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곡선으로 직선을 그려라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왜 가장 원하지 않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가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가족을 대하라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매일 죽으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단 한 번 밖에 죽지 않는다.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30분만 더 버텨라

 

어제 미세먼지가 자욱한데도 불구하고 옆동네에서 강연회가 있어 모처럼 다녀왔다. 그동안은 병원엘 다니느라 웬만큼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고 있었다. 이렇게 안 다니던 강연회도 다니는 걸 보면 그만도 많이 낫다 싶다. 더구나 강연회 장소가 강남역인데, 한강을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슬슬 다녀주는 것도 좋지 싶어었다. 더구나 중고샵 안에서 하는건데 강연회 전후로 책도 구경할 수 있으니 괜찮은 코스 같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강연회가 생각 보다 일찍 끝나서 책 구경 조금만하고 가려다 그만 정호승의 저 책에 꽂혀 결국 업어가지고 왔다.

 

정호승은 알다시피 시인이며 수필가이기도 한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에세이는 상당히 감성적이기도 하다. 나는 대체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장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매번 정호승의 문체에 무릎을 꿇고 만다. 

 

아, 어찌할꼬, 읽겠다고 조금씩 건드려 놓은 책도 많은데 저 책을 건드려 놓았으니...

 

그러고 보니 오빠가 세상 떠나던 해에 오빠 방에서 발견하고 조금 조금씩 읽다 이내 푹 빠져버린 <항아리>가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었을 당시도 누렇게 바래진 책이었는데 두어달 전 오래된 책을 처분했을 때 저 책도 보내리라 다짐했던 걸 끝내 버리지 못했다. 

 

문득 십여년 전쯤, 나의 글 선생님을 10년 넘어 다시 뵈었을 때 좋아하는 작가가 있냐고 기습적으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난 너무도 당당하게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했었다. 김훈 정도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워낙 급작스러 준비도 안 됐거니와, 난 작가가 될 사람은 자기 글 외에 남의 글은 좋아하면 안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역시 덜여문 자의 덜떨어진 대답이다. 그때 정호승을 알았더라면 난 냉큼 "정호승이요." 했을 것이다.

 

감히 김훈과 정호승을 비교한다는 게 가능하진 않겠지만(워낙 그 결이 달라서) 정호승을 알게되면 감성적이면서도 위로적인 문체에 무릎꿇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나를 무조건 위로하고 격려하는 글을 읽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더구나 누가 좋다더라 해서 읽고 이내 빠지는 책도 나쁘진 않지만 이렇게 우연찮게 발견하고 빠져버리는 건 더 좋지 않을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 가운데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는 아닐까. 내가 원하던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매력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내겐 정호승의 책이 그런 책 같다. 매번 읽을 때마다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고 나를 무릎꿇게 만드는 책. 그런 한 권쯤 가슴에 품고 사는 독자가 되어보는 것도 독자가 누리는 권리이자 행운 아닐까.  

 

위의 책 맨 마지막 문장을 보며 최근에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가수가 생각이 났다. 누군가 죽을 결심을 했던 그들에게 30분만 버텨보라고 했더라면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혹시 모르니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입버릇처럼 저런 말을 해 줘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아픈 곳이 많이 나았지만 대신 이번엔 팔목이 아프다. 여기가 낫는 것 같으면 저기가 안 좋고, 저기가 낫는가 싶으면 또 새로운 곳이 아프다. 어제 약국에도 들렸는데 필요한 약만 사고 팔목 감아 줄 밴드 하나 사 볼 생각도 못했다. 약도 그렇고 다른 물건도 그렇고 꼭 사던 것만 사게 된다. 나이들면 문제해결을 위해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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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2-1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팅하세욧! 아프지마시공

stella.K 2019-12-19 15:40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9-12-22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기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이죠. 동병상련.
저는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말할 작가가 많습니다.
스텔라 님과 다르게 저는 글쟁이들은 작가를 흠모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잘 지내고 계시죠?

stella.K 2019-12-23 16:21   좋아요 0 | URL
작가들끼리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글을 본적이 있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도 먼발치에선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알면 실망하게 될까 봐.ㅋㅋ
근데 근래 들어 서재로의 발걸음이 뜸하신 것 같습니다.
별고 없으시죠?
어느덧 갱년기다 보니 남 아픈 게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올해도 얼마 안 남았어요. 해 놓은 것도 없이.ㅠ

모쪼록 뜻 깊은 성탄되시고,
한 해 마무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후애(厚愛) 2019-12-2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크리스마스날 대구에 첫눈이 내리면 좋겠는데 그럴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ㅎ
감기 조심하세요.^^

stella.K 2019-12-24 18:58   좋아요 0 | URL
아, 네.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19-12-2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책꽂이에 오래전부터 있는 저 책 표지 반갑네요.
한 해가 또 기울고 있어요.
우리는 알라딘묵은지 ㅎㅎ
스텔라님 새해에도 여전하게 뵈어요.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9-12-28 14:17   좋아요 1 | URL
ㅎㅎ 알라딘 묵은지...! 맞네요.
바쁘신 중에도 저의 서재에 들러주시고
인사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책 요즘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좋더라구요. 기회되면 정호승 전작하면 좋겠다 싶어요.
프레이야님도 가지고 계시다니 반갑네요.

이제 2019년도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렇게 가는 줄 알았으면 좀 더 아껴주고 사랑해 줄 걸.
이제 가면 다시 못 오는데 말입니다.ㅠ
가는 건 아는 거고, 오는 건 또 올테니 내년엔 더 사랑해 주고
아껴줘야겠습니다.
프레이야님도 새해 바라는 소망 다 이루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란 책을 조금씩 읽고 있다. 읽다가 등장인물인 우치다가 이런 말을 한다. 


