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큰작가 조정래의 인물 이야기 4
조정래 지음, 김재홍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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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위인 전기 꽤 읽고 자랐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어린이 위인 전기는 그 구성이나 디자인이 나 때와는 확실히 다르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림도 다채롭고 흥미 돋게 만드는지.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이니 이런 책은 좀 의도적으로라도 읽어줘야 할 것도 같은데 역시 게으른 나는 어떤 필요에 의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결국 일이 무산되는 바람에 의도적으로 읽어 준 셈이 됐으니 부끄러움은 면했다고나 할까? 그것도 이 책 완독 20 페이지 정도를 남겨놓고 무산이 된 것을 알았으니 그렇다고 책을 덮을 수는 없었다.

 

어린이 위인 전기로 읽어도 이렇게 뭉클한데 성인용으로 읽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더구나 이달부터 S 본부에서 아침 방송 때 김구의 증손과 모 탤런트가 그 옛날 증조할아버지 의 상해 임시정부 루트를 따라가는 방송을 했다. 그것과 겹쳐 이 책이 주는 감동이 배가가 됐다. 

 

최근 <스카이 캐슬>이란 드라마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까발리기도 했지만 선생이 살았던 시절에도 못지 않았나 보다. 천한 신분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천출도 공부만 잘하면 입신양명할 수 있다는 기대에 과거 시험을 보지만 그는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그것도 그가 실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온갖 입시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린 과거에 선생 같이 천한 출신은 아무리 똑똑해도 꿈도 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마음을 추스리고 관상 같은 돈도 벌 수 있는 실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공부를 하기로 했는데, 그는 그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관상이 얼마나 안 좋은 상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비록 관상은 안 좋지만 마음만큼은 넉넉하고 큰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 먹는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운명을 뛰어 넘는 뭔가의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는 무엇보다 교육 사업에 힘을 썼다. 나라가 일본의 손에 넘어갔는데도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그것은 인간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인간의 무지함을 깨우쳐 국민의 주권을 되찾는 일에 평생을 바친다. 또한 그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 사상에 심취했고 후엔 기독교 신앙을 갖고 독립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그의 인생을 보면 역시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하늘(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 같다. 그는 몇 번의 투옥과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름도 몇 번을 바꿔 우리가 기억하는 김구로 남는다. 하지만 가장 뭉클한 장면은 상해로 넘어가 당대 쟁쟁한 독립 운동가들 이를테면 안창호와 안중근, 이봉창과 윤봉길 등과의 교우와 활약상은 정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뭉클한데가 있다. 특히 이봉창이 일본 천황 암살에 실패 하지만 이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훗날 윤봉길 의거를 돕는 과정은 어떻게 이런 영화같은 장면이 있을 수 있을까 읽으면서도 가슴이 찡했다.

 

의거가 있기 전 둘은 식사를 함께 한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윤봉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임에도 그는 너무나 태연하게 밥을 먹었고, 김구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를 지켜봐야 했다. 이 두 사람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지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한 사람은 이미 속세를 벗어났고, 한 사람은 나라를 구해야 하는 대의명분하에 동지의 죽음을 그저 지켜봐야만 한다. 이들의 마음의 거리는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안에서도 우주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것이다.

 

또한 둘의 시계를 바꿔 갖는 장면. 즉 윤봉길은 그 무렵 마침 새 시계를 갖고 있었고, 김구는 낡은 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윤봉길은 자신은 이제 몇 시간 후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니 새 시계가 필요 없다며 기꺼이 김구의 낡은 시계와 바꿔 갖는다. 그리고 죽어서 다시 만나자는 말도 남긴다. 하지만 실제로 김구가 윤봉길을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서 만나기까지는 얼마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문득 이즈음을 읽고 있는데 김구를 비롯해 당대 독립운동가들은 그렇게 정말 조국의 독립에 몸을 바친 걸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을까? 갈등이 없었을까? 순간 순간 몰려오는 두려움과 피곤함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런 인간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들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인간은 그렇게 순간 순간 연약한 존재다. 그때마다 다 잡고 이루어냈을 독립이었을 테니 그들의 희생이 어찌 값지다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얘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나라면 얼마를 버텨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런 독립운동가의 말할 수 없는 희생이 있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란 또는 한국이란 국호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매일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비리와 파벌 싸움 등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는 독립 운동가의 후손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나라는 그냥 지켜지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하면 그들의 희생에 값하며 후손으로 사는 것이 될지 매일 매 순간 생각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만 같다.

