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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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작가를 광범위하게 쓰고 있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예전엔 소설가나 시인 정도에게만 그 이름을 허락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소설가나 시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퍼붓지 않았던가. 누가 장래 꿈이 뭐냐는 물음에 작가라고 하기만 해도 우와~! 하며 탄성 겸 환호를 했던 것 같다. 아직 되지도 않았고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멋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괜히 대대로 문(文)을 숭상했던 나라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소한 세 번 정도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한번은 아버지가 사춘기에 접어든 나에게 네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작가(더 정확히는 소설가)라고 했더니 와~~! 해 주셨고, 몇 년 후 학교 선생님이 물으시길래 그때도 똑같이 대답을 했더니 와~~!해 주셨다. 그리고 지금부터 한 10년 전쯤 어느 집사님이 나를 보더니 "와~~ 저 지금 작가 처음 봐요." 했다. (그때 그 집사님은 희곡 작가로 처음 본다는 얘기다. 나는 살다 보니 그렇게 됐고, 그나마 지금은 그것도 안 쓰고 있다.)


하지만 막상 작가로 살아 봐라. 작가가 어디 와~~만해서 되는 직업인가. 심하게 말해 요즘은 개나 소나 작가라고 하는 시대고, 길에 채이는 게 작가다. 책 한 권만 내도 작가라고 하고, 하다못해 자신이 뭔가의 글을 끄적이기만 해도 작가란다. 그건 아마도 SNS의 발달로 자신의 글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작가는 ~씨나 ~선생처럼 하나의 존칭어로 쓰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처음 대본을 쓰고 원고료라는 걸 받았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 지진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 내가 원고를 쓰고 고료를 받다니? 그럼 나 작가 된 거 아냐? 그때 얼마나 뿌듯했던지. 그때가 작가 지망생에서 작가로 등극하는 순간 아닌가. 신인문학상이나 신춘문예 등단만이 작가가 되는 건 아니다. 이런 자본주의 세상에서 내가 글을 쓰고 만원 한 장이라도 고료로 받았다면 그게 바로 작가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노 개런티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그렇게 두질 않았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경험했을 줄 안다. 작가라고 와~~! 하는 사람들은 주로 작가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고, 작가를 좀 안 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작가를 속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작가가 돈 없이도 살아가는 무슨 명예직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코로나 전 나는 어느 공인된 기관에서 일 할 뻔했다. 근데 그곳에 총괄 이사라는 사람이 나를 보자 일 하나를 맡겼다. 무슨 일인지는 구구절절 쓰지는 않겠지만 한마디로 각색을 하라는 거다. 일을 받고도 좀 찜찜했다. 각색이 내 전문이긴 하지만 워낙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고 굳이 손볼 필요도 없는데 각색을 하라니. 그 저의가 좀 수상했다. 그래도 어쨌든 시키는 일이니 해서 넘겼는데 한 달이 가까워 오도록 원고료에 대한 얘기가 없다. 알고 봤더니 이 사람 머리에 구멍이라도 난 걸까? 깜빡 잊었다고 하는데 그는 내가 돈 없이도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사비를 들여서라도 고료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사비든 공비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그저 고료만 받으면 된다. 그런데 그는 끝내 고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느껴야 했던 자괴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때도 없고. 그런 일은 이전에도 있었고 후에도 있었다. 이름 있는 작가들도 그런 경험이 한 두 번 있었다고 하는데 말에 위로 아닌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나라는 도대체...


추석 무렵, 모 작가가 작가 노조를 만들 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 작가는 20만 원짜리 원고 쓰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 그 20만 원은 20년 전에도 20만 원이었다고 한다. 세상에 우리나라 작가들 미친 거 아닌가? 요즘 세상에 안 오른 물가가 없고 하다못해 우윳값도 오른 마당에 어쩌자고 20년째 20만 원인 걸 그냥 두고만 보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작가는 이슬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미국은 벌써 노조가 있어 작가의 인권에 조금만 위협을 느껴도 시위하고 난린가 보다. 얼마 전 챗GPT가 자신들의 일을 점령할 것 같으니까 시위하지 않던가. 우린 이제 작가 노조가 생겼다는 것도 아니고 생길 거라니 실제로는 언제 만들어 언제 활동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거 보면 미안한 얘기지만, 사람들이 작가를 명예직으로 보는 건 비작가들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그렇게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글 써서 돈을 안 벌어도 예전에 활동이나 쓴 작품으로 작가라고 불리기도 하니까. 20년 전에 우리나라 문단을 쥐락펴락했던 작가들 지금 뭐 하고 있는가. 그래도 그들은 작가다. 한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글만 써 가지고는 생활이 안 되니까 과외로 일을 해서 충당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앞서 말한 총괄이사처럼 작가에게 돈을 안 주는 것에 대해 별 죄책감도 없다(그는 심지어 나한테 큰 소리로 야단까지 치려고 했다. 똥 싼 놈이 성낸다더니). 너 이거 아니어도 돈 벌지 않니? 안 번다고? 너 참 희한하구나. 어떻게 글만 써서 돈 벌 생각을 하니? 뭐 이런 식이다. 게다가 이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과외로 하는 일이 때론 원고료 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작가는 명예란 생각이 든다. 존칭어던가.


이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작가들 거의 대부분 개인주의자들이다. 이거야말로 좀 치명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건 곧 잘 뭉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원고료 20만 원이 언제 적 20만 원인지, 그걸 어떤 작가가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관심도 없다는 얘기 아닌가. 천성적으로 혼자 놀기 좋아하고, 안 그래도 자기 하는 일도 바쁜데 뭉쳐서 작가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마땅히 호소하거나 보호받을 창구가 없다. 난 하루속히 아니 몇 년이 걸려더라도 우리나라에 작가 노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또 그런 만큼 장강명 작가는 스스로를 '월급 사실주의자'라고 했다. 처음엔 장난스럽기도 하고 왜 이렇게 이름 지었을까 했다. 오히려 더 센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아서다. 요즘엔 통반장도 월급을 받는다. 박해서 그렇지. 하물며 작가가 월급을 받지 않는 데서야 말이 되는가? 하지만 월급은 고용관계에서 갑이 을에게 주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작가는 누구에게 받는단 말인가. 노조도 없는데. 그건 아무래도 샐러리맨이나 노동자처럼 더 이상 명예직 그만하고 글 써서 돈을 벌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월급 사실주의자가 아니라 '소득 사실주의자'가 더 맞는 표현 아닐까. 그걸 어떤 작가는 매문가라고도 했다. 글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


뭐가 됐든 그런 작가가 되려면 편하고 점잖아서는 안 되고 전사가 되어야 한다. 장강명 작가는 매일 8 시간 글을 쓰고, 그 밖에 취재와 강연 등으로 수험생 보다 더 바쁜 생활을 살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렇게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문득, 이 책을 누가 읽을까 궁금했다. 나야 예전에 작가의 연재물을 읽었고 책으로 나온다고 해서 내심 기다렸다. 나는 '소설가(작가)'를 페티쉬에 가까울 정도로 애정 하니 이 책만큼 관음증을 충족시켜 주는 책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소설가에 대해 결코 부풀려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쳇말로 찌질이에 가까울 정도로 쓰고 있다.그건 작가가 정말 찌질이어서가 아니라 장강명 특유의 겸손한 문체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반인들이 읽는다면 결코 무조건 와~~!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좀 더 다른 차원에서의 와~가 나오지 않을까. 그도 소설가인 만큼 조금 춰줘도 누가 뭐라지 않을 텐데 박하다 싶을 정도다. 하지만 전직 기자인 만큼 객관성은 잃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소설가가 쓴 소설가에 관한 사회적 고찰 내지는 보고서 같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간간이 소개해 놓은 책을 읽는 유익도 있다. 그동안 제목 정도는 알고 있던 책을 읽어? 말아? 망설였던 책들이 몇 권 읽었는데 작가는 벌써 독파하고 리뷰를 한다. 그런 거야 여타의 작가도 흔히 하지만 소설가에 관해 얘기하면서 소개하고 있으니 묘하게 마음이 가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내가 전혀 모르는 작가를 소개 받고 좀 놀라기도 했다. (그건 주원규란 작가다. 그는 현재 목사면서 공산당 선언을 700번을 읽었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의 연재 글뿐 아니라 뒤에 그의 에세이와 지난날 어디선가 했던 작가의 강연록을 실기도 했다. 그중 내가 유심히 본 건 '타자도 되지 못한'이란 글이다. 이 글은 지난 2017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한 글이라고 한다. 그는 그 글을 통해 우린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짚으면서 작가들의 관심을 호소 아니 오히려 통렬하게 비판했다.


