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구약 성경 창세기 가운데 나오는 요셉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께 들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그를 꿈쟁이 또는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기억하는데 알고 보면 그의 삶은 성실과 진실로 점철된 삶이라는 걸 알 수가 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자 하셨던 것 같다. 그건, 하나님은 꿈이 없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꿈이 있는 사람을 들어 사용하신다는 말이다. 내가 이렇게 표현하는 건, 나는 솔직히 삶을 살아가는데 특별한 재주가 없었다. 그나마 글쓰기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면 밥버러지나 다름없이 살았을 것이다. 성격도 지극히 소극적이어서 이불 밖 세상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들어 사용하시되 반드시 훈련과 공부를 시키신다는 것이다. 사실 난 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특별히 하나님의 일 즉 사역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그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이 일을 하면 성실함을 몸에 베게히고, 나중엔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지금은 그 일에 나름 신학적이고, 예배학적이며 연극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엔 백판 아무 것도 없었다. 거기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공부의 연장이려니 했을 뿐이다. 공부하는데 이처럼 좋은 환경이 어디있단 말인가? 따박따박 원고료도 받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엔 공짜가 없다.  

 

내가 다시 주일학교에 복귀하고, 그것이 내가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는 의미라고 해서 그 다음부터 하나님의 축복만 예비되어 있고, 탄탄대로에 승승장구만 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보통 간증은 그렇게 한다. 어떻게 우연찮게 어떤 비전을 갖고 무슨 일을 해서 어떤 어려움과 시험을 겪고 후에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다는 식의. 그걸 일명 '욥의 서사'라고 표현할 수가 있을 것이다(구약의 욥기를 보라. 욥은 모진 고난과 시험 끝속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으므로 나중에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땐 내가 그런 간증을하기엔 너무 일렀다. 그리고 난 사람이 아직 덜 여물어서일까 지금도 그때는 오지 않은 것 같다. 그저 하루하루 주님의 은혜로 산다면 그건 맞는 얘긴 것 같은데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일이란 어렵고, 살얼음을 걸으며, 지뢰 밟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지뢰는 피한다고 피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밟지 않으면 언젠가 그 누군가는 일부러라도 밟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복귀해서 처음 2년 정도는 평탄하고 안정되게 일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목사님이 다른 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아 가셨고, 그 밑의 목사가 승진과 함께 담당 사역자로 부임을 했다. 이 분은 먼저 목사님과는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 과거 내가 제자와 갈등했던 일을 문제삼아 나를 흔들어 놓았고, 이렇게 제자와 갈등하는 선생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며 주일학교를 그만두도록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바뀌면 그 새로운 대통령에 의해 새로운 내각을 꾸리지 않는가. 하물며 새로운 리더가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사람을 바꾸겠다는데 그걸 무엇으로 막겠는가. 그렇게 사람을 바꾸는 건 좋은데 그런 과정에서 한 사람의 겨우 아문 상처를 들춰 가면서까지 그만두게 만드는 것이 맞는 수순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목사는 곧잘 양을 치는 목자에 비유된다. 백 마리의 양이 있는데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다면 나머지 아흔 아홉마리 양을 놔두고 그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다는. 적어도 그는 이 양 계산법에 함께 일하는 교사는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 같았다.        

 

더구나 내가 그에 대해 실망했던 건, 내가 그를 전혀 몰랐다면 모르겠는데 그전부터 안면도 있었고, 나가 일하는 걸 보고 반색하곤 했다. 그런 그가 그렇게 안면을 바꾸고 나온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나중엔 옥신각신 하는 과정에서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아이 같이 떼를 쓰기도 했는데 점잖은 분이 그러고 나오니 그도 좀 가관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삼 남자들이 일을 처리하는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구나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처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런 일을 겪어 본지라 불쾌했던 건 사실이지만 상처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때로 상처는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

 

