정말 저자가 연암을 많이 좋아하는 게 느껴집니다.^^

바람돌이 2022-11-18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지원 좋아해요. 그의 산문을 읽으면 정말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죠.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생각의 지평을 보여주는 분입니다. 고미숙선생인 박지원과 정약용을 비교한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서도 아무리 봐도 매력적인 사람은 연암 박지원입니다. ^^

stella.K 2022-11-18 20:27   좋아요 2 | URL
어련하시겠습니까? ㅎㅎ 그러고 보면 박지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찜만 했습니다. 분발해야겠습니다. 고미숙 선생이 그런 책도 썼군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찜합니다. 좋은 주말보내십시오.^^

희선 2022-11-19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다보니 읽지는 않은 책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연암처럼 써라만 생각났는데, 찾아보니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네요 stella.K 님은 연암한테 관심을 가지고 이런 책을 보셨군요 저는 이름만 압니다 그런 사람이 한둘은 아니군요 연암 박지원이 기자였다니 그 시대 기자였네요


희선

stella.K 2022-11-19 09:49   좋아요 1 | URL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제목 같네요. ㅎ 다산과 연암에 관한 책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연암이 기자였다는 건 이책에서 첨 알았네요. 연암도 연암이지만 기자가 쓴 책을 좋아해서요ᆢ😂
희선님, 좋은 주말요!^^

페크pek0501 2022-11-27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암에게서 문장을 배우는 책을 읽었었어요. 당대 문장가 어쩌고 하면서 홍보했던 책 같아요.
이젠 책 제목도 기억이 꽝, 이네요. 흐흐~~

stella.K 2022-11-27 20:27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그래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기껏 남이 애써 말한 것도 알아 듣지도 못해 딴소리하고.
뭐 이러면서 사는 거죠. 세월 앞에 장사 없다잖아요.
그냥 대충 살기로 했어요.ㅋㅋ
 

이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눈물을 자아내는 영화일 것이 분명해 보이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의외성이 강했다. 우선 생각보다 최루성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고, 스토리는 그다지 새로워 보이진 않는데 담백하다. 새로워 보이지 않는 대신 과연 이런 엄마가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이를테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남아선호 사상에 남아 있지 않은가. 더구나 배경이 전라도 깡촌이다. 그렇다면 그 보수적 경향 때문에 여느 엄마라면 아들을 더 끔찍이 여겼을 법한데 영화는 반대로 딸을 더 끔찍이 여긴다.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불면 날아갈까 그런 애지중지가 없다. 


나름에 이유는 있다. 

엄마가 이 영화의 화자인 지숙을 낳기 전 얼굴도 모르는 언니를 낳았지만 얼마 안 있어 죽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자신이 태어났는데 엄마가 거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퍼붓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지숙의 남동생은 거의 학대에 가까운 수준으로 구박을 한다. (아들이야 구박은 해도 그 기저엔 남아선호가 깔려 있으니 그러려니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만하면 엄마의 딸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돈지 짐작이 갈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서사를 따라가기보단 인물에 집중해 보는 것이 좋다. 엄마 역의 김혜숙 배우의 연기가 단연 압권이다.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는 건 이미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입증한 바 있으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시골 깡촌의 촌부 역을 그야말로 찰떡 같이 소화해 낸다. 그녀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하다.


      

    우리네 엄마들은 왜 그렇게 바리바리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시는 건지...



이 엄마의 딸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하냐면, 원래 종교가 천주교다. 신부에게 고백성사를 하는데 딸을 그렇게 지켜주고 싶다면 묵주나 십자가 목걸이라도 해 줄 일이지 자꾸 부적을 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죄라는 걸 아니 자꾸 고백성사를 하는 것이다. 신부는 그러면 안 된다고 단단히 충고하려 하지만 답답증에라도 걸린 걸까? "아, 신부님도 아를 낳아 보쇼. 내 맴을 알텐께. 아참, 신부는 결혼을 안 하니 아를 못 낳제. 그러니 나 마음을 알리 없지." (뭐 이 비슷한 대사를) 하며 속죄소를 박차고 나간다. 



그만큼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나 같으면 그런 사랑 줘도 안 받고 숨이 막힐 것 같은데 적당한 사랑만 준 울 엄마가 얼마나 고맙던지. 솔직히 요즘에 과연 이런 엄마가 있나 싶다. 할머니라면 가능할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지숙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주니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 못지않게 엄마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정말 나만이 하는 사랑이다. 그렇게 사랑하면 누구에게 말해도 부끄럽지 말아야 하는데 지숙은 촌스러운 엄마가 자기 엄마라는 걸 차마 남에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학부모 참관수업을 위해 나름 학교에 조신히 차려입고 온 엄마를 거의 쫓아 보내듯 돌려보낸다. 문득 이 지점에서 난 그 옛날 나의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학급 환경미화를 위해 물품을 준비해야 했는데 조그만 나의 몸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 나는 학교에 먼저 가고 엄마는 마침 집에 와 계신 외할머니를 시켜 그 물건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퀵을 시켰겠지. '학교에 누구를 보내겠다고? 외할머니를...?'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내가 외할머니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누구한테 내보일 만큼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나름 오랫동안 한복에 쪽진 머리를 하고 계셨다. 

