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영화를 전에 봤는지 안 받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반쯤 지나서야 생각이 났다. 봤구나.

2010년도 작인데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단지 아쉬운 건, 뮤지컬 작품이었던만큼 아예 뮤지컬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았을 걸 어쩌자고 뮤지컬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상황만 연출했는지 모르겠다. 재작년 뮤지컬 영화 <영웅>을 생각하면 그때 이 작품을 그렇게 만들었다면 앞선 영화라는 찬사도 받았을 텐데. 우리나라가 뮤지컬 영화를 잘 만들지는 않지 않는가. 물론 이 작품만으로도 성공적이긴 했지만.


임수정도 연기를 잘 했지만, 키는 멀대같이 크면서 다소 소심하고 귀여우면서도 진지한 내면을 가진 공유의 연기가 볼만했다. 게다가 김종욱 역까지 1인2역을 맡았다. 물론 김종욱은 모든 자매들이 선망할만한 멋진 캐릭터다. 그러고 보면 공유는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하고 연기에 임했던 것 같다. 물론 거기엔 뮤지컬 작품도 봤겠지. 


      

    

문득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연애를 못할 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게 뭐 용기의 문제만 있겠는가. 사랑 앞에서 체증을 보이는 뭔가의 이유가 있겠지. 지우가 마지막 호도과자는 먹지 않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사랑을 해야한다. 


 이 책에 그런 말이 있다. 

"침 발라 돈을 세는 일이 전부인 세속적인 우리가 사랑할 때 말고 언제 생판 모르는 남의 입술에 침을 발라보는 낭만주의자가 되겠는가. 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사랑할 때 빼고 언제 남의 형편을 먼저 고려해주는 소설 속 로맨틱한 주인공이 되겠는가. 사랑에 눈이 멀 때 말고 언제 화합 망상에흠뻑 빠져들 수 있겠는가. 쿨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랑에 미칠 때가 아니면 언제 뜨거운 인간이 될 수 있겠는가.(38p)"라고 하지 않는가.그러므로 우린 사랑해야 한다.  


하긴 내가 말은 이렇게 한다만 사실 내가 가장 취약한 장르는 로맨스물인 것도 사실이다. 작년에 그 유명하다던 드라마 <연인>도 1횐가 2회 보고 접었다. 이유는 뭐 지우가 마지막 호도 과자를 안 먹는 이유와 비슷하겠지. 솔직히 감흥이 없다. 닭살이라도 돋으면 차라리 낫겠다. 돋을 닭살도 없다. 근데 이 영화는 부담없이 봤다. 그렇다고 없던 사랑의 엔돌핀이 생겼다는 건 아니지만.


영화를 보면 지금 잘 나가는 배우 이제훈을 비롯한 몇몇 배우의 초년 시절을 볼 수 있다. 그들이 배우로서 어떻게 성장해 갔는지 더듬어 볼 수 있는 건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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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4-02-11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옷 이 영화 오랜만이네요 ㅎㅎ 저도 뮤지컬도, 영화도 다 재미있게 봤어요. 마지막에 진짜 김종욱은 엄기준 배우님이 특별출연 했더랬죠. ㅎㅎ 다시 보고 싶네요^^

남은 설 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stella.K 2024-02-12 10:08   좋아요 1 | URL
아, 그게 엄기준 배우였습니까? 저는 왜 여태까지 공유였다 대타를 썼지했습니다. 되게 공학적으로 잘 만든 영화잖아요. 여기서 삑사리 낼 이유가 없는데 말이죠. ㅋ

요정님도 오늘 하루 남았네요. 마지막까지 잘 쉬시고 활기차게 내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4-02-12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종욱 찾기> 뮤지컬이라는 것만 아는군요 영화도 만들었다니 몰랐습니다 다시 만든다면 뮤지컬 영화로 만들지도 모르겠네요 누가 만들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뮤지컬 많은 사람이 보기도 했으니... 저는 본 적 없지만... 라디오 방송에서 여러 뮤지컬 이야기 하던 거 생각나기도 하네요


희선

stella.K 2024-02-12 10:11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생각했어요. 지금도 공연되고 있는가 본데 영화로 다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대로. 저는 영화나 보지 공연은 언감생심입니다. ㅋ

페넬로페 2024-02-12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봐야겠어요.
아직 그 유명한 뮤지컬도 못 보고 있어요.
공유도, 임수정 배우도 다 좋아합니다.

