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김어준의 이름하여 '비키니 1인 인증샷' 사건이 터지자 이택광, 권혁범 같은 남성 평론가들은 <나꼼수>의 "강한 마초이즘"이 폭로 되었다며 "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젠더(성)와 섹슈얼리즘에 대해선 성찰을 게을리했다는 증거"라며 성찰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자 곧 김어준이 <시사IN> 주최로 열린 '시사IN 토크 콘서트'에서 자신은 "성희롱할 의도가 없었다"며 "성희롱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성희롱에는 권력의 불평등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며 사진을 올린 여성이 우리 때문에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가는 우리한테서 불이익을 당할 것 같다는 관계가 우리와 그녀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 

"우리에게 (성희롱할) 의도가 없었지만 그녀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우리에게는 그녀가 싫다는데도 수영복을 올리라고 말할 권리가 없고 거꾸로 그녀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데 그 말을 못하게 할 권력도 없다. 따라서 성희롱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여성에 오랜 세월 성적 약자였기 때문에 이런 이슈에 예민할 수 있고 그럴 권리가 있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 약자의 권리"(?)라고 말했다.

 

그러자 훗날 사회비평가 박권일이 이런 논평을 내놨다. "김어준 씨 발언은 그의 젠더 문해력이 얼마나 처참한 수준인지를 다시금 폭로할 뿐이다. 김 씨 주장대로라면 권력관계상 중학교 남학생이 여성 교사를 성희롱하는 일은 성립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성희롱 사건은 실제로 번번히 벌어졌고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남성 중심- 여성 혐오 사회에서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권력이며 때로 감독하고 평가하는 교사 권력마저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엔 정봉주가 나섰다.

그는 삼국카페에 사과 편지를 게재하면서 김어준은 <나꼼수> 방송을 통해 "비키니 시위 사진을 올린 여성의 생물학적 완성도에 탄성을 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는 시위의 발랄함, 통쾌함에 감탄했다"면서 "이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섹시한 동지'는 존재할 수 없다"고 소리를 높였다. (말인지 막걸린지...?!)

 

김어준 또한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예민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한국 여성운동이 '피해자 프레임'을 벗어날 시점이 왔다며, 자신이 일부러 일체의 발언을 하지 않음으로써 논의의 현주소를 드러내게 만들려 했고, 현재로서 논의가 미진한 면이 있지만, 주진우 기자에 대한 탄압 국면에 대응하기 위해 이 국면을 일단락 짓겠다고 말했다. (좀 말이 웃기는 것 같다.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면 끝까지 하지 말던가. 게다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 와중에도주진우를 지켜주려고 했다니.) 

 

그러자 권김현영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 여성이 올린 사진이 갖고 있는 폭발력이 있다. 사진을 받았을 때 주진우가 '누님들 왜 그러세요, 너무 부끄럽잖아요'라고 이야기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사진의 성적인 의미를 무시하지도 않고, 시위 방식의 발랄함을 인정하는 방식. 그들의 지금까지의 워딩에서는 그렇게 이야기가 됐어야 한다. 정봉주는 '저는 부인도 있는 몸입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이렇게 이야기 됐어야 한다. 그걸 가지고 갑자기 '대박', '코피 조심'이라느니, '생물학적 완성도'가 어쩌네 하면서 이 여성의 정치적 발랄성을 다른 방식으로 수신했기 때문에 이 농담은 실패했다. 이 실패한 농담은 결국 여성들에게 '진보 진영에서 우리는 누구였나'라는 반복된 의문까지 불러일으켰다. (77 ~80쪽 요약)

 

지금 진보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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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8-22 17:06   좋아요 1 | URL
나름 사회적 명망있는 사람들의 언어 수준이란 게
이랬구나 놀랍다기 보단 씁쓸하더군요.

이 책 재밌습니다.
제가 페미니즘 책을 많이 읽진 못했지만
읽어 본 중엔 젤 흥미롭더군요.
기회되시면 읽어보시길...^^

cyrus 2018-08-22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준표 중심의 보수권만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이쪽도 심하지만, 보수, 진보의 젠더 감수성 수준 모두 피차일반이에요. 진보권 사람들과 같이 사회 운동을 했던 분이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는데요, 그 분은 젠더 감수성이 떨어진 진보 남성들을 많이 봤어요. 이 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보 남성의 실체를 알았어요. 그리고 페미니즘을 인정하지 않는 진보 남성들이 꽤 있다고 해요.

stella.K 2018-08-22 18:01   좋아요 0 | URL
그러게. 그러니까 아직도 보수든 진보든 남성 정치인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었다는 거겠지.
도전도 없고.
앞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 페미니즘에 대한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검증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해.