그때 외가가 부천에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곳은 꽤 시골이었다. 시골이야 나이 든 여성들이 한복에 쪽진 머리가 흔했으니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는데 문제는 할머니가 그다지 예쁜 스타일은 아니었다. 입도 크고, 코도 큰 그야말로 여장부 스타일이라 가끔 뵈면 어린 마음에도 놀라곤 했다. 물론 그건 할머니가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면 이내 가려지곤 했지만 그게 또 남의 눈도 가릴 만큼은 아니었으니 누가 할머니를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어린아이의 눈도 눈 아니겠는가. 


할머니는 학교에 5분도 채 계시지 않았을 것이다. 물건만 담임 선생님께 바로 넘겨 드리고 가셨으니. 그런데 왜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지. 아마도 그때가 내가 위선을 처음으로 경험한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날 집에 돌아와 할머니한테 얼마나 미안했던지.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가 떠오르면서 영화 속 지숙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사랑하면 신도 시샘을 한다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자신의 사랑으로 딸이 승승장구하고, 시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해 토끼 같은 손녀도 낳아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싶을 때 하필 딸이 췌장암에 걸린다. 처음엔 아무런 이유 없이 혼자 친정에 온 딸이 그저 반가울 뿐이었는데 사랑하면 직감은 더 예민해지는 법이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는 것도 수상하지만 결정적인 건 딸이 욕실에 들어간 사위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그 후 지숙의 투병과 이를 간호하는 엄마를 통해 모성을 보여주려 했다면 그렇고 그런 뻔한 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제 보면 다시 못 볼 엄마를 만나고 기차에서 헤어지고 바로 딸의 장례식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딸을 먼저 보낸 엄마의 절절한 슬픔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본지 하룬가 이틀 후에 이태원 압사 사고를 뉴스를 통해 접했다. 처음에 그 보도가 참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나름 치안이 잘 되어 있다고 하는 나라. 밤을 낮 삼아 돌아다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몇안 되는 (아마도 거의 유일할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16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났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차라리 세월호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람이 다니는 좁은 골목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압사 사고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다소 못 살고 후진 국가라면 이해할 것도 같다. 이런 선진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뉴스는 건조하라만큼 사고 경위와 사상자를 보도하고 있는데 눈에선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 흘렀다. 내가 이 정돈데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내가 이런 소식을 접하려고 그 영화를 봤던 걸까?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2, 30대의 피해가 가장 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생각이 전혀 도움은 안 된다는 걸 알지만, 하나 아니면 둘 낳는 시대에 그들의 부모는 어떤 자식에게서 이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을까. 그 자식을 가슴에 묻기까지 또 얼마나 가슴 쓰리고 참혹한 시간을 보내야 할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영화는, 엄마가 딸의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엄마의 일상은 이미 예전의 일상과 같지 않다. 이제까지의 일상은 사랑으로 충만한 일상이었다면 앞으로의 일상은 하늘나라에 간 딸을 만나기 위한 부서진 일상을 사는 것이다. 영화는 저 세상으로 간 딸에게로 가기 위한 첫날을 세는 것에서 끝이 난다. 

오늘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며칠에 해당하는 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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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1-04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보고 엄청 울었던 영화에요. 지금 일이 있어 시청에 왔더니 합동분향소가 있네요. 헌화했습니다. 많이들 찾으시네요.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보고 말하고 걱정하는 관점이 어찌나 제각각 다른지 놀랍고요. 그게 당연하겠지만요.

stella.K 2022-11-04 14:10   좋아요 1 | URL
역시 보셨군요.
전 의외로 담백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ㅠ
관점이 다르니까 할 얘기도 많은 거겠죠?
김혜숙 씨 연기가 참 인상적이더군요.

시청에 오셨군요.
그래도 슬픈중에 위로가 되는 건
이렇게 시민의 한 사람으로 알지도 못하지만 같이 슬퍼한다는 거겠죠.
현장에선 심폐소생술도 같이 했다고 그러고.
잘 하셨네요.^^

프레이야 2022-11-04 15:23   좋아요 0 | URL
아뇨 영화는 담백하고요. 이번 사건 사고를 두고 보는 초점과 하는 말들이 다양해요.

stella.K 2022-11-04 16:50   좋아요 0 | URL
이크, 제가 오독했네요. 제가 이렇습니다. ㅠ

바람돌이 2022-11-04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부님과 엄마의 대화가 재밌네요. 우리 옛날 어머님들 진짜 딱 저러셧을걸요.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은 어떻게 해도 극복이 안될거 같아요. 이태원사건 이후 계속 우울해서 무슨 말을 하기도 어려웠는데 아마도 제가 나이가 들어 희생자분들의 주 연령대가 우리집 애들 나이이다 보니 더 참담해지는듯 합니다.