저도 연인 보다가 접었어요.
왠지 못 보겠더라고요^^

stella.K 2024-02-12 20:15   좋아요 1 | URL
왠지 반가운데요? ㅎㅎ
영화 정말 좋아요. 꼭 보세요.^^

그레이스 2024-02-19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대사가 있었군요
재밌네요

stella.K 2024-02-19 15:31   좋아요 1 | URL
아, 책이요? 재밌죠? 작가가 글을 잘 쓰더군요. 이 작가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그레이스 2024-02-19 16:26   좋아요 1 | URL
다시 보니 책이었네요^^;;
영화 봤는데,,, 이 대사 몰랐네 했거든요 ^^
암튼 인용문 재밌네요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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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몇 년 전 동명의 작품을 영화로 봤다. 영화와 원작이 다를 수 있음에도 난 영화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원작을 볼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영화나 책이나 거기서 거기지 별 건가? 이 말은 영화가 별로였다는 말도 된다. 영화가 좋으면 책으로도 읽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와 책의 협업은 긴밀하다. 그런데 이 작품 책으로 안 읽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래도 내가 전에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 책은 여전히 나에게 봉인된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작가들이 한 번쯤 가족 소설을 쓰긴 한다. 그건 또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 면서도 감성에 호소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천명관 작가 역시 이 작품을 통해 가족 소설을 썼는데 그의 주무기인 레트로한 감성과 그 특유의 익살과 입담이 잘 버무려져 역시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영화감독 일을 하던 인모가 영화를 실패하고 설상가상으로 아내도 자신을 떠나 꿀꿀하던 차에 자살이나 해 볼까 하다가 그것도 실패한다.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그때 엄마에게서 닭죽 먹으러 오라는 전화에 살 의욕은 없는데 식욕은 당겨 결국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도 있으니 죽 한 그릇 먹고 죽자했다. 하지만 역시 그도 실패. 이번엔 아예 엄마 집에 눌러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가족 이야기다.


엄마 혼자 사는 집에 잠시 얹혀사는 게 뭐 문제가 되겠는가? 잠시 창피한 일이지. 문제는 그 비슷한 시기에 형 한모와 동생 미연이도 같이 살게 되었다는 게 문제지. 심지어 형 한모가 인모보다 먼저 들어와 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오 마이 갓이다. 둘의 관계가 좋으면 또 무엇이 문제겠는가? 어렸을 때 좋던 관계도 머리 크면 견원지간이 되던데 이 형제들 딱 그짝이다.


그의 동생 미연과도 오누이 지간이지만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더구나 비록 이혼은 했지만 미연이 중학생 딸까지 있다. 엄마까지 이들 다섯 식구의 나이를 합치면 족히 200살은 될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지은 걸까? 아니면 나이 들어 한 지붕에 살게 된 것을 조소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무튼 제목이 그렇다.


그런데 이상한 건 엄마가 그렇게 된 걸 별로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 아니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늘그막에 자식 끼고 살게 되었다고 분통을 터뜨려도 아무 소리 못하는데 오히려 환영의 의미로 한 달 내내 고기를 먹인다. (영화도 그렇지만) 이들의 고기 먹는 모습은 꽤나 이기적이다. 문득 우리 집 옛 풍경과 왠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이들처럼 한 달 내내 고기만 먹지는 않지만 먹기 위한 노력은 좀 치열했다. 물론 우리 4남매를 먹여 살리느라 부모님도 어지간히 힘드셨을게다. 그걸 생각하면 좀 먹는 것 앞에서 겸손하고 신사적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잘 안 됐다. 무조건 먼저 먹고, 빼앗아 먹고, 훔쳐 먹는 게 집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다 엄마한테 뒈지게 혼나기도 했지만 먹는 거 앞에 본능적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쩌다 먹을 것을 여축해 놓고 나중에 먹는다? 그런 감짝한 생각은 있을 수도 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상했다. 딥다 해 먹일 때는 언제고 화가 나면 늬들은 쳐 먹는 것만 안다고 역정을 냈다. 어쩌라고? 그럼 먹을 걸 해 주질 말든가. 그래놓고 이런 우리들을 남에게 말할 땐 자라느라 한창 먹을 때라고 호호한다. 우리 부모님의 위선도 알아줄만했다. (물론 커서 자식이나 그 비슷한 존재를 키워보니 알겠다만.)


이런 집의 특징은 오사박하고 다정한 비둘기 집 같지는 않다. 그건 또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어렸을 때부터 서로 먹을 걸 두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며 자라고 서로 볼 꼴 안 볼 꼴, 있는 인간성 없는 인간성 다 보며 심지어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훤히 보이는데 바라는 게 뭐가 있다고 그 앞에서 우애 있는 척 고상을 떤단 말인가. 그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철저한 보복과 응징만 있는 것 같다. 그런 집에 화목은 고물상에 팔아먹은 지 오래다.


그런데 이 가족이 좀 독특하긴 하다. 무엇보다 이 집엔 가부장이 빠져있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죽어 과거로만 기억될 뿐이다. 아버지가 없어도 이 집에 가부장이 이어지려면 남자의 보수성과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한모와 인모는 경제력은 집에 들어올 때부터 바닥이었고, 그런데 비해 엄마와 미연 심지어 미연의 딸 민경까지 경제력 꽤나 행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 그들이 그것을 발휘하면 할수록 한모와 인모 형제는 쪼잔한 인물이 된다.