"먹고 자고 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참 적절한 표현이야. 이들은 뗄 수 없는 한 단어로 생각해야 돼. 먹고 자는 것에 관심 없이 사는 곳만 만들겠다는 것은 그릇만 만들겠다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 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106p)


우리나라의 건축가 특별히 집을 짓는 건축가들은 저 말에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다. 요즘의 건축가들은 동의할지 모르지만 예전엔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엔 건축가들이 집을 짓는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건축가들을 집 장수 또는 미장이라고 낮춰 부르며 공간이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공간에 맞추는 구조였다. 부엌만 해도 요즘에 과연 저런 부엌이 있나 싶기도 한데 실제로 없지는 않은가 보다. 몇 년 전부터 시즌제로 방영되고 있는 <삼시 세 끼>라는 프로를 보면 찬장이나 부뚜막이 부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마당 한 귀퉁이에 나와있는 걸 볼 수가 있다. 비나 바람을 겨우 가리는 정도로 얼기설기 만들어져 있는데 딱 70년대 분위기 그대로다. 


어렸을 적 내가 기억하는 첫 집은 세를 줄 수 있게끔 지어졌다. 창문은 있으나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천정에도 창문을 냈지만 그것 역시 비나 한기를 막기 위해 슬레이트 지붕 쪼가리로 덥어 빛이 안 들어오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낮에도 겨우 형체나 알아보는 정도여서 불을 켜고 있어야 했다. 문간방 옆의 부엌은 말이 좋아 부엌이지 수도 시설도 없는 광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물론 불을 때는 아궁이는 있었다). 요즘 같으면 그런 집에 세 들어 살겠다고 올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우물이나 수도도 공동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그게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탁기도 있는 사람이나 쓸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까. 찬장 놓을 자리는 있으나 낮은 부뚜막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물도 맘대로 쓸 수 없으니 물 쓸 일은 모두 마당에 나와 해결해야 했다. 그래도 꼭 부엌에서 물을 써야 하는 일이 있다. 그럴 경우 셋방 아줌마는 양동이의 물을 한 가득 퍼 가져가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냄비에 밥을 안쳤다. 나중에 아줌마는 그 일이 너무 번거로웠는지 엄마에게 큰 항아리를 빌려 부엌 한쪽에 세워두고 거기에 물을 아구까지 채우고도 한 양동이의 물을 더 가져다 놓았다. 모르긴 해도 그 아줌마는 항아리에 물이 채워지면 배가 불렀을 것이고 줄어드는 것을 보면 아까워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아줌마의 모습이 애잔했다.     


부엌도 부엌이지만 욕실과 화장실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지 싶다. 내가 자랐을 때만 해도 욕실이 생략된 집이 많았다. 친가나 외가댁은 물론이고, 내가 살던 집은 목욕탕이 있긴 했지만 안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지어져 있어 슬리퍼를 신고 가야 했고 그나마 추운 겨울엔 감기 걸릴 것을 걱정해서 부엌에서 씻은 적도 있다. 그렇게 부엌은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펄펄 끓는 물과 빨간 고무 대야 하나만 있으면 부엌에서의 목욕은 언제든 가능했다. 


그 옛날 변소는 왜 그리도 멀고 무서웠던지. 변소를 왜 변소라고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렸을 적 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나와 비슷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집에 처음으로 놀러 가서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 아이의 집은 변소가 아닌 화장실에 양변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방광이 터져나가기 직전인데도 그 위에 앉아 일을 보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왜냐하면 안 써 봤기 때문이 아니라 써 봤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큰 고모댁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집 역시 양변기를 사용했다. 멋모르고 위에 앉아 일을 보다가 곤혹을 치렀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작동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어린이 변기 시트가 있다지만 그땐 그게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언니의 허락을 받고 그 집 부엌 수채 구멍에 일을 해결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이사를 했는데 그때까지 기와집을 벗어나 소위 말하는 양옥으로 이사를 했다. 얼마나 좋던지. 하지만 난 그때도 양변기에 대한 트라우마를 벗어버리지 못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양변기에 앉았다 일어났을 때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내 몸이 자라 있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실내 한 공간에 부엌과 변소와 목욕탕이 함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야 비로소 부엌은 주방으로 변소는 화장실이란 이름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집의 구조에서 부엌과 변소는 가장 홀대받던 공간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집은 무엇을 중심으로 발전했을까. 모르긴 해도 마루와 안방이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한옥도 그렇고 기와집도 그렇고 마루는 마당과 턱이 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높이가 높으면 높을수록 신분의 높음을 나타내지 않았을까. 가장 큰 방을 안방이라고 했던 것도 대가족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문화였으니 그랬겠지만 거기에 가부장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거기에 여자를 배려한 주방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양옥의 시대를 맞으면서 부엌과 변소가 실내에 들어왔다는 것은 여자와 어린아이 심지어 노인을 배려한 획기적인 주거 시스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은 해가지면 전기도 아낄 겸 거실에 불을 켜놓는 것이 아니라 주방에 불을 켜놓았다. 그때 처음 쓰기 시작한 식탁은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 언니나 오빠가 숙제나 시험공부를 했다.  


