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이벤트 종료)
과속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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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보니 이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하긴 내가 제때 요즘 잘 나가는 영화를 몇 편이나 챙겨 보겠는가? 거의 대부분 철지나 보고 뒷북치듯 야, 그 영화 어떻더라, 저떻더라 떠드는 게 내 일인인 것을... 

이 영화가 처음 걸렸을 땐 그렇고 그런 삼류 양아치 영환줄 알았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반응이 좋아 보였다. 

과속 스캔들이라...약간 촌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뭔가 궁금하게 만드는 어정쩡함이 있다.  

그래도 역시 제목에선 그다지 좋은 점수는 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 정말 제대로 잘 만들었단 생각이 든다. 기획이나 컨셉. 배우들의 연기력 나무랄 때가 없다. 

보는 내내 웃었고 즐겁게 보았다. 

사실 코믹 가족극 몇 번 보진 않았지만 그냥 그만 그만하게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허리우드 공식에 딱 맞아 떨어지게 만들었다.  정말 영화가 업그레이드 됐구나 싶어 흐뭇함이 느껴졌다.  



특히 박보영의 연기가 정말 빛나 보인다. 이렇게 연기를 잘할 줄이야! 노래도 직접 불렀을까?  

애늙은이 같은 왕현석의 연기도 과연 볼만했다. 차태연의 연기야 그냥 녹슬지 않았다는 점에서 봐줄만 하지 않았을까? 

사실 저런 가족 형태가 없으란 법은 없겠지. 

젊은 할아버지에 젊은 엄마. 그리고 이들에게 어울릴 법한 아들겸 손자. 

이번엔 부전여전인가? 어린 날 순간의 실수로 애를 갖게 했고 가졌지만 참 이들에게 낙태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이 아니겠는가? 

작년에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나의 사부님을 말씀하셨다. 

우리가 영화 작품을 볼 때 이 영화가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우리가 보는 영화는 스캔들이 사랑 이야기로 둔갑시킬 수 있으며, 세태나 사회 현상을 담아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을 계몽하려고 까지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보다보면 약간의 씁쓸함도 없진 않다.  

미성년의 성행위와 그로인한 출산. 미혼모는 사회적으로 부각이 되지만 부혼부는 상대적으로 가리워져 있다는 것. 

그들이 낙태하지 않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책임져 나가려는 노력에 사회가 뒤따르지 못하는 것. 

이렇게 미성년의 아기 출산은 빨라지고 있는데 한쪽에선 아기를 낳지 않으려하는 것 때문에 출산장려책을 써야하는 이 사회의 불균형이 영화엔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자연 떠올리게 만든다. 

이제라도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뒷바침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미성년의 임신과 출산은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지 오래다. 

미국 같은데서는 고등학생도 아기를 않고 당당히 학교에 공부하고 오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 하지 않는 시대를 맞이한지 오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선 학교부터 그만 둬야하고 쉬쉬하며 자기 호적에도 올리지 못하고 부모의 호적에 올린다. 물론 미성년이라 자신의 호적에 올릴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쉬쉬한다고 문제해결이 되는 건 아니다. 

옛날에 열일곱, 열여덞에 애를 낳는다고 하면 그들의 나이는 결코 이른 나이도 아니다. 그러는 동안에 사회는 고도화 됐다고 하면서도 이런 문제는 뒷걸음만 치고 있으니 이 사회 높으신 분들은 뭐 하시나 씁쓸할 밖에. 

그래도 영화는 시종 밝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한마디로 얄밉게 잘만든 영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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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5-09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제목도 좋고..내용도 많이 와 닿네요.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밝고 코믹한 영화긴 하지만..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결말부분이 좀 아쉬웠어요.
그래도 이 영화, 현호 낳고 처음으로 웃으면서 본 영화라 기억에 많이 남을 듯 해요. ^^

stella.K 2009-05-09 20:03   좋아요 0 | URL
그랬구나. 현호 저 꼬마애 보다 더 귀엽게 자라고 있겠지?^^
 
싸이코 - Psy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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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뜻있는 몇몇과 함께 히치콕 스터디를 하고 있다. 뭐 그냥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그런 모임이다. 

모르는 사람은 고리짝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를 봐 뭐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공부해 두는 것이 여러모로 쓸모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여기 저기서 많이들하고 있고 우리도 뒤늦게 이 행렬에 뛰어든 셈이라고나 할까? 