엄마의 집에서 당장 할 일이 없는 인모는 집을 떠날 때도 하지 못했던 가족에 관한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우선 새롭게 안 사실은 미연이 20대부터 아는 언니와 함께 지낸다는 건 사실은 룸살롱에서 일하며 가족들을 부양했던 것으로 판명 났다. 하지만 이 사실을 가족들이 정말 모르고 살았을까? 그건 아니다. 단지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이다. 알면 뜯어말려야 하는데 그러기엔 대신 감당해야 할 짐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또한 이들 삼 남매의 출생의 비밀도 이때 밝혀지기도 한다. 삼 남매는 혈통이 같지가 않다. 즉 한모는 아버지가 바깥에서 낳은 자식이고, 그런데 비해 미연은 엄마가 남자를 방에 끌어들여(?) 낳은 자식이다. 오직 인모만이 정상적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이만하면 콩가루 집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와 엄마의 전적이 셈셈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가 이 모든 것을 모성이란 넓은 치마폭으로 감싸 안는다. 그래서 이들 삼 남매는 외풍은 있을지언정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랐다.


하지만 인모는 어머니가 제일 이해가 안 갔다. 그건 엄마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되니 엄마에 대한 불온한 기억들이 살아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중 가장 이해 못 할 건 시시때때로 물어보는 밥 먹었냐는 질문이다. 이해 못 하다못해 넌덜머리를 낸다. 엄마는 그 질문 밖에 못하는 걸까? 가방끈이 짧고 할 줄 아는 건 밥해 먹이는 재주밖에 없으니 그런가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긴 늬들이 모성을 알아?


하지만 엄마가 마냥 밥만 해 먹인건 아니다. 나중에 엄마는 누구와 살까를 고민하다 미연의 아버지와 합치기로 한다. 인모가 어렸다면 무조건 반대하며 반항했을지 모르지만 그럴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났다. 좋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다. 물론 이건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한 것이지만 거기엔 엄마의 주도적인 선택이 더 많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엄마에게 이런 당당함이 있다니. 하지만 미연에 아버지 역시 죽은 아버지만큼이나 집에선 존재감이 없다. 그런 것을 보면 앞으로 가족 형태는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겠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이 아니라 모계를 중심으로 한 모성이 좌우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예시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어머니의 "밥은 먹었니?"란 질문이 상징적이면서도 압축적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초반에도 자살하려는 인모를 살린 건 하필 울린 엄마의 전화에 밥 먹었냐는 질문 아닌가. 그 질문은 그렇게 위대하다!


하긴 엄마들은 왜 하나같이 이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좀 다른 질문을 하면 안 되나 싶기도 하지만 이것만큼 모성을 드러내는 원형적인 질문이 또 있을까?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밥을 먹었는가 안 먹은 가로 인사를 하며 만남을 풀어 가려는 경향이 많다. 그도 알고 보면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이 아닐까.


어떤 이는 '언제 한 번 밥 먹자.'라는 공수표 날리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하는데 난 아직 이 인사가 좋다. 그런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헤어질 때 하는 인사 안녕계세요나 잘 지내란 말은 그냥 잘 지내기를 바라는 거지만 언제 밥 먹자는 말은 약속이 있는 인사로 밥 한 끼 정도는 내가 살 수도 또는 너의 외로울지도 모르는 식사에 함께해 주겠다는 말도 포함되어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인사를 할 수 있는 정도면 공수표를 날릴 리 없다.


아는 사람이 슬픈 일을 당하거나 안 좋은 일을 당하면 그럴수록 잘 먹고 든든히 있어야 한다고 다독이곤 한다. 물론 정신이 무너지면 육체도 무너지지만 육체를 먼저 돌보면 정신도 세움을 받기도 한다. 그 모든 것엔 엄마의 밥 먹었냐는 말을 듣고 자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소설 맨 끝에 인모가 이런 말을 한다. 헤밍웨이가 아기였을 때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나는 버펄로 빌을 몰라요.'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또한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처음 했던 말은 '개가 불쌍해요.'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역시 비범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자신은 무슨 말을 처음으로 했을까를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말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인모의 엄마는 그렇게 미연의 아버지와 살다가 홀연히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건 당연히 "맘마"였을 테니까.


그러자 작가의 의도를 알 것도 같았다. 이 작품은 모성에게 바치는 작가의 헌사였던 것이다. 집(가정)은 머물기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떠나기 위한 곳이기도 하다. 엄마가 해 주는 맘마 먹고 힘을 내 둥지를 박차 오르는 새처럼 떠나는 곳이 집인 것이다. 맘마는 곧 엄마다. 거기에 가족들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냥 함께 있어 온기를 서로 나눠 주면 또 알아서 자기 길 간다. 그 집에 엄마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로인가.