그러다 거의 14, 5년 만에 집을 아예 허물고 새롭게 지었다(물론 그안에 한 번 크게 수리를 한 적이 있긴 하다). 공교롭게도 그때 살던 동네가 개축 붐이 일어났는데 그 바람을 타고 우리 집도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 우리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는데 집을 새로 짓고 그전까지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 집에서 살았는지 처음 알았다. 처음 이사 올 때 그렇게 좋아라 했던 집이었는데 전혀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왜관에만 신경을 썼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주거 시스템이 발전 단계에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선 마당을 대폭 줄인 게 좀 아쉽긴 했지만 대신 실내 공간은 그만큼 늘어났다. 안방과 거실은 넓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지만 주방을 넓힐 생각을 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예전의 화장실이 있던 자리에 배치를 했다. 그러면서 큰 창문을 두 개나 내었다. 그 창문을 통해 동네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여의도 63 빌딩까지도 다 보였다. 그런 것을 예전에 화장실 자리로 삼았다니. 알다시피 어느 집도 화장실 창문을 크게 내는 경우는 없다. 대신 예전에 주방이 있던 자리에 화장실 겸 욕실을 만들었다. 화장실 창문 치고는 좀 크게. 또 그렇게 생각하니 예전 집 주방 창문도 그리 크지 않았던 게 생각이 났다. 통풍을 위해서라도 주방창문은 크게 내도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조그마하게 지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 집은 소위 말하는 집 장수가 지었는데 그렇게 훌륭한 주방을 짓고도 그는 집을 잘 지었느냐 못 지었느냐는 화장실을 어디다 지었느냐로 알 수 있는데 이 집은 좋은 위치에 지어졌다고 만족해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화장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집 장수의 말에 금방 수긍할 수 있지만 소설 속 우치다의 말과는 좀 차이가 있어 보이긴 하다.


집 설계에 아버지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은 역시 살아 본 사람이 더 잘 아는 법이다. 더구나 이제 새로 지으면 또 언제 다시 짓게 될지 모르니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계가 좋으면 뭐하겠는가. 여기저기 공사를 날림으로 해서 짓고도 하자 보수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주방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잘 지어서 한동안 우리 집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아버지는 설계 일을 했어도 잘하셨을 것 같다. 


요즘엔 우리나라도 주방에 꽤 공을 들이는 추세인 것 같다. 그래서 주방을 아예 제2의 거실이란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진 것 같은데 이게 과연 소설 속 우치다가 했던 말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TV를 보니 주방 한쪽 귀퉁이에 조그만 책상과 독서용 스탠드를 놓고 나름의 운치를 살렸는데 꽤 괜찮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묘하겠도 나는 그 옛날 셋방 아줌마가 부엌에 갔다 놓았던 물항아리와 오버랩이 되고 말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뀡 대신 닭이라고 현실적으론 그게 불가능하니 주방에 그런 조그만 공간이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낫겠지만 그래도 왠지 애잔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이 여전히 주방 한쪽 귀퉁이라니. 원래 여자는 그렇게 애잔한 존재였던가.


다시 한번 우치다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보자. "...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 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 뭔가 철학이 느껴지는 말이다. 나 역시 그 사람이 아무리 능력자고 잘난 사람이라도 일상을 잘 살지 않는 사람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제시간에 자고, 제시간에 밥을 먹고, 빨래며 청소를 미루지 않고 일정 정도의 청결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건축가에 빗대면 저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또 집을 짓는 일은 당연히 그 안에 들어가 사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 공간을 이해하지 않고 서야 어떻게 집을 짓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치다의 말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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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9-11-25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 화장실이에요. ^^

stella.K 2019-11-25 19:28   좋아요 0 | URL
작가님은 서재 아니신가요?ㅎㅎ
남자들은 대체로 그런 것 같긴 하더라구요.
저의 돌아가신 아버지도 화장실을 오래 사용하곤 하셨죠.^^

cyrus 2019-11-25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2~93년에 공동 화장실이 있는 집에 살았어요. 그러니까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고, 우리 집 옆집에 사는 사람도 사용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그 화장실이 변소인지 양변기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94년에 이사한 집의 화장실에 양변기가 있었어요. 화장실이라는 곳은 친숙하면서도 생각보다 무섭게 느껴지는 작은 규모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제가 예민해서 그런지 양변기 있는 화장실에 혼자 가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stella.K 2019-11-25 20:54   좋아요 0 | URL
와,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나도 그 비슷한무렵 교회 청년부에서
봉사활동을 나갔는데 강남의 한 빈촌을 간 적이 있었어.
알지 모르지만 강남이 모두 잘 사는 건 아니거든.
빈부 격차가 심하지. 그곳 화장실이 공동으로 쓰는 데였지.
난 무서워서 한 번도 못 가봤어.
넌 양변기인데도 무서웠구나. 난 재래식 변소가 무서웠고
양변기는 싸이즈가 안 맞아서 물이 옆으로 세고 그랬거든.ㅎㅎ

빵굽는건축가 2019-11-2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밑줄그어가며 읽었던 책 이야기가 나오니 댓글 달지 않을 수 없네요
동료 건축가들에게 권해주는데 재미가 없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고
겨우 다 읽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저는 너무나도 설레이며 읽었던 책이에요
특히 책에 등장하는 요시무라준조 선생님의 작품들이 나온 오래전 책들을 몇 권 구입해서 볼 정도로 재미나게 보았던 책이에요 반가워요 ^^ 샘

stella.K 2019-11-25 21:06   좋아요 0 | URL
앗, 요시무라준조 선생의 책이 몇 권 있나요? 혹시 추천 좀...
솔직히 평이 좋아서 읽고 있긴 하는데 조금 지루하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묘사라던가 문체가 정말 좋더군요.
글이 보통이 아니라 끝까지 읽어 보려구요.
이거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영화는 안 나오네요.^^

빵굽는건축가 2019-11-25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선생님 요시무라준조 선생의 책은 단행본은 찾기 어려워서 몇권의 잡지를 구입해서 보고있어요. ^^ 맞아요 문체랑 묘사가 좋아요. 제가 예전에 설계사무실 다니던 풍경이랑 그런 설렘이 있는 책이에요. ^^

