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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남편을 잃은 여자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지금의 명동 유네스코회관 맞은쪽 골목 어귀 일본식 적산 가옥 1층에 '은성'이란 술집을 차리고 그곳의 주인이 된다. 그때는 전쟁 직후로 막대한 군수품(일명 PX 물품과 구호물자)이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 흘러들어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였다. 멋 부리기 좋아하는 당대 문인들은 그곳에서 양복이나 트렌치코트, 모자 등을 사 걸치고 다방으로 출근해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가 운 좋으면 원고료를 손에 쥐고 대폿집으로 몰려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 무렵 대폿집은 그 이름만큼이나 사연도 갖가지였다. 이를테면 시인 조병화가 '포엠'이란 시를 썼는데 그가 자주 다니는 이름 없는 대폿집에 헌정해 그곳의 간판이 되었다. 폐허에서 주운 벽돌로 낮게 담을 쌓은 일명 '명월관'이라고 부른 노천 대폿집, 오로지 안주라고는 아지밖에 없어 '아지 스테이션'이라고 불리게 된 '무궁원'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은성'도 그런 대폿집 중 하나다. 


이 '은성'엔 변영로, 천상병, 박인환, 전혜린, 이봉구, 윤용하, 김수영, 이전섭, 김환기, 문일영, 김기팔 등이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의 주인은 자신의 가게를 찾는 모든 사람에게 친구이자 누나이고 어머니가 되었다. 또한 그런 문화 예술인들에게 빈대떡을 부쳐주며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 주기도 했다. 문득 과연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싶다. 주머니 사정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사정 보고 하는 것. 영혼을 위한, 영혼에 의한 영혼의 장사라고나 할까. 상처 난 마음에 음식만큼 위로가 되는 게 또 있을까. 그래서 사람은 소울 푸드를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변영로가 아직 학생인 그 집 아들을 불러 술 배울 나이가 되었다며 잔에 막걸리를 따라 준다. 모르긴 해도 주인도 그것을 굳이 마다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원래 주도는 아버지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인데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아들이 주도를 배워야 한다면 그런 문인에게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을까? 담배 하면 공초 오상순이요, 술 하면 수주 변영로라는데 그런 그에게 주도를 배운다면 아들도 똑같은 술꾼이 되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도 제 운명이지 담담하게 받아들였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첫 잔을 받아 든 은성 대폿집의 아들은 마신 후 잔에 남은 찌꺼기를 무심코 바닥에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물론 그 순간만큼은 그게 실수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으레 남에게 건네받은 술잔에 술이 남아 있으면 바닥에 떨어내기도 하지 않는가. 그게 어찌 보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보는 입장에선 내가 주는 잔을 더럽다고 생각해서 떨어 버리는 건 아닌가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변영로는 그게 이니었다. 그는 은성 주인의 아들의 뺨을 한 대 때리며 "이 여사가 자식을 잘못 키웠구먼. 잔에 남은 곡식을 (땅바닥에) 버리다니." 하며 호통을 쳤던 것이다. 쌀 귀한던 시절 곡식을 땅에 버린다는 건 그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이 안 갈 일이다. 곡식 자체도 아니고 그것을 푼 물(?)에 지나지 않는데 그렇다고 남의 집한 아들의 뺨을 때리다니. 하지만 변영로가 권위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은성의 모자가 겸손해서일까 아무튼 그 후로 은성의 주인 아들은 절대로 남은 술을 바닥에 버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가 누군가 하면 우리가 잘 아는 국민 아버지 탤런트 최불암 씨다.    


그렇다면 이렇게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술찌꺼기를 땅바닥에 버렸던 이유만으로 뺨을 때렸던 변영로는 누구인가. 그는 시 <논개>를 쓴 시인으로 유명하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사실 알고 보면 시인 변영로는 거의 천재에 가까웠다. 1898년에 태어난 그는 1915년 조선중앙 기독교청년회 학교 영어반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쳤다고 한다. 1918년 <청춘(靑春)>에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무엇보다 1919년에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1923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로 교단에 섰다가 1931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주립 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귀국을 한다. 이후 1933년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하다 1934년 잡지 <신가정>의 주간을 지내다 광복 뒤 1946년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가 된다.


이처럼 변영로는 굉장한 엘리트였다. (농담이지만) 이런 사람이라면 아무리 귀한 집 자식이라고 맞을만하지 않을까. 더구나 유교 사상이 강한 나라에서. 아무튼 그 얘기는 최불암 씨가 유명해지면서 자주 회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불암 씨도 인터뷰 때 그런 질문을 받지 않았을까. 그때 왜 술찌꺼기를 땅에 버렸는지 (유명한 시인의 뺨을 맞으니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그러면 그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훗날 그의 자서전이나 평전이 나온다면 한 줄 정도는 그 일화에 대한 답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그저 얼버무리듯 그 특유의 웃음소리를 들을 것만 같다. "글쎄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그냥 제가 나오는 '한국인의 밥상'이나 보시죠. 파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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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2-15 1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정 40년>은 저도 참 재미있게 읽었고, 아끼는 책입니다. ^^

stella.K 2021-02-15 14:16   좋아요 2 | URL
헉, 저 Falstaff 님의 서재에 있다고 오는 길인데...ㅋㅋ
그렇군요. 저도 나중에 읽어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2-15 15: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에는 제가 무척이나 문외한
인지라... 쩝...

