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강영우박사

2006년 5월 2일 (화) 10:18 YTN

강영우 박사, 미 페어팩스 인권상 수상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인권위원회는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 차관보인 강영우 박사를 올해의 인권상 수상자로 결정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강 박사가 '많은 장애자 인권 옹호 단체들과 함께 장애인 차별에 맞서 싸우면서 이들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 때문에 포기하지 않도록 도왔다'고 시상 이유를 밝혔습니다.

 
 
 
 
 
 
 
 
강영우박사가 말하는 성공적인 삶
 
1. 보통 사람들은 비논리적이며 비합리적인 생각을 한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라.
 
2. 선행을 하면 이기적인 생각에서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그런 것에 개의치 말고 계속해서 선행하라.
 
3. 성공하면 그릇된 친구도 생기고 생기고 아첨배가 생기게 된다. 그래도 성공하라.
 
4. 오늘 선한 일을 해도 내일 잊혀질 수가 있다. 그래도 계속 선행하라.
 
5. 정직하고 솔직하게 살면 불이익을 당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게 인생을 살라.
 
6. 대의를 품고 살다보면 졸장부에 의해 쓰러질 때가 있다. 그래도 선명한 비전과 큰 꿈을 갖고 인생을 살라
 
7. 보통 사람들은 약자를 좋아하지만 강자를 따라간다. 그래도 당신은 소수의 약자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이 되라.
 
8. 여러 해 동안 공들여 쌓은 탑이 하룻밤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 탑을 쌓아 올려라.
 
9. 도움이 피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도 공격을 받을 수가 있다. 그래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도움을 주라.
 
10. 당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이 세상에 주고도 발길로 차이고 이로 물어뜯길 수가 있다. 그래도 당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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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혜의 유행유감] 드라마 춘추전국시대

심심할 틈이 어디 있니!
 

▲ '봄의 왈츠'
요즘엔 텔레비전을 너무 추종해 시간만 되면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도 인간관계에 문제를 주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안 보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된다.

젊은 세대들의 유행어나 개그 프로그램의 인기코너를 표방한 일상의 유머를 도통 알아 듣지 못하면 바로 구세대로 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텔레비전 프로그램들도 다른 시선으로 대하면 저마다 각각 정보와 재미의 산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가운데 언제나 열광하고 언제나 실망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중독되는 분야는 단연코 드라마다.

불륜이나 불치병, 출생의 비밀이 아니면 텔레비전 앞으로 시청자를 끌어 모으기가 힘들었던 드라마들은 늘 비난 받으며 끝내기가 일쑤였다. 설령 신선한 출발을 했다가도 같은 길을 간다는 결론에 도달해야 했으며, 그래서 태생자체가 그저 ‘연속극’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

언제부터인가 다양한 소재와 작품성을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 중인 세련된 드라마들로 그야말로 안방이 극장이 되었다.

▲ '연애시대'
쿨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이 진정한 쿨이라고 말하는 ‘굿바이 솔로’에 이어, 헤어지고 시작하는 이상한 연애이야기 ‘연애시대’, 봄이 오는 길목을 지켰다가 마음을 흔들어 놓는 풋풋한 사랑이야기 ‘봄의 왈츠’, 조직을 배신하고 도망자 신세가 된 남자와 정의감에 불타는 용감한 여의사이야기라는 조금은 진부한 내용이지만 신들린듯한 양동근의 연기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닥터깽’, 어쩔 수 없는 끌림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초록빛 멜로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등등 귀가 시간을 당겨주는 드라마들이 다양하게 포진해있다.

신선한 내용은 물론 스타급 배우에서 영화감독까지 투입되어 “선남선녀들은 텔레비전 안에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요일 별로 달콤한 유혹들을 하니 뿌리치기 힘들 지경이다.

▲ '닥터깽'
일단은 얼마 전까지 영화로만 만났던 배우들을 접하는 재미와 현실에서 쓰이는 감칠맛 나는 대사로 무장한 드라마들이 젊은 세대들을 사로 잡고 있다.

예전에는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좁은 텔레비전의 드라마 속으로 다시 돌아가기 싫어했던 배우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 감각적인 연출은 물론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내용으로 승부하며 나아가 한류스타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스크린의 스타들도 드라마와 영화를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공공연한 스케줄이 되었다.

더구나 시청률이라도 높아지면 스타에게는 더욱더 높은 날개를 달아주어 바로 몸값이 달라지고 연기력만 살짝 뒷받침 되어주면 신인배우들에게도 기회의 상자가 될 수 있는 곳이 이즈음의 텔레비전이며 그 선두에 있는 것이 드라마다.

