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구의 남여사이] 그녀의 ‘리모델링’


지난해 가을, 파리로 여행을 갔다가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잡지사 기자였던 그녀는 3년 전 어느 날 생뚱맞게 색체심리학을 공부한다며 파리로 날아가 버렸다. 나이 서른에….

약속을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확실히 뭔가 달라져 있었다. 첨엔 막연히 ‘빛이 난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역시 프랑스제 화장품이 좋은가?’ 싶었다. 커피를 마시고 초밥을 먹고 와인을 마시는 동안 그녀의 빛남은 화장품의 은혜가 아니라는 느낌. 이 여인이 저토록 다양하고 풍부한 표정을 가졌었던가 싶기도 했고, 그녀가 그토록 거침없고 화사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뻐졌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도 안다고 대답했다. 재수가 없어진 나는 리모델링 한 거냐고, 했다면 티 하나도 안 나게 완전 잘 된 거라고 했다. 그녀는 리모델링 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리모델링에 협찬해준 게이와 신부님을 제외한 파리거주 모든 남성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쭉~ 찢어진 눈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그 위에 소복히 내려앉은 기미, 주근깨…. 서울에 있을 때 그녀의 별명은 ‘언년이’였다. 비밀도 아니었다. ‘언년아~’하고 부르면 그녀는 자신의 이름인 양 ‘응? 왜?’하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그녀가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리모델링하기 시작한 거다.

학교에 가는 길목에서, 수강신청을 하는 학교에서, 잠시 허기를 채우러 들른 카페에서 언제 어디서나 파리의 남자들은 그녀에게 ‘벨르!!(아름답다)’를 연발한 것이다. 첨엔 어찌나 민망하던지 사람 놀리나 싶어 은근히 기분 나쁘기도 했고 심지어는 몰래 카메라 아닌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단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아름답다’는 칭찬에 익숙해졌고 이젠 어디서 ‘아름답다’는 소리만 나와도 자길 부르나 싶어 두리번거린단다. 그녀는 확실히 자신감으로 리모델링 되었다. 자신은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며 그만큼 자신은 소중한 사람이란 확신에 차 있었다. 도도하지도 거만하지도 천해 보이지도 않았다. 칭찬은 그녀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그 자신감은 그녀를 빛나고 아름답게 리모델링 했다. 티 하나도 안 나게….

아무리 외모 화소가 불량인 사람들도 ‘이만하면 나도 제법 괜찮아’하는 거의 찰라에 가까운 리모델링의 순간이 있다. 막 세수를 마치고 수건으로 얼굴에 물기를 닦아 낸 후 백열등 조명이 켜진 욕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볼 때다. 오늘 난 구석구석 뽀득뽀득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다. 아…서둘러 칭찬받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다.

신정구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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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6-04-0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저도 파리 가구 싶어요.
그래도 저에게 말걸어오는 남자도 있었고, 시간있냐고 물어오는 고등학생(제가 좀 동안이거든요)들도 있던 프랑스가 그리워요.

stella.K 2006-04-0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님도 아름다우십니다. 비록 뵙지는 못했지만...흐흐.

비로그인 2006-04-05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저도 제 자랑이지만 남자들이 발레리노마냥 길비켜주며 과장된 제스처로 인사하던 폴란드가 그리워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고보면, 한국 여자들은 전체적으로 참, 예뻐요. 다들 해외로 나가면 저렇게 벨르 소리를 듣는데 왜 한국에서는 자신감이 저조한지!

stella.K 2006-04-05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여자들이 예쁜가요? 잘 모르겠던데...그렇군요.^^
 
 전출처 : 잉크냄새 > 즐거운 편지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
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姿勢(자
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
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마지막 편지를 띄운 것이 4년전의 일인것 같다. 괜히 목련꽃을 넣어 보냈던가. 남루하고 초라한 봄의 끝을 알리는 편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별을 편지로 보내지 않았으니 다 즐거운 편지였으리라. 그리운 누군가에게로 전해진 편지는 그리움에 쉬이 우표가 떨어졌으리라.

찬바람 쌩쌩 훈련소 동초 근무 화장실 백열등 아래서, 덜컹 덜컹 자세도 잡기 힘든 비내리는 경춘선 뒷자리에서, 눈부신 목련꽃 그늘 아래서....그리운 이에게로 보낼 사연이 무에 그리 많았던지.

늦은 사무실, 펜을 잡고 몇자 끄적여본다. 그리운 이름 하나조차 불러볼 여유 잃고 사는건지 헛헛하다가, 나이 든다는 건 그리움 간직할 가슴한켠조차 비우지 못하는건지 서글프다가, 그래도 내게도 즐거운 편지를 쓰던 추억이, 에머랄드빛 우체국 창문앞의 발걸음이 가벼워지던 추억이 있음에 슬며시 미소짓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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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2006-03-3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주 아주 좋아하는 글이에요.^^
무지 갑자기 학교 다니던 그때로 가고 싶기도 하고
다시 사랑하고 싶기도 하고...그냥 기분이 그래요...봄바람인가?
 