stella.K 2021-02-15 15:52   좋아요 0 | URL
여기서 중요한 건 최불암입니다. 파하하하하~

cyrus 2021-02-15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주동 선생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애주가에다가 머리가 좋았다고 해요. 양 선생은 누님의 글에 언급된 문인들과 한 번은 만나봤을 거예요. ^^

stella.K 2021-02-16 14:54   좋아요 0 | URL
당연하지. 나 어렸을 때 TV에도 몇번 나왔던 걸 기억해.
언변이 좋다고 하던데 난 워낙 어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장석주의 책 1권 보니까 양주동 선생이 그렇게 구두쇠였다고 하더군.
돈 안 주면 절대로 글을 쓰지 않았다고.ㅋㅋ

hnine 2021-02-1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 저 시 우리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왔던 것 기억나시죠? 시험문제에도 자주 나와서 한줄 한줄, 단어 하나 의미와 비유법등 공부할게 잔뜩이었던 시. 이 시를 왜 지금까지 그렇게 기억하게 만들었는지, 시험제도가 원망스러울따름입니다.
최불암씨와 은성에 관한 얘기는 방송에서 들어 알고 있었지요.

stella.K 2021-02-16 14:5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한번은 얘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러니까 장석주 작가의 책에도 실렸겠죠.
물론 장석주 작가도 어딘가에 실린 이야기를 정리한 것일테지만.
그때 최불암 씨 왜 그랬는지도 얘기하던가요?
아, 그거 들었어야 했는데...ㅠ

이 시다뿐이겠습니까? 시를 시로서 배우지 못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엔 없을 것 같아요. 시를 느끼지 않고 해부하잖아요.
그러다 ‘논개‘ 노래로 나오지 않았나요? 이용이 불렀던 것 같은데...
7,80년대 시를 그대로 노래로 부르는 가수들이 몇 있었잖아요.
그때가 참 좋았는데. 아무리 케이팝이라고 하지만 요즘 아이돌들이
부르는 노래가 뭐 옛날 노래만한가요? ㅠ

hnine 2021-02-16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개는 이동기라는 가수가 불렀고, 제목은 논개이지만 가사가 다를거예요.
시를 그대로 노래로 부른 것으로 기억나는 가요는 송창식의 푸르른 날, 마야의 진달래꽃, 정미조의 개여울, 그 정도 밖에 기억이 안나네요.

stella.K 2021-02-16 19:11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저는 왜 그걸 이용이 불렀다고 생각했을까요?ㅋㅋ
그러니까요. 저 변영로의 시를 변형시켰을까요?
암튼 그 시절 가수들은 시를 그대로 부르기도 했고
가사 자체가 시 같은 것도 많았죠.
대표적인 게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나 한계령이잖아요.
조용필이도 그렇고. 등등...
 

 

새로운 신작 <해리>들고 나타난 공지영 작가. 얼마 전, 주진우 작가를 걸고 넘어져서 왜 그러지? 좀 이상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읽기 시작한 책에서 그 의문이 좀 풀렸다.

 

 

제목이 하도 그럴 듯하여 읽기 시작한 강준만의 책이다. 이 책에 보면 74쪽에 나와 있는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를 보면,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이 만든 팟캐스트 <나꼼수>를 잘 알 것이다.

지난 2012년 1월 말에 이른바, '비키니- 코피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게 뭐냐면, BBK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법원으로부터 허위사실 유포로 정봉주가 2011월 12월 말에 구속 수감이 되었다. 그때 당연히 정봉주는 팬 카페 회원에게 무죄 석방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독려했다고 한다. 그 중 한 여성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가슴 부위에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를 쓴 모습을 찍은 인증샷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한다. 그러자 김용민이 <나꼼수> 방송에 정봉주의 근황을 전하면서 "정 의원께서는 독수공방을 이기지 못하시고 부끄럽게도 성욕 감퇴제를 복용하고 계십니다. 마음 놓고 수용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단다. (에라이~! ㅉ)

 

그러자 우리의 주진우 기자 그도 남자라고 한마디 거들었나 보다. 홍성교도소에 있는 정봉주 접견 신청서에 "가슴 응원 사진 대박이다. 코피를 조심해라!"라고 쓴 글을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공개했다고 한다. 그러자 다음 날 공지영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자의 70%가 성매매 경험이 있는 나라에서 여자의 몸에 대한 시각은 당연히 정치적이며, 수구와 마초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성징을 드러내는 석방 운동을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그것에 대해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나꼼수>팀과 의견을 달리한다.며 <나꼼수>에 사과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 다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지는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작가 공지영이 <나꼼수> 사람들을 고운 눈으로만 볼 수 없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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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패한 농담
    from 네 멋대로 읽어라 2018-08-22 16:51 
    김어준의 이름하여 '비키니 1인 인증샷' 사건이 터지자 이택광, 권혁범 같은 남성 평론가들은 <나꼼수>의 "강한 마초이즘"이 폭로 되었다며 "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젠더(성)와 섹슈얼리즘에 대해선 성찰을 게을리했다는 증거"라며 성찰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자 곧 김어준이 <시사IN> 주최로 열린 '시사IN 토크 콘서트'에서 자신은 "성희롱할 의도가 없었다"며 "성희롱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성희롱에는 권력의 불평등 관계가
 
