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혹시 집에서 무슨 소리 나지 않나요?


며칠 전 책 박스를 들어냈다. 젊은 날 발품 팔아 모은 책들이었다. 그땐 지금같이 인터넷으로 책을 사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꼭 발품을 팔아야 했다. IMF가 나고 살던 집을 전세로 돌리고 2년쯤 더 산 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 4백 권쯤 되는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안 하고 라면 박스 몇 개 인지도 모를 박스에 담아 이사를 왔을 땐 그것을 풀게 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거실에 붙박이용 수납장이 있으니 거기에 꽂아두면 된다고 했으니까.


엄마가 말한 붙박이용 수납장은 그리 큰 것도 아니어서 반도 못 들어 가게 생겼다. 설령 꽂는다고 해도 그럼 잡동사니 물건들은 어디에 둔단 말인가. 모르긴 해도 엄마는 내가 그 책 박스를 풀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또 푼다고 해도 언젠간 엄마는 읽지도 않을 책을 뭐하러 꽂아 두냐며 시마다 때마다 나를 괴롭게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결국 알아서 하란 뜻으로 알고 이사 오던 당일 방구석에 박스채 쌓아 두었고 20년 동안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동안 난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여전히 좋아하는 책을 사서 그 박스 위에 몇 겹으로 책탑을 쌓았다. 그것도 부족해 방 여기저기 빈 공간만 있으면 역시 책탑을 쌓았다.  


물론 그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건 아니다. 더러 안 보는 책은 사이판에 사는 친구에게도 보내기도 했고, 주민센터 도서관에도 기증하고, 또 중고샵에 팔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 사이 엄마는 안 보는 책은 더러 버리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난 그때마다 엄마에게도 취미생활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취미생활이 있는 거라며 맞서기도 했고, 때로는 완곡하게 안 보는 책은 그런 식으로 해결한다며 엄마의 말문을 막곤 했다. 그래도 표가 나지 않으니 중요한 건 바로 이사할 때 데리고 온 책 박스를 해결하는 것이다.


엄마는 쌓아 논 책 박스 때문에 방바닥이 주저앉을 거라고 했다. 처음엔 책 박스를 해결하지 않으니 엄마가 수를 쓴다고 생각했다. 집이 얼마나 허술하게 지으면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방바닥이 주저 않는단 말인가. 난 그야말로 머리털 나고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는 지인은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에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긴 있더란다. 책을 하도 많이 모아 방구들이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순간 난 아찔하다 못해 현기증이 났다. 엄마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가 짐짓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 지인은 아차 싶었는지 옛날 일본식 집들은 목조 건물이 많지 않냐며 지금은 철근으로 지으니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우리 집도 오래전에 지어진 집이고 보면 아무리 철근으로 지어졌다고는 그러지 말란 법도 없겠다 싶었다. 더구나 오래전부터 집에선 소리가 나고 있었다. 사람의 몸도 오래 쓰면 여기저기서 뚝뚝 소리가 나는 것처럼 집도 그런 것일 텐데 점점 뭔가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휘고 기우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엄마 말대로 저놈의 책 박스를 들어내 집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할 필요가 있을 것도 같았다. 더구나 단독주택이 아니고 공동주택이고 보면 안전에 서로서로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2. 첫인상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그렇게 마음먹어도 책 박스를 드러내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마음만 먹었다뿐 실행하기는 족히 2, 3년은 걸렸던 것 같다. 책이 아까운 건 고사하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책이야 요즘 새롭게 나온 책이 더 좋지 옛날 헌책이 더 좋겠는가. 그럼에도 몸 쓰는 일엔 그다지 재지 못한 나는 엄마의 방구들 내려앉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현기증을 감수할망정 행동으로는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그래도 올봄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 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이번엔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올해 들어 몸 여기저기가 안 좋아졌고, 급기야 여름이 시작되면서 병원을 다니느라 책 박스를 치운다는 건 물 건너갔다. 하다못해 가끔씩 중고샵 나가는 것도 지난봄 이후 아예 전폐하다시피 했는데 무슨 수로 책 박스를 치운단 말인가. 그래도 열심히 병원을 다닌 덕분에 지금은 많이 낫다.


그렇게 몸이 나아지니 그동안 미뤄뒀던 책 박스 치우는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언제 전화를 하면 좋을까? 이번 주냐, 다음 주냐 하다가 결국 더 이상 앞뒤 재지 않고 헌책방 한 곳의 연락처를 알아 내 불쑥 전화를 해 버렸다. 책방 아저씨는 내일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오겠다고 했다. 그 시간이라면 나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자꾸 몇 박스냐고 묻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온다고 해 놓고 안 오는 건 아닐까 좀 불안하긴 했지만 그냥 믿어보기로 했다. 


아저씨가 오는 시간에 맞춘다면 난 10시 반 정도부터 책탑을 해체하는 작업에 들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저씨가 책 박스를 들어낼 테니. 중고샵에 팔거나 주민센터에 기증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오래된 책을 받아 줄리 없을 것 같고 그냥 헌책방에 헐값에라도 넘기는 것이 낫다. 나는 쌓아 논 책들 중에도 다시 안 볼 책을 추려 책 박스 나갈 때 딸려 보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을 했는데 순간 아찔했다. 내가 일을 너무 쉽게 본 것 같았다. 난 그저 아저씨가 책 박스를 가지고 나가기 편하게 길을 터주면 된다고 생각했고 쌓아 논 책이 얼마 안 되는 줄 알았다. 뭐든 일을 할 땐 쉽게 생각해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쉬운 일도 평생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웬걸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한 움큼의 책을 내려보았는데 순간 식은땀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때까지 쌓아놓은 책이 왜 그리도 크게 보이는지 나는 한 없이 작아져 이러다 책에 파묻혀 내일 아침 신문에 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책 정리하다 책에 깔려 죽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헌책방 아저씨가 들이닥쳤다.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오신다더니..."

시계는 이제 막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장은 끼워 맞추듯 웃음기 없는 얼굴로,

"11시잖아요."     