그땐 아이들도 학년이 바뀌는 때였던만큼 팀도 새롭게 정비해야 했는데 어느 정도 자리잡으면 나올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교사 회의 때 안녕을 고하고 나오는데 그와는 따로 인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언뜻 그의 얼굴을 보니 보니 고뇌에 찬 표정이었는데 왠지 그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다시는 그를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이로써 나는 주일학교를 완전히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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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6-05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상처받은 경험이 있겠죠.
과거, 어떤 일로 상처를 받은 기억이 나면 그게 재산 같다고 여기게 돼요. 그런 상처를 견디는 시간이 없었다면 아주 나약한 사람으로 살 뻔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일도 겪었는데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래.‘ 이렇게 마음먹고 살기 위해서는 상처받은 경험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더라고요.

stella.K 2017-06-06 15:21   좋아요 0 | URL
캬~! 언니는 저를 두 번 감동시키시는군요.
사실 이 페이퍼 좀 화끈 거리는 게 있어서
하루 비공개로 했다가 전체공개로 전환한 거거든요.
그런데 용케 언니를 비롯해 세 분이 보고 가셨어요.
왠지 고맙단 생각이 들더군요.
이 별 볼 일 없는 페이퍼를 보고 가시다니 이 분들 때문이라도
얼마 안 남은 이야기 마저 완성시켜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돌아 오는 주일 날 제가 강연회를 해요.
지금까지 올린 몇 편의 이야기를 가지고.
잘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ㅠ
암튼 읽어주셔서 고맙슴다.^^
 

자신이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나라. 누가 했던 말일까?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라도 그렇게 못하기도 한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다시 주일학교에 복귀해서 나름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여자 아이가 팀에 들어왔다. 선생도 사람인지라 모든 아이에게 사랑과 정이 가는 것은 아니다. 그 아이를 사랑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불행하게도 그러질 못했다. 그 아이는 나를 참 많이 신경 쓰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산만하고 부산스러웠다. 팀원이라면 전체와 조화를 이루고 잘 지낼 생각을 해야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아이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즉 이 아이를 잠깐 동안만 모임에 나오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잠깐이 얼마가 될지는 모른다. 한 두 달될 수도 있고, 짧게는 2, 3주 동안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건 그 아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겠지. 난 따로 기한을 두지 않았고 단지 그 아이에게 쉬면서 네가 드라마팀으로서 이 모임에서 어떻게 있어야할지 생각해 보고 그 마음이 서면 다시 오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시무룩하게 알겠다고 말하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누가 나에게 가르쳐 줬는데, 내가 그 아이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이제부터 나오지 말라는 뜻과 같은 거란다. 순간 놀랐다. 이걸 두고 세대차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난 그저 아무런 사심없이 액면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게 왜 같은 뜻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나는 예전에 목사님이 몇 달 후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말이다. 그럼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을까? 문득 내가 그 아이를 대했던 태도가 과거 누구와 닮아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시중에 돌아다니는 말중에 '똘끼'라는 말이 있다. 별로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다. 이것의 사전적인 정의가 있기는 한데, 남들이 못하는 걸 하는 사람의 끼가 그중 꽤 괜찮은 뜻으로 파악된다. 글쎄, 남이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눈치 보지 않고 덤비는 것. 또는 결과가 빤히 보이는데도 몸을 날리는 것? 뭐 그런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또라이의 특성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사람은 어느 순간에도 교양과 품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지닌 존재다. 하지만 때로 사람은 뭐 하나에 만큼은 품위고 자존심이고 다 버리고 똘끼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런 때가 오면 지지 말아야 한다. 누가 뭐라고 욕을하든 흉을 보든 돌파해야 할 땐 돌파해야 한다. 내가 부서지고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나에게 그때 그 일은 그런 것이었다. 품위와 자존심만 생각하면 결코 돌아가지 말았어야 하고 다시하지 말았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돌아갔는데 그 아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그 녀석이 내 말을 그렇게 받아 들였다면 그건 선생인 내가 그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못 오는 것일게다. 그리고 어쩌면 녀석은 아직도 순수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을 더 살다보면 자존심 지켜가며 할 수 있는 일이 몇 안 된다는 걸 아는 때가 올 것이다. 내가 그걸 단순히 세상을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만으로 구구하게 설명할 수는 없고,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적어도 그 아이는 배우를 할 아이가 아니다. 