 
서니데이 2018-08-20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해리를 얼마전에 사긴 했는데, 요즘은 언제 읽을 지 모르겠습니다.
밖에서 시원한 바람이 조금씩 들어오는 저녁입니다.
stella.K님, 기분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stella.K 2018-08-21 19:2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이제 밤엔 꿀잠을 잘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 새벽에 비가 내려줘서 오늘 밤은 더 선선할 것 같습니다.
창문 닫고 이불을 덥고 자야겠습니다.
샤워도 이제 찬물엔 못하겠더군요.
하긴 그동안 워낙 더워서 찬물도 아니었지만...

서니님도 좋은 저녁시간 되시길.^^

cyrus 2018-08-20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만나는 페미니스트 대부분은 김어준, 정봉주 안 좋아해요. 정봉주 사건 터지기 전에 김어준의 비키니 발언 때문에 실망했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stella.K 2018-08-21 19:33   좋아요 0 | URL
그럴만도 하겠더라.
자기네들이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더군.
지금도 여전한 건지 모르겠어.
저 내용 뒷이야기를 오늘 마저 읽었는데
기회되면 올려볼까 해.
저 3인방도 문제지만 나도 여자면서 이런 일도 있었나?
부끄럽더군.ㅠ

카스피 2018-08-21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진보 진영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는 이른바 386세대 남자들이 경우 여성에 대한 사고는 과거 8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보심 될것 같습니다.그러니 안희정,이재명같은 사건이 생겼겠지요.

stella.K 2018-08-21 19:3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386은 민주화를 이루는데 기여는 했을지 몰라도
아직 페미니즘엔 무지한 세댑니다.
사람의 의식이 변하는 건 생각 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기는 페미니즘을 옹호하거니 아예 페미니스트
자처하기도 하죠. 어림없습니다.
 
 전출처 : stella.K > 음악을 듣는 귀를 키워라!

 우선 강연회장에 도착하니 오디오와 스피커가 눈에 띈다. 그곳은 전에도 두어 번 가 본적이 있는 어느 북카페였는데 그 전에도 그 오디오와 스피커가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있었던 것도 같고, 없었던 것도 같고. 아무튼 뭔가 준비된 강연회 같아 기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턴테이블과 LP판 눈에 띈다. 이것은 또 얼마만에 보는 물건인가? 몇년 전 턴테이블과 LP판이 복고 열풍을 타고 다시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막상 실물을 보니 반가웠다. 그리고 오디오 시험 방송(?)을 위해 틀어 준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1번이다. 저자는 바로 이 말러를 얘기하는 것으로 그날의 강연을 시작했다.

 

사실 그 시간은 저자의 두 번째 강연시간으로,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첫째 시간은 참석을 못하지 못했고 이렇게 <쇼팽과 리스트: 피아노가 부르는 밤의 노래>에 참석했다. 저자는 강연 초반에 요즘엔 클래식 대중화 바람을 타고 여기 저기서 클래식 강의를 많이 하는데 너무 쫓아 다니지는 말라고 한다. 그것은 클래식은 많이 듣는 것이 중요하지 학습하려고 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무엇이든 즐기기 전에 학습부터 하려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성을 경계하는 말일 것이리라. 하지만 나 자신 좀 띄아해진 것도 사실이다. 나는 클래식을 학습할 생각은 없는데 사실 클래식이 여간해서 즐겨지는 분야가 아니고 보면 이런 강연회장이라도 기웃거려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도 학습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하지만 또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런 기회가 계기가 되서 오히려 더 열심히 클래식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저자는 요즘은 중년층 이상에서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것은 아마도 들을 만한 대중음악이 없어서는 아닐까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모름지기 노래란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하는데 4, 50대 만해도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가 없다. 정서도 다르고. 하지만 말했다시피 클래식은 다소 어렵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이런 강연이나 강의를 들으러 다니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기 보단  똑같은 음악을 여러번 반복해서 듣고 연주회장을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근육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 유행하는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이나 음악이란 장르는 스스로 귀를 여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클래식도 그 시대는 대중음악이 아닌가. 

 

