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속 여행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읽는데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나 역시도 '과학'이란 말만 들어가면 겁부터 내는 체질이라 너무나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어도 선듯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쥘 베른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서 콜렉션으로 기획 출간한 그 첫 권이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을 번역해서 유명한 김석희 씨가 또한 번역해서 낸 책이고. 최근에 프랑스 문학에 관심을 같게된 나로선 이만하면 탐을 내 봐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책을 붙들었을 때 과연 한마디로 술술 잘 읽혔다. 삽화도 끼어있어 재미를 한층 더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 사람의 책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책 베스트 5에 들어갈 만큼 유명한 책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쥘  베른의 책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만치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이것은 성서를 제낀 수치라고 한다.('옥스퍼드 세계 고전 총서'에 포함된[해저 2만리] 의 영역본 '윌리엄 버치 번역 서문에 나온 말이란다.)

쥘 베른의 소설은 어린 아이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과학 교양 소설답게 과학에 관해(아마도 지질학이나 고고학 또는 지리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의 행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도 독득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겁많은 악셀(나중에 많은 고초 끝에 영웅으로 거듭나지만), 고집이 세고 엉뚱한 한번 마음 먹은 일은 끝장을 보고야 마는 악셀의 삼촌 리덴부로크 교수, 그리고 냉철하고 조용한 한스가 나온다.

특이하게도 지구 속 여행을 하면서 악당 같은 것은 만나지도 나오지도 않는다. 그들이 만나는 세상은 그저 놀라움 그 자체로만 되어있다. 특이하지 않은가?

악셀도 악셀이지만  내가 끌리는 인물은 악셀의 삼촌 리덴부로크 교수다. 언제나 그렇듯이 과학과 문명의 발전은 이렇게 고집세고 엉뚱한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닌가? 죽을 고비를 눈 앞에 두고도 그는 절대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나랑은 정반대의 인물이다.

결국 그들은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닌다. 아마도 이것이 쥘베른을 어린 독자들에게 흡인력있게 다가가게 만드는 요소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아이들이 꿈과 포부를 이루어 가게만드는 정형을 보여주는 과정을 그리지 않는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모순과 제약들이 이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라가는 동안 깍여지는 것일까? 그래도 살아가면서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그래서 신화를 만들어 내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기를 쥘 베른은 촉구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하면 너무 과장됐다고 하려나?

나 역시도 이런 리덴부로크 같은 사람을 요즘엔 잘 만나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숨어 있는 걸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양식화되고 사회화된 인간군들이 더 많다. 그들은 더 이상 이상을 말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고 겉으론 강한 척 외롭지, 않은 척 하고 살아가고 있다.

물론 지나치게 자기 고집이 강하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은 타협할 줄 모른다고 해서 배척당하기도 쉽다. 하지만 길고 짧은 건 데봐야 안다고, 결과적으로 누가 인류 발전에 공헌을 하게될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기사 이들의 모험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끝에 해피 엔딩을 기대할 수는 없으리라. 그런데도 쥘 베른은 그들을 성공적 인물로 만들었고 동시에 그의 작품도 성공을 거두게 됐다. 과학과 문학의 개가라고 해야하려나? 아니면 신화와 문학의 개가라고 해야하려나?

하기사 오늘 어떤 이의 블로그에 들어가서 유난히 눈에 띈 구절이 있었다. 인생을 망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좌절이라고.  문학에 있어서 좌절된 욕망의 투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승리를 쟁취한 해피 엔딩이 더 낫지 않을까?

아무튼 이 책은 흥미진진한 책이다. 읽으면서 내내 리덴부로크 같은 사람이 그리웠다. 다소는 엉뚱해도 자신의 사명에 매달리고 충실한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쉬운 작금의 현실에서 고전의 새로운 발굴은 이 사회를 어느만치 희석시켜 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나름의 공헌은 할 것이라고 본다. 고전을 읽지 않으면 결국 우리의 독서 행위도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테니. 그런 와중에 전문 번역가의 이러한 작업은 반갑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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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4-1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을 선물해 주신 발마스님께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근데 궁금한 것이 생겼다. 번역가 김석희 씨는 프랑스 문학 전문번역간데 어떻게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번역할 수 있었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알다시피 일본인이면서 이탈리아에 거주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녀가 일본어러 책을 썼던가, 이탈리아어로 쓰지 않았을까?
중역을 했나? 헷갈린다. 누가 정확한 정보를 주셨으면 한다.