어쩐지 빨리 서두르고 싶더니 오히려 한발 늦은 셈이 됐다. 책방 아저씨는 5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데 진중해 보이는 것이 말수도 없어 보였다. 모르긴 해도 아저씨도 책을 좋아하다 이 업종에 뛰어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웬만치 말수가 있으면 이런저런 얘기를 시도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상대가 말수가 있고 없고를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뭐 꼭 그래 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 적지 않은 책 박스에 놀라며 언제부터 모은 책이냐고 물어 볼만도 한데 아저씨는 이런 일을 많이 해 봤다는 뜻인지 아니면 남의 일엔 일체 관심이 없다는 뜻인지 묻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그의 말수 없음이 싫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말 많은 것 보다야 낫지.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을 아저씨가 대신했고, 책 박스를 내가느라 몇 번씩 오르내릴 때 나는 나대로 얼른 안 볼 책을 추려 박스에 담았다. 무슨 책을 추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마지막으로 담은 책이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김훈의 책은 여간해서 쉽게 팔면 안 될 것만 같은데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문득 그 아저씨도 자신의 밥벌이가 지겨울 때가 있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원래 취미로 했던 일이 밥벌이가 되면 지겨운 법이니까. 


3. 나는, 유다일까?


책 박스를 얼추 다 나가고 정산할 순간이 왔다. 이럴 경우 책 주인이 돈을 받는 것으로 아는데 그동안 뭐가 바뀌어 오히려 수거료를 내야 하는 건 아닐까 잠시 불안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솔직히 난 이 부분에 대해 전날 전화를 끊고 생각이 많았다. 돈을 받는다면 얼마를 받을까? 돈에 욕심내지 말자. 이렇게 실어 가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얼마를 주건 주는 대로 받기로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킬로당 50원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계산하면 만원이라는 것이다. 전날 생각했던 것도 있고 하니 받기야 받는다만 역시 마음 한쪽이 씁쓸했다. 평생 모으고, 평생 간직한 책이 고작 만원이라니. 아깝다고 다시 원상 복귀할 수도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에 과외로 담은 책은 그냥 둘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그 책들은 비교적 최근 것이라 중고샵에 팔던가 기증해도 되는 것들이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이, 전날 밤까지만 해도 이 많은 책들이 내일이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뭔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을 사 모으느라 들인 시간이며, 발품이며 책 한 권 한 권에 깃들어 있을 만든 사람의 영혼을 생각하면 이별식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와 달리 정산할 때가 오자 돈을 생각하고 있으니, 마치 한때는 열렬하게 예수님을 존경했다 은 30냥에 판 유다와 내가 뭐가 다를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 책들이 예수님과 동급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때는 나의 손떼를 탔고, 그 책을 구입해 뿌듯해한 적도 있을 텐데 이렇게 팔아먹고 얼마를 받을까를 생각하고 있다니. 차라리 돈을 아예 안 받는 것이 그 책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었을까.  


내 손을 떠났으니 그 많은 책들은 분쇄기에서 종이조각이 되거나 운이 좋다면 아저씨의 책방 한 귀퉁이를 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었으니. 이제 책에 욕심도 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를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지금도 죽을 때까지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이 지금도 쌓여있다.  


4. 다시 읽지 않기 위해 읽는 책에 관하여


책 박스들이 집을 나갔으니 지금부터는 다시 책을 정리해야 한다. 그날 나는 몸이 다 나은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다하지 못하고 두 번인가 세 번을 쉬어가며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거의 하루 종일 했다. 엄마는 내가 책 박스를 없애버린 것이 속이 시원했던지 위로 반, 놀림 반으로 "네가 고생이 많다."를 연발했다. '봐라. 네가 그리도 좋아했던 것들이 너를 얼마나 힘들 게 하는지를.' 엄마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과연 책 때문에 정말 방구들이 주저앉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도 파인 흔적은 없다. 역시 엄마는 허풍의 여왕 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방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줄 필요는 있었다. 책 박스가 있을 때 한 번 높이 쌓인 책은 웬만해서 건드리지 않았다. 어쩌다 무슨 책이 생각나서 보려면 의자를 놓고 올라가야 한다. 그러다 실수로 잘못 건드려지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이제 책 박스를 치웠으니 그런 일은 없다. 올려다봐야 하는 것이 이제 내려다 보인다. 


정리를 하면서 평생 200권의 책만을 소유했었다던 수필가 피천득 선생을 생각했다. 그가 평생 2백 권의 책만 읽었을까. 그도 젊었을 때 한때는 책에 대한 욕심이 누구 못지않았을까. 더구나 그땐 책이 귀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전에 내었던 욕심들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그의 남은 생은 평생 함께할 책과 그렇지 않을 책을 속아내는 것으로 삼지 않았을까. 그의 지의 정원은 그렇게 가꾸어졌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영원하지가 않다. 언제 죽을지 모를 목숨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적당히 모으고 적당히 버리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말마따나 죽으면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죽게 되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유품 정리를 대신해주는 업체도 있다지만 있을 때 잘하랬다고 조금조금씩 정리해 주면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요즘 책은 얼마나 근사하고, 예쁘고, 실용적이며 합리적으로 잘 나오는가. 한마디로 탐스럽다. 정말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만 같다. 사실 그때 버린 책도 읽기보다 장서하다 버린 책이 태반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지식의 축적만을 위한 것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독서를 위해서건 장서를 위해서건 우린 어쩌면 평생 읽지 않을 책을 위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이건 또 얼마나 불가능한 목표일까. 인생이 신비로운 건 해 봤자 할 수 없고 해 낼 수 없는 일에 도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평생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밥을 먹는 건 반드시 굶지 않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위해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날 즉 죽음을 위해 먹는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면 지나친 말장난이 되려나.) 


분명 피천득 선생이 속아낸 책들 중엔 책으로서의 가치나 위용이 결코 떨어져서마는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날 내 보낸 책들 중에 여전히 아직도 볼만한 책들이 다량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안 볼 책으로 분류가 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연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때는 군침 삼키도록 좋아해 놓고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날 버리는 것이 어디 있냐고 책들이 아우성을 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며 배신의 존재인 것을. 지금도 내 방엔 몇 권은 주민센터에 보내고, 몇 권은 다시 안 볼 책으로 중고샵에 내다 팔 책이 보인다. 그리고 아직 손도 못 댄 책들이 있고 새롭게 관심이 생겨 보고 싶은 아직 사지 않은 책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내가 무슨 수로 200권만 가질 수 있을까. 이것도 수양하는 마음이 돼야 가능한 걸까.  