그런 의미에서 네가 정치를 한다면 난 적극 환영이다.ㅋㅋ

syo 2018-08-22 18:58   좋아요 1 | URL
독서당 만들어요. 권리당원 할게요 ㅋㅋ

stella.K 2018-08-22 19:00   좋아요 0 | URL
ㅎㅎ 독서당. 거 좋네요!ㅋㅋㅋㅋ

레삭매냐 2018-08-22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어준 씨에게도 항상 빛만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요.

오래 전에 나꼼수가 인기를 끌던 시절에
콘서트에 갔었는데, 이 냥반 웃으면서 말
하지만, 젠더 감수성이 참 그렇구나 싶었
습니다.

쿨하게 그냥 잘못했다 이러면 되는데
뭘 그리 구질구질하게 구는지 원.

stella.K 2018-08-23 15:3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믄제는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거죠.
또 그런 사람들 중엔 자긴 페미니즘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완전 미치는 거죠.ㅠ
 

서재질 초기 때 책을 읽으면 꼬박꼬박 리뷰를 썼던 것 같다. 물론 이건 서재가 없던 시절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블로그가 생기고부터는 좋은 습관 하나 들여볼까 해서 리뷰를 하기 시작했는데 요즘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왜 그리도 리뷰를 못하고 있는 걸까?

 

우선 다른 글을 쓰느라 그렇다. 열심히 쓰는 것도 아니면서 어쨌든 그걸 쓰고나면 전엔 팔이 아팠는데 이젠 손가락까지 아프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너무 좋은 책은 오히려 리뷰를 못하겠더라. 최근 내가 읽은 책 두 권의 책이 그렇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리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런 책 가끔 있지 않나? 

 

 

 

오랫동안 작가를 외면했던 것도 사실이다. 글쎄, 왜 외면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더라면 그나마 지금보다 조금 일찍 작가의 작품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지하철을 타고가다 늦게 상담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그러다 작가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상담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재로 쓰인다는 걸 알았다. 대단한 책은 대단한 책인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했을 뿐 선뜻 읽어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인연이 있다면 읽게 되겠지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올초 오프라인 중고샵에서 이 책 1권을 발견했다. 물론 발견했다고 해서 당장 사 볼 생각은 없었는데 집에 와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며칠내로 근처에서 누굴 만날 일이 있어 다시 들렀을 때 있으면 사야지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책은 거기 여전히 꽂혀 있었다. 그렇다면 인연이겠다 싶었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건 내가 살아 온 시대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나 보다는 연배가 조금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읽고 있노라면 금방 전이가 되고 공감이 된다. 그리고 그 신산한 세월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또 그런만큼 작가의 문체가 결코 가볍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선 읽다가 덮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에밀 졸라의 <작품>이란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보다는 가벼우니 이왕 읽기로 작정했다면 가급적 끝까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실제로 난 읽는 동안 자꾸 침잠해 들어가는 것 같아 사이에 잠시 다른 책을 읽기도 했는데 숨통이 트이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읽을만 하다. 특히 문학을 업으로 할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은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알다시피 작가의 자전소설이다. 자전소설을 다른 말로는 교양소설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얼핏들으니 여성 소설가는 잘 쓰지 않는 분야라고 그래서 이 책이 대단한 거라고 추켜 세우기도 했는데, 나는 바로 이 대목에 꽂혔던 것 같다. 그렇다면 김형경 작가는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교양 소설을 여성 작가들은 잘 안 쓴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뭔가 여성 작가를 비하하는 것 같아 조금은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틀리진 않을 것이다. 여성은 어느 분야에서든 소외당해 온 것도 사실이니 아무리 작가라고 해도 교양 소설을 쓴 작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튼 그런 말을 떨궈내더라도 정말 이 책은 정말 교양 소설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작가가 될 거라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문학이란 이 거대한 숲을 헤쳐나가야 할지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사실 문학은 권할만한 것이 못 되는 것 같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작가라면 누구든지 다 하는 말이다. 김형경 작가도 이 책 말미에 그런 말을 잠깐 언급하기도 한다. 문학은 이렇게 살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우리를 위로한다. 작가는 책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 그 여자를 키운 것은 팔 할의 친구나 이 할의 문학과 음악이 아니라 세월이었다고. 바위에 끊임없이 부딪치는 파도처럼, 그 여자를 향해 몰아오던 그 세월이다. 파도가 바위를 쪼아대듯, 세월은 그 여자를 깎고 쪼아서 둥그스름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파도가 바위에 오묘하고 아른다운 형상을 새겨 넣듯, 세월은 그 여자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결을 형성해 주었을 것이다.