 

김구는 그토록이나 바라던 조국해방의 그날을 보긴 했지만 그 이후 하나된 조국을 보지 못해 포효하는 듯한 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것도 부족해 안두희의 총탄에 암살을 당해야 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서글픈 불행이랴. 또 어쩌면 그가 그렇게 갔기 때문에 그의 행적과 뜻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그는 나에게 '마음 넓게, 우직하게' 살아간 분으로 기억됐다. 제발 그를 비롯해 독립 영웅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가 잘 살아내야 한다고 이 독립 운동 100주년이 되는 싯점에 그분들의 영혼에 머리숙여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더불어 이 뜻이 어린 후손들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작가나 독자들이나 노력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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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03-25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혹시 왜수만복(倭水滿腹)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이 단어를 쓰시고 나서
임진왜란 상황을 설명하신 이야기인데 너무 끔찍해서 잊혀지지 않는 말입니다.

이순신장군, 김구선생, 안중근의사 같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없었다면
악마의 얼굴을 한 일본 놈들의 치하에서 아직도 종노릇하고 있을겁니다.
얼빠진 뉴라이트들은 일본이 조선 근대화에 도움을 주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지만
그 놈들은 구한말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이후 그 밑에서 마름질하던 놈들의 후손들이 틀림없습니다.

지금도 잘 나가는 정신나간 현역국회의원이 일본자위대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던 일이 있습니다.
이런 인간들이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면 국민들이 탄 배가 침몰되고 있는데
또 다시 머리를 만지고 마사지나 받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보수, 진보를 떠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초개같이 던지며
독립운동, 아니 독립전쟁을 치른 김구선생님의 높은 뜻을
후손된 우리는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stella.K 2019-03-25 18:12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 옛날 독립 선조들은 자신을 이렇게 헌신했는데
과연 나라가 어려움에 빠지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제발 조상의 뜻에 누가되면 안될 텐데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는 스스로 나라를 팔아 먹은 적전 또한 있는지라
앞으로 그런 정신나간 일을 하지 말라는 법 없죠.
부지런히 이런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구 선생 이야기는 가슴 저미면서도 너무 멋있는데
왜 영화를 안 만드는지 모르겠어요.ㅠ
긴 글 고맙습니다.^^

syo 2019-03-26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사 공부하면서, 요런 책들을 더 잘 읽을 수 있는 소양이 쌓이고 있는 중이에요. 흥미도 막 생기구요. 그야말로 주입식 암기 교육의 혜택(?)입니다.....

stella.K 2019-03-26 10:26   좋아요 0 | URL
ㅎㅎ역사는 시큰둥 하다더니 잘 됐군요.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요 시대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지더라구요.
어린이 위인 전긴데도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어른도 혹할만큼...^^

2019-03-29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30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레이] 레옹 : 극장판 & 감독판 - 풀슬립 일반판 - 부클릿 없음
뤽 베송 감독, 장 르노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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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짜 오랜만에 본 영화다. 내용도 거의 가물가물 했다. 다시 보니 아, 이런 내용이었어? 거의 새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확실한 건 난 이런 폭력적인 영화를 안 좋아한다는 것. 그래도 영화가 위대한 건 싫어도 보게 만든다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보게 만드는 건 거기에 사람이 있고, 음악이 있고, 인간 저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욕망을 건드려 대리만족을 하게 만드는 뭐 그렇고 그런 이유 아닐까?

