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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달째 병원을 다니고 있다.

처음 다닐 땐 더 늦기 전에, 더 더워지기 전에, 한 달 정도만 다니면 낫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해서 다니기 시작한 게 오늘로 꼭 석 달 째다. 그렇게 여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있고 앞으로 얼마를 더 다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Y대학에서 일명 프랜차이즈로 운영하고 있는 정형외과. 그나마 내가 병원에 다니게 될 운명이란 걸 알았을까? 올초에 집 앞에 생겨나 주시고 그 거리는 걸어서 5분이다.


처음 두 달은 신나게(?) 다녔던 것 같다. 빨리 나을 욕심에. 그쯤 다녔을 땐 좀 났는 것도 같아 뿌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더운 여름에 뭔가를 열심히 했다는 생각에. 그게 비록 병을 고치는 일이라도 말이다. 아마도 올 가을쯤엔 내가 이 병원을 다녔다는 것에 정마저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아, 내가 어디를 치료받으러 병원에 다니고 있냐고? 김영하 작가가 모 지상파 TV 인터뷰 프로에 나와 각광을 받게 된 이름하여 좌골신경통. 그는 작가가 걸릴 수 있는 직업병 중 하나가 좌골신경통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앉아서 책을 읽던가, 글을 쓰던가 하고 있으니.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약간 서글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진작 작가가 되볼 걸. 물론 나도 최근까지 원고료를 받는 작가이긴 했다. 지금도 뭔가를 끄적이긴 하고.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있는 듯 없는 듯한 작가 말고 김영하 작가 같은 유명 작가 말이다. 김영하 작가가 요즘 핫한 작가가 돼서 그렇지 얼마 전만 해도 (좀 미안한 얘기지만) 내겐 왠지 모르게 만만해 보이는 작가였다. 지금 내가 좌골신경통에 걸린 걸 알면 그는 콧방귀도 안 뀔 거다.


내가 또 좌골신경통만이라면 병원에 그렇게 일찍(?) 다닐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아프다. 아파서 헉헉거린다. 이게 초기 땐 집 밖만 나가면 희한하게 안 아프던가 덜 아프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 집에 있으면 더 아프고 밖에 나가야 안 아프단 말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러고 있는데 통증이 오른쪽 다리에도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고관절에서 엉덩이로 내려가는 쪽으로. 그래서 앉았다 일어나면 그 부분이 우욱신거리며 아프다. 물론 그전에도 그 부분이 뻐근하긴 했다. 그거야 늘 있어왔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없던 통증까지 생겼으니 병원에 다닐 수밖에.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에게서 그 결과를 들으니 뜻밖의 말을 한다. 다른 쪽은 괜찮은 편인데 허리가 안 좋단다. 그래서 어쩌면 수술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내가 평소 허리가 강한 편은 아니지만 수술을 고려할 정도로 아프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의사 말을 믿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때부터 난 지금까지 트라이앵글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지금은 어떠냐고? 죽을 것 같다. 귀찮아서. 


글쎄, 일주일에 세 번을 다니면 더 나았을까? 그런데 세 번은 좀 무리인 것 같다. 물론 초기 땐 의사가 세 번 다니라고 해서 다녔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죽을 것만 같은데 세 번을 다니라면 더 죽지 않을까?


얼마 전엔 그동안 죄꼬리만큼 좌골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 때문인지 다시 아팠다. 그래서 오늘은 의사와 면담이 있는 날이라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했더니 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고, 오히려 내가 이럴 수도 있나요, 저럴 수도 있나요 물으면 그럴 수도 있죠, 저럴 수도 있죠 맞장구만 칠뿐이다. 고작 한다는 말이, 원하면 약 처방전을 써 줄 수도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그리고 물리치료를 더 받아 보란다. 말에 의하면 이쪽 계통의 치료는 오래 받아야 한다니 의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더 받아 볼 생각이지만, 왜 그런 말도 의사가 아닌 제삼자에게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초기 때 이런 병은 치료가 얼마나 가나요 했더니 모른다고 했다. 물론 그게 정답인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개인차라는 게 있으니. 그러나 평균치는 말해 줄 수도 있지 않은가? 그 평균에서 더 받는 사람도 있고 덜 가는 사람도 있겠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면 무조건 오래 받아야 한다고 하던가.  