비근한 예로, 북한 출신 장진성 작가의 수기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를 영어로 옮긴 번역자는 작가에게 "왜 이제껏 어떤 한국인도 북한 현실을 문학작품으로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장진성은, 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는 북한 인권에 대해 (무관심도 아닌) 몰지각하며,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이가 더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소설로 쓰면 노벨상도 받을 텐데 그러고 있다고 했다(340p). 문득 비록 실각은 했지만 예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생각났다. 그게 어쩌면 그냥 했던 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장강명 작가는 지금까지 한국 작가들은 북한 인권에 대해 성명서나 선언문 한 번 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부끄러움을 넘어 놀랍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지금 출판계는 젊은 작가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장 작가도 지적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북한이나 통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 게다가 개인주의가 그토록 강해 자신들의 인권도 챙기지지 못하고 있는데 북한 인권이 가당키나 한가.


나는 장 작가가 알려 준 북한 문학이나 실정을 다룬 책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그랬더니 몇 권은 여전히 유통되고 있었지만 적지 않은 책들이 절판된 것으로 나온다. 나는 도무지 이런 책이 언제 나와서 절판됐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 책들이 한 번이라도 매스컴이나 서점 매대에(인터넷 서점 메인에) 봤다면 이해를 하겠다. 이건 독자의 무관심도 무관심이지만 서점이나 매스컴의 책임이 더 크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알아야 뭘 하지.


그러면서 새삼 문학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한 시대마다 그 시대를 풍미한 작품 성향이란 게 있다. 어느 시대엔 이념의 문제를, 어느 땐 노동문제를, 그것이 지나자 후일담 문학이, 그다음엔 자아와 성적 방황을 다루기도 했다. 그에 따라 작가들 저마다 그것을 쫓아 다른 듯 비슷한 글을 쏟아내고 희비를 엇갈리곤 했다.


무슨 글을 쓸 것인가는 항상 작가의 고민이고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역시 작가는 남들이 가지 않은 잘 알려지지 않는 길을 안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다 같이 아는 넓은 길을 가서 다 같이 잘될 수도 있겠지만 다 같이 망할 수도 있다. 더 정확히는 독자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오래전, 조경란 작가가 그런 말을 했다. 작가는 나쁜 사람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달리 말하면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소설가.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족속이란 거 안다. 하지만 때로 뜻있는 일에 목소리를 내고, 자신보다 공동체를 위할 줄도 아는 그런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겠지만.


몇 년 전, EBS에 나와서 열심히 글쓰기에 관한 강의를 했던 작가를 기억한다. 얼마나 열심히 강의를 하던지 얼굴이 벌게질 정도인 것을 보고 아, 이 사람은 작가에 진심이구나 했다. 내가 서두에 길에 채이는 게 작가라고 했지만 우리나라 전체 인구 대비 작가 그것도 소설가는 극히 낮다. 난 왠지 EBS에 나온 그와 이 책이 오버랩되면서 그는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소설가란 이런 사람들이라고 까놓고 얘기하면서 이 길로 초대하고 있는 전도자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진정한 전도자는 무조건 그 길이 좋고 복 받는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과 역경이 있을 거라고 솔직히 말한다. 소설가의 길이 뭐 그리 영화롭고 복되기만 하겠는가. 그래도 그 길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작가를 응원한다. 장강명 작가와 작가라는 직업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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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0-19 2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고야, 징글 맞게도 썼다. 이렇게 긴 글을 누가 읽는다고...ㅠ

2023-10-20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감 2023-10-20 09:06   좋아요 2 | URL
그게 바로 접니다... 저는 이 쪽 바닥을 잘 모르거든요. 해서 씁쓸한 이야기에 비해 재밌게 읽었어요. 그나저나 고료에 대한 부분은 좀 충격이군요....

꼬마요정 2023-10-20 10:42   좋아요 2 | URL
저요!!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고 씁쓸하고 또 그러네요. 작가는 아무래도 선비 같은 느낌이라 그럴까요. 글을 쓰는 건 뭔가 고급진 능력이라 그럴까요. 어쩌면 귀여니 이후로 아무나 작가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구요. 많은 생각이 드네요.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에 물질만능주의임에도 불구하고 돈 얘기는 또 천박하게 생각하니까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면 뭔가 큰 일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그런단 말이죠. 사실은 자기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게 아까운 거면서. 그러면 지가 쓰던가, 지가 다 하던가 그쵸? 나빠요!!!!

그나저나 대단하세요!! 희곡 작가라니. 멋집니다. 멋져요!!!

stella.K 2023-10-20 19:53   좋아요 3 | URL
속닥님/ 아고, 고맙습니다. 쓰다보니 그렇게 됐더라구요.
근데 그 무슨 민망한 말씀을. 속닥님의 글이 어때서요? 좋기만 하더만.^^

물감님/ 그러니까 처음엔 작가에 와~~! 하다가? 와, 정말? 그렇게 되죠? 세상 못할 짓이 작가질인 것 같습니다.ㅠㅠ 그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꼬마요정님/ 그러게 말이어요. 돈지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요구할 거 있으면 당당히 요구하자. 그러는데도 뒷통수 맞더라구요. 정신 바짝 차리고 글을 써야하는데. 희곡은 우연히 하게 된 거고 그냥 흉내만 냈습니다. 또 앞으로 쓰게 될까 싶기도 하고. 암튼 읽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초란공 2023-10-20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정보라 작가의 번역가 안톤 허님이 쓴 에세이도 읽어봤는데요, ’안톤 허‘도 국가 번역기관에서 아직 못받은 돈도 있다고 하는데요... 그러면 다른 문학번역가들은 어떨지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음악에서 모짜르트의 곡을 유명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면 ‘누구의 연주’라고 주목을 받지만, 원작 소설을 번역한 이는 주목을 제대로 받지 도 못하고, 영미권에서는 번역가 이름도 책에 잘 안써준다고 하더라고요. ‘문’을 숭상했던 나라에서 글쓰는 이는 투명인간이란 생각도 들고요. 대한민국에서 작가란, ‘원고료 한 번쯤은 안받아본 사람’으로 정의해야할 듯 합니다. ㅜㅜ 그런데 stella.K님.. 희곡 작가 셨네요!!! 저도 희곡 작가 처음 봅니다. 주변에 책읽고 글쓰는 사람이 없디보니^^

stella.K 2023-10-20 21:25   좋아요 1 | URL
와~ 이거야 말로 충격적인데요? 정말 영미권에선 번역가 이름도 안 써 주나요? 그에 비하면 그건 우리나라가 낫지 싶네요. 우리나라는 번역을 잘하면 잘 한다, 못하면 못 한다고 확실히 말하잖아요. 근데 번역료는 의뢰 받는 거라 확실할 줄 알았는데.
정말 큰 일입니다. 작가들의 뭔가의 결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런 얘기 마구마구 떠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누가 원고료 안 줬다고 창피를 주는 거죠.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언젠가 된통 당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래야 정신 차리지 안 그러면 작가를 봉으로 알아요. 정말 화 나내요.ㅠ

저도 제가 희곡을 쓰게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ㅎㅎ

yamoo 2023-10-20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가입니다..ㅎㅎ 미전에서 입상해서 작가라고 합니다요...ㅎㅎㅎㅎ

