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영화 공식엔 공식이 있다. 즉 사람을 모은다. 자기네들끼리 툭탁거리며 싸운다. 난관을 만난다. 그 난관을 이겨낸 듯 보인다. 그러나 각자의 사정으로 흩어진다. 그러다 이러면 안 된다고 대오각성하고 하나 둘씩 다시 모이고, 으샤으샤한 뒤 아름다운 마무리. 이 영화 역시 그 공식에 충실해 보인다.
코치가 찌질이들을 모은다. 코치는 나름 똑똑한 사람이다. 선수들 개개인들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니. 그 욕망을 자극하면 어쨌든 없던 의지도 다시 살아나며, 궁시렁 궁시렁 말이 많아도 어쨌든 해낸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비인기 종목인 스키 점프라고는 하지만 찌질이 찌질이 그런 찌질이들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런 찌질이 발굴해내는 재주도 코치의 능력 중의 하날까?
아무튼 이들은 툭탁거리면서 2시간여의 러닝 타임을 잘도 이끌어간다. 한마디로 스포츠 영화는 재미없다는 인식을 날려버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영화계가 스포츠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 성공적이기도 하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성과가 좋지 않은가? 스포츠 영화도 잘만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이어 보여주고 있으니 아마 모르긴 해도 이쪽에 투자를 많이 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스키 점프. 알고 보면 꽤 매력있는 스포츠란 생각이 든다.
인간이 하늘을 날고자 하는 욕망은 태곳적부터였을 것이다. 그래서 좀 많은 장치들이 고안되고 발명되었을까? 스키 점프도 그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우린 이 스포츠에 대해 너무 무관심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관심없는 종목이 어디 스키 점프만인가? 핸드볼도 그렇지 않은가? 뭐하나 재대로 관심을 주는 스포츠가 없다. 그나마 야구나 축구나 농구, 골프는 꾸준히 뭔가의 이벤트가 있어왔고 그래도 주기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으니 이나마 이끌어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벤트 없고 스포트라이트 못 받는 스포츠는 늘 그늘져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렇게 영화로나마 스키 점프가 주목을 받았으니 앞으로는 그 대우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보게 된다.
뭐니 뭐니해도 이 영화는 하정우를 위한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평소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이 배우가 나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당분간은 하정우 전성시대는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서는 배역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냈다고 생각한다. 찌질이지만 속은 영웅이다. 입양아로서 자신을 버린 이 나라와 생모에 대한 원망과 용서 그 중간에서 갈등하는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고 봐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특히 하정우를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내게 어떤 나라일까?에 대해서 말이다.
비리 공화국. 하루도 사건, 사고가 안 터지는 날이 없는 나라. 데모가 끊이지 않는 나라.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찌질이가 되어버리는 나라.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사람처럼 못 되게구는 나라 국민도 없단다. 살고 싶지 않은 나라. 그래서 이민을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하게 만드는 나라. 뭐하나 예쁜 구석이 없다. 그래도 외국만 나가면 왜 그리도 애국가만 부르면 가슴이 뭉클하단 말인가? 그것이 꼭 하정우가 맡은 차헌태를 생각나게 만든다.
이 찌질이들 독일 올림픽인지 세계 선수권 대횐지에 나가 꼴등이나 다름없는 13등을 해 놓고도 선수 락커룸 캐비닛에 태극기 달아 놓고 울먹이며 애국가를 부른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뜨거운 마음으로 애국가를 부르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차헌태의 생모가 어린 시절 아들에게 토마토를 설탕에 재어 먹였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 추억 때문에 차헌태는 차마 나라를 배반하지 못했고 생모를 원망하지 못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못된 나라. 사니 못 사니 하는 나라여도 우리의 어머니가 아내가 해 준 뜨신 밥과 모유를 먹고 자랐기에 우린 차마 이 나라를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TV 드라마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영화는 찌질이를 개과천선시켜 용이 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TV 드라마는 이 공식이 처음부터 통하질 않는다(고 믿는다). 처음부터 등장인물이나 배경이 화려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을 해 놓으니 나중에는 가랭이가 찢어져 용두사미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찌질이가 아닌 F4같은 왕자님들을 등장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잘 사는 사람이 예전에 비해 많아졌다고는하나 그래도 아직까지 이 나라는 그렇게 잘 나가는 사람 보단 살려고 아둥바둥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아직도 살만한 나라요.라고 말해주면 좋지 않은가? 만날 물고 뜯고 싸우다 이런 영화 보면 한 줄기 소낙비를 만난 것 같아 시원하고 뭉클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내용에 비해 러닝 타임이 다소 길다는 느낌도 든다. 하긴 영화관람료 오른 걸 생각하면 본전은 빼고도 남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영화가 어찌보면 노련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약간 넘친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뭐 그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현재 관객수 6백만이 넘었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갈지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