stella.K 2022-11-04 16:57   좋아요 1 | URL
뭐 그만큼 딸을 사랑한다는 표현일텐데 재미있죠? 저는 이제 저의 엄마를 말리지 않습니다. 정말 이고 지지 못 할 때가 올 테니까. 대신 지난번처럼 정류장에 나가 있으려구요. 운동삼아서. ㅋ
맞아요. 다 비슷한 연령대 부모, 자식들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죠. 영화도 이런 식으로 연결이되고. 에고~ 그냥 한숨만 나오네요.ㅠ

라로 2022-11-04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뭐 그건 그렇고, 쭉 읽어 내려오면서 묵직하게 글을 쓰셔서 그런가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 생각은 못했는데 이태원 사고의 희생자들의 부모에겐
어쩌면 단 하나인 자식일수도 있겠군요.ㅠㅠ
자꾸 알아갈수록 참담한 마음입니다.

stella.K 2022-11-04 17:01   좋아요 0 | URL
자식이 열이 있어도 한 자식 없으면 다 마음 아픈거죠. 근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 죽어간 분들의 부모는 어떻게 사나 걱정이되더라구요. ㅠㅠ

페넬로페 2022-11-04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보면서 울 것 같아요.
자식을 먼저 보내는 상황은 언제나 슬프고 힘들잖아요.
세월호도, 이번 이태원 참사도 젊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안타까운 맘이 크지만 그들을 잃고 비통해 할 부모의 마음까지 생각되어 더 맘이 무겁네요^^

stella.K 2022-11-04 19:1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 영화 지금은 보지 마세요.
저는 사고 전에 봐서 그냥 담담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일이 있고 보면 슬퍼질 것 같아요.
울고 싶을 때나 덤덤할 때 보세요.
2, 30 때면 한창 예쁘고 보기 좋을 땐데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어갔다는 게 넘 마음이 아프네요.
다신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이죠.ㅠ

2022-11-07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7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가의 인생 공부 - 잘 쓰기 위해 잘 살기로 했다
이은대 지음 / 바이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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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책은 보통 세 부류의 사람이 내는 것 같다. 문학 그것도 주로 소설가가가, 자기계발이나 성공학 분야에서 내거나 또는 신문 기자들이 내거나. 이 책은 두 번째에 해당하지 않나 생각한다.

요즘엔 워낙에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다 읽을 수는 없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나도 한때는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제법 읽었고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읽으려고 하는데, 내가 선호하는 쪽은 문학이나 기자들이 쓴 책들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었다는 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제목에 끌려서다. 그저 단순히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인 측면보단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어 관심이 갔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구성이나 발상은 좋은데 나처럼 이 분야 의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굳이 추천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새롭게 관심을 갖는다면 읽을만하다. 글쓰기에 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기존의 그것과는 색다른 측면이 있어 그 점은 좀 높이 사고 싶다. 즉 문장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삶의 관점에서 대입시켜 보는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의 목차를 참조해서 보면 금방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그게 나름 노련하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저자는 글쓰기 강사로도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가르칠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시종일관 경어체로 썼다. 한 쳅터씩 읽을 때마다 꼭 저자가 미지의 독자 아니 미래의 작가에게 편지로 조언을 해 주는 것 같다. 특히 매 꼭지 말미에 네댓 줄로 내용을 요약하기도 하는데, 꼭 제자에게 보약 달여 먹이는 스승의 느낌이 들어 저자는 가르치는데 진심이구나 싶다. 단지 (자기계발 책들이 그렇듯) 너무 나이스한 게 좀 아쉽달까.

앞서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낸다고 말했는데, 그 세 분야가 결이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문학은 진지하고, 주로 성공을 가지고는 말하지 않으며 은밀하고도 음습한 것을 쓰라고 독려하는 반면, 기자들은 특성상 진실과 객관성을 유지할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있다. 그리고 자기계발 쪽은 뭔가의 확신, 개조란 측면을 강조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저자도 문학책 꽤나 읽었나 보다. 그 분야는 주로 위로를 많이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긴 한때 문학이 그런 경향을 보였고, 지금도 그건 여전하다. 그게 또 어찌 보면 문학의 한 기능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런데 비해 자기계발 책들은 등짝을 후려치듯 단호함이 있어 선호하게 됐고 말한다. 과연 그렇기도 하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의 경험들을 재료 삼아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작가가 뭔가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일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글 쓰기는 성공 가지고 말하기보단 실패 가지고 말해야 하는 게 작가의 숙명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게 읽어가다 '마감'(154p~)이란 챕터에 눈이 머물렀다. <작가의 마감>이란 책이 따로 있을 정도로 작가에게 마감이란 상당히 스트레스며 동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마감에 '책임지는 인생'이란 부제를 달아 놓기도 했다. 전에 나는 작가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게 원고료를 받느냐 아니냐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 마감에 있지 않나 싶다.