내가 처음 대본을 쓰고 원고료라는 걸 받았을 때가 생각이 난다....라는 문장을 보면서...스텔라 님이 예전부터 작가였음을 알았습니다! 원고료도 받고 대단하십다!!

stella.K 2023-10-20 19:58   좋아요 2 | URL
그러니깐요. 요즘엔 화가도 화가라 안하고 작가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작가는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짓다라는 뜻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뭐.
알아주셔서 고맙슴다. 원고료야 당연한 건데요 뭐 쥐꼬리 만해서 그렇지. ㅋㅋ

니르바나 2023-10-20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야말로 좋은 리뷰, 이 달의 리뷰로 추천합니다.^^

하여간 우리 사회에 총괄이사 같은 인간들이 문제죠.
공인된 기관에서 각색을 의뢰했다면 당연히 예산이 있었을 것인데,
아무래도 총괄이사라는 자가 스텔라님에게 갈 각색료를 떼어먹은 것 같습니다.
예산이 없었다면 확인차원에서 각색을 부탁드릴 때 무료 봉사를 말했어야지요.
하긴 저런 인간들은 자기가 받을 것이 있으면 악착같이 받아내는 족속이긴해요.

각색료 받을 때 까지 달라고 떼(?)를 쓰세요.
옛말에 아기가 울지 않으면 젖을 주지 않는다잖아요.

stella.K 2023-10-20 20:25   좋아요 1 | URL
오, 정말요? 니르바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따 논 당상입니다.ㅋㅋ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야 하는데 벌써 몇년된 일입니까?
당시에 끝장을 봐야하는 건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데
어찌나 가슴이 벌렁걸리던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어요.
제가 싸우는 걸 그다지 안 좋아해서. 누가 대신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ㅠ
앞으론 시작 전에 계약서를 받던가 아니면 가슴에 칼이라도 품고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안 그러면 말씀하신 것처럼 미친 척하고 그 앞에 자리 깔고 누워버리던가. 흐흑~

페크pek0501 2023-10-21 1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고료 인상이 되지 않는 건 저도 개선할 점이라고 생각해요. 글쓰기 노동의 대가치고 원고료가 너무 약하거든요.
노래방의 출현으로 모든 이들이 가수가 되더니 인터넷의 출현으로 모든 이들이 작가가 된 것 같아요. 사실 노래방이 사람들의 노래 실력을 향상시켰듯이, 인터넷도 사람들의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켰다고 봅니다.
스텔라 님은 일찍부터 작가가 되겠단 생각을 했군요. 훌륭합니다. 저는 성장기 때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미리 정해 놓은 사람을 보면 좋아 보입니다!!!

stella.K 2023-10-21 18:17   좋아요 1 | URL
아고, 그러면 뭐하겠습니까? 무명작가인 것을. ㅋㅋ ㅠ 근데 그런건 있는 것 같아요. 방황을 많이 안한다는 거. 물론 한때는 작가가 싫을 때도 있지만. 결국 돌아오는. 꿈은 없는 거 보다 있는 게 훨씬 좋은 거 같아요. 이루던 못 이루던지간에.^^
 

우리나라도 이제 본격적으로 뮤지컬 영화가 나오는 걸까? 작년에 유승룡, 염정화가 출연했던 <<인생을 아름다워>>가 나오더니 올해는 <<영웅>>이 영화로 나왔다.  

 

알겠지만, 이 작품은 뮤지컬 원작을 영화화 했다. 그동안 마음에만 있고 부담스런 공연료 때문에 보지 못한 관객들에겐 반가운 작품이 아닐까 한다. (나는 게을러서 개봉관에서 할 때도 보지 못했고 그나마 지난 추석 연휴 끝자락에 tv에서 다운받아 봤다.ㅠ)   


사실 영화의 메카인 미국의 허리웃도 뮤지컬 영화는 그리 즐겨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오래 전부터) 잊을만하면 한번씩 만들어 왔다. 왜 영화 감독들은 뮤지컬 영화 만드는 것에 인색할까? 지금까지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 영화를 보니 새삼 이해할 것도 같았다. 영화는 감독을 위한 예술 아닌가. 그런데 이미 잘 알려진 뮤지컬 작품을 영화화하니 특별히 감독이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카메라 앵글 정도 잡는 게 고작일텐데 그런 거야 촬영 감독의 몫 아닌가? 그런데비해 연극이나 뮤지컬은 배우의 예술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조차 배우가 빛난다. 감독으로선 좀 김빠지는 작업 아닐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니 실제와는 다를 수도 있다.)



개그맨으로 시작해서 간간히 드라마에 출연했다 뮤지컬 <<영웅>>에서 제대로 낚인 정성화는 이제 완전히 안중근의 페르소나를 자처한듯도 하다. 대체 이 배우 외에 누가 안중근을 맡을 수 있을까. 그래서일까, 정성화는 아직 이미지 변신을 할 생각이 없는가 보다. 이 작품외에 다른 작품엔 일체 나오지 않고 있지 않은가. 훗날 그가 이 역을 맡지 않거나 더 이상 공연되지 않는다면 모를까 그는 온전히 안중근으로 살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는 뜻과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를 때 얼굴이 벌개지도록 심줄까지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영화가 하는 일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또 그런 점에서 정성화는 대체 불가능한 배우다. 편집 또한 훌륭하다.(영화는 역시 편집의 묘미 아닌가.) 


작품을 떠받드는 조연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도 정말 볼만하다. 암울한 우리나라 근대사를 다룬만큼 자칫 슬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텐데 시종 유머를 잃지 않고 있어 의외로 즐겁게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안중근의 어머니 역을 맡은 나문희 배우의 연기를 눈여볼만하다. 그다지 비중이 큰 건 아니지만 영화가 거의 종반무렵에 아들이 입을 수의를 만들면서 음정이고 박자고 무시한 오직 한 곡의 노래만을 부르는데 그게 참 작지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장면을 보고 있는데 눈에서 무슨 액체가 떨어지더니 기어코 얼굴을 적신다. 그러면서 노래를 잘 못 부르고도 뮤지컬 배우가 될 수도 있는 거구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실제로 나문희 배우가 그렇게 노래를 썪 잘 부르는 배우는 아닌 걸로 알고 있다. ㅋ


예전에 뮤지컬은 그렇게 환영 받는 장르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2000년을 넘어오면서 뮤지컬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르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뮤지컬 작품이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미국 같은 경우 7,80년전에 <<쉘부르의 우산>>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뮤지컬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자기 분야만 고집하지 말고 이제라도 뮤지컬 영화에 관심을 갖고 모쪼록 뮤지컬과 영화가 잘 소통하고 협업했으면 좋겠다. 

  

또한 아직도 고국에 묻히지 못하고 이국을 떠돌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고국에서 안식할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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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0-13 2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성화배우가 나온 뮤지컬이 훨씬 더 좋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뮤지컬보다 훨씬 더 스케일이 크고 더 많은 걸 넣었지만 압축미가 뮤지컬에 비해 덜했고 아무래도 상업성이 있어야하니 코믹을 더 많이 넣었더라고요.

어쨌든 영웅은 안중근 열사의 스토리라 뮤지컬이든 영화든 뭉클했어요.

stella.K 2023-10-14 20:08   좋아요 3 | URL
오, 페페님은 이 작품의 진정한 매니아시군요!
당연 생라이브가 주는 감동이 최고죠.
그런데 관람료가 장난이 아니라면서요?
이럴 때 영화로 나와줬으니 영화로 보는 것도 좋은 듯해요.
아무래도 영화는 실사가 주는 잇점이 있죠.
장소의 제약도 안 받고.
또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볼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서로 윈윈하면 좋은 거죠.
저도 지금부터라도 돈을 좀 모아야할 것 같습니다.^^

미미 2023-10-14 20:59   좋아요 3 | URL
저도 앞으로 페페님이라고 할래요! 어감이 너무 좋네요>.<

페넬로페 2023-10-14 23:37   좋아요 2 | URL
저의 애칭은 이제 페페이어요^^

책읽는나무 2023-10-15 22:12   좋아요 1 | URL
페페님♡

yamoo 2023-10-14 1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웅은 버스 옆면 광고에서 오래 전에 봤습니다. ‘오래 전‘이라봤자 올 해 봄 정도?? 근데 이게 뮤지컬 영화였나보네요. 레비제라블이 유명한 뮤지컬 영화였는데,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전 뮤지컬 영화가 영~ 별로에요.