 

이건 정말 만화다. 레옹이 얼마나 실력있는 살인청부업자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오로지 살인하는 그의 비상한 능력만을 극대화 했다. 특히 초반 시퀀스에서 스파이더맨처럼 천장에서 목에 올가미를 씌워 살해하고,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뒤에서 목에 칼을 겨누는 등  당시로는 나름 파격적인 액션을 보여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레옹과 마틸다가 끈끈하게 얽키는 밑밥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영화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구도가 특이한 건 부패 경찰을 응징하는 살인청부업자의 대결이라는 것. 또 그런 구도가 가능한 건 몸만 성인일 뿐 자아는 아이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레옹이 몸은 비록 아이이나 내면은 어른인 마틸다를 사랑하면서 생긴 구도라는 것.

 

언제나 그렇듯 사랑은 독이 든 성배고, 촛불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 같은 것이다. 특히 살인청부업자란 위험한 직업에 사랑은 가당치 않다. 괜히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했다가 둘 다 위험해질 수 있다. 물론 이 영화의 경우 레옹은 끝까지 마틸다를 지켜주고 자신은 장렬히 전사하는 쪽을 택하지만. 애초에 레옹이 마틸다를 알지 못했다면 그는 그냥 살인 청부업자로 늙거나 교도소 몇번 드나들면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더구나 마틸다는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었으니 레옹에게 더 집착했음은 당연하다. 그런 사랑은 위험하다.

 

그런데 난 왠지 사랑을 위해 죽는 죽음도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다. 물론 사랑하면 위험하고, 상처도 받고,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생의 속성이 그런 거라면 사랑을 모르고 살다 죽는 것 보다 그렇게 살다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생이란 이해될 수 있는 것 보다 이해 못할 부조리가 더 많지 않은가? 

 

그렇다고 한다면 비록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가 꽤 볼만하긴 하다. 어차피 부조리한 상황을 부조리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영화 아닌가? 벌써 25년된 영환데 지금 다시 봐도 꽤 스타일리시하다. 영화가 뭐 있나? 똥폼이라도 확실히 보여주면 그게 영화인 거지. 게다가 마지막 엔딩 때 흐르는 스팅의 노래란 가히 뭐라 형언할 수가 없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허리우드 영화가 시큰둥해 지면서 유럽 특히 프랑스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제작을 프랑스와 미국이 합작해서일까? 좀 그 정서가 섞여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아마도 그래서 나쁘지 않게 봤던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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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3-20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영화(액션영화로서)지만,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레옹의 경우 지금 시각에서 본다면 롤리타 영화라고 비난을 받을수 있단 생각이 드네요^^;;;

stella.K 2019-03-20 18: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주인공이 유아 성욕자란 말도 있었죠.
그래도 뭐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롤리타는 아예 설정부터가 그랬고.
난 롤리타가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라구요.
책을 못 읽겠더군요.
영화야 욕 한마디 하면 그만이지만 원작가가 워낙에
유명해 그럴 수도 없고. 과연 명성만큼 감동스러울지 모르겠더라구요.ㅠ

moonnight 2019-03-2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틸다@_@;;;; 어린아이의 모습에 어른의 눈빛을 하고 있어서 놀랐지요. 스팅의 음악이 좋았고요. 저도 영화로서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네요.

stella.K 2019-03-20 20:30   좋아요 0 | URL
그냥 뭐 똥폼잡는 영화였죠.ㅎㅎ
저도 스팅의 음악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레옹 보단 그랑블루가 좀 낫지 싶은데
그걸 다시 못 보고 있네요.ㅠ

레삭매냐 2019-03-2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좋아하던 뤽 베송이
맛이 가기 시작한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뭐 그래도 재밌긴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오프닝은 정말 쵝오였던 것으
로 기억합니다.