히치콕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스릴러의 아버지라 불릴만 하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이라면 이 '싸이코'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사춘기 무렵에 보고 몇 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제 다시 보게 됐는데 역시 다시봐도 섬짓한 게 가히 모든 스릴러의 교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 유명한 욕조에서의 살해씬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명장면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저 씬을 과연 누가 감히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난 아직 못 봤지만(볼 가능성 또한 희박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리메이크 시도를 한 감독들이 몇 있어왔나 보다. 하지만 역시 히치쿡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던 것 같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하지 않는가. 

어렸을 때 봤을 땐 충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지만 지금 다시보니 약간의 어색함 내지는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장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졸이게 만들고 충격으로 압도한다. 하지만 약간의 지루함은 어쩔 수 없다. 하긴 그것은 히치콕만이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옛날의 영화들 보면 장면전환이 요즘만큼 빠르지 않다. 그러니 그것을 문제 삼지는 못할 것이다. 

사이코는 히치콕의 거의 말년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여타의 다른 작품 보다 완숙미가 있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재밌는 건, 내가 첫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건 발견했는데 그것이 뭔줄 아는가? 영화를 보다 보면 중간 어디쯤 보면 안소니 파킨슨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가 여자처럼 유난히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올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우스웠던지 우리는 두번씩이나 그 장면을 돌려 보았고 볼 때마다 쿡쿡거렸다. 그것은 어쩌면 유심히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안소니는 왜 갑자기 그렇게 걸을 생각을 했을까? 영화를 찍다 지루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장난기가 발동해서 이렇게 걸어서 올라가보자고 생각했고, 그 찍은 장면을 히치콕도 보니 우스워 좋다고 오케이 사인을 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혹시 기회가 되면 확인해 보시길...! 

사실 히치콕은 몇 개의 특징을 가지고 그만의 일관된 작품 세계를 이루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하나는 그가 금발의 미녀를 좋아해 그런 머리를 타고난 배우, 그레이스 켈리(이창) 같은 배우를 쓰기를 즐겼다는 말이 있고, 지금이야 흔한 일이지만 그가 만든 영화마다 까메오로 출연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매우 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그가 키우던 개를 사랑했다는데 그것이 가정적인 것과 뭔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개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못 봤으니까 일맥상통이야 있겠지. 


히치콕의 생전의 모습이다. 
능청이 덕지덕지 하지 않은가? 그러니 오히려 안소니 퍼킨슨에게 계단을 그렇게 올라가 보라고 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히치콕의 능청스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도 처음에는 무척 긴장된 마음으로 메가폰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다 차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겠지. 사실 그는 사람을 놀래키는데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것을 거의 배제했던 감독이기도 하다. 즉 순수히 사람만으로 작품을 완성해 갔다. 그래서 그토록 후대의 영화 매니아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는 누구보다 인간의 이상심리를 잘 이용했던 사람이다. 당시 누가 다중인격 또는 관음증이나 죄책감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자기 일에 어느 만큼의 경지에 올라서면 여유가 생긴다. 그것은 나태함은 아니다. 여유를 갖다보면 모든 프레임과 연출된 상황을 넓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 같다. 그것은 또한 의연함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능청스러움도 발휘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나는 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에게 또 한번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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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4-2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창,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에요.^^

stella.K 2009-04-25 13:34   좋아요 0 | URL
저도 좋아해요.^^
 
[이벤트]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이벤트 종료)
슬럼독 밀리어네어 - Slumdog Million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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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기꺼이 찾고 그것에 다가가려고 하는 자에게 행운은 찾아 주는 것이다.
위의 사진을 보라. 친구의 장난으로 변소(재래식 화장실은 다 변소로 통칭되었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으니. 지금도 어딘가를 가면 그곳이 그대로 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ㅋ)에 갇힌 소년이 갑자기 좋아하는 배우가 마을에 나타났다 하여 사인을 받기 위해 그곳을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변소 밑을 통과하는 길 밖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감행한다. 사인을 받겠다는 일념하에 소년에겐 더러운 것이고 뭐고 가릴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그 배우가 가기 전에 사인은 꼭 받아야 했다. 사람들은 이 오물을 뒤짚어 쓴 소년 때문에 오히려 그 배우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고, 소년은 그틈을 타 그 배우에게 사인을 받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평생 한 가지 소원을 위해 자신의 몸쯤 잠깐(소년에겐 그런 것이겠지) 희생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긴 저게 진짜 오물이겠는가? 진흙속을 잠깐 들어갔다 나온 것이겠지. 저것이 진짜였다면 그 옛날 우리 돌아가신 외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독이 올라 오래 못가 죽는다고 했다. 오물이란 인간에게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저 이야기는 극적 재미를 위해 마련된 에피소드일 것이다.  어쨌든 이런 용기라면 이 소년은 세상에 못해낼 것이 없다. 