그래, 그 여자를 키운 것은 십 할의 세월이다. 그러므로, 그 여자의 인생에서 배운 단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세월 앞에 겸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여자가 지금도 일관되게 어른들을, 노인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오직 그것 하나다. 세월의 부피와 질량의 웅장함에 대한 존경이다.(2권, 519p)    

 

이 책은 작가의 유년 시절부터 30대 초반까지를 조명하고 있는데, 지금 작가는 50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30대 저런 고백을 하고 있고, 그런 고백을 하기까지 삶이 어떠했을지는 책을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읽어 본 자가 전달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사실 문학은 권할만한 것이 아님에도 권하게 된다. 무엇보다 문학은 잰척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재다. 야, 살아보니까 이런 사람의 이런 일도 있어. 넌 어떻게 생각해? 그냥 묻기만 하고, 생각할 거리만 던져줄 뿐 도무지 답이라곤 해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각자가 알아서 생각하시라가 결국 문학인 것이다.

 

이 책은 작가의 문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요즘은 작가든 독자든 자신이 읽은 책을 대놓고 밝히기도 하는데 이 책은 자신이 읽은 책을 보물찾기하듯 여기저기에 숨겨 놓는다. 그것을 찾아가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또한 그러면서 자신은 책에 속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살을 하고 싶다면 자살을 하면 되는데 자살에 관한 책을 읽게되고, 사랑이 하고 싶다면 하면 되는데 꼭 사랑에 관한 책을 읽더라고. 그 부분을 읽고 나도 키득키득 웃었다. 아무튼 이 책은 책에 대한 관음증을 만족시키기도 한다. 

 

김형경의 <세월>을 읽는 중에 잠시 외도해서 읽은 책이다.

아, 정말 이 책은 뭐라 형언하기가 어렵다. 물론 저자가 신문사 종교 담당 기자라 글도 좋지만, 그가 다룬 우리나라 24명의 기독 영성가들은 확실히 압도하는 뭔가가 있다. 

 

표면상 그들이 선택한 종교는 기독교이긴 하지만, 그들은 기독교에 머물러 있지 않다. 기독교 이상의 것, 초월적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놀라웠던 건, 원래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질 때 그때까지 있어왔던 유교적 전통과 바탕에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토착화라고도 하는데, 어느 나라나 한 종교가 전파되려면 그때까지 지배하고 있는 문화와 종교, 사상이 한데 융합되어져서 뿌리내리곤 한다. 그것을 토착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기독교는 보수주의를 앞세워 그런 토착화를 우려하기도 하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 보수주의는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사실 그건 알고보면 미국이나 영국의 제국주의적 기독교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그 나라의 전통을 우상숭배라고 몰아부치며 대신 자기네 나라 기독교의 우수성을 널리 전파하고, 배타성마저 보이고 있으니 한국의 기독교가 한편으로 욕을 먹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이 진리이고, 진정한 신앙인가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보수주의를 꼭 나쁜 거라고 몰아부치는 것도 문제는 있어 보인다. 그럴 땐 차리리 순수주의라고 해야하는 걸까?

 

저자는 우리나라 영성가를 소개하지만 동시에 서술하는 과정에서 한국기독교사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 역사 중 구한말 또는 일제강점기라고 하는 시대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이 시대는 국가적으로 봤을 때 암울한 시기였지만 한국 기독교 역사로 볼 때 여명기이기도 하다. 이건 확실히 아이러니이긴 하다. 우리나라 독립선언 작성인 33인 중 3분의 2가 기독교인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바다. 우린 가끔 이걸 단순하게 자랑스러워하곤 하는데 이건 한국기독교만이 지니는 독특함이 숨겨져 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기독교를 초월한 영성가로는 함석헌이나 다석 유영모가 대표적일 것이다. 유영모는 몰라도 함석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함석헌은 이 책에서 다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영성가들 중 잘 안 알려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했다고 밝힌다고 했다. 그러니 함석헌은 제외됐을 것이다. 하지만 함석헌은 이 책에도 나온다. 그만큼 그가 미친 영향력은 크다. 