그런데 문득 나는 정작 저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정보도 없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또 저자에 대한 결례는 아니었을까? 뒤늦게 나마 저자에 대해 알아 보니 그는 모신문사 문화부장을 지낸 기자 출신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강연내내 음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클래식에 얼마만한 열정이면 저런 강연을 할 수 있는 걸까 감탄할 정도였다.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쇼팽에 관한 부분이었다. 물론 당연한 것이긴 하겠만 사실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으로 그는 주로 피아노 독주곡을 많이 썼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초기 협주곡도 썼다. 그러면서 저자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 주었는데 아무래도 초창기였던만큼 완숙기에 썼던 작품과 차이가 남을 설명한다. 그 과정을 베토벤과 박완서에 대한 예를 들기도 했는데, 베토벤이 위대한 것은 그의 작품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함에 있다고. 그러면서 저자는 데스크 기자 시절 이런 저런 명사들에게 원고 청탁을 하는 때가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명사들인만큼 완벽하고 좋은 글을 보내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그들의 글은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놀랄 정도로 형편없기도 한단다. 그래서 결국엔 신문에 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그들의 글이 수준이하여서라기 보단 신문의 원칙 중 하나는 지면이 한정된만큼 무엇을 더 할 것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뺄 것이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원칙 때문에 실을 수 없는 것이라고.  그런 와중에도 소설가 고 박완서 씨의 글은 완벽해서 문장 중 뭐 하나를 빼면 글 전체가 무너질 정도라고 한다. 과연 박완서구나 싶다. 그러고 보면 고 박완서 는 한국 문학계의 베토벤이었나 보다싶다.(난 이렇게 문인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그런만큼 저자는 베토벤과 박완서의 예를들어 완벽함이 무엇인지를 말하며 쇼팽의 초창기의 작품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하려 한 것이다. 그런 설명을 듣고 막상 쇼팽의 완벽하지는 않지만 풋풋하고 의욕에 앞선다는 협주곡 1번을 들었다. 그런데 왠걸, 난 귀가 무뎌서 그런가 도대체 뭐가 풋풋하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내가 들은 협주곡 1번은 테크닉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그곡의 연주자는 그 유명하다던 루빈스타인이다. 그는 원래는 힘있는 연주 스타일로 유명했으나 말년에 힘을 많이 빼고 연주한 것이란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저자가 거짓말을 한 것처럼 오해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나는 클래식 초짜나 다름없으니 이곡을 들으면 이곡이 좋고, 저곡을 들으면 저곡도 좋다. 그러니까 무엇이 무엇과 어떻게 다른지를 구별하고 판단하리만큼 변별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오류 아닌 오류를 범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스스로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그 한 시간 그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그런 자리에서 음악을 들으면 작곡자나 연주자의 생애를 듣는 건 기본이다. 우리는 저자가 이끄는대로 그들의 생애를 듣고 어느새 음악 용어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영화 이야기를 듣고 또 어느새 문학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그만큼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워낙에 풍부하고 방대해서 다 받아 적을 수가 없다. 그러지 않아도 저자는 자신의 하는 말을 노트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하긴 이 시간을 즐기러 왔지 노트하러 온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저자의 말을 듣고 싶다면 책을 사서 읽으면 된다). 

 

사실 그날은 강연의 제목도 제목인만큼 쇼팽뿐만 아니라 리스트도 다뤘어야 하는데 쇼팽만큼 리스트는 그리 많이 다루지 못했다. 리스트는 원래 '헝가리 광시곡'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란 소설로 한 번 더 유명해진 음악가이다. 하루키가 리스트의 '순례를 떠난 해'에서 제목을 따와 그렇게 붙였으니 말이다. 하루키가 제목을 그렇게 짓지 않았더라면 리스트의 곡 중에 그런 곡이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것 말고도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1Q84>에서 '야나체크의 심포니에타'를 소개하므로 야나체크를 세계에 알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자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음악을 사용하려면 그렇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써야 한다고 한다. 잘 아는 곡을 써 봐야 작품에 그다지 많은 도움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소설을 통해 음악이 뜨던가 음악을 통해 소설이 뜨던가 해야되지 않겠는가? 물론 소설과 음악 두 분야의 공조의 문제일테지만. 영화는 익숙한 음악을 써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 마침 라디오에 야나체크의 음악이 나왔다고 시작되는 <1Q84>의 첫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오버 같긴하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만 하긴 하다. 하루키는 확실히 영특한 작가다.  

 

보통 저자들의 강연은 1시간 반을 넘지않는데 이날은 두 시간을 넘겼다. 그런데도 저자는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의 1/5을 했을까 말까란다. 정말 시간이 아쉬웠다. 그러면서 우리는 리스트의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안녕을 고했다. 사람들 모이는 것을 감안한다면 너무 일찍은 시작 할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예정된 시간 보다 10분 내지 15분 정도는 일찍 시작했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어째든 그날의 강연은 꽤 유익한 시간이었다. 나는 나오면서 새삼 '클래식 초짜'란 말을 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초짜로 살 것인가? 라디오를 듣거나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들어 본 곡이군 하며 스스로 만족할 줄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이 글은 지난 5월 7일 <더 클래식 둘> 문학수의 클래식 Talk 콘서트를 다녀 온 후기다. 유려한 강연과 좋은 음질의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 저자와 주최측에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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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4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5 1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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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5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6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5-05-1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막귀라고하죠....그 막귀가 뚫리면 감당 안되죠.^^.

stella.K 2015-05-18 15:25   좋아요 1 | URL
ㅎㅎ 막귀! 그걸 그렇게 부르는군요.
마치 조직의 2인자의 별칭 같아요.ㅋㅋ
 

 

 

지난 3월 18일은 김탁환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어쩌면 사진 보다 더 백발에 가깝고 훨씬 더 부드러운 인상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 부드러운 인상은 차라리 어눌함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만큼 그는 선하고 순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그가 나온다는 B 카페를 허겁지겁 들어서고 보니 입구에서부터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애써 못 본 척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지만  그를 만나 보길 나는 또 얼마나 기대했던가? 