소싯적에 나도 작가가 돼보려고 이것저것 써놓은 게 좀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러니 공모는 고사하고 누구에게 내 작품을 읽어봐달라고 부탁도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교회에서 짧은 극본을 쓰게 됐고 이게 참 나를 여러모로 바꾸는 개기가 되었다. 물론 그 일은 힘들면 안 해도 되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의 일엔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힘들어서 포기하는 일과 힘들어도 해내게 되는 일. 나는 포기가 빠른 인간이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금방 손들고 나가떨어진다.

그런 내가 이 일만큼은 끝까지 해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게 꼭 원고료가 주어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전에 마감이 있어서다. 원고를 잘 쓰건 못 쓰건 주어진 분량을 주어진 시간내에 써 내야 한다. 글이 안 써질 땐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뛴다. 그런데 어느 때가 되면 내가 쓴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느끼는 희열? 뭐 그것도 만만치 않지만 그보다 난 내가 쓴 글을 마무리하는 걸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어느새 그 상황이 익숙해져 마감의 스릴을 즐길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난 그 일을 그만둔 적이 있는데 안 하니까 처음 얼마간은 좋았지만 다시 그 일이 그리워졌다. 몇 년 전 요즘 젊은 작가들 사이에 유행하는 이메일로 글을 배달하는 구독 서비스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일을 겁 없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마감의 스릴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일은 나름 오래 했고, 내 보잘것없는 글을 구독해 주신 분들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의뢰받은 글은 어떻게든 쓰는데 혼자 쓰는 글은 여전히 마무리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작가에게 마감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작가는 혼자 글을 쓰면 안 된다. 공저를 하든지 출판사의 독촉을 받든지, 함께 그룹을 만들어 공언하고 서로서로 이끌어주든지 해야 한다. 말의 힘을 믿어야 한다.

사실 어떤 사람이 작가냐는 건 논란의 여지가 좀 있다고 생각한다. 책 한두 권 냈다고 해서 그게 과연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스펙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에게까지 작가라고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또한 작가가 된다는 건 정말 평생을 걸어야 하는 일인데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해 줄 것처럼 너무 희망적으로 얘기해도 되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근래에 들어 글을 쓰겠다는 사람은 많아졌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여전히 그리 많아진 것 같지는 않다. 이 균형을 어찌해할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쓰려면 읽어야 한다. 한쪽에서 이렇게 글쓰기를 강조하면 자연스럽게 읽는 인간도 늘어나려나. 무엇보다 난 평생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은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옛말이다. 사람은 죽기 전에 책을 남겨야 한다.

 

저자가 이런 말을 한다. 생각과 행동 사이 거리가 멀수록 평범하거나 실패하는 인생이고, 생각과 행동 사이 거리가 좁을수록, 즉 실행에 옳길수록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고. 실행력의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리라.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에 걸맞은 태도와 삶을 살도록 되어있다. 작가는 확실히 멋진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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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0-28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잉? 스텔라 님께서 이런 책을 읽으셨다고요? 아이고.....
지금 충분히 잘 쓰시는데 나 참, 밋칩니다. 경어체 많이 쓰는 인간들을 조심하세요. 그거 사람 죽이는 겁니다. ㅋㅋㅋㅋ

stella.K 2022-10-28 20:1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미쳤나 봅니다. ㅠㅠ ㅋㅋ 근데 문트님 경어체 쓰는 사람에게 되게 당하신 적 있으셨나 봅니다. 다음부턴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Falstaff 2022-10-28 20:24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제가 가끔 경어체로 글을 올리거든요. 그럼 반응이 무척 좋아요.
아하, 이래서 사기꾼들이 그렇게 친절하고 반듯하구나... 하고 알았습지요. ㅋㅋㅋ

stella.K 2022-10-28 20:28   좋아요 3 | URL
ㅎㅎㅎ 정말요? 저 못 본 거 같은데... 다음부턴 조심해야겠는데요? 제가 사실 경어체 쓰는 사람만 보면 쓰러지거든요.🤣

mini74 2022-10-30 1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자에게 보약 달여먹이는 스승에서 웃었어요.

stella.K 2022-10-30 16:46   좋아요 2 | URL
ㅎㅎ 역시 미니님은 리액션이 좋으셔. 알라븅~♡
 
흥얼흥얼 노래하는 고슴도치 이야기 새싹
조소정 지음, 신외근 그림 / 하늘우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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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그림책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그림책이 흔하지도 않았지만 꼭 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 내가 그림책에 관심이 없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나도 눈 달린 사람이다. 어디선가 그림책을 보고 홀딱 빠질 만큼 좋았는데 차마 부모님께 사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글은 듬성듬성이고 그림만 무성한데(그림책이 원래 그렇잖나) 부모님은 그것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셨다. 무엇보다 잠깐 보자고 그걸 사 보나 한 번 보고 말걸, 그러셨던 것 같다.

