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원 푸른사상 소설선 44
배명희 지음 / 푸른사상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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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의 작품집이다. 하지만 작가는 지난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와인의 눈물'이란 작품집이 있다고 한다. 본 작품집은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안정되고도 웅숭깊은 문체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별히 에로틱한 문장도 자주 보이기도 하는데 솔직히 그 부분은 좀 놀라기도 했다. 


물론 이 놀라움은 나 개인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문장을 접하면 세 가지 정도로 놀라게 된다. (그것은 실례일지 모르겠는데) 저자가 초로의 삶을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뭐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금욕주의자가 되지 않나? 그러다 보면 아무리 작가라고 해도 성애적 표현도 좀 줄거나 에둘러 표현할 것 같은데 상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직설적이다. 그러다 보니 작년 말에 읽은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모 작가가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책에서, 작가라면 성애적 표현을 건너 뛰거나 축소해서 표현하지 말라는 취지의 가르침이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난 어쩌면 소설가는 되지 못하겠구나 했다. 솔직히 영화를 보든, 소설을 읽던  난 그런 표현들이 불편하고 어색하다. 그런 내가 그렇게 쓸 일도 없지 않겠는가. 아무튼 저자의 문체나 표현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밑줄 긋게 되는 문장도 꽤 있었다. 이를테면,


라면 용기에 젓가락을 넣는 순간에는 모든 구별이 사라졌다.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부자인지 가난뱅이인지 상관없었다. 모든 것은 뜨거운 국물 속에 녹아들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심장에 차곡차곡 쌓인 소외감과 불만이 더운 국물을 삼키는 동안 희미해졌다. 누군가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는 것처럼 편안해지는 거였다. ('광장' 12p)  

또는 이런 문장은 어떤가?

내게는 이미 한도가 넘은 신용카드, 그에게는 내 손을 넣어줄 빈 주머니가 있었을 뿐이다. ('엄마의 정원' 90p)


이런 은유적이며 사유적 문장을 볼 수가 있어 저자가 정말 소설에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품 저마다 짙은 고독과 쓸쓸함이 베여있어 답답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어떤 작가든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연대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작가가 40대를 산다면 꼭 40대의 시각으로 글을 쓰고, 60대면 60대 다운 시각과 정서를 가지고 글을 쓴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긴 하겠지만, 그래서 나 개인적으로는 독자로서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작가가 있는데 그건 고 박완서 작가다. 즉 나는 20대 초반 또는 10대 말쯤에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또 작가는 한창 열심히 작품을 써 내기도 했다) 박완서 작가가  글 잘 쓴다는 건 알겠는데 그 나이에서 오는 사고의 폭을 좀처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런 채 작가는 노년까지를 자신의 작품 속에 그렸을 것이고,  나는 그 무렵부터 작가를 잊기 시작했을 것이다. 근데 참 이상하지. 청(소)년 때는 중년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중년이 노년을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지금 박완서 작가의 작품이 가장 기대가 된다.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저자의 작품은 노년의 삶을 정면에서 그리거나 어떤 식으로든 작품 속에서 표현해 주고 있는데 지금은 너무 절절하리만치 이해가 간다. 그건 당연하다. 청년은 노년을 잘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중년은 곧 도달하게 될 삶이고 우리의 부모가 이미 도달한 삶이기에 예사롭지가 않다. 


어쨌든 그러면서 작가는 인간 전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종차별의 문제라든지, 푸어 하우스의 문제, 재건축과 왕따의 문제 등등을 날카롭고도 노련한 문체로 다루고 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역시 작가는 이렇게 사회 전반을 돌아보면서 소외의 문제를 대신 읊어주는 얼리버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편 드는 생각은,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의 책이 과연 얼마나 알려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나마 한류의 영향일까 아니면 매스컴의 영향일까. 우리나라 작가들이 국내외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젊은 작가나 문청 때부터  이름을 널리 알려 온 일부 작가의 일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가 힘든 것 같다. 보통 작가의 글은 나이 들수록 농염하고 잘 쓸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건 또 어쩌면 작가의 체력과도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작가들은 집중력도 좋고 왕성하게 글을 쓸 수 있지만, 나이 들수록 글은 신중해지는 것 같다. 건강도 예전만 같지 않고. 그러니 젊은 작가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일견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꼭 일반적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엔 좀 의문이 남기도 한다. 중노년의 작가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걸 수시로 보여주고, 문학이나 출판계도 그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 전반적으로 저자의 문장이나 필력은 인정하지만, 그 짙은 고독과 쓸쓸함은 감당하기가 좀 힘들었다. 독자는 단순하다. 심각한 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조금 더 다른 논점과 관점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약간의 아쉬움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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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4-01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문학에도 많은 작가가 나오는데 그들의 글을 제대로 못읽어내는게 좀 미안할 때가 많아요. 스텔라님처럼 이렇게 읽어주는 분이 있어 이렇게 또 새로운 작가를 만나기도 하네요. 라면용기 속 젓가락의 표현 참 좋네요. ^^

stella.K 2023-04-02 18:25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우리나라 작가를 우리나라 독자가 애정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줄까요? 그런데도...ㅠㅠ
표현 좋죠?^^

moonnight 2023-04-02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 K님^^ 저도 같은 지점에서 나는 소설가는 못 되겠구나 생각했었네요. 물론 될 능력부터 전혀 없지만서도요 ㅎㅎ^^;;;;;
죄송하게도 첨 들어보는 작가와 책이에요ㅠㅠ;;;;

stella.K 2023-04-02 18:28   좋아요 0 | URL
ㅎㅎ 원래 능력이 없겠습니까?
마음이 없는 거겠죠.
제가 글공부했을 때 에로틱하게 쓸려고 하니까 진짜 쓰더라구요.ㅋㅋ
하지만 다시 못하겠더라구요.ㅠㅠ

페크pek0501 2023-04-02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이 리뷰다운 리뷰를 쓰셨다고 봅니다. 잘 쓰셨네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 중 잘 쓰는 작가들이 많지요. 그럴 경우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건 실력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운이 따라야 한다, 겠지요. 잘 쓰는 것과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별개 문제인 듯.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갖추기도 쉽지 않고, 문장이 좋으면서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쉽지 않죠. 그래서 특히 소설은 늘 고지에 자리 잡은 무엇으로 여겨지곤 해요.
해서 소설을 좋아하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너무 어렵거든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23-04-02 19:02   좋아요 1 | URL
잘 쓰는 것과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별개라는 말
백번 동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작가들은 조금이라도 그 거리를 좁힐 가능성이
많겠지만 나이든 작가는 그런 거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내가 쓰고 싶은대로
쓸 수 있는 장점이 더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어찌보면 우리나라 작가는 조금 더 이기적이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눈치 보지 않는 작가.
에효, 말은 이렇게 해도 쉽지 않겠죠?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2023-04-02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2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23-04-02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명희 작가님이 스텔라님의 이 리뷰를 보면 힘이 불끈 나겠는데요.
자고로 자기를 알아주는 분이 최고니까요.
문학지망생들 최고의 등용문이었던 신춘문예를 통과하는 많은 분들 중에서
문예지에서 다시 작품을 청탁받아 다음 작품을 출간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소설가로 일가를 이루기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기는 알라딘 이달의 리뷰도 아무나 뽑히는게 아니니까요.^^

stella.K 2023-04-03 15:58   좋아요 1 | URL
아유, 그 무슨…ㅎ
그런데 그런 말이 있긴하더군요, 좋은 작품을 쓰기보단 많이
써 보라고. 그게 결국 작가를. 만드는 거라고요.
사실 관심을 받지 못하면 위축되서 안 쓰게되기도 하거든요.
그걸 뛰어넘기가 참 쉽지 않은 거 같아요.ㅠ

레삭매냐 2023-04-03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보니 오래 전에 나온
천명관 작가의 <고래>가
서구에서 다시 평가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아
요.