뮤지컬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 장르라는데...저는 별로 동의하지 않아요. 뮤지컬을 즐기는 사람들은..보면 가는 사람만 계속 갑니다. 좋은가 봐요. 저는 가성비가 별로여서 안갑니다. 영화도 비싸다고 생각하는 넘이라...영화 가격도 말도 안돼게 올라 영화관에 잘 안가게 되더라고요..

영화에 비하면 뮤지컬 입장권은 ㅎㄷㄷ 합니다..^^;; 남성보다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을 거에요. 좋아하는 분들보면..

어쨌거나 저도 영웅을 볼까 했는데, 뮤지컬 영화라 패쑤할까 합니다~~
근데 스텔라님은 좋으셨나 보네요..^^

stella.K 2023-10-14 20:18   좋아요 1 | URL
저런, 야무님 꼭 할배 같으십니다.ㅋㅋ
뮤지컬 한번 빠지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텐데요.
뭐든 한번 정을 붙여보십시오. 미술처럼.
공연도 영화처럼 종합 예술이죠.
거시적인 안목에서 그림 그리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그나마 영화로 나와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조금 부지런했으면 극장에서 보는 건데 후회하고 있습니다.ㅠㅠ

yamoo 2023-10-16 11:35   좋아요 1 | URL
무지컬 오페라 몇번 가봤는데 영~~ 저하고 안맞더라구요. 오페라가 갠적으론 더 낫긴한데 뮤지컬보다 ㅎㄷㄷ한 티켓값.. 이 가격이면 탁구라켓 근사한 거 하나 구입합니다..ㅎㅎ

미미 2023-10-14 21: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찜해두었었는데 스텔라님이 나문희 배우님에 대해 언급하신 내용에 더 궁금해집니다. 고가라 저도 잘 못가는데 이렇게라도 다 영화로도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stella.K 2023-10-15 11:55   좋아요 2 | URL
공연료가 엄청 많이 올랐더군요. 안 오른게 없어요.ㅠ 그나마 영화로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ㅠ 아무래도 공연 관람계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ㅋㅋ

니르바나 2023-10-15 1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에게 뮤지컬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입니다.
영웅도 좋은 작품이군요. 한번 찾아서 봐야겠어요.
영화랑 공연이 주는 감동과 비교가 안되겠지만
비싼 공연 보려고 하면 그값이면 책이 몇권이지 묻다가 세월만 갑니다. ㅎㅎ

stella.K 2023-10-15 19:36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사운드 오브 뮤직!
잊고 있었네요.ㅠ
영웅 아직 안 보셨군요. 강추합니다.
공연은 정말 넘 비싸서 서민들이 잘 안 보게되는 것 같아요.
아쉬운 일이죠. 사실 알고 보면 소극장 공연도 많이 하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미디어는 큰 공연 위주로만 다루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생각 안할 수 없는 것 같아요.ㅋ

책읽는나무 2023-10-15 2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년 겨울인가? 올 초였나? 애들 방학 때 저는 영화로 봤었습니다.
뮤지컬 원작이다 보니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아무래도 배우들의 연기력이 압권이다 보니 절로 빠져서 봤었네요.
정성화 배우는 참 대기만성형이에요.
예전에 ‘카이스트‘ 드라마를 생각해 본다면 과연 지금의 정성화를 상상하기 힘들었...^^
정말 매력 넘치는 배우에요.
나문희 배우의 노래도 말씀 하시니까 생각이 납니다. 저도 나문희 배우의 바느질하며 노래 부르던 장면에서 좀 울었네요.^^;;;
어떤 예능에서 나문희 배우님과 김영옥 배우님 두 분이 각자 독창을 하시던 장면이 있었는데 그 때도 울었어요. 읊조리듯 조용하게 노래를 부르시는데 가사가 너무 와닿는 거에요. 노배우들이 조용하게 노래를 부르면 그 울림이 참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암튼 뮤지컬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영화로라도 볼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아요. 영화보고 나와서 가슴이 벅차 서점에 달려가 <하얼빈>도 샀었는데....집에 오니까 갑자기 흥이 떨어져 책장에 꽂아만 뒀습니다.ㅋㅋㅋ

페넬로페 2023-10-15 23:28   좋아요 2 | URL
‘뜨거운 싱어즈‘, 보신거죠?
저도 넘 좋게 봤어요.
김영옥, 나문희 배우의 저력을 봤고 저도 저렇게 늙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나문희배우가 조마리아역에 넘 어울렸어요^^

책읽는나무 2023-10-16 09:26   좋아요 2 | URL
제목이 ‘뜨거운 싱어즈‘였던가요?
제목도 모르고서 잠깐 유튭에 짤막하게 뜨길래 봤었어요.
나문희 배우님은 후배들에게 존경받으실만 하신 것 같아요. 한없이 겸손하게 베푸는 사람으로 유명하시더군요.
요즘은 윤여정 배우, 김혜자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리고 ‘밀라논나‘ 할머니의 유튭 영상을 보면서 나의 노후를 그려봅니다.
저도 저렇게 늙고 싶다고 늘 생각하며 조금씩 뭔가 달라져야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뜨거운 싱어즈‘ 좀 더 찾아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ㅋㅋ

stella.K 2023-10-16 09:59   좋아요 2 | URL
오, 뜨거운 싱어즈란 프로가 있나보죠? 저도 함 찾아봐야겠네요. 우리도 곧 노후가 될텐데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이 영화 보고 하얼빈을 읽어야하나 생각했는데 책나무님 얘기 들으니 섣불리 사면 안 되겠군요. ㅋㅋ 예전엔 김훈 작가의 책도 곧잘 읽었는데.ㅠ
아, 근데 정성화가 카이스트에 나왔나요? 저도 그 드라마 봤는데 기억이 없네요. 😂

책읽는나무 2023-10-16 20:27   좋아요 2 | URL
정성화 카이스트에서 좀 괴짜 학생으로 나왔었어요.
재미나고 웃겨서 기억에 많이 남아있어요.
근데 아까 잠깐 찾아보니까 김주혁도 나오고 이나영도 나왔다던데 그분들은 기억이 전혀 없네요.ㅋㅋ
전 이민우랑 채림 그리고 이은주, 김정현, 정성화만 기억납니다.
엄청 재미나게 봤던 드라마였던지라..^^

페크pek0501 2023-10-18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 뮤지컬을 봤는데 볼 만했어요. 그런데 상영 시간이 길더군요. 중간에 한 번 쉬고 할 정도였어요. 내용을 압축해서 줄였으면 했답니다...

stella.K 2023-10-18 14:37   좋아요 1 | URL
그랬군요. 요즘 뮤지컬 보통이 두 시간 반 세 시간 뭐 그렇게
하지 않나요? 프랑켄슈타인도 2시간반인가? 거의 세 시간했던 것 같아요.
중긴에 인터미션 20분 하고. 관림료 비싼데 본전은 뽑아야죠.ㅋㅋ
영화는 2시간쯤 하던데요? 그래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전 좋았어요. 다운 받고 볼 수 있는 기간이 7일이던데
그안에 한 번 정도 더 볼 수도 있는데 그러질 못해 후회했습니다. ㅠㅠㅋ
 
