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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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초판이 나온 이래 2022년 기준 110쇄까지 나왔다고 하니 이 책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젊을 때도 읽지 않았던 로맨스물을 이제야 읽는 건 저 통계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어떤 책이길래 110쇄...? 하는) 순순하게 책 읽는 재미를 느껴 보고 싶어서일 뿐이었다.


일단 작가가 물 흐르듯 막힘없이 글을 잘 쓴다. 무슨 단막극이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수채화 같기도 하다. 수채화가 같은 이야기가 그렇듯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착하고 밝은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공진솔도 좋지만 이건의 캐릭터가 마음에 끌린다. 꾸밈이 없고, 담백하고, 으샤으샤를 잘하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이런 캐릭터 흔할 것 같지만 사실 흔하지 않다. 설혹 있다고 해도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단점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내 차지가 되지 못하며 이미 누군가의 애인이 되어 있다는 점. 내가 로맨스물을 좋아하지 않는 데는 그 특유의 오글거림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남의 얘기 같아서다. 이 책도 봐라. 건은 진솔의 남자라는 걸 확인시켜 줄 뿐이다.


여기엔 크게 사랑에 대한 4가지 태도를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사랑에 빠져들지만 신중한 진솔. 사랑 같은 거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결국 사랑하게 되는 건. 사랑보다는 자유가 더 좋다고 하는 건의 친구 선우. 그런 선우를 언제나 무한히 기다리는 애리. 그런데 읽다 보면 왠지 애리와 선우는 진솔과 건의 페르소나 같기도 하고 어쨌든 뭔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건. 다 좋은데 때로 종잡을 수가 없다. 남한테 잔뜩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내가? 언제? 하며 발뺌하는 혼미한 스타일이기도 하다. 하긴 인간이란 원래 종잡을 수 없는 구석이 있다. 진솔이 좋아할 만한 짓은 다 해 놓고 심지어 진솔의 구애도 받고, 그 구애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더니 역시 건은 아직 진솔을 사랑할 마음이 없는가 보다.


어느 날 애리와 선우가 싸우는데 갑자기 끼어들어서 화를 막 내더니 애리에게 자기에게 오라며 진솔과 차곡차곡 쌓아갔던 연애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렇다. 건은 바보스럽게도 친구의 애인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진솔의 사랑에 미온적이었고. 아무리 애리에 대한 감정을 정리했다고 해도 불온하다. 거기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감정이란 건 마음의 작용이 아니라 뇌의 작용인지도 모르겠다. 그 작용이 정확히 인지한 대로만 작동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가격한다. 그때 상대도 당황하겠지만 본인은 또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고 세상이 얼음으로 변한 것 같다.


건은 어쩌면 어떤 부조리한 상황에서 트라우마가 건드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은 사랑하다 길을 잃었다. 단 한순간의 행동으로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이다. 그럴 때 내가 진솔이라면 또는 건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일단 책을 덮고 (또는 다 읽고라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솔직히 이들의 관계가 '여기서 돌아킬 수 없는 파국'이라면 얘기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계속 사랑할 마음이 있다면 위에서 말한 뇌의 작용, 쉽게 말하면 부조리한 상황은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벌어질지 모른다. 이번엔 건이지만 다음번엔 진솔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남녀의 사랑이라고 하지만 사랑은 정염, 즐거움, 애틋함, 그리움 뭐 이런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은 어려운 일이다. 바다를 가르고, 높은 산을 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일이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러는 것이겠지. 즉 관건은 그럴 때(마다) 관계의 회복을 위해 서로가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아닐까?


건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건, 자신이 그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진솔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물론 노력만 했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노력하다가도 어느 순간은 진솔을 포기한 것도 같다. 원래 사랑은 아니 세상의 모든 관계는 다 밀당 아닌가. 단시간 내에 뭔가를 결판내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건은 고단수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천천히 진솔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끌어오는 것이다. 어떻게 얻은 사랑인데 뇌의 순간적인 오작동으로 사랑을 잃어버리겠는가. 그러다 보면 상대도 자신의 사랑에 다시 한번 기회를 줘봐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책에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기원했는가 보다.


이 책이 나온 지도 내년이면 20년이 된다. 그동안 (작가의) 건이와 진솔의 기원이 변함없이 이루어졌을까? 아직도 우리의 사랑은 조금의 잘못도 용납하지 못하고 헤어지니 마니하며 유아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사랑하면 헤어지는 게 목적인 양 빨리 만나고, 빨리 헤어져 온 것은 아닐까. 거쳐야 할 뭔가의 단계를 훌쩍 뛰어넘고 결국 혼자가 되는 것이다. 그 얼마나 사랑을 소모적으로 하는 것일까. 또는 그와는 반대로 연애에 실패만 해 오다가 귀찮아서 다시 시작도 못하는 건 아닐까. 모르긴 해도 이게 갈수록 가속화되지 느려지거나 완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미디어의 영향도 클 것이다. 짤 영상을 그리도 많이 보니 사랑도 짤로 하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이런 잘 쓴 로맨스물 그것도 4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만약 읽는다면 말이다.


내년이면 20년.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비결이 뭔지 궁금하기도 하다. 왠지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도 들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리 오래지 않은 느낌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썼을 때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진솔과 엇비슷하지 않았을까. 원래 작가들은 자신의 현재의 나이를 등장인물에게 투영을 잘 하는 법이니까. (더구나 이 책이 작가의 데뷔작 아닌가.)


