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모르는 남자들의 비즈니스 룰10
이자벨 니체 지음, 윤혜정 옮김 / 여름언덕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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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이 흥미롭다. 나 여렸을 때 만해도 여자들이 사회 진출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고, 자라 온 환경도 남자와 여자가 함께 지내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래서 남자가 어떻게 활동을 하고, 일이나 인간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남자는 일을, 여자는 관계를 중요시 한다는 것도 비교적 최근에 안 사실이다. 어디 나만 그런가?

그나마 최근 십 몇 년 사이에 남자와 여자를 비교해 놓은 책들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 전엔 어땠단 말인가? 어느 분야든 글을 써서 책을 내놓는 사람들이 여성 보다는 남성이 더 많았을테니, 이런 연구는 별로 필요치 않았을 것이고, 여성도 자기 같으려니 하고 지내지 않았을까? 어떻게 이 방면의 연구가 이제야 이루어진 건지 알 수다 없다.

이 책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여자와 남자가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책이다. 그렇다. 아무리 남자는 일을 중요시하고, 여자는 관계를 중요시 한다고는 하지만, 오늘 날의 사회에 있어서 일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똑같이 중요하게 주어지는 것진다. 그러기 때문에 여자에게 있어서 일은 새로운 도전인 것이다.

아무리 여자가 관계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고는 해도 관계를 위해서 일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여자에게 있어서 일도 잘하고, 관계도 잘 하다면 금상첨화겠지. 심지어 어떤 사람은 관계 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여자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안 사실은, (어딘가에 보면) 남자들은 아무리 위에 상관이 있더라도 자기가 많은 분야에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게 되길 바라고, 여자는 윗전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냐를 아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에 맞출려고 하는 것이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내가 남자와 여자와 함께 일을 해 봐도 알 수 있고, 나 역시 윗사람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늘 초점을 맞춰 일을 해왔었다. 그리고 윗전이 확실한 방향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의심과 불평을 한다. 과연 내가 저 사람을 믿고 따라가도 될 것인가? 확실한 방향제시도 못하면서 이 일은 뭐하러 하자는 것이냐 하면서 말이다.

또한  나는 일에 대해서, 특히 처음 시도하는 일에 대해선 엄청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혹시라도 나 하나로 인해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거진 대부분의 여성들이 똑같이 느끼는 것을 나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일에 대하여 여성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또한 어떻게 하면 남자들과 어울려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해 낼 수 있는가를 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들이 여자에 대해서는 많이 호의적이라고는 해도 일에 돌입하면 남자, 여자 가리지 않으며 심하면 오히려 여자를 걸림돌 내지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도 하니까. 그런 것에 대해 이 책은 나름 코치적 관점에서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읽다보면 일에 있어서 여자는 상당히 취약하며, 남자와 잘 지내려면 눈치를 잘 봐야하는데 그것으로는 이러 이러한 방법들이 있다고 가르치는 것 같아, 나는 그닥 좋은 느낌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또한 너무 친절하다 보니 여자는 남자와 함께 일을 함에 있어서 이 정도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썼을까?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저자도 보아하니 여자인 것 같은데 말이다. 이건 어찌보면 이 책이 갖고 있는 한계일수도 있고, 남자와 그다지 부딪힐 일 없는 나의 상황이나환경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책판형도 나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그림 보다는 글이 더 많이 들어간 촘촘한 책을 좋아하는 탓도 있긴 하겠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제발 부탁하는 건데, 예쁘게 만들려고 하기 보단 독자들이 보기 편한 책이 먼저 생각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예쁘게 만들어서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보기 편한 것이 선행이 되고, 그 다음이 예쁘게 만드는 것이 되야될텐데, 예쁘게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소제목에 야광색 글씨가 오히려 나의 눈을 시리게 만들어서 나름 짜증이 날려고 했다. 물론 이 책은 2,30대 여성을 타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감성에 맞는 컨셉을 지향했겠지. 하지만 이 사회에 일하는 여성이 어디 그뿐이랴? 4,50대도 많다. 연배에 맞는 디자인을 따로 만들어 낼수없다면 차라리 조금은 덜 세련되도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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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던진 돌
허대혁 지음 / 스타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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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성경의 대표적 인물을 가지고 강해설교를 한 일종의 설교집이다. 사실 난 설교집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책을 기꺼이 읽으려 했던 건 왜 일까? 그래도 모름지기 교인인데 가끔씩 은혜가 충만한 경건 서적 한 권씩 읽어주면, 생각도 정화되고(이를테면 세속에 찌들은 생각의 때를 벗겨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영성도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니까 이런 책 읽어 주는 것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경건 서적 읽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다. 이건 평소 나의 독서습관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책만을 읽으려고 하니까. 그나마 그 방면의 책도 미처 독파하지 못한 책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이런 경건서적은 내가 애써 일부러라도 읽어야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좋아서 읽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내의 습관은 그렇다고는 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왜 일까?  저자가 70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목사고, 나름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아 읽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나름 뭔가 있어 보인다'는 내 기준은 뭐였을까?