그러니 성질 나쁜 가족이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 비록 집에선 악다구니를 써도 필요할 때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게 가족이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정에서 소외되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정에 할 일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가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그 가정이 나를 지켜준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 작품은 아는 동료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착상이 되어 썼다고 한다. 역시 작가는 언제 어디서고 소설의 순간을 잡아내는구나 싶다. 그러니 작가는 얼마나 예리하고 예민한 족속인가. 작가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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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2-09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처음으로 한 말이 뭔지 아는 사람 많을지, 적을지... 엄마나 아빠라는 말 같기도 합니다 엄마가 먼저일 때가 많겠군요 부모는 늘 자식을 걱정하겠습니다 그러니 밥 먹었냐고 물어보겠네요 잘 먹고 지내라는 뜻도 있겠습니다

stella.K 님 명절 편안하게 보내세요 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stella.K 2024-02-09 12:58   좋아요 1 | URL
저도 첨으로 했던 말이 뭘까 생각해 봤는데 알 수는 없고 맘마나 엄마였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명절 잘 보내십시오. ♡~

호시우행 2024-02-09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히, 소설가들의 감수성과 창작능력은 놀랄만 하지요.

stella.K 2024-02-09 13:0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부러울 때가 많아요. ㅋ
이책 정말 재밌는데 표지는 맘에 들지는 않더군요. 그래서도 더 더욱 읽을 생각이 없었죠. 좋은 소설 읽으면 밥 먹은 것처럼 든든해요.ㅎ

cyrus 2024-02-09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밥은 먹었니?’만큼이나 어머니가 자주 하는 말이 ‘너, 어디 갔다 왔니?’가 있어요. ㅎㅎㅎ

stella.K 2024-02-09 13:11   좋아요 0 | URL
아직도...? ㅎㅎ
글에 쓰진 않았지만 그 질문은 이제 내가 울엄마한테 많이하지. 내가 울집에서 밥순이거든. 밥 안 자시냐는 말도 내가 더 많이하고. 울엄마 내가 밥 차리면 꼭 TV 앞에 앉아 계시거든. 누가 차려주는 밥상 좀 받아 보고 싶은데 요양원이나 들어가야 하나 싶다. ㅋ

물감 2024-02-09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도 이번 리뷰는 문체에서 천명관 작가의 냄새가 나는데요. 천명관 작품의 리뷰라서 그런가ㅋㅋㅋ 분명 진지한 회상 풍의 글임에도 어째선지 킬킬거리며 읽어버렸습니다. 늬들이 모성을 아느냐!!
그렇군요. 모성에 대한 헌사로 다시 읽는다면 색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어요^^ 설 잘보내세요!

stella.K 2024-02-09 17:25   좋아요 1 | URL
캬~! 역시 물감님은 저의 글을 알아주시는군요. 근데 천명관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죠. 전 천명관 좋아합니다. ㅋ
아, 그러고보니 중요한 걸 잊고 있었군요.
물감님도 새해 복 많으시고 명절 잘 보내세요!^^
 
작가를 짓다 - 문호와 명작을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손
최동민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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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한번 읽어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게 됐다. 판형은 좀 작은 편인데 빈티지한 느낌이 좋다. 작가의 어원이 짓다라고 하던데 제목도 잘 지은 것 같다. 


이 책은 당대 유명 작가와 그를 있게 한 보이지 않은 조력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 조력자는 편집자일 수도 있고, 연인이나 배우자일 수도 있으며 자매나 형제일 수도 있다. 또 아주 드물게는 경쟁자일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도록 자극을 주고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2등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조명했다. 더구나 문학사에서 그런 사람들이 뭐 그리 중요했겠는가. 작가로 주목받기에도 힘든데. 그래도 저자가 이렇게 다뤄줬다는 게 새삼 기특하고 고마운 생각도 일견 든다.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링은 오르기는 쉽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고. 그것에 대해 저자는 말하기를 작가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특별히 싸울 상대도 없고, 그저 링에 올라 멀뚱히 앉아 백지를 바라보는 것 그게 전부다. 이런 규칙뿐이기에 승리나 패배가 기록되질 않는다고. 하루키가 이런 말을 하니 작가는 뭔가의 천형이 있는 것 같아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왜 그처럼 많은 작가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데뷔작 내지는 초기작을 내고 조용히 사라지는지 알 것도 같다.


사실 우린 몇몇 작가들이 계속 오래도록 작품을 내니까 그 일도 할만 한가보다 싶지만 알고 보면 그런 작가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전업작가도 그리 많은 편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어느 직업 세계에서나 별이 된다는 건 너무 힘이 든다. 그래도 그걸 해 내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기 보다 세상에 못할 일은 없겠구나란 생각이 먼저 든다. 단지 다른 건, 저 사람은 해냈다는 것이고 나는 아직 안 했거나 못했다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읽다 보면 나는 운명론자(?)는 아닌데, 사람은 평생 한 번 정도는(그보다 몇 번은 더 할 수도 있고) 은인을 만난다고 하던데 과연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작가에게도 통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작가는 혼자 쓰는 고독한 작업자들 아닌가. 근데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책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첫 번째로 나오는 <<자기 앞의 생>>으로 유명한 로맹 가리의 보이지 않은 조력자이자 그의 어머니인 니나 카체프의 조력은 그야말로 인상적이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저자가 왜 이 두 사람을 가장 먼저 조명했는지는 알 것도 같고.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좀 조심스럽지만) 니나는 자신의 아들을 조력했다기 아들이 엄마에게 작가가 되도록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 어찌 보면 그렇게 가스라이팅 당할 것 같으면 좀 더 근사하고 강력한 뭔가에 당할 일이지 작가가 뭐 볼 일 있다고 그럴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쫓아서 다 했다. 그나마 엄마의 바람대로 나중에 정계에 입문해서 장관이 됐으니 여한은 없겠지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니나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모자 사이엔 뭔가의 간극이 있어 보이긴 한다.