우리도 얼마 전 영화의 조연급 캐스팅을 위해 오디션을 보려고 여자 후보배우들의 명단과 사진을 미리 감독에게 보여줄 일이 있었다. “일일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언니로 나오고요, 화제의 미니시리즈에서 여주인공 동생으로 나오는데 요즘 완전 인기 입니다…” 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텔레비전을 전혀 안보는 감독은 누가 누군지를 도통 모르겠다며 너무 생소하니 알아서 결정을 해달라고 했다. 거기에 “아니 텔레비전을 뉴스랑 스포츠말고 드라마 보기 위해 켜둔단 말이야?” 라는, 구세대가 할 수 있는 한마디를 덧붙이면서.

▲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그래서 바로 “이거 왜 이러십니까. 안보면 바보 상사가 되시거든요? 가끔 보시죠…”라고 반박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뉴스에서만 확인하는 시대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여전히 어느 한쪽에선 자기가 버린 딸을 며느리로 맞는,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되는 드라마도 고공비행 중이기는 하지만, 요즘처럼 풍성하고 맛깔스런 드라마 밥상은 받을 만하고 먹을 만하다.

매력남녀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뿐 아니라 ‘스펀지’를 통해 일상의 상식을, ‘솔로몬의 선택’으로 생활의 법률을, ‘진실게임’을 통해 다양한 인생의 사람들을 엿보게 해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텔레비전의 역할에 오늘은 ‘유감’이 아니라 그래서 살짝 ‘공감’하는 중이다.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 blog.chosun.com/amsaj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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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고 다 문학인가


▲ 김광일 문화부장
#1. 엊그제 김명곤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과 상견례 점심. 그는 젓가락을 잠시 내려놓고 취임 다짐을 말했다. “어쨌든 저는 현장 중심의 문화정책을 펴겠습니다.”

현장? 현장 좋아하기로 따지면 기자들도 둘째갈 수 없기에 반갑게 들렸다. 담당 직원들이 서류로 보고한 내용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잘 모를 때가 있는데, 현장으로 달려가 현장을 보고 현장에 귀를 기울이면 금세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현장은 말한다”는 것을 그는 기자보다 절감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다음날 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문서로 약속한 셈이었다.

문제는 “무엇이 현장이냐”다.

#2. 늦은 시각 광화문에 있는 한 호프집. 중견 출판인 H씨, 소설가 K씨, 그리고 신문 기자 한 사람이 거칠게 술을 따르고 있다. 낙담은 울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초판 1500부만 찍었는데도 반품이 90%가 넘는 현실을 개탄했다. 싸구려 상업주의를 부추기는 몇몇 외국 작가가 우리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 공연장의 현실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초대장 공짜 관객이 유료 관객보다 많다는 통계를 들이댔다. 몇몇 인기 뮤지컬만이 독식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손가락을 빨고 있다는 것이다.

#3. 1991년 마크 빅터 한센과 잭 캔필드라는 미국인 강사들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 원고를 마무리해놓고 허탈에 빠졌다. 이미 130번 이상 출판 거절을 당하고 있던 터다. “짧은 이야기 모아봤자 안 팔립니다.” “이야기에 강렬함이 없습니다.” “그 제목은 절대 안 먹힙니다.”

이때 두 사람은 아이디어를 냈다. 그 책이 출판되면 사겠다고 약속하는 구매약속 용지를 하나 인쇄한 것이다. 이름, 주소, 구매 희망 부수를 적는 칸이 있었다.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신발이 닳도록 전국을 뛰었고, 합산으로 2만 권을 사겠다는 약속을 얻었다. 마침내 131번째 출판사와 계약에 성공했다. 오늘날 전 세계 39개 언어로 번역되고, 첫 권이 단숨에 800만 권이나 팔렸으며, 무려 80권까지 시리즈로 이어진 20·21세기 초대형 베스트셀러는 그렇게 탄생했다.

#4. 다시, 무엇이 현장인가. 기자의 현장 따로 있고, 장관의 현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어디가 현장인가. 오늘날 창작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서 고뇌하는 작가보다, 팔리지 않아서 고통받는 작가가 더 많다는 것이 혹시 현장의 진실은 아닌가.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흡혈귀의 비상’이란 책에서 “작품의 완성은 독자에 의한 실현 속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솔직해지자. 문학 기자에게 현장은 소설가가 아니라 독자다. 뮤지컬은 배우가 아니라 관객이 현장이다. 왜냐하면 현장(독자·관객)이 없으면 기자도 없고, 장관도 없기 때문이다.

#5. H씨와 K씨께. ‘좋은 공연에는 관객이 들기 마련’, ‘좋은 책은 독자가 사기 마련’이라는 말은, 하루빨리 잊어야 할, 실패자들의 유언 같은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쓴다고 문학이 아니다. 찍어낸다고 문학이 아니다. 투르니에의 말처럼 읽어주어야 문학이다. 현장으로 가 ‘좋은 공연’이란 무엇인지 관객에게 물어야 한다. 세계적 스타도 가장 짜릿한 순간은 첫 공연 매진 때다. 문화는 마켓과 티켓으로 완성된다.