좋은 책이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독자들에게 널리 알
려지지 않아 사장되는 책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책과 독자와의 만남 그리고
흥행, 어쩌면 운명일 지도요.

독자는 단순하다, 공감합니다.

stella.K 2023-04-03 17: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인가 후보에 올랐다는 얘기들었는데 아직 발표 안났나요? 읽어보진 않았지만 시나리오
를 썼던 사람이라 잘 썼을 것 같아요. 한강 작가 이후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합니다.^^

yamoo 2023-04-04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이 리뷰쓰신 엄마의 정원이네요. 스텔라 님두 읽으셨나봅니다. 배명희 작가가 글을 잘쓰는가 봅니다. 글을 잘쓰는 것과 소설 작품이 좋은 건 저는 별개로 생각하는 1인지라..
서사가 없고 문체만 좋은 한국 작가들을 많이 봐서뤼..--;;

한국소설은 더이상 읽지 않기에 이 소설이 좋은지 안좋은지 확인할 길이 없네요...단지 스텔라 님 리뷰로 좋은 건가 보다..생각하고 있겠슴돠~~ㅎㅎ

stella.K 2023-04-04 18:41   좋아요 1 | URL
그래도 우리나라 작가를 많이 사랑해 주세요.ㅠㅠ ㅋ
 
부활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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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세 번째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초등학교 때였다. 당연 어린이 세계명작 뭐 그런 정말 아이들 눈높이에 맞혀 나온 것을 읽었고, 두 번째는 성인이 되어서였다. 근데 이상하지. 성인이 되어 읽으면 더 의미 깊게 읽을 것 같은데 어릴 때 읽었을 때 보다 별 감동 없이 읽었던 것 같다. 그때는 또 소설이 시큰둥해져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지금 다시 읽고 나니 '역시 톨스토이!'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읽었다. 그리고 자꾸 어린 시절 이 작품을 읽었던 때가 생각났다. 


비록 어린이 세계 명작이라고 하지만 읽는데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었던 걸 보면 출판사가 나름 편집을 잘한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그 시절은 내가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고, 동시에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때이기도 해서 더 의미 깊게 읽지 않았나 생각한다. 카튜샤와 네흘류도프의 사랑도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뭔지는 모르겠지만 웅숭깊은 톨스토이의 문장이 인상 깊어 계속 따라 읽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모름지기 작가는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하는 일종의 문학의 전범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이후 난 이러저러한 변화를 겪으며 요 모양 요 꼴이 됐지만, 그래도 그 시절은 정말 타락하기 전의 카튜샤처럼 순수했던 것 같다.  

(그때 톨스토이를 계속 파기 시작했더라면 지금쯤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르는데...ㅠ)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읽은 '부활'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인정해야 하는 건 톨스토이의 사고는 정말 방대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철학과 법학, 신학의 바탕 위에 고통받는 민중과 귀족들의 이야기를 그야말로 산성처럼 쌓아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나의 일천한 사고가 그것을 다 쫓아갈 수 없음이 아쉬웠다. 하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뭔가 머리가 쨍하고 차가워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독서는 실로 얼마만인가, 내가 톨스토이를 너무 잊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부끄럽게도 난 장편은 '부활' 밖엔 읽지 못했고, 몇 편의 단편을 읽은 게 전부다. 그의 주요 작품은 손도 못 댔다. 뭐 할 말은 없지만 점점 고전에 대한 진입장벽이 만만치 않고, 새로운 책은 항상 정신 못 차리게 나오고 있으니 늘 순위에서 밀린다.)           

기억이란 놈은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을 다시 펼 쳐들자 예전에 읽었던 이미지들이 하나하나씩 떠올랐다. 특별히 카튜샤의 약간의 사시. 그동안은 가끔씩 머릿속에만 빙빙 돌더니 읽기도 전에 그녀에 대한 인물묘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주 눈에 뜨였던 몇 개의 단어들도. 


어렸을 땐 다른 건 관심이 없었고 오직 카튜샤와 네흘류도프가 사랑을 이룰 것인가 말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지금은 로맨스나 멜로엔 별관심이 없지만, 그 시절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 아이가 그것에 관심이 없다면 다른 무엇에 관심을 두겠는가. 결국 카튜샤와 네흘류도프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꽤나 아쉬웠다. 카튜샤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함께 유형지까지 동행했는데 그쯤 되면 아름다운 엔딩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세상은 반드시 노력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세드엔딩이나 열린 결말도 있다는 걸 한참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난 그런 결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 영화나 소설을 접하면서 세드엔딩이나 열린 결말이 해피엔딩 보다 사람의 뇌리에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알았다. 


만일 이 작품을 해피엔딩으로 했으면 이렇게 삼독까지 할 생각을 못했을 것 같다. 이건 확실하다. 무엇보다 내가 이 작품을 보는 눈이 예전과 달라졌다. 물론 이미 결말을 알고 읽기 시작한 것도 있지만, 네흘류도프의 모든 선한 노력으로 카튜샤와 사랑을 이룬다면 결국 그가 한 여자를 구원했다는 얘긴데, 그러면 이 이야기는 한낱 그렇고 그런 가부장 소설이 되었을 것이고, 톨스토이도 반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니겠지만 한낱 보통 작가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가? 그것도 남자가 여자를? (물론 난 여자가 남자를 구원하는 얘기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럴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착각이고 허세일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남자는 한 여자를 정복했다는 생각으로 바뀔 것이다. 내가 너를 그 모든 불행에서 구원했어. 하며 상대를 자기에게 굴종시키려 하지 않을까. 경제적 환경적 구원은 진짜 구원이 아니다. 그러면서 사랑과 구원을 결혼에 결부시키면 이야기는 최악이 된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고 또 하나의 시작이다. 어린 시절 읽는 동화마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은 얼마나 가식적이고 무책임한 결말인가.  


만일 이 이야기도 둘이 결혼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네흘류도프 자신이 지은 죄가 있으니 처음엔 무한 인내하겠지. 카튜샤는 카튜샤대로 처음엔 고맙고 행복해 하지만 끊임없이 남자의 사랑을 확인하려 들지 않을까. 그러다 서로 지치고 불행해지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한 결말을 상상할 수가 없다. 오히려 둘이 사랑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더 풍성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특별히 톨스토이는 카튜샤를 당대 그저 그런 여자로 그리지 않고 결말에 도달할수록 꽤 실존적인 인물로 그렸다. 열악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자기 스스로를 선택하는 인물로. 물론 그 배후엔 네흘류도프가 있어 가능했다. 카튜샤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면 그렇게 받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 사람 없이 못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구원이라고 하지 않는가. 또한 네흘류도프에 대한 용서도 가능했다.     