나는 인물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 책에서는 12명의 성경인물을 다루고 있다.  목사나 또는 여타의 기독교 저술가들이 성경인물을 다룰 때 꼭 빠지지 않고 즐겨 다루는 몇몇 인물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브라함, 모세, 요셉, 여호수아, 다윗 등. 저자도 이런 인물은 빠뜨리지 않고 다뤘다. 그밖에 예레미야나 마리아, 요시야 같은 인물까지  비교적 폭넓게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나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을 느낀다. 이건 이제 막 기독교에 귀의한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평이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했던 뭔가 있어 보일 것 같은 기대에서 비껴난 것마는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나빴던 것만도 아니다. 어느 부분은 꽤 공감 가는 부분도 있어 나름 밑줄을 거 놓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저자의 언어 구사가 그다지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다. 어랍쇼. 내가 뭐라고 저자의 언어구사를 걸고 넘어지는 것일까?

요즘들어 내가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특별히 기독교 커뮤니케이션. 과연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은 세상을 이해시키고 있는가? 세상과 유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예를들어, '은혜'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이 말이 세상에 비기독교인들에겐 얼마나 생뚱맞아 보이는 단어일까? 이것은 기독교 진영으로 들어와야 비소서 이해될 수 있고, 받아드릴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을 세상이 알아 먹을 수 새로운 의미로 쓰일 수는 없을까?

하지만 더 근본적인 건, 단어 하나가 그 속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새로운 의미로 바뀔 수 있느냐만을 따지려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분야든 전문 용어는 있다. 즉 나는 화학 계통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화학에서 다루는 용어들은 잘 모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그것은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중화의 노력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아마 이것은 며칠 전에 본 영화 '밀양'의 탓도 있을 것이다. 그 영화를 보고나 온 찝찝함이란...그래서 할 말이 많은데 또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기대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비교적 젊은 목사니 그 언어가 좀 더 신세대쪽에 가깝고, 안 믿는 사람에게도 신선하게 와 닿을 수 있는 그러면서 날카로운 영성을 보여주는 거라면, 내가 생각하는 '뭔가 있어 보이는것' 에 부합했을텐데 그 기대를 비껴가고 있다는 느낌이든 것이다. 어느 부분은 권위를 가지고 잔소리한다는 느낌이 들어 약간은 눈에 거슬렸다. 결국 이 책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일정수준에 봤을 때 그냥 평이한 수준의 설교집이고, 쉽게 말하면 '범작'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없을 것 같다.

기독교 저술은 대체로 목사님들이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난 좀 그들의 권위를 벗어버리고 안 믿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저술 좀 많이 써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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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0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지운의 숏컷
김지운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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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거의 다 본 것 같다. 한 두 작품은 못 봤으려나?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반칙왕>과 <장화, 홍련>이다. 비주얼이 좋기로야 <달콤한 인생>이 좋긴 하지. 하지만 난 도무지 피흘리고 싸우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 좋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그 영화가 시작할 때 이병헌의 목소리를 타고 나오는 바람 어쩌구 하는 선문답 같은 대사 인상에 남는다. 똥폼 재대로 잡고 시작하지 않는가?