똘끼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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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건데, 그 아이는 같은 팀에 있었던 선배 오빠를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아이의 부산스러움은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즉 제사엔 관심없고 젯밥에만 관심있다고 그 아이는

연극에 관해선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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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2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란가방 2017-06-02 13:55   좋아요 0 | URL
네, 지난 번 주신 문구에 그런 내용들을 더해봐야겠네요.
 

그렇게 주일학교를 나와서 시간만 죽이고 있던 어느 날 당시 구독하고 있던 신문에 아기 손바닥만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여느 때 같으면 너무 작아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그 조그만 광고가 나를 그냥 놔주질 않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창작을 가르쳐 주는 학원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왠지 난 그 학원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글을 시작했던 초두에 글을 쓰려면 학원이나 문화센터를 다녀 보라는 걸 난 그때야 비로소 실행했던 것이다.

 

무작정 등록하고 다녔던 곳이 또 나름 별천지였다.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문학계에선 나름 유명한 시인 김정환 선생이 원장으로 계신 곳이었는데, 선생은 80년 대 민주화 운동을 하셨고, 그곳에 포진되어 있는 강사들 대부분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작가들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를 하고, 여자는 아기 낳은 이야기와 시댁 식구들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그곳은 모이면 운동 이야기를 했다. 사회적으로 볼 때 한풀 꺾인 것이긴 했지만 아직은 할 이야기가 많은 때이기도 했다. 

 

나는 그곳에 다니면서 막연했던 참여 문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로서 자의든 타의든 시대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군부독재에 맞서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다만 글을 썼을 뿐이다.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뭘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그 불꽃 같은 시대 그들의 투쟁을 나 같은 사람이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한 것에 대해 답답해 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름 존경스러운데가 없지는 않지만 이제 지나간 시절 살게 되어서일까? 스스로 영웅인 양 하는 것도 없지않아 보였다.)     

 

아무튼 난 거기서 초급반을 수강했는데, 글쓰기 전반에 관한 강의와 함께 워크숍 작품으로 처음 단편 소설을 완성해서 선생님과 수강생들로 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때 초급반을 담당했던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 나는데, 자신이 글을 쓸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헸다. 내 안에 분노가 있느냐와 글을 쓰고도 또 쓰고 싶은 욕망이 있느냐. 그때 나는 당연히 분노가 있었다. 그 제자에 대한 분노와 실의가 있지 않았더라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곳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때가 아니면 언제 그런 수업을 들어 보겠는가? 나는 선생님이 좋았고, 나와 함께 듣는 수강생들이 좋았다. 수업이 끝나면 우린 2차로 술과 밥을 먹으러 갔고, 거기서 교실에서 들을 수 없었던 문학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이게 또 언제인지도 모르게 내안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워크숍에서 좋은 평가를 들었던 게 훗날 다시 주일학교로 돌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만일 그 워크숍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위축되어 그 일을 다시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난 어느 틈엔가 다시 연락하겠다던 목사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일학교를 나왔을 당시엔 목사님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목사님 언제고 나에게 연락만 해 봐라. 내가 어떻게 거절할지 본떼를 보여 주겠다고 별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내가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다시 연락하겠다던 그 말을 순수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목사님은 그 해가 다 지나가도록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아마도 안 했다기 보다 못 했을 것이다. 어떤 책임의식 때문에. 나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넘어졌던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땐 내가 먼저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고, 나 이후에 그 일이 전혀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다시 돌아가 그 일을 정상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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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5-29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창작 학원, 문학 강좌...스텔라 님 의외로 이런 강좌 많이 참여하신 듯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도 그런 강좌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말입니다요..ㅎ

어쨌거나 대단하시다는..