 

이 책에 소개된 영성가들의 하나같은 공통점 보면 우선 극도의 금욕주의자라는 것이다. 어차피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 금욕은 피해갈수 없는 것 같다. 이런 것을 볼 때 오늘 날 탐욕을 숭배하고 권장하는 세상에 은근 신경 쓰이고 불편했을 것 같다. 또한 그 시대는 워낙에 없이 살았던 시대라 저절로 금욕이 됐을 법도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금욕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아이러니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들의 신앙과 금욕이 나라를 구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처음 기독교가 전파됐을 때만해도 초월적이었다는 점에서 오늘 날 개교회주의에 경종을 울릴만 하고, 신학은 자유주의로 갖되, 신앙은 보수주의 아니 순수하게 하라는 말을 다시 한 번 곱씹게 되는 좋은 책이다.

 

어제 검색을 하다 발견한 책이다.

지금의 4,50대 이상 팝송 좋아하는 사람치고 10대, 20대 시절 김기덕과 김광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그들중 한 사람이다. 김기덕의 '두시의 데이트'와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은 하필 같은 시간대에 해서 호강이면 호강이고, 불만이면 불만이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호강이라면 둘 다 들을 수 있으니 좋은거고, 그 시절은 다시듣기가 불가능했으니 둘 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불만이었을 것이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고나 할까?

 

유명도에 있어 나는 김광한 보단 김기덕이 조금 앞서지 않나 싶었는데, 이 책을 보니 김광한이 우리나라 DJ 1호란다.

 

그가 지난 2015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난 20대 말이되고 30대에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두 사람의 방송을 듣지 않게 됐는데, 난 안 들어도 이들의 방송은 언제나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그도 원로란 소리를 듣게되고 방송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세월이 야속했다. 그것도 부족해 김광한은 세상을 떠났고, 그와함께 이종환 아저씨도 떠났다. 모두 나의 힘든 고난의 10대를 위로해줬던 사람들이다. 그나마 지금은 김기덕 아저씨가 1세대로선 거의 유일한 것 같은데 이분만이라도 오래 장수하셨으면 좋겠다.

 

이 책은 김광한의 미망인이, 고인이 죽기전까지 음악 자료를 모아두었던 것을 정리해 펴낸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확 빨려들 것만 같다. 아직 읽지 않아 뭐라고 리뷰하기가 어렵다.

 

가끔 그런 책들이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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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30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려서 팝송만 듣던 일인으로 한 시절을 호령하던
디제이분들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고 하니 착찹
하네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 부재와 최신 음반을
접할 수 있는 루트가 무척이나 제한되어 있어서
거의 팝송계의 신적인 존재라고 할 수가 있었죠.

뭐 지금은 외국에서 신곡이 발표되면 유투브니
하는 다양한 채널로 신속하게 바로 그 때 그 때
접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우리나라 음악의 기술
적 수준도(절대 음악적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아주 오래 전에 트레이시 채프먼의 포크송이 나왔
을 때, 아 이런 노래들도 인기를 끌 수 있을 정도로
다양성이 대단하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stella.K 2018-07-01 14:0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는 솔직히 김광한 이후 2세대
JD들은 잘 모릅니다.
당시 팝칼럼니스트로는 전영혁과 박원웅이
있었다는 정도는 알죠.

예전엔 최신음반을 주간 단위로 알았던 것 같은데
그걸 기다리는 맛도 꽤 쏠쏠했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불편한 줄 몰랐는데
지금은 거의 실시간으로 전세계가 다 아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편해지기는 했는데 예전 같은 맛이 없어요.ㅠ

북프리쿠키 2018-06-30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앞에 겸허하지 않은, 오히려 비하하는 풍조가 안타깝습니다..

stella.K 2018-07-01 14:1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김형경의 소설을 읽으면서 저의 20대와 30대를
돌아보게되더군요.
작가는 힘들게 살았지만
저 같은 독자가 볼 땐 참 부단히 진지하게
살았구나 싶더군요.
지금은 나름 만족하며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전작은 아니어도 몇몇 주요작품은 읽어보고 싶어요.^^

서니데이 2018-06-3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부터 7월입니다. 7월에는 더 좋은 일들, 기분 좋은 순간이 많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steall.K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8-07-01 14:1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오늘부터 7월입니다.
어느덧 한해의 반을 보내고 반을 시작하는 첫날이 되었네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싶은데 더위가 발목을 잡죠?
그래도 우리 잘 살아보아요.^^

