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잘 활용할 줄 알라.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
... ...
친구란 우애 . 자비 . 진실, 이 세 가지 속성을 지녀야 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 친구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세상에 좋은 친구가 되는 사람은 적다.
게다가 친구를 선택할 줄 모르면서 그 수는 더욱 적어진다.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사실은 새 친구를 얻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오래가는 친구를 구하라.
갓 사귄 새 친구라도 오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라.
가장 좋은 친구는 그대가 잘못이 있으면
신랄하게 꾸짖고 충고해 주는 사람이다.
친구가 없는 것보다 더 큰 적막은 이 세상에는 없다.
우정은 좋은 것을 같이 키우고 나쁜 것을 서로 나눈다.
이는 불행을 견뎌내는 최선의 수단이며,
영혼의 자유로운 호흡과도 같다.

                                                          중에서

                                                                                                                  
나이가 들으면 예전에 사귀었던 친구와 점점 소원해지는 경우가 있다.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연락을 안하니 친구도 연락을 안하게 되고, 친구가 연락을 안하니 나도 연락을 안하게 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비교 의식도 점점 더 생기게 되는 것도 같다. 하다못해 결혼을 했는가 안 했는가에서부터,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는 경우 그 친구의 아이와 내 아이를 비교하고, 사는 수준 비교하고 등등으로 해서 멀리해 놓고, 세월 흐르면 가까운 친구도 멀어지더라 합리화 하기도 한다.  

친구는 그냥 친구로서 만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엊그제 오랜 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왔지만, 난 가끔 그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왜 친구를 친구로 만나주지 않고, 서로들 아이 얘기하고, 집 얘기하고, 남의 얘기하다가 그 소중한 만남을 끝내 버리는 것인지? 1년에 한번 만나기도 어려우면서 말이다. 물론 1년에 한번 만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일게다.  

모름지기 친구라면 대화뿐만 아니라 삶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기도 전에 너무 일찍 헤어지고, 새로운 만남으로 채워가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늙고, 병들었을 때 내 곁에 남아줄 수 있는 친구는 몇명쯤 될까? 

또, 그러기 전에 한동안 연락을 안했던 친구들에게 한번씩 연락을 해 봐야할 것 같다. 이젠 사람과 좋은 만남을 유지해 나가는 것도 능력이고 훈련일 듯 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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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2011-01-1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동감입니다. 이런저런 상처주는 말만 하고, 서로의 입장만 얘기하다가 하나둘씩 떠나더니, 이제 옆에는 아무도 안 남았네요. 미혼의 젊은이와 기혼의 젊은이가 굳이 나누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혼들끼리 만나 미혼 앞에서 공감가지 않을 얘기들만 할 꺼라면.. 차라리 미혼들끼리만 뭉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저는 미혼인데 아직은 결혼이나 아이보다는 그냥 열심히 일 하고 신나게 웃고 떠들고 싶거든요. 그래서 미혼의 친구들이 더 반갑다는..나이차가 위나 아래로 조금 있어도, 그냥 똑같은 친구로 대하는 넓은 오지랖이,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언니라 부르던 어떤 사람은, 언니라 부르는 게 싫었던지 저보고 툭 하면 늙었다느니 자기는 운전면허에 직장도 있다느니 어쩌니 하길래 연락을 그냥 끊었습니다.
언니란 불리는 게 싫었다면 저도 그냥 누구야 하고 이름 불렀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죠. 비아냥거리기 이전에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상대가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여줄지도 모르잖아요.