stella.K 2019-03-20 20:30   좋아요 0 | URL
오, 뤽 베송을 그전에도 많이 보셨나 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 그랑블루와 제5원소까지 봤지만
역시 제 취향의 감독은 아니었습니다.
오프닝씬은 정말...!

cyrus 2019-03-20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영화를 보면 중년과 소녀의 로맨스를 ‘낭만’으로만 포장할 수 없어요. 실제로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를 찍고 난 후에 중년 남성들의 팬레터를 많이 받았대요. 그런데 팬레터라기보다는 중년 남성들의 더러운 성적 욕구를 노골적으로 보여준 종이쪼가리였어요. 그녀를 성희롱하는 내용의 편지였거든요.

stella.K 2019-03-20 19:36   좋아요 0 | URL
그런 적이 있었니? 처음 알았네.
영화에서도 레옹 보단 나탈리가 열심히 유혹하잖아.
거기에 레옹은 그냥 우정, 의리로 포장하고.
그런 코드가 있긴 했을 거야.
요즘 같은 미투운동에선 결코 용납되지 않겠지.
글치 않아도 뤽 베송 성추문 있지 않았나?
요즘엔 워낙 많아서 헷갈릴 정도다.
게다가 연일 버닝썬과 정준영, 승리 때문에 더 정신이 없고. ㅠ

2019-03-21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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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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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설 보다 : 봄-여름 2018 소설 보다
김봉곤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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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이 말은 적어도 30년 전부터 있어 온 말이다.

정말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이 책을 보니 왠지 그 말이 더 실감이 난다. 예전에 이런 사이즈의 책은 시집 외엔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바로 이 문지를 콕 찝어 얘기하는 거다. 그런데 소설이 이렇게 나온다는 게 왠지 책 안 읽는 시대에 뭔가의 자구책인 것 같아 마음이 짠하고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그것도 작가 한 사람이 아니라 무려 네 사람의 작품을 담았다. 게다가 인터뷰까지 들어가 있다. 마치, 이렇게까지 만들었는데 늬들(독자들)이 진짜 안 읽을 거니 하는 것도 같다. 또 가격을 얼마나 착한가? 오지게 착하다.

 

더구나 잡지 형식이다. 격월이나 계간처럼 정기적으로 나온다. 또 문고본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한 30년 전 삼중당 문고와 범우사의 문고본이 생각이 난다. 거의 쌍두마차 아니었나? 그러다 책의 고급화 전략에 따라 거의 사라지다 얼마 전부터 다시 나오는 줄로 알고 있다. 반갑긴 하다. 휴대하기도 좋고. 무엇보다 나 같은 경우 마음은 있으나 소설을 생각 보다 많이 읽지 못해 요즘 작가들이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은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니 좋다. 다른 책을 사는 김에 끼워서 샀다. 7, 8천원만 해도 안 샀을 거다. 

 

좋기는 한데 한편으론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들이 장편을 잘 안 쓴다고 하는데 더 안 쓰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도대체 신인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 수 없지만 좀 스폰서 제도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이 좀 안 팔리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학상이나 타야 겨우 작가를 알아 보는 구조니 이 문학상 한 번 타 보겠다고 난리 브루스를 칠 작가지망생들만 늘려 놔서야 되겠는가? 그런 시상 제도에 의존하지 말고 잘 쓰던 못 쓰던 꾸준히 쓰고 가능성 있는 사람을 발굴 계속 후원한다는 쪽으로 흘러주면 좋겠다. 지난 몇년 간 우리 문학계는 많은 자성과 비판, 질타들이 오고 갔을 텐데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런 얇은 책을 통해 요즘 작가들의 작품 성향을 알 수 있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 어떤 독자는 특정 작가에 대해 작품이 나오면 막 환호하고 그러던데 난 뭘 몰라서 그런지 환호할 정도인가? 의아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환호해 줘야할 것이다. 그래야 그 작가가 클 수가 있다. 요즘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이 외국어로 번약되는 경우가 빈번해졌나 본데 반가운 일이긴 하다. 이것도 다 한류의 영향은 아니겠는가? 케이팝은 물론이고 음식, 영화, 뷰티쪽에서 강센데 문학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제발 문학에서도 한류 열풍이 불기를 기대해 본다.