니르바나 2019-11-25 2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정말 잘 쓰셨네요.
이를테면 스텔라님 어릴 때 그 시절 집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한편의 건축 문화사네요.
살펴보니 요즘도 이달의 리뷰, 페이퍼를 시상하던데
이번 달에는 스텔라님의 이 글이 뽑혀야 된다고 알라딘측에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이것저것 잔뜩 상품을 집어 넣은 글만 이달의 리뷰, 페이퍼로 시상할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글을 뽑아야 된다고 거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stella.K 2019-11-26 14:36   좋아요 0 | URL
아, 니르바나님 고맙습니다. 님의 칭찬을 받으니까 으쓱한데요?ㅎㅎ
그래도 뭐 알라딘이 작심하고 쓴 글은 대체로 주는 편 같더라구요.
이렇게 니르바나님이 칭찬하실 정도면 다음 달에도 무난히 받지 않을까요?ㅋ

이 책 좋더라구요. 니르바나님께도 어울리는 책은 아닐까 합니다.
고맙습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2-0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읽어 보니 정말 연작같아요. ^^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저는 집에서청소 빨래 특히나 화장실청소 전문이에요. ^^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읽다 멈추었는데 다 읽어 보셨나봐요. ^^

stella.K 2019-12-05 15:20   좋아요 1 | URL
ㅎㅎ 아니어요. 전 버지니아 울프는 오래 전 도전했다가 실패했죠.
자기만의 방은 워낙에 유명해서...ㅠ

빵굽는건축가 2019-12-05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울프의 글을 읽다가 접어놓은지 1년이 되어가요. ^^
 

1.  혹시 집에서 무슨 소리 나지 않나요?


며칠 전 책 박스를 들어냈다. 젊은 날 발품 팔아 모은 책들이었다. 그땐 지금같이 인터넷으로 책을 사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꼭 발품을 팔아야 했다. IMF가 나고 살던 집을 전세로 돌리고 2년쯤 더 산 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 4백 권쯤 되는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안 하고 라면 박스 몇 개 인지도 모를 박스에 담아 이사를 왔을 땐 그것을 풀게 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거실에 붙박이용 수납장이 있으니 거기에 꽂아두면 된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말한 붙박이용 수납장은 그리 큰 것도 아니어서 반도 못 들어 가게 생겼다. 설령 꽂는다고 해도 그럼 잡동사니 물건들은 어디에 둔단 말인가. 모르긴 해도 엄마는 내가 그 책 박스를 풀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또 푼다고 해도 언젠간 엄마는 읽지도 않을 책을 뭐하러 꽂아 두냐며 시마다 때마다 나를 괴롭게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결국 알아서 하란 뜻으로 알고 이사 오던 당일 방구석에 박스채 쌓아 두었고 20년 동안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동안 난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여전히 좋아하는 책을 사서 그 박스 위에 몇 겹으로 책탑을 쌓았다. 그것도 부족해 방 여기저기 빈 공간만 있으면 역시 책탑을 쌓았다.  


물론 그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건 아니다. 더러 안 보는 책은 사이판에 사는 친구에게도 보내기도 했고, 주민센터 도서관에도 기증하고, 또 중고샵에 팔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 사이 엄마는 안 보는 책은 더러 버리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난 그때마다 엄마에게도 취미생활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취미생활이 있는 거라며 맞서기도 했고, 때로는 완곡하게 안 보는 책은 그런 식으로 해결한다며 엄마의 말문을 막곤 했다. 그래도 표가 나지 않으니 중요한 건 바로 이사할 때 데리고 온 책 박스를 해결하는 것이다.


엄마는 쌓아 논 책 박스 때문에 방바닥이 주저앉을 거라고 했다. 처음엔 책 박스를 해결하지 않으니 엄마가 수를 쓴다고 생각했다. 집이 얼마나 허술하게 지으면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방바닥이 주저 않는단 말인가. 난 그야말로 머리털 나고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는 지인은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에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긴 있더란다. 책을 하도 많이 모아 방구들이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순간 난 아찔하다 못해 현기증이 났다. 엄마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가 짐짓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 지인은 아차 싶었는지 옛날 일본식 집들은 목조 건물이 많지 않냐며 지금은 철근으로 지으니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우리 집도 오래전에 지어진 집이고 보면 아무리 철근으로 지어졌다고는 그러지 말란 법도 없겠다 싶었다. 더구나 오래전부터 집에선 소리가 나고 있었다. 사람의 몸도 오래 쓰면 여기저기서 뚝뚝 소리가 나는 것처럼 집도 그런 것일 텐데 점점 뭔가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휘고 기우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엄마 말대로 저놈의 책 박스를 들어내 집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할 필요가 있을 것도 같았다. 더구나 단독주택이 아니고 공동주택이고 보면 안전에 서로서로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2. 첫인상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그렇게 마음먹어도 책 박스를 드러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마음만 먹었다뿐 실행하기는 족히 2, 3년은 걸렸던 것 같다. 책이 아까운 건 고사하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책이야 요즘 새롭게 나온 책이 더 좋지 옛날 헌책이 더 좋겠는가. 그럼에도 몸 쓰는 일엔 그다지 재지 못한 나는 엄마의 방구들 내려앉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현기증을 감수할망정 행동으로는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그래도 올봄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 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이번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올해 들어 몸 여기저기가 안 좋아졌고, 급기야 여름이 시작되면서 병원을 다니느라 책 박스를 치운다는 건 물 건너갔다. 하다못해 가끔씩 중고샵 나가는 것도 지난봄 이후 아예 전폐하다시피 했는데 무슨 수로 책 박스를 치운단 말인가. 그래도 열심히 병원을 다닌 덕분에 지금은 많이 낫다.