조선 청소년 이야기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3
김종광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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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각색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정말 각색을 통하지 않으면 못 읽을 것 같다. 조선의 고소설을 원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자가 아니면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물론 그것을 현대어로 풀어서 쓸 수도 있겠지만 각색은 그보다 더 나아가 작가의 상상력과 등장인물에 더 많은 비중을 두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요즘의 언어 감각을 최대한 살리면서 등장인물을 더 적극적이면서 실존적으로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난 처음에 이 책을 읽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래도 책 제목도 그렇고 나 같이 청소년기를 지나도 한참 지나 온 사람이 과연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모처럼 무슨 동화 모음집을 읽듯 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이 책은 특징이 있었다. 민담이나 설화 전기 등에서 뽑았는데 모두가 화자 내지는 주인공이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하긴 옛날엔 청소년이 따로 없었다. 대충 15,6세만 해도 혼례가 가능했으니 당시론 젊은이들을 위한 교훈 집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좀 놀라웠던 건, 조선사회라면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해 있을 텐데도 작가가 지나치게 부풀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자를 적극적이고 실존적으로 그렸다. 이쯤되니 내가 조선사회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나 의문스럽기까지 했다. 각색이란 것도 원문을 바탕으로 했을 것이니 나 같이 귀가 얇은 사람은 과연 그런가 싶기도 하다. 12편 다 얘기할 할 수는 없고 몇 편만 소개해 보면, 


첫 번째 수록작 '내 남자는 내가 선택한다'는 <<이조 한문 단편집>>의 '정기룡'을 다룬다. 정기룡은 실존했던 인물로 관노비였지만 훗날 훌륭한 육군 장수가 되었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란 노래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운명의 시작은 어느 노인에게 무예를 배워 군대에 징집되면 시작이 되는데, 이야기는 또 어느새 전주 관아에 이방의 딸의 이야기로 바뀌어 정기룡을 사모하여 결혼하게 된 과정을 전하고 있다. 조선의 봉건 사회에서 딸은 당연히 부모가 맺어준 사람과 혼인해야 하는데 참 당차다 싶다.


두 번째 수록작은 <<동야휘집>>에 '채교거랑 책귀자(한자는 이 책에서 확인할 것)' 즉 신행 온 부인이 행랑에 앉아 귀한 아들을 꾸짖다란 뜻으로, 몰락한 양반의 어린 신부가 자신의 할아비 뻘 되는 양반집에 시집을 가게 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늙은 신랑은 무슨 이유에선지 장인의 집에서 초야를 치르고 다음 날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소박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어린 신부는 귀신이 되어도 남편의 집에서 귀신에 되야겠으니 아버지의 힘을 빌려 꽃가마를 타고 늙은 남편의 집으로 간다. 그러고는 남편의 집에서 전처의 두 아들을 다짜고짜로 꾸짖는다. 자신이 비록 그들의 서 모이긴 하지만 그들의 어미가 됐음을 가르치며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다소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한 집안의 안주인의 역할을 잘하고자 하는 당찬 의지가 엿보인다.


'노래가 좋다'는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을 <<어우야담>>의 '명창 석개'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다. 석개는 굉장히 못생긴 노비다. 너무 못생겨 친구하겠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노래를 접하고 그때부터 실성한 사람처럼 자신을 사로잡아 버린다. 그때부터 그녀는 뭔지 모르게 노래만 들으면 넋이 나가 자주 일하던 손 놓을 정도가 되어버린다. 못생긴 외모 덕분에 온갖 핍박과 설움을 당하지만 굴하지 않고 특별한 선생을 만나 명창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랑은 공부다'는 <<계서야담>>에 나온 이야기로 계서 이희평이 편찬한 것아라고 한다. 세창은 양반의 자제로 과거 시험을 앞두고 있고, 자란은 기생의 딸로 이들은 어려서 친구처럼 자라다 이성으로 발전한다. 세창은 자란과의 인연을 끊고 과거 공부에 매진하지만 그럴수록 자란에 대한 그리움만 커져간다. 어느 날 자란이 너무 보고 싶어 있던 곳을 탈출하여 자란을 만나러 오지만 그녀의 엄마에게 문전 박대를 당한다. 그 과정에서 사랑도 공부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는 내용인데 얼핏 '춘향전'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시대에 여자가 뜻을 펼칠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어떤 모양과 형식으로든 그런 이야기가 보존되어 있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무엇보다 조선 후기 사회의 모습도 간간이 볼 수가 흥미롭다. 어느 시대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해 보인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건 마지막 수록작 '우울증을 이겨내는 방법'이다. 이것은 연암 박지원의 청소년 시절을 다룬 자서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로, <<방경각 외전>>에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썼다고 한다. 연암이 열두어 살 때 쥐젖을 알았다고 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쥐젖이란 사마귀 같은 것이 살에 돋아나는 피부병이다. 그는 이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알다시피 조선은 계급 사회이니 상놈은 상놈대로, 평민은 평민대로, 노비는 노비대로 할 얘기가 제각각이고 흥미로웠다. 그는 그것을 조금 조금씩 글로 쓰게 되고 나중엔 아예 대놓고 글을 써 우울증을 극복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사실 글 쓰는 과정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사망률에 높은 직업군에 작가가 들어가 있겠는가. 하지만 연암은 오히려 글쓰기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이는 작년인가 올 초에 연암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새롭게 안 사실로  역시 연암이다 싶기도 하다. 


요즘 청소년들 어른이 뭐라고만 하면 무조건 꼰대라는 말부터 하던데 이 책 보고 꼰대를 넘어 고리짝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기엔 나는 너무 편하고 즐겁게 읽었다. 안 읽으면 손해란 생각까지란 생각도 든다. 특히 여자 청소년들은 더더욱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여자들이 훨씬 더 많은 기회들이 있지만 말이다. 작가가 너무 여성을 의식한 것 같기도 하고. ㅋ 글자도 다른 책에 비해 큰 편이어서 편하다. 머리 식힐 겸 한 편씩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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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10-03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월의 좋은 책 리뷰로 추천합니다.
추석 잘 보내셨죠. 스텔라님^^

stella.K 2023-10-04 10:59   좋아요 1 | URL
네. 니르바나님도 잘 지내셨죠?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2023-11-11 02:04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의 선견지명!

축하드립니다. stella.님^^

stella.K 2023-11-11 18:43   좋아요 1 | URL
얄라님, 고맙습니다. 사실은 니르바나님은 장강명믜 소설가란 이상한 직업인가? 그것 좋다고 하셨는데 저도 이게된 거 보고 좀 의아했어요. ㅎㅎ

yamoo 2023-10-04 06: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이 각색에까지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저는 각색의 각자고 몰릅니다요..ㅎㅎ

이런 책도 있었네요. 이야~~

stella.K 2023-10-04 11:01   좋아요 1 | URL
ㅎㅎ 저는 뭐 어찌어찌 하다보니 관심이 생긴거고 창작이든 각색이든 그 세계는 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ㅠ

페크pek0501 2023-10-06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가 치유의 힘이 있긴 해요. 속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일기를 쓰고 나면 마치 그 일이 해결된 것처럼 속시원해지거든요. 글로 고민을 풀어낸 듯한 느낌이에요.
독서도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뭔가에 몰입해서인지 기분이 나아져요.^^

stella.K 2023-10-06 19:13   좋아요 0 | URL
그러니 독서와 글쓰기의 유익성을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안타까워요? ㅎㅎ
그런데 이게 또 직업이되면 적잖은 스트레스죠.
뭐든 다 그렇잖아요. 취미로 하면 좋은데 업이되면 부담스러운 거.ㅠ
근데 박지원이 10대 초반에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게 정말 놀랍더라구요.

2023-10-11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2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1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2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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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초판이 나온 이래 2022년 기준 110쇄까지 나왔다고 하니 이 책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젊을 때도 읽지 않았던 로맨스물을 이제야 읽는 건 저 통계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어떤 책이길래 110쇄...? 하는) 순순하게 책 읽는 재미를 느껴 보고 싶어서일 뿐이었다.