 

그는 이번에 조선시대 조운선 침몰 사건을 다룬 <목격자들>을 내고 민음사 주관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시작은 작품을 끝내고 난 그의 근황을 듣는데서부터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그는 이렇게 독자를 만나는 스케줄을 계속하고 있었다(모르긴 해도 이날이 책을 낸 후 첫 스케줄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번엔 지방 독자들을 위해 이런 강연회를 몇 차례 더 가질 것이고, 특별히 도서관 강연을 많이 가질 거라고 했다. 

 

언젠가 그는 자신을 단순히 소설가라고 하지 않고 집필 노동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에 걸맞게 그는 작품을 마치면 곧 바로 그 다음 날 새로운 집필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그러질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쓰는 내내 몸이 젖어 있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조운선 침몰 사건에서 세월호를 생각해 냈는데, 정말 그는 세월호를 생각하고 조운선 침몰 사건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 달 반 정도 작업을 작파했었다고 한다. 집필 노동자를 자처한 그가 한 달 반을 글을 못 썼다는 건 그 사건이 꽤 충격적이긴 했었나 보다. 그래서 일까? 작가가 직접 읽어주는 낭독 시간을 가졌는데  2권 378쪽을 읽어 주었다. 그것은 조운선에서 타고 있다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이름을 써 놓은 장이었는데 특별히 '제탁'이란 이름이 나온다. 그 이름은 다름아닌 작가 김탁환의 족보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끼워 넣은 것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렇게하므로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하고 싶었던 작가의 자의적 행동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오래 전부터 조선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써 오고 있는데 이 책 <목격자들>이 30, 31번째 소설이고, 그는 필생의 작업으로 이것을 60권까지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벌써 반환점을 돈 셈이다. 마치 발자크의 <인간희극>처럼 말이다(이것에 관해서는 jpsartre.egloos.com/853064.을 찾아 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보면 작가들 저마다 필생의 작업이란 게 있나 보다. 고은도 <만인보>를 아직도 쓰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는 왜 조선을 쓰는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고려시대는 너무나 먼 과거여서 육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상상으로 써야하는 반면 조선시대는 파헤치고 연구하 보면 뚜렷한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목격자들> 그의 많은 백탑파 시리즈 중 하나인 셈인데 알다시피 '백탑파'란 학문적으로는 연암파로, 원각사지십층석탑에서 당대 지식인들이 랜드마크 삼아 모이고 발전해 갔던 학파다. 그것을 작가 특유의 안목으로 파헤치고 소설로 형상화한다는 건 확실히 꽤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특별히 이 책은 홍대용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는 우리로 말하면 신대철급 거문고 연주가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연주가에서 머물지 않고 악기를 만들기도 하며 망원경을 만들기도 했고, 수학자이기도 했단다. 그는 유학자로 시작해서 묵가로 갔던 급진적 사상가였다고.

 

하지만 그런 작가도 한동안 백탑파를 쓰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왜 그랬던 것일까? 그는 한때 추리소설에 대한 회의 즉, 지나친 낭만주의와 사필귀정이란 독자들이 예측 가능한 소설을 쓰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작가들이 잘 도전하지 않는 장편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장편을 쓸 때 보통 세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한다. 첫째로, 순식간에 없어짐 또는 어떤 타락이나 부패를 통해 생명의 존귀함을. 두번째로 인간 존엄의 문제를. 세번째로 구경꾼과 목격자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곹고통에서 비극으로 어떻게 나갈 수 있을까? 특별히 비극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 영혼을 강건하게 하는 것을 주제 삼아 작업을 한다고 한다.

 

2부 순서에선 천문학자인 이명헌 씨가 게스트로 나왔는데 두 사람의 유대관계가 나름 돈독해 보인다. 이명헌 씨는 작가가 과학적 자식이 남다른 과학적 작가고, 김탁환 작가는 이명현 씨를 가리켜 과학도임에도 문학적인 사람이라고 추켜 주었다. 무엇보다 이명현 씨는 작가를 가리켜 혜성과 같은 작가라고 했다. 우린 흔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스타를 가리켜 혜성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혜성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발하는 별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도 주기가 있는데 무려 76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해왕성까지 갖다 오는 시간이 그렇다고 한다. 그동안 자기 살을 깎아먹고 돌아 오는 것이 혜성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해가 갈 것도 같다.  하지만 확실히 김탁환 작가가 걸어 온 길과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보면 그는 확실히 훗날 우리나라 문학사에 (어떤 의미로든)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이제 반환점을 돌았으니 나머지 반을 또 가야한다. 그가 자신의 작업을 마칠 때쯤이면 노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작업을 마칠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내내 건강해서 우리가 오래도록 지켜볼 수 있는 작가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김탁환 작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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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2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백탑파 책좋아하거든요..
작가관은 모르겠고..멋지다 생각했어요.
잘읽고..갑니다.

stella.K 2015-03-25 15:40   좋아요 1 | URL
그날 메모를 거지같이 하다보니 정리가 좀 안 되더군요.
여기까지가 한계다 싶어요.ㅠ
그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누구는 김탁환 작가는 스토리텔러로는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갈 것 같긴해요.
그래서 그의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기에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그장소] 2015-03-25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시나리오 뽑기로는 좋죠.저도 동감.그는 머릿속에 그려져있는 걸거라고..봐요.
입체적으로..의도치 않어도...그리되는 스타일인지도...
이번 책은 아직 안읽어서..뭐랄수없거든요.
그렇지만 조선시대 배경으로 ..저는 누구든 계속 해나가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봐요.
미야베가..에도시대를 그리듯..우리작가도..있었으면 하는 거죠.
그 사람이 김작가임이..싫지않고..그역시 부지런히 tv시리즈등 해서 우리한테 이런 시대가 ..시대를 그릴 작가가 있다는게 알려지길원해요.