잉크냄새 2005-04-21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저 이만리>인가요? 초등학생때 읽은 소설중 기억에 오래도록 남은 소설인데...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stella.K 2005-04-21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쥘 베른은 문제적 작가임에 틀림없습니다. 결혼생활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나와있으니까요. 그 때문에 작품에서도 여자는 그다지 중요하게 나타나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굉장히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임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 쉬워서 씹히는 맛은(생각하게 만드는) 좀 덜한 것 같긴 하지만 읽어서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기분 좋게 속여라! 성공 웹카피 전략
윤주협 지음 / 제우미디어 / 2003년 8월
절판


뉴욕의 어느 한 거지가 들고 있던 팻말에, "불쌍한 장님입니다. 배가 고파 죽겠습니다. 이것을 어느 카피라이터가 보고 "봄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봄을 볼 수 없습니다."로 고쳐 주었다. 그후 그의 깡통은 가득차고 격려까지 덤으로 받았다.

장민이 들고 있던 팻말의 문구는 나에게서 남에게로 메시지 중심이 옮겨갔음을 알 수 있다. -62쪽

나의 불편 호소에서 당신들의 마인드'로 이동. 전자의 사고를 인사이드 아웃(Inside-Out), 후자의 사고를 아웃사이드 인(Outside-In)d이라고 합니다.

소비자, 독자, 네티즌의 마음을 읽어내려 노력하는 아웃사이드 인(Outside-In)의 사고방식, 이것이 바로 Insight, 통찰력인 것입니다. -63쪽

혹시 오늘 쓰려는 카피가 내 좁은 머리 속을 억지로 쥐어짜서 나온 것인지 자문해 보도록 하세요.

거리에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고,
'나와 관련 없는' 게시판에 기웃거린 사람만이
팔리는 카피, 좋은 카피를 써낼 수 있습니다.

통찰력은 머리 속에서 갑자기 떠오른 천재적 발상이 아니라, 남의 머리를 읽어내는, 그리고 반 발자국 앞서가는 능력입니다.-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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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4-13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흘깃하며 봤는데... 리뷰가 유혹하는데요..;;;

stella.K 2005-04-13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쪽 계통으로 일하시거나 관심있으시면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구요. 요즘 네티즌의 관심이나 필요 또는 사고의 흐름을 알 수도 있는 것 같구요. 비숍님.^^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한다. 그게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다. 그냥 TV에서 SF 영화를 하면 거의 빼놓지 않고 봤던 것 같다. 왜 공상과학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일까? 나는 그다지 과학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이것마는 예외였던 것 같다.

SF의 비주얼한 영상이 좋아서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체험하지 못한 가상의 세계는 확실히 미지의 세계고 관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가상역사 21세계 세기>는 2018년에서 2045년등, 정말 그때가 되면 내가 존재할 확률은 거의 희박한 상태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또 누가 알겠는가? 2005년 오늘 이 시간 나의 이 허접한 리뷰를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때도 버젓이 살고 있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아직도 20세기를 살고 있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난다. 그때 난 사춘기였고 분명 세기 말을 살고 있었지만 감히 21세기를 맞이하게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언젠가는 맞아할거라고 해도 너무 막연했었다. 하지만 나는 살고있고 드디어 감격의 21세기를 맞이했고 오늘 2005년을 살고 있다.

내가 사춘기를 보냈을 그 시절에도 오늘을 예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21세기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과학의 눈부신 진보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예측이 가능했고 범주화가 가능했다. 그것은 인간의 앞선 예측 가능한 과학적 업적이 그것을 가능케했고 그에 따른 많은 인간 삶의의 문제와 부작용을 야기시킬 것도 지적해냈다. 그런데 이 <가상역사 21세기>가 무엇이 새롭단 말인가?

아무리 2005년을 훨씬 지난 싯점에서 썼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익히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 그리고 대두될 것을 픽션이란 당의정을 입혀 정리해 놓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전망은 있으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러할진데 거기에 굳이 거창하게 '역사'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그 앞에 '가상'이란 단어도 넣긴 했어도 말이다. 또 그러기엔 무책임하게도 보인다.