결국 소년은 저렇게 자라 그 유명한 자말이 되었고 (사진의 왼쪽) 퀴즈쇼에 나가게 된다. 하지만 저렇게 자라기까지 결코 순탄한 인생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어머니가 이슬람교도에게 방망이로 두들겨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 봐야했고, 어느 앵벌이 조직에 끌려갔다 탈출해야하는 상황도 맞이해야 했다. 슬럼독. 다시 말하면 슬럼가의 개 취급을 받으며 그는 살아왔던 것이다.    

그에게는 두 가지 소망이 있었으니 부자가 되는 것과 앵벌이 조직에서 만난 예쁜 소녀 라티카와의 사랑을 이루는 것이다.  

부와 사랑을 동시에 이루는 것이라! 이것처럼 짜릿하고 행복한 것이 또 이겠는가? 보통 사람은 둘 중 하나를 이룰 것이다. 부자지만 외롭게 되던가? 사랑을 이루긴 하지만 조금 불편하게 살던가 말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될성 부른 나무 떡닢부터 알아 본다고 변소도 통과할 용기라면 소년은 충분히 이 둘을 다 이룰만 하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기까지 또 첩첩산중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그 어린 나이에도 평생 마음의 짝이라고 생각했던 라티카를 만날 수 없는 세월이 몇년이고, 그동안 라티카는 인도의 무희겸 창녀로 자랐다. 하지만 만났다고 해서 사랑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랑의 훼방꾼을 물리쳐야만 했고 그 과정엔 형과도 싸워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저 퀴즈쇼에 나갔던 것도 결코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퀴즈쇼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 라티카가 퀴즈쇼를 즐겨 본다는 것을 알고 저기에 나가면 라티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나갔을 뿐이다. 그러니 어쩌면 앞서 말했던 부와 사랑에서 부는 자말의 원래의 목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워낙에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기본으로 깔려 있거나.  

사실 나라도 비슷한 또는 같은 시기에 부와 사랑을 두고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이루겠느냐고 하면 난 기꺼이 사랑을 먼저 이루겠다고 할 것 같다.  사실 사람이 돈이 많으면 뭐하겠는가? 사랑을 나눌 상대가 없으면 외롭고 허전한 것을. 하지만 나는 여자라 그런다고 쳐도 남자는 안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돈이 있어야 사랑하는 사람도 데려올 수도 있고(자말과 라티카의 경우) 남자에겐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여자도 따라 붙는다는 속설인지 정설이 있기도 하니까. 

영화에서의 퀴즈쇼는 퀴즈쇼 자체만을 위한 퀴즈쇼는 아니다. 그것은 교묘하게도 자말의 지나 온 삶을 유추해 볼 수 있도록 짜여져 있다. 물론 실제로 이런 퀴즈쇼는 없을 것이다. 즉 한 사람의 지나온 삶울 유추하고 거기서의 단초가 퀴즈의 정답이 되는 것 말이다. 이것은 확실히 이야기를 만든 작가의 재능이 될 것이다. 

한 소년의 무용담을 퀴즈쇼란 도구로 풀지 않고 그냥 시간의 나열로 풀었다면 이만큼 박진감 넘치고 재밌게 볼 수 있었을까? 퀴즈를 너무 잘 푸니까 의심도 받고 진행자의 질시도 받으면서 모진 고초도 당하고 그 과정에서 자말의 지난한 삶도 우리에게 풀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세계적으로 가장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많이 만드는 나라가 인도라고 한다. 예전에 보았던 <슈팅 라이크 베컴>이란 영화를 봤을 때도 그렇고 이 작품을 봤을 때도 그렇고(물론 두 영화 다 배경은 인도지만 제작 국가는 영국이다) 인도 사람 특유의 역동성이 느껴져 나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이 작품을 오래 전 책으로 읽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그다지 김동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으로 읽으면서 이건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솔직히 이건 누가 봐도 영화로 제작할 것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느낌이 확 온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대박을 치고 올해 아카데미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상이란 영화상은 거의 다 석권하다시피 했다. 하긴 내가 봐도 이런 영화에 상을 주지 않으면 어느 영화에 상을 준단 말인가? 재미 못지 않게 감동도 있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이 언제 흘러갔나 싶게 오랜만에 푹 빠져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비록 영화라도 이 둘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 "용감 소년 자말! 라티카와 함께 영원히 행복해야 해!" 이렇게 말이다. 