급히쓰신 건지..모르나 많이 써본 솜씨임은 단박에 알겠다고..프로시구나.
하고..
너무 잘 읽었어요.

stella.K 2015-03-25 18:16   좋아요 1 | URL
그렇죠. 미야베는 에도시대. 김탁환은 조선시대.
작가로서 다른 거 안 보고 자기 특화된 전문 분야를 갖는 게
좋을 거라고 봐요.

님의 칭찬을 받으니 어깨가 으쓱한데요? 고맙습니다.^^

blanca 2015-03-2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텔라님의
이런 작가와의 만남 후기글이 참 좋아요. 생생해요.

stella.K 2015-03-25 17:49   좋아요 1 | URL
저 안 죽었죠?ㅎㅎ
저도 작가와의 만남은 굉장히 오랜만이어요.
이것도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해서 간 거지
강북에서 하는 것 같으면 못 갔을 거예요.
모처럼 갔다 오니까 기분이 좋더라구요.
기회되면 이런 글 또 올릴게요.
읽어줘서 고마워요.^^

붉은돼지 2015-03-25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끄럽게도 저는 김탁환의 책은 한권도 못 읽어봤어요 ㅜㅜ
혜성과 같은 작가....그런 말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멋진 일인것 같아요. 조만간 제탁월드에도 입성해야 할 듯 ㅋㅋ

stella.K 2015-03-25 18:22   좋아요 1 | URL
제탁 월드. 그렇군요. 날렵하신데요?ㅋㅋ
김탁환 작가도 생각 못했을 겁니다.
저도 지금까지 두 권 정도 읽은 것 같아요.
이번에 백탑파 시리즈가 새롭게 나와서 정말 갖고 싶더라구요.
솔직히 그날도 책을 샀어야 하는 건데
읽을 책이 너무 많아 자제하느라고 혼났습니다.
사실은 예의상으로라도 샀어야 하는 건데...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5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탑파 지지합니다. 이런 시리즈 소설이 사실 한국 문학에서는 흔하지 않죠. 미국이나 일본만 봐도 된다 싶으면 시리즈물이 연속적으로 나오잖아요. 한국 문학이 지나치게 순문학 우선 정책을 펴고 장르 소설을 개차반으로 대접하는 경향이 있죠...

stella.K 2015-03-26 11:59   좋아요 0 | URL
순문학도 설 자리가 없으니 버텨보는 건 아니겠습니까?
요즘엔 장르문학이 순문학을 앞지른 거 같기도 하던데...
이젠 김탁환처럼 한 분야를 거름삼아 필생의 작업을 해도
밥 먹고 사는 그런 세상이 되야할 거예요.
이젠 순문학은 독자들도 잘 안 보잖아요.ㅠ

yamoo 2015-03-2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가 포함된 유익한 글입니다~! 김탁환 작가 소설은 초기작만 보았는데..방각본..부터 안본거 같아요. 계속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쓰고 있는 김작가의 노력이 대단해 보입니다. 한때 즐겨읽던 작가였는데..

stella.K 2015-03-26 15:12   좋아요 0 | URL
김탁환 팬이시군요.
작가도 작품과 함께 나이들어 가죠. 코난 도일이 그랬다고 하더군요.
그걸 느껴보는 것도 꽤 의미있는 일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 이 사람 작품을 쭉 읽어보고 싶어요.
문학성은 모르겠으나 전문성과 대중성은 어느 정도 확보했잖아요.
그러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transient-guest 2015-04-02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탁환 작가 팬이에요. 구할 수 있는 그의 책들은 모두 갖고 있습니다. 절판된 몇 가지는 아직 손을 못 쓰고 있지만, 한국에 갈 기회가 생기면 헌책방을 돌아볼 생각입니다. 한국에서 살지 않아서 아쉬울 때가 있는데, 이런 작가만남이나 관심가는 교양강좌를 갈 수 없다는 점도 포함되네요.ㅎ

stella.K 2015-04-02 11:24   좋아요 0 | URL
아, 지금 님께서 계신 곳이 한국이 아니군요.
해외에 계시면 그점이 아쉬울 것 같긴 하네요.
그런데 이런 것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일이지
게으르면 말짱 꽝인 것 같아요.ㅋ

김탁환은 정말 컬렉션으로 가지고 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절판된 작가의 작품들이 새로 나오기도 하는데
반갑기도 하더라구요.^^
 
 전출처 : stella.K > 우리가 김훈 작가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에 관해

2010년, 내가 마지막으로 강연회에 참석했던 건 작가 김훈의 강연회였다. 12월 21일, 정독도서관에서 열렸는데, 작가의 명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빈자리가 없어 몇몇은 서서 강연을 들을 정도였다. 사실 나는 김훈 작가의 강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년전쯤이던가? 작가가 <남한산성>을 펴냈을 때 참석한 적이 있었다. 김훈 작가의 강연회의 특징은 작가는 늘 혼자 강단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3년 전에 어느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강연에 임했는데, 이날 역시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강연이 시작됐다. 