그도 그렇지만 역시 이 작품은 네흘류도프의 의식의 변화를 쫓아가는데 방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절 결혼하지 않은 도련님(귀족 남자)이 하급 여자를 취해 욕망을 채우고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건 어디에도 없다. 사실 이 작품은 어찌 보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다. 물론 그래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 소설이겠지만. 솔직히 계급을 떠나 사랑했던 사람을 그것도 까맣게 잊고 있다 우연히 10년 만에 법정에서 만났다. 그런데 상대가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있다. 내가 네흘류도프라면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을까? 처음엔 일말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몇 번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나름 무죄 박면을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곧 한계를 느끼고 어느 때가 되면 스스로를 놔버리지 않을까. 그래. 난 할 만큼 했어. 그리고 한동안 괴로워하다가 이내 동정하다 차츰 멀어지겠지. 가진 건 돈 뿐이니 상대가 유배지로 떠날 때 넉넉한 돈을 쥐어줄 수도 있다. 그리고 곧 미련 없이 잊겠지. 그녀와 난 처음부터 안 맞는 상대였어하며. 


사랑은 확실히 미친 짓이라고 하지만 네흘류도프는 정말 미쳤다.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특별히 물려받은 땅을 농노들에게 나눠주고 카투샤와 동행하지 않는가. 책에서 거듭 반복해서 네흘류도프의 말은, 카투샤는 아무런 죄 없이 누명을 썼고 나는 그녀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라. 충분히 네흘류도프의 입장을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하나 같이 정당히 하라는 식이다. 


사실 사람들의 그런 반응은 그도 어느 정도 짐작했을 것이다. 소설에서의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점잖은 편인데 그건 아무래도 톨스토이의 개인적 취향을 반영한 것도 같다. 실제로는 더 현실적이고 가혹하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건 어떤 사람에겐 근간을 흔들어 놓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듣는 데에서만 머무는 경우도 많다. 작품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 무서운 변화는 그가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 남들을 믿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것이다. 그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들을 믿기 시작한 것은 자기를 믿고 사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으면서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이한 기쁨을 찾는 동물적 자아를 언제나 거슬러야 했다.  남들을 믿으면서 살면 해결해야 할 문제란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모든 게 이미 다 해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언제나 정신적 자아를 거스르고 동물적 자아를 위한 방향으로 해결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믿으면서 살면 항상 사람들의 비난이 따랐으나, 남들을 믿으면서 살면 사람들의 칭찬이 따랐다. (1권, 80~81p)

바로 여기서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잠자고 있는 양심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지는 대로 살면 편하긴 하겠지만 대신 진정한 자유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일생에 한 번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대로 살아 볼 필요가 있다. 그걸 외면하면 자기 생의 마지막날에 후회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했을 때 적지 않은 파장과 비난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훗날 후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네흘류도프는 그 내면의 소리를 기꺼이 들었고 실행했다.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사랑을 위하여. 그나마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우린 네흘류도프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것의 결과가 아니라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톨스토이의 페르소나다. 

톨스토이가 독실한 신자지만 원래 그렇게 독실했던 건 아니었다. 그도 50세까지는 방탕한 삶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 훗날 회심하고 독실한 신자가 되었는데 그래서일까, 네흘류도프에게서 톨스토이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하고, 잠깐 등장하다 사라지는 인물 속에서도 역시 그가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그는 그다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않은 것도 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가 무슨 작품을 쓰고 저작권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아내는 거의 죽을 듯이 난리를 쳤다고 한다. 작가가 저작권을 포기한다는 게 그렇게 경을 칠 일인 줄 몰랐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작금에 들어서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는 자꾸 교회와 교인을 희화화하고 있다. 급기야 최근 대박을 터트린 한 드라마에서 이점을 지적하며 우려하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서양 고전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거의 대부분이다. 즉 다시 말하면 그 고전을 썼던 작가들은 끊임없이 신 즉 하나님과 인간의 이해와 화해를 모색했다. 어차피 신의 관점에서 인간은 타락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간의 이야기 속에서 이것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타락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신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나는 소설가를 비롯해 이야기를 다루는 모든 스토리텔러들이 이것을 다시 한번 직시해 주길 바란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작품 속에 교회를 회화화하든 진지하게 표현하든 했으면 한다. 톨스토이 같이 오래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 구원이 무엇인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작품을 썼다. 오늘날의 스토리텔러들에게 과연 그런 진지한 고민이 있기나 한 걸까?                       


...... 인간은 인간이 교정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유일한 합리적 해결책은 무익하고 해롭고 비도덕적이며 잔혹한 짓을 멈추는 짓이다. 당신들은 지난 수 세기 동안 당신들이 범죄자라고 규정한 사람들을 처벌해 왔다. 그래서 범죄자들은 사라졌는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형벌 때문에 더욱 타락한 범죄자들의 수가, 또 인간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판사, 검사, 예심판사, 간수라는 범죄자들의 수가 불어났을 뿐이다.' 네흘류도프는 그럼에도 사회와 질서가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인간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합법적 범죄자들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부패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서로 동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권, 335p)

이것은 톨스토이의 도전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어떠한 작품에도 구원과 사랑을 말하고자 했던 그. 그의 고민이 어떠했을지 우리는 다 알 수가 없다. 단지 조금이라도 알고자 원한다면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한 가지 부언하자면, 톨스토이의 작가 연보를 보면서 그가 부모를 모두 이른 나이에 여의였다는 것이다. 흔히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교하기 좋아하는데 그중 하나가, 그들을 부자와 가난한 자로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자인 톨스토이 보다는 가난한 도스토예프스키가 더 서민적이고 자기와 맞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부모가 없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했지만 부모가 성인이 된 후에도 생존했던 것으로 안다. 사람의 부재와 경제적인 가난. 어떤 것이 그 사람의 삶과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지, 나아가서 글 쓰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겠다. 요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런 구분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 톨스토이는 톨스토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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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3-22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2년전쯤 읽었는데 벌써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스텔라님 리뷰에서 부활에 대한 이런 심오함 것들을 많이 표현해주셔서 아무래도 다시 읽어야겠어요^^

stella.K 2023-03-23 11:27   좋아요 2 | URL
ㅎㅎ 기억이란 놈은 페페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약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툭하고 나올테니 걱정마십시오. 고전이 참 읽고나면 뿌듯한데 왤케 안 읽어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부활은 읽는데 시간이 거려서 그렇지 정말 좋았어요. 저도 2, 3년후에 다시한번 읽어 볼 생각입니다.^^

니르바나 2023-03-23 0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는 학교앞 만화방에서 만화책에 코박고 있을 때
스텔라님은 어릴 때 부터 톨스토이를 읽으셨다니 진짜 떡잎부터 다른 독서인이셨네요.
김지안 님의 책, <네 멋대로 읽어라>가 그렇게 해서 탄생했군요.
3월의 리뷰로 기대해봅니다.^^

stella.K 2023-03-23 11:33   좋아요 2 | URL
독서도 질량보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더라구요. 어렸을 때 독서한다고 어른되서도 하게되는 거 아니고, 어릴 때 안 했다고 성인되어서도 안하고 그렇지는 않은거 같더라구요. 제가 책을 내게된 건 정말 행운이었죠. 저는 만화를 지금도 못 본답니다.ㅠ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 2023-03-23 0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 때 이 소설을 처음으로 보셨군요 저는 초등학생 때 톨스토이 알지도 못했네요 지금까지도 읽은 게 단편소설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톨스토이는 단편소설 읽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한편도 못 봤어요 둘 다 대단한 작가겠습니다 달랐기에 다른 소설을 썼겠지요


