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꾀 부린 자, 꾀로 망할 것이니…위선과 변명 꾸짖는 '성인 우화'
라퐁텐 그림 우화/ 장 드 라 퐁텐 지음/ 박명숙 옮김/ 시공사

여우의 초대 자리에서 황새는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그릇에 담긴 먹음직스런 음식들….

그러나 황새의 긴 부리로는 아무 것도 집을 수가 없었다. 환상적인 음식, 이 모든 것이 넓은 접시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새라고 답할 길이 없으랴. 황새는 여우를 청했다. 이번엔 모든 산해 진미가 목이 긴 병에 담겨 있었다. 하하! 세상엔 이런 복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우도 황새도 어느 쪽도 행복하지 못했다. 우린, 지금, 여우와 황새의 손님 초대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 퐁텐은 ‘황금 알을 낳는 암탉’을 들려주면서 “우리는 너무 일찍 부자가 되기 위해 오히려 순식간에 가난해진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라며 어른들의 탐욕을 직접 꾸짖는다.

끝없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거듭하는 ‘목동과 사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 아주 작은 동물이라도 우화 속에서는 주인 역할을 한다. 단순한 도덕론은 지루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통해서 교훈을 들려주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꾸민 이야기를 통하여 가르치면서 즐겁게 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 이야기, 라 퐁텐의 ‘우화(寓話)’가 마침내 우리말로 모두 옮겨졌다. 본디 12권으로 이뤄진 책을 삽화를 곁들여 양장본 1권으로 묶었다.

황새와 여우가 서로 식사 자리에 초대해서 골탕을 먹이는 이야기, 멍청한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있다가 “예쁜 목소리를 들려달라”는 여우의 꾐에 빠져 고기를 놓치는 이야기, 진수성찬과 맞바꾼 목걸이를 거부하고 멀리멀리 달아난 늑대 이야기….

솔직히 털어놓자. 라 퐁텐의 우화를 우리가 아는가.

그동안 우리가 읽은 우화는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로 재편집돼 돌아다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교훈적이며 풍자적인 내용과 동·식물이 화자로 등장하는 형식이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라 퐁텐도 이솝도, 어린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우화를 쓰지는 않았다. 우화는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다. 거짓말에 익숙해 있고, 언제든지 온갖 궤변으로 자신을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다.

이번의 우리말 완역본은 1834년에 프랑스에서 펴낸 초판본을 옮긴 것이다. 이 책은 고서적상 김준목씨가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시골 농부의 서재에서 100년이 넘도록 잠자고 있던 그 오래된 책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심지어는 먼지와 곰팡이까지도 보여주고자 애쓴 표지 장정은 아름답다.

그리고 작품 한편 한편마다 판화가 구제의 세밀화가 문자를 이미지로 받쳐주고 있어, 책이 출간된 19세기의 정신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망외의 소득도 있다.

그렇지만 시적인 원문을 그대로 옮긴 데다가, 글씨의 크기도 작고, 어른들 세계의 실상을 엑스레이 필름처럼 환하게 드러내는 작품도 적지 않아 아이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청소년은 되어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라 퐁텐의 애초의 의도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고대인의 영혼이 우리들 현대인의 몸 속에, 그리고 불투명한 삶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야기꾼 라 퐁텐의 이 마르지 않는 샘물을 천천히 맛보기를. 작가의 이름 라 퐁텐은 프랑스어로 ‘샘’이라는 뜻이다.

작품의 유명세와 달리 작가 라 퐁텐이란 인물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작가의 조국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우화’ 몇 소절 정도는 누구나 다 암기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이 독특한 장르의 글인 ‘우화’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라도 이 ‘기이한 역설’의 주인공인 그를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장 드 라 퐁텐은 1621년 샹파뉴 지방에서 태어났다. 부르주아지 가문의 자식으로 부친에게서 적지 않은 땅과 함께 물과 숲을 관리 감독하는 직위를 물려받는다. 그리하여 거기서 들어오는 연금과 세금으로 부르주아의 안온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한 삶을 택하지 않는다. 라틴어로 된 고전과 당대의 시인들에게 매료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버리고 글쓰기를 선택한다.

