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 아침

                                                                                              김진권

식물원에서 이웃해 자라고 있는 꽃들이 활짝 갠 하늘로 얼굴을 치켜들고 모두들 해 바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식물원 관리인 김씨 아저씨가 스프링클러들 작동했습니다. 따뜻한 온실 안에서 청명한 하늘을 보며 온몸으로 맞는 시원한 안개 물 줄기는 정말 상쾌합니다.

 귀한 자태를 뽐내는 백합은 하얀 볼에 묻은 물을 털며 환한 웃음을 짓습니다. 귀부인처럼 고운 자태를 지닌 난초도 말없이 미소를 짓습니다.
큰 키에 넓은 치맛자락을 휘날리는 파초는 갑자기 잎사귀를 부비며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아이 ~ 참 햇살은 언제나 따뜻하고 아침 샤워는 너무 기분이 좋단 말이야!!!”

한켠에 서 있던 선인장 무리 가운데에서 늘 좀 거친 말투를 쓰곤 하는 맥시코 선인장이 투덜댔습니다.
“뭐가 시원하고 뭐가 따뜻하단 말이야. 우리는 추워 죽겠는걸,  샤워가 필요 없는 우리에게 물이 튄다고! 거기 파초 너는 좀 호들갑 떨지마!”

 

갑자기 나선 선인장의 참견에 파초가 붉은 입술을 실룩이며 소리쳤습니다.
“넌 정말 생긴 대로 노는구나. 얼굴에 온통 거친 여드름만 가득하고 못 생긴 주제에 샤워까지 싫어하니 누가 너를 좋아 하겠니. 어쩜 저 짜리몽땅한 난장이라니.......주제에 무슨 불편 불만이 그리 많담!”

마침 지나가던  관리인 김씨 아저씨가 점잖게 파초를 나무라셨습니다.
“파초야 말을 너무 함부로 해선 안 된다. 특히 남에게 상처가 될 말은 해선 안 된단다”
파초가 넓은 잎사귀를 소리 나게 너풀대며 대 들었습니다.
“그럼 아저씨는 선인장 보고 키다리라고 하시나요? 얼굴에 가득 바늘이 돋아나 못생긴 아이를 아저씨는 잘생긴 미녀라고 하시나요? 저는  저 아이 생긴 대로 그저 정직하게 말 했을 뿐 이예요!”

 

김씨 아저씨가 조용히 파초에게 다가와 크고 아름다운 잎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습니다.
“파초야, 네 말이 맞다. 또 나는 네가 늘 정직 하다는 걸 잘 안단다. 그러나 참 정직은 나 혼자만의 만족이 아니란다. 선인장은 네 말처럼 비록 키도 작고 못생겼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강인한 체력을 가졌는지 너도 알지 않니? 또 너는 본적도 없지만 네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해마다 한번 씩 피우는 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니?  저렇게 키가 작아도 나이가 다섯 살 이나 된단다. 네가 이 온실을 떠나가도 저 선인장은 네 후손들과 또 몇 년을 산단다. 또 가시 박힌 선인장 몸엔 얼마나 유익한 성분이 많은지 너는 모를 거야.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안으로 가득한 참 가치 있는 것들도 수없이 많단다. 네가 정직한 말과 행동을 하는 건 모든 친구들이 알지만, 정말 가치 있는 정직은 남의 허물을 들어내기보다 남의 칭찬거리를 찾아내 말 하는 것이란다. 남의 허물을 얘기하는 있는 그대로 얘기하다보면 자칫 정직이 아니라 멸시나 비난이 된단다.”

 

파초가 검은 눈에 물기를 머금고 대답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보고 느끼는 대로 얘기 하는 것이  모두 참 정직이 아니라는 아저씨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인장아! 미안해 내가 함부로 말을 해서. 용서해줘.”
파초가 긴 손으로 눈매를 훔치며 고갤 숙였습니다.
건너편에선 선인장이 작은 키를 곧추세우며 말했습니다.
“파초야 내가 미안해, 갑자기 차가운 물이 몸에 튀어서 네게 신경질을 낸 내가 잘못했어. 사실 난 아름다운 너를 마주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데...... 이젠 우리 서로 감사하며 사이좋게 지내자꾸나.”
김씨 아저씨가 이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 짓고 있었습니다. 온실 유리 지붕 너머로 환한 아침 햇살이 따사하게 비춰옵니다.
                                                                      -끝-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교회 집사님이 쓰신 글이다. 한때는 시인이셨는데 시인생활을 접으셨다고 한다.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뜻을 같이해서 같은 부서에서 봉사하셨는데, 개인 사정상 봉사를 접으셨고, 대신 내가 만드는 소식지에 이렇게 동화를 한편씩 보내주시기로 하셨다.
내용이 너무 좋아 집사님의 양해를 구해 전문을 여기 올려 본다. 내 서재를 오시는 서재지인들도 즐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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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2-01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정직은 나 혼자만의 만족이 아니라는 말에 진한 공감을 느낍니다. 덕분에 잘 보았어요^^