백수생활 10년을 어떻게 탈출을 했는가 궁금해서 이 책에 관심을 가졌더랬다. 그건 어쩌면 나 역시 백수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침 운이 좋아 얼마 전 나는, 잘 알려진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친필 사인본을 받았기에 읽는데 조금의 망설임 없었다(뒤에 지승호 씨가 김지운을 인터뷰한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읽다보니 백수도 급수가 있고, (나는 꼭 사람이 일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데 그래도) 그냥 시간만 죽이는 백수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운 감독이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감독이 되기까지는 그 나름의 백수의 내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백수시절 영화만을 줄창 본 내공이 처음 쓴 시나리오가 당선이 됨으로 그때부터 영화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는 것. 그리고 밑바닥을 훑지도 않고 카메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번에 감독이 됐다는 건 백수계의 전설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록 김지운이 시나리오 당선된 날, 어머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드렸더니 이젠 거짓말까지 한다고 혀를 끌끌 찼다고는 해도, 백수가  출세하지 말라는 법은 확실히 없다. 그래도 카메라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닌데 감독을 했다는 건 구라일까 아니면 나름의 겸손을 가장한 아우라일까? 어쨌든 김지운은 보통의 백수는 아닌 듯하다.

그래도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의 글은 담백하며 능청 떠는 솜씨가 예술이다. 첫 부분은 삶의 단상에 관해서 썼고, 중간부 정도부터는  배우들에 대한 느낌, 영화를 찍었을 때의 있었던 일등을 일기처럼 써놓고 있어서 나름 유익했다. 우리나라 영화계는 영화를 찍었을 때 기록 필름을 남겨놓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감독의 일기는 나중에 영화를 찍는 이들에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 읽으며 드는 생각은, 사람은 무슨 일이든 힘든 일을 할 때는 서로를 독려하며 기를 한데 모으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달콤한 인생>을 찍으며 이병헌의 고생담을 들려주는데, 나의 지난 날, 아마추어 연극을 하면서 마음 고생했던 때와 오버랩 되면서 그런 생각이 든것이다. 힘들면 불평하고, 남 험담하기 쉬운데 그래서는 죽도 밥도 다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김지운은 그런 불운은 격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왜 그리도 힘들었던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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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3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달콤한 인생 정말 좋게 봤어요 :) 한국 영화중에 숨겨진 보물이라고 생각하는데...
김지운 감독은 어딘지 김영하 작가랑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예술로 밥벌이를 한다는 건, 힘든어야 정상 아닐까요? :)

진달래 2007-05-23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장화 홍련>보고 둑다 살아났어요. 중요한 장면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요... 증말 대단한 감독 같아요. <달콤한 인생>도 좋긴 했지만... 책도 재밌겠네요. ^^ 급수가 있는 백수... 저도 다시 백수로 돌아가야 하는데... 참, 모아놓은 게 없어서... 밥벌이가 뭔지 말이죠... ^^* 암튼 리뷰도 재밌습니다. ^^

네꼬 2007-05-23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지운 감독은 어딘가 영리하고도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이 책을 읽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리뷰를 읽으니 스멀스멀... 저도 역시 <달콤한 인생>이 왕 좋았습니다. 이병헌도 그렇지만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에릭의 포스도 좋구요. 안녕하세요, 스텔라님? 저는 네꼬라고 해요. : )

stella.K 2007-05-24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2님/김지운과 김영하! 맞아요. 읽으면서 살짝 그런 느낌 받았어요.^^
진달래님/김지운 영화가 보는 사람의 기를 빼놓는 뭔가가 있지요. 백수가 된다굽쇼? 반가워요. ㅋ. 저랑 같이 놀아요. 하하.
네꼬님/반갑습니다. 다른 이의 서재에서 언듯 뵌 적이 있었는데 친히 찾아주시고...고맙습니다. 이 책 읽어보세요. 재밌어요.^^

프레이야 2007-06-0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축하해요!!
저도 달콤한 인생, 무지 좋아해요. 장화홍련, 다시 봐야겠어요.
전에 보다 말았거든요, 무슨 일이었던가...