  

 

 

 

 

 

 

 

 

                                                                                                 (사진 출처: 마담웬디님) 

권희철 문학평론가가의  작가 소개로 강연이 시작됐는데, 그 소개가 나름 재밌다. 김훈 작가는 서울 출생이란다. 그런데 여기서 꼭 밝히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서울 출신 치고 사대문 안이냐, 밖이냐가 중요한데, 당연 작가는 사대문 안에서 출생하셨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대로 작가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특기겸 이력에 자전거 레이서라고 밝힌단다. 사실 자전거 레이서란 공식 직함은 없다.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다. 김훈 작가가 자전거 말고도 등산을 좋아해 알피니스트란 직함을 갖게되길 원했는데, 알피니스트라면 적어도 히말리야는 다녀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한번도 다녀와 본 적은 없고, 북한산이나 도봉산은 완주 했는데, 그것 가지고는 알피니스트라 명함도 내밀 수가 없어 자전거 레이서로 만족하기로 했단다. 이로써 또 한 번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왜 작가가 되었는가 관해

사실 강연회라고는 하지만 김훈 작가는 말을 아끼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따로 준비해서 들려줄 강연은 없고, 바로 질의응답식으로 들어갔는데, 사이 사이 사회를 맡은 권희철 씨가 보충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작가는 제일 먼저, 왜 작가가 되었으며,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묻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질문은 작가가 어딜 가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아닐까 싶다. 그 질문에 대해 그는 본래 소설가는 자신이 원하던 삶은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오히려 대기업의 생산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말하자면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는 말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자신은 1950년대생으로서 바로 자신의 시대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그 이전까지는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굶어 죽어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처럼 밥을 못 먹는 나라에서 밥을 먹는 나라로 발전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의 비리, 즉 밑바닥에 깔린 악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그것은 지금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고 했다. 그 질문을 했던 사람은 20대 후반의 작가지망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한 가지의 꿈을 가지고도 이룰까 말까인데, 원하지 않았는데 어찌하다 보니 무엇이 되어있더라 하면 좀 좌절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지만 작가 김훈에게도 그 같은 뚜렷한 동기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나라 밑바닥에 깔린 악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동기. 희망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동기. 무엇이든 그런 강력한 동기가 그 사람을 가장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김훈 작가에 대해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에 관해

김훈 문학의 화두는 역시 '남자'일 것이다. 또 그러니만큼 그를 두고 '마초'니 '가부장'이니 말이 많은 것에 대해, 그는 가부장은 인정하지만 마초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가부장이란 단어가 부정적 이미지로 씌여서 그렇지 원래 그것은 한 가정을 지키고, 부인과 아이를 돌보는 상당히 신사적인 의미라며 자신은 그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마초는 남자의 허세를 뜻하는 말로써, 자신은 그 단어를 아주 싫어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의 이상한 이론들, 이를테면 아들은 엄마를 좋아하고, 아빠는 딸을 좋아한다는 외디푸스 컴플렉스니 일렉트라 컴플렉스에 대해서 작가는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아버지와 아들은 몰라도 딸과 어머니는 대체로 잘 지내잖냐며 반문한다. 작가의 그런 말을 들으니 나 역시 엄마하고 잘 지냈나? 왠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는 정말 역사 소설을 쓰는 작가일까?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현의 노래>등을 보면 정말 그런 것도 같다. 게다가 지금 소설로 쓸지 안 쓸지 모르겠는데(내가 볼 땐 곧 쓰지 않을까 한다. 단지 말을 극히 아끼는 작가의 성정을 보면, 독자들과도 함부로 약속 같은 건 안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느꼈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를 공부 중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들을 볼 때 작가는 역사에 천착을 하고 그것을 소설로 쓰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부인했다. 단지 자신에게 있어 역사란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재료일뿐 역사 소설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남한산성>은 그 시대의 야만성을 얘기하려고 했고, <칼의 노래>는 남자의 고독을, <현의 노래>는 무기와 악기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 것처럼 소설을 쓰는 전략적 판단에 의해 선택되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만일 우리나라의 천주교 박해를 소설로 쓰게 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신앙을 지키는 쪽이 아닌 목숨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신앙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의 입장을 쓰고 싶다고 했다.   

어디서 영감을 얻는가? 