희선

stella.K 2023-03-23 11:41   좋아요 2 | URL
그때 그런 어린이 세계명작이 나와주지 않았다면 한참 후에나 읽었을 겁니다. 그때 책 한권 값이 페이퍼북으로 350원이었어요. 문방구에서 팔았는데 3권 사면 천원에 해 줬거든요. 희선님 상상이 안 가시죠? 그런 시절이 있었답니다. ㅋㅋ 지금 그런 책 못해도 7, 8천원은 줘야할걸요?ㅋ

transient-guest 2023-03-23 1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고전이 많이 있습니다. 톨스토이도 분명히 완독을 거쳐 여러 차례 다시 읽고 싶은 작가인데 언젠가 시작한다면 ‘전쟁과 평화‘로 하고 싶습니다. 오드리 햅번, 그리고 나타샤 왈츠로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stella.K 2023-03-23 11:48   좋아요 2 | URL
앗, 톨스토이를 아직 안 읽으셨나요? 하긴 저도 부활외엔 그의 주요작품은 영화로 봤죠. 책과 영화는 같은게 아닌데. 기왕 동력 받은김에 저도 전쟁과 평화를 읽고싶긴한데 워낙 장편이라 읽다가 포기할까봐 좀 그게 염려가되긴 하더군요.
꼭 한번 읽으십시오.^^

yamoo 2023-03-28 14: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걸 작년에 읽었는데...예상을 깨고 매우 매우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명불허전이란 말은 이 작품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왜 명성이 자자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고할까요...스텔라님 리뷰를 보니 다시금 장면 장면들이 떠오르네요~^^

stella.K 2023-03-28 14:21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죠? 그래서 고전을 읽어야한다고 그러는가 봅니다. 막상 다른 고전을 읽으면 고전할텐데. ㅋ 언젠가 얼핏 들으니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전쟁과 평화나 안나는 얼마나 잘 썼을까 그런 기대를 막 가져보게 되더군요.ㅋ

레삭매냐 2023-03-2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고저 -

전, 한 번도 읽지 못한 책이랍니다 ㅠ
톨스토이 읽어야지요 암요.

stella.K 2023-03-29 16:41   좋아요 1 | URL
헉, 의왼데요? 전당연히 읽으셨는줄ᆢㅎㅎ
꼭 읽으십시오.^^

페크pek0501 2023-03-29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활, 저는 읽었지요. 예전에 읽은 거라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요...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며 저건 읽었어, 그럽니다.ㅋ

stella.K 2023-04-07 18:15   좋아요 0 | URL
언니, 제가 미쳤나 봐요.
언니의 이 댓글 분명 봤는데. 답글 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안 달았네요. 미안해요.
근데 저 이달의 당선작 됐어요. 이럴수가...
이거 확인하는데 심장이 쪼그라 붙네요.
제가 왤케 소심해졌을까요? ㅠㅋㅋ

희선 2023-04-08 0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 축하합니다 주말 편안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3-04-08 09:35   좋아요 1 | URL
아, 희선님도 축하드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니르바나 2023-04-12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 혜안이로군. ㅎㅎㅎ
월간 스텔라님, 이제 안뽑아준다고 불평 없기.^^

stella.K 2023-04-12 17:54   좋아요 1 | URL
당선 방법을 조금 알 것 같더라구요. ㅋㅋ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김영민 지음 / 늘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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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던가? SF(공상과학) 모 문예지가 창간하면서 그 속에 함께 실린 김영민 교수의 글을 처음 읽어 보았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언제 한 번 이 양반의 책을 읽어 봐야지 했다.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이 책을 선택했는데 웬걸, 이름은 같은데 그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니다. 동명이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했던 김영민 교수가 언젠가 공부에 관한 책을 냈는데, 이 책도 공부에 관한 책이다. 연장선상에서 책을 냈는가 보다 했다. 그러다 한마디로 찍-쌌다.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인터넷 서점을 들어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었던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도 동명이인이 존재할 거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총기가 떨어지고 있고, 저자에겐 미안한 일이 됐다.  


그래도 이왕 어떤 이유에서건 내 손에 들어왔으니 읽어는 봐야 한다. 저자는 철학자 겸 시인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저자가 공부하면서 느꼈던 바들을 써 놓은 일종의 단상집이다. 


솔직히 우리는 공부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한 가지 방법으로만 공부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원죄가 있다. 그나마 그것도 학교 공부를 마치면 더 이상 공부할게 없다고 손을 놔버리기도 하지 않는가. 이게 참 불행하고 아이러니란 생각이 든다. 


더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학습 능력은 다른 나라 학생과 비교할 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수학 올림피아드 뭐 이런 거 하면 거의 탑이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을 동경하는 나라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학업을 비관해서 학교 옥상에서, 아파트 꼭대기에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아무리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탑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성인들의 고찰을 담은 글들은 계속 나와 독자의 자칫 무뎌질 수 있는 지적 욕구와 감수성을 자극해 줘야 한다.


그런 말이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인간만이 사고하고, 공부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 앎에 대한 욕망과 촉수를 매일 벼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책, 제목도 좋고 의도도 좋긴 한데 너무 어렵다. 한 꼭지 안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어렵다. 이런 책은 뭔가 깊이 음미하며 읽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공부에 대한 단상을 적는데 이렇게 어려울 필요가 있을까? 공연히 심술이 났다. 어려운 공부 한다고 은근 자랑하는 건가? 나 같이 얄팍한 학식을 가진 사람은 어쩌라고 이렇게 어렵게 썼나 짜증도 났다. 


원래 공부란 어렵게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쉽게 쉽게 하는 게 어디 공부인가? 어렵지만 부딪쳐 보고 그다음 단계로 나가고 거기서 모종의 성취감도 누리고 하는 것이 공부다. 엄밀히 말해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말마따나 독학이 됐건 어떤 전문지식을 위해 학교나 학원을 가던 스스로가 길을 찾고, 방법을 찾고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누가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고, 떠먹여줘야 하는 건 공부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옛 선생님들이 한 우물을 파 보라는 말은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한 우물만 파면 외골수가 되기 쉽다고 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방면에서 뛰어날 수는 없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한 우물이라도 제대로 파보고 싶다. 하지만 한 우물을 파서 외골수가 된다면 그건 아직도 덜 팠다는 얘기도 된다. 누구는 그랬다. 그렇게 우물을 팠더니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더라고. 공부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만을 아는 사람은 기실 깊이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는 척할 뿐이지. 알면 알수록 입을 다물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더 모르기 때문에 또 알고 싶어서. 아마도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짧고 간단하게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저자는 그다지 독자들을 사로잡거나 설득하려고 애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냥 자신이 깨달은 건 이런 거라고 툭 던져보는 식인 것도 같다. 뭐 그래서 동의하면 끄덕여 보시던가 그런 식. 그동안 책 쓰기를 위한 책들은 얼마나 독자들을 공략하라고 외치고 부르짖었던가. 물론 글 써서 돈을 벌 사람들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긴 하겠지만 책은 꼭 그런 방식으로만 쓰거나 통용되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말 중에 이런 말이 나오긴 한다.