마치 아이는 금방 자라니 속옷이고 겉옷이고 무조건 길고 낙낙한 것을 입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는 애에게 책은 2, 3학년이나 읽을 법한 동화책부터 읽혀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독서의 선행학습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그림 같은 만화는 TV에서도 해 주는데 무슨 그림책인가 하셨을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책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의 마음 어디 안 가는 것 같다. 어찌어찌해서 운 좋게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마냥 좋았다. 빨려 들어 갈듯이. 그러면서 내 안의 어린아이는 사라진 게 아니었구나. 어디선가 잠들어 있다가 이렇게 조금의 자극에도 반응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이 이야기는 행복을 찾아 떠난 아기 고슴도치의 이야기다. 아기 고슴도치 치곤 너무 철학적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없는 아이가 행복을 찾아 떠나는 길에서 자신을 긍정하게 되고, 덤으로 자신의 (노래하는) 재능을 발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은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역시 나는 어른은 어른인가 보다. 내용과 그림에 매료되었음에도 여전히 현실을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오늘날의 어른과 교육이 어린아이로 하여금 자아를 찾아가도록 허락하고 있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아이의 선택은 무조건 잘못됐거나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부모가 권하는 것만이 좋은 것이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철학은 어른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어린이를 위한 철학은 알지도 못하며 외면해 온 건 아닌지. 한마디로 난 아이들에 대해 너무 무지했구나 싶었다.

사실 고슴도치는 그 가시 때문에 그렇지 엄청 귀여운 동물이다. 주인공이 자신을 깨달아 가면서 처음엔 자신의 가시가 다른 이를 아프게 한다며 안타까워하지만, 나중에 바로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건 감동적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자세는 너무 중요하다. 넌 왜 그렇게 생겼냐고 손가락질하고 윽박지르면 고슴도치의 그 털은 정말 가시가 되어 상대를 공격하고 종국엔 자신도 찌르게 되는 무기가 될 것이다.

글쓴이는 아들 때문에 고슴도치를 키우게 됐고 그 경험을 바탕 삼아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더 정확히는 아들이 게임에 중독되다시피 했는데 그것을 벗어나 보겠다고 한 아들의 선택이었는데 나중에 이를 허락하고 키우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은 실제로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난 그게 좀 놀라웠다. 어쩌면 아이들은 자신의 상태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방법을 모르는 거겠지. 정말 그럴 땐 부모가 그것을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고 격려해 줘야 한다.

그런데 언뜻 내용이 어린아이가 읽기는 조금은 어렵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 책을 읽고 행복을 찾아 떠나야겠다며 정말 가출을 감행하는 아이는 없겠지. 학교에서 학원으로 뺑이 치는 치는 삶을 살고 있는데 가출은 무슨. 그런데 어찌 보면 가출도 좀 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늘 감싸기만 하는 자식 다 커서도 늘 품 안에만 있으려고 하면 그 아이의 독립심, 자립심은 언제 키울 것인가.

물론 이 이야기는 어린이의 자아 정체를 위한 하나의 은유이긴 하지만 이를 위한 노력은 교육에서 참으로 중요하겠다 싶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어려운 수학 문제 풀 줄 안다고 그게 교육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참내, 늘 에세이나 소설만 읽을 줄 아는 내가 그림책 한 권 읽고 이렇게 생각이 많을 줄이야. 이 분야에 종사자들 고민이 참 많겠다 싶다. 솔직히 요즘에 그림책부터 보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사물을 인식할 때부터 바로 게임으로 직행하는 게 요즘 아이들 아닌가. 책 읽기 어려운 시대를 사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같은 것도 같다. 그렇지만 책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 모쪼록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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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1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때는 그림책은 구경도 못하던 시골출신이라지요. ㅎㅎ그래서 그런지 저희집 애들이 어릴 때 애들 읽어준다고 그림책을 많이도 봤는데 아이들보다 제가 더 좋아했어요. 그림도 글도 어찌나 좋은 책들이 많던지.... 그러던게 또 애들이 크니까 안보게 되네요. 스텔라님 글보니 한번 날잡아서 도서관 어린이실에 앉아 그림책을 잔뜩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

stella.K 2022-10-21 19:16   좋아요 0 | URL
와, 바람돌이님 좋은 엄마시네요.
아이들에게 그림책도 읽어주시는.
당연 아이들이 크면 그림책도 멀어지죠.
근데 이렇게 나이들어서 그림책 보니까 그도 좋더라구요.
사실 어린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글을 짓는다는 게
쉽지 않을텐데 동화작가들 대단한 것 같아요.
앞으로 잘 됐으면 좋겠어요.^^

yamoo 2022-10-21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그림책을 읽으셨나봅니다~
그림책 읽고 저두 스텔라님처럼 장문의 리뷰를 쓴 적이 있어요.
겐지의 은하철도의밤도 그림책이 있는데, 아주 끝내줬습니다.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그림책들이 있어요. 요는 그런 책을 잘 모른다는 거..^^;;