결혼을 하여 아이까지 하나 두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올라가 독신의 자유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사교계를 드나들며 시적 재능을 펼칠 기회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문학적 영광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당대의 권력자인 재무총감 푸케에게 시를 지어 바쳐 그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것도 푸케의 실각과 함께 끝났다. 성공을 갈망하며 여러 권의 에세이를 남겼고, 그 가운데 하나는 훗날 시학 이론서에 이름이 오르지만,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라 퐁텐은 내내 별볼일없는 작가로 지내야 했다.

‘우화’는 라퐁텐에게 거의 유일한 성공을 안겨주었다. 이 성공으로 그는 후원자를 얻는다. 오를레앙 공작 부인, 라 사블리에르 부인, 그리고 에르바르 가문. 하지만 뒤늦은 성공 탓인지는 몰라도 건실한 부르주아의 삶과는 거리가 먼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사상적인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실제적인 삶에서도 그러했다. 술과 도박·매춘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여 그가 죽었을 때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런 면모 때문에 그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왕에게 얌전하게 살겠다는 약속까지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서약이 있은 뒤에도 라 퐁텐은 여전히 순종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자유사상가들과 교류하며, 제도 바깥의 삶을 살아나간다. ‘우화’는 계속 이어졌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형식의 글쓰기 자체가 문학 제도의 바깥에 있는 것이었다.

그를 얌전하게 만든 것은 병이었다. 생의 마지막 회한 때문이었을까? 종부성사(終傅聖事)를 받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부정했다. 그의 묘비명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장은 그가 왔던 것처럼 가버렸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많은 재물을 하찮게 여겼다/ 시간으로 말하자면, 그것만큼은 잘 쓸 줄 알았다/ 시간을 절반으로 나누어서/ 반은 실컷 잠자는 데/ 나머지 절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썼으므로.’

그의 ‘우화’에는 이렇게 라 퐁텐의 삶이 그려나간 궤적이 밑그림으로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지의 교양과 섬세함이,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가로서의 자유의지와 비판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 그것이 도덕적 차원에서의 일탈과 방종의 모습을 띠긴 했지만, 그 둘은 우리들 인간 자신에 대한 신랄하면서도 예리한 통찰의 시선을 빚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라 퐁텐의 ‘우화’는 창작이 아니다. 그러나 소박하면서도 꾸밈없는 문체는 시적인 품격을,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이야기 구성과 함께 인간존재와 삶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지적인 시선은 뛰어난 산문가의 특성을 그에게 부여해주었고 프랑스 문학의 전통으로 자리잡는 풍자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데 선구자가 되었다.

그의 친구인 몰리에르의 희곡 작품과 함께 사랑과 미움, 우정과 배신, 지혜와 어리석음, 성공과 질투 등등 우리들 삶의 내장에 대한 보편적인 통찰로 이어진다.

(박철화·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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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펌> 감독들의 3.12

"한나라당 의원들이 뒷짐지고 서 있는 장면, 공포영화를 보는 듯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42)

                                                                       
"요즘 파주에서 계속 영화 촬영중이라 '생중계'로는 보지 못했다. 저녁뉴스로 편집된 화면을 봤다. 내게 그날의 영상은 한 편의 '공포영화'였다. 의장석에서 끌려나와 통곡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의원들 모습이 슬펐다기 보다 한쪽 편에서 뒷짐지고 있는 서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보면서 괴괴한 느낌이었다. 뒤쪽 멀리 떨어져 최병렬 대표나 박근혜 의원 등 지도부가 당당하게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그랬다.