2018-07-01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7-01 14:20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리운 사람들이죠.
전 옛날 성우들도 그립더군요.
양지훈과 배한성,
잉그리트 버그만 전문 성우 이선영,
오드리 헵번 성우 장유진,
특수공작원 소머즈의 주희
정말 좋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인데
지금은 들을 수 없다는 게 아쉬워요.
지금 뭐하며 사는지 모르겠어요.ㅠ
 

김해완 

1993년 12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3년에 한 번꼴로 수도권 이곳저곳으로 이사한 통에 이렇다 할 고향은 없다. 연구실이 있는 ‘남산’과 부모님이 농사짓는 ‘제천’이 현재 나의 베이스캠프다.착하지도 않은데 무슨 복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훌륭하신 부모님 밑에서 제멋대로 (긍정적인 의미^^) 자랐으며, 학교 다닐 때는 마음 따뜻한 친구들과 선생님들 속에서 비로소 인간이(?) 되었고, 학교 밖에서는 끝없는 배움을 베푸는 스승과 친구들을 만났다. 초반기에 이렇게 복을 많이 받았으니, 앞으로 수없이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관심사는 잡다하다. 초딩 때는 퍼즐과 뜨개질과 만화책에, 중딩 때는 소설책, 수학문제와 홈베이킹에, 고딩 때는 기타와 작곡에 푹 빠졌었다. 아직도 만화책과 음악은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현재 할 줄 아는 것은 책 읽고 글 쓰는 것뿐이다. 여러 관심사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 없이 그렇게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유를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내가 사유한 딱 그만큼만 글이 나온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만큼 부끄럽고 또 자유로운 때가 없는 것 같다.

열일곱 살에 학교를 자퇴했고 그후 멋대로(?) ‘중졸백수’를 자처했다. 그때부터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았는데, 5년간 즐겁고도 ‘빡센’ 코스를 거치며 읽기, 쓰기, 살기를 동시에 배웠다. 현재 내 일상의 중심은 공부다. 하지만 이 공부는 시험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 힘이 내 일상을 받쳐준다는 느낌이 든다. 매일매일 밥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되고, 내가 사유한 딱 그만큼만 글이 나온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만큼 부끄럽고 또 자유로운 때가 없는 것 같다.

정규코스에는 무관심한 성격 때문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 인복 하나는 많다. ‘방임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공부만큼은 늘 든든하게 지원해 주셨던 부모님, 학교 바깥에서 새로운 공부와 새로운 일상을 선물해 주었던 연구실의 선배들과 친구들.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게 되든, 내 인복을 믿고 있다.
학교와 집을 나온 십대 때 『다른 십대의 탄생』을 썼다. 이십대인 지금은 좀더 다양한 글쓰기, 다양한 언어와 만나볼 계획이다.

 

이런 저자 소개 마음에 든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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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숲 2018-05-1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해완
리좀, 나의 삶 나의 글이란 책을 아주 잘 읽었기에 기억해둔 이름이에요. 새책을 냈군요. 읽어보고싶네요.

stella.K 2018-05-12 18:34   좋아요 0 | URL
저자의 책을 읽어보셨군요.
젊은 사람이 아주 당차게 사는 것 같아
부럽기도하고 응원하고 싶더군요.^^

박균호 2018-05-12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는 이런 저자소개가 쓰기 귀찮아서 담 책에 그간 써온 책 제목만 나열하고 싶은데요...

stella.K 2018-05-12 18:38   좋아요 0 | URL
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작은 차이가 디테일을 만든다고
그건 일종의 작가의 특권이자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사는 동안 몇 권의 책을 내게될지
모르겠지만 책 낼 때마다 다르게 해 보고 싶습니다.ㅋ

페크pek0501 2018-05-16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부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밑천이 떨어진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독서 모임에 들었죠.

stella.K 2018-05-16 14: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데 왜 나이들수록 공부한다는 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늦은 나이에도 공부하는 사람 제 주위에서도 많이 보는데.
저도 용기를 내야겠어요.ㅋ

서니데이 2018-05-16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내용이 저자 소개인 거네요. 저는 이 책의 간단한 리뷰 정도로 생각했는데, 자세하게 쓴 자기소개서를 읽은 기분인데요. ^^