 
영화가 하도 재밌어 뽀너스로 한 컷 더 올린다. 왼쪽의 소년이 어린 시절의 자말이고 가운데가 리티카 오른쪽이 자말의 형 살림이다. 이들은 실제로 인도 현지의 슬럼가의 아이들을 직접 캐스팅 했다는 말이 있다. 아, 이 아이들에게도 행복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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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얄밉게 잘 만든 영화
    from stella09님의 서재 2009-05-04 12:35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하긴 내가 제때 요즘 잘 나가는 영화를 몇 편이나 챙겨 보겠는가? 거의 대부분 철지나 보고 뒷북치듯 야, 그 영화 어떻더라, 저떻더라 떠드는 게 내 일인인 것을...  이 영화가 처음 걸렸을 땐 그렇고 그런 삼류 양아치 영환줄 알았다.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반응이 좋아 보였다.  과속 스캔들이라...약간 촌스럽기도 하고 하지
 
 
프레이야 2009-04-2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미가 허무했지만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퀴즈와 결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아직 리뷰 쓰지 못하고 있는 영화 중 하나에요.
전 살림의 희생이 가슴 저릿하더군요.^^

stella.K 2009-04-23 10:2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살림이 가슴 저릿하죠.
그래도 영화는 참 역동적이란 느낌이 들어
보고 나서도 나름 잔상이 좋게 남더군요.
해피 엔딩은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혜경님.^^
 
이창 - Rear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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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만에 <이창>을 다시 봤다. 한마디로 주인공을 많이 굴려먹지 않고도 두 시간 가까이 긴장하며 볼 수 있는 영화는 이 영화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밖으로 난 창문은 크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더군다나 날씨는 밤이나 낮이나 푹푹 찌는데 일상은 너무 평화롭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하다. 보통 그런 날을 '개 같은 날의 오후'라고 한다지?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주인공 제프리스에게 바라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매일 건너편 아파트먼트를 지켜보며 사람들을 해석과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제프리스. 그 건물엔 댄서도 살고, 중년의 부부도 살며, 외로운 독신녀도 살고 있으며 작곡가도 산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뚱보 남자와 그 부인이 사는 것도 보게된다. 그런데 어느 날 뚱보 남자네 집 부인이 보이지 않다. 그때부터 제프리스의 상상은 의혹이 되고 그것을 밝히는데 온통 집중이 된다. 거기엔 매혹적인 애인 리사와 매일 출퇴근하는 간호사가 뚱보 남자가 살인 용의자라는 것을 증명해 내는데 합세하게 된다.    

스릴러가 다 그렇듯 수 많은 미스테리와 서스펜스로 엮어져 있다. 이런 미스테리와 서스펜스를 '신경질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히치콕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 역시 미스테리(어느 날 뚱보 남자네 이웃집 개가 죽었다.)와 잡히면 어쩌지?(제프리스의 애인 리사가 뚱보 남자네 집에 몰래 잠입했다 뚱보 남자한테 들겼을 때) 죽으면 어쩌지?(자신을 몰래 추적해 온 것을 알고 제프리스의 집에 들어와 제프리스를 창문에서 떨어 뜨리려 할 때)하는 긴장감을 정말로 잘 보여주고 있다.   


 

히치콕은 정말 천재다!   

흔히들 천재하면 현실과 좀 동떨어진감이 없진않지만, 내가 말하는 천재란 관객이 원하는 것이 뭔지를 놓치지 않으면서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를 철저하게 계산해서 잘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창을 통해 건너다 본 맞은편 아파트먼트에서 여러가지의 인간군상들을 대사 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게 했고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영화를 보지만 연극적 요소도 가미했다. 끝날 때도 유머와 위트를 잊지 않는다.  

물론 영화 중간중간 약간은 지루하긴 했다. 하지만 주인공을 너무 굴리지 않고 휠체어에만 앉아있게 하고 영화를 보여주려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종반 20분 정도에서 보는 사람을 바짝 긴장하게 해 줬으니 그런 것쯤은 그냥 용서하고 덮어주자. 그렇다고 아주 많이 지루한 것도 아니었다. 아주 초큼이었다. 그래도 이야기 구조는 완벽하지 않은가? 

영화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히치콕은 반드시 넘어야할 산맥으로 여긴다. 어디 영화학도들만 그렇겠는가? 난 스토리텔링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히치콕은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히치콕 옹은!  