일단 작가가 물 흐르듯 막힘없이 글을 잘 쓴다. 무슨 단막극이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수채화 같기도 하다. 수채화가 같은 이야기가 그렇듯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착하고 밝은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공진솔도 좋지만 이건의 캐릭터가 마음에 끌린다. 꾸밈이 없고, 담백하고, 으샤으샤를 잘하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이런 캐릭터 흔할 것 같지만 사실 흔하지 않다. 설혹 있다고 해도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단점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내 차지가 되지 못하며 이미 누군가의 애인이 되어 있다는 점. 내가 로맨스물을 좋아하지 않는 데는 그 특유의 오글거림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남의 얘기 같아서다. 이 책도 봐라. 건은 진솔의 남자라는 걸 확인시켜 줄 뿐이다.


여기엔 크게 사랑에 대한 4가지 태도를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사랑에 빠져들지만 신중한 진솔. 사랑 같은 거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결국 사랑하게 되는 건. 사랑보다는 자유가 더 좋다고 하는 건의 친구 선우. 그런 선우를 언제나 무한히 기다리는 애리. 그런데 읽다 보면 왠지 애리와 선우는 진솔과 건의 페르소나 같기도 하고 어쨌든 뭔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건. 다 좋은데 때로 종잡을 수가 없다. 남한테 잔뜩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내가? 언제? 하며 발뺌하는 혼미한 스타일이기도 하다. 하긴 인간이란 원래 종잡을 수 없는 구석이 있다. 진솔이 좋아할 만한 짓은 다 해 놓고 심지어 진솔의 구애도 받고, 그 구애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더니 역시 건은 아직 진솔을 사랑할 마음이 없는가 보다.


어느 날 애리와 선우가 싸우는데 갑자기 끼어들어서 화를 막 내더니 애리에게 자기에게 오라며 진솔과 차곡차곡 쌓아갔던 연애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렇다. 건은 바보스럽게도 친구의 애인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진솔의 사랑에 미온적이었고. 아무리 애리에 대한 감정을 정리했다고 해도 불온하다. 거기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감정이란 건 마음의 작용이 아니라 뇌의 작용인지도 모르겠다. 그 작용이 정확히 인지한 대로만 작동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가격한다. 그때 상대도 당황하겠지만 본인은 또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고 세상이 얼음으로 변한 것 같다.


건은 어쩌면 어떤 부조리한 상황에서 트라우마가 건드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은 사랑하다 길을 잃었다. 단 한순간의 행동으로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이다. 그럴 때 내가 진솔이라면 또는 건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일단 책을 덮고 (또는 다 읽고라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솔직히 이들의 관계가 '여기서 돌아킬 수 없는 파국'이라면 얘기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계속 사랑할 마음이 있다면 위에서 말한 뇌의 작용, 쉽게 말하면 부조리한 상황은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벌어질지 모른다. 이번엔 건이지만 다음번엔 진솔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남녀의 사랑이라고 하지만 사랑은 정염, 즐거움, 애틋함, 그리움 뭐 이런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은 어려운 일이다. 바다를 가르고, 높은 산을 넘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일이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러는 것이겠지. 즉 관건은 그럴 때(마다) 관계의 회복을 위해 서로가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아닐까?


건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건, 자신이 그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진솔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물론 노력만 했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노력하다가도 어느 순간은 진솔을 포기한 것도 같다. 원래 사랑은 아니 세상의 모든 관계는 다 밀당 아닌가. 단시간 내에 뭔가를 결판내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건은 고단수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천천히 진솔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끌어오는 것이다. 어떻게 얻은 사랑인데 뇌의 순간적인 오작동으로 사랑을 잃어버리겠는가. 그러다 보면 상대도 자신의 사랑에 다시 한번 기회를 줘봐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책에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기원했는가 보다.


이 책이 나온 지도 내년이면 20년이 된다. 그동안 (작가의) 건이와 진솔의 기원이 변함없이 이루어졌을까? 아직도 우리의 사랑은 조금의 잘못도 용납하지 못하고 헤어지니 마니하며 유아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사랑하면 헤어지는 게 목적인 양 빨리 만나고, 빨리 헤어져 온 것은 아닐까. 거쳐야 할 뭔가의 단계를 훌쩍 뛰어넘고 결국 혼자가 되는 것이다. 그 얼마나 사랑을 소모적으로 하는 것일까. 또는 그와는 반대로 연애에 실패만 해 오다가 귀찮아서 다시 시작도 못하는 건 아닐까. 모르긴 해도 이게 갈수록 가속화되지 느려지거나 완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미디어의 영향도 클 것이다. 짤 영상을 그리도 많이 보니 사랑도 짤로 하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이런 잘 쓴 로맨스물 그것도 4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만약 읽는다면 말이다.


내년이면 20년.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비결이 뭔지 궁금하기도 하다. 왠지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도 들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리 오래지 않은 느낌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썼을 때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진솔과 엇비슷하지 않았을까. 원래 작가들은 자신의 현재의 나이를 등장인물에게 투영을 잘 하는 법이니까. (더구나 이 책이 작가의 데뷔작 아닌가.)


초반에 진솔이 아직 건을 사랑하기 전 무슨 말 끝에 이런 말을 한다. 나이 먹어서 사랑이 힘들어지는 건 남자 여자라는 정체성이 점점 사라지고 더 이상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본능이 없어져 가기 때문이라고. 글쎄, 정체성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모호해진다고 해야 맞는 말 아닐까? 아무튼 나도 한때는 작가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작가도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나이 들면 연애 세포가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주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것도 언제 어느 때 불쑥 나타나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지 알 수가 없다. 앞서 말했던 건이의 실수처럼 말이다. 그래도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건 지킬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가정이나 쌓아 온 명예, 권위, 신망 등. 게다가 꼰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도덕과 윤리까지 생각해야 한다. 언제까지 사랑 하나에 목숨을 걸 수 없다. 젊었을 땐 그래도 된다. 그래야 좋은 유전자를 남길 테니까. 하지만 나이 들면 그보단 인류애, 전우애, 자바와 긍휼 등으로 확장된다. 그것도 분명 사랑은 사랑이다. 그게 하찮은가? 대신 그들에겐 중후미라는 게 있다. 이건 절대로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가꾸고 다듬어야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나도 기원하고 싶다. 이들의 이런 사랑도 무사하기를. (아,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기를. 나이 든 사람도 정열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작가의 사랑도 무사하기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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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9-25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애세포 나이와 반비례로 줄어드나요?^^,,,사실 물음표 문장이지만, 이미 긍정하고 있는 슬픈 냉담^^;; 세포를 돌려다오 하고 싶습니다 ㅋ

stella.K 2023-09-26 09:41   좋아요 1 | URL
ㅎㅎ 얄라님 뭐 어때요 줄어들면. 제가 저기에 생각이 안나서 못 쓴 단어가 있는데 확장적이란 말입니다. 우린 연애 세포가 주는대신 인류애, 전우애, 자비와 긍휼 뭐 이런 쪽으로 획장되어져 나가고 있는 겁니다. 으하하~

얄라알라 2023-09-26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네 읽었었어요 긍휼이라는.단어를 진짜 오랜만에 보면서 어제.살짝. 위안^^ trade off 가.인간의.감정계에도 있나봐요 연애대신 인류애로.차원바꾸기 ㅋ

stella.K 2023-09-26 10:07   좋아요 1 | URL
아, 그래도 좀 서운하다 싶으면 이런 로맨스 영화나 소설 보는 걸로 대리만족해야죠 뭐. 가끔 에로틱한 것도 봐 주면서. 다 사는 방법이 있어요. ㅎㅎ

2023-09-26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23-09-26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0쇄, 20년의 기록을 가진 소설이라니 정말 대단합니다.
일단 조세희 소설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최인훈의 <광장>이 떠오르는데
그 외에 100쇄 이상 찍은 책들로 또 뭐가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스텔라님, 생각나는 책 있어요.