통상 공부를 결심한 이가 제일 먼저 손대는 게 책이다. 그러나 이게 병통이다. 그래서, 레비 스트로스의 지적처럼 '정신의 성숙과 생각의 복잡을 혼동하는 일이 생겨난다. 어떤 공부에서든 (좋은) 책 읽기를 생략할 수 없지만, 책 읽기는 반편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81p)  


저런 얘기 하면 책 관련 종사자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공부를 하려면 관련된 책들을 쌓아놓고,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스스로를 상아탑 안에 가둬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물론 난 그러고 결코 살지 못했지만. ㅠ) 어쩌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평생 노동을 해 온 우리가 알만한 사람들이 진짜 학업자인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은 반드시 땅 파고, 건설하는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가정 건사하고 직장 다니는 사람도 노동자다. 그러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 그 사람 그 역시 학업자 아닌가.


공부는 어렵다. 그 어려운 공부를 어떻게든 쉽게 해 보려고 발버둥 치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저 공부하는데 위로가 되고 벗으로 삼을 것들이 있어야 쉬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다석 가지 반려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산책이고, 둘째는 적바림하는 버릇이고, 셋째는 차(茶), 넷째는 낮잠. 저자는 기이하다고 하면서 오후에 10~15분 잠깐 잠을 잔단다. (그렇지 않아도 의사들도 건강을 위해 낮잠을 권하기도 하는데 그게 30분 이내라고 했다. 저자의 잠은 너무 짧고 나는 잠을 사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는 설명이 어렵다며 설명하지 않겠단다. 그런 것으로 봐 그 반려에 관해서는 너무 깊이 가르쳐 주는 것 같아 언급을 회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즉 다섯째는 독자 스스로 가져 보라고 남겨 둔 것도 같다. 그렇다면 난 어떤 걸 해 볼까? TV 시청이다. 물론 과하지 않는. 볼만한 드라마나 영화, 다큐나 강연 프로는 얼마나 많은가. 



책이 다 어려운 것은 아니다. 간간이 웃자고 하는 말도 더러는 섞여 있다. 예를 들면 '수컷들의 꿈' 같은 거. 

수컷 일반이 잘 배우지 안(못하)는 원인은......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남성 호르몬의 효과 속에서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며, 동물행동학의 맥락 속에서는 순위제를 둘러싼 사회적 형태가 이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특히 한국-남자들이 공부하지 안(못하)는 원인은 물론 이들 중 열에 아홉은 그 작업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건달'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의 꿈은 건달의 길과 매섭게 나뉘지 않는데, 그 길은 아무래도 공부 길이 아닌 것. (139p)


어찌 보면 어려운 말 같기도 한데 위트가 있다. 즉 공부하지 않는 것을 건달에 빗대고, 그러면서도 사회적 성공을 바라거나 성공했다면 그 사회는 얼마나 불안한가를 지적한다. 더구나 한국 남자들은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건 뭐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여성은 상대적으로 묻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앎은 질문에서 시작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배우려고 하지 않아 건달이 되는 사회는 위험하다.


요즘 5, 60대의 학업성취도도 예전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그런데도 나이 들면 들수록 배움엔 여러모로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생각해 봤더니 나는 벌써 꽤 오랫동안 공부하기 위해 어딘가를 정기적으로 다니는 곳이 없다. 공부도 젊을 때 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녹슬게 방치해 두면 안 된다. 건달이 되는 거보다 더 무서운 건 무뎌지고 녹슬어 쇠해지는 거 아닌가.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다. 저 다섯 가지 반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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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25 19: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처럼 입시위주의 경쟁적인 교육제 아래에서는 수학 올림피아드는 가능하지만
앞으로도 노벨문학상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대학 졸업하고 방송대
들어갔을때 비로소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거든요. 독서 재미는 더 늦게 알았고요.^^

stella.K 2023-02-25 18:35   좋아요 3 | URL
맞아요. 중요한 건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하는 건데 울나라는 그게 참 없어요. 방통대가 재미있군요. 하긴 저도 대학 다닐 땐 죽지못해 다녔고 모 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심리 상담 참 재밌게 공부한 기억이나요.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감탄하면서.ㅋ
다시 공부한다면 국문학을하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3-02-25 1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부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어야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언제나 공부가 목표가 되니 온갖 비극이 일어나는거죠. 저도 공부가 재미있어진건 대학 졸업 이후예요. 그 전까지는 공부는 어쩌지 못해 하는 노동이요.

stella.K 2023-02-25 19:46   좋아요 3 | URL
ㅎㅎ 우리의 공부는 거의 이런 식인 것 같아요. 대학 때 전공 좋아하는 사람 거의 못 봤어요. 말씀마따나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목표가 돼버리니 어떻게든 맞혀서 대학을 가는 형편이니 참...

니르바나 2023-02-26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공부에 관한 책 중에 이런 책이 있습니다.
공부도둑- 공부의 즐거움- 공부이야기로 개정된 책입니다.
물리학자인데 한때 유행했던 통섭적인 학문을 하신 장회익 교수님인데
재미있게 <공부의 즐거움>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부를 중국어로 쿵후(쿵푸)라고 하지요.
공부도 따지고 보면 몸의 수련인 셈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책을 못 읽는 분들이 정말 아주 많이 있죠.
그 이유는 책읽는 수련이 전혀 안되어 있어 독서를 못하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스텔라님은 독서 마스터, 공부 따거이십니다. ㅎㅎ


stella.K 2023-02-27 16:58   좋아요 1 | URL
아, 그러고 보니 몇년 전에 김열규 교수가 쓴 공부에 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연히 중고샵에서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독서도 수련이란 생각 많이 듭니다.
이게 조금만 딴생각을 하거나 시간을 딴곳에 쓰면 독서는 물건너 갈 때가 많죠.
저는 책이 좋은 거지 독서는 정말 수행이구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해요. ㅠ
따거는 무슨…ㅋㅋ

페크pek0501 2023-02-27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하기 위해 어딘가를 다닌 적이 없으시다니... 그래도 이 정도로 글을 쓰시다니 훌륭하십니다.
저는 문창과 졸업이 아니라는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문창과 학생들이 들을 법한 강좌는 다 들어야지, 하면서 다니던 시절이 있었어요. 생각보다 큰 효과는 없었을 거예요. 왕복 두 시간을 들여 가고 겨우 두 시간 강의를 듣고 오는 게 다 였으니...하루가 날아가는 거죠. 상품으로 말하면 가성비가 낮았던 거죠.
지금은 무료의 온라인 강좌와 유튜브 강좌가 많은지라 굳이 강의를 들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게 편리한 것 같아요. 눈 안구건조증이 느껴질 땐 오디오로 듣는 책으로 보완할 수 있고요. 이 시대가 주는 혜택입니다...^^

stella.K 2023-02-27 17:07   좋아요 1 | URL
다 좋은 글을 쓰고자하는 열망 때문 아니겠습니까? ㅋㅋㅋ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아요. 오고가고 시간 넘 많이 뺏깁니다. 요즘엔 정말 시대가 좋아졌죠?
그래도 어떤 강의는 직접가서 듣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시나리오 강의 들었을 때 끝나고 뒤풀이 할 때가 정말 좋아던 것 같아요.
앞의 두 시간은 이론 강의고 술잔 부딪혀 가며 수다 떠는 게 진짜 강의죠.
누구는 술판 벌어지는 게 무슨 공부냐고 할지 모르지만. ㅋㅋ

yamoo 2023-03-12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민 저자의 책을 몇권 봤는데 저는 그리 좋은 줄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책은 꾸준히 내고 퀄러티도 어느정도 있어서 간혹 들춰는 보는 작가인데 제겐 별로 임팩트가 없는 작가에요~

stella.K 2023-03-12 18:37   좋아요 1 | URL
동명이인이예요.
아마 야무님이 말씀하시는 김명민은 이 책의 김영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맞다면 저는 그 김영민이 관심이 가더라구요.
근데 이 책의 저자는 넘 어려웠어요.
이 저자를 좋아하는 독자도 나름 있는 것 같긴하더라구요.
 