stella.K 2007-12-02 18:00   좋아요 0 | URL
오, 마노아님! 역시 님은 저의 서재에 진정한 손님이십니다. 이 동화 정말 좋지 않아요? 비록 제가 쓴 동화는 아니지만 너무 좋아 널어놨는데,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아 내심 섭섭했었어요. 흐흐.
 




몇 년 전, 가수 조영남과 선물에 대한 얘길 한 적이 있다. 내가 그의 얘길 아직도 기억하는 건, 그토록 많은 선물을 받고도 전혀 감동받지 않는다는 그의 기이한 ‘무감동’ 상태 때문이었다. 일본 사람들 특유의 선물 공세에는 그만 기가 질리고, 수없이 많은 꽃다발을 받았지만 고마움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단다.

그런 그가 서강대 영문과 교수인 장영희에게 주려고 화투장으로 밤새 꽃다발을 만들었다고 했다.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그것도 단 한 사람을 위한 예술품을 선물로 준다는 것의 근사함 때문에 나는 그에게 집요하게 물었다. “원래 선물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싫어하신다면서요?”

조영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림을 안 주는 편이란다. 노래 선물도 안 한다. 자신이 가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은행 통장을 안 보여주는 심리와 똑같은 것이라고 말하다 그가 웃었다. 장영희에게 ‘슬픈 카페의 노래’란 책을 선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불현듯 그 책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작품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작 책 한 권에 무감동한 그가 그토록 감동받다니!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조차 그 책을 당장 사서 읽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선물 중 하나는 스무 살 겨울에 받은 ‘5000원짜리 도서상품권’ 한 장이다. 달랑 도서상품권? 참 진부하고 성의 없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스무 살, 내 친구가 건네준 야들야들한 분홍색 한지 봉투 안에는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 더 들어있었다.

5000원에 1000원을 더하면 당시 내가 사랑하던 황지우와 이성복이 쓴 문학과 지성사의 시집 2권(당시 3000원이었다)을 거스름돈이 생기지 않게 살 수 있었다. 또 소설가가 꿈이었던 내가 교과서 삼아 읽었던 ‘문학동네’와 ‘창비’의 단편 소설집이나 보르헤스나 마르케스 같은 남미 작가들의 책들도 딱 맞게 살 수 있는 돈이었다. 5000원 상품권에 덧보태진 1000원짜리 지폐 한 장. 그건 책을 사는 내 패턴과 좋아하는 출판사, 작가 취향까지 고려한 선물이었다. 무심함을 가장한 오래된 친구의 세심함이라고 해야 하나.

가령 선물의 여왕 노영심이 말하는 ‘선물의 기술’은 이런 거다. 안경을 유달리 잘 잃어버리는 친구에게 안경걸이를 선물하거나, 대보름날 호두와 땅콩만 선물하지 말고 예쁜 망치와 땅콩을 담아둘 작은 바구니 같은 걸 같이 선물하는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에겐 자신을 볼 수 있는 날짜를 표시한 예쁜 달력을 선물한다. 기왕이면 같이 가고 싶은 장소를 달력에 써넣을 수도 있겠다. 나 같으면 달력 위에 호암미술관 희원, 삼청동 와플 가게, 신사동 가로수 길에 있는 빈티지숍, 가을 수락산, 뻘이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서산의 단골 조개구이집을 적겠다.

물건에 관한 뛰어난 감식안을 가지고 있는 사진가 윤광준은 언젠가 내게 자신이 선물 받은 파버 캐스텔(faber castell)연필에 관한 얘길 해주었다. 잘 만들어진 연필이란 이런 것이란 생각, 연필을 쥐었을 때의 그 친근한 느낌 때문에 이 연필이 좋단다. 지금은 근사한 프랑스 식당의 주인인 연극배우 강만희는 ‘차’(자동차 말이다!)를 선물 받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달의 바다’로 소설가가 된 정한아는 내게 최근 생일 선물로 받은 작은 노트에 대한 얘길 해주었다. 그 노트엔 친구가 직접 적은 싯구와 어디에선가 가져온 소설 문장들, 그리고 자신에게 보내는 그녀의 소중한 편지가 적혀 있었다고. 스물다섯, 반짝이는 어린 나이에 큰 문학상을 받은 후 찾아온 불안감에 힘들 때, 그 선물은 자신에게 특별한 위로가 됐다고 했다.