초반에 진솔이 아직 건을 사랑하기 전 무슨 말 끝에 이런 말을 한다. 나이 먹어서 사랑이 힘들어지는 건 남자 여자라는 정체성이 점점 사라지고 더 이상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본능이 없어져 가기 때문이라고. 글쎄, 정체성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모호해진다고 해야 맞는 말 아닐까? 아무튼 나도 한때는 작가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작가도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나이 들면 연애 세포가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주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것도 언제 어느 때 불쑥 나타나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지 알 수가 없다. 앞서 말했던 건이의 실수처럼 말이다. 그래도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건 지킬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가정이나 쌓아 온 명예, 권위, 신망 등. 게다가 꼰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도덕과 윤리까지 생각해야 한다. 언제까지 사랑 하나에 목숨을 걸 수 없다. 젊었을 땐 그래도 된다. 그래야 좋은 유전자를 남길 테니까. 하지만 나이 들면 그보단 인류애, 전우애, 자바와 긍휼 등으로 확장된다. 그것도 분명 사랑은 사랑이다. 그게 하찮은가? 대신 그들에겐 중후미라는 게 있다. 이건 절대로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가꾸고 다듬어야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나도 기원하고 싶다. 이들의 이런 사랑도 무사하기를. (아,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기를. 나이 든 사람도 정열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작가의 사랑도 무사하기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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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9-25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애세포 나이와 반비례로 줄어드나요?^^,,,사실 물음표 문장이지만, 이미 긍정하고 있는 슬픈 냉담^^;; 세포를 돌려다오 하고 싶습니다 ㅋ

stella.K 2023-09-26 09:41   좋아요 1 | URL
ㅎㅎ 얄라님 뭐 어때요 줄어들면. 제가 저기에 생각이 안나서 못 쓴 단어가 있는데 확장적이란 말입니다. 우린 연애 세포가 주는대신 인류애, 전우애, 자비와 긍휼 뭐 이런 쪽으로 획장되어져 나가고 있는 겁니다. 으하하~

얄라알라 2023-09-26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네 읽었었어요 긍휼이라는.단어를 진짜 오랜만에 보면서 어제.살짝. 위안^^ trade off 가.인간의.감정계에도 있나봐요 연애대신 인류애로.차원바꾸기 ㅋ

stella.K 2023-09-26 10:07   좋아요 1 | URL
아, 그래도 좀 서운하다 싶으면 이런 로맨스 영화나 소설 보는 걸로 대리만족해야죠 뭐. 가끔 에로틱한 것도 봐 주면서. 다 사는 방법이 있어요. ㅎㅎ

2023-09-26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23-09-26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0쇄, 20년의 기록을 가진 소설이라니 정말 대단합니다.
일단 조세희 소설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최인훈의 <광장>이 떠오르는데
그 외에 100쇄 이상 찍은 책들로 또 뭐가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스텔라님, 생각나는 책 있어요.

stella.K 2023-09-26 18:09   좋아요 1 | URL
설마 그 생각 나는 책이 제가 생각하는 그 책은 아니죠? ㅋㅋㅋㅋ
난쏘공은 읽었는데 광장은 안 읽었네요. 100쇄 이상인데도.ㅠ
추석 잘 지내십시오.^^

2023-09-27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27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3-09-27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20년 동안 110쇄라니 대단한데요!!
전 완전 몰루는 책인데....저자두 완전 몰랐구요..ㅎㅎ
100쇄 이상 찍는 한국 소설은 정말 손에 꼽는데....서정인의 혼자뜨는 달도 100쇄를 못 넘겼을 거 같은데...암튼 이런 책이 있었다니..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랑 얘기인듯해서 저는 패쓰하렵니다. 이런 책도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페이퍼를 읽은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stella.K 2023-09-27 20:00   좋아요 0 | URL
이 책 오래 전부터 나름 유명합니다.
저도 로맨스물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하도 유명해서
이번에 거의 충동구매했습니다.
그냥 무난한 것 같아요. 출간 당시 드라마로 만드냐 마냐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 드라마로 만들기는
때가 늦었죠? 이미 이만하거나 이 보다 더 괜찮은 로맨스물이
만들어졌을테니. 하지만 이 정도라면 책의 기세는 꽤 오래 가지않을까
싶네요.^^

희선 2023-09-28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자기 책이 오래 사랑 받아서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읽어 보기는 했지만 다 잊어버렸네요 예전에는 라디오 방송 주소가 사서함이었죠 저는 라디오 방송 때문에 봤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도 라디오 듣는군요

stella.K 님 명절 잘 쇠시고 연휴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3-09-28 20:16   좋아요 0 | URL
앗, 사서함 110호가 그뜻이었나요?
그렇지 않아도 이 제목의 뜻이 뭘까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책을 잘못 읽었나 봅니다.ㅠ
근데 110쇄라니 뭔가 절묘하지 않습니까?
작가가 방송작가라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쓰는 것 같아요.
딱히 제 스탈은 아니지만...ㅎ

네. 희선님도 행복한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2023-10-01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01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02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의 엔딩 크레딧 이판사판
안도 유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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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맨 마지막 글은 역자의 글 아니라 삼송 김 사장의 글이다. 출판사 사장 말이다. (전에 마포 김 사장 아니었나? 아무래도 삼송으로 이사 가서 고친 모양이다.) 그 글의 제목은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의외로 작가도 모른다"다.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좀 오래된 이야기긴 하지만, 나는 오히려 작가가 되어 책을 내보니까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겠더라.


나의 경우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정리해서 낸 것이긴 하지만 말이 좋아 정리지 책으로 낸다고 하면 그건 거의 새로운 작업이 된다. 뼈대만 놔두고 모든 것을 다 뜯어내고 새롭게 하는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거기엔 새로운 아이디어와 콘셉트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이를 통해 작가가 글만 잘 썼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정도 기획력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래서 작가들 중엔 출판 관련 일이나 아예 출판사를 차리기도 하는구나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교정지를 받을 때이다. 작가가 자기 글이 쓰인 교정지를 받는다는 건 잘못된 문구나 오타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솔직히 작가가 이런 일도 해야 하나 0.5초쯤 생각해 본 것 같다. 원고를 넘겼을 때도 이미 여러 번 다듬고 고친 건데 또 고쳐야 하다니. 그런 건 편집자나 교열자가 하는 거 아닌가 했다. 물론 그들도 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데 직접 글을 쓴 사람이 이걸 또 안 할 수 있나. 그만큼 오타를 바로잡거나 문장을 다듬는 건 3중 4중으로 협업한 결과다. 물론 그러고도 막상 책이 짠하고 나오면 오타는 여전히 발견된다. 그때 알았다. 오타는 물귀신과 같으며 오타율 0%의 책은 없다는 걸. 대신 왜 이 문장을 고치지 못했을까 하는 이불킥만 남는다. 어쨌든 그때부터 난 책 읽다가 오타가 발견돼도 그냥 넘어간다. 그전엔 어림도 없었다. 출판사 직원도 아니면서 과부 사정 과부가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뿐인가? 커버 디자인은 어떻게 할 거냐, 어떤 크기로 할 거냐 글씨체는 뭘로 할 거냐, 심지어 페이지도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책도 그렇고, 삼송 김 사장도 그렇고 페이지는 숫자 몇의 배수로 정해진다며 책의 공식을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대부분의 책의 페이지 수는 백지를 포함해서 16의 배수로 되어 있습니다. <<책의 보물상자>>도 288페이지. 16의 배수죠.(457p)" 이런 식이다. 나의 책도 백지를 포함해 끝자리가 짝수로 끝났다.