오늘을 잡아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9
솔 벨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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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발견하고 완독할 때까지 솔 벨로가 언제 이런 소설을 썼지? 좀 놀랐다. 더구나 작가 연보를 보니 결혼을 다섯 번이나 했다. 아니 결혼은 언제 또 이렇게 많이했을까? 더 놀랐다. (최근 안 건데 일론 머스크도 그 비슷한 결혼 이력이 있더라.) 그럼 뭐야? 무슨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산 것은 이미 그전에 세상 재미 볼 거 다 보고 들어갔던 거임? 


그러다 한참 있다 비로소 현타가 왔다. 아니나 다를까. 난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완전 착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소로를 솔 벨로와 완전 겹쳐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착각을 해도 그렇지 남의 이름과 성을 교묘하게 섞어서 착각을 하다니 나이 들면 책도 못 읽겠구나 싶다. OTL 


이 이야기를 한마디로 뭐라고 해야 할까?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옛 속담에도 재수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주인공 윌헬름이 그런 사람이다. 이 남자가 얼마나 재수가 없냐면, 부모와 형제들이 다 학벌이 좋은데 자신만 변변치 않다.  


그나마 20대 때 배우가 돼볼까 했는데 그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두어 곳 직장을 다녔지만 상사와 대판 싸우고 홧김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버렸다. 그뿐인가? 결혼도 했는데  행복하지 못하다. 별거하고 있는데 그런 중 애인이 생겨 정식으로 이혼하고 새 출발을 하려고 하지만 아내가 이를 알고 이혼을 해 주지 않는다. 


법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아내도 똑같이 법으로 대응하면서 그 비용을 윌헬름에게 청구한다. 게다가 아내가 아이들을 데려갔기 때문에 만나지도 못한다. 아버지에게 빌붙어 보지만 역시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살기는 그리 나쁘지 않은지 아버지와 함께 같은 호텔에서 산다. 물론 방 호수는 다르게 하여.  


사실 난 오래전부터 궁금했는데 호텔을 제집 삼아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살면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물론 호텔마다 급수가 있겠지만 어쨌든 하루 숙박료도 싸지는 않을 텐데 어떻게 무슨 짓을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게 남의 나라 얘기는 아니더라. 우리나라에 무슨 랩 가수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던지 우리나라 5성급 호텔 그것도 펜트하우스에서 사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호텔족이 있었다. 물론 훗날 이사을 하던데 또 모르지 다시 호텔로 복귀했는지. 


아무튼 그런 사람이 행복을 모르고 끊임없이 자신의 불행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그게 참 낯설지가 않다. 이 책이 지난 세기에 씌여졌는데 요즘에도 도처에 이런 사람은 깔려있고,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면 자신이 혹시 그런 사람은 아닌가 의심해도 좋을 만큼 흔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나라일수록 많다. 


부모 자식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않다. 자식은 부모에게 왜 나를 도와주지 않나 늘 섭섭해한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투자한 만큼 성과가 없으면 그도 눈밖에 나는 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렇게 아버지 아들러 박사는 윌헬름을 거의 내놓은 자식처럼 취급한다. 하긴 새도 새끼가 시원치 않으면 둥지 밖으로 밀어내지 않던가.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그렇게 약한 새끼까지 힘들게 키울 여력이 없다. 인간의 세계나 자연의 세계나 적자생존이고 비정하다.          


윌헬름 주위엔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없는데 탬킨이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그 주위를 맴돈다. 그는 일명 박사로도 통한다. 무슨 박사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식 분야에서는 해박한가 보다. 솔직히 아이러니한 건, 믿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말은 그럴듯하게 한다는 것이다. 탬킨이 이런 말을 한다.


...... 우리에게 과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미래는 근심 걱정만 가득하고, 진짜는 현재뿐이야. '지금 여기뿐이라고. 오늘을 잡아야지." 


79쪽


바로 여기서 책 제목을 정했겠다. 하지만 오늘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솔 벨로는 지금 여기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포착하려한다. 윌헬름처럼 대부분 부족함이 없이 살아온 사람들, 그것도 자신의 노력이 아닌 부모가 만들어 준 온실속의 화초처럼 성장해 온 사람일수록 무엇이 지금, 여기의 삶인지를 잘 모를 경우가 많다. 그나마 부모의 세대는 가족과 함께 잘 살아야겠다는 꿈이라도 있지, 그렇게 호의호식하며 잘 살게 된 자식들은 꿈도 투지도, 쏟아부을 열정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왜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역으로 윌헬름의 저 넋두리가 현실에서 다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는 만족하고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니까. 또 어디선가 새로운 불만족을 찾아내고, 불평하며 누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주문처럼 푸념하겠지. 


그런데 탬킨이 한 저 말 자체는 뼈를 때릴만하지만 받아들이기 때라선 그냥 현재를 (말초적으로) 즐기라고만 하는 것도 같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므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더구나 윌헴름이 평소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면 그냥 듣고 넘기지 않을 텐데 시종 시큰둥하다. 게다가 말미에 가서는 탬킨이 어떻게 된 일이지 모르겠지만, 죽는다. 허무하게. 그러다 보니 이야기도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사실 '지금 여기'의 삶은 실존주의 철학이나 상담학에서 많이 다루는 사상이다. 외부적인 여건이나 어떠한 존재가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알기를 힘써야 한다. 삶의 의미를, 왜 살아야 하는지를,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끝이 비록 죽음으로 끝날지라도 말이다. 


윌헬름의 나이가 40대 초반으로 나오던데 그 나이면 불혹이 아니던가. 무엇을 새롭게 하기에 적절한 나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젊음을 자랑할 나이가 아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나이다. 살아온 날들 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조금 더 남아있지만 그것을 더 이상 자랑할 수도 없는 나이다. 삶과 죽음이 비등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죽음이 삶을 추월하는 때를 맞이하게 되겠지. 


비록 소설은 탬킨의 죽음을 보고 윌헬름이 이후에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는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좀 이제와는 다른 삶을 살길 바랄 뿐이다.  


소설은 꼭 4, 50년대 저예산으로 만든 미국 영화를 보는 것도 같다. 뭐 그렇지 않아도 이 작품은 1956년도에 발표된 작품이다. 소설가를 규정하는 여러 말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너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자꾸 수시로 새처럼 짹짹거려 주고 의식을 쪼아주는 것에 있다고도 했던 말을 기억한다. 솔 벨로는 그 일을 세련되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미국적으로.