 

'동안 신드롬' 젊으면 다 좋아? 늙어도 좋아!

[정승혜의 유행유감]
 

▲ 이병헌(37세)
지난 설연휴 온가족이 모여 앉아 보았던 TV프로그램중 단연코 화제는 ‘전국 동안 선발대회’였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대한민국 최고의 동안을 찾아라”가 취지였고 1등을 차지했던 대학생 아들을 둔 마흔여섯의 주부는 아들과 나란히 서있는데 마치 아들과 커플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어려 보여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주로 평소에 먹는 음식이 된장찌개라는 것까지 기사화가 될 정도로 그녀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연예인들이 성형을 통해 거듭나고 싶어하는 심리는 예뻐보이겠다는 의지도 물론 있겠지만 다 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된다. 어려 보이는 것이 결국은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본인은 몸살이라고 했지만 갑작스레 팽팽해진 얼굴에 ‘피요나’라는 이름으로 한동안 장서희의 얼굴이 인터넷에서 떠돌 때 모두가 놀랐다. 아마도 지금 그녀는 얼마 전보다 어려 보이는 얼굴로 다음 행보에 자신감을 가지고 준비 중 일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중에 남들이 전혀 인정하진 않지만 박휘순의 ‘동안’ 주장설은 많은 사람들이 얼떨결에 동안의 세계로 빠져드는 이변을 낳았다.

영화배우 임수정은 아직도 고등학생을 연기해도 좋을 만큼 대표적인 동안이며 44세의 황신혜가 주는 건강미는 단순한 ‘동안’의 의미 그 이상의 젊음의 대명사로 수많은 여자들을 자극한다.

▲ 이봉주(37세)

이병헌과 이봉주는 70년생으로 동갑이다.
콘서트를 할 때마다 에너지를 뿜어대는 ‘어린왕자’ 이승환은 편승엽과 동갑이라는 재밌는 비교와 함께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동안’의 대표선수로 등극해 있다. 34세의 서태지는 어떠한가. 그는 아직도 ‘난 알아요’ 시절에서 멈춘 듯 풋풋하고 강렬하며 ‘해신’의 주역인 최수종은 45세라는 나이를 잊게 하는 청년의 매력이 아직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진정 얼짱, 몸짱에 이어 ‘동안’이 대세가 된 것인가.

예전에는 나이보다 어려 보이면 왠지 첫 대면에서 무시 당하거나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억울함이 있어 보였고 나이는 먹었는데 하는 짓이 철이 없으면 “나이 값을 못한다”는 말로 나이먹음을 철듦과 비교해 왔지만 이제 세상은 분명히 바뀌었다.

어려 보이는 것이 그 사람의 부지런한 관리로 인정받게 되었고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것이 치열한 경쟁 시대에 분명한 플러스가 되어준다. 마흔에 청바지를 입는 것이 더 이상 예의없음이 아닌 시대인 것이다. ‘같은 값이면’ 이라는 말이 있다. 딱히 나이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었겠지만 같은 나이라도 어려 보이면 왠지 생각은 젊고 일 처리는 노련할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던가.

▲ 임수정(27세)
앳된 외모의 임수정은 대표적 동안이다
그러나 원래 가지고 있던 어려 보이는 모습이 진정한 동안효과임을 알아야 하는데 문제는 자연스럽지못한 인위적인 ‘동안만들기’가 주는 거북함이다.

이 무작정 어려보이는 것만이 대세라는 시각이 주는 성형중독의 문제점이나 간혹 드라마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마치 언니동생 같은 똑같이 팽팽한 얼굴로 마주대하는 묘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현실성을 포기하고 다들 젊고 예뻐 보이려는 그 어색함이 사실은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역인지를 말해주는 것. 나이를 너무 역행하고 싶어하는 ‘동안’으로의 의지가 보는 이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도 어느 정도 숙지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안성기씨를 만날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인 그의 얼굴에는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백만 불짜리 미소가 있다. 인생을 멋지게 살아낸 흔적을 말해주는 깊이 있는 주름이 그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주었고 그것은 그야말로 ‘동안’ 그 이상의 신이 내린 축복의 얼굴이 아닐까. 영화인들 모두가 그를 진정한 맏형이라고 부르며 진심으로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사 아침 대표 blog.chosun.com/amsaj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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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2-23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감 있고 밝은 마음이 얼굴에 내비칠때 젊어보이는 얼굴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려면 정말 투명하게 살아야할텐데요^^ 제가 좋아하는 이병헌 캬~

진주 2006-02-2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황신혜는 왜 그런지 부자연스럽던걸요.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젊어보이려고 너무 애쓰는 티가 나는 건 제 입장에선(전 동안이 싫거든요..) 짜증스럽기까지....