게다가 명도니 조도니 막 이런 얘기까지 나오면 이건 좀 나의 한계를 넘어가는 일인 것 같아 그때부터는 '네, 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알아서 잘 좀 해 주십쇼.' 굽신거리게 된다. 솔직히 출판사에서도 그런 걸 알려주는 건 그냥 작가를 존중해서지 나의 허락을 받겠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의견 제시는 할 수 있다. 단지 반영이 될 것이냐 아니냐는 어디까지나 제작 측의 소관이다. 사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 하는 건 출판사가 더 똥줄 타는 문제지 작가는 원고만 넘겨주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작가보단 독자였던 때가 더 많으니 아무래도 커버 디자인엔 신경이 좀 쓰이긴 하더라. 아무리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장정이냐에 따라 그 책을 살지 말지가 결정되기도 하니 그건 당연하다. 물론 그 커버에 어떤 문장을 실을 것이냐도 관건이긴 하다.


원고료도 그렇다. 막상 책을 내도 1쇄가 다 팔릴 것 같지도 않고, 누구는 자비 출판도 한다던데 이렇게 원고료까지 받고 내 책을 팔아주기까지 한다니 오히려 원고료는 사양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원고료 대신 자신의 책으로 교환하기도 한다던데 내가 그렇게 주는 돈도 안 받을 만큼 청빈한 사람은 못 되는지라 받았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초짜 작가들이 대부분 취하는 자세 아닐까. 책을 두 번, 세 번 횟수가 거듭될수록 서로 요구하거나 갈등하는 것도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시절엔 작가는 어느 정도 신비주의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냈다고 하면 여기저기 불려 나가야 한다. 하긴 작가만큼 확실한 마케팅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작가나 그렇지 나 같은 사람은 어디 불러주는 데도 없다. (난 이게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좀 낯가림이 있어서 부담스러웠다. 출판사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겠지만.) 딱 한군데 어느 방송국에 인터뷰 외엔. 그나마 그곳은 출연료는 없었다. 방송국이 좀 후져서 그렇지 그래도 나름 유병한 방송국이었다. 그쪽으로선 오히려 우리 같은 방송국에서 불러 주는 걸 고마운 줄 알아라는 뭐 그런 뜻 같은데 그래도 이건 뭔가 상도덕은 아니지 싶다. 물론 사전에 출판사에서 그 점을 짚어주긴 했다. 인터뷰나 독자와의 만남에 불려 나가면 출연료를 주는 것도 있고 안 주는 것도 있는데 그런 것 때문에 시험에 들지 말라고. (내가 출판사만 아니면 그 방송국을 아주 그냥...) 어쨌거나 그런 것을 볼 때 이 시대의 작가들은 글만 쓰면 안 되고 사람 만나는 걸 기본적으로 좋아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작가가 책을 내 보면 출판에 대해서 막연한 걸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출판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인쇄에 대해선 내가 거의 알지 못했구나.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건 왠지 내 영역 같지가 않아 그냥 네, 네하고 넘어간 게 좀 후회가 된다. 종이책이란 물성을 좋아하니 그때가 아니면 내 책이 어떻게 인쇄되어 나오는지 모르는데 괜히 나댄다는 느낌을 줄까 봐 그것까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책에 대해서 모르는 건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독자라고 생각한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독자는 다시 말하면 책 소비자다. 무엇이 됐든 소비자는 물건의 생산 과정을 속속들이 다 알 필요는 없다. 소비자는 말 그대로 그 물건이 소비만 하면 그만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독자가 책의 생산 과정을 시시콜콜 알 필요는 없다. 독자는 그저 그 책이 좋은지 나쁜지만 판단하면 그만이고, 부지런하면 SNS 같은 곳에 리뷰라도 남기고 그도 귀찮으면 안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바로 이 독자와 출판사의 괴리가 출판 시장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현대 사회는 분업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기 분야 외엔 관심이 없고 서로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현저하게 낫다. 독자 없이 책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책 없이 독자도 없다. 이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해의 문제다. 우리는 모르면 관심이 없거나 쉽게 비난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출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판사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굳이 알리려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책만 만들어 낸다. 그건 아마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갖는 좋게 말하면 장인 정신 그런 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말이 좋아 세계 10위안의 출판 강국이지 출판이 얼마나 외로운 직업인가. 일반 가정에서 도서구입비는 지출 목록에 끼어 본 적이 없다. 그건 누군가의 용돈에서 쪼개서 쓰는 것이지 당당히 이름을 올릴 지출 항목이 아닌 것이다. 또 이것이 출판의 고립를 더 심화시켜 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도 출판 과정에 대해 관심 있고 애정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책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 훨씬 늦게 나왔겠지. 몇 년 전부터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연예 매니저의 일상을 다루는 프로를 보여주면서 연예 매니저란 직업이 급부상했다. 그런 것처럼 출판사도 그렇게 알려졌다면 조금 더 대접받고 출판 꿈나무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렇게 출판의 전 과정을 그것도 소설로 보여주는 책이 이전에도 있었나 싶다. 물론 이 책이 출판 안팎의 인식을 얼마나 바꿔놨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좀 흥미로웠다. 얼핏 들으니 작가의 적지 않은 취재와 집필 과정이 있었던 걸로 안다. 이 책엔 출판인으로서의 애환과 고민이 그대로 녹아져 있다.