그렇게 몸이 나아지니 그동안 미뤄뒀던 책 박스 치우는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언제 전화를 하면 좋을까? 이번 주냐, 다음 주냐 하다가 결국 더 이상 앞뒤 재지 않고 헌책방 한 곳의 연락처를 알아 내 불쑥 전화를 해 버렸다. 책방 아저씨는 내일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오겠다고 했다. 그 시간이라면 나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자꾸 몇 박스냐고 묻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온다고 해 놓고 안 오는 건 아닐까 좀 불안하긴 했지만 그냥 믿어보기로 했다. 


아저씨가 오는 시간에 맞춘다면 난 10시 반 정도부터 책탑을 해체하는 작업에 들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저씨가 책 박스를 들어낼 테니. 중고샵에 팔거나 주민센터에 기증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오래된 책을 받아 줄리 없을 것 같고 그냥 헌책방에 헐값에라도 넘기는 것이 낫다. 나는 쌓아 논 책들 중에도 다시 안 볼 책을 추려 책 박스 나갈 때 딸려 보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을 했는데 순간 아찔했다. 내가 일을 너무 쉽게 본 것 같았다. 난 그저 아저씨가 책 박스를 가지고 나가기 편하게 길을 터주면 된다고 생각했고 쌓아 논 책이 얼마 안 되는 줄 알았다. 뭐든 일을 할 땐 쉽게 생각해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쉬운 일도 평생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웬걸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한 움큼의 책을 내려보았는데 순간 식은땀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때까지 쌓아놓은 책이 왜 그리도 크게 보이는지 나는 한 없이 작아져 이러다 책에 파묻혀 내일 아침 신문에 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책 정리하다 책에 깔려 죽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헌책방 아저씨가 들이닥쳤다.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오신다더니..."

시계는 이제 막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장은 끼워 맞추듯 웃음기 없는 얼굴로,

"11시잖아요."     

어쩐지 빨리 서두르고 싶더니 오히려 한발 늦은 셈이 됐다. 책방 아저씨는 5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데 진중해 보이는 것이 말수도 없어 보였다. 모르긴 해도 아저씨도 책을 좋아하다 이 업종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웬만치 말수가 있으면 이런저런 얘기를 시도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상대가 말수가 있고 없고를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뭐 꼭 그래 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 적지 않은 책 박스에 놀라며 언제부터 모은 책이냐고 물어 볼만도 한데 아저씨는 이런 일을 많이 해 봤다는 뜻인지 아니면 남의 일엔 일체 관심이 없다는 뜻인지 묻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그의 말수 없음이 싫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말 많은 것 보다야 낫지.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을 아저씨가 대신했고, 책 박스를 내가느라 몇 번씩 오르내릴 때 나는 나대로 얼른 안 볼 책을 추려 박스에 담았다. 무슨 책을 추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마지막으로 담은 책이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김훈의 책은 여간해서 쉽게 팔면 안 될 것만 같은데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문득 그 아저씨도 자신의 밥벌이가 지겨울 때가 있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원래 취미로 했던 일이 밥벌이가 되면 지겨운 법이니까. 


3. 나는, 유다일까?


책 박스를 얼추 다 나가고 정산할 순간이 왔다. 이럴 경우 책 주인이 돈을 받는 것으로 아는데 그동안 뭐가 바뀌어 오히려 수거료를 내야 하는 건 아닐까 잠시 불안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솔직히 난 이 부분에 대해 전날 전화를 끊고 생각이 많았다. 돈을 받는다면 얼마를 받을까? 돈에 욕심내지 말자. 이렇게 실어 가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얼마를 주건 주는 대로 받기로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킬로당 50원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계산하면 만원이라는 것이다. 전날 생각했던 것도 있고 하니 받기야 받는다만 역시 마음 한쪽이 씁쓸했다. 평생 모으고, 평생 간직한 책이 고작 만원이라니. 아깝다고 다시 원상 복귀할 수도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에 과외로 담은 책은 그냥 둘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그 책들은 비교적 최근 것이라 중고샵에 팔던가 기증해도 되는 것들이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 전날 밤까지만 해도 이 많은 책들이 내일이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뭔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을 사 모으느라 들인 시간이며, 발품이며 책 한 권 한 권에 깃들어 있을 만든 사람의 영혼을 생각하면 이별식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와 달리 정산할 때가 오자 돈을 생각하고 있으니, 마치 한때는 열렬하게 예수님을 존경했다 은 30냥에 판 유다와 내가 뭐가 다를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 책들이 예수님과 동급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때는 나의 손떼를 탔고, 그 책을 구입해 뿌듯해한 적도 있을 텐데 이렇게 팔아먹고 얼마를 받을까를 생각하고 있다니. 차라리 돈을 아예 안 받는 것이 그 책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을까.  


내 손을 떠났으니 그 많은 책들은 분쇄기에서 종이조각이 되거나 운이 좋다면 아저씨의 책방 한 귀퉁이를 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었으니. 이제 책에 욕심도 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를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지금도 죽을 때까지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이 지금도 쌓여있다.  