stella.K 2023-09-26 18:09   좋아요 1 | URL
설마 그 생각 나는 책이 제가 생각하는 그 책은 아니죠? ㅋㅋㅋㅋ
난쏘공은 읽었는데 광장은 안 읽었네요. 100쇄 이상인데도.ㅠ
추석 잘 지내십시오.^^

2023-09-27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27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3-09-27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20년 동안 110쇄라니 대단한데요!!
전 완전 몰루는 책인데....저자두 완전 몰랐구요..ㅎㅎ
100쇄 이상 찍는 한국 소설은 정말 손에 꼽는데....서정인의 혼자뜨는 달도 100쇄를 못 넘겼을 거 같은데...암튼 이런 책이 있었다니..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랑 얘기인듯해서 저는 패쓰하렵니다. 이런 책도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페이퍼를 읽은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stella.K 2023-09-27 20:00   좋아요 0 | URL
이 책 오래 전부터 나름 유명합니다.
저도 로맨스물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하도 유명해서
이번에 거의 충동구매했습니다.
그냥 무난한 것 같아요. 출간 당시 드라마로 만드냐 마냐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 드라마로 만들기는
때가 늦었죠? 이미 이만하거나 이 보다 더 괜찮은 로맨스물이
만들어졌을테니. 하지만 이 정도라면 책의 기세는 꽤 오래 가지않을까
싶네요.^^

희선 2023-09-28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자기 책이 오래 사랑 받아서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읽어 보기는 했지만 다 잊어버렸네요 예전에는 라디오 방송 주소가 사서함이었죠 저는 라디오 방송 때문에 봤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도 라디오 듣는군요

stella.K 님 명절 잘 쇠시고 연휴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3-09-28 20:16   좋아요 0 | URL
앗, 사서함 110호가 그뜻이었나요?
그렇지 않아도 이 제목의 뜻이 뭘까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책을 잘못 읽었나 봅니다.ㅠ
근데 110쇄라니 뭔가 절묘하지 않습니까?
작가가 방송작가라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쓰는 것 같아요.
딱히 제 스탈은 아니지만...ㅎ

네. 희선님도 행복한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2023-10-01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01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02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의 엔딩 크레딧 이판사판
안도 유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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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맨 마지막 글은 역자의 글 아니라 삼송 김 사장의 글이다. 출판사 사장 말이다. (전에 마포 김 사장 아니었나? 아무래도 삼송으로 이사 가서 고친 모양이다.) 그 글의 제목은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의외로 작가도 모른다"다.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좀 오래된 이야기긴 하지만, 나는 오히려 작가가 되어 책을 내보니까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겠더라.


나의 경우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정리해서 낸 것이긴 하지만 말이 좋아 정리지 책으로 낸다고 하면 그건 거의 새로운 작업이 된다. 뼈대만 놔두고 모든 것을 다 뜯어내고 새롭게 하는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거기엔 새로운 아이디어와 콘셉트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이를 통해 작가가 글만 잘 썼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정도 기획력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래서 작가들 중엔 출판 관련 일이나 아예 출판사를 차리기도 하는구나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교정지를 받을 때이다. 작가가 자기 글이 쓰인 교정지를 받는다는 건 잘못된 문구나 오타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솔직히 작가가 이런 일도 해야 하나 0.5초쯤 생각해 본 것 같다. 원고를 넘겼을 때도 이미 여러 번 다듬고 고친 건데 또 고쳐야 하다니. 그런 건 편집자나 교열자가 하는 거 아닌가 했다. 물론 그들도 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데 직접 글을 쓴 사람이 이걸 또 안 할 수 있나. 그만큼 오타를 바로잡거나 문장을 다듬는 건 3중 4중으로 협업한 결과다. 물론 그러고도 막상 책이 짠하고 나오면 오타는 여전히 발견된다. 그때 알았다. 오타는 물귀신과 같으며 오타율 0%의 책은 없다는 걸. 대신 왜 이 문장을 고치지 못했을까 하는 이불킥만 남는다. 어쨌든 그때부터 난 책 읽다가 오타가 발견돼도 그냥 넘어간다. 그전엔 어림도 없었다. 출판사 직원도 아니면서 과부 사정 과부가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뿐인가? 커버 디자인은 어떻게 할 거냐, 어떤 크기로 할 거냐 글씨체는 뭘로 할 거냐, 심지어 페이지도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책도 그렇고, 삼송 김 사장도 그렇고 페이지는 숫자 몇의 배수로 정해진다며 책의 공식을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대부분의 책의 페이지 수는 백지를 포함해서 16의 배수로 되어 있습니다. <<책의 보물상자>>도 288페이지. 16의 배수죠.(457p)" 이런 식이다. 나의 책도 백지를 포함해 끝자리가 짝수로 끝났다.


게다가 명도니 조도니 막 이런 얘기까지 나오면 이건 좀 나의 한계를 넘어가는 일인 것 같아 그때부터는 '네, 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알아서 잘 좀 해 주십쇼.' 굽신거리게 된다. 솔직히 출판사에서도 그런 걸 알려주는 건 그냥 작가를 존중해서지 나의 허락을 받겠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의견 제시는 할 수 있다. 단지 반영이 될 것이냐 아니냐는 어디까지나 제작 측의 소관이다. 사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 하는 건 출판사가 더 똥줄 타는 문제지 작가는 원고만 넘겨주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작가보단 독자였던 때가 더 많으니 아무래도 커버 디자인엔 신경이 좀 쓰이긴 하더라. 아무리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장정이냐에 따라 그 책을 살지 말지가 결정되기도 하니 그건 당연하다. 물론 그 커버에 어떤 문장을 실을 것이냐도 관건이긴 하다.


원고료도 그렇다. 막상 책을 내도 1쇄가 다 팔릴 것 같지도 않고, 누구는 자비 출판도 한다던데 이렇게 원고료까지 받고 내 책을 팔아주기까지 한다니 오히려 원고료는 사양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원고료 대신 자신의 책으로 교환하기도 한다던데 내가 그렇게 주는 돈도 안 받을 만큼 청빈한 사람은 못 되는지라 받았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초짜 작가들이 대부분 취하는 자세 아닐까. 책을 두 번, 세 번 횟수가 거듭될수록 서로 요구하거나 갈등하는 것도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시절엔 작가는 어느 정도 신비주의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냈다고 하면 여기저기 불려 나가야 한다. 하긴 작가만큼 확실한 마케팅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작가나 그렇지 나 같은 사람은 어디 불러주는 데도 없다. (난 이게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좀 낯가림이 있어서 부담스러웠다. 출판사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겠지만.) 딱 한군데 어느 방송국에 인터뷰 외엔. 그나마 그곳은 출연료는 없었다. 방송국이 좀 후져서 그렇지 그래도 나름 유병한 방송국이었다. 그쪽으로선 오히려 우리 같은 방송국에서 불러 주는 걸 고마운 줄 알아라는 뭐 그런 뜻 같은데 그래도 이건 뭔가 상도덕은 아니지 싶다. 물론 사전에 출판사에서 그 점을 짚어주긴 했다. 인터뷰나 독자와의 만남에 불려 나가면 출연료를 주는 것도 있고 안 주는 것도 있는데 그런 것 때문에 시험에 들지 말라고. (내가 출판사만 아니면 그 방송국을 아주 그냥...) 어쨌거나 그런 것을 볼 때 이 시대의 작가들은 글만 쓰면 안 되고 사람 만나는 걸 기본적으로 좋아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작가가 책을 내 보면 출판에 대해서 막연한 걸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출판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인쇄에 대해선 내가 거의 알지 못했구나.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건 왠지 내 영역 같지가 않아 그냥 네, 네하고 넘어간 게 좀 후회가 된다. 종이책이란 물성을 좋아하니 그때가 아니면 내 책이 어떻게 인쇄되어 나오는지 모르는데 괜히 나댄다는 느낌을 줄까 봐 그것까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책에 대해서 모르는 건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독자라고 생각한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독자는 다시 말하면 책 소비자다. 무엇이 됐든 소비자는 물건의 생산 과정을 속속들이 다 알 필요는 없다. 소비자는 말 그대로 그 물건이 소비만 하면 그만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독자가 책의 생산 과정을 시시콜콜 알 필요는 없다. 독자는 그저 그 책이 좋은지 나쁜지만 판단하면 그만이고, 부지런하면 SNS 같은 곳에 리뷰라도 남기고 그도 귀찮으면 안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바로 이 독자와 출판사의 괴리가 출판 시장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현대 사회는 분업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기 분야 외엔 관심이 없고 서로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현저하게 낫다. 독자 없이 책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책 없이 독자도 없다. 이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해의 문제다. 우리는 모르면 관심이 없거나 쉽게 비난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출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판사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굳이 알리려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책만 만들어 낸다. 그건 아마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갖는 좋게 말하면 장인 정신 그런 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말이 좋아 세계 10위안의 출판 강국이지 출판이 얼마나 외로운 직업인가. 일반 가정에서 도서구입비는 지출 목록에 끼어 본 적이 없다. 그건 누군가의 용돈에서 쪼개서 쓰는 것이지 당당히 이름을 올릴 지출 항목이 아닌 것이다. 또 이것이 출판의 고립를 더 심화시켜 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도 출판 과정에 대해 관심 있고 애정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책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 훨씬 늦게 나왔겠지. 몇 년 전부터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연예 매니저의 일상을 다루는 프로를 보여주면서 연예 매니저란 직업이 급부상했다. 그런 것처럼 출판사도 그렇게 알려졌다면 조금 더 대접받고 출판 꿈나무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렇게 출판의 전 과정을 그것도 소설로 보여주는 책이 이전에도 있었나 싶다. 물론 이 책이 출판 안팎의 인식을 얼마나 바꿔놨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좀 흥미로웠다. 얼핏 들으니 작가의 적지 않은 취재와 집필 과정이 있었던 걸로 안다. 이 책엔 출판인으로서의 애환과 고민이 그대로 녹아져 있다.