역사란 무엇인가? 과거만을 얘기하는 것은 역사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통해 인류의 삶을 좀 더 심도있게 조망해 보는 것이 또한 역사가 아닐까? 그런데도 '가상역사' 라는 말을 서슴없이 썼다. 이 제목이 살아있으려면 좀 더 깊이있게 이야기를 다루던가 아니면 제목을 달리했어야 책의 가치가 살아나지 않았을까? 좀 더 심플한 거라면 먹히지 않았을까 한다. 책은 묵직하되 그 내용은 보여지는 것에 비해 비교적 그리 묵직하지 않다. 그래서 나 같이 '과학'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갸웃거리고 보는 사람에겐 그럭저럭 먹힐만 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겐 다소 실망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겠지만.

또 다른 아쉬움이나 의문은 앞으로의 세기를 이 책에선 너무 어둡게만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에서처음 논의된 것은 아니겠지만, 앞으로의 세기가 정말 어둡기만 할 것인가에 나는 의문을 단다. 물론 그럴 확률은 반반일 것이다. 물론 인간이 이기주의를 버리지 않는 이상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선가는 이기주의를 질타하고 반전주의자들과 환경주의자들은 존재한다. 물론 그들도 세상의 어두운 면을 알기에 그렇게 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사람들의 노력으로 세상을 다시 평화를 되찾고 밝아졌다는 얘기를 하면 안될까?

이 책은 시종 '미국적'이란 느낌이 참 많이 들었다. 공저자 중, 마이클 화이트는 영국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미국 사람이다. 요즘 책을 쓰는 경향이 영화화될 것을 생각하고 글을  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미국의 메이저급 영화사 드림웍스가 판권을 사들여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이란다. 그래서 그럴까? 읽는 내내 영화적 상상이 어느 만치는 가능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마 모르긴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큐멘터리는 아니리라. 픽션이 섞인 다큐멘터리겠지.

그래도 내가 이 책에 별 세 개를 주는 건 저자에 비해 번역자의 번역이 마음에 들어서다. 역자에 대해선 나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지만 모르긴 해도 번역 잘 하기로 이름난 사람 중 한 사람인 것 같고(바람구두님의 리뷰에서) 매끄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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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4-0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스텔라님도 별로셨군요.
이 책 재밌게 읽은 건, 이 마을에 저 하나인거 같아요. ^^; 뭐,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제가 '뽐뿌마공'이 좀 높은 편이라...쫌 그렇네요.

stella.K 2005-04-0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다 취향의 문제죠. 전 좀 제목이 내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제목을 정했는지 지금도 좀 의아스럽다는...^^
 
덕의 기술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조지 L. 로저스 엮음, 정혜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04년 10월
품절


원칙1. 사람은 덕 있는 삶,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때만 행복하다.



원칙2. 덕을 쌓기 위해서는 좋은 계획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원칙3. 사람들은 진정한 이익과 정반대의 길로 갈 때가 많다.



원칙4. 올바르게 번 돈은 은혜일 수 있지만, 그 반대는 항상 재앙이다.



원칙5. 올바르게 생각할 때 올바른 행동이 나온다.



원칙6. 건강은 되찾기보다 지키기가 훨씬 쉽다.



원칙7. 행복은 마음에서 솟아난다.



원칙8. 진실과 정직이 부족하면 모든 것이 부족하다.



원칙9. 이웃과 잘 지내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인생이 훨씬 만족스럽다.



원칙10. 모든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지속적이고 만족스런 관계는 가족이다.



원칙11. 덕 있는 삶의 열매는 늙어가면서 더욱 분명해진다.



원칙12. 신앙은 행위를 규제하는 강력한 기준이다.



-2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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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3-25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당하신 말씀들이래서 더더욱 실천하며 살기 어려운 덕목들이군요.
덕의 기술이라. 위대한 선각자의 말씀이니 살펴 볼 일입니다.

stella.K 2005-03-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 참 대단한 사람 같아요.^^ 선물 받은 건데, 근데 아직 완독 못했어요.ㅜ.ㅜ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하건데, 나는 신화를 재대로 읽어 본적이 없다. 저 유명하다던 <그리스 로마 신화>도 에니메이션으로 본적은 있어도 책으로는 어느 한 권도 완독을 해내지 못했다. 그것은 신화가 갖는 중요성에 비해 너무 전문적으로 씌였던가, 너무 어린 아이 취향으로 씌여 그 중간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아보였고, 신화에서 용어 자체가 일상 용어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이제까지 신화 읽기를 미뤄왔던 것 같다. 거기에 나의 게으름도 만만치 않은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내가 교회를 다니고 몇 번의 성경완독을 하면서도 구약의 <창세기>를 그냥 믿음의 대상으로 읽지 '신화'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신화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연구하는 시도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사실 난 그 분야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나 자신을 비하 하지는 말자.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그래도 토막적이긴 해도 거기에 대해 아주 문외한은 아니니...