겨울이면 수족냉증을 앓는 손녀를 위해 할머니가 직접 짠 털실 양말, 시인 강정이 가난한 후배에게 꽃다발 대신 받았다는 대파로 만든 꽃다발. 특히나 술을 좋아하는 시인이 이 기발한 꽃다발을 그 날 술자리의 찌개에 넣어 부글부글 잘 끓여 먹었노라 참회하듯 고백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선물이 사람을 이렇게 크게 웃게 한다면, 위로할 수 있다면, 시든 대파 다섯 개로 족한 것이다.

누군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준비하다가 문득, 진짜 선물이란 ‘갈비세트’나 ‘차 세트’ ‘와인 세트’ 같은 이른바 세트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세트로 묶이는 것은 실은 선물이 아니다. 누군가 적당히 묶어놓은 걸 전달하는 전달품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행간을 꼼꼼히 읽어 주는 선물, 도서상품권 한 장에도 마음을 담는 법이 있다면 선물에도 분명 좋은 기술이 있을 것이다. ‘아부의 기술’이란 책도 나올 마당에 ‘선물의 기술’ 같은 책 한 권 나오면 좋지 않을까. 나라면 당장 한 권 사서 읽어 볼 것 같다.

백영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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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물에도 기술이 있다...?
    from 2007-11-16 12:41 
    어제 신문을 보니, 작가 백영옥이 선물의 기술에 대해 쓴 이야기를 읽었다. 그녀는 아부의 기술이란 책도 있는데, 선물의 기술이란 책이 있으면 사 보겠다고 끝을 맺었다. 선물의 기술이라... 그러고 보니 난 얼마나 선물을 했고, 잘 해 왔는가? 뜨끔한 뭔가가 슬쩍 지나가는 느낌이다. 나야 책을 좋아하니, 그래도 책 선물 받는 게 가장 만만하고 좋지 않은가? 내가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도 좋으란 법은 없을 것이다. 뭔가 그럴듯한 게 있으면 좋을
 
 
 

조카와 함께 떡볶기를 사려고 명훈이네 집에 들렀더니 가게 자체가 온데 간데 없어져 찾을 수가 없었다. 경성고등학교 옆 작은 구멍가게 한쪽을 빌려 떡볶이와 오뎅을 팔던 명훈이 엄마는 그나마 경쟁이 심해 장사가 안돼 어디론가 이사했다는 것이다. 가끔 퇴근길에 들르면 오뎅 국물에 우동을 맛있게 말아주던 명훈이 엄마는 몇 년 전 남편이 죽고 어린 형제를 데리고 근근히 살고 있었다. 삼모자 (三母子)의 안부를 생각하며 나는 몇 년 전 읽었던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섣달 그믐날 ‘북해정’이라는 작은 우동집이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아주 남루한 차림새의 여자가 들어왔다.

“우동을 1인분만 시켜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그녀의 등뒤로 아홉 살,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두 소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물론이죠, 이리 오세요.”
주인장의 부인이 그들을 2번 테이블로 안내하고 “우동 1인분이요!” 하고 소리치자 부엌에서 세 모자를 본 주인은 재빨리 끓는 물에 우동 1.5인분을 넣었다. 우동 한 그릇을 맛있게 나눠먹은 세 모자는 150엔을 지불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다시 한 해가 흘러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문을 닫을 때쯤 한 여자가 두 소년과 함께 들어왔다. 부인은 곧 그녀의 체크 무늬 재킷을 알아보았다.
“우동을 1인분만….”
“어서 오세요,”

부인은 다시 그들을 2번 테이블로 안내하고 곧 부엌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말했다.
“3인분을 넣읍시다.”
“아니야, 그럼 민망해 할거야.”
남편이 다시 우동 1.5인분을 끓는 물에 넣으며 말했다.

우동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며 형처럼 보이는 소년이 말했다.
“엄마, 올해도 북해정 우동을 먹을 수 있어 참 좋지요?”
“그래, 내년에도 올 수 있다면 좋겠는데.” 엄마가 답했다.

다시 한 해가 흘렀고, 밤 열 시 경, 주인 부부는 메뉴판을 고쳐 놓기에 바빴다. 올해 그들은 우동 한 그릇 값을 200엔으로 올렸으나 다시 150엔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었다. 열시 반 쯤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세 모자가 들어왔다.