마노아 2007-06-08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주의 마이리뷰 당선이에요. 추카합니다^^ 전 달콤한 인생 재밌게 보았어요. 유혈이 낭자한 것은 끔찍했지만 연기가 압권이었거든요. 그리고 굉장히 강렬한 '색채'에 반했답니다. 원래 이병헌을 좋아하기도 했구요^^ 김지운 감독이 그런 전설적인 백수였다니 놀랐어요. 역시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나 봅니다^^

네꼬 2007-06-1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하핫. 저도 나름 보는 눈이 있다니까요. : )

stella.K 2007-06-1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고맙습니다 네꼬님.^^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기록 조선 지식인 시리즈
고전연구회 사암, 한정주, 엄윤숙 지음 / 포럼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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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글쓰기에 관한 책은 꼭 한 번씩은

읽게 되는 것 같다.

책 제목이 관심을 끌만도 하다. 도대체 옛 선비들은 글을 어떻게 썼을까?

책을 펼쳐보니 우리가 알만한 조선시대 문장가들 또는 선비들의 이름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정약용, 박지원, 김정희 등. 생소한 이름들도 있다.


어쨌거나 이 책은 장정부터 아담하니 예쁜 느낌이 들어, 아마도 논술세대인

중고등 학생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지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일반인들은

보지 말아야할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고전 문헌에 나타난 글쓰기에 관한 옛 선현들의 글을 체취해서

엮은 것이니만큼 옛 조상들의 글쓰기에 관한 사색의 면면을 볼 수가 있어 나름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이라도 읽으면

정말 글을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손에 든 책이지만, 역시 이건 우물가에서

숭늉 달라는 꼴밖엔 되지 않는 것 같아 민망해졌다.

역시 이 책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말은 좋은 글을 쓸려면 좋은 글을 읽으라는 말인데

이 진리 같은 말을 어찌 피해갈 수 있단 말인가?

글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잔재주가 아니라지 않은가?(최한기 편) 어쨌거나

읽다보면 얼음 깬 물 한 바가지 끼얹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리의 선현들은 문장 하나에 자신의 혼을 담고, 인격을 담고, 모든 것을 걸었구나

싶어 일견 마음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특히 최한기의 [기측제의]중 ‘독서와 저술’이란 글을 보자. 그는 그 글에서 말하기를,

자신이 글을 고전을 읽는 최고의 목적은 마음을 닦는 것에 있으며, 글을 쓰는 것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함에 있다고 기술했다.(84p)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난 뭐 때문에

글을 읽고 쓰는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최한기와 같은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그냥 마음의 교양을 쌓고, 그래도 내가 제일 만만하게 할 수 있는 일이 글을 쓰는 일

같고, 어쩌다 어줍잖은 글에 칭찬이라도 들을라치면 그 우쭐함이 좋아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다 누가 글 써서 대박 났다더라 하면, 나는 결코 그 경지에도 이를

수 없으면서 ‘그래. 이런 사람도 나와야 작가지망생들도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지

않겠어?’하며 글쓰기와 돈벌이를 연결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게 글쓰기에도 속물 근성을 버리지 못하면서, 누가 속물 근성 들어내면 작가의 근성

내지는 양심 우논해 가면서 그 속물들을 향해 가차 없이 필봉을 휘두르는 것이 작가다운

것인 양 하는 모습이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

고백컨대, 나는 한 번도 내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글을 쓸 사람인지에 관해서는

구체적 생각해 본적이 없다. 대신 그런 생각은 해 봤다. ‘실력 있는 사람이 되야 좋은

일도하지 않겠는가?’란 생각.