그렇지 않아도 저질체력에 책을 정리하느라 요 며칠 후유증에 시달렸다. 아무래도 주인에게 배반당한 책들이 저주를 퍼붓는가 보다. 미안하다. 그러나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너희들은 한때나마 서점에 꽂히기도 하고 내 덕분에 나름 장수하지 않았니. 세상엔 빛도 보지 못하고 잊힌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좋다고 사 들인 책도 언젠간 너희들과 비슷해질 거야. 그러니 너무 섭섭해 말고 너희들은 너희들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렴.   


가을이 돼서 그런지 아니면 그렇게 책을 내 보내서 그런지 다소 울적한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요 며칠 지인들로부터 책 선물을 받았다. 난 책에서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할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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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2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킬로그램을 걷어치우셨군요. 대단한 일입니다.
그 빈자리에 다시 책이 차곡차곡 꽂히기를 기원해야 하나 그러지 않으시기를 기원해야 하나 고민되는군요 ㅎㅎㅎㅎ
사이러스님 같았으면 얄짤없이 또 그 자리를 책으로 덮었겠지만.

stella.K 2019-10-28 19:14   좋아요 0 | URL
ㅎㅎ 스요님이나 사이러스에 비하면 전 세발의 피죠.
그런데 독서라는 건 누구와 비교할 건 아닌 것 같아요.
많이 읽지도 못하면서 책 욕심은 왜 내나 지금은 많이 자제하고 있는데
그래도 어느새 쌓이는 거 보면 신기해요.^^

희선 2019-10-28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책을 보내서 시원섭섭하실 듯하네요 잘 안 본다 해도 책은 버리기 아깝기도 해요 stella.K 님은 헌책방에 팔아서 다른 누군가한테 갈지도 모르겠네요 조금씩 정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가는 게 있으면 들어오는 것도 있겠지요


희선

stella.K 2019-10-28 19:18   좋아요 1 | URL
맞아요. 천천히 들어오는 것 같아도 나가는 속도가 들어오는 속도를
못 잡더군요. 이젠 장서 보다 진짜 독서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ㅎㅎ

서니데이 2019-10-29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정리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저도 몇달전에 정리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이나네요.
새 책은 계속 나와서 사다보면 금방 늘어나는 것 같아요. 꼭 읽고 싶은 책만 사야지 해도 그렇더라구요.
요즘 날씨가 많이 차가워요.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하루되세요.^^

stella.K 2019-10-30 16:34   좋아요 1 | URL
아, 서니님도 정리하셨군요.
할 때는 고생인데 해 놓고나면 뿌듯하긴 하더라구요.
그래봐야 그것도 잠깐이지만.ㅠ
서니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레삭매냐 2019-10-30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G당 50원은 너무 헐하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하긴 중고샵에 내다 파는
것도 또 주민센터에 보내는 것도 참
그렇더라구요.

요즘엔 공주에서 책방하는 동생에게
독서모임에서 만날 때보다 그리고
가끔 박스에 싸서 보내곤 한답니다.

책덜기의 지겨움이여... 그런데도 오늘
또 하나 사들였네요.

stella.K 2019-10-30 16:19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놀랐어요.
근데 워낙 오래된 책이라 수거료 안 달라고 하는 걸
오히려 고마워해야죠.
자꾸 물어보는 거 보면 그 아저씨도 그런 건 딱히
달갑진 않은가 봐요. 그냥 그때 그때 매매할 수 있는
비교적 최근 책을 선호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언제까지나 쌓아둘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죠.
그거 나가고 나서 저도 또 무슨 책을 읽어보나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죠.ㅠ

cyrus 2019-11-0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도 안 읽은 책이 많아서 버리지도 팔지도 못하고 있어요... 읽긴 읽어야 하는데... 딴 짓(특히 다른 책 읽기)만 하고 있어요... ㅎㅎㅎㅎ

stella.K 2019-11-01 18:47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네가 쓴 댓글 중 가장 안 어울리는 댓글이다.ㅋㅋ
네가 그러면 난 어떻겠니?
근데 내가 그렇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알라딘을 하면서부터야.
개인 이벤트하고, 서로 생일 챙겨주고, 안 보는 책 받고 하다보니
욕심이 생기더군. 알라디너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알라딘은 참 좋은 동네야. 그지?^^

amuzing 2019-11-04 0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책 내용인줄 알았어요.
저 역시 집에 책들이 너무 많아요.아이 책들로만 3천권이상
신랑이 거실에 제발 쇼파 하나 들이자고 하지만...
거실부터 방마다 한쪽 벽을 메운것들은 오직 책이죠.
정말 활용해보고자 사놓았던 육아 교구활동 도서부터 여러 활용 도서책들까지
아이들은 커가는데 ㅋㅋ 그 모든것들의 활용은 멈춘 상황
ㅎㅎ 버려야할 타이밍? 아니면 늦은감은 있으나 활용하고 버려야할 타이밍?
심히 괴로운 작업
버리기...저도 곧 해야할 상황이다보니 확 마음에 와 닿네요.
하지만서도 그럴라하니 왜 맘이 아픈지....ㅎㅎㅎㅎ

stella.K 2019-11-04 18:36   좋아요 0 | URL
와우, 3천권요! 굉장한데요?
사실 책 버리기가 쉽지는 않지만 언제고 마음의 준비가 되시면
뒤돌아 보지 마시고 확 버리십시오.
좋은 책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고 다시 채우는 건 금방이랍니다.^^

카알벨루치 2019-11-30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왜 제 좋아요가 없죠? 분명히 전에 봤는데....헐~ㅜㅜ

stella.K 2019-12-02 14: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럴수도 있지요. 그래도 늦게나마 회개하는 마음으로다
해 주신 게 어딥니까? 그저 감사할다름입니다.ㅋㅋ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월간 샘터가 올해를 끝으로 잠정 휴간에 들어간다고 한다. 1970년 4월에 창간해서 한때는 70만부(?)까지 찍어냈던 장수 월간진데 지금은 2만부 팔기도 쉽지 않아 그 같은 결정을 했다고 한다.