하지만 차마 재미있다는 말은 못 하겠다. 출판사가 장르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 줄 아는데, 스릴러나 미스터리를 기대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냥 평이한 다큐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오히려 에세이로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중국은 걸상만 빼놓고 모든 것을 요리로 승화시킨다던데 일본은 모든 것을 소설로 승화시키는가 보다. 그 도전정신은 좋은데 재미는 보장할 수 없다. 읽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엔딩 크레딧은 영화가 끝나면 배우를 비롯해 제작자들의 이름이 화면에 스르르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야 영화가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이 엔딩크레딧을 유심히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쨌든 그걸 책 제목으로 썼다. 원래 책에 해당되는 말은 '판권'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가져와 썼다. 솔직히 액면 그대로 판권이라고 했으면 얼마나 팔렸을까 싶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은 무슨 무술의 하나인가 했을지도 모르겠다. 판권이 일상에서 그리 쉽게 쓰이는 단어는 아닐 듯하니 말이다.


나도 책을 사면 판권을 보기는 한다. 하지만 다 보지는 않는다. 출판 연도와 몇 쇄인가를 확인하는 정도다. 작가나 번역가의 이름은 애초부터 나와있는 거고, 출판사 사장 이름이나 이메일, 전화번호 이런 건 언감생심이다. 삼송 김 사장도 이름이 재밌으니까 기억하는 거지 본명을 썼다면 특이하지 않은 다음에야 기억도 못 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영화에서의 엔딩크레딧, 책의 판권을 알 필요가 있을까? 의무는 아니지만 필요는 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생각이 성숙하다면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봄으로 보이지 않게 수고한 사람들을 기억해 주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의 무덤에 가서도 그 사람의 비석에 새겨진 출생연도와 생몰연도를 보며 이 사람이 삶은 어땠을까 사는 동안 행복했을까,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하물며 책을 만드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수고를 독자가 알아 주지 않는다면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셋 중 하나다. 출판에 직접 뛰어들어 보던가, 작가가 돼보던가 아니면 이 책을 읽어보던가. 뭐 세 번째도 나쁘진 않지만 첫 번째는 밑천이 있어야 하는 거고, 나는 두 번째를 권하는 바이다. 고생스럽긴 해도 보람있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런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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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8-30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좋은 글이네요.
책만 사는 독자 입장이니까 출판 과정이 복잡하겠지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의 손길과 마음들이 갈마드는 공정이라니
이제 부터는 책에 더 애정을 갖으렵니다.
그런 의미로 책 한권 추천 들어갑니다.^^

*김지안 - 네 멋대로 읽어라(리더스가이드)
Sales Point : 70

stella.K 2023-08-30 19:57   좋아요 1 | URL
짓궃으십니다. ㅎㅎㅎ
세일즈 포인트가 70이면 괜찮은 건가요? 저는 숫자는 영.ㅠㅋ
저기 쓰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되니까 비로소 출판사와 공조체제라는 걸
알았죠. 역시 독불장군은 없어요. 다 함께 하는 거지.
그나저나 니르바나님 제가 이 글로 이달에도 당선작이 될 수 있을까요? ㅋㅋ

Conan 2023-08-30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나오는 과정의 복잡함은 가끔 상상해 보긴 했습니다만, 그저 지나가는 생각이었구요 말씀하신대로 발행일, 몇쇄 정도는 확인보곤 합니다. 그런데 가끔 신간을 사보면 발행일이 저한테 배송된 날짜보다 뒤의 날짜인 경우도 봤습니다. 이런건 왜그런지 모르겠더라구요...

stella.K 2023-08-30 20:08   좋아요 1 | URL
아, 저도 그런 거 봤어요. 그냥 혹시 모르니
여유있게내자 뭐 그런 거 아닐까요? ㅋ
그럼 예약판매로 하지 왜 그렇게 하나 모르겠어요.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전에 알라딘에서 책이 인쇄되어 나오는 짧은 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영상을 잘 찍어서 그런지 좋더군요.
역시 책의 백미는 기계에서 나오는 과정 아닐까요?
마치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을 꺼내는 것처럼. ㅎㅎ
갑자기 빵이 먹고 싶어지네요.ㅠㅠ

yamoo 2023-08-31 17: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책이 재미 없을 듯합니다..ㅎㅎ
스텔라 님 재밌는 책을 찾아 읽으셔요~~
이런 책읽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구요..^^;;

stella.K 2023-08-31 19:35   좋아요 1 | URL
역시 시크한 야무님! ㅎㅎ
그럴 줄 몰랐죠. 기대 많이하고 산 책인데...
책 좋아하면 관심 가죠.^^

2023-08-31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3-08-31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은 잘 만든 것 같아 탐이 나더군요. 내용은 그다음이고 책을 처음 받아든 순간 느껴지는 것을 말함이어요. 인물과 사상사에서 출간한 <정치적 올바름>이란 책은 표지가 빳빳해 좋더군요. 볼 적마다 이런 표지를 쓰면 좋겠다 싶어요. 그리고 아쉽게 느껴지는 책이 있는데 종이 질이 좋지 않아 밑줄을 그으면 잘 안 그어지는 책이 있어요. 저렴한 종이를 사용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유명 작가의 책이 그런 책일 때 (얼마나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이러나...하고) 실망스럽지요. 디자인은 유심히 보는 편이 아니에요. 책 내용만 좋다면 굿!!!

stella.K 2023-09-01 13:51   좋아요 1 | URL
아, 언니는 그렇군요. 저는 디자인 좀 따지는 편이에요.
유독 디자인이 조악한 책들이 있더라구요. 그러면 내용 역시도
별로 안 좋더군요.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책이라면(세계 명작 같은)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표지가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하죠.
하긴 전 솔직히 제 책 표지 디자인 좀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하지만 언니 말마따나 내용만 좋으면 굿이지 뭘 바라겠어요.ㅋㅋㅋㅋ

2023-09-01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수의 양 주기철
김인수 지음 / 홍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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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얼마 만에 완독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언젠가 한 번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4분의 1 정도를 남겨놓고 완독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리 두꺼운 책도 아니었고 4분의 1이면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 읽을 수도 있었다. 왜 그랬을까. 오래전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읽고 굉장한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손양원 목사는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해서 두 아들을 공산당 앞잡이에 의해 잃고, 그 앞잡이를 오히려 양아들로 삼았으며 나중에 본인도 순교한 인물이다.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는 거의 동시대 사람이긴 하지만 주기철 목사가 연배가 조금 더 높긴 하다. 또 그런 만큼 주기철 목사가 손양원 목사의 목회에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주기철 목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순교를 당했지만, 손양원 목사는 공산당에 의해 순교를 한 것이 다르긴 하다.