 덧붙히자면,
연전에 나의 사부님은 이 책이 절판된 것을 무지 개탄스러워 하셨다. 

우리나라 영화학도들이 오죽 공부를 안하면 이 책을 더 이상 찍어내지 않느냐고 하시며...  

이 책은 헌책방에 가도 구하기 어려운 희귀본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의 동기 한 명이 이 책을 천신만고 끝에 구했다. 그것도 알라딘 중고샵을 통해 보자마자 바로! 콜을 했다고 한다. 우린 어찌나 기뻤던지 축배를 터뜨릴 지경이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했겠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상상에 맡기겠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게 절판이 됐다면 언제 된 걸까? 몇년 전만해도 이 책은 판매 가능했던 걸로 아는데. 동기생들에겐 말은 안 했지만 그땐 정말 살 생각이 별로 없었다. 사도 나중에 사야지하고 찜만해 두었다. 그리고 얼마 안되 절판된 것을 알았다. 이 사실을 나의 동기들이 알면 죽일려고 할 거다.  

지금이라도 어느 출판사에서 이 책을 복간해줬으면 한다. 그렇다면 그 출판사는 우리나라 영화학도뿐 아니라 스토리텔링 연구자들에게 다시없는 덕을 베푸는 것이며 자손만대가 복을 누리는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제발 복간해 주세요!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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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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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어떻게 보면 이들의 사랑을 원조 교제(그것도 성인 남자와 소녀간의 사랑이 아닌 성인 여자와 소년간의)쯤으로 볼 수도 있고 사람들의 관음증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는 영화로 볼 수도 있으며, 또 하나의 나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들의 사랑은 제법 깊어 보인다. 여자 보다는 소년이. 어찌보면 먼저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 그 사랑을 끝낼 용기도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말도 없이 여자는 소년 곁을 떠나고 소년은 당황스러워 한다. 성인과 성인끼리의 사랑도 사랑하다 헤어지면 아프고 절망스러운 법인데 채 성숙하기도 전에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자기 곁을 떠나 버렸으니.  과연 앞으로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 해도 그것을 믿을 수가 있을까?  


여자로서도 그 사랑을 믿기 어려운 건 당연했을 것이다. 여자가 소년을 사랑했을 땐 아직 여자로서의 매력이 남아있을 때지만 앞으로 자신은 늙어갈 것이고 소년은 매력적인 남성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이 사랑을 버텨낼 자신이 없다. 물론 한때 이들의 관계를 단단한 끈으로 연결시켜 줬던 매개가 있엇다. 그것은 소년이 읽어주는 온갖 소설들을 여자는 탐닉하듯 듣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론 격렬하고 때론 처절했던 섹스. 그리고 불안한 사랑. 

그러나 그러한 단단해 보일 듯한 이러한 사랑의 매개도 그들의 불안한 사랑의 구렁을 매워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바로 소년이 여자가 문맹자임을 알지 못했다는 것과 여자 역시 끝끝내 소년뿐 아니라 그 누구도 자신이 문맹임을 알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현재형에서 영원하길 바란다. 사랑이 미래의 눈을 갖는 순간 그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며 사랑은 그냥 허울 좋은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을 안 해 본 사람과 사랑을 해 본 사람의 차이는 별로 큰 차이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랑을 해 본 사람과 안 해 본 사람의 차이는 역사가 증명해 주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교묘하게도(?) 나치즘을 배경으로 하되 그것을 교묘히 뛰어넘어 나치가 종언되고 그것에 동조한 사람의 재판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소년은 성인이 되었고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던 중 어느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여자를 다시 만난다. 그의 잊혀진 사랑의 아픔은 다시 건드려졌으며 그 사랑에 어쩔 수 없이 다가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자는 그 잊혀진 세월 동안 나치에 충성을 했었고 그것이 종식되자 재판대 위에 서게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사랑을 더듬는 과정에서 남자는 자신의 지난 시절의 애인이 문맹이었음을 알게되었고 재판에서 유리한 증언이 될 수 있었음에도 차마 증언자로 나설 수 없었으며 여자 역시 자신이 문맹자라는 걸 누구도 알아선 안 되겠기에 누군가의 위증을 사실인 양 받아들이고 감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만다.  