 

나야 워낙에 잡지를 잘 안 읽어 미처 사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가격도 싸서 웬만한 커피한 잔 가격 정돈데 휴간될 거라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든다. 그나마 폐간이 아니니 다행이랄까. 하지만 이렇게 휴간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동안 이해인 수녀, 고 최인호 작가 등 많은 작가들이 샘터를 거쳐 간 것으로 아는데 지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응원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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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2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0-23 14: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실제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표지가 진짜 맘에 들더라구요.
저도 무심했어요. 이렇게 장수하는 잡지가 몇 안 될 텐데
평소 땐 관심도 없다 이런 소식 들으면 아쉬운지 모르겠어요.
속죄하는 마음으로 휴간에 들어가기 전에 사 봐야 할 것 같아요.ㅠ

니르바나 2019-10-23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월간 샘터를 20년 정기구독했던 사람으로 이건 참 아쉬운 소식입니다.
샘터가 70만 구독자가 있었던 시절은 장리욱박사, 피천득교수, 법정스님 등
가히 우리나라 최고의 필진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원고가
매달 가벼운 가격으로 독자들에게
짧은 글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던 때라고 생각됩니다.
잡지를 만들었던 샘터 편집실은 문필가의 산실이기도 했지요.
오증자, 정채봉, 정찬주 등 샘터 편집실 출신으로 작가, 기자, 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긴 분들이 다 모인다면
샘터는 좋은 잡지이자 우리 문화계의 산실이기도 한 셈이죠.
이 자리를 만든 장본인은 물론 초대 발행인이었던 김재순 선생이시구요.
샘터가 휴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잘 지내시죠.^^

stella.K 2019-10-23 15:15   좋아요 0 | URL
오, 20년 구독...?!
대단하시네요. 니르바나님 같은 분들 때문에라도 계속 나와야
할 텐데 이렇게 휴간이라니...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을까요?
얼마 전, 옛 문필가들의 수필 모음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좋더군요. 예전엔 시큰둥했는데.
어디 이런 수필 없나 기웃거려 보는데 샘터도 읽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몰라봤네요.

전 이상하게도 묘한 징크스가 있는 것 같아요.
좋아지면 없어져 버리는 거.
혹시 M 본부에서 했던 <문화사색>이란 프로를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걸 작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폐지됐어요.
햇수만으로 무려 15년을 했다는데. 그러더니 샘터도 그렇게된 셈이됐어요.
있을 때 잘 하라더니...ㅠ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도 잘 지내시죠?^^

hnine 2019-10-23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사 보고서 많이 아쉬웠어요. 고3때 학력고사 보고 집에 칩거하면서 한권 두권 사모으기 시작하여 저또한 수십권 모아두었던 경험이 있거든요. 한강 작가가 그때 샘터 기자로 일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저 역시 폐간이 아니라 휴간이라고 해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stella.K 2019-10-23 15:22   좋아요 0 | URL
와, 한강 작가가요...?
알고보면 샘터가 조그만 해도 저력있었네요.
모아두신 거 지금도 가지고 계신가요?
지금 나오고 있는 잡지들도 언제 폐간될지 모르니
좋아하는 잡지 잘 모아둬야 할 것 같아요.
h님의 식견이 부럽네요.

수연 2019-10-2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터 저도 정말 좋아했는데 아 가슴 아프네요. 휴간이어도.

stella.K 2019-10-23 15:23   좋아요 0 | URL
그래도 희망을 버리시면 안 되요 수연님.
이렇게 좋아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언제고
또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땐 저도 애독자가 되어보겠습니다.ㅠ

blanca 2019-10-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아프네요. 저도 종종 사보다가 최근들어 잊고 있었어요...

stella.K 2019-10-23 15:43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e북으로는 옛날 것도 나오는 모양인데
종이책으론 세 권 정도는 확보할 수 있겠더군요.
저도 좀 사 봐야겠어요.
빠른 시길 내에 다시 나오길 기대해 봐야죠.ㅠ
 

며칠 전, 내년부터 반려동물을 인구수에 포함시킬거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게 과연 실현될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 반려동물에게도 주민등록을 해야할 것이고, 죽었다고 해서 몰래 야산 같은데 묻는 행위는 금지될 것이다. 그러면 주인이 벌금을 물거나 징역을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새끼를 낸다고 임신을 촉진시키는 업주의 행태도 당연 벌을 받겠지. 대신 반려동물도 정식적인 결혼 절차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의 관계인만큼 사돈지간도 맺어야 할 것 같고. 이런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라도 과연 인구수에 포함을 시킬건지 궁금하다. 정말 우린 반려동물, 반려동물하면서 정작 얼마나 준비된 반려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지런한 마태우스님이 또 책을 내셨구나. 이번엔 개에 관한 책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마태우스님은 여섯마리 개와 함께 살고 계신다.(개인적으로 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신다는 건 알았지만 여섯 마리나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페니키즈다. 북트레일러를 보고 알았다.

 

우리나라가 어느 덧 반려견 천만 시대란다. 그러면 뭐하겠는가? 그에 맞게 우리는 개를 정말 잘 키우고 있는 걸까? 마태님은 단호히 웬만하면 키우지 말란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나도 그에 동감한다. 뭐라고 쓰셨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 책도 좋은 결과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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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9-09-1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추석명절 잘 지내셨나요.
추석날 그 보름달은 아니지만 밝은 달님께 빕니다.
스텔라님 몸과맘 모두 더욱 건안하시길...

stella.K 2019-09-17 14:43   좋아요 0 | URL
흐흑~ 감사합니다. 제가 뭐라고...ㅠㅠ
니르바나님도 명절 잘 지내셨죠?
제가 먼저 인사 드렸어야 하는 건데...
아침 저녁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구요,
늘 강건하시길 저 또한 빌어드립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9-09-1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려동물을 인구수에 등록하는 것보다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동물학대죄 강화예요. 지금의 법은 처벌 수위가 약해요.

stella.K 2019-09-17 14:46   좋아요 0 | URL
맞아. 그게 어떻게 해서 나온 얘긴지 모르겠어.
그것 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게 있는 것 같은데
바로 그걸 거야.
아직도 동물을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잖아.