 

작년에 김봉곤 작가를 처음 발견했다. 물론 그의 작품을 읽어 본 것은 아니고 무서운 신예 작가라고 치켜 세우던데 그때 그의 책 표지가 제법 심쿵했다.  

 

그런 소설이 있기는 한다. 책에 나온대로 온전히 자신을 재료삼아 쓰는 이야기. 화자가 곧 작가 자신이어서 어디를 갔으며 무엇을 했는지를 시시콜콜하게 밝히는. 나도 한때 습작이긴 하지만 그렇게 써 본 적이 있기는 하다. 쓰는 작가로서는 이것만큼 사실적이고 잘 아는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작두를 타는 느낌이다. 과연 이래도 되는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게이로서 자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이성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니 오래 전 어느 연예인이 우스갯 소리로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럼 남자가 여자 좋아하지 남자 좋아하겠냐고 했던 말. 그건 자신이 바람둥이로 오해 받는 게 싫어 애둘러 말한 건데 그때는 그런 농담이 통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요즘 똑같은 말로 사람을 웃기려고 한다면 뜨아할 것이다. 요즘은 성적 취향이 고려되는 시대니까. 

 

내용에 보면 화자의 이성 친구 혜인이 갑자기 자신에게 가슴을 밀착시켜 빤히 쳐다보더라는 설명이 나오던데 문득 그녀는 왜 그랬을까 싶다. 적어도 독자인 나는 화자가 신기하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정말 이성에 관심이 없는 거니? 뭐 그런 의아함. 다시 한 번 보라는 의미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성적 취향이야 감히 뭐라고 얘기는 못하겠다만 난 좀 보수적이라서 그런지 자꾸 이성간의 관계가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러다 다음 세기 땐 역전이가 돼 오히려 이성간의 관계가 특이해 보이는 것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창조주가 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는지 재조명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고 의미있게 읽은 건 조남주의 <가출>이다. 나도 읽으면서 얼핏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생각이 났다. 부재로 인해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재인식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런 심리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아버지의 부재가 가족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게 또 그닥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오히려 하나로 모이는 계기가 된다. 어머니는 평생 살림하느라 이골이 났건만 그래도 가족회의를 위해 가족이 모인다고 먹일 반찬을 해 대는 걸 보면 그것 밖에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건 거의 본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평생 뼈빠져라 가정에 헌신했으니 마지막으로 내 멋대로 살아보겠다고 해서 가출한 건데 이게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가장의 무거움, 굴레. 자유에 대한 갈망. 그렇더라도 가장이 된 건 오래 전부터 당신 자신의 선택이니 끝까지 지키면 안 되는 걸까? 뭔가 이제까지 그럭저럭 지켜왔던 삶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 같아 짠했다. 하지만 일시적이더라도 그런 기간은 필요한 것 같긴하다.

 