#6. 김명곤 장관은 한때 ‘애물단지’ 소리까지 듣던 국립극장을 6년 동안 맡아 최고의 연봉(1억2900만원)을 받는 성공 스토리로 이끈 주인공이다. 누구보다 그는 “텅 빈 객석”의 허탈을 잘 안다. 장관의 현장이 ‘구매 약속 용지’를 들고 전국을 누비는 그곳이길 빈다.

김광일 · 문화부장 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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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 찔린 것

하늘바람 2006-04-27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제목은 괜히 두근거립니다

stella.K 2006-04-2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기까지...?!

닉네임을뭐라하지 2006-04-2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어야 문학, 이라니. 정말, 그런 건가요. 흠

stella.K 2006-04-2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리는 있다고 보아지는데요.^^
 
 전출처 : kleinsusun > 11년 전 말하지 못했던 솔직한 견문록

어제 저녁, 네덜란드 거래선 담당자 Robert와 저녁을 먹었다.

Robert는 180cm가 약간 넘는 큰 키에 곱슬머리 금발, 40대 후반의 네덜란드 남자.
대학 졸업 후 쭈~욱 chemical sales를 해 온 이 바닥의 베테랑이다.
1년에 3개월 이상은 중국 출장을 다닌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암스테르담에 처음 갔을 때 내가 겪은 "정신적 충격"을 말했다.

그 얘기를 했더니 Robert가 고개를 크게 끄덕끄덕하면서 말했다.
" I can understand your feeling. I fully understand you."

어렸을 때, <안네의 일기>를 읽고 안네가 불쌍해서 막 울었다.
아....가엾은 안네! 얼마나 무서웠을까....

많은 어린이들이 울었겠지.나처럼.
지금도 이 세상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안네의 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겠지.

그런데....
내가 처음 암스테르담에 갔던 1995년.
"Anne Frank House"를 방문한 나는 너무너무 놀랐다.

어렸을 때, <안네의 일기>를 읽으며 아주아주 비참한 환경을 상상했었다.
전쟁 통에, 그것도 숨어 살았으니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을까....생각했다.

그런데...안네가 살았던 집은....너무 좋았다.
건물 외부도, 내부도....훌륭했다.
고풍스런 가구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방.
수세식 화장실도 있었다.(소리 때문에 물을 내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안네가 그 집에 살았던 시기는 1942년 6월부터 1945년 3월.
생각 보다 너무 "럭셔리"한 Anne Frank House에서 쌩뚱 맞게 이런 생각을 했다.

1942년에,
일본 식민지였던 그 암담하고 가난하고 서러웠던 시기에,
도대체 우리 할머니는 어떤 집에 살았을까?

그 생각을 하니...
<안네의 일기>를 읽었을 때 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마구마구 아팠다.
도대체 우리 할머니는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을까?

Robert가 말했다.
70년대 초에 중국 출장을 처음 갔는데, 너무 가난해서 놀랐다고...
특히 화장실에 갈 수가 없어서 계속 꾹꾹 참으면서
미팅 내내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아!"를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고....

Robert가 11년 전의 내 기분을 이해한다며 말했다.
Anne Frank House는 솔직히... 요즘 중국 시골에 있는 집들 보다도 좋다고...

11년 전, 학생이었을 때 느꼈던 굉장한 "쇼크"를
이젠 편하게 술안주 삼아 말하게 되었다.

11년 전, 난 노가리 안주를 사치로 생각하는 학생이었고,
11년이 흐른 지금, 난 고급 한정식집이나 일식집에서
바이어들이랑 저녁을 먹으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정말....많은 것이 변했다.
너무 큰 충격이었고, 또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이젠 편하게 얘기한다.

어제 11년만에 Anne Frank House에 다녀온 소감을 얘기했다.
11년 전 말하지 못했던 솔직한 견문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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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전] 性에 대한 즐거운 가치 전복

잡지 ‘이프’ 10년 여정 마쳐 여성의 몸·욕망·섹스…
禁忌에 맞서 ‘발칙한 도전’ 소임 다했기에 폐간 아닌 完刊

▲ 이성표 그림
깨진 돌들이 굴러다니는 무덤 같은 토굴에 한 여자가 벌거벗은 채 누워 있다. 거친 땅 위에 누운 그녀의 몸은 춥고 가여워 보인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녀의 다리와 가랑이, 겨드랑이와 가슴 위에서 초록의 풀들이 솟아나 무덤을 뚫고 나올 듯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다. 2006년 봄 호로 ‘완간호’를 낸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의 표지 그림이다.