다들 생각이 비슷할 거라고 본다. 한심했다. 마음 한편에선 사회개혁이나 개선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는 좌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 정치역사의 엄청난 퇴보다. 87년 6월항쟁이 떠올랐다. 그 때 청산하지 못한 기득권 세력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끈질길 수 있는지, 또 그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얼마나 질긴지 이번 탄핵안이 통과되는 걸 보면서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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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좀비들...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귀환한다"
-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김지운 감독(42)

"참담하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탄핵 결과에 대한 파장이 클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설마 가결이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국회의 정치수준은 영화감독의 상상력을 초월했다. 어떤 잣대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만약 지금의 탄핵정국을 시나리오로 쓴다면 유치하다고 충무로에서 퇴짜맞는다. 말도 안되는 상상력은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박수치고 만세 부르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그러니까 박수를 치고 좋아하는 것 아니겠나. 탄핵이 가져올 여파에 대해 판단수준이 그것밖에 안 되나. 물론 전에도 정치인들이 실소를 자아내는 장면은 여러 차례 연출되었지만 이번 사태는 그 정점이다.

탄핵에 찬성한 193명의 의원들은 괴상망측한 몰골의 '돌아온 좀비들' 같았다. 앞으로 나가던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는 집단적 광기였고, 동시에 좀비를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좀비들에게 역사가 발목이 잡힌 것이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귀환한다. 지난 역사 속에서 국민들이 잘하겠지 하면서 봐준 게 있다. 그 잔재가 망령을 불어들였다.

어쨋든 살아 있는 사람들과 좀비들과의 한판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다시는 좀비들이 살아오지 못하게 확실히 매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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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으로 눌러버린 강간...결국엔 자위로 끝난 포르노 스펙타클" 
 [기고]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본 3·12 
 
그날 대통령 탄핵가결안을 통과시키는 국회의 스펙터클은 내게 정치적이라기보다는 포르노그래픽하게 보였다.

첫 번째 이유는 그걸 보는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협상과 토론의 중재에 의한 정치가 없었다. 그냥 힘으로 눌러서 벌이는 강간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보는 우리에게 즐겁지 않느냐고 뻔뻔하게 물어보는 중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이유이다. 그건 사실상 했는데 당사자들은 안 했다고 생각하고 있거나(그래서 국민들이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혹은 안 했는데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여전히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갈 데까지 가서 다 보여주고 말았다. 그런데 그건 한 게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 애처로운 일이다. 거기서 오르가즘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그들이 잊어버린 것이 있다. 포르노그래픽한 스펙터클은 두 가지 약점이 있다. 그 하나는 흥분은커녕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아무리 잘해봐야 그건 자위행위로 끝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민주주의라고 착각한 포르노그래픽한) 스펙터클을 보여주었지만, 거기서 흥분한 연기는 가증스럽고 유치한 것이었다.

사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포르노그래픽한 스펙터클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항상 그걸 보는 사람들이지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걸 보고 그냥 웃자면 익살스럽기도 하지만, 이 스펙터클에 함께 참여하라고 제안을 받으면 그건 끔찍한 일이다. 그러므로 광화문에 선 그 수많은 시민들이 노! 라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그대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런데도 방송국을 찾아다니고 신문사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중언부언하는 중이다. 무슨 말을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느냐고? 그냥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같다'는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더.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 당신이 잘 해서 이 포르노스펙터클과 맞서면서 당신 대신 거리에 서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이 한국군을 이라크에 파병한 것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의 차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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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나 「고통의 문제」 등으로 이미 국내에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대단한 영적 통찰력을 지닌 작가이지 않는가? 내용이 쉽지 않은 면도 있던데….
지난해 영국에 갔을 때 잠시 머문 집 주인이 루이스의 애독자였다. 그에게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 한국어판을 보여 주며 “내용이 쉽지 않다”고 말하자, “쉽지 않은 게 아니고 깊이가 있다”고 대답하더라. 그 말에 수긍했는데, 정말 쉽지 않다기보다 그 깊이가 여느 작가들과 달라 ‘쉽지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예기치 못한 기쁨」에는 ‘C. S. 루이스 회심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지금까지 나온 루이스의 책들과 달리 지극히 사적인 고백들을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그 점이 「예기치 못한 기쁨」의 큰 매력 중 하나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루이스의 어릴 적부터 청년기까지 사진들이 맨 앞에 별도 편집돼 있어 흥미를 더한다. 루이스는 머리말에서 “내가 어떻게 무신론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의 대답은 아주 성공적이다.