위의 페크님과의 대화를 읽으면서, 요즘은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이나, 변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공부를 한다고 해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것이 많아서 보편적인 상식 정도를 최신버전으로 유지하는 만으로도 힘든 것 같아요. 이미 구버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사는 곳에는 점심 시간에 비가 많이왔어요.
저녁에는 조금씩 비가 옵니다.
stella.K님,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stella.K 2018-05-17 15:18   좋아요 1 | URL
전 이런 저자 소개가 좋더라구요.
딱딱하지 않고, 개성 있어 좋잖아요.ㅎ

오늘도 비가 많이 왔어요.
꼭 봄장마 같아요. 한 몇 년 가뭄이었는데...
이런 예측불가능한 기후속에서 인간은 참 잘도
버티며 살아간다 싶어요.
어제는 천둥소리에 잠을 설쳤는데, 오늘 밤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서니님도 좋은 저녁 시간 되시길...^^

2018-05-2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1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정환 선생님의 <황색예수>가 새로 나왔구나.

며칠 전, 리뷰를 쓰면서( http://blog.aladin.co.kr/hjk4429/9965998) 잠시 선생님이 하시는 창작학원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긴 했지만, 솔직히 그때 처음 뵌 선생님은 나를 좀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어떠한 경계도 없이 스스럼없이 대하는 건 분명 좋은 태도이긴 할 것이다. 하긴 이제 막 등록을하고 수강생이 된 일개의 학생을 선생님이 뭐라고 어려워하시고 부끄러워 하시겠나? 솔직히 그건 나도 좀 배워보고 싶긴 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왜 그리도 낮가림이 심한지. 물론 어떤 사람은 내가 낮가림이 심한 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고 나 보다는 상대가 나에 대한 호감 때문에 그걸 못 보는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는 내가 속한 클래스의 강의를 맡으신 강사 선생님이 결강을 하셨다(그때 강사분이 임헌영 선생님으로 기억하는데 이 분은 정말 천생 양반이시다. 한점 흩으러짐이 없으시고 달변이시다. 지금은 어찌 지내시는지). 그러자 선생님이 땜빵으로 강의에 들어 오셨는데 그때가 또 날씨가 좀 후텁지근 할 때였다. 선생님은 유난히 배가 볼록 튀어 나오셨는데 그게 맥주배라고 얼핏 들은 적이있다. 실제로 선생님은 맥주만 드셨던가 했을 것이다. 속에 소위 말하는 난닝구는 입으셨지만 그 위에 입으신 반팔 남방을 덥다고 풀어헤친 상태였다. 그리고 맨발에 슬리퍼. 아무리 스스럼없는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이 많은 수강생을 생각해서 기본 복장은 하셨으면 했는데. 오히려 보는 이쪽이 무안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강의에서 선생님이 왜 그런지 이해가 갔다. 당신 스스로도 몰골이 심한 줄 모르지 않으셨다. 그렇게 된 것이 그 엄혹한 시절 고문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그때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워낙 오래된 일이라 확실히 기억은 안 나고, 사람이 경멸을 당하면 이렇게 된다고 하셨던가? 다시 말하면 극한의 모독 같은. 부끄러움이 없어진다고. 그건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었다. 도대체 그 시절 선생님께 무슨 짓을 했던 걸까? 자세한 말씀은 안 하셨지만 감히 들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엄혹했던 시절은 가고 다시는 선생님께 고문을 가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지만 그때의 트라우마는 쉬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때 이후로 선생님은 부지런히 저술활동을 계속 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세간의 평판은 책이 좀 어렵다고 들었다. 또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은 계속 당신의 글을 쓰신다고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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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선생님에 관한 글은 언젠가 여기에 

썼을 것이다. 내가 안 쓸리가 없다. 그래도

여기 처음 오시는 분도 있을테고, 마침 이 책이

다시 나왔다기에 생각나서 다시 써 본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문무일 검찰 총장이

고 박종철 씨 아버지께 31년만에 찾아가 사죄를

했다는 보도를 전한다. 아버지는 아흔이 넘은

고령이시고 그나마 거동이 어려워 누워만 지내신다고

하는데 국가가 이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너무 늦은 사죄 아닌가? 그동안 개인 자격으로라도 가서

사죄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동안은 나라가 한 개인의

잘못을 은폐해줬다는 말도 되는데 이게 정말 나란가 싶기도 하다.

 

이 아버지 오늘 내일 하시는 것 같은데 언제 가실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사죄는 받았으니 가실 때 편히 가실 것 같다.

사죄 받아 안심이라기 보단 오히려 마음만 더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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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1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21 18:04   좋아요 0 | URL
사과는 했지만 영혼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지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래도 이게 또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이나마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국가가 국민에게 참 못할 짓 많이했어요.ㅠ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만이 기록문학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록문학의 대표성을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찾아 보면 시대를 대표할만한 기록문학은 더 있지 않을까?