이내 더 잘 된 건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가출로 인해 그동안 억압된 것들이 뭔지 모르게 자유로워지면 새로운 질서가 생기려고 하고 있다. 우린 그 누군가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도 그 누군가가 없이도 잘 사는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우린 누군가 가출하면 클 나는 줄 알고 일탈이라며 죄인, 부적응 뭐 이런 이미지를 덧씌우기 좋아하는네 여기선 오히려 긍정적인 면들이 보인다. 그건 또 아버지가 어딘가 살아 있다는 수신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전혀 찾을 수 없다면 그런 긍정적인 변화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또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들은 죽을 때가 되면 무리를 떠나 홀로 있다 죽는다고 하던데,  자신이 죽을 때 남아 있는 가족들이 사별의 슬픔을 덜 느끼게 해 주려면 가출도 괜찮은 방법이겠다 싶은 것이다. 나의 죽음으로 인한 부재를 가족들에게 미리 학습시켜 주는 것이다.  우린 애정의 집착을 떠나 그 사람이 그곳에 잘 있겠거니 하는 믿음을 가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 역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 믿는 것이 정말 올바른 믿음인 건지, 소문과 추측만 가지고 그 사람을 그렇게 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 사람은 이렇게 반듯하고 흐트러짐 없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하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변절자, 악덕업자, 천하의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되어 있으니 말이다. 어떤 게 그의 진실된 모습인지 시간만이 그 진실을 밝혀 주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몰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이 등장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그 질서에 순응 못하면 짤리거나 그만두는 건 확실히 폭력적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다는 걸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흘러 간다는 것을 또 한 번 각인시켜준 소설이다. 또한 세상의 가짜 뉴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나약한 인간을 잘 묘사한 것 같아 좋았다. 내가 좋다고 말하는 건 생각할 꺼리를 줘서 좋다는 거다.

 

정지돈은 나에게 언제나 그렇듯 잘 이해가 안 되는 작가다. 그러다 어느 무가지에 짧은 소설을 연재하는 것을 보고  꽤 색다른 느낌이었다. 작가가 이렇게도 쓰는구나 하는 새로운 자각 뭐 그런. 그러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작품을 읽고 예전에 읽었던 <내가 싸우듯이>이가 생각이 났다. 보통 작가들은 현실에서 문제 의식과 부조리함 뭐 그런 걸 끄집어 내지 않나? 그런데 이 작가는 무슨 문화계 르포르타주 형식이라고나 할까? 일반인들이 문화계 전반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니 이렇게라도 접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면 있는 거지만 난 왠지 작가의 특이함이 긍정도 부정도 못하겠다. 하나 확실한 건 난 이 작가와 친해지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것. 

 

그러지 않아도 그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것을 뒷받침 해 주었는데, 인터뷰어인 김신식(이 사람은 또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문학평론가인가? 아님 출판사 편집 일을 하나? 이런 거 정도는 밝혀주면 좋을텐데)이, '...지돈 씨가 염두엔(이거 오타 같다. '염두해' 아닌가?) 둔 향후 계획을 공유 해'달라니까 그가 그런 말을 한다. "미래를 생각하진 않습니다. 너무 무섭기 때문입니다." 한다. 그래도 이 작가가 어디까지 가나 궁금하긴 하다.

 

얼마 전, 2019년 봄-여름호가 나왔나 본데 기회있는대로 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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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3-1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책 읽기를 하고 계시는군요.

김봉곤 작가의 출현이 어쩌면 문학계에 새 바람을 불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이들의 사랑이야기 자체도 새롭지만 작가 자신이 게이임을 드러냄 또한 흔한 일이 아니라서요.
낙서처럼 막 쓰는 듯한 글 스타일이 노래로 말하면 꼭 랩을 듣는 듯하더군요. 저는 적응이 잘 되지 않더군요.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를 읽고 나서 든 생각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stella.K 2019-03-18 14: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김봉곤은 좀 적응이 안 되더군요.
무슨 사소설이라고나 할까?
물론 가끔 사소설이나 자전 소설이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선 혹 할만하다 싶기도 해요.
이런 소설도 먹히는 세상이 되었구나 싶어서.
솔직히 저도 이렇게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역시 사람은 간사한 것 같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2019-03-18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1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8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하나님 (1987년작) - 할인행사
배창호 감독, 안성기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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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다 보니 배창호 감독 안성기 주연의 영화를 연속해서 보게 됐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이들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나를 흥미롭게 만든다. 게다가 각색을 고인인 된 최인호 작가가 맡았다. 그러니 어떻게 안 볼 수가 있겠는가. 특별히 영화에서 병태 역을 맡은 안성기는 뇌성마비 지체장애자 역을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그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 영화는 병태가 어느 날 경주를 다녀 오겠다고 집을 몰래 가출해 다시 돌아오는 그린 로드무비형식을 띄고 있다. 그 여정이 나름 파란만장 하다. 여행이란 게 그렇듯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여행에서 맞닥트리게 되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 