 

솔직히 오늘날 순교에 대해선 양가감정이 있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시대에 순교가 어디 있냐고 반문하거나 나는 과연 순교의 순간이 온다면 정말 온전히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도 순교는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강화도에 도착했지만 그는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죽었고 죽을 때 조선어 성경을 뿌리고 죽었다. 그 후 적지 않은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이 우리나라에 왔지만 풍토병으로 선교는 고사하고 짧게는 몇 개월 만에 사망했다. 그들 중엔 난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단지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겠지. 

 

그로부터 200년이 넘어서 우리나라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갔다가 비슷한 이유로 사망한다. 그 역시 죽을 것을 모르고 갔을까? 그렇지 않다. 그의 어머니도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의 선교의 길을 막지 못했다. 죽은 지 8년쯤 되었다는데 지금도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프리카 오지 어느 마을에 묻혀있다고 한다. 

 

한때 나는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가 너무 감동스러워서 그것을 각본으로 쓰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후 얼마 안 있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후회했다. 혹시 그때 그 작품을 보고 자신도 순교하겠다고 하는 관객이 나올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나 자신도 순교하지 못할 거면서 누구에게 순교를 강요했던 걸까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후 난 지금도 순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늘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역시 또 생각했다. 사실 토마스 선교사나, 주기철, 손양원 목사를 비롯해 이름 없이 죽어간 순교자들의 죽음은 모두 고귀하고 훌륭하다. 그런데 오늘날 순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너무 양극단을 달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 아니면 도라고, 순교하신 분들의 신앙은 고귀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의 생은 실패자인 양 취급하는 건 위험하다. 사실 순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순교하지 못한 사람은 적은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순교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매일 죽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순교의 순간이 왔을 때 그는 담담히 죽음을 맞이했다. 반면 죽기를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사도 요한이 그렇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평생 그곳에서 살다 죽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이 순교당한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못하다고 누가 그러던가.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서 복음서를 쓰는 일을 완수했다. 

 

또한 내가 아는 어떤 목사님의 아버지는 주기철 목사와 동문수학 했다고 한다. 그분도 주기철 목사님과 함께 순교 당하리라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하해 지방 어디에 교회를 개척하고 50이란 이른 나이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마도 시기적으로 주기철 목사의 순교와 별반 차이도 없었을지 싶다. 어쨌든 그걸 보면 순교도 내가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죽기 위한 잠깐의 고통 그 이후의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단숨에 순교하는 것과 순교하지 못해 그것을 평생 한으로 여기며 사는 삶과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난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뭐 그런 이분법으로 육체적 순교와 순교적 삶을 구분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순교적 삶도 쉽지는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이 책이 순교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 뭐 그런 극단에 치우친 책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주기철 목사의 삶을 좀 더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거기에 순교를 다뤄야 하는 것 같은데 자꾸만 순교하신 분으로만 인식하고 몰아가는 것 같아 아쉽다. 

 

관련해서, 이번에 완독을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있었다. 

사실 주기철 목사는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이 아니다. 그건 당연하다. 굳이 말하면 우리나라 기독교 1.5 세대다. 그의 아버지 주현성이 경남에 있는 웅천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따라서 교회를 다니게 된 것. 그게 주기철의 나이 17세였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의 교회 분위기는 사뭇 엄격했는가 보다. 여러 번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엄하게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어느 정도로 엄격했냐면, 계율위반자 즉 신앙과 정치 위반을 하면 책벌 내지는 출교까지도 과감하게 감행했고 그것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기도 했다. 

 

오늘날의 교회 풍경과는 참 많이 다르다 싶다. 물론 오늘날의 교회도 엄한 측면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교회 안 나온다고 징계를 한다는 건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그 시절의 교회는 학교와 비슷했던 것 같다. 학교도 무단결석을 하면 정학 내지는 퇴학까지 시키지 않는가. 당시론 학교가 흔하지 않고 교회의 기능 중엔 교육의 기능도 있었으니 이런 조처는 어찌 보면 당연했을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교회도 개인주의화 하는 경향이 있어 예배만 드리는 경우도 많고, 인터넷의 발달은 교인을 더욱 익명화 시켰다. 그러니 유구무언인데 그렇더라도 이거 하나는 지적하고 싶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좋은데 늦게 와서 일찍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 저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그것에 대해 설교자나 사회자(그들은 다 교회 교역자들일 것이다.)가 제재를 하지도 않는다. 이 사실을 우리나라 초대 기독교인들이 알면 기함할 일이다. 

 

오늘날의 담임 교역자들은 신앙을 북돋는 설교를 할지언정 죄를 지적하는 설교는 거의 하지 않는다. 또한 예배를 정화시키려고 하는 어떤 의지도 없어 보인다. 어쨌거나 예배조차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면서 그 귀에 대고 순교를 논한다는 건 소귀에 경 읽기다. 순교를 말하기 전에 예배 태도만이라도 고치자고 말하고 싶다. 