 

새해 벽두에 내 눈에 띈 책은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다. 다소 신파스러운 제목이긴 하지만,  평생 복숭아밭 농사를 하며 1961년부터 죽기 1년 전인 90년까지 30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쓴 이춘기 옹의 일기를 엮은 책이라고 한다.(그는 1906년도 생이다).

 

아내가 병에 걸리고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아내를 간호한 것은 물론 그의 자잘한 일상과 3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세시풍속과 변화상, 3.1 운동 및 6.25에 대한 상세한 회고담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읽고 싶어졌다.

 

특히 이춘기 옹의 기록정신은 무엇이고, 그가 느끼고 보았을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어땠을지 궁금해진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너무 사관 위주나 학자들의 저서로만 알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역사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에 관해선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은 서경대의 이규복 교수가 발굴해 분석하고 이를 논문으로 써서 관련 학회에 보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제 난 또 알라딘으로부터 다이어리를 선물 받았다. 물론 서재의 달인이 되어서 받는 것이긴 한데 최근 3년간 연속이다. 이미 밝히긴 했지만, 난 오랜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알라딘 덕분으로 다시 일기 쓰기에 도전을 해 볼까 했는데 재작년엔 반도 채 채우지 못했고, 작년도 거의 그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재에 글을 올리는데 뭐 또 써야하나 싶기도 하고, 팔도 아파 육필로 글을 쓴다는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올해 뭔가 뜻한 바가 있어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알라딘 선물이 새해가 시작되고도 늦게 도착해 그동안은 작년 다이어리에 이어서 쓰기 시작했다. 난 쓰레기 강박증이 있어선지 아니면 블로그라고 하는 사이버 상의 공간이 있어서인지 무엇을 쌓아두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책을 쌓아두고 사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다이어리 쓰기가 유행이라고 하지 않는가? 거기에 편승해서일까? 아니면 그나마 건강 보조식품을 먹고 팔을 쓰기가 조금 나아져서 일까? 육필이 좀 수월해졌다. 

 

다이어리에 글을 쓴다는 건 공간의 제약이 있다. 하루하루 날짜가 적혀져 있어서 1페이지를 넘어가지 못한다. 그러니 한 가지 사안을 가지고 주저리 주저리 쓸 수 없다. 그저 하루하루 간단한 기록만 하게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이어리엔 가급적 간단 명료하게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루에 있었던 일, 반성과 계획, 자신에 대한 소망과 바람 정도만 간단히 쓰는 것이다.

 

블로그란 공간이 없었을 때는 일기 쓰기가 나름 중요한 시절이 있었다. 그것마저  없으면 어디가 말도 못하고 정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블로그가 생기고 부터는 이를테면 오픈형 일기 쓰기가 가능해졌고 댓글러들의 실시간 코멘트가 있으니 선호하는 장르가 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원치 않으면 비공개로도 할 수 있으니 나쁠게 없다.

 

그런데도 꼭 육필로 쓰는 일기가 필요한 걸까? 글쎄..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이제 너무 흔한 형태가 되었고, 어떤 면에선 기록 보다는 소통을 위한 것이많다. 그래서 다소의 말장난과 농담들이 오고 간다. 누군가 볼 것을 생각하고 쓰는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는 책이 생각난다. 거기에 보면 19세기였던가? 미국의 한 조산원이 쓴 일기가 발견이 되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앞서 서두에 밝힌 책 <목련꽃 필무렵...>도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일상이 위대하지 않다고 누가 말하지 않겠는가? 세월은 무심히 흐르는 것 같아도 인간은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그 변화가 별 것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변화를 쫓아가던가 못하겠으면 관망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하하는 말 중 하나는 '유장함'이란 단어다. 길고 오래며, 급하지 않고 느릿하지만 그속에서 뭔가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 것. 사람이 밥 먹고 잠만 자고 사는 것 같아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내는 것만으로도 어떤 일을 이루어낼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너무 눈에 띄지 않아 사는 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죽을 수도 있다.