내용을 짤막하게 간추려 들려준다면?
루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고 상상하기를 좋아했다. 이미 다섯 살 때 직접 동화를 쓰고 그 동화의 삽화를 그릴 정도였다. 암에 걸린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회의를 가져다 준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 후 여러 학교를 거치면서 그는 희미하게 남아 있던 신앙의 그림자를 모두 지워버리고 마침내 중학교 시절에는 무신론자가 된다.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가기 전 커크 패트릭이라는 개인 교사에게 배우게 되는데, 패트릭은 무신론자에다 철저한 변증주의자였다. 그런데 그에게 배운 변증론적 사고가 나중에 루이스의 무신론을 깨는 무기로 쓰이게 된다는 점은 참 흥미로운 역설이다. 1929년 루이스는 여름 학기에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회심을 두고, 하나님께 ‘강제로 끌려갔기 때문에’ 제 발로 집을 찾아간 탕자보다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주목해 읽어야 할
포인트가 있다면?

루이스의 책들을 읽다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할까?’하고 절로 탄성이 나오는 적이 허다하다. 「예기치 못한 기쁨」은 루이스의 생각의 속살이 오래도록 씹히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은 큰 틀에서 종교적 회심을 그리고 있지만, 문체나 글의 구성상 영문학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문체뿐 아니라 그 문체를 고스란히 맛보게 해 주는 번역, 자기 고백적인 생각, 사고의 편린들을 한 올씩 음미해 보라. 그리고 번역자의 분투를 보여 주는 역주(譯註)를 성실히 따라가 보라. 그러면 왜 다 읽고 난 사람들이 ‘이런 재미가 있는 책도 다 있네’라고 말하는지 알게 된다.


글·옥명호 홍성사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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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박사 2004-03-1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인적으로 c.s.루이스를 좋아합니다만.. 이 책은 읽다가 말았습니다. 그 예기치 못한 기쁨을 발견하기까지 좀 지루하더라고요. 아마, 지금 읽으면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stella.K 2004-03-15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읽지도 못했습니다. 전 귀가 얇아 남의 얘기 잘 듣는 편인데, 설박사님 때문에 이 책 고려대상이 되었네요. 저에겐 이 책이 '예기치 못한 슬픔'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죠...흠흠.
 

[책마을] 색깔 있는 세계 문학 4選


◆ 캣츠(T S 엘리엇 지음/김승희 옮김/문학세계가/6800원)

계미년 새해, 우리말로 옮겨진 세계문학이 풍성하다.

20세기의 대표적 시인 T.S.엘리엇(1888~1965)이 1939년에 출간한 우화 시집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이 ‘캣츠’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이 시집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캣츠’가 대중들에게 훨씬 더 친숙한 탓이다. 고양이 세계에 빗대 영국 사회와 인간군상을 풍자하고 있는 유쾌한 작품. 에드워드 고리가 그린 삽화와 영문 원작시도 함께 볼 수 있다.

◆ 모독(체루야 살레브 지음/서유정 옮김/전2권/푸른숲·각권 8000원)

지난해 출간된 이스라엘 작가 체루야 살레브(44)의 장편 ‘남편과 아내’에 감동한 독자라면 이 작가의 두번째 장편 ‘모독’을 놓칠 수 없다. “여성 독자라면 이 이야기에 본능적인 일체감을 느낄 것이며, 남성 독자라면 고삐 풀린 섹스의 생생한 묘사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뉴욕 타임스)라는 평가가 아니더라도, 서른 살 여성 야아라의 삶을 통해 연애소설과 성장소설, 심리소설을 아우르는 맛깔스런 독서가 가능하다.

