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처음 보는 줄 알았더니 몇몇 장면이 낮설지 않다. 그런 것을 보면 난 이 영화를 본 것 같다. 그것도 개봉관에서. 얼마 전 예술영화 전용이었던 서울극장이 패관했다고 들었는데 그곳에서 보지 않았을까.
그 시절엔 프랑스 영화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승전결도 없는 것 같고 소설이라면 차라리 용서해 주겠다. 비싼 필름으로 뭐하는 건가. 보고 나오면서 대놓고는 못하고 속으로 욕을 바가지로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고, 욕하면서 닮는다고 난 언제부턴가 프랑스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신 잘 안 보기 시작한 건 허리우드의 스펙타클 어드벤처 블록버스터 영화. 그래도 <해리포터> 시리즈는 그렇다쳐도 <반지의 제왕> 정도는 봐 줘야할 것 같은데, 내가 이걸 봤는지 안 봤는지 확실히 기억에 없다.
90년대 프랑스의 여배우 트로이카 하면 줄리엣 비노쉬와 이자벨 아자니, 소피 마르소가 아니었을까. 이들은 어느 새 50대를 살아가고 있는 중견 배우들이 됐다. 지금은 이 배우들 활동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을 나름 적절히 잘 활용했다고 생각한다. 파란빛을 써야했던 감독의 정확한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파란색을 쓰기는 <그랑 블루>만한 영화가 또 있을까.
그런데 장면중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주인공 줄리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남편과 딸을 잃고 재산을 정리해 어느 낡은 아파트로 거쳐를 옮긴다. 거기에 한 매춘부가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은 서명운동으로 이 매춘부를 아파트에서 쫓아내려고 하는데 만장일치가 되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줄리의 반대로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매춘부는 그곳에 계속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줄리와 매춘부는 친구가 된다.
그 장면을 보는데 좀 의외다 싶었다. 우리나라라면 모를까 그렇게 개인주의가 발달된 나라에서 매춘부를 쫓아내기 위해 서명운동이라니. 그도 그렇지만 한 사람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의도는 성공할 수 없다. 과연 이런 법도 있었나 싶다. 우린 보통 좋은 게 좋은 거고, 다수결을 따르지 않는가. 그렇게 되면 언제나 소수의 의견을 가진 자들은 원치 않음에도 따라야 한다. 분명 불공평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런 룰을 만들기도 한다니 프랑스 정치가 이런 식으로 움직여 왔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면 이게 똘레랑스란 건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배운 건 써 먹어 봐야한다고 내가 속한 모임에서 한 번 실험해 봤다. 그 모임은 최근 더 이상 말이 없어 끝났나 보다 하는 사안을 보스가 끄집어 내어 내가 관리하길 바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여름 그 일을 내가 맡아 관리하긴 했다. 그런데 보스가 그 일에 대한 취지를 자꾸 바꿔 가면서 연장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럴 것 같으면 처음부터 취지를 명확히 하실 일이지 자꾸 바꾸면서 연장하는 건 뭐란 말인가. 그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홧김에 보스 단독으로 하지 말고 전체 의견을 들어보자고 했다. 요는 우리나라가 보스의 입김에 좌지우지 되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인데 생각의 전환을 해서 한 사람이라도 찬성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하지 않을 권한도 있는 것 아니냐고. 각설하고 결과는...? 내 생일 날 케이크를 받은 걸 보면 알지 않겠는가. 결국 난 모임에서 그 일을 하지 않기로 하고 찬성하는 사람만 하기로 했는데 역시 모양새가 영 아니올시다다. 결국 난 따를 당하는 건지 존중을 받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일을 안하지 공공연히 모임에서 막내가 일 하나를 더 떠앉게 되었고. 근데 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격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싶다. 아무래도 조만한 다시 그 일을 맡아야지 싶다.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결국 매춘부를 내쫓는데 성공하지 못한 주민들은 그후 이 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줄리는 남편이 죽은 후 남편에게 정부가 있음을 알게 된다. 더구나 그 정부의 뱃속엔 남편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줄리는 이에 조금 동요되는 것 같더니 나중엔 정부가 갈 곳이 없다는 걸 알고 예전에 살던 집을 내어준다.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배신감에 몸을 떨었을까. 그러나 남편은 죽었고 정부의 몸엔 남편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오히려 줄리는 죽음에서 생명을 보고 있다. 그래서 살아갈 힘을 얻는가 보다.
근데 이도 좀 나를 의아하게 만든다. 역사적으로 유럽의 귀족들은 배우자 외에 정부를 두는 것이 관행이라고 들었는데 줄리의 남편은 저명한 작곡가다. 귀족의 자손이었을 확률이 높을 것 같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쨌든 셀럽이라면 관행 아닌가. 그것 가지고 놀라고 당황한다면 이때만 해도 줄리가 너무 젊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삼십 하나로 나오던가 했으니. 내 나이 30을 넘겼을 땐 뭔가 보이는 것 같았는데 말이지. 하긴 지금 생각하면 그때 비슷한 똥고집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뭔가 보이니까 그렇게 싸우기도 했겠지만 사실은 여전히 뭘 몰랐던 시절이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남편의 죽음에서 줄리는 깨달음을 얻는다. 어찌보면 나 보다 낫다 싶다. 죽음이 꼭 불행한 것만도 아니고.
영화가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