“우동을 2인분만 시켜도 될까요?”
“물론이죠. 우동 2인분이요!”
부인이 그들을 2번 탁자로 안내하며 외치자 주인은 재빨리 3인분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부부는 부엌에서 세 모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아, 그리고 준아.” 어머니가 말했다.
“너희가 도와줘서 이제 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졌던 빚을 다 갚았단다.”
“엄마 저도 엄마에게 할 말이 있어요. 지난 주 준이가 쓴 ‘우동 한 그릇’이라는 글이 상을 받았어요. 준이는 우리 가족에 대해 썼어요. 12월 31일에 우리 식구가 함께 먹는 우동이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구요.”

다음 해에 북해정 2번 탁자 위에는 ‘예약석’이라는 푯말이 서 있었다. 그러나 세 모자는 오지 않았고, 다음 해에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오지 않았다. 그동안 북해정은 성업해서 내부 구조를 바꾸면서 테이블도 모두 바꾸었으나 주인은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두었다. 2번 탁자는 곧 ‘행운의 탁자’로 불리워졌고, 젊은 연인들은 그 탁자에서 식사하기 위해 일부러 멀리서 찾아왔다.

십수년이 흐르고 다시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그 날 인근 주변 상가의 상인들이 북해정에서 망년회를 하고 있었다. 2번 탁자는 그대로 빈 채였다. 열 시 반 경, 문이 열리고 정장을 한 청년 두 명이 들어왔고, 그 뒤로 나이든 아주머니가 깊숙이 허리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우동 3인분을 시킬 수 있을까요?”

주인은 순간 숨을 멈췄다. 오래 전 남루한 차림의 세 모자의 얼굴이 그들 위로 겹쳤다. 청년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14년 전 우동 1인분을 시켜 먹기 위해 여기 왔었죠. 1년의 마지막 날 먹는 우동 한 그릇은 우리 가족에게 큰 희망과 행복이었습니다. 그 후 이사를 가서 못 왔습니다. 올해 저는 의사 시험에 합격했고 동생은 은행에서 일하고 있지요. 올해 우리 세 식구는 저희 일생에 가장 사치스러운 일을 하기로 했죠. 북해정에서 우동 3인분을 시키는 일 말입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귀결,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이런 해피엔딩이 가능할까. 아마 우동집 주인은 문 닫는 시간에 들어와 겨우 한 그릇을 시키는 가난한 세 모자를 구박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아무리 일을 해도 빚을 갚지 못했을 것이고, 아들들은 의사, 은행원이 되기 전에 비행 청소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 훗날 우연히라도 명훈이 가족을 만나게 된다면, ‘우동 한 그릇’의 해피엔딩이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 /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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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4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장영희 교수님,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시죠.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
 

성공의 유일하고도 진실한 잣대는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한 일 중

자신을 위해 한 일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다.

-H.G 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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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0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4-20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K!
 

메디치가는 미켈란젤로를 불러 피렌체 대광장에 세울 조각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메디치가는 당시 이탈리아의 권문세가였다. 그러므로 메디치가로부터 이러한 제의를 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일뿐만 아니라 거절할 수 없는 역사(役事)이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에서 원하는 걸작을 조각하기 위해서는  좋은 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2년 여를 돌을 찾아다니는 데 허비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피렌체 길가에 쌓인 잡초와 쓰레기 더미 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멋진 돌을 찾아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누워 있는 거대한 대리석을 찾아낸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그 길을 수 없이 지나다녔으나  처음으로 그자리에 멈춰 서서 자세히 살폈고, 드디어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대리석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그는 다비드상을 마음속으로 그렸다.

미켈란젤로는 일꾼들을 시켜 그의 작업실에 대리석을 옮겨놓게 했다. 그는 곧바로 해머와 끌을 가지고 장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에 들어갔다. 대략적인 외관만 다듬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그제서야 그는 해머와 끌 작업을 마치고, 다시 2년에 걸쳐 광택내는 작업을 했다.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다비드상을 세상에 처음 공개하던 날, 그것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광장으로 몰려왔다. 마침내 조각상을 가린 천을 벗겨내자 사람들은 놀라움과 찬탄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각상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감탄했으며 실신하는 여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당대 최고 조각가로 입지를 굳혔다.

다비드상을 공개한 다음, 그 같은 걸작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대리석에서 완벽하고 완전한 다비드상을 보았고, 다비드상이 아닌 부분만을 없앴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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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17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 내재된 잠재력을 알아볼 수 있는 재능이 있음 좋겠어요.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해주면 저도 좋고 그 사람들도 좋아하더라구요 ^^

stella.K 2007-04-1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면 추천 좀 해주시지 않쿠. >.<;;

무스탕 2007-04-17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재 미술가의 한마디가 감탄을 자아냅니다!!
추천 꾸욱~ ^^

antitheme 2007-04-17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