읽다보니 내심 심술도 났다. 글은 옛 선현들이 문장을 두고 기가 막힌 말을 쏟아

내리만큼 잘 써야 하는 것인가? 글자 획에도 서늘한 기운이 넘쳐흘러 보인다. 어찌보면

엄숙주의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당대 유명한 문장가들의 문장에 대한 잠언을 모아놓고 보니, 과연 그 시대엔

이런 사람만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오늘 이 시대에 B급 작가들이 있는 것처럼

그 시대에도 B급 문장가들이 없겠는가? 문장은 꼭 그렇게 잘 써야만 하는 것일까? 괜히

심술을 부려본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옛 선현들은 고전을 통해

자신을 닦았으며, 세상의 진리와 이치를 깨우치는데 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 날, 활자 문화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게다가 알지도 못하는 비속어는

얼마나 많은 것인지? 그것도 모자라 도저히 내 조그만 머리론 따라갈 수도 없는

이모티콘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지? 이런 것을 볼 때 과연 이 책에 언급된 문장가들이

21세기를 산다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해진다. 비속어나 이모티콘의 범람은 나 개인적으론

부정적으로 마는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어를 사랑하시는 어른들은 비판할지 모르겠지만,

비속어나 이모티콘은 그 세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뭔가가 있어, 그것을 쫓다보면 자못

흥미로워진다. 그러나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현 교육을 비판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싶다.


책은 많이 읽으라고 해 놓고, 정작 입시에 치어 책 읽을 시간이 없고, 여전히 주관식과

단답형을 혼돈 하고 있으며, 논술도 족집게로 집어내면 된다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으로 돈을 벌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공부는

중요한데, 왜 공부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이 늘 빈궁한 세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럴 때 이런 책 가끔 읽어주면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개기는 되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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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1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은 꼭 그렇게 잘 써야만 하는 것일까? 오늘 어느분의 평론을 봤는데 너무 빈틈 없는 문장이 오히려 글의 빛을 감하는 경우가 있다는, 즉 문장보다 주제의식으로
글이 더욱 빛나는 게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예를 들어 수필이, 여백의 문학
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라는...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일까요. 완벽한 문장, 좋은 문장
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다시 고민이 됩니다. 좋은 책인 것 같은데... 보관함에 담아
갑니다.

파란여우 2007-05-19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문장은 없다고 봅니다.
모든 언어는 다른 언어에 의해서 전복될 운명을 타고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좋은 문장은 분명 있지요. 언어의 조합이 역행하지 않으면서 원래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도를 아는 문장. 또는 작가의 활자에 대한 겸허함을 바탕에 깔고 있는 문장이 좋은 문장 중 하나가 아닐까요. 글쓰기는 어쨌든 수련입니다.^^

프레이야 2007-05-19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여우님, 방가워요^^ 스텔라님 없이 스텔라님 서재에서 놀아요.
완벽한 문장이란 없다는 생각에 동감합니다.
좋은 문장은 문장간의 결속력으로 따져야할 것 같아요. 낱말과 문장과 사유의 결속력이 글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하지만 그것이
作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줄 때면 거부감이 일어요.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하듯, 작이
아니라 깎고 깎아서 빚어내는 것이면 좋을텐데, 그게 참 쉽지 않으니
정말 님의 말씀대로 '수련'입니다. 토요일 밤이에요. 편안한 시간 보내시길...^^

2007-05-20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5-2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과 여우님, 저 없는 사이에 두 분이 데이트도 하구...왕삐짐이옵니다.
그래도 오랫만에 댓글 남겨 주시니 영광임다.^^
글쓰기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ㅠ.ㅠ

2007-05-22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이프릴 풀스 데이 - 상 - 데이먼 코트니는 만우절에 떠났다
브라이스 코트니 지음, 안정희.이정혜 옮김 / 섬돌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영화<파워 오브 원>의 원작자인 브라이스 코트니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혈우병과 에이즈로 죽어간 투병과정과 죽음의 순간을 기록한 실화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혈우병이란게 단순히 피가 멎지 않은 병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 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었을 때 비로소 알았다. 그것은 난치병으로 응고인자 8번이 없어 수혈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과정에서 2차 발병 요인인 에이즈 감염은 어쩌면 피할 수 없었던 운명으로 보인다. 하지만 26살의 젊은 나이에 죽기까지 데이먼 코트니는 '위대한 데이먼'으로 불리우면서 마지막 생에 이르기까지 최선의 삶을 살았다고 보아진다.