stella.K 2022-10-21 19:19   좋아요 1 | URL
앗, 어딨죠? 알라딘에서 으나철도의 밤 치면 나오나요? ㅎ
나중에 찾아 보겠습니다.^^

pek0501페크 2022-10-21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 로그인 안 해도 댓글이 써지는 서재였나요? 한번 시도해 본건데 하하~~. 스텔라 님 용감하십니다.ㅋ
오늘 무척 바쁜 하루였어요. 이제 처음 누워 봅니다. 일복 없이 살던 제가 갑자기 일복이 많아졌어요.
저야말로 동화책을 읽어야 해요. 어릴 때 제 나이에 맞는 동화책이 없었던 때를 아직도 기억하거든요.
이미 다 읽었거나 너무 어려운 문학책이 있었던 거죠. 옛날 어머니들은 알뜰함이 지나쳐 생략이 많았어요.
독서보단 공부가 우선이던 분위기에서 자랐죠. 독서는 방학때 독후감 쓸때나 필요한...
그 점이 지금도 아쉽게 느껴집니다.
리뷰, 잘 쓰셨는 걸요. 저보다 훨씬 잘 쓰십니다. ㅋㅋ^^

페크pek0501 2022-10-22 15:56   좋아요 1 | URL
제가 제 닉네임의 순서를 바꿔서 썼네요. 자기 닉네임도 정확히 모르다니... 제가 이래요.(페크, 를 앞에다 쓰는 거였군요.ㅋㅋ)
지금도 생각하면 어릴 적에 독서광으로 자라지 못함은 아쉬운 부분이에요. 성인이 되고서야 독서의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죠. 그럼에도 뒤늦게라도 독서의 즐거움을 안 것을 큰 행운이라 여겨요. 아직도 책만큼 매력적인 걸 찾지 못했어요.
10월이 점점 가고 있어요. 매일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2022-10-22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22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2-10-22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그림책 누구나 봐도 된다고 하죠 어린이만 보는 게 아니다고...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은 동화예요 만화 <은하철도 999>를 그리게 했다고 하는.... 그런 말이 있지만 많이 다르더군요 찾아보니 <은하철도의 밤> 그림책으로도 나왔네요 원작 동화로 그림책 그렸군요 후지시로 세이시...

미야자와 겐지 시로 나온 그림책도 있어요 <비에도 지지 않고>로 2021년에 나왔어요 그림을 한국 사람이 그렸어요 이것보다 전에 나온 건 그림을 일본 사람이 그렸네요

저도 잊어버렸는데 <은하철도의 밤> 그림책 나온 거 스치듯 본 것 같습니다 저게 그림책으로 나왔네 했을지도...


희선

stella.K 2022-10-22 20:52   좋아요 0 | URL
아 그게 그런 건가요? 역시 희선님은 일본통이신가 봅니다.
그걸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희선님 이리 말씀하시니 더욱 궁금하네요.
주민센터 도서관에라도 가서 함 찾아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22-10-22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에 안데르센그림책을 엄마가 사줘서 봤던 사람요 ㅎㅎ 엄마가 할부로 전집을 사서 안겨주셨어요. 요즘 아이들 그림책 많이 보고 자라면 좋겠는데 책보다 스마트폰 게임이나 영상이 더 가까이 있죠. 아이들 어릴 때 진짜 그림책 같이 보며 저라는 엄마도 같이 자랐는데 말이죠. 일러스트 멋진 그림책 어찌 많은지. ^^

stella.K 2022-10-23 19:51   좋아요 2 | URL
저는 엄마가 나만을 위한 책은 안 사주시더라구요.
언니와 오빠를 위해선 사 주는데.
뭐 결국 다 같이 보라는 뜻이었겠지만
그땐 내것 네것 얼마나 편가기가 심해요?
엄마가 다정해서 저나 동생을 위해 그림책을 읽어주고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게 좀 아쉽긴 하더군요.
진짜 나이드니까 일러스트던 뭐든 그림 하나는 배워보고 싶긴하더군요.
(생각만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

2022-10-23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23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25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25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2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이 영화 보다가 완전 뒤집어졌다. 

물론 이 영화 절대로 웃긴 영화 아니다. 보고나면 정말 우울해지는 칙칙한 영화다. 


원래 드라마의 법칙 중 하나가 밝고 환하고, 잘나고 잘 사는 사람이 나와줘야 한다. 그래야 관객의 돈이 아깝지 않다. 이렇게 칙칙하고 우울한 것이 통하는 장르가 있는데 그건 소설일 것이다. 그런데 가끔 그 반대되는 영화가 나와줘도 용서가 되는 영화가 있다. 물론 흥행과는 상관이 없다. 그래도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나름 성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밀레니엄 전후로 우리나라에도 여성 감독이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던 것으로 아는데 그 명단 거의 첫줄에 올릴만한 감독이 임순례 감독은 아닐까 한다. 