 

교회는 순교의 피를 마시고 세워졌다는 말이 있다. 순교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말도 있고. 이건 그냥 수사적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역사에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책을 읽으면 내가 지금 얼마나 편하게 교회를 다니고 있는가. 예전엔 우리나라에도 신구교를 합쳐 성당이나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했던 엄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예배는 고사하고 성경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다는 이유만으로 순교를 당해야 하는 나라가 있다. 먼 데서 찾을 것도 없고 당장 북한만 하더라도 그 핍박이 말도 못 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그렇게 허투루 예배를 드려서야 쓰겠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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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8-16 1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순교는 대단한 일이죠. 요즘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신문의 부고 기사 보면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 떠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50대, 60대에 죽은 경우가 그래요.
스텔라 님은 성경 공부도 많이 하셨을 것 같네요.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공부 잘하는 주인공을 목사로 만들려고 하고, 또 다른 소설에서도 그런 것 보면 예전 시대에는 목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것 같습니다.^^

stella.K 2023-08-16 13:39   좋아요 2 | URL
ㅎㅎ 저 많이 안했어요. 다 귀동냥이죠. ㅋ 주기철 목사님이 나온 학교가 평양신학교인데 명문이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해서 기독교 부흥의 진원지였는데 지금은 초토화가 됐죠. 지금은 목사가 너무 많은 시대에요. ㅠ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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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오래전에 사놓고 이제야 완독 했다. 

이 책이 1965년에 초판이 나오고 잊고 있다가 50년 후에 다시 재조명을 받았다지. 그러고 보니 책에도 팔자라는 게 있나 보다. 어떤 책은 거의 나오자마자 주목을 받고 사자마자 읽게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아무리 명작이어도 한쪽으로 쭈그려 있다 늦게 읽게 되는 책이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착한 서사' 장르다. 최근 대표적 작품으로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남아>>가 그렇고, 문학은 아니지만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나(읽으면서 이 영화가 유난히 많이 생각났다) <<8월의 고래>>가 그렇다. 독자를 잡아 끄는 강렬한 무엇은 없지만 잔잔하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이 책을 어느 만치 읽다가 첫 부분을 다시 읽었다. 내용은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 스토너의 출생 연도와 생몰연도, 농과대학을 다니다 문학을 알고 문학에 평생 바치고 가르치다 죽었다는 정도가 전부다. 하다못해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그가 평생 문학과 대학에 기여한 공로를 기억해 중세 문헌을 대학에 기증하겠지만, 후대의 학생들은 그가 누군지 이름은 떠올려 보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호기심을 갖고 알아보려고 하지 않을 거라며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다. 그만큼 그는 쉽게 잊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나는 그 부분을 다시 읽고서야 비로소 이 '착한 서사'를 떠올렸던 것이다. (멍청한 건가? ㅋ)

 

스토너가 우리 보다 조금 잘난 점이 있다면 교수였다는 정도가 되려나? 예나 지금이나 교수는 아무나 되는 건 아닐테니. 하지만 그렇다고 교수 세계에서 뛰어난 업적이나 능력을 인정 받았냐면 그렇지는 않다. 한때 인기 교수가 될 뻔했고 가르치는 걸 좋아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욕심이 없다. 이내 그는 평범한 교수로 남는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아는 누구와도 흡사해 보인다. 또 누구든 그런 사람 한 사람씩은 알고 있지 않나?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아내 이디스와 평생 맞지 않았고, 그나마 딸이라도 가까이 두고 돌보고 싶어 했지만 아내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뿐인가? 그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다. 점잖은 교수 체면에 내연 관계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뿐인가? 제자 하나 잘못 받아들여 곤욕을 치르고 학장과는 평생 앙숙으로 지낸다. 

 

그런 점에서 스토너의 삶은 우리네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세상 누구나의 바람은 좋은 직장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토끼 같은 자식 낳고 평화롭게 사는 거 아닌가. 지극히 평범한 거 같아도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좋은 직장은 다 남의 차지고 지금 다니는 직장도 언제 잘릴지 모르고 다니고 있다, 제대로 갖춘 것도 없어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설혹 결혼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랑도 이루기보다 못 이루고 사는 인류가 더 많다. 누구는 또 이 사실을 얼마나 조롱하며 주눅 들게 만들던가. 더 비참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살아야 하고 살아내야 한다. 

 

누구는 그랬다. 소설은 실패담을 기록하는 거라고. 그것에 동의한다. 우리는 그 실패담을 읽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이러면 안 된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스토너는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아 결국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가 학문적 업적도 뛰어나고, 사랑과 결혼에서도 완벽했다면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냥 부러워하고 존경할 수는 있어도 사랑할 수 없고 그 인생에 공감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별로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나중엔 충분히 긍정해 주고 손뼉 쳐주게 만든다. 스토너를 다시 보라. 그를 앞에서 보면 평범한데 뒤에서 보면 또 그다지 나쁘지만도 않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공부했고 가르쳤으며, 악간의 균열이 없지 않았지만 가정을 끝까지 지켰고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다. 사랑? 앞서도 얘기했지만 사랑은 이루는 사람 보다 못 이룬 사람이 더 많다. 그런 걸 생각하면 짧지만 불꽃같은 사랑도 해 봤다. 긴 사랑을 했다면 완전 나쁜 사람이고 이렇게 주인공으로도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생은 이렇게 삶 쪽에서 보면 형편없어 보이는 거 같아도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나쁘지마는 않다. 누군가가 나를 조롱하고 훼방 놓는 것 같아도 죽음 앞에서는 그것이 하나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어떤 한 사람의 생을 삶의 관점과 죽음의 관점 양면에서  보여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이 작품도 착한 서사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는다고 했"던 그 말을 스토너는 여지없이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꿈으로 가득 찬 설레던 삶을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노인들의 삶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에겐 꿈을 가지며 살라고 해 놓고 당신은 정작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나는 젊고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분들의 삶을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건 얼마나 버릇없는 일이 될까. 

 

그런데 난 아직 노년에 이르진 않았지만 이쯤 살아보니 (꿈은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이루면 되는 것이고) 비록 노인은 많은 꿈을 이루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 나름의 삶의 의미와 존재 있다는 걸 조금씩 확인하며 살고 있다. 거기 그렇게 살아서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똑같이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누구에겐 많은 위로와 힘이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건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누구는 또 그러지 않던가, 오늘이라는 당신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사람에겐 그렇게도 살고 싶어 했던 날이라고. 이 책은 당신이 위대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못해도 있는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좋다고 말하는 평범한 위대한 책이다.  