stella.K 2017-05-30 14:08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저의 서재에서 야무님을 뵈오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죠?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이 길에 뜻을 두지 않았다면
그리고 평탄한 세월만 살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전에 창작은 대학의 문창과나 가야 배우는 것인줄 알았다니깐요..ㅋ
 

그렇게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은 그 일을 나는 해를 넘기고 봄이 되올무렵 그만둬야 했다. 그것은 내가 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를 도와줬던 제자 하나가 있었다(이 제자는 나의 책 <네 멋대로 읽어라>에 잠깐 언급했었다). 그때 나는 그 아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불행이었을까 아니면 다행이었을까 하필 그 아이는 그해가 고3이 되었던 때였다. 입시를 준비해야 했으니 언제까지나 나를 도와 줄 수는 없었다. 나는 그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말이 나를 도와주는 거였지 일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커서 자칫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우를 범할 아이 같았다. 즉 선생인 나를 위협할 것 같았다. 바로 그것이 감지될 즈음 그 아이는 좋던 싫던 고3이 됐으니 다행이랄 밖에. 나는 나대로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그 때는 또 팀을 따로 꾸리지 않고 그때그때 아이들을 차출해서 해왔던 터라 이제부턴 팀도 정식으로 만들고 안정적으로 일(사역)을 해 볼 참이었다. 바로 그 무렵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대학에 당당히 합격을 해서. 물론 가끔 주일학교를 거쳐갔던 아이가 졸업하고 봉사하겠다고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주일학교에선 그 아이에게 보조 교사의 자격을 준다. 그런데 담당 목사는 뭐 때문인지 그해부터 모든 주일학교를 자원하는 사람에게 교사/보조 교사 구분없이 동등하게 교사 자격을 부여했다.

 

모르긴 해도 목사님은 그런 구분을 없애도 별무리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리나라 사회는 연공 질서 사회가 아닌가? 더구나 신자의 덕목 중 겸손을 제일로 삼는 교회에서 그것을 능멸하는 일을 일삼을 사람이 나올 거라고는 목사님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우려하던 바가 정확히 1년 후에 나타났다는. 그것도 너무나 큰 호랑이가 되어. 녀석은 마치 자신이 입시 때문에 잠시 선생인 나에게 맡겨놨던 것을 도로 찾겠다는 태도로 팀을 장악하려고 했다. 또한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교사의 권위는 목사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다. 녀석은 이제 더 이상 내 앞에서 어리광이나 피우는 조무래기 고등학생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목사님은 교사의 구분을 철폐할지라도 그 아이는 나를 도와 그 일을 잘 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알리없고 설혹 알았다고 해도 워낙에 일에 대한 욕망이 강했기 때문에 녀석은 주위를 찬찬히 살필 겨를 일 없었을 것이다.

 

나와 녀석이 갈등을 겪고 있으니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나와 녀석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 하고 있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녀석은 팀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 것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건 그저 굴러들어 온 돌이 밖힌 돌을 빼겠다는 의도로 밖에는 볼 수 없었고, 조금 강한 표현을 쓰자면 하극상이었다. 이 상황을 목사님께 터놓고 말씀을 드려도 목사님 역시 별 뾰족한 수를 내리지도 못하고 주저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을 때 일은 공교롭게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졌다.

 

봄방학을 이용하여 1박2일 수련회를 가졌는데 팀의 한 아이가 거기서까지 나와 녀석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속상한 나머지 울음을 터트리더니 급기야 오바이트까지 하고 말았다. 그것도 덩치가 농구선수 같은 아이가.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웃픈 상황이지만 당시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여간 당황스럽지가 않았다. 결국 이 광경은 주일학교 전체 교사들에게 알려졌고, 결국 그 수련회 이후 나와 그 녀석은 소위 말하는 교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실제로 교회내에 그런 위원회는 없다. 그만큼 그때 일은 중대사안으로 다뤄졌고 결국 회의 끝에 나와 녀석을 주일학교에서 그만두게 만들었다.  