 

병태의 경우, 길에서 약간은 정신나가 보이는 듯한 시인 민우(전무송)를 만나게 되고, 미혼모 임산부 춘자(김보연)도 만나게 된다. 또 이들 삼총사가 보여주는 활약상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어찌보면 캐릭터부터가 연극적이다. 게다가 병태는 영화에는 결코 나오지 않는 아버지에게 여행 중간중간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해설을 대신했다. 작품이 연극적이면서도 어른을 위한 동화 같기도 하다. 그건 아마도 각본을 최인호 작가가 맡은 연유이기도 할 것 같다.

 

만삭의 춘자가 아무래도 병태와 민우와의 여행 중 아기를 낳을 것 같다는 예상을 했는데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어느 집 헛간에서 아기를 낳는데 그건 아마도 마리아가 마굿간에서 예수를 낳는 장면을 차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했는데 역시 생략과 상징을 적절히 이용했다. 춘자가 아기를 낳을 때 아이들과 병태에게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하고 밤에서 낮으로 빛을 사용해 애기 울음 소리로 꿀떡 넘어간다. 그 장면 역시 동화적으로 처리한 것이고 이때만 해도 생략법을 많이 사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비해 요즘은 많이 리얼해진 편인데 그런 동화적 처리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고 나름 공들였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혼자 여행을 못해 봤는데 한 번 용기를 내 볼까 그런 생각도 든다. 영화가 구성도 좋고 인간적인 따뜻함도 느껴지고 자꾸 배창호 감독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뿐만 아니라 유영길 촬영 감독의 조명도 새롭다. 모두 아까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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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9-02-2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을에 기차타고 여행 하는 걸 좋아합니다.
예전에 2번정도 가을에 기차여행을 혼자 해 보았는데 나름대로 좋았습니다. ㅎ
지금은 용기가 안 날 것 같아요.
근데 다시 혼자서 여행을 하고 싶네요.^^
용기내어 나중에 한번 도전해 보심이..^^

stella.K 2019-02-21 15: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진짜 여행할 줄 아는 사람은 혼자 한다는데...
후애님도 건강해 지시면 또 한 번 다녀오십시오.^^
 
기쁜 우리 젊은날 (HD텔레시네) - [할인행사]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이 영화를 언젠가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너무 오래된지라 몇 장면만 기억날뿐 스토리는 처음 보는 느낌이다. 

 

나는 80년대 들어서 영화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 작품은 많이 보질 않았다. 바로 이때야말로 한국 영화는 태동기를 거쳐 본격 중흥기를 맞이했는데 왜 그 시절 난 한국 영화에 대해선 무관심했는지 모르겠다. 지난 번 <만다라>도 최근에야 처음 봤으니.

 

그때는 국내 영화보단 외국 영화가 좋다는 선입견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기술적으로 보나 영상의 세련미가 와화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할 거란 편견이 지배했을 것이다. 사실 지금 봐도 촌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옛 영화는 옛 영화대로 보는 맛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시절의 문화를 다시 한 번 음미하고 아련한 추억속으로 빠질 수 있다. 무엇보다 배우들을 보고 어머나, 저 시절엔 저렇게 풋풋했는데 하며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자조하는 건 또 어떤가?

 

하지만 옛 영화의 백미는 그 배우나 감독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배창호 감독과 안성기를 다시 보게 됐다. 그 시절 배창호 감독은 이장호 감독과 함께 우리나라 주요 영화 시상식이나 매스컴에서 가장 많이 호명된 감독은 아닐까 싶다. 그 시절 내가 감독에도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이 감독을 눈여겨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감독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일 정도는 아니었으니 어쩌면 감독은 나와 인연이 없었다고 해야겠지.