아이스 2011-01-17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혼의 젊은이들이 만나서 아이들 얘기에 남편 얘기만 하다가 오는 것은, 그 배후 심리는 경쟁심입니다. 어줍잖은, 바보같은 경쟁심이죠. 내 아이는 이렇네, 더 잘 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할까, 남의 아이는 어느 정도 하고 있나, 남의 남편은 얼만큼 벌고 얼만큼 해 주나..
인생의 잣대를 돈과 경쟁으로 채우려니까 그 모양이죠. 아이도 아이대로 얼마나 고생입니까. 저도 안 되는 머리에 공부해보려고 어린 시절 좋은 기억도 없이 맞으면서 자랐고, 그 때문에 비뚤어졌다가, 겨우 바로잡혔죠. 엄마를 원망은 안 하지만, 인간의 능력이란 것이 내버려두면 알아서 지가 좋아하는 일 찾아서 능력을 발휘하기 마련인데.. 엄마들이 참 너무 극성이죠.
정말 인생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알고 내 목숨과 매일의 밥은 하나님께서 먹여주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날라가고 새로운 시각이 보이죠. 크리스챤 비웃는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제대로 믿는다면 이것만이 사람 하나 살릴 수 있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알고 있구요. 믿기 싫은 믿지 말아요. 이 글을 읽는 모두. 하지만 정말이지.. 다들 너무 몰라요.
 

누구의 글인지는 모르겠다. 너무 길어 앞부분 생략하고 중간 부분부터 옮겨 왔다. 근데 리얼하다. 

이 글은 내 남편이 처녀애랑 바람피울까봐 걱정돼서 쓰는 글이 아닙니다. 내딸이 나중에 유부남 만나서 연애할까 걱정스러워 쓰는 글입니다.

할말이 너무 많아서 글이 너무 길어졌는데…….
그래도 못한 말이 남아서 손가락이 근질거리지만……참기로 하구요…..
이왕 늘어진 글……
남편의 처녀 애인 만난 제 친구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제 친구 남편… 이름난 회사 다닙니다.
거기서도 꽤 높은 자리지요. 남들보다 훨씬 빨리 승진했습니다.
아이들 키우는 일, 집안 대소사, 모든 일을 제 친구가 다했는데 승진도 못하면 어쩝니까?
근데……월급이 정말 짭니다.
오래된 회사여서 유명하긴 하지만 문제가 있어서 경영난이 아직 해결이 안된 곳이지요.
이친구도 과외해서 그 남편 그 자리까지 올려놨습니다.
그 월급으로 생활이 안되어서 아직도 과외하고 있습니다.
결혼후부터 이날 이때까지 남편의 수입보다 두배 이상 벌었습니다.
제 친구 나이 마흔되던 해, 24살짜리 여직원 만나러 나갔습니다.
그 아가씨, 유명한 회사 취직했으니 자긍심이 하늘을 찔렀겠지요.
나이 마흔 먹은 아줌마, 남편 잃지 않겠다고 구질구질하게 자기 만나러 나온 아줌마, 우스웠겠지요.
따박따박 아줌마라고 부르며 사랑 운운하면서 정말 싸가지없게 굴더랍니다.
제친구....지금 둘이 헤어지라고 나온거 아니다.
이일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려고 나왔다.
그리고…둘이 결혼할거냐고 물었답니다.
결혼하겠다면 내가 비켜주겠다.
나도 여기 이 자리에 더 있기 싫다.
애들 팽개치고 등골빼서 과외했더니 내돈으로 니네둘이 놀러다니고 먹으러 다니는거 더 이상 못참겠다.
나도 이제 이자리 털고 일어날 테니 네가 내자리에 와서 앉아라.
그 똥치운 막대기보다 더 쓸모없는 그놈, 하나도 안아까우니까 그렇게 좋으면 너 가져라.
나도 인수인계는 해야될거 아니냐........
그리고는 조용히 펜 꺼내서 적었답니다.
아이들 학원비, 보험료, 월세, 대출받은 융자 할부금, 차 할부금, 식비, 그외 생활비, 시댁 용돈, 시부모 보험료와 공과금, 시동생 학자금 대출 남은거, 키우고 있는 강아지한테 들어가는 비용,
그거 다 적어서 통계 내주고, 남편 월급 적어주고, 차액 적어주고….;
아가씨 월급으로 차액이 충당 안될 테니 아르바이트 더 하셔야 할거라고 얘기해주고….
그리고 왜 강아지를 키워야하는지….