진주 2006-02-2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수정씨는 저렇게 나이가 많은 줄 몰랐어요^^ 스물 두어 살 되었나? 했는데..^^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

 
  땅 위에 살아가고 있는 많고 많은 사람들을 두 가지 사람들로 구분할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성공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실패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성공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로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실패는 한 가지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실패란 삶의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의 좌절이다”
 
실제로 실패한 사람과 성공한 사람 사이에는 단 한 가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바로 습관의 차이다. 좋은 습관이 성공에의 열쇠이며 나쁜 습관은 실패에의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성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좋은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의 포로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긴 세월에 걸쳐 몸에 배인 습관은 우리 자신들에게 가장 나쁜 폭군이다. 우리들이 어차피 어떤 습관에 매여 사는 습관의 포로가 되려면 좋은 습관의 포로가 되어야 한다. 우리들을 실패의 길로 이끄는 나쁜 습관을 철저히 깨뜨리고 스스로 좋은 습관을 만들어 그 포로가 되기를 선택하자.

농부가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땀 흘려 밭이랑을 일구고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좋은 습관을 일구어 나가자. 그렇다면 좋은 습관을 어떻게 일구어 나갈 것인가? 먼저 자기 자신에게 꼭 필요하고 유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정하여 한 달 동안 그 습관을 체득하는 일에 집중하자. 그 습관이 완전히 몸에 배인 후에 다시 다른 습관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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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2-2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짓하지 말고 좋은 습관 드리자!

하늘바람 2006-02-23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갑니다
 

 

[문화비전] 헉! 카드 명세서에 여관 이름이…


▲ 김애란 / 소설가
이따금 나는 나에 관한 기사가 신문의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 실리는 상상을 한다. 기사의 내용은 김 작가가 다른 작가들에게 ‘해외 문학 기행’을 가자며 모은 돈을 가지고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몇 년 후, 신문에는 ‘종적을 감춘 작가, 알고 보니 나이지리아에서 총기 매매업 중’이라는 보도가 나간다. 얼마 후 다른 지면에는 ‘사실은 그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일곱 쌍둥이 중 한 명’이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은, 실제로 문학사에 소설보다 더 소설같이 살다 간 작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베고 누워 작가들의 사생활을 그려본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얼마나 시건방진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도스토예프스키가 노름 돈을 잃고 나올 때 발음한 러시아식 상욕은 어떤 억양이었는지, 귀부인과 통정(通情)한 발자크는 저택 뒷문을 빠져나오며 얼마나 빨리 뛰었는지. 누군가는 그것은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고도, 또 누군가는 방해한다고도 말한다. 그 중에는 플로베르와 같이 자신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없애려 노력한 작가도 있고, 사라진 흔적들을 찾아 헤매느라 일생을 바친 연구자들도 있다. 작가와 작품에 관한 논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우리가 플로베르보다는 개인의 흔적을 삭제하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다는 점이다. 크고 작은 계약들과 각종 세금 계산서, 휴대전화, 은행 거래 명세서까지. 그러니 훗날 누군가 한 작가의 삶에 대해 연구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방법들과 많이 달라져 있으리라. 그 중 카드 명세서는 결제 시간과 날짜, 장소가 분명하게 찍히는 매우 구체적인 사료가 될 것이다. 만일 어느 집념의 연구자가 죽은 작가의 ‘카드 사용 명세서’를 침침한 눈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치자. 그는 그것으로 작가의 취향이나 생활수준, 동선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주로 어느 동네에서 맥주를 마셨는지, 어느 인터넷 서점을 이용했는지, 동료작가에게 왜 송금을 했는지, 그 스스로도 피하려 했지만 불가피하게 찍혔을 이 여관 이름은 무엇을 뜻하는지. 그러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사로 송금된 돈이 성인용품 구매에 쓰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당황할지도 모르리라.

현금카드. 가끔은 이 작고 납작한 플라스틱이 내 삶을 저장하는 이동식 드라이브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매출 전표가 지지직… 기기를 빠져나올 때 나는 내 삶의 한 순간이 인쇄되는 소리, 인생의 한 장면이 잽싸게 크로키되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비밀이 사라지는 소리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에게는 소비의 목록만으론 절대 기록할 수 없는 삶의 디테일과 진실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 연구가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1937년 이상이 일본에서 쓴 편지 ‘살아야겠어서, 다시 살아야겠어서 저는 여기를 왔습니다’라는 자료(김연수 소설 ‘굳빠이 이상’)에 비해 ‘김 작가 2006년 1월 14일 22시 34분 24초 룰루치킨에서 24000원 일시불’이라는 말은 어쩐지 퍽 부끄럽게 느껴진다. 과거, 관계자마다 진술이 달랐고, 때로는 독자의 요구나 판타지에 의해 재구성되고 낭만화됐던 작가의 사생활은 이제 ‘구체적 남루함’만을 가지는 듯하다. 그것이 개인과 문학의 역사를 발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이따금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것은 세상의 작은 비밀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또 알 수 없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김애란 · 소설가
 김애란이라면 달려라 아비를 쓴...
글 재밌게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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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6-02-0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독특한 생각을 하는 작가네요. <달려라 애비>는 처음엔 그저 그랬는데 뒤로 갈수록 마음이 끌리는 단편들이 수록되 있더라구요.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