4. 다시 읽지 않기 위해 읽는 책에 관하여


책 박스들이 집을 나갔으니 지금부터는 다시 책을 정리해야 한다. 그날 나는 몸이 다 나은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다하지 못하고 두 번인가 세 번을 쉬어가며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거의 하루 종일 했다. 엄마는 내가 책 박스를 없애버린 것이 속이 시원했던지 위로 반, 놀림 반으로 "네가 고생이 많다."를 연발했다. '봐라. 네가 그리도 좋아했던 것들이 너를 얼마나 힘들 게 하는지를.' 엄마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과연 책 때문에 정말 방구들이 주저앉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도 파인 흔적은 없다. 역시 엄마는 허풍의 여왕 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방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줄 필요는 있었다. 책 박스가 있을 때 한 번 높이 쌓인 책은 웬만해서 건드리지 않았다. 어쩌다 무슨 책이 생각나서 보려면 의자를 놓고 올라가야 한다. 그러다 실수로 잘못 건드려지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이제 책 박스를 치웠으니 그런 일은 없다. 올려다봐야 하는 것이 이제 내려다 보인다. 


정리를 하면서 평생 200권의 책만을 소유했었다던 수필가 피천득 선생을 생각했다. 그가 평생 2백 권의 책만 읽었을까. 그도 젊었을 때 한때는 책에 대한 욕심이 누구 못지않았을까. 더구나 그땐 책이 귀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전에 내었던 욕심들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그의 남은 생은 평생 함께할 책과 그렇지 않을 책을 속아내는 것으로 삼지 않았을까. 그의 지의 정원은 그렇게 가꾸어졌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영원하지가 않다. 언제 죽을지 모를 목숨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적당히 모으고 적당히 버리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말마따나 죽으면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죽게 되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유품 정리를 대신해주는 업체도 있다지만 있을 때 잘하랬다고 조금조금씩 정리해 주면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요즘 책은 얼마나 근사하고, 예쁘고, 실용적이며 합리적으로 잘 나오는가. 한마디로 탐스럽다. 정말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만 같다. 사실 그때 버린 책도 읽기보다 장서하다 버린 책이 태반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지식의 축적만을 위한 것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독서를 위해서건 장서를 위해서건 우린 어쩌면 평생 읽지 않을 책을 위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이건 또 얼마나 불가능한 목표일까. 인생이 신비로운 건 해 봤자 할 수 없고 해 낼 수 없는 일에 도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평생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밥을 먹는 건 반드시 굶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위해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날 즉 죽음을 위해 먹는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면 지나친 말장난이 되려나.) 


분명 피천득 선생이 속아낸 책들 중엔 책으로서의 가치나 위용이 결코 떨어져서마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날 내 보낸 책들 중에 여전히 아직도 볼만한 책들이 다량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안 볼 책으로 분류가 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연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때는 군침 삼키도록 좋아해 놓고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날 버리는 것이 어디 있냐고 책들이 아우성을 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며 배신의 존재인 것을. 지금도 내 방엔 몇 권은 주민센터에 보내고, 몇 권은 다시 안 볼 책으로 중고샵에 내다 팔 책이 보인다. 그리고 아직 손도 못 댄 책들이 있고 새롭게 관심이 생겨 보고 싶은 아직 사지 않은 책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수로 200권만 가질 수 있을까. 이것도 수양하는 마음이 돼야 가능한 걸까.  


그렇지 않아도 저질체력에 책을 정리하느라 요 며칠 후유증에 시달렸다. 아무래도 주인에게 배반당한 책들이 저주를 퍼붓는가 보다. 미안하다. 그러나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너희들은 한때나마 서점에 꽂히기도 하고 내 덕분에 나름 장수하지 않았니. 세상엔 빛도 보지 못하고 잊힌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좋다고 사 들인 책도 언젠간 너희들과 비슷해질 거야. 그러니 너무 섭섭해 말고 너희들은 너희들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렴.   


가을이 돼서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책을 내 보내서 그런지 다소 울적한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요 며칠 지인들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다. 난 책에서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할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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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2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킬로그램을 걷어치우셨군요. 대단한 일입니다.
그 빈자리에 다시 책이 차곡차곡 꽂히기를 기원해야 하나 그러지 않으시기를 기원해야 하나 고민되는군요 ㅎㅎㅎㅎ
사이러스님 같았으면 얄짤없이 또 그 자리를 책으로 덮었겠지만.

stella.K 2019-10-28 19:14   좋아요 0 | URL
ㅎㅎ 스요님이나 사이러스에 비하면 전 세발의 피죠.
그런데 독서라는 건 누구와 비교할 건 아닌 것 같아요.
많이 읽지도 못하면서 책 욕심은 왜 내나 지금은 많이 자제하고 있는데
그래도 어느새 쌓이는 거 보면 신기해요.^^

희선 2019-10-2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책을 보내서 시원섭섭하실 듯하네요 잘 안 본다 해도 책은 버리기 아깝기도 해요 stella.K 님은 헌책방에 팔아서 다른 누군가한테 갈지도 모르겠네요 조금씩 정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가는 게 있으면 들어오는 것도 있겠지요


희선

stella.K 2019-10-28 19:1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천천히 들어오는 것 같아도 나가는 속도가 들어오는 속도를
못 잡더군요. 이젠 장서 보다 진짜 독서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ㅎㅎ

서니데이 2019-10-29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정리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저도 몇달전에 정리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이나네요.
새 책은 계속 나와서 사다보면 금방 늘어나는 것 같아요. 꼭 읽고 싶은 책만 사야지 해도 그렇더라구요.
요즘 날씨가 많이 차가워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하루되세요.^^

stella.K 2019-10-30 16:34   좋아요 1 | URL
아, 서니님도 정리하셨군요.
할 때는 고생인데 해 놓고나면 뿌듯하긴 하더라구요.
그래봐야 그것도 잠깐이지만.ㅠ
서니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레삭매냐 2019-10-30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G당 50원은 너무 헐하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긴 중고샵에 내다 파는
것도 또 주민센터에 보내는 것도 참
그렇더라구요.