 

그리고 40년 넘은 세월에 다시 보니 아, 이 감독이 얼마나 재능이 있었는가가 눈에 들어 온다. 촬영도 나름 여러 시도도 많이했다. 당시엔 유영길 촬영 감독을 능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감독들마다 그와 함께 작업을 한다면 행운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배창호 감독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그렇게 열심히 영화를 찍던 그가 지난 2009년 이후로 필모를 남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병설이 간간히 흘렀던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다 낫지 않았나 보다. 빨리 건강해져서 그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배우 안성기는 그동안 좀 어정쩡했던 것도 사실이다.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함이 연기를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약간 탁하면서도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는 그런 그의 인상을 배가 시켰다. 하지만 이 배우 정말 열심인 것도 인정해줘야 한다. 지금까지 한눈 팔지 않고 스크린을 지켜오지 않았던가. 뭐든지 열심히 꾸준히만 하면 인정을 받는다는 건 만고불변의 법칙 같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 그도 잘하는 연기는 있구나 싶다. 배우가 천의 얼굴을 가졌다지만 분명 유독 잘하는 연기가 있는 것 같다. 그는 이 영화에서 바보스러우리만큼 순진무구한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를 연기했다. 당시 흔하게 유행하던 검은테 안경을끼고 말이다. 그게 조금은 멍청하게도 보이지만 또 얼핏 채플린을 느끼게도 한다. 아, 이래서 안성기, 안성기 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 어렵게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데이트 허락을 받고 저렇게 벤치에 앉아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또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주인공의 어린 딸과 같은 장면으로 구성되는데 보고 있으면 좀 찡한 느낌이 든다.

 

사실 저렇게 생긴 사람이 이성에겐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크로스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사랑은 그 사람이 가진 분위기나 배경, 연애 스킬이 아니다. 성실하면서도 진심을 다한 사랑이란 걸 영화는 끊임없이 말해준다.  

 

시나리오나 영상이나 알찬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독특한  영화 세계를 보여 주는 이명세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각본으로 참여했다는 게 눈길을 끈다.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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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2-1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 그당시 상영관 가서 봤지요. 배창호 감독이 각본도 썼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때만해도 참신하고 재미있게 봤는데 지금 다시 본다면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stella.K 2019-02-17 18:39   좋아요 0 | URL
ㅎㅎ 지금 봐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옛 영화는 옛 영화대로 추억과 운치가 있는지라.
최근에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두 편 더 봤는데
이 사람 정말 영화를 잘 만들었더군요.
지금도 영화를 만들려면 만들텐데 건강이 안 좋은가
통 소식이 없네요.
저때 황신혜 진짜 예뻤는데 나이드니까 별로더군요.
보통 그렇긴 하지만.ㅋ

페크(pek0501) 2019-02-1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극장에서 봤어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당시 한국 영화가 인기가 없었던 시대라서, 이 정도면 됐다 하는 정도였어요.
안성기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며 봤네요.

stella.K 2019-02-18 14:21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전 안성기가 연기를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었어요.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그런데 아예 약간 멍청한 캐릭터니까 오히려 잘 한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ㅋ

카스피 2019-02-21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본적으로 80년대까지 한국 영화는 외화 쿼터제를 위해 적당히 만들때라서 사실 좋은 작품이 없던것이 사실이에요.당시는 한국영화 4편을 만들면 외화 1편을 수입할 권리를 줄떄여서 영화 제작사들이 많은 돈을 투자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고 tv에서 영화감독이 말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stella.K 2019-02-23 15:14   좋아요 0 | URL
헉, 전 그 얘긴 처음 듣습니다. 그랬군요.
전 그저 단순히 외화 수입하면 우리 영화가 잠식된다고
해서 쿼터제를 실시한 줄 알았더니.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 영화가 더 발전할 수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었네요.
지금 우리나라 영화 잘 만들고 있잖아요.
그걸 그 시절 쿼터제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지 않나요?
쿼터제 때문에 머리 깎고 했던 걸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