그 강아지, 제 친구 아들이 엄마 집 나가고 아빠 젊은 언니에게 넋빠져서 돌아다니는 동안, 맘붙이고 살았던 유일한 친구입니다. 존재의 중요도와 절대적인 필요성으로 그집에서 엔트리 5번 아니고 4번 입니다. 제 친구1번, 아이들 둘이 2,3번, 강아지4번, 그 남편 5번^^.
그래도 애들 갓난쟁이여서 일 많을때 내가 다 키워줬으니까 지금은 일도 없는거라고 알려주고
큰애 학원 픽업해야 하는 시간 적어주고…
살고 있는 집이 빌라인데 옥상에 물이 새니까 거기 수리해야하고
다용도실 하수구 막혀서 세탁기 돌릴 수 없으니 아저씨 불러서 뚫어야 할거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내가 소송걸면 위자료 물어줘야할텐데….
그 남편 이름으로는 대출 만땅이어서 불가능하니까 아가씨 이름으로 대출을 받던지, 아님…….
부모님이 결혼시키면서 돈 한푼도 안주지는 않을 테니 그돈으로 위자료를 주시던지 알아서 하시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왔습니다.^^

덧붙입니다.
제 친구....그날 인수인계하면서 깜박 잊어버렸던, 제사2번, 시부모 생신2번 날짜 적고, 명절 두번 ..도합 여섯번 저 멀리 땅끝마을인 시댁에 가야한다고 문자보냈는데......그뒤로 소식없었다고 하더군요. 2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인수인계를 안받아줘서 제 친구 아직 퇴직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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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2-2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이의 철없는 사랑이 더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이군요. 아직도 사랑이라고 말할까요?

무스탕 2009-02-2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처리도 아니고.. ^^;
사랑은 눈에 콩깍지 껴야 한다니까요..

털짱 2009-03-0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네요.. 저들도 한때 사랑해서 결혼한 분들일텐데... 사랑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런 경우입니다. 근데 너무 일반적이라서 사랑이 이렇게 통속적이고 덧없는 거라면 왜 그리 연연하는 걸까 싶어요..
 

 오욕(五欲)이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욕심으로써,

먹고 싶은 욕심(食欲),

가지고 싶은 욕심(物欲)

잠자고 싶은 욕심(睡眠欲),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名譽欲)

종족보존을 위한 이성에 대한 욕심(색욕,色欲)을 이르는 말이고,

칠정(七情)이란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감정 즉 희(喜 기쁨), 노(怒 화가 남), 애(哀 슬픔), 락(樂 즐거움), 애(愛 사랑), 악(惡 미움), 욕(欲 욕망)을 이르는 말로써 불교에서는 이것들에서 벗어나야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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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시 100편 - 제 67편] 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정끝별 시인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황인숙 시인은 좀체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는 방식도, 취향도, 생각도, 표정도, 말투도,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도. 황 시인의 절친한 후배 장석남 시인은 사석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 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제 30년이 지나가는데도 정말 안 변하는 사람이 황인숙 선배라고, 그쯤이면 도(道)의 경지라고. 새들은 변하지 않는다, 늙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새'과다.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새처럼, 그는 명실상부한 '프리랜서'로 30여 년을 자유롭게 살고 있다. 글을 쓰며(맛깔스런 그의 산문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세든 집에서 혼자 산다. 책과 음악과 식도락과 고양이(들)와 그의 단짝 벗들과 더불어 산다. "마감 닥친 쪽글을 쓰느라 낑낑거리며/ 잡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부르짖는/ 가난하고 게으른 시인이/ 그 동네에도 살고 있을 것이다"('파두―비바, 알파마!')

타인에게 칼을 건넬 때는 반드시 칼등을 잡고 칼날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건네는 것이 예의다. 이사 갈 때 칼을 버리고 가면 그 집과의 인연을 끊고 가는 것이고, 부엌에 칼을 아무렇게나 놓으면 가족이 다치거나 돈이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칼(날)이 날카롭기 때문에 이런 금기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다'는 금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칼로 사과를 먹다가 언니에게 이 금기의 말을 들은 적이 있건만, 지금도 여전히 시인은 사과껍질을 깎던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칼로 사과를 먹으며 누군가에게 칼로 사과를 먹였던 일을 떠올린다.