죽어 가는 당사자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사람의 고통은 그에 못지 않다. 오죽했으면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다 나올까? 더구나 그것이 나의 가족이거나, 부모이거나,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사람이라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가족으로 엮이거나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으로 엮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건강하게 살아 있으면 우리들은 늘 외로워하고, 갈등하며, 싸우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먼의 아버지이자 이 책의 저자는  책에서 참으로 솔직한 고백을 한다. 매일 아파하는 막내 아들을 보지 않기 위해, 아픈 아들을 돌보느라 지친 아내와 싸우지 않기 위해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간 적도 있었노라고.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건강한 아이를 낳을거라고 생각하고, 그 아이가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상에 적지 않은 부모가 데이먼처럼 아픈 자녀를 낳아 돌보기도 한다. 그럴바엔 차라리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하는 부부도 있을 수 있다. 합리적여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가 있다. 사람이 위대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짐승은 자신이 낳은 새끼가 조금이라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약하게 태어났다 싶으면 그냥 죽인다. 하지만 사람은 그 낳은 자식이 약하고 병들었을지라도 기꺼이 품어 안는다. 왜 그럴까? 저자의 말마따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병을 이기며 살게 되어있다. 그것이 아무리 아려운 질병이라도 말이다. 그러나 짐승은 그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기꺼이 새끼를 죽음으로 내몰 수 밖엔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책을 읽다보면, 데이먼이 혈우병과 에이즈를 이겨 나가는 과정에서(물론 결국 이기지는 못했지만) 의료체계의 문제(호주가 되겠지만) 그리고 에이즈라고 하는 이 심각한 질병에 대한 인식의 문제에 대해 저자는 좀 더 깊은 시각을 가지고 견해를 밝히기도 한다. 그것이 단순히 작가의 시각이었다면 문제제기만 하고 말았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이기 전에 아버지였고, 내 아이가 (빌어먹을) 병에 걸려 죽어 가고 있는데 팔자 좋게 문제제기만 하고 말아버릴 요량이었다면 이 책은 이렇게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기꺼이 환자의 보호자도 환자에게 주사를 놓을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에이즈와 동성애에자들에 대한 시각과 그들의 헌혈문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독자들로 하여금 직면시키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세기의 질병이라고 하는 에이즈에 대해 그리고 동성애자들에 대해 '아,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단초를 얻었다. 솔직히 그 전까지 이 문제에 대해 비판도 수용도 할 수 없는 것이 나였으니까.

이렇게 이 책이 갖는 성과와 의미는 나름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책을 읽는내내  데이먼과 그의 애인 세레스트를 포함한 가족들이 겪는 고통의 과정은 눈물겹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것을 두 권에 걸쳐 동어반복적으로 나오다 보니 나중엔 읽는 나도 진이 좀 빠지는 느낌이다. 인간이라면 고통은 회피하고 싶은 첫번째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것이다. 환자 자신이 고통을 이겨내는 불굴의 용기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며 살아있는 사람에겐 많은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한다. 또한 인간 재활의 길을 모색하게도 만든다. 고로 인간은 길을 내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이 나왔을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았을까를 생각하면, 데이먼은 비록 짧은 생애를 살다갔지만 값지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웬지 이 책에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할 것 같다. 솔직히 이 책을 저술한 저자의 정신에는 깊은 온정의 박수를 보내지만 뭔가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그럴수밖에 없었겠지만) 지나치게 데이먼의 치료과정과 고통에만 촛점을 맞혀 죽음 이후의 삶(데이먼에게나 남아 있는 사람들)에까지 깊이 가지는 못한 채 마무리 되어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분명 이 책이 개인이 당하는 고통과 그것이 갖는 의미는 누구와도 쉽게 나눠질 수 없는 큰 것이겠지만, 동어반복적인 내용이 너무 많이 나오고, 마치 그들만이 그런 고통을 겪는 것처럼 느껴져 나는 오히려 감정이입이 잘 안 됐다. 또한 이 책은 구성면에서 두 권으로까지 나올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 번역 되어져 나오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야기가 다소 산만하고 적지 않은 오타도 독서를 방해 하기도 했다. 책 한 권을 만들어 냄에 있어서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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