 

사실 어떤 형태로든 일기는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필요성이 가면 갈수록 더 커진다. 뭐 치매 예방은 물론이고, 한 해를 마쳤을 때 내가 뭐하며 살았지? 치매 환자처럼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 말하기 전에 하루를 잘 살고, 잘 마치려면 일기 쓰기는 필수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순간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먹어 본다. 일기를 잘 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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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0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1-10 16:12   좋아요 1 | URL
맞아요. 동감입니다.
그래서 <목련꽃 필무렵...> 같은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도 일기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같이 써요!^^

2018-01-10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1-10 17: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렇게 말씀하신대로 감사나 감동을 적으면
엔돌핀이 솟기 마련이죠.
저는 제가 좀 의지가 약하고 뭘 계획적으로 하지 못하거든요.
그걸 개선해 보고자 일기를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쓰면 이루어진다잖아요. 그거 한 번 해 보려구요.^^

cyrus 2018-01-10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블로그를 하기 전에 제가 생각했던 ‘일기’는 그 날 하루 뭐했는지 시시콜콜한 일상을 기록하는 글이었어요. 지금 제가 생각하는 ‘일기’는 책을 읽으면서 뭘 느꼈는지 기록하는 글이에요. ^^

stella.K 2018-01-10 17:5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요즘 왜 ‘읽어본다‘ 시리즈 있잖아
거기에 너도 들어가야 한다니까.ㅎㅎ

서니데이 2018-01-10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장하다는 말에서, 어쩐지 한번도 보지 못한, 그러나 텔레비전으로는 언젠가 보았을지도 모를, 길게 흐르는 강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stella.K님, 서재의 달인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


stella.K 2018-01-10 19:06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보통은 무심히 흐르는 천년도 더 흘렀을 강물에
비유하기도 하죠. 또는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패이게 한다잖아요.
그럴 때도 쓰이지 않을까 싶어요.
서니님이 매일 같이 쓰는 페이퍼도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언제까지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써 보세요.
응원합니다. 축하 고마워요.^^

hnine 2018-01-11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는 좋아요만 누르고 와서 지금 다시 읽었어요.
두권 모두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위의 책은 소개글만 봐도 마음이 찡했고,
아래 소개해주신 책을 보고 일단 반가왔던 것은, 저도 평소에 기록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Homo xxx 라는 말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저도 나름 쓰거나 기록하는걸 좋아하기 때문에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stella.K 2018-01-11 13:23   좋아요 0 | URL
ㅎㅎ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는 저의 책에서도
다뤘던 것 같아요.ㅋ
위의 책은 저도 좀 궁금하네요.
h님도 기록하는 거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기록하는 걸 좋아해야 할 텐데
왜 가면 갈수록 게을러지는지 모르겠어요.ㅠ

페크pek0501 2018-01-1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날짜가 적혀 있는 일기장을 선호하지 않아서(매일 쓰는 건 어려워서) 대학노트에 내가 날짜를 적고 일기를 쓴답니다. 몇 년을 썼는지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써 왔기 때문에요. 매일 쓰는 건 아니라도 일기장이 몇 권 쌓이는 걸 보는 건 뿌듯합니다.
제가 문맥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맥에 맞게 썼던 건 일기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일기를 쓰는 시간은 문장을 갖고 노는 시간, 문장을 연구하는 시간도 되거든요. ㅋ

꼭 그날 있었던 일만 쓰는 게 아니라 며칠 전에 있었던 일도 쓸 수 있어 일주일에 한두 번 쓰는 것도 좋답니다.

님의 일기 쓰기를 응원합니다!

stella.K 2018-01-11 14:3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다이어리는 날짜가 적혀 있으니
안 쓸 수도 없고. 일단 가계부 쓰는 마음으로 써 보려구요.
언니는 문장을 갖고 노는 마음으로 쓰시는군요.
저는 오히려 그나마 블로그가 있으니까 문장을 다듬지
일기는 그냥 생각나는데로 개발세발로 쓰고 있습니다.
까이 꺼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하면서 말이죠.
나중에 보면 이걸 내가 썼단 말야? 놀라기도 하죠.ㅋㅋ

이번에 쓸 땐 글씨도 나름 정성들여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보게되면 후회없게 하려고.
알고 보면 제가 좀 많이 허술합니다.ㅎ
응원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18-01-1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는 날들입니다. 기억이 차츰 흐릿해지니 더욱이요. 그럼에도 게으름을 ㅎㅎ 저 책은 네맛대로읽어라 에서도 나왔지요.

stella.K 2018-01-17 13:04   좋아요 0 | URL
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ㅎ
그런데 그 책이 아쉬운 건 좀 딱딱하지 않나 싶어요.
책 제목은 100% 동의하는데 말이죠.

저 <목련꽃...>은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