작가는 좋은 문장을 쓰는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나도 그렇지만 그의 문학을 읽는 거의 대부분의 독자는 그가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알고 싶어했다. 특히 그의 간결하고도 시적 문체를 보면 정말 시를 많이 읽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어떤 독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떤 시를 읽냐고.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의외였다. 작가는 시를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읽는 것은 의외로, 법전이나 소방실무지침 같은 책이라고 한다. 법전은  진화된 언어면서 그 언어가 갖는 명석함과 문장의 선명함 때문에 좋아하고, 소방실무지침 같은 책은 실제로 (위기상황에서) 사는 방법을 설명해 놓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좋아한다고 한다(과연 생각이 많은 사람에겐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구나 싶다). 단지 <칼의 노래> 같은 작품은 문장을 생각할 때 한 칼에 쓰는 문장을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빨리 쓰는 문장 즉 음악에서 휘모리나 자진모리를 생각했고, 전쟁소설이었던만큼 무사의 문체와 비장미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연 따라오는 어디서 영감을 얻을까란 의문에 그는 부러 언급을 회피했다. 영감 같은 것은 없다. 단지 노동만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확실히 작가다운 명확한 대답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생각하기에 따라선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는 이 질문이 작가의 속내를 알고 싶어하는 얄팍하고도 진부한 질문일수도 있을 터. 작가에게 있어 이 대답외에 할 수 있는 말이 달리 또 있을까 싶다.    

김훈 작가, 스피드를 권하는 오늘날의 세태에 대해     

강연 도중  작가는 상당히 인상적인 얘기를 했다. 이를테면 그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보면서, 복지의 무조건적 확장에 대해 반대했다. 기율 즉 무상으로 먹는 밥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무상으로 밥을 먹게 해 주기 보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한 우리의 청소년들이 왜 그토록 스피드에 목숨거는지 아냐며, 예를들면 아이들이 오토바이를 사기 위해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단다. 그런데 배달에 조금 늦기라도 하면 배달시킨 집에서 득달같이 주인에게 항의가 들어가고 그러면 주인은 배달나간 그 아이의 알바비에서 천원을 깎는다고 한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그렇게 스피드에 목을 매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나도 잘 몰랐던 사실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그렇게 피자배달을 오면 배달 온 그에게 반드시 팁을 줘서 보내라고 당부했다. 술집에 가면 전혀 생면부지의 여자들에게 팁을 잘 찔러주면서 왜 그런 아이들에겐 팁을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호응을 받았다. 그것은 확실히 생각해 볼 사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마무리...

그날의 강연회 분위기는 정말 활기찼다. 특히 작가는 사람을 그다지 잘 기억 못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래서일까? 권희철 문학평론가도 작가를 사석에서 만나고 또 얼마만에 다시 만나면 누구냐고 그러고, 뭐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건, 작가의 어느 열혈독자가 전에 작품 하나를 필사하고 보여드렸더니 잘했다고 칭찬했었는데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기억한다고 했다. 바로 그가 이번에는 <내 젊은 날의 숲>에 나오는 꽃 하나를 책에 나온 설명 그대로 그려서 액자에 넣어 작가에게 선물을 해 박수를 받았다. 나도 얼핏 그림을 보았는데 작품속에 나오는 조연주의 세밀화만큼이나 꼼꼼하게 잘 그렸다. 과연 열혈 독자라면 이 정도의 열의가 있어야하는 거구나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김훈 작가를 보면 쉽게 말을 섞기가 어려운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을 때 그는 일일이 사인 받으러 온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사인을 했다. 내 이름도 그의 입에서 불렸는데, 그때 잠깐 친절한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선입견은 또 말그대로 선입견은 아닐지? 의문 겸 기대를 가져본다. 지금도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자신은 지금 이렇게 나이 먹고 늙어가는 것이 좋다고. 인생을 다시 살아도 실수와 방황이 많은 젊을 때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그러고 보면 이제 더 이상 젊다고만 할 수 없는 나에게도 남은 건 어떻게 하면 회춘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작가는 현재 60대 초반인데 70이되면 글을 못 쓸 거라고 말하며 앞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작품의 수는 고작해야 두 세 작품이 될거라고 했다. '고작해야'는 적어도의 또 다른 말이 아닐까? 나는 작가의 이번 작품을 대했을 때야 비로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조금 감이 잡히는 것도 같았다. 소재는 다양하지만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쓰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아보인다. 부디 강건해서 그의 생의 나날이 다하기까지 좋은 작품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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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02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칼의 노래>랑 <개><남한산성>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지금 나온 신작을
포함해서 나머지 소설들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작가의 소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지 못한 저의 무지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김훈의 문학에 대해서
약간 어려워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스텔라님의 강연회 후기를 통해서
김훈의 문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은 스텔라님 서재에
처음 찜한 글이 되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1-01-03 11:33   좋아요 0 | URL
저도 말씀하신 3권의 책 참 재밌게 읽었어요.
특히 '개'는 지금 생각해도 참 독특하고 김훈 작가의 작품과는
또다른 느낌을 갖게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젊은 사람들은 김훈의 작품 읽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젊은 신세대 소설을 못 읽어주듯이.
전 아무래도 기성세대 맞는가 봅니다.ㅎ
근데 시루스님, 제 글을 찜해주시다니 영광이군요.
일일이 다 옮기지 못하고 더러는 빠진 것도 있어요.
이 강연회 후기글 올라오는 것 봤는데 내용에 많이 못 미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정리할겸 저도 후기를 써 봤습니다. 역시 정리를 하니 좀 낫더군요.
읽어줘서 고마워요.^^

2011-01-18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9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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