어쨌든 이 책은 흥미롭긴 하다. 작가가 저 혼자되는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다. 여기엔 다루지 않았지만 하루키도 그처럼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내와 좋은 편집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누군가 조력자가 있다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작가는 혼자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나의 글을 기다려 주고 냉정하게 조언해 줄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특히 요즘 젊은 작가들이나 아마추어 작가들은 혼자 쓰지 않고 그룹을 만들어 서로 도와 가며 활동하기도 한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좋아하긴 한다. 이를테면 작가의 이면을 다룬 책들 말이다. 유려한 문체도 좋고, 무엇보다 저자의 시도가 참신해서 읽어 볼 만하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뭔가 뒷심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력자를 다루기보단 작가에 대해 다루고 대충 마무리하는. 뭐 대체로 책들이 그렇긴 하다. 끝까지 뒷심 좋은 책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런 것을 감안할 때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공들인 흔적은 느껴져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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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01-15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역시 되어가는 존재인가 봅니다. ‘전업-’이라는 접두어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선망의 접두어기 아닌가 싶네요. 전문성을 보다 강조하여 ‘전업백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도면 그냥 혼자 살아야겠죠? ㅋ

stella.K 2024-01-16 19:55   좋아요 1 | URL
ㅎㅎ 지금 초란공님이 하시는 일도 전업 아닌가요?
제가 전업 백수입니다. 전업 백수도 쉽진 않죠. ㅋㅋ

초란공 2024-01-16 21:50   좋아요 1 | URL
뒷심 있는 전업 백수가 되는 일은 더욱 쉽지않을 듯 합니다. 특히 ‘과로’하지 말아야 하고요. ^^ 건강 잘 챙기세요~!

stella.K 2024-01-17 10:29   좋아요 0 | URL
제가 무슨 뒷심이...ㅎㅎ 암튼 감사합니다. 초란공님도 건강하시길.^^

페크pek0501 2024-01-17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력은 필수, 그리고 버티기, 가 중요한 것 같아요. 버티다 보면 좋은 운이 찾아와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작가는 능력을 키우며 기다리는 자. 인내하는 자, 인 것 같습니다.^^

stella.K 2024-01-17 17:06   좋아요 0 | URL
아, 그 말씀도 맞네요.^^

hnine 2024-02-11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최동민이라는 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제가 한때 즐겨듣던 팟캐스트 <작가를 짓다> 진행하시던 분이네요. 거의 매일 들었었는데.

stella.K 2024-02-11 19:53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이 사람 글은 잘 쓰더군요.
브런치에서 무슨 상 받고 책으로 낸 줄 알고 있는데
팟캐스트도 한다고 듣긴했어요.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한수산 지음, 이순형 그림 / 해냄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한수산 작가의 책을 이제야 처음으로 읽었다.

책을 산다면 주로 중고샵을 이용하는 편인데 오래전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 놓고 잊고 있다가 얼마 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나와 있길래 횡재다 싶어 덥석 샀다. (나만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사 놓고 쟁여 두는 스타일인데 이 책은 이상하게도 비교적 빨리 손이 갔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봤더니 오랜만에 8, 90년 대의 서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물론 이 책은 2006년도에 나왔지만 명백히 한수산 작가는 8,90년 대 한창 활동했던 작가다.

난 아직도 8,90년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것보다 안 읽은 것이 더 많은데 그래도 그때 한창 매스컴에 오르내리던 작가들의 작품을 읽느라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말하면 소설 꽤나 읽었던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싶은데, 그땐 지금만큼이나 매체가 다양하지 않아 기껏해야 신문이나 라디오 광고가 전부였다. 그러니 그중에 내 귀를 간질이고 눈에 들어오는 책이래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의 5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 한수산 작가도 나름 꽤 유명했는데 왜 난 책 한 권 읽어 볼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엔 이문열이나 황석영 같은 걸출한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을 요즘의 언어로 말하면 문단계의 상남자들이다. 그런데 비해 한수산 작가는 황태자라고나 할까? (물론 진짜 그렇다는 건 아니고 앞서 말한 두 분에 비하면이다.) 아무튼 결이 좀 다른 작가란 느낌이 있다. 당시로선 역시 상담자답게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소설이 소위 먹어줬던 때라 한수산 작가는 나에겐 늘 예외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작가의 작품을 읽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모르긴 해도 작가가 한창 문명을 떨치고 있을 때 읽었으면 난 좀 시큰둥 했을지 모른다. 그 시절 내가 산문집을 그리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아직 덜 여물 때니 무엇을 제대로 알았겠는가. 소설도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꾸역꾸역 읽었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린 동시대의 것을 좀 낮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평가한 작가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나놓고 보니 아, 이런 작가였구나!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중고샵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샀다고 마냥 좋아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복간해 제값 내고 사 봐야 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러면 나 같은 얌생이는 안 볼 확률이 아주 없진 않다.ㅠ )