 

물론 억울하고 속이 상했지만 그것이 최선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내가 제자 녀석 하나를 잘못 가르친 죄도 전혀 없다 할 수 없을 테니 주일학교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끄럽고 처절한 느낌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목사님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없어 주일학교 교사들과 회의를 했다는 게 너무 창피했고, 1년 동안 피 말려 가며 일했던 댓가가 고작 이건가 원망스러웠다. 목사님이 1년만 더 있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내가 그 부탁을 들어주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내 인생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교사회의에서 녀석을 자르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자르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목사님은 위로조로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쉰다고 생각하라며 몇 개월 후에 다시 부를 테니 그때 다시 돌아와 일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도 별로 위로가 되지 못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한동안 자괴감 때문에 거울을 보기가 싫었다. 그리고 갑자기 남게된 그 많은 시간을 뭘 하며 보내야할지 망막했다. 또한 나에게도 이렇게 떨어질 나락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 일은 나에게 굉장한 희망이었고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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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8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굴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정말 힘들어요. 저 같은 쿠크다스 멘탈을 가진 놈이 교사 일을 하면 오래 못할 거예요.

stella.K 2017-05-28 17:51   좋아요 0 | URL
헉, 쿠크다스...? 그게 뭐지?
가르치는 거 잘 할거 같은데.
과외 한 번도 안 해 봤나?

근데 정말 가르치는 건 쉬운 일이 아냐.
주일학교 교사하는 것도 나는 정말 힘들더군.
남들은 잘도 하더만.ㅠ
그러니 현직 교사들은 얼마나 힘들겠니?
후배 하나가 현직 교산데 이제 제법 관록이 붙었구만 그래도 힘들데.
그래도 그 후배는 정년까지 갈 거야.
지금은 못 산다고 징징거리지만 어떻게 그 자리까지 갔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어.ㅠ

cyrus 2017-05-28 17:59   좋아요 0 | URL
쿠크다스, 이거 과자 이름이잖아요. 그 과자의 두께가 얇아서 봉지를 뜯기만 해도 부러지고, 부스러기가 많이 생겨요. 그래서 쉽게 멘탈이 부서지는 것을 ‘쿠크다스 멘탈(심장)‘이라고 표현해요. 제가 말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안 좋아해요. ^^;;

stella.K 2017-05-28 18:06   좋아요 0 | URL
그거였어? 몰랐네.ㅋㅋㅋㅋ

그렇구나. 나도 좀 그런데.
물론 사석에서 떠드는 거야 요령껏 잘 하는 편인데
청중을 앞에 놓고 무슨 말인가를 하는 건 부담스러.
그래서 요즘도 하루에 한번씩 연습중.ㅠ
 

목사님 권유로 주일학교에 남기로 했던 그해 주일학교 예배에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예배 가운데 짧은 드라마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에 내가 투입이 된 것이었다. 그 일은 주일학교로서도 획기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때 내가 연극을 잘 알고 그 일을 한 것은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그런데 왠지 내가 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이유는, 예전부터 습작을 하면 나는 도전하는 글마다 쓰다가 중단하곤 했다. 그게 너무나 괴로워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어도 일부러 누르고 안 쓰곤 했다. 써 봤자 또 쓰다가 말 걸 써서 뭐하나 꾹꾹 눌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맡은 이상 해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글을 쓰는 성실함을 배울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에 글을 쓰는 세번째 방법이 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나를 몰아 넣어라. 

 

기자들을 보라. 그들이 마감 시간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피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기사를 잘 쓰고 못 쓰고는 둘째 문제일 것이다. 어쨌든 시간에 맞춰 기사를 쓰지 않는가? 나에게도 그런 것이 필요했다. 연극 대본을 쓰는 일은 그것을 몸에 베게하는데 최적화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난 평소 글을 쓴다면 소설을 쓸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연극 대본을 쓴다는 게 조금은 아쉬운 일일수도 있겠지만 소설이나 희곡이나 글을 쓴다는 건 같은 일이고, 나중에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때 그 일은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당시 그 일에 나 말고도 두 분의 선생님이 더 계셨는데 그들은 초반에 조금 하다가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난 그 일이 얼마나 재미었던지 힘든 줄도 모르고 했다. 무엇보다 연극 대본을 쓰면 원고료를 받았는데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작가와 작가 지망생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원고료를 받으면 작가인 것이고, 이걸 받지 못한다면 그건 작가지망생인 것이다. 그러니 난 이제 더 이상 작가 지망생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내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지 소개해 보겠다.