솔직히 남자 감독들도 살아남기 어려운 영화판에 무슨 영화를 만들었을까 싶은데,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임 감독은 뚝심과 부지런함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다른 건 몰라도 <리틀 포레스트>와 <제보자> 정도는 웬만한 사람은 알지 않을까. 그걸 임순례 감독이 만들었다는 걸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런지.


아무튼 나도 분명 이 영화를 본적이 있긴 하다. 상영관에서 봤는지 아니면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봤는지 아니면 tv에서 봤는지 기억은 잘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상영시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땐 보고나서 어찌나 떨떠름 했던지. 워낙 영화에 대한 찬사 때문에 함부로 욕은 못하겠고, 그렇다고 좋았다고 말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니 대략남감이었더랬다.


솔직히 난 남자들이 삶에 쩔어 가지고 술 먹고 꼬장 부리는 거 딱 질색인데 이 영화는 거의 95% 이상이 그렇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나마 편집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런데로 봐 줄만하다고 용서를 했을지도 모른다. 장면 넘어가는 게 너무 아마추어적이라 그것도 마땅치 않았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나와 비슷한 또래의 다른 삶을 보여줬다는 게 공감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나야 워낙 온실속의 화초처럼 젊은 시절을 살아가고 있었으니 물론 뭐 이런 삶도 있구나 하면 되는거긴 하지만 크게 공감할만한 요소는 없었다.


그리고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볼 생각을 거의 안하고 있었다. 어젠 조금 보다 말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 영화 장난 아니다. 코미디 영화는 이미 웃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나를 웃겨줄 수 있나, 웃긴다면 얼마나 웃겨줄 것인가를 지켜보겠지만,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그건 와이키키 브라더즈의 4인방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다. 고등학생으로 어렵게 어렵게 동년배의 여학생들과 친구가 되어 바닷가에서 노래를 부르며 한창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선배들이 끼어 들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와이키키 4인방은 뭐 씹은 기분이 되어 한쪽에 찌그러지는 형국이다. 그러다 기분이 나빴던지 누군가 술에 취해 결국 선배들을 받았고 결국 한판 뜨게 된다. 그걸 보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정말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물론 이건 나만의 웃음의 포인트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그 장면을 보면 뭘 그렇게까지...? 라며 오히려 벙쩌하거나 나를 좀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어쨌든 난 이제야 이 영화의 진가를 발견한 셈이다. 그때부터 중간중간 보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지금도 비실비실 웃음이 난다. 이런 영화가 정말 잘 만든 영화다. 누구는 그러지 않았나, 드라마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이걸 가장 잘 수행한 몇 안 되는 영화중 하나는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처음 봤을 때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던 영화가 이제 다시보니 이렇게 웃기다니! 도대체 이걸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나의 비극은 누구에겐 희극이 될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와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이 인생의 한 시기를 통과해 가고 있었구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일까. 지금의 중견 배우들이 이제 막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을 때 찍은 영화다. 박해일이 아역 배우로 나온다는 걸 그때는 몰랐는데 두번째로 보니 알겠다. 황정민 못지 않게 박원상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것도 이 영화를 보니 알겠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성우 역을 맡은 이얼이란 배우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 배우를 언제부터 알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최근 4, 5년전에야 비로소 조금씩 알기 시작해서 S 본부의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야 비로소 확실히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 보다 <라이브>란 드라마가 먼저다.) 그때 거의 스러져가는 야구 감독의 역을 맡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연기를 곧잘해서 연극판을 한동안 굴렀겠구나 했다. 그런데 아깝게도 지난 5월 식도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58세다. 이 영화에선 상당히 참하게 나오는데 역시 보고 좀 놀랐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세상에 80% 이상이 남자 이야기다. 이 남자 이야기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이긴하다. 보통 남자 감독이 남자의 이야기를 하지만, 드물게는 여자가 하기도 한다. 여자 감독이 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확실히 그 질감이 다르긴 하다. 남자 감독은 당연히 거친 느낌이지만 여자하면 글쎄, 이렇게 웃프게 표현할 수도 있다니! 감독이 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뚝심 하나로 만들었겠구나 새삼 존경심이 느껴진다. 지금의 MZ 세대는 잘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5, 60대는 옛날을 추억하며 볼 수 있는 영화다. 추억을 팝송도 들을 수 있고. 지금은 밴드라고 하지만 예전엔 그룹사운드라고 했다. 그 시절의 영화다. 