 

착한 서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문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그래서도 이 책은 주목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근데 번역은 좀 올드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오체나 하게체는 이제 좀 지양해야 할 문체 아닌가. 요즘도 그런 문체를 쓰는 번역가가 있나?)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 봐야 할 것 같고,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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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8-02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얘기하시는 노년의 삶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잘 읽고 갑니다.

stella.K 2023-08-02 11:22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그건 울엄마를 보니 알겠더군요. 또 노년이 주는 편안함, 안정감 뭐 그런 것도 있잖아요. 여전히 불안하고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런 것들을 구축해 나가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니르바나 2023-08-02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가요 명곡이 있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 모르는 길 위에 인생.
한바탕 꿈같은 세상이란 묘사가 적당한 것이 어릴 때 꿈을 꾼게 마치 엊그제 일 같거든요.
죽고 못살던 사랑도, 잘났다고 나대던 짓도 다 한때 일입니다.
스토너의 삶 같습니다.
더운 날씨에 몸, 마음 조심하세요. 스텔라님^^

stella.K 2023-08-03 12:27   좋아요 1 | URL
아, 더위에 니르바나님도 잘 지내시나요? 저는 근근히 잘 버티고 있습니다. ㅎ
그 노래 알죠. 누구는 소풍으로도 표현하던데 전 그 표현이 좋다 싶어요. 자기 할 일 다하고 가정만 잘 이끌어가도 칭찬받을만한 인생이죠. 뭘 더 바라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3-08-03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토너 완독과 리뷰 완성을 축하드려요.
저는 이 책의 리뷰를 쓰려고 벼르다가 쓰고 나면 진이 빠질 것 같아 오늘 100자평으로 올렸어요.ㅋ
읽다 보면 주인공이 좋아지는 소설이 있는데 스토너가 제겐 그랬어요. 이것도 작가의 능력일 듯.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stella.K 2023-08-03 17:11   좋아요 1 | URL
축하는요, 쑥스럽게ᆢㅋㅋ 그래도 언니 덕분에 읽을 수 있었어요.
스토너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예요. 전 일케 일희일비하지않고 과묵하게 자기할 일 하는 사람이 좋더군요. 바람 피운건 좀 거시기하긴 하지만. ㅋㅋ

2023-08-06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6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7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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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선한 면도 있을 텐데 어쩌면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그리도 악하고 교활한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이런 활어회 같은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게 또한 놀랍기도 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악만큼 자기 본성에 충실한 존재가 또 있을까. 보통의 작품이라면 인간의 선한 면이나 적어도 인간관계적 측면을 고려한 글을 쓸 수도 있을 텐데 이건 이기적이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성경엔 소돔과 고모라를 음란과 우상숭배로 타락한 도시로 묘사하곤 하는데 모르긴 해도 작가는 평대란 가상의 마을을 그렇게 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마르케스의 '백 년 간의 고독'으로 대표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구현해 낸다. 그래서일까? 어떤 등장인물은 죽었나 싶으면 어느 장면에서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삶과 죽음을 특별히 나누지 않고 언제든지 현실에서의 소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끼워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상상력이 더욱 풍부하고 확장된 느낌이다.   


평대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아귀다툼은 정말 악마적이다. 또 그런 만큼 이야기는 악마적으로 재밌다. 선이라곤 요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얼핏 춘희가 후에 에꾸에게나 혹은 교도소에서 별명이 간호사인 여자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그건 그저 연대의 의미일 뿐이지 그걸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그것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특이하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주요 인물을 남자로 하지 않고 여자로 했다. 남자 작가가 말이다. 뭔가 의도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것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즉 이 이야기는 못 생긴 노파와 금복과 그녀의 딸 춘희의 이야기다. 


특히 난 춘희라는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기도 아니 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악마적으로 자기 본성에 충실한 인물만 보다가 춘희는 뭔가 달랐다. 그건 확실히 작가의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작가가 춘희란 인물을 창조해내지 못했다면 이 작품은 그저 그런 범작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춘희는 적어도 악한 인물은 아니다. (아, 그런 인물이 더 있긴 하구나. 文이라는 금복의 기둥서방 겸 춘희에게 벽돌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 주는 사람과 금복과 의자매를 맺을 정도로 가까운 쌍둥이 자매 정도.) 한마디로 불쌍한 존재다. 금복이 춘희의 아버지는 좋아했지만 그 씨를 받은 춘희는 사랑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춘희는 벙어리에 살이 뒤룩뒤룩 찐 거구다. 그리고 머리가 나쁜 바보라지만 그 보단 자기 세계에 갇힌 자폐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이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건 그녀가 통뼈라는 것. 정말 의학적으로 증명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통뼈는 웬만해서 다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녀는 말을 못 하는 것 때문에 한때 방화범으로 몰려 교도소에 가야만 했고, 거기서 악의 실체와 바닥을 보아야 했다. 하지만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어서 장군의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 특사로 풀려나고 결국 대화재로 유령의 도시가 된 평대로 다시 돌아온다. 


여기서 춘희를 방화범으로 오인하도록 만든 평대의 대화재란, 금복이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여러 권모술수로 성공한 사업가가 된다. 게다가 여자에서 남자로 전환하기까지 한다. (여기엔 작가의 약간의 그럴듯한 설명과 이 이야기가 마술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썼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 대부분의 말로가 그렇듯, 성공하는 순간 몰락한다고 금복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건 또 창녀인 수련을 자신의 애인으로 삼으면서부터다.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하고 살아야 하는데 한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수련이 금복을 배신하자 삶의 의욕을 잃고 술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금복이 세운 극장(그녀는 칼자국에게서 영화를 접하기 시작해서 나중에 극장까지 세우는데, 작가의 초기 주요작엔 영화판에 관한 이야기를 을 자주 그리곤 했다. 이를테면 이 작품을 비롯해 '나의 삼촌 부르스 리' '고령화 가족'등)에서 누가 흘린 휘발유에 모르고 담배에 불을 붙이다 극장 전체를 불에 태워 금복은 물론 많은 인명 패해를 두고 평대의 대화재라는 것이다. (이것을 영상으로 봤다면 대단했을 것 같다.) 그 화재 이후 춘희는 극장에 와 봤을 뿐인데 경찰은 다른 사람은 다 죽었는데 혼자만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애꿎은 방화범으로 몬 것이다. 게다가 춘희는 말을 못 했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나는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금복의 생애와 최후를 보면서 역시 악의 속성은 속이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거라더니 그것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놀랐다. 그리고 글 쓰기 강의를 들으면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되는데 막상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춘희는 평대의 딸이다. 자신을 잡아다 참혹한 교도소 수형생활을 하게 만든 평대로 저주하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돌아온다. 돌아올 때 그녀는 교도소 수형복을 그대로 입고 있다. 그 마을엔 유일하게 그녀만 존재했기 때문에 다른 옷을 사거나 만들어 입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에 따라 그 옷은 무려 10년 동안 벗지 않아 찢어지고 해질 때로 해진다. 