1997년 5월 창간한 ‘이프’ 첫호의 표지는 금방 아이를 낳을 것 같은 만삭의 임산부였다. 박영숙이 찍은 이 사진 속 여자 또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의 튼튼한 손은 부른 배를 단단히 받치고 있고, 생명을 품은 여자의 몸 위로 푸른 창공의 바람과 흰 구름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창간호와 완간호의 두 여자 모습은 이렇듯 다르면서도 닮았다.

‘만약에(If)…’라는 가정형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지난 10년간 각종 문화비평과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이 잡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산파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문열의 소설 ‘선택’이었다. 작가는 조선 선조 때의 정부인이었던 장씨 부인의 입을 빌려 ‘요즘 여자’들을 가차없이 질책했다. “…그들은 이혼의 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남성들의 위선과 이기와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그들과 싸운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소위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이 보여준 여성 삶에 대한 몰이해, 페미니즘의 왜곡에 분노한 여성운동가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가부장적 권력과 맞장을 뜨기 위해 만든 무기가 바로 ‘이프’였다.

IMF 외환위기로 잘 나가던 잡지사들도 문을 닫던 당시, 계간 형태에 고작 1만 부도 안 되는 부수로 출발한 ‘이프’는 마초 기질 다분한 남성 지식인들에겐 ‘나쁜 여자들의 소굴’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물론, 시인 김승희, 화가 윤석남, 신학자 현경, 작가 김신명숙, 영화평론가 유지나, 사진작가 박영숙 등 문화계 여걸들이 ‘백 그라운드’로 대거 합류한 ‘이프’는 남성 중심의 문화비평계를 위협했다.

창간호부터 ‘이프’는 도발했다. 광화문 네거리의 이순신 동상에 ‘지모신(地母神)’을 합성한 사진으로 가부장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는가 하면, 여성의 외모에 점수를 매겨 차등화하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제동을 걸어 수영복 심사 폐지와 지상파 중계방송 포기 선언을 받아냈다.

금기시돼 있던 여성의 몸과 성(性)에 대한 담론을 양지로 이끌어낸 주역도 단연 ‘이프’다. “왜 여성은 섹스를 주도해서는 안 되는가?”를 반문하며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자유분방하게 토론할 만큼 발칙했다. 동성애자·트렌스젠더들이 사회에서 지탄받을 때는 ‘세상에는 다양한 삶과 사랑의 선택이 있다’고 편들었다.

정치사회적 논쟁의 중심에도 ‘이프’가 있었다. ‘여성도 군대 가자’ ‘여자도 남자들처럼 정치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간통제 폐지 주장)’이라는 주장은 여성계 내부에서조차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프’에 대한 비판은 거셌다. ‘인텔리 중산층 여성들의 자기 만족적 유희’ ‘오만하고 불경스러운 쾌락적 글쓰기’…. 그러나 놀랍게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프’의 예언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의 물결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이프’의 목소리를 배부른 아줌마들의 헛소리일 뿐이라고 치부했지만, ‘이프’야말로 여성이고 아줌마여서 주도할 수 있었던 가치 전복, 문화게릴라 운동이었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은 물론 남자의 몸과 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소비한다.

▲ 권혁란씨
미스코리아 대회? 남성들에게조차 그건 쌍쌍파티만큼이나 오래된 쌍팔년도의 구닥다리 유물이다. 동성애 코드는 어떤가? 동성애 영화로 분류되는 ‘왕의 남자’ ‘브로크백 마운틴’을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관람하고 감동받지 않던가. ‘이프’가 경영난으로 폐간하면서도 ‘완간’(完刊)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는, ‘성(性)에 대한 즐거운 가치 전복’이라는 소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덤에 누운 나신(裸身)의 그 여자, 그 생명력을 믿기 때문이다. 그 몸을 양분 삼아 자라날 초록 풀의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간은 또한, ‘이프’로 상징되는 여성운동도 자기만의 세계, 아집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내려앉아야 한다는 새로운 다짐을 의미한다. 투쟁에서 어우러짐으로, 거부에서 소통으로 거듭나는 즐겁고 신나는 또 하나의 실험! ‘틀에 얽매이지 않는 페미니즘(Infinite feminism)’이야말로 여성과 남성이 서로 존중하며 행복해지는 세상을 앞당기는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권혁란·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前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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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6-04-08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사회적 논쟁의 중심에도 ‘이프’가 있었다. ‘여성도 군대 가자’ ‘여자도 남자들처럼 정치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간통제 폐지 주장)’이라는 주장은 여성계 내부에서조차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마음에 드는 구절이네요. 여성 속의 남성을 보는 것 같아서요.

stella.K 2006-04-08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