레삭매냐 2019-09-1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마태우스님이 멍멍일 여섯 마리나
키우시는군요. 대단하시네요 ~~~

다만 저희 동네 반려동물들을 키우시는
분들은 비닐봉투를 멋으로만 들고 다니
셔서 멍멍이 X 천지더라구요 ㅠㅠ

며칠 전에 산책하다가 밟고 미끄덩!~
할 뻔 했지 뭡니까 ...

stella.K 2019-09-17 18:15   좋아요 1 | URL
헉 밟기까지...?! 어휴~ㅋㅋㅋ
이거 웃으면 안 되는 건데.ㅠ
그래도 안 넘어지시길 다행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넘하네요.
적어도 자기 강아지는 자신이 책임져야지
그런 기본도 안 되면서 반려견은 왜 키우는지 모르겠네요. ㅉㅉ

마태우스 2019-09-25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K님, 이런 멋진 페이퍼를 쓰시다뇨. 그래서 이 즈음해서 세일즈포인트가 확 올라갔군요! 정말 감사드려요. 근데 이 나라엔 자격없는 이들이 너무 많이 개를 키우는 것 같습니다...개탄스러워요.

stella.K 2019-09-26 15:50   좋아요 0 | URL
아, 아닙니다. 얼마 전 그런 보도를 접하고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던 중 마태님께서 새책을 내셔서 반가운 마음에 갈무리 해 보았습니다.
참 부지런 하십니다. 근데 조만간 TV에서 또 뵐 것 같더군요.
꼭 챙겨 보겠습니다.^^

북프리쿠키 2019-09-2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려견에 대한 마음가짐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글구 예전에 키워봤는데 한달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던데ㅠ.

stella.K 2019-10-03 20:05   좋아요 1 | URL
헉, 왜 답글을 안 썼을까요? 요즘 제가 이렇습니다.ㅠ
쿠키님도 개를 키워보셨군요.
정말 개를 웬만한 책임을 갖지 않으면 못 키우죠.
애 키우는 것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저의 글을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독자에게 직접 글을 팔았다. 이것이 가능한 건 이메일 때문이다. 자신의 SNS에 독자를 모집하고 한 달에 20편의 글을 이메일로 배달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받는 구독료는 한 달에 만 원. 이슬아 작가 이야기다.

 

처음엔 뭐 이런 작가가 있나 했다조금 심하게 말해서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과 뭐가 다른가 싶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SNS 블로그에만 들어가도 글이 넘쳐나고 웬만한 작가 못지않은 필력을 자랑하는 블로거들의 글도 많은데 그들은 돈 같은 거 안 받고 글을 쓴다. 그런 만큼 그런 건 무상으로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내 글 읽어주면 감지덕지 아닌가? 그런데 돈을 받겠다는 게 좀 그렇지 않나 싶은 것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이게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어서이지 꼭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슬아 작가도 자신이 처음 시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웹툰을 하는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하는 거라고 했다(고 알고 있다). 순간 이 작가가 지금까지 와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삶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동시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를 생각해 보게 했다.

 

만원. 이것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없는 사람에겐 큰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시 못 할 돈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하루 껌값 밖엔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 좀 피상적이다. 구체적으로 하루에 1인분에 해당하는 점심과 입가심으로 마시는 커피 한 잔쯤이 아닐까? 물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1, 2천원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 작가에게 투자한다는 건 또 어떤 의밀까?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물었다. 만약 한 달에 20편의 글을 만원에 구독하라면 그렇게 하겠냐고. 그랬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라고 했다그 친구는 책을 그다지 많이 읽지도 않고, 그런 방식은 듣보잡일 테니. 즉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가에게 만원은 하루 500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요즘 9001000원 하는 커피가 등장했다. 그것 보다 못한 액수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루 최소 1000원은 쓰면서 정신을 위해 500원을 못 쓴다면 그도 그렇지 않나? 종이신문을 안 본지가 꽤 오래됐다. 종이신문의 구독료는 얼마일까? 모르긴 해도 만원 보다 비싼 걸로 알고 있다. 물론 그만큼 지면이 많지만.

 

봉이 김선달 얘기는 차치하고라도 SNS나 블로그 덕분에 글로 소통하는 건 너무 흔한 형태가 되어버렸다. 커피야 간편하게 마시면 그만이지만 글은 시간을 내야하고, 읽다보면 눈도 아프고 생각도 해야 하고 여러모로 귀찮은 일임에 사실이다. 그러나 읽는 사람이 아닌 쓰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

 

글을 쓰면 누구나 작가가 된다는 다소 감상적인 말이 있기는 한데 나는 (언젠가도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이런 자본화된 세상에서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을 구분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건 그 사람이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느냐 안 받느냐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원고료를 받으면 작가고 안 받으면 작가가 될 생각이 없거나 작가지망생인 것이다. 거 얼마나 받는다고 돈타령이냐고 돈 얘기 안 하는 인간 좀 만나고 싶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의 의미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SNS나 블로그는 내가 원하면 쓰고 원치 않으면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원고료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원치 않으면 안 쓰는 사람이 아니다. 뭐라도 써야한다. 그들은 <천일야화>에 나오는 세에라자드의 후예인지도 모르겠다. 그 천일 중 하루라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매일 구독자에게 자신의 글을 전송했다고 한다. 그것이 단 하루라도 연착이 되거나 조금만 늦어지면 왜 이렇게 늦느냐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난 그 마음 안다.

 

이미 내 책에서도 밝혔던 것으로 아는데(내가 이런다. 정신이 없다), 나는 원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극작을 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교회에서 대본을 써야 할 일이 생겼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일을 자청하기까지 했다. 작가의 꿈은 있는데 그 꿈에 대한 책임은 없으니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안 쓰면 안 되는 일이니 책임감을 갖는데 이만한 일이 없겠다 싶은 것이다. 하지만 연극이라는 게 그렇듯 협업이라 한 번이라도 펑크가 나면 줄줄이 펑크가 난다. 소소하게 했던지라 뭐 못하면 못하는 거지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 그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가 글을 못 써서 펑크를 난다고 했을 때 그 아찔함 막막함은 느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정말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느낌.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그 시절 내가 맡은 일도 연재 방식이라면 연재 방식이다. 그때그때 짧은 상황극을 만들어야 했으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남의 돈 버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이슬아 작가가 모처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러다 살짝 미칠 수도 있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나도 당시 쓰고 있던 컴퓨터 모니터를 창밖으로 내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기도 했으니까. 그게 작가의 숙명인 것 같다. 원고료도 원고료지만 나를 낭떠러지에 매달아 놓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는 작가가 될 수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일이라는 게 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작가가 작정하고 쓰는 글은 SNS나 블로그에 아무 때나 올리는 글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감하며 읽다가 어느 지점에서 그녀와 내가 확연이 갈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 책으로 나왔을 때다. 그녀가 작년에 6개월 간 발송했던 글을 책으로 묶어 냈는데 그게 지금은 7쇄까지 발간됐다고 한다. 한 쇄를 찍는 책의 권수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지금은 워낙에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니 1000권을 넘지 않는다. 이것을 7쇄까지 찍었다니 장하기도 하고 질투도 난다.