사실 삶을 생각한다는 건 아주 피곤한 일이긴 하다. 나는 삶을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은 걱정이 너무 많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삶의 힘을 빼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욕망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훗날 후회가 남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을 잡는 것이 아니라 밀도 있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참고로 난 요즘 이 '밀도'라는 단어에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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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2-07 2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밀도 있게 사는 것, 충실성 있는 하루하루를 살면 되려나요... 저에겐 쉽지 않을 듯...
힘을 좀 빼고 살고 싶어요. 편하고 자유롭게요. 이것도 쉽지 않더군요.
님의 리뷰를 읽으니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 생각났네요. 운 억세게 좋은 사람이요.
운 억세게 좋은 페크, 가 되고 싶군요.ㅋㅋ
리뷰를 재밌게 잘 쓰셔서 글이 길어도 술술~~ 읽으며 내려왔네요.^^

stella.K 2023-02-07 20:11   좋아요 1 | URL
ㅎㅎ 언니는 반드시, 꼭,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 될 거예요. 정말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 2023-02-08 0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라마다 문화가 조금 다르다 해도 부모와 자식 사이는 비슷한 것도 있지요 자신이 잘 안 되는 건 남 탓하면 끝이 없기는 한데... 부모가 잘 안 해줘서 그렇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여기 나오는 사람이 그렇군요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할 텐데, 그것도 쉽지 않네요


희선

stella.K 2023-02-08 13:15   좋아요 1 | URL
ㅎㅎ 그거 어렵지 않아요. 소확행 하는 게 하루하루를 잘 사는 거죠.
희선님은 서재에 시 쓰시잖아요. 그거 소확행 아니었나요?^^

yamoo 2023-02-13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있는데, 이게 좀 재미없을 거 같다는 인상이 지배적이라 아직 대기 상태입니다. 유진 오닐의 책을 읽고 별로라 생각되어 이것도 읽을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데, 스텔라님 리뷰를 보니, 좀 재미없을 거 같다는 느낌이 확 옵니다. 벨로 책이 2권 있는데, 걍 다 처분해야할 듯합니다..ㅎㅎ

stella.K 2023-02-11 16:46   좋아요 0 | URL
ㅎㅎ 좀 그렇긴 합니다. 고전이 당대엔 좋을지 몰라도 우리가 읽기엔 좀 아쉬운 작품도 있잖아요. ㅋ

모나리자 2023-02-11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을 읽어보니 책 제목이 강렬하고 압축적으로 잘 지은 것 같네요. 오래된 작품이지만 오늘의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네요. 잘되면 행복한 것이 우리 삶이라고 할 때 어쩌면 사는 내내 짊어져야 할 숙명같은 이야기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요. 이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에 궁금해지네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stella.K님.^^

2023-02-16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3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3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3-09 0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 축하합니다 이번 삼월은 많이 따듯하네요 지난 이월도 따듯했군요 그러니 삼월도... 봄이 짧을 것 같습니다

stella.K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3-03-09 09:51   좋아요 1 | URL
아이고,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축하합니다.

희선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그 의사의 코로나
임야비 지음 / 고유명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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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코로나 4년 차. 어찌 살아왔나 싶다.

전염병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더구나 팬데믹이란 생전 입에 떠올릴 필요 없을 것 같은 단어가 이렇게 익숙한 단어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미세먼지 많은 날에도 잘하지 않았던 마스크를 사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구할 수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 후에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해도 인당 구할 수 있는 양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만 구할 수 있다고 생긴 긴 줄.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마스크를 구해 보겠다고 그 긴 행렬에 끼게 될 것도 상상도 못했다. 이제 당당히 선진국 반열에 들어 섰다는 대한민국에서 이 무슨 구태의연한 공산주의식 배급 방식인가. 검사에서 확진이 나오면 무조건 격리돼야 하고, 이에 불복종하면 끝내 찾아내 격리시킨다. 그뿐인가. 교회도 온전히 다닐 수도 없었다. 교회가 크든 작든 20명을 초과하면 안 되는 규정이 생겼고, 하늘길은 완전히 끊기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거리는 한산하다. 연일 몇천에서 몇만의 사람이 확진되고 또 몇백 명의 사람이 죽어 나갔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난 그제야 전염병이 무섭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전에 사스나 메르스 때도 마스크 착용이 권고되었지만 난 그때 마스크하고 다니는 사람을 속으로 비웃거나 측은하게 생각했었다. 2차 세계 대전의 포격을 멈추게 했던 것이 평화를 열망했던 사람들의 노력과 외침이 아니라 전염병이라고 하지 않던가. 전염병이 끝나면 나라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예상은  비껴가지 않고 어려움이 닥쳤다. 아직 채 끝나기도 전에.      


그래도 사람들은 코로나를 꼭 나쁘게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지만 크든 작든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려고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하다못해 일에 치여 살았던 내 조카는 드디어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단다. 그러면서 또 한 번 걸렸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물론 앓고 누워있는 게 뭐 그리 좋겠는가만 그래도 쉴 새도 없이 일하는 것보다 낫단다. 그건 또 어찌 보면 이런 상황에서 묵묵히 애쓰는 의료진들을 생각하면 얍삽하다 못해 비열하단 느낌도 든다. 어쨌거나 그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고 위험한 사람들은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과 기저질환자들 아닌가.           


그때처럼 의료진들이 영웅처럼 보였던 때도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뉴스는 인간의 온갖 비리와 불온한 소식들만을 전달하기에 급급했는데 코로나 의료진들에 대한 보도는 얼마나 훈훈하고 덕스러웠던가. 더구나 아무리 더워도 달나라 우주복 같은 방진복들을 벗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역시 의사는 의사구나 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우리가 의사를 보는 시각은 그리 좋은 것만도 아닌 것도 사실 아닌가. 그러면서 과연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를 매일 생각했다. 


또 그런 와중에도 우리나라는 확진자의 관리와 방역을 잘한다고 해서 K- 방역이란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새로운 인사법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엄지 척 들어 올린 손을 다른 한 손이 받아드는 모양.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백신이 나오자 사람들의 마음이 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비빌 언덕이 생긴 셈이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그전까지는 확진이 되면 불편했는 데 지금은 걸린 자 보다 안 걸린 자를 찾아보기가 더 어려워졌으니 더더욱. (참고로 난 아직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백신 한 번 맞으면 코로나가 곧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다. 3개월이 지나면 약 효과 떨어지니 또 맞아야 한다. 그리도 K- 방역을 자랑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게도 피해가 막심한 미국이나 여타의 주류 국가에 비해 아직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뭔가 모를 이율배반을 느낀다.


코로나는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길을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나를 비롯한 일반인들에게 코로나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낯설면서도 가리어져 있는 부분을 드러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르포 문학이다. 글쓴이가 보고 느꼈던 세계를 가감 없이 쓴 논픽션이다.


저자는 코로나가 있기 바로 전해인 2019년에 의사직을 그만둔다. 그리고 코로나 자원봉사자를 지원을 한다. 그리고 첫 발령지가 외진 어느 정신병원이다. 의사직도 그만뒀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허드렛일이나 거들 요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신병원이라니. 더구나 저자는 '그 의사'라고만 할 뿐 자신의 전공을 밝히지도 않는다. 그런 것으로 봐 정신과와는 거리가 먼 쪽인듯하다. 처음엔 그런 곳에 배정받았다고 투덜거렸겠지만 환자를 위하는 사명이 투철한 어느 수녀님과 간호사와 의사들을 보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닫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비록 육체는 힘들어도. 하지만 정들자 이별이라고 기간제로 봉사하는 거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진다. 


나는 이 책을 읽어서야 비로소 정신병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병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 환자들에게 코로나 확진은 또 얼마나 무서운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세상에 마음이 아픈 사람은 왜 그리도 많은지 읽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책은 공교롭게도 저자가 100일 간격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게 되는 과정과 그 병원에서의 코로나 진료 과정을 서로 교차하며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애초에 자원봉사를 했던 것도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잊고자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그것이 어떤 사람이 보기엔 자책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코로나란 엄중한 시기 아니던가.  