바로 여자가 감방에 갇혀있는 그 오랜 세월동안 남자는 여자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보내주는데 거기엔 여자가 좋아할만한 소설책들을 녹음한 것들이다.(아, 아날로그의 산물중 하나인 카세트 테이프를 여기서 보게되다니! 괜히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그것은 익명으로 보내어진다. 하지만 그것을 여자가 모를리 없다. 사랑의 흔적은 그렇게 역사를 거슬러 두 사람을 다시 이어주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사랑을 그저 허망한 신기루로만 치부할 수 있으랴.  

그것은 희망없는 여자의 삶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되는 계기가 된다. 문맹의 깨우침의 기본은 많이 듣는 것에 있음을 그녀는 도를 트는 깨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어느 날 용기를 내어 혼자 문자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또한 여자에게 얼마나 기쁨이 되었을까? 


하지만 나는 엉뚱하게도 여기서 비극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극이란 어쩌면 희망의 외침 뒤에 오는 예고된 운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저 유명한 로미오가 줄리엣이 그러지 않았던가? 또한 평생 밝은 세상을 꿈꾸었던 눈먼 소경이 그의 바람대로 눈을 뜨자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것임을 발견하고 자신의 눈 뜸을 저주하는 신화 같은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그처럼 여자의 문맹의 깨우침이 결국 자신이 그 옛날 사랑을 배신 것에 대한 인과응보로 작용했다면 그것은 차라리 문맹을 깨우치기 전보다 못한 것이라고 말하면 여자에게 너무 실례되는 표현일까? 수 많은 세월이 흘러 여자가 드디어 석방을 하루 앞두던 날 남자는 여자를 다시 받아들일수없었고, 여자 역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삶은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깨닫고 한순간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사랑은 배신 당하는 것 보다 배신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 그러나 그 끝은 배신 당하는 쪽 보다 배신하는 쪽이 더 참혹한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 보게된다. 가장 희망적일 때 비극을 맞이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것이 또한 강한 척하는 인간의 가장 나약한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론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처음 만난 랄프 파인즈. 당시에는 좋은 줄 몰랐는데 이 영화에선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런데 비해 케이트 윈슬렛은 예전에 봤던 <타이타닉> 때문일까? 그때 보다 늙어보여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다지. 이 배우도 이 영화에서처럼 가장 희망적일 때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만.)  

요즘 영화가 러닝 타임이 예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럴까? 앞이 조금 지루하고 장황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것만 빼면 나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묵직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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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얼마만이냐, 리뷰 당선!!!
    from stella09님의 서재 2009-03-26 14:35 
    감격! 또 감격!  내가 리뷰에 당선이 되었다.   그것도 책이 아닌 영화에서!  원래 축하는 얌전히 있다가 누가 해 주면 받고   안해주면 모른 척 깍쟁이처럼 있어야 하는데  타고나기를 푼수꽈라 그러지도 못한다.  영화는 오늘 개봉한다는 <더 리더> 리뷰다.  근데 이거 추천 하나 밖에 못 받았다.  그러고도 무슨 당선 됐다고 입질이냐마는
 
 
프레이야 2009-03-2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축하드려요~~~ 가문의 영광이야요.
저 영화 넘 기대하고 있는데요.. 추천 꾹!!

stella.K 2009-03-26 14:49   좋아요 0 | URL
혜경님도 축하드려요.
저 영화 우울하긴 하지만 좋아요.^^

무해한모리군 2009-03-26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축하드립니다 ^^

stella.K 2009-03-26 15:39   좋아요 0 | URL
아, 휘모리님, 고맙습니다.^^

마노아 2009-03-26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기 전에 리뷰가 올라와서 못 읽다가 지금 막 읽었어요. 책이 더 좋긴 했지만, 영화도 못지 않게 좋았어요. 애잔하더라구요.
케이트 윈슬렛은 여우 주연상을 탔어요. 조연상은 페넬로페 크루즈던가? 그 여자가 받았고요. 테잎은 익명으로 보내진 않았지만 아무 메시지 없이 보냈고, 마지막으로 여자를 만난 건 가석방 일주일 전이에요. ^^
으하핫, 딴지쟁이 마노아.
리뷰 당선 축하해요, 스텔라님~! 스텔라님의 흥겨운 기운이 제게도 전해져요. 같이 기분이 좋아졌어요.^^

stella.K 2009-03-26 16:23   좋아요 0 | URL
ㅎㅎ 이거 영 마노아님껜 못 당하겠군요.
이런 엉터리 정보로 가득찬 리뷰에 당선을 준 알라딘에 감사해야겠군요.ㅎ
마노아님도 얼마 전 같은 기쁨 맛 보셨는데 변변히 인사도 못했네요.
그래도 내맘 아시죠, 마노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