산문집도 시대마다 결을 달리하는 것 같다. 지금처럼 다양한 결을 갖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그 시절의 서정이 배어있는 책이 좋다. 이 책이 그렇다. 뭔가 옛 생각에 젖어들게 만든다. 역시 문학은 세월을 약간 비껴서 봐야 더 잘 보이는 건 아닌가 싶다. 앞으로 10년 뒤에 요즘 핫한 소설이나 산문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그만큼 책은 역사적 산물이고 살아 숨을 쉰다. 10년 뒤에도 잊히지 않고 읽히는 책이 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일 것이다. 독자가 10년 뒤에도 찾아 주지 않으면 그 책은 유명무실하다. 아니 외로울 것이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건, 작가가 자신의 은사를 기리며 쓴 글이다. 작가가 대학시절 국문학에서 영문학으로 전과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박용주 교수를 기리는 마음이 애틋하다. 여간한 은사가 아니면 이렇게 챕터 한 장을 통째로 쓰는 건 드물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사제지간이 꽤 끈끈했던 모양이다. 작가는, 교수님은 '생활은 평범하나 이상은 드높게(Plain Living High Thinking)'라는 말을 흑판에 쓰면서 낭만주의의 핵심을 기억시킨 분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소설가들 중엔 술을 그것도 미국 작가들이 많이 마시는데 왜 그런가에 대해 교수님은 누가 작가가 글을 쓴다는 건 발가벗는 것 같은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카더라며 그러니 글 쓴다고 너무 술을 많이 먹지 말라며 경계해 주셨다고도 쓰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박용주 교수는 한수산 작가를 아들같이 챙겼나 보다. 또한 그분은 이 세상을 둘로 나눈다면 토머스 울프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겠다며 토머스 울프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던 은사님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며 울먹인다. 그리고 훗날 교수님의 아드님이 결혼 주례를 작가에게 부탁받았을 때 과연 그럴 자격이 있나 잠시 주춤했다고 쓰고 있다. 순간 얼마나 은사님이 생각났을까 싶다. 그 글을 읽고 있는데 나에게도 과연 그런 은사님이 계셨을까를 돌아보게 한다. 분명 계신다. 작가의 은사님만 같지 않을지라도.

책은 후반부에 우리나라의 쿠바 유민사와 고려인을 찾는 시베리아 8천 킬로미터 대장정의 기행문을 담기도 했다.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 이 책 사 보길 잘했다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그러면서 정말 우리가 아는 역사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예전에 작가들은 이렇게 자료수집이란 명목하에 취재하기 바빴다. 취재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작가들은 엉덩이의 힘이라며 취재보단 서재나 연구실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제 취재는 기자나 르포나 기행 작가만 하는 것 같다. 과연 이게 맞는 건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요즘의 산문집과 다르게 뭔가의 힘이 느껴지면서 작가가 참 치열하게 글을 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문체도 나름의 격조가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거리의 악사'란 작가의 원작 영화를 보기도 했다. (영화는 당시는 어떨지 몰라도 요즘 보기엔 다소 감이 떨어지는 느낌이어서 다소 아쉬웠다.) 확실히 원작을 영화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많다. 뭐 선택이고 취향이지만 난 역시 책 보다 나은 원작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유명한 작가의 필화 사건도 언급했는데 그로 인해 작가는 잠시 한국을 떠나 살기도 했다. 누구의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 그 시절 필화 사건 하나쯤 연루되지 않은 먹물들이 어디 있겠는가. 철없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때 친구 하나가 운동권이었는데 그 때문에 알만한 명문 여자 대학에서 잘리고도 시대가 바뀌자 오히려 그것이 훈장이 되었다.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지금은 예전 같은 필력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작가는 최근까지도 책을 내면서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참 보기가 좋다. 아무리 작가는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지만 젊었을 때 치열하게 쓰고 노년이 되어서는 즐기면서 쓰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모쪼록 강건하셔서 오래도록 글을 써 주셨으면 좋겠다.