하지만 차마 재미있다는 말은 못 하겠다. 출판사가 장르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 줄 아는데, 스릴러나 미스터리를 기대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냥 평이한 다큐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오히려 에세이로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중국은 걸상만 빼놓고 모든 것을 요리로 승화시킨다던데 일본은 모든 것을 소설로 승화시키는가 보다. 그 도전정신은 좋은데 재미는 보장할 수 없다. 읽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엔딩 크레딧은 영화가 끝나면 배우를 비롯해 제작자들의 이름이 화면에 스르르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야 영화가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이 엔딩크레딧을 유심히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쨌든 그걸 책 제목으로 썼다. 원래 책에 해당되는 말은 '판권'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가져와 썼다. 솔직히 액면 그대로 판권이라고 했으면 얼마나 팔렸을까 싶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은 무슨 무술의 하나인가 했을지도 모르겠다. 판권이 일상에서 그리 쉽게 쓰이는 단어는 아닐 듯하니 말이다.


나도 책을 사면 판권을 보기는 한다. 하지만 다 보지는 않는다. 출판 연도와 몇 쇄인가를 확인하는 정도다. 작가나 번역가의 이름은 애초부터 나와있는 거고, 출판사 사장 이름이나 이메일, 전화번호 이런 건 언감생심이다. 삼송 김 사장도 이름이 재밌으니까 기억하는 거지 본명을 썼다면 특이하지 않은 다음에야 기억도 못 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영화에서의 엔딩크레딧, 책의 판권을 알 필요가 있을까? 의무는 아니지만 필요는 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생각이 성숙하다면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봄으로 보이지 않게 수고한 사람들을 기억해 주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의 무덤에 가서도 그 사람의 비석에 새겨진 출생연도와 생몰연도를 보며 이 사람이 삶은 어땠을까 사는 동안 행복했을까,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하물며 책을 만드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수고를 독자가 알아 주지 않는다면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셋 중 하나다. 출판에 직접 뛰어들어 보던가, 작가가 돼보던가 아니면 이 책을 읽어보던가. 뭐 세 번째도 나쁘진 않지만 첫 번째는 밑천이 있어야 하는 거고, 나는 두 번째를 권하는 바이다. 고생스럽긴 해도 보람있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런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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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8-30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좋은 글이네요.
책만 사는 독자 입장이니까 출판 과정이 복잡하겠지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의 손길과 마음들이 갈마드는 공정이라니
이제 부터는 책에 더 애정을 갖으렵니다.
그런 의미로 책 한권 추천 들어갑니다.^^

*김지안 - 네 멋대로 읽어라(리더스가이드)
Sales Point : 70

stella.K 2023-08-30 19:57   좋아요 1 | URL
짓궃으십니다. ㅎㅎㅎ
세일즈 포인트가 70이면 괜찮은 건가요? 저는 숫자는 영.ㅠㅋ
저기 쓰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되니까 비로소 출판사와 공조체제라는 걸
알았죠. 역시 독불장군은 없어요. 다 함께 하는 거지.
그나저나 니르바나님 제가 이 글로 이달에도 당선작이 될 수 있을까요? ㅋㅋ

Conan 2023-08-30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나오는 과정의 복잡함은 가끔 상상해 보긴 했습니다만, 그저 지나가는 생각이었구요 말씀하신대로 발행일, 몇쇄 정도는 확인보곤 합니다. 그런데 가끔 신간을 사보면 발행일이 저한테 배송된 날짜보다 뒤의 날짜인 경우도 봤습니다. 이런건 왜그런지 모르겠더라구요...

stella.K 2023-08-30 20:08   좋아요 1 | URL
아, 저도 그런 거 봤어요. 그냥 혹시 모르니
여유있게내자 뭐 그런 거 아닐까요? ㅋ
그럼 예약판매로 하지 왜 그렇게 하나 모르겠어요.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전에 알라딘에서 책이 인쇄되어 나오는 짧은 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영상을 잘 찍어서 그런지 좋더군요.
역시 책의 백미는 기계에서 나오는 과정 아닐까요?
마치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을 꺼내는 것처럼. ㅎㅎ
갑자기 빵이 먹고 싶어지네요.ㅠㅠ

yamoo 2023-08-31 17: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책이 재미 없을 듯합니다..ㅎㅎ
스텔라 님 재밌는 책을 찾아 읽으셔요~~
이런 책읽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구요..^^;;

stella.K 2023-08-31 19:35   좋아요 1 | URL
역시 시크한 야무님! ㅎㅎ
그럴 줄 몰랐죠. 기대 많이하고 산 책인데...
책 좋아하면 관심 가죠.^^

2023-08-31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3-08-31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은 잘 만든 것 같아 탐이 나더군요. 내용은 그다음이고 책을 처음 받아든 순간 느껴지는 것을 말함이어요. 인물과 사상사에서 출간한 <정치적 올바름>이란 책은 표지가 빳빳해 좋더군요. 볼 적마다 이런 표지를 쓰면 좋겠다 싶어요. 그리고 아쉽게 느껴지는 책이 있는데 종이 질이 좋지 않아 밑줄을 그으면 잘 안 그어지는 책이 있어요. 저렴한 종이를 사용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유명 작가의 책이 그런 책일 때 (얼마나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이러나...하고) 실망스럽지요. 디자인은 유심히 보는 편이 아니에요. 책 내용만 좋다면 굿!!!

stella.K 2023-09-01 13:51   좋아요 1 | URL
아, 언니는 그렇군요. 저는 디자인 좀 따지는 편이에요.
유독 디자인이 조악한 책들이 있더라구요. 그러면 내용 역시도
별로 안 좋더군요.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책이라면(세계 명작 같은)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표지가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하죠.
하긴 전 솔직히 제 책 표지 디자인 좀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하지만 언니 말마따나 내용만 좋으면 굿이지 뭘 바라겠어요.ㅋㅋㅋㅋ

2023-09-01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