요즘엔 공주에서 책방하는 동생에게
독서모임에서 만날 때보다 그리고
가끔 박스에 싸서 보내곤 한답니다.

책덜기의 지겨움이여... 그런데도 오늘
또 하나 사들였네요.

stella.K 2019-10-30 16:19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놀랐어요.
근데 워낙 오래된 책이라 수거료 안 달라고 하는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죠.
자꾸 물어보는 거 보면 그 아저씨도 그런 건 딱히
달갑진 않은가 봐요. 그냥 그때 그때 매매할 수 있는
비교적 최근 책을 선호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언제까지나 쌓아둘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죠.
그거 나가고 나서 저도 또 무슨 책을 읽어보나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죠.ㅠ

cyrus 2019-11-0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도 안 읽은 책이 많아서 버리지도 팔지도 못하고 있어요... 읽긴 읽어야 하는데... 딴 짓(특히 다른 책 읽기)만 하고 있어요... ㅎㅎㅎㅎ

stella.K 2019-11-01 18:47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네가 쓴 댓글 중 가장 안 어울리는 댓글이다.ㅋㅋ
네가 그러면 난 어떻겠니?
근데 내가 그렇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알라딘을 하면서부터야.
개인 이벤트하고, 서로 생일 챙겨주고, 안 보는 책 받고 하다보니
욕심이 생기더군. 알라디너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알라딘은 참 좋은 동네야. 그지?^^

amuzing 2019-11-04 0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책 내용인줄 알았어요.
저 역시 집에 책들이 너무 많아요.아이 책들로만 3천권이상
신랑이 거실에 제발 쇼파 하나 들이자고 하지만...
거실부터 방마다 한쪽 벽을 메운것들은 오직 책이죠.
정말 활용해보고자 사놓았던 육아 교구활동 도서부터 여러 활용 도서책들까지
아이들은 커가는데 ㅋㅋ 그 모든것들의 활용은 멈춘 상황
ㅎㅎ 버려야할 타이밍? 아니면 늦은감은 있으나 활용하고 버려야할 타이밍?
심히 괴로운 작업
버리기...저도 곧 해야할 상황이다보니 확 마음에 와 닿네요.
하지만서도 그럴라하니 왜 맘이 아픈지....ㅎㅎㅎㅎ

stella.K 2019-11-04 18:36   좋아요 0 | URL
와우, 3천권요! 굉장한데요?
사실 책 버리기가 쉽지는 않지만 언제고 마음의 준비가 되시면
뒤돌아 보지 마시고 확 버리십시오.
좋은 책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고 다시 채우는 건 금방이랍니다.^^

카알벨루치 2019-11-30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왜 제 좋아요가 없죠? 분명히 전에 봤는데....헐~ㅜㅜ

stella.K 2019-12-02 14: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럴수도 있지요. 그래도 늦게나마 회개하는 마음으로다
해 주신 게 어딥니까? 그저 감사할다름입니다.ㅋㅋ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월간 샘터가 올해를 끝으로 잠정 휴간에 들어간다고 한다. 1970년 4월에 창간해서 한때는 70만부(?)까지 찍어냈던 장수 월간진데 지금은 2만부 팔기도 쉽지 않아 그 같은 결정을 했다고 한다.

 

나야 워낙에 잡지를 잘 안 읽어 미처 사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격도 싸서 웬만한 커피한 잔 가격 정돈데 휴간될 거라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든다. 그나마 폐간이 아니니 다행이랄까. 하지만 이렇게 휴간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동안 이해인 수녀, 고 최인호 작가 등 많은 작가들이 샘터를 거쳐 간 것으로 아는데 지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응원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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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2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0-23 14: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실제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표지가 진짜 맘에 들더라구요.
저도 무심했어요. 이렇게 장수하는 잡지가 몇 안 될 텐데
평소 땐 관심도 없다 이런 소식 들으면 아쉬운지 모르겠어요.
속죄하는 마음으로 휴간에 들어가기 전에 사 봐야 할 것 같아요.ㅠ

니르바나 2019-10-2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월간 샘터를 20년 정기구독했던 사람으로 이건 참 아쉬운 소식입니다.
샘터가 70만 구독자가 있었던 시절은 장리욱박사, 피천득교수, 법정스님 등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필진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원고가
매달 가벼운 가격으로 독자들에게
짧은 글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던 때라고 생각됩니다.
잡지를 만들었던 샘터 편집실은 문필가의 산실이기도 했지요.
오증자, 정채봉, 정찬주 등 샘터 편집실 출신으로 작가, 기자, 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긴 분들이 다 모인다면
샘터는 좋은 잡지이자 우리 문화계의 산실이기도 한 셈이죠.
이 자리를 만든 장본인은 물론 초대 발행인이었던 김재순 선생이시구요.
샘터가 휴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잘 지내시죠.^^

stella.K 2019-10-23 15:15   좋아요 0 | URL
오, 20년 구독...?!
대단하시네요. 니르바나님 같은 분들 때문에라도 계속 나와야
할 텐데 이렇게 휴간이라니...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을까요?
얼마 전, 옛 문필가들의 수필 모음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좋더군요. 예전엔 시큰둥했는데.
어디 이런 수필 없나 기웃거려 보는데 샘터도 읽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몰라봤네요.