◆ 사랑(도미니크 페르낭데즈 지음/이원희 옮김/작가정신/1만5000원)

공쿠르상 수상작가 도미니크 페르낭데즈(74)의 ‘사랑’은 소설로 풀어낸 예술사 기행이다. 나폴레옹이 위세를 떨치던 19세기, 7인의 미술학도가 주도적으로 결성한 모임 ‘루카스분트’가 자신들의 예술적 이상향인 이탈리아로 여행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베토벤, 프리드리히 싱켈, 스탕달 등 19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예인들이 화려한 문장으로 부활한다.

 

 

◆ 크립토노미콘(닐 스티븐슨 지음/이수현 옮김/전4권/책세상·각권 9000원)

마지막, 4권으로 완결된 닐 스티븐슨(43)의 ‘크립토노미콘’은 독특한 소설읽기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암호의 서’로 옮겨질 이 장르소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해독 경쟁과 근(近)미래의 인터넷 사업을 치밀하게 엮어내고 있다. ‘해커들의 헤밍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 작가는 특유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컴퓨터광들을 독자로 거느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한 간부는 “우리 회사에서 그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할 정도. 새 책에 대한 갈망과 그 책을 손에 넣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정초, 색깔 있는 세계문학과 함께 정신의 키까지 무럭무럭 키울 기회다.

(어수웅기자 jan10@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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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가 방송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작년 가을 KBS1이 개편 하고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꼭 볼려고 해서 본 건 아니었는데, 마침 채널을 돌리니, 86년도 였던가? 임수경이 북한에 간 것을 재조명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부터 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시절 전대협은 이적단체로 낙인이 찍혔고, 임수경은 무슨 빨갱이의 앞잡이가 된 양 매스컴에선 연일 그녀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그 프로에선 그 진실을 벗겨냈던 것이다. 정말 세월이 많이 지났다. 매스컴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더니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동안 그녀와 그의 가족들이 당했을 정신적 피해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 그 모든 것을 무릎쓰고 북한을 다녀왔어야만 했는가?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이냐는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그 시절은 군부독재가 횡횡했던 시절이라 뭐든 반공이데올로기적 성향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그 시절 잘 몰랐던 사람들은 임수경 씨를 손가락질하고, 욕하기를 서슴치 않았을 것이다. <인물현대사>는 보다 완곡하고 온건한 시각으로 그녀를 조명하고 있었다.

그 후 난 내가 몰랐던 그 시절을 80년대를 알고 싶었다. 나도 그 시절을 몸소 살았건만, 난 그 시절과 전혀 상관없이 살았기 때문에 난 그 시절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인물 현대사>는 임수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사람의 자취를 여러사람의 인터뷰와 자료로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내가 그 프로를 보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처럼 비난 받는 국회의원 중엔 가장 최근까지 '빈자천하지대본'을 외쳤던 정말 청렴한 '제정구' 국회의원이 있었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내가 그 프로를 보지 않았다면 김재규로 하여금 박정희 대통령을 끝내 죽으로 몰아가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차지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변호사 이태영 박사는, 자신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씨는...

그걸 보고 있으면 아, 이 나라에 애국자가 정말 많이 있었구나 새삼 자긍심이 생긴다. 우리나라에 태극전사만이 나라를 위해 애국했을까? 

역사는 어려운 학문이라고 한다. 특히 어느나라나 근현대사는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인물 현대사>는 딱딱하지 않고 쉽게 시청자들에게 다가간다. 난 이 프로가 오래 살아남았으면 한다. 오늘도 <인물 현대사>는 한다. 밤 10시에. 우리가 좋아하는 국민배우 문성근의 낮은 저음에 실려. 나는 오늘도 그 시간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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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04-02-27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물현대사 좋은 프로입니다. 전 장준하 선생님편 보고 불끈 올라오는 분노를 느겼습니다.

stella.K 2004-02-27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저도 장준하 선생님편 봤어요. 정말 동감입니다. 너무 안타까왔구요. 그분의 책을 한번 봐야겠다는 의무감도 생겼구요. 메시지님은 장준하 선생님 책 읽어보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