이 시의 맛을 깊게 하는 건 마지막 연이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오래 되짚어 보게 하는 구절이다. 젊지 않은데도, 여전히 가슴 아플, 많은 일이 줄지 않는 걸 보면 칼로 사과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칼로 주는 사과를 너무 많이 받아 먹었나 보다. 칼로 먹고 칼로 먹였던 게 비단 사과뿐이었겠나 싶다. 뭔가를 준다는 게 이렇게 위태로울 때가 있다. 그것이 자기에게든 타인에게든, 그것이 사랑이든 배려든. 젊음이 아름다운 건, 가슴 아플, 많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은 그러기에 두려운 대상이다. 황인숙 시인은 여전히 젊고 경쾌하다. 계속 칼로 사과를 콕콕 찍어먹을 수 있을 만큼! 부리로 사과를 콕콕 쪼아먹는 새처럼, 아니 그의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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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3-27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좋군요.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칼이나 가위는 위험한 쪽이 자신에게 향한채 주어야 한다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겠죠. ^^
아~ 사과 먹고 싶다.

stella.K 2008-03-27 13:44   좋아요 0 | URL
좋죠? 요즘 c일보에 계속 실리고 있는데 때문에 시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겠더라구요.
저는 사과 방금 먹었어요.^^

L.SHIN 2008-03-27 21:59   좋아요 0 | URL
저도 아까 사과 먹었어요! 마요네즈에 버무린..ㅎㅎㅎ
하지만 역시 통사과를 아삭~ 씹어 먹어야 맛있는데.
물론 물컹한 사과를 베어 물어서 이빨 사이에 껍질이 끼는 것은 정말
싫지만..ㅡ.,ㅡ

stella.K 2008-03-28 10:43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오늘 사과를 먹으면 Lud-S님 때문에 먹는 줄 아십시오.^^
 


[애송시 100편 - 제 67편] 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정끝별 시인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황인숙 시인은 좀체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는 방식도, 취향도, 생각도, 표정도, 말투도,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도. 황 시인의 절친한 후배 장석남 시인은 사석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 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제 30년이 지나가는데도 정말 안 변하는 사람이 황인숙 선배라고, 그쯤이면 도(道)의 경지라고. 새들은 변하지 않는다, 늙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새'과다.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새처럼, 그는 명실상부한 '프리랜서'로 30여 년을 자유롭게 살고 있다. 글을 쓰며(맛깔스런 그의 산문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세든 집에서 혼자 산다. 책과 음악과 식도락과 고양이(들)와 그의 단짝 벗들과 더불어 산다. "마감 닥친 쪽글을 쓰느라 낑낑거리며/ 잡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부르짖는/ 가난하고 게으른 시인이/ 그 동네에도 살고 있을 것이다"('파두―비바, 알파마!')

타인에게 칼을 건넬 때는 반드시 칼등을 잡고 칼날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건네는 것이 예의다. 이사 갈 때 칼을 버리고 가면 그 집과의 인연을 끊고 가는 것이고, 부엌에 칼을 아무렇게나 놓으면 가족이 다치거나 돈이 모이지 않는다고 한다. 칼(날)이 날카롭기 때문에 이런 금기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다'는 금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칼로 사과를 먹다가 언니에게 이 금기의 말을 들은 적이 있건만, 지금도 여전히 시인은 사과껍질을 깎던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칼로 사과를 먹으며 누군가에게 칼로 사과를 먹였던 일을 떠올린다.

이 시의 맛을 깊게 하는 건 마지막 연이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오래 되짚어 보게 하는 구절이다. 젊지 않은데도, 여전히 가슴 아플, 많은 일이 줄지 않는 걸 보면 칼로 사과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칼로 주는 사과를 너무 많이 받아 먹었나 보다. 칼로 먹고 칼로 먹였던 게 비단 사과뿐이었겠나 싶다. 뭔가를 준다는 게 이렇게 위태로울 때가 있다. 그것이 자기에게든 타인에게든, 그것이 사랑이든 배려든. 젊음이 아름다운 건, 가슴 아플, 많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은 그러기에 두려운 대상이다. 황인숙 시인은 여전히 젊고 경쾌하다. 계속 칼로 사과를 콕콕 찍어먹을 수 있을 만큼! 부리로 사과를 콕콕 쪼아먹는 새처럼, 아니 그의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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