이 책을 읽고나니 인간에 대한 폭이 넓어진 느낌이다. 사실 인간의 역사는 '최초'를 말하는 역사고 동시에 배반의 역사다. 이 두 가지의 동력이 인간의 역사를 또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초'를 말하지 않으면 신화를 말할 수 없고,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는 '배반'이 없다면 역사는 씌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신화없이 만들어지지 않고 후대에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늘 신의 영역을 보길 원했고, 뛰어넘길 원했으며, 필요하면 도전하고 맞서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승리를 쟁취하든 깨지든 지간에 그렇게 인간은 모험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도전과 전복의 심리를 배태하고 있는 것이다.

길가메쉬. 그는 완벽한 인간이지 않는가? 물론 내가 말하는 이 '완벽'이란 단어가 일반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완벽한 외모를 갖췄고, 신의 아들이었으며, 용맹스러웠고, 그에겐 함께 싸워줄 친구(엔키두)와 언제든지 육체적 욕망을 채워줄 권한을 부여 받았다(초야권). 그리고 그가 서 있는 그 땅의 끝에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신화와 역사를 세웠다. 그러나 그 역시 죽었다. 그래서 그는 완벽한 인간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그리고 최초의 언어라고 하는 악카드어로 씌여지지 않았다면 이 '최초의 신화'라고 하는 수식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수많은 변형을 걸쳐 때론 베레쉬트로 그리스 로마 신화로 발전과 전승을 거듭해 올 수 있었겠는가?

저자도 지적했다시피 언어가 참 무섭다. 이 언어를 통해 신과 소통할 수 있으며 또한 이것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키워갈 수 있었으며 바로 이것 때문에 신에게 무참히 보복 당하고마니 말이다. 그래도 인간은 여전히 신의 질서에 도전한다. 그것은 오늘 날까지도 계속해서 수 많은 논쟁 속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인간은 '최초'가 되길 원하고 '최고'가 되길 바란다. 어찌보면 길가메쉬의 원형은 오늘 날에도 살아있지 않은가.

나는 이 책 후반부의 <길가메쉬 서사시>에 대한 저자의 해석 부분이 참으로 많이 흥미로웠다. 초야권에 대한 해석이랄지 죽음에 대한 해석. 여자에 대한 해석을 읽을 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후계자에 대한 해석(386P)은 참 흥미롭다. 특히 신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인간을 지었다는 점은 많은 상상력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기 때문에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났으며(인간이 노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인간은 결코 지배하려고 하지 지배 당할려고 하지 않는다는 건 인간이 신의 창조물이기 때문은 아닐까란 내 맘대로의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것이다. 후후.

끝으로 나 역시도 별 다섯 개를 주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것은 저자인 김산해 선생이 무려 20년 동안이나 연구해서 우리가 그처럼 많은 도판과 함께 쉽게 볼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감사 드리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이 부디 오래 건강하셔서 앞으로 더 많은 후학들을 위해 애써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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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2-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도 읽으셨군요.
전 살까말까 망설이다 포기한 책입니다.
리뷰도 참 재밌게 쓰셨네요. 추천하고 갑니다.^^

니르바나 2005-02-2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쓰기에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인데 먼저 일독하신 일 축하드립니다. 스텔라님

stella.K 2005-02-26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고마워요.^^
니르바나님, 사실 일독이 쉽지 않은 건 사실이어요. 내용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타입은 아니거든요. 그래도 보람은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마냐 2005-02-2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다간...알라딘에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렇게 두 부류가 남을 거 같슴다. 암튼, 여자에 대한 해석, 초야권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스텔라님을 미소짓게 했는지 궁금하네요. ^^

stella.K 2005-02-2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초야권이 아니라 여자에 대한 해석인데요 뭐 여자인 우리는 다 아는데 남자들은 모른다고하니 그냥 웃음이 났던 거예요. 마냐님 추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