부디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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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1-10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수산 작가가 감성적인 글을 쓰신 분인데 남산인가 어딘가로 끌려가 고문당한 걸 생각하면 기가 찹니다.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stella.K 2024-01-11 11:5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고. 아마 그 때문에 일본으로 가셔서 은사님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고 쓰셨던 것같아요.
제가 요즘 이렇습니다. 돌아서면 깜빡하거나 가물가물 입니다. 이해하시길. 이 책 읽은지 좀 되거덩요. ㅋ

2024-01-11 0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1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4-01-11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은 작가의 <가을 나그네>를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확하지 않지만 소설 속 딸 이름이었던 동영, 서영, 남영. 줄거리는 도통 생각나지 않고요. ㅎ

stella.K 2024-01-11 12:03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딸 셋만 낳길 다행이네요. 넷이었으면 뭐라고 지였을까요? 북영에세 ㄴ을 뺐을까요? ㅋ
제목 말씀하시니까 한수산 작가와 비슷한 결을 가진 작가가 최인호나 박범신 작가가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마음 같아선 이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쫘악 읽어보고 싶기도 한데 그냥 마음 뿐이네요. ㅠ

blanca 2024-01-11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 특유의 서정성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어요...아련하네요. 저는 요새 무려 80년대 전원일기를 다시 보고 있답니다.

stella.K 2024-01-11 15:17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한때 그랬어요. 리모컨 운전하고 있으면 옛날 고릿적 드라마 를 하는데 아, 저런 때가 있었지, 아련해 지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브라운간을 채웠던 배우들이 하나 둘씩 진짜 저 하늘의 별이되는 걸 보면 쓸쓸해요. 그래도 이렇게 옛 작가의 글을 더듬어 읽는 것도 꽤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랑카님도 한 번...!^^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 내 인생을 바꾼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
김남준 지음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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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더구나 요즘엔 독서를 많이 한다고 해서 선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일종의 회의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독서를 하는 것일까? 적어도 여기 책으로 구원을 받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김남준이다.


글쎄,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면 좀 그럴듯한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책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책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독서 회의론자는 왠지 김빠지는 느낌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그래도 책으로 개안을 하고 구원에 이르는 건 아직도 유효하다. 비근한 예로 역대로 성경을 읽고 회심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어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는가 보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 에세이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언젠가 TV에서 저자의 인터뷰를 보면서였다. 그리고 뭔가에 이끌리듯 이 책을 꼭 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사춘기 시절 엄청난 정신적 방황을 하다 21살에 톨스토이를 읽고 기독교에 귀의한 후 아우구스티누스를 사숙한다. 이 책은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을 뽑아 글을 썼다. (8문장은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물이 상당히 많은데 그중 여덟 문장을 뽑았다니 놀랍기도 하고 그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돈지 짐작이 갈 것 같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누구인가. 가톨릭과 기독교를 통틀어 사제와 목회자들이 가장 존경하고, 서양 사상을 논할 때 그를 빼놓고 논할 수 없는 탁월한 사상가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의 불멸의 저서 '참회록'에 보내는 연가(?) 내지는 해설서를 낸 사제나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중 저자 김남준도 당연 이름을 올렸는데,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란 일종의 묵상집(?)을 내므로 참회록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런 만큼 이 책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을 가지고 썼다는 건 어찌 보면 일리가 있는 시도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이 책을 쓸 때 이미 '참회록'을 120번,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는 100번을 읽고 썼다고 한다. 그 정도라면 이젠 안 보고도 외울 정도일 것 같다.


문득 내가 언제 100번, 120번까지는 아니어도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 있던가 싶다. 사춘기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지금까지 성경은 20번도 읽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100 독은 고사하고 50 독도 읽지 못할 것 같다. (성경은 1년에 한번 읽기도 쉽지 않다. 저자는 목사이기도 한데 성경은 또 얼마나 많이 읽었을까 싶다.) 난 아무리 좋은 책도 세 번 이상 읽었던 적이 없다. 나도 저자처럼 성경 외에 평생 거듭해서 읽고 싶은 책 한 권쯤 가지고 싶다. 그것이 참회록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책이 될 수도 있겠지.


아무튼 그래서일까? 이 책은 자전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늘이 짙다. 거짓말 좀 보태서 말끝마다 아우구스티누스다. 자꾸 그러니까 왠지 지금이라도 '참회록'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나도 20대 시절 강의 시간에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그 책을 추천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듣는 순간 잊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책을 읽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세기를 건너 여기서 맞닥뜨리다니. 마치 저자는 나를 만나려거든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만나 보라고 하는 것만 같다.


(낯간지럽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내가 중첩될 뻔하다 비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를 무척 싫어해 책 속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것 하나만큼은 나와 같아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구나. 난 잠시라도 내가 학교에 있다는 것을 잊기 위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한때 허무주의에 빠졌던 것도 비슷하기도 하다. 어차피 죽을 건데 학교는 다녀 뭐하고, 힘들게 살아 뭐하나 그게 호르몬의 변화일지도 모르면서 나는 나름 진지했다. 하지만 저자와 내가 다른 건, 저자는 자살을 꿈꿨지만 나는 꿈꾸지 않았다. 조심스럽지만 그건 자살을 하면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난 아직 세상에 못다 읽은 책들이 많은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다.


사춘기 시절을 꿈동산처럼 보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난 그 시절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저자와 같은 방황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정신적 방황은 제법 길고 깊었다. 책 제목도 보라. 얼마나 처절했을지 알 것도 같다.