전 이상하게도 묘한 징크스가 있는 것 같아요.
좋아지면 없어져 버리는 거.
혹시 M 본부에서 했던 <문화사색>이란 프로를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걸 작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폐지됐어요.
햇수만으로 무려 15년을 했다는데. 그러더니 샘터도 그렇게된 셈이됐어요.
있을 때 잘 하라더니...ㅠ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도 잘 지내시죠?^^

hnine 2019-10-23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사 보고서 많이 아쉬웠어요. 고3때 학력고사 보고 집에 칩거하면서 한권 두권 사모으기 시작하여 저또한 수십권 모아두었던 경험이 있거든요. 한강 작가가 그때 샘터 기자로 일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저 역시 폐간이 아니라 휴간이라고 해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stella.K 2019-10-23 15:22   좋아요 0 | URL
와, 한강 작가가요...?
알고보면 샘터가 조그만 해도 저력있었네요.
모아두신 거 지금도 가지고 계신가요?
지금 나오고 있는 잡지들도 언제 폐간될지 모르니
좋아하는 잡지 잘 모아둬야 할 것 같아요.
h님의 식견이 부럽네요.

수이 2019-10-2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터 저도 정말 좋아했는데 아 가슴 아프네요. 휴간이어도.

stella.K 2019-10-23 15:23   좋아요 0 | URL
그래도 희망을 버리시면 안 되요 수연님.
이렇게 좋아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언제고
또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땐 저도 애독자가 되어보겠습니다.ㅠ

blanca 2019-10-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아프네요. 저도 종종 사보다가 최근들어 잊고 있었어요...

stella.K 2019-10-23 15:43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e북으로는 옛날 것도 나오는 모양인데
종이책으론 세 권 정도는 확보할 수 있겠더군요.
저도 좀 사 봐야겠어요.
빠른 시길 내에 다시 나오길 기대해 봐야죠.ㅠ
 

며칠 전, 내년부터 반려동물을 인구수에 포함시킬거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게 과연 실현될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 반려동물에게도 주민등록을 해야할 것이고, 죽었다고 해서 몰래 야산 같은데 묻는 행위는 금지될 것이다. 그러면 주인이 벌금을 물거나 징역을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새끼를 낸다고 임신을 촉진시키는 업주의 행태도 당연 벌을 받겠지. 대신 반려동물도 정식적인 결혼 절차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의 관계인만큼 사돈지간도 맺어야 할 것 같고. 이런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라도 과연 인구수에 포함을 시킬건지 궁금하다. 정말 우린 반려동물, 반려동물하면서 정작 얼마나 준비된 반려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지런한 마태우스님이 또 책을 내셨구나. 이번엔 개에 관한 책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마태우스님은 여섯마리 개와 함께 살고 계신다.(개인적으로 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신다는 건 알았지만 여섯 마리나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페니키즈다. 북트레일러를 보고 알았다.

 

우리나라가 어느 덧 반려견 천만 시대란다. 그러면 뭐하겠는가? 그에 맞게 우리는 개를 정말 잘 키우고 있는 걸까? 마태님은 단호히 웬만하면 키우지 말란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나도 그에 동감한다. 뭐라고 쓰셨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 책도 좋은 결과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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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09-1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추석명절 잘 지내셨나요.
추석날 그 보름달은 아니지만 밝은 달님께 빕니다.
스텔라님 몸과맘 모두 더욱 건안하시길...

stella.K 2019-09-17 14:43   좋아요 0 | URL
흐흑~ 감사합니다. 제가 뭐라고...ㅠㅠ
니르바나님도 명절 잘 지내셨죠?
제가 먼저 인사 드렸어야 하는 건데...
아침 저녁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구요,
늘 강건하시길 저 또한 빌어드립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9-09-1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려동물을 인구수에 등록하는 것보다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동물학대죄 강화예요. 지금의 법은 처벌 수위가 약해요.

stella.K 2019-09-17 14:46   좋아요 0 | URL
맞아. 그게 어떻게 해서 나온 얘긴지 모르겠어.
그것 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게 있는 것 같은데
바로 그걸 거야.
아직도 동물을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잖아.

레삭매냐 2019-09-1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마태우스님이 멍멍일 여섯 마리나
키우시는군요. 대단하시네요 ~~~

다만 저희 동네 반려동물들을 키우시는
분들은 비닐봉투를 멋으로만 들고 다니
셔서 멍멍이 X 천지더라구요 ㅠㅠ

며칠 전에 산책하다가 밟고 미끄덩!~
할 뻔 했지 뭡니까 ...

stella.K 2019-09-17 18:15   좋아요 1 | URL
헉 밟기까지...?! 어휴~ㅋㅋㅋ
이거 웃으면 안 되는 건데.ㅠ
그래도 안 넘어지시길 다행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넘하네요.
적어도 자기 강아지는 자신이 책임져야지
그런 기본도 안 되면서 반려견은 왜 키우는지 모르겠네요. ㅉㅉ

마태우스 2019-09-25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K님, 이런 멋진 페이퍼를 쓰시다뇨. 그래서 이 즈음해서 세일즈포인트가 확 올라갔군요! 정말 감사드려요. 근데 이 나라엔 자격없는 이들이 너무 많이 개를 키우는 것 같습니다...개탄스러워요.

stella.K 2019-09-26 15:50   좋아요 0 | URL
아, 아닙니다. 얼마 전 그런 보도를 접하고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던 중 마태님께서 새책을 내셔서 반가운 마음에 갈무리 해 보았습니다.
참 부지런 하십니다. 근데 조만간 TV에서 또 뵐 것 같더군요.
꼭 챙겨 보겠습니다.^^

북프리쿠키 2019-09-2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려견에 대한 마음가짐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글구 예전에 키워봤는데 한달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던데ㅠ.

stella.K 2019-10-03 20:05   좋아요 1 | URL
헉, 왜 답글을 안 썼을까요? 요즘 제가 이렇습니다.ㅠ
쿠키님도 개를 키워보셨군요.
정말 개를 웬만한 책임을 갖지 않으면 못 키우죠.
애 키우는 것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