 

나 같은 경우 천 권도 너무 많지 않을까 싶은데 출판사 사장이 배포도 좋지 무려 1300권을 뽑았다. 너무 많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나야 출판 동향을 모르니 나 같은 글도 뭔가 소용이 되는가 보다 했다. 지금은 300권이나 팔렸을라나.

 

작가의 로망은 역시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는 것이다(이렇게 말하면 되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극작을 한다). 그것도 내가 원하기 보단 출판사가 먼저 제안해 2년 만에 내놓은 것이니 나는 손 안 대고 코픈 격이라고나 할까? 누구는 작가가 되려면 거절에 익숙해지는 법부터 배우라고 했는데 성격상 여기저기를 쑤시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이 나왔을 때 그 기쁨은 딱 한 달 갔다. 그 한 달 이후 세상 사람들은 내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잊었고 나 역시 덤덤해졌다. 하긴 그때 이후로도 좋아라 하면 그도 정상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첫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쉽다고 하는데 난 지금껏 두 번째 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첫 책을 냈으니 탄력을 받아 두 번째 책도 낼 수도 있을 텐데 첫 책을 낼 때 얼이라도 빠진 걸까? 오히려 책 내는 게 더 자신이 없어졌다. 안 그래도 2초에 축구장 면적의 숲이 사라진다는데 내 책 내겠다고 그 일에 보탤 필요 있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내 책을 읽은 알라디너들이 다음 책은 언제 나오느냐고 찔러주는 게 고맙기도 하다. 아예 마태우스님은 이런 책 좀 써 달라고 부탁까지 하기도 하셨으니. 이건 정말 누군가 멍석을 깔아주지 않으면 못할 일 같기도 하다. 그때 나는 넙죽 네하고 대답은 했지만 아직도 못 내고 있다.

 

문득 이슬아 작가의 이 대담한 도전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 글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가를 반성하게 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데 책은 내 뭐하냐며 누가 주지도 않는 쓸데없는 자책을 하고 지내 온 건 아닐까? 뭔가 해 보기도 전에 패배의식부터 가졌던 것은 아닌지.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원고 청탁을 하지 않아 그렇게 작가와 독자 간의 직거래 방식을 선택했다고 했다. 또 이슬아 작가는 자신을 셀프 연재 노동자라고 했다. 이름도 잘 지었다. 연재 노동이라. 그거 내 주특긴데 말이다.

 

모르긴 해도 이 셀프 연재 노동은 지명도 있는 기성 작가는 몰라도 (나를 포함한)새내기 작가들에겐 해 봄직한 일이지 않을까 한다. 이름 없는 작가들이 아무 연고도 없이 출판사 문을 노크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게 연재 방식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후에 책으로 내놓는다면 뭔가 지금과는 다른 출판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이 비슷한 시도는 있어왔다. 이를테면 먼저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후에 책으로 내놓는 방식. 나도 그렇게 해서 냈으니까. (무엇보다 아직도 존재하고 있을 문단 내 카르텔을 생각하면 대안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간혹 책을 내놓은 소감에 대해 물으면 작가는 명예직이라며 자조 겸 말문을 흐리곤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작가는 명예직이 아니다. 작가도 노동자다. 매문가. 하지만 우리나라에 순수하게 글만 써서 벌어먹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도 내 책은 책상 한켠에 고이 모셔져 있다. 책이 나온 후 감히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어 그냥 모셔만 두고 있다. 내 책 뒷면에 그런 말이 적혀 있다.

 

      나는 책을 냈다고 해서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바를 썼고 그것을 묶었을

    뿐이다. 작가가 되어서도 독자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 위에 군림하기 위해 작가가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하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_작가의 말 중에서

 

 

 ~! 내가 이런 말을 쓰다니. 오글거리다 못해 분서하고 싶어진다. 아니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면 이 오글거림이 사라지려나? 그때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반해 이슬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독자는 두려우면서 기대고 싶은 존재에요.” 이렇게 한마디로 명징하게 말할 수 있는 걸 나는 왜 저딴 식으로 말했을까.ㅠㅠ

 

그러므로 언젠가 제2, 3의 이슬아 작가가 셀프 연재 노동을 자처하며 구독자를 모집할 때 이슬아 코스프레 하냐고 비꼬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구독도 하지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일 확률이 십중팔구일 것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맞는 얘기 아닌가. 하지만 다만 코스프레라고 하지 말고 롤모델 즉 닮고 싶은 사람으로 치환해 당당해지자. 요는 그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좋은 작가는 독자가 키운다는 생각으로 격려하고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도 알지만 세상에 유명한 명작들도 처음엔 다 쓰레기였다.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 외롭고 고독하게 자신의 작품을 준비하는 시에라자드의 후예들이 훗날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또 그래서 말씀인데 저도 셀프 연재를 하면 여러분은 구독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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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7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1-28 12:5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출판사가 그렇게 많은데도
내 책 내기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뭔가 불균형이란 생각도 들어요.
물론 개인 출판도 한다는데 그것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별로 좋은 것도 아니고.
오죽하면 개인 출판인가 싶기도 하고 마케팅도
원활한 것도 아니고. 독자들은 왠만치 알려진 출판사가 아니면
시큰둥하고. 그렇죠?ㅠ

서니데이 2019-01-27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일 북플로 stella.K님의 글을 구독하는 애독자입니다.^^
stella.K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stella.K 2019-01-28 13:02   좋아요 1 | URL
이슬아 작가 얘기를 들었을 때 서니님도
생각나더군요. 서니님이야 말로 얼마나 성실합니까?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실함은 연재 작가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죠.
이참에 서니님도 연재 작가가 되어보심이 어떨까요?ㅋ

저 첫 줄은 구독하시겠다는 말로 들립니다.ㅎㅎ

syo 2019-01-28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내서 시장에 내놓는 것도 결국은 글을 파는 일인데, 이렇게 파나 저렇게 파나 똑같이 파는 것 아닐까 싶어요. 전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단지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글을 팔기 위해 꼭 ‘책‘이라는 물질적 요소가 필요치 않으니까, 그야말로 ‘글‘만 팔 수 있게 된 셈이랄까요. 저는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작가 한 사람쯤은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처음에 있는 사람들, 권력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오늘날 모두에게 주어진 것처럼요.....

stella.K 2019-01-28 13:14   좋아요 0 | URL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작가 한 사람쯤은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스요님은 저 보다 앞선 생각을 하시는군요.
책을 많이 읽으시니 출판의 흐름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이 독자와 작가의 벽이 많이 얇아진 것도 사실이죠.
자주 만남과 교류를 갖고 있으니.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은 그나마 2000년 대 들어와서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없진 않겠지만 무슨 심포지엄 어쩌구 해서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만의 모임이 주류지 않았나 싶어요.