저자는 그나마 청년이 되어서야 톨스토이를 읽고 신앙에 귀의할 생각을 했다.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부활'을 읽고 이거 뭐지? 했다가 정작 톨스토이의 주요 저작은 읽지 못하고 멀어졌다. 참회록도 그렇다. 저자는 나와 비슷한 20대 때 그 책을 읽었지만, 나는 그 나이 때 볼 생각을 아예 접고 말았다. 어떻게 비껴가도 이렇게 비껴갈 수 있을까.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걸 쓴 사람이 천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주 조금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책 두 권을 읽었다.

위대한 지성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건 사랑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이었다.

내가 그를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

심지어 플라톤보다 더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아아, 위대한 지성, 드높은 사랑이여! (80쪽)


저자는 그렇게 방황을 하다 마침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방황을 멈춘 것 같다. 사랑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이라니. 보통은 사랑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또 그것을 알아보는 저자의 안목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면 지적 욕구를 위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리를 찾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


저자는 그 깨달음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교수가 된다. 그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보 같기도 하다(물론 신앙의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하겠지만). 나도 한때 겉멋이 들어 신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그렇듯) 졸업 후 전공 서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또한 저자는 상당한 장서가이기도 하다. 한 개인이 수 천권의 책을 가지고 있어도 알아주는 장서가가 되는데 그는 수 만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책으로 구원을 받고 수만 권의 책을 갖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 아는가? 한국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받게 된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을.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저자의 삶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한 건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였다. .


하지만 알다시피 그렇게 책만 읽는 사람의 단점이 있다. 그건 너무 관념적이고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또한 책상받이니 교조주의자란 말을 들을 확률이 높다. 저자도 그것을 짐작했을까? 어느 순간 교수직을 내려놓고 목회의 길을 가게 된다. (이 얘기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들은 말이다.) 나는 지금도 책상받이를 면치 못하고, 다행인지 남에게 비판을 받을 만큼 독서를 심하게 하는 것도 아니니 이것 또한 저자와 내가 다른 점이라 하겠다. 역시 아우구스티누스나 저자나 방황이 크면 남다른 포스가 있는가 보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시도 아닌 산문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글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책은 우리가 상상하는 흔한 형태의 산문이 아니다. 한마디로 시라고 하기엔 산문 같고 산문이라고 하기엔 시 같다. 깊은 사유적 문장이라 이 책으로 저자에 대해서 알기엔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나 개인적으론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관심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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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21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가 먼저기는 하지만, 그 뒤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을 보고 아주 아우구스티누스만 많이 좋아한 듯 합니다 120번, 100번 읽은 책이 있다니... 대단합니다 많이 읽어도 겨우 두번인데... 세번까지 보는 거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나를 그렇게 파다니 대단합니다 지금은 목사군요

책이 저자 삶을 많이 바꿨네요 그런 책을 만나다니... 세상엔 그런 사람 있기도 하겠지요 그런 거 부럽기도 합니다

stella.K 님 많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stella.K 2023-12-22 19:26   좋아요 1 | URL
저는 거의 유일하게 부활을 세번 읽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가능해요. 그래서 고전을 읽으라는 것 같기도 하구요.ㅎ

아까 잠시 나갔다 들어왔는데 춥긴 춥더군요.
그래도 바람이 안 불어서 그나마 낫지 싶네요.
내일부턴 서서히 풀릴 모양이니 조금만 견디면 될 것 같네요.
또 추워질 수도 있겠지만 한동안은 괜찮지 않을싶네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감기 조심하길요.^^

페크pek0501 2023-12-22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 이상을 읽다니요... 저는 한 단편소설을 일곱 번까지 읽어 봤고 그게 신기록이에요. 두 번 읽은 책은 있지만 백 번은커녕 열 번 읽은 책도 없어요. 어느 한 분야의 책을 파 보는 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은 공부가 될 듯합니다.
스텔라 님은 부활을 꽤 일찍 읽으셨네요. 저는 삽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에 읽은 것 같아요.
6학년 때는 책이 아니라 오자미를 갖고 놀았던 게 생각납니다. 4학년 때는 공기놀이. 히히~~ 어릴 때 너무 놀아서 이젠 노는 게 시시하고 독서가 좋아졌나 봅니다.
리뷰 쓰신 책, 유익한 책 같습니다.^^

stella.K 2023-12-22 22:04   좋아요 0 | URL
오자미. ㅎㅎㅎㅎ 진짜 그런 게 있었죠? 추억 돋네요.
뭐 어린이 세계 명작으로 마침 나온 게 있어서 무심코 본 건데
그게 그렇게 대단할 줄은...
와, 7번! 대단하네요. 솔직히 저자는 넘사벽인 게 넘 많아요.
아우구스티누스의 심위일체론이란 책은 누구도 범접 못하는 책인데
읽으면서 거의 황홀경에 빠졌더라구요.
책 보다는 혹시 기회되시면 이 분의 설교 시청을 권합니다.
나름 깊이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