읽으면서 자꾸만 마음이 동화돼 몇 번이고 읽는 것을 멈추고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그게 꼭 30여 년 전과 10년 전에 돌아간 내 아버지와 오빠가 생각나서만도 아니다. 그들은 이제 나에겐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저자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진 후 한 달 동안 가족과 함께 간호하는 그 신산했던 과정이 자꾸만 나의 의식을 건드려 놓는 것이다. 더구나 문체는 건조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더 신산하고 고독하게 만든다.    


죽음을 모를 땐 그저 삶은 온전히 내 편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은 정해진 이치 따라 살고 죽는 거라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는 건 그 믿음을 배신하기에 충분하고 때로 혹독하기까지 하다. 할 수만 있으면 삶에서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그를 붙들고 싶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것을 100일 만에 또 겪어야 한다는 건 얼마나 전율할 일인가.


저자는 그 첫 번째 봉사 이후에 다시 봉사를 나간다.

이번에 배정받은 곳 역시 똑같은 정신병원이지만 이곳은 먼저 갔던 곳과는 사뭇 다르다. 훨씬 넓고 시설도 좋지만 원래 있어야 할 의사들은 보이지 않고 간호사들만 있다. 의사들이 자기는 코로나 전담 의사가 아니라며 환자에게서 코로나가 옮을까 봐 피신해 있는 것이다. 오더를 내려야 할 의사가 손을 놓고 있으니 함부로 도와줄 수도 처방도 내릴 수 없고 대략난감한 상황이다. 그때의 저자의 의사로서의 활약상은 가히 내가 봤던 최고의 의학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를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저자는 그곳에서 영웅이 될 생각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분개하고 행동했을 뿐인데 한마디로 어느새 영웅과 깡패(요즘엔 이 말을 나쁜 의미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오해 없긴 바란다.)를 오가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니 어찌 김사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사람은 평안할 땐 자기가 처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 그저 편안함에 취해 저 밑바닥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다 뭔가의 파문이 이러나 밑바닥을 휘저어 놓으면 잠자고 있던 의식이 수면으로 올라온다. 코로나 역시 그랬다. 보라. 코로나로 인해 이단의 교주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저자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런 병원에 가지도 않았겠거니와 이런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번에 백신을 세 번이나 맞았고, 확진자의 격리와 사후관리를 보면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막연하게나마 느꼈지만, 책은 훨씬 적나라하게 우리나라 의사의 방만한 태도와 의료 윤리를 꼬집는다.


어느 분야든지 세대 차이의 극복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더구나 공중보건의 문제 역시 심각해 보인다.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요즘 젊은 의사들은 버릇이 없으며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고, 젊은 의사들은 나이 든 선배들을 꼰대 취급하며 그들에게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닌자라고 하는 레지던트 기간을 통째로 날려 먹는다. 그리고 어떻게든 개업할 생각만 한다고 통탄한다. 역시 읽는 나도 씁쓸해진다. 그건 다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기성세대에 보고 배울 사람이 없으니 젊은 의사라고 나을 것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세대나 의인은 있기 마련이다.  


난 이 대목을 읽을 때야 비로소 저자가 왜 본명 대신 필명을 쓰며 자신의 전공을 밝히지 않고 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에는 뭐 그러는 거야 자유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불친절하다고 하다고 생각했다.) 스웨덴의 칼 오베 크라우스고르라는 작가는 자신의 자서전을 쓰면서 거기 등장하는 사람들의 실명을 거론하므로 지금까지 가깝게 지낸 사람들과 불편해졌고, 어떤 사람에게 고소까지 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도 고소는 몰라도 가급적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불편과 오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에서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 시설명까지 다 가명으로 하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논픽션, 르포문학이 어렵다는 것일 것이다. 새삼 르포 문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조지 오웰도 생각이 난다.


저자는 현재 연극에 투신하면서 소설을 쓰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어느 음악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모쪼록 그의 제2의 인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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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9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3-01-20 12:4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속옷 벗는...?!
외모의 평준화.ㅋㅋㅋㅋ
하긴 이게 언제 그렇게 익숙해졌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엔 마스크 하는 거 잊어버려서 식겁한 적이 어제 같은데...
세수 안하고 나가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근데 정말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30일부터는 실내 마스크 해제라던데 대중교통도 마져하지
적어도 혼잡한 시간은 제외하고 해제로 가닥을 잡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아무튼 잘 견뎌왔다 싶네요.^^

바람돌이 2023-01-19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특히나 공공의료부문에서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개 의료 종사자들의 희생정신 이런데 기대서는 안되는..... 저자가 본 두번째 병원이 그런 시스템이 무너진 적나라한 예가 아닐까 싶네요. 다행히 그런 곳보다는 안 그런 곳이 더 많긴 하겟지만 이 시스템이라는게 사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또 걷잡을 수 없달까 그래서 우리가 정치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거 같아요. 이런 책이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stella.K 2023-01-20 13:42   좋아요 3 | URL
맞아요. 그동안 전염병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가 선재적으로
해 온 일이 있더라구요.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선진국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문제점은 반드시 집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고 봐요.
저자는 바로 이점을 문제제기 한거고요.
원래 조그만 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뜨리잖아요.
정치지도자들 과거 가지고 자꾸 싸우고 그럴 일이 아닌데 말이죠.
이 책 참 좋더군요. 르포라고 하지만 괜찮은 문학작품 읽는 느낌도
들어요. 저자가 부러웠습니다. ㅋ

희선 2023-01-20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로 여러 가지 달라진 게 많은 사람 많겠습니다 좋아진 사람도 있겠지만, 더 힘들어진 사람 많겠네요 그래도 코로나가 처음보다 심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변이가 자꾸 나오다 다시 안 좋아질 수도 있을지... 그런 바이러스도 사람 때문에 생긴 거나 마찬가지죠 사람이 지구를 덜 망쳐야 할 텐데... 의료를 하는 사람은 코로나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겠습니다 어디나 예전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교사도... 그런 말이 나온다 해도 그 안에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하는 사람 있으리라고 봅니다


희선

stella.K 2023-01-20 13:51   좋아요 2 | URL
그럼요. 이제 30일부턴 실내 마스크도 해제 한다는데
기대 반, 걱정 반이네요.
함께 잘 견뎠다 싶어요. 의술도 많이 좋아졌고.
중세 시대 때 흑사병은 7, 8년이었더군요. 사람도 더 많이 죽었을 겁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코로나가 우리를 많이 가르쳤어요. 그죠?

yamoo 2023-01-21 1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로나가 지속되어도 그리 나쁠 거 같진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점도 있고 그랬는데...

코로나 해제한다니 걱정이 반입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마스크를 쓰고 다닐 것입니다~~ 마스크의 장점은 참으로 많은 듯합니다..ㅎㅎ

스텔라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길요~~

stella.K 2023-01-21 14:34   좋아요 1 | URL
아유, 무슨 그런 말씀을...
하긴 코로나 원년을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네요.
그때 바다와 하늘이 살만했죠. 사람도 많이 안 모이고.
하지만 세계적으로사람들 떼죽음을 당한 거 보면 이거
한 번이나 겪지 두 번 겪을 건 아니다 싶어요.

백신을 안 맞으셨다면 마스크 계속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긴해요.
사람들이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거리에서도 마스크를 거의 다 하더군요.

고맙습니다. 야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좋은 작품 많이 만드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