우선 내가 맡은 일은 목사님 설교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맞는 상황을 연극으로 표현해 줘야한다. 일종의 상황극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엔 굳이 결말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저 주인공이 이래야 하나, 저래야 하나 고민하다가 끝을 내면 나머지는 목사님의 설교에서 답을 찾는 뭐 대충이런 형식이다.

 

그런데 목사님 설교가 돌아오는 주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보통은 수요일 정도에 알 수가 있다. 그럼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날은 목금 정도가 된다. 그 이틀 동안 그에 맡는 글감을 찾아야 한다. 이 글감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으로 빨리 찾으면 빨리 쓸 수 있지만 못 찾으면 그야말로 피가 마른다. 나중에 요령이 좀 생겼는데 그 무렵 시중에 <마음을 열어주는 101 가지 이야기>나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 뭐 이런 짧막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유행했었다. 그게 또 그런대로 목사님 설교와 매칭이 되는 부분이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대본은 A4용지 3장을 넘지 않으니 분량 자체는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것을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에 아이들과 연습을 해야한다. 하지만 워낙에 짧은 시간이라 연습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동선을 잡는 정도였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가 써 준 대본을 집에 돌아가 밤새도록(물론 빨리 외우면 잠도 잘 수 있겠지) 외우고 다음 날 8시, 10시 두 번 있는 예배를 위해 아침 7시에 만나 다시 한 번 대사와 동선 체크하고 올라가는 그런 식이었다. 

 

앞서 나는 이 작업을 '피 말리는 작업'이라고 했는데 정말 피가 마른다면 그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은 피가 말라도 좋았다. 너무 대본이 안 써질 땐 컴퓨터 모디터를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하지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렇게 내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있었고, 연극은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미친다더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애초에 목사님이 그러셨다. 많으면 한 달에 두 번. 그저 평균 한 달에 한 번만 해달라고. 그것을 나는 한 달을 4주로 잡았을 때 세 번까지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러리만치 난 그 일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내가 뭔가에 쉽게 미치는 그런 열정적인 성격이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 일만큼은 열정을 바쳐서 열심히 했다. 

 

누가 나에게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가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못한다고 할 것이다. 그때 내가 하나님께 영감을 달라는 기도를 참 많이 했었다. 목사님 설교는 수요일 날이면 나오지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이틀 정도지. 그 기도 밖에 무슨 기도를 더할 수 있었을까? 사막에 정자를 짓고, 외줄타기가 따로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를 생각하면 선생님을 믿고 밤새도록 대사 외우고, 주일 날 유일하게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일텐데도 그것을 포기하고 새벽에 나와 준 아이들에게 진 빚이 많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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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대회 마감일 하루 이틀 전에 글을 써요. 처음부터 일찍 준비해야하는데, 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시간에 쫓겨서 글을 써요. 성공 확률은 계산해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상황이 쫓기고 있을 때 글이 잘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물론, 당첨에 실패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마감일 1~2주일 전에 준비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

stella.K 2017-05-26 16:55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게 있다더군.
왜 시험 공부도 시험 보기 바로 전이나 몇 시간 전이
가장 잘 된다잖아. 그걸 심리학 용어로 뭐라고 하던데...
궁하면 통한다는 뭐 그런 것과 비슷한 거지.
어떤 사람은 책을 일부러 도서관에서 빌려 보잖아.
반납일까지 읽어야 한다는 명분이 생기니까 게으른 사람에게
필요한 거지.
내가 한때 서평 이벤트에 목숨 걸었던 것도 그 이유고.
배운 도둑질이라고 아주 끊지는 못하겠더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