암튼 스요님 댓글로 봐선 제가 직거래하면 고객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ㅋㅋ

syo 2019-01-28 18: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직거래 모드 돌입하시면 알라딘 서재에는 더 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는 건가요..... 하루에 하나 쓰기도 힘들잖아요.

stella.K 2019-01-28 18:39   좋아요 0 | URL
안 써서 그렇지 매일 한 편은 쓰죠.
서재는 딴 글을 쓰겠죠. 리뷰 정도는 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많이 써 놔야죠.
당장 시작할 건 아니구요. 생각 좀 해 보구요.ㅋㅋ

페크(pek0501) 2019-01-28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종이 신문은 월 만오천원입니다.

연재를 맡는다면 스트레스 만당일 것 같습니다. 미리 어느 정도 써 놓은 글을 확보하고 나서
연재를 맡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 중요한 건 연재에 뜻이 있으면 글을 많이 써서 저축해 놓을 것, 입니다. 작가들, 참 대단한 존재들이에요.

stella.K 2019-01-28 16: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14000원쯤 생각했는데 만 5천원이군요.
비싼 건 아니죠. 구독료를 올릴 수도 없을 거예요.
종이 신문 잘 안 보니.

그럼요. 준비없이 시작할 수는 없죠.
작가들. 대단하죠.

cyrus 2019-01-28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독자들)과 함께 있는 작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으려는 작가. 독자들의 쓴 말도 받아들이는 작가. 이런 작가의 글이라면 구독하고 싶습니다. ^^

stella.K 2019-01-28 17:4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럼 넌 내가 직거래하면 구독하겠구나.
난 독자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 줄 준비가 되어있거든.ㅋㅋㅋㅋ
어쨌든 말만으로도 힘이된다. 고맙!
 

 

 1. 침묵에 대한 생각

 

 지난 주말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이란 프로를 보는데 일본 역사에 잠복 그리스도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현재 세계문화 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에 가톨릭이 전파될 때 그 박해를 피하려고 일본의 신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자신의 신분을 숨겨 온 것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 

 

나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작년 여름에 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영화는 알다시피 소설 <침묵>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써 굉장히 인상 깊게 만든 영화고, 과연 배교가 신앙의 실패를 의미하는 건지에 대한 진지

한 물음을 갖게 한 작품이었다.

  

 특히 가톨릭은 전파하겠다고 온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는 많은 고문 끝에 결국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일본 신앙을 받아 들이고 수인의 삶을 살다 죽는 인물로 나온다. 영화는 엔딩에서 로드리게스 신부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보여주고 있는데, 인상 깊었던 건 염을 하는 과정에서 그의 관에 묵주와 성경을 몰래 넣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것으로 봐 그는 겉으로는 일본 신앙에 동화된 것 같지만 그는 여전히 가톨릭 신앙을 유지한 것으로 암시되고 있는데 그게 이 잠복 그리스도교와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감독은 과연 잠복 그리스도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박해로 인한 순교는 좀 줄지 않았을까? 사실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떳떳하게 밝히고 죽는 것 보다 이렇게 숨어서 예수님을 믿는 잠복 신앙인이 더 많지 않을까? 인간적인 생각일지는 모르나 순교만이 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일까? 이 잠복 신앙도 예수님 말씀하신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란 말씀에 부합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순교자들의 순교가 상대적으로 비하되는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다. 절대 그런 뜻은 아님.

 

 사실 잠복 그리스도교는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지금도 자신이 신앙인임을 감춘채 지하에서 예배 드리는 교인이 있다. 언제고 세계 문화 유산은 이들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2. 미투 주변인을 위한 가이드

 

작년 한 해는 미투 운동의 원년되는 해였고, 올해 벽두엔 스포츠계가 들썩인다. 특히 빙상계가 둘썩이고 있는데 알고보면 성폭력이라는 건 생각 보다 훨씬 비정상적인 거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자신이 가르치는 선수에게 일상적으로 폭언과 폭력을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성행위를 자행할 수 있을까?

 

물론 그에겐 성행위가 그저 성적 욕구를 풀어버리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그렇다면 그는 애초에 선수를 선수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인격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일이 가능할까? 더구나 납짝 업드려도 부족할 판에 억울한 측면이 있어 맞고소를 해야겠다니 어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투 운동이 미국 허리우드에서 촉발되었고, 우리나라 영화계 역시 예외는 아니라 아무래도 저자가 이 부분에서 기자 정신이 발휘되었던 모양이다. 저자가 책 말미에 쓴 '나는 이런 글을 써왔다: 미투와 페미니즘'은 여러 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저자가 쓴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강간 장면이 실제로 여배우를 성폭행해서 촬영된 것이라는 거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 속 성폭행 장면은 여주인공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남자 주인공과 상의한 후 촬영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 언급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그 장면을 마론 브란도와 베르톨루치 감독은 사전에 상의는 했지만 여자 주인공인 로미 슈나이더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그 둘이 슈나이더가 여배우가 아닌 소녀로서 수치심을 느끼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마론 브란도의 나이는 48세였고, 슈나이더의 나이는 19세였다. 두 남자는 그 영화 이후 큰 명성을 얻었지만 슈나이더는 강간 장면 이후 약물 중독, 정신 질환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지난 2011년 58세의 나이에 암으로 죽었다(363p). 