아무튼 그런 곳을 돌아와 엄마의 가업이자 文 씨에게서 배운 벽돌 굽는 일을 한다. 그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그러다 어렸을 때 잠깐 만난 적이 있는 트럭 운전사가 평대에 오고 정분이나 임신을 한다. 트럭 운전사와 춘희의 관계는 상상하는 것처럼 비인간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람직하다. 그들의 관계의 첫 시작은 춘희가 만든 벽돌을 트럭 운전사가 외지에 팔아 주겠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차츰 춘희에게 옷도 사 주고, 먹을 거며 필요한 가재도구 등을 사주며 제법 부부 행세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트럭 운전사는 춘희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떠난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춘희는 본능처럼 아기를 낳고, 본능적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그나마 훗날 트럭 운전사는 마음을 돌이키고 춘희에게로 향하지만 눈사태로 눈 속에 파묻혀 죽고, 얼마 안 있어 아기도 죽고 춘희도 죽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20년을 훌쩍 뛰어넘어 웬 듣보잡의 한 건축가의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된다. 그는 한 건축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건물을 짓는데 벽돌 때문에 주최 측과 충돌을 빚는다. 그런 과정에서 춘희의 벽돌 제조 방식을 알게 되고 그것이 자신이 찾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웬걸 인걸은 간데없고 몇 장의 벽돌만이 남아있다. 그게 참 묘한 울림이 있다. 


같은 죽음이라도 금복은 악의 화신이면서 비극적으로 죽어갔지만 춘희는 모든 어려움을 이기며 생명과 희망을 죽은 후에도 우리에게 전해준다. 약한 것에 강함이 있다고 이것을 남자의 이야기로 했으면 어쩔 뻔했겠는가. 


작가는 서사를 다룸에 있어서도 남다르다. 이를테면 기존의 작가들은 기승전결에 너무 사로잡혀 그 틀에서 만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난 소설을 거의 안 읽었는데 요즘 작가들은 기성 작가와는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하지만 천명관 작가는 확실한 서사에 오히려 뒤에 가서 뭔가의 묵직한 울림을 줘 독자로 하여금 오랫동안 가슴에 감동을 머금게 한다. 


그것은 또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던 만큼 영화의 방식이기도 하다. 왜 영화도 잘 만든 영화는 감동을 최대한 지연시켰다 뒤에 가서 한 방을 터트려주면 관객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한동안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지 않는가. 


작가는 훗날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서 이와 같은 방식을 쓰기도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감방에 가두는 모순적인 방법을 취하므로 작품의 감동을 극대화시킨다. 사실 이건 말이 쉽지 거의 특기를 넘어 신기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또 신기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왜 그런 작가들 있지 않나, 글 쓰는 게 가장 쉬웠다며 등장인물이 말하면 자신은 그저 받아 적었을 뿐이라던 그 신기의 작가들. 그렇듯 일필휘지로 막힘없이 썼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작가는 시나리오를 썼다 소설로 전향했다. 모르긴 해도 시나리오를 썼을 때 보다 소설을 쓸 때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미 여러 번 다른 글에서 우려먹긴 했지만)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소설은 누구의  예술일까? 답은 나왔다. 작가(소설가)의 예술이다. 우린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 그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천명관 작가가 아닐까 싶다. 소설을 외면하는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겐 좀 자신감을 가져도 좋은 대목이 아닐까 싶다. 


지난봄 우리 문학계에 낭보가 전해졌다. 바로 작가의 이 작품이 영국의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 비록 수상까진 못 갔지만 그런 권위 있는 상에 후보만으로도 적지 않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확실히 외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술적 리얼리즘과 우리나라 현대사를 작가 특유의 문체로 녹여냈다는 점이 찬사를 받게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 개인적으론 먼저 읽은 '나의 삼촌 부루스 리'가 더 영화적으로 썼으며 더 애정이 간다. 

작가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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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7-20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이 달의 리뷰로 당선되기를 기대해봅니다.^^

stella.K 2023-07-20 10:08   좋아요 1 | URL
오, 정말요? 믿쑵니다. ㅎㅎ
사실 어떤 책은 넘 좋은데 리뷰 쓰기가 애매한 책들이 있어요. 특히 소설책들. 이 책도 좀 그랬는데 하나하나 생각을 모았더니 이렇게 썼네요. ㅋ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08-08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7-20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줄거리는 대충 건너 뛰며 읽었는데두요.
넘 정성들여 쓰신 느낌이 팍 듭니다.^^
작가를 애정하시는 마음이 아주 그냥....ㅋㅋㅋ
시간되면 꼭 읽어봐야겠어요.
상을 타진 못했군요? 아쉽지만 최종 후보까지 올라간 것도 상을 탄 거나 똑같은 영광이겠죠?^^

stella.K 2023-07-20 18:31   좋아요 1 | URL
아주 그냥ᆢ!ㅎㅎ 솔직히 내용은 마음에 드는 건 아녜요. 너무 악한 사람이 많이나오고 하루키처럼 섹스가 넘 많이 나오는 것도 좀 불만이긴 한데 창작 방식은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렇게 아수라장을 만들어 놓고도 끝에 가서는 뭉클한 엔딩도 좋고 능청스러운 개그도 마음에 들고 여러모로 배울게 많은 작가란 생각이 들어요. 책나무님도 어여 읽어보세요.^^

2023-07-20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1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7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7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7 15: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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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7 15: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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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9 14: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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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9 1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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