참, 배우 류승범의 앳된 모습도 볼 수 있다. 새삼 우리나라에 탈색머리의 역사가 깊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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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0-15 2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크흐 이 영화 좋아하면 연식 나오는건데 말이죠. 저도 좋아해요. ㅎㅎ 웃프고요. 노랑머리 류승범 지금은 코로아티아에선가 멋지게 살고 있더군요. 박해일 파릇한 얼굴도 나오고요. 이얼 배우 참 안타까워요. 누드로 서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장면 ㅠ 마지막에 오지혜가 부른 사랑밖에 난 몰라 좋아합니다. ㅎㅎ 수안보 온천 개발 초기 때라 시위하는 사람들이며 그런 시대 배경도 슬쩍 담은 임 감독^^

stella.K 2022-10-16 18:47   좋아요 0 | URL
사실은 웃긴데 슬픈것이 아니고 슬픈데 웃기죠.
유승범 나이들어가면서 멋져지는데 왜 연기를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한창인데. 결혼해서 잘 사나 모르겠어요. 이얼 배우 그 장면 정말 처연하죠? 아까운 배우여요. 😢

바람돌이 2022-10-15 2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말씀처럼 연식 나오는 영화. ㅎㅎ 며칠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임순례 감독님 사진을 보는데 뭔가 변하지 않은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이 영화 본지 오래 됐는데 다시 찾아보고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글이에요. ^^

stella.K 2022-10-16 18:24   좋아요 0 | URL
임순례 감독이 왔군요. 오래오래 감독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스산한 기을에 보기 좋은 영화죠. 함 보세요. 새로운 걸 발견하게될지도 몰라요.ㅋ

나와같다면 2022-10-15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늦가을 이였을거예요. 씨네큐브에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나와서 광화문을 걸었던 그 날이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오지혜의 ‘사랑밖에 난 몰라‘ 가 계속 맴돌던 그 날.

stella.K 2022-10-16 18:30   좋아요 1 | URL
앗, 그렇다면 나와같다면님 연식이...? ㅋ 엔딩이 그렇게 끝날 줄 몰랐어요. 그렇게 끝나는 것도 괜찮구나 싶더군요.^^

책읽는나무 2022-10-16 0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영화 평이 좋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 번 봐야지~ 했었는데 여적 못봤어요.
임순례 감독님 영화였었군요?
그래서 유명했었나 보군요!
저는 <리틀 포레스트>는 재미나게 보았어요.
계속 봐도 질리지 않는...^^
이얼 배우를 잘 몰라서...그런 일이 있었군요?
<라이브> 드라마도 오래 전에 참 재미나게 봤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ㅜㅜ
앗!!! 금방 검색해서 봤는데 얼굴을 보니 알겠어요!!! 에궁~ㅜㅜ
참 친근감있게 연기하신 분이었는데..안타깝네요.ㅜ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tella.K 2022-10-16 18:35   좋아요 1 | URL
이거 꼭 보세요. 리틀포레스트는 뭐 워낙 원작이 좋으니. 아무래도 임순례가 좀 더 잘 만들지 싶어요. 울나라 음식 가지고 만들어 일까요? 암튼.^^

호우 2022-10-16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너무 유명해서 익숙한 느낌인데 보지는 못 했네요. 2001년이면 한창 육아 전쟁을 치르면서 일도 하고 살아내느라고 주변을 잘 못 돌아 볼 그런 때 였네요. 영화 한 편으로 인해 또 나를 돌아보게 되네요. 한 번 봐야겠어요. 스텔라님, 감사해요~~^^

이얼 배우는 <인사동 스캔들>에 나왔던 역할이 기억에 남았어요. 우정 출연인데도 내공이 느껴져 아주 강렬했었는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stella.K 2022-10-16 18:39   좋아요 1 | URL
와, 그럼 호우님 자녀분 지금 다 컸겠네요. 이제 함 보세요. 여유롭게.
이얼 배우 인사동 스캔들에 나왔다는데 전 기억이 없어요. 나중에 다시 봐야겠어요.^^

북프리쿠키 2022-10-16 14: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영화제 수상작 위주로 챙겨보는데, 얼마전 봄날은 간다를 보며 느낀게 유지태가 엄청 앳되게 나와서 놀랬습니다. ㅎㅎ
우리도 리즈 시절이 있었겠지요 ?? ㅎ

stella.K 2022-10-16 18:45   좋아요 2 | URL
아, 봄날은 간다 정말 좋죠. 이때까지만해도 유지태 좋아했는데 그후 악역을 해서일까 좀 싫더라구요. 그러다 작년에 유키즈에 나와서 노는 모습 보니까 나쁘지 않더라구요. 제가 무려 이럽니다. ㅎㅎ 근데 쿠키님은 그 악명 높은 악령도 완독하시고 영화제 수상작도 챙겨 보시고. 대단하세요.👍

희선 2022-10-17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틀 포레스트> 영화가 있다는 건 아는군요 임순례 감독 이름도 들어봤는데, 그 영화 만들었다니... 시간이 지나고 나서라도 저 영화를 보시고 예전과 다른 걸 느끼는 것도 괜찮겠지요 영화뿐 아니라 책도 그렇겠습니다 그때 함께 느끼면 좋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겠지요


희선

stella.K 2022-10-17 10:25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전에 보지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건 즐거운 일이죠. 리틀 포레스트 함 보세요. 희선님도 좋아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