 

채 다 피워보지 못한 어린 여배우를 이렇게 짓밟아 놓고 얻은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마찬가지다. 자신이 키운 선수를 짓밟고 얻은 영광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미투 고백자가 로미 슈나이더 같이 되지 않다고 그들이 멀쩡한 얼굴로 담담하게 미투를 고백했다고 해서 그들이 상처 받지 않았다고, 음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지금까지 운동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짓밟히고 그 운동만 하지 않았어도란 말을 탄식처럼 내뱉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상처 받았다고 생각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세상에 상처 받아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주성철 기자는 책에서 미투 주변인을 위한 가이드를 소개했는데 좀 곱씹을만 해서 요약해 본다. 

 

첫 번째, 그 어떤 경우에도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인식. "술만 안 마시면 되는데" "평소에는 참 좋은 사람인데" "피해자의 평소 행실도 문제"라는 말로 논점을 흐리고,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생각을 하는 동안 2차 가해는 언제나 벌어질 수 있다며 합의가 아닌 '처벌'로 눈을 돌리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과는 피해자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가 이른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의 SNS든, 소속사든 직접 손편지로 사과문을 쓰든 뭘 하긴 하는데 종종 그 사과의 대상이 자기 마음대로 '국민'이나 '대중'에게 행해있지 정작 피해 당사자에겐 향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나의 일 혹은 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

그건 미투 가해자도 해당이 될 것이다. 당장 그의 누나나 여동생 심지어 애인이 피해자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제발 또 미투냐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미투 없는 그날까지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3. 새해 첫 번째로 완독한 책

 

 새해엔 가급적 새 책은 뒤로하고 읽다 만 책, 사 놓고 읽지 않은 책 중 읽겠다 다짐한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작년에 1권은 읽었는데 2권을 못 했다. 급한대로 뽑아 들어 읽었는데 결국 올해 첫 완독 책이 됐다. 나란 인간은 참...

 

이 책이 인상 깊은 건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그것도 정치사에서 웬만해서 나타나지 않을 세 여자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를 비교적 자세히 다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격랑의 근대사를 작가 특유의 필치로 그리고 있다는 것. 

 

사실 문체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읽혀지진 않았다. 특히 공산주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다루려 했다는 점. 나는 공산주의를 경멸하도록 교육 받으며 자라왔다. 그래서 이 책이 어떤 면에선 좀 낮설기도 했다. 그런만큼 늘 근대사가 궁금했던 나에겐 유의미한 독서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 책은 감히 우리나라 페미니즘 문학사에 길이 남을만한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작가에게 이런 좋은 작품을 써 줘서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마음 속으로나마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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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1-15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일런스>의 원작이 엔도 슈사쿠의 책인 것 같은데, 제가 기억하는 표지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아래 영화 포스터가 띠지로 들어있어서 그런 걸까요. 자유가 있는 곳에서 산다는 건 좋은 것일 때도 있지만, 어느 날에 생각하면 그건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없는 곳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미투에 대한 요약은 읽고 생각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입을 열어 소리를 낸다는 건 이전과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되는 시작 같아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일어난 일을 침묵시켜서는 안되겠지요.
조금 전에 미세먼지 저감조치 해제 알림이 왔어요.
stella.K님, 따뜻한 저녁시간 되세요.^^

stella.K 2019-01-16 13:13   좋아요 1 | URL
영화 이후 띠지를 둘러서 나온 것 같아요.

미투는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코치가 빙상계에서 영구 제명됐다고 하는데
일단 잘된 것 같긴합니다만 지금까지 이 문제는 소리만 요란했지
근본적인 대처는 아직 미흡해 보입니다.

오늘은 정말 모처럼 하늘이 맑네요.
내일은 또 미세먼지...ㅠ

cyrus 2019-01-1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세 여자> 1권 읽고 있어요. 1권에 나오는 조선여성동우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졌어요. 저는 소설에 언급되는 주변 인물이나 단체에 더 끌리더군요. 콜론타이의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요. ^^

stella.K 2019-01-16 13:17   좋아요 0 | URL
헉, 콜론타이가 있었나...?ㅋ
조금 더 촘촘하게 쓰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해.
등장인물의 전환이 넘 순식간이야.
그러면 넘 두꺼운 책이 되겠지?
암튼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고 봐.

이번 토요일이지? 작가 만나는 거.
좋은 시간되길.^^

cyrus 2019-01-16 14:45   좋아요 1 | URL
허정숙과 주세죽이 조선여성동우회 독서모임에 참석하면서 읽은 책이 콜론타이의 소설이에요. 제목이 ‘삼대의 사랑’이었을 거예요. 허정숙이 그 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남자 여러 명을 첩으로 두면서 살고 싶다고 말해요. 이제 2권만 읽으면 됩니다. ^^

카알벨루치 2019-01-15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여자의 인생을 망친 영화감독, 영화배우...우리나라도 김기덕, 조재현이가 <나쁜남자>란 영화로 서원이란 배우를 그렇게 만들었네요 영화가 권력이 되어버렸네요 모든 것이 허망한 바벨인 것을...상처입은 영혼들은 어찌해야 하나요? 아...

stella.K 2019-01-16 13:30   좋아요 1 | URL
이게 사실은 그전부터도 있어왔던 말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공공연하게 여자 배우는 그렇고 그런 존재처럼
된 측면이 있죠.
그건 남성적 시각, 제도안에서 그렇게 말이 나가고
만들어지고 그런 건데 그런 점에서 미투는 정말 좀 더 일찍
시작됐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투 가해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괜찮은 평판을 얻은 사람도 미투에 거론되면
용서가 안 되더군요.
우리가 이광수를 그 뛰어난 문학성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아무리 뛰어난 장점을 가져도 낙인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조재현이 연기를 얼마나 잘 했습니까?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죠. 사람 안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어요.
누군가 잘 다독이고 보듬어 주면 비록 흉터는 남아도 잘 극복할 텐데 말입니다.

페크(pek0501) 2019-01-19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티브이에서 여배우를 성폭행해서 촬영된 것이라는 걸 알고 저도 흥분했죠. 말이 안 되어서요.
그들에게 예술이 왜 있는지 묻고 싶어요. 인간을 위한 예술이 되어야 할 텐데 예술을 위한 인간의 희생이라니... 참 한심하고 슬픈 일입니다. 영화를 만들 자격이 없어요.

stella.K 2019-01-20 17:32   좋아요 0 | URL
예술이 여성도 향유할 수 있는 거란 걸 생각 못한 거겠죠.
그게 TV에도 나와었군요.
이미 두 사람은 고인이 됐으니 따질 수도 없고
너무 안타까운 일이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