그렇게 의사와의 면담 후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헛웃음만 나왔다. 한 달의 한 번씩 그런 날은 왜 만들었으며 누가 의사고, 누가 환자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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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9-07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에 오래 다니셨네요 처음에는 병원이 가까워서 좋았을 텐데 그게 길어져서 안 좋을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아질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걷기를 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걷는 것도 힘들다면 조금씩... 앞으로 좋아지시기를 바랍니다


희선

stella.K 2019-09-07 13:43   좋아요 0 | URL
이런 계통은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봄까지는 간간히 걷기 운동도 했는데
여름엔 덥고, 병원 다닌다는 핑계로 거의 안했죠.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불면 또 다시 해 보려구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9-09-07 0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7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09-07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시네요.
그나마 병원이 가까이 있으니 다행이예요. 지방이라면 어디가 아플때 갈만한 병원을 집 가까운데서 찾기가 쉽지 않아요.
벌써 몇달째라니 힘드시겠지만 꾸준히 치료 잘 받으세요. 나으셔야죠.

stella.K 2019-09-07 13:59   좋아요 0 | URL
우연히 TV에서 신장 투석을 하는 환자 얘기를 들었죠.
일주일에 3번 4시간씩 받는다는데
저는 일주일에 두번 30분 정도 받거든요.
아고야, 불평하면 안 되겠구나 싶더군요.
네. 당분간 열심히 잘 받아보려구요. 고맙습니다.^^

2019-09-07 0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9-07 14: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자리보존하는 병도 아닌데 이것 가지고 불평하면 안 되는 건데
인간인지라 불평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오늘 제 글 다시 읽어보니 좀 부끄러워졌습니다.ㅋ

2019-09-07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9-07 14:18   좋아요 0 | URL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어요. 그냥 그만그만 합니다.
제가 저런 글을 써 본 건 정보를 얻기 위함이기도 한데
그 병원이 유명하군요. 참고하겠습니다.
아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허리가 중요하다더군요.
자신도 다리가 아파 치료를 받았는데 의외로
허리가 안 좋으면 다리가 안 좋을 수 있다고 해서
나중에 허리 치료를 같이했더니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의사가 허리를 지목한만큼 저도 얼마 전부터 허리도 같이 받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마태우스 2019-09-07 16:51   좋아요 1 | URL
그럼요 허리는 중요하고요, 그래서 좋은 병원에 다녀야 합니다. 제가 다른 건 동네병원 가라고 하는데요.... 허리는 중요합니다!

syo 2019-09-0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이란 정말이지..... 열라 가기 싫지만 안 갈 수도 없고, 열라 싫지만 믿을 데가 병원 말고 없고.....

stella.K 2019-09-07 15: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
근데 저의 불만은 의사가 너무 환자를 대충 대한다는 겁니다.
좀 열린 마음으로 어디가 불편한지 듣는 자세가 되야하는데
진지한 것 같지만 말을 편하게 못하겠더라구요.
사람의 느낌이란 게 있잖아요. 저 사람이 내 얘기를 잘 듣고 있구나, 아니구나하는.
그리고 환자 보단 고객대하는 듯하고, 좋아지고 있다고 하면 얼굴이 활짝 피고, 심각한 얘기하면 심각한 표정을 하면서 약 처방 얘기나 하고.
내가 묻고 내가 답하고. 그래놓고 진료비는 진료비대로 챙기고.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면담 시간은 고작 3분도 안 걸린답니다.ㅠ

cyrus 2019-09-0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을 먹거나 물리치료를 해도 계속 통증이 일어나는 환자들이 있을 거예요. 그게 유일한 최선책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완쾌되지도 않을 치료를 계속 받는 건 고역이에요. 비용도 아깝고요.

stella.K 2019-09-07 17:5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좀 불안이야. 이달까지 다녀보고 조만간 다른데를 알아 보던가
해야할 것 같은데 어딜 또 알아봐야할지 좀 막막하네.
그래도 오늘은 좀 낫다.ㅠ

페크(pek0501) 2019-09-0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르게 생각하면 스텔라 님이 건강에 신경 쓰고 살게 할 좋은 기회예요.
저도 소화불량 때문에 위 내시경 검사를 하게 되면서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거든요.
그래서 한 시간씩 걷기를 하게 되었고 무용도 배우게 되었어요.
만약 몸에 이상 증세가 없다면 건강에 자신이 있어서 운동을 안 했을 거예요.
그랬다면 걷기와 무용의 즐거움도 몰랐을 것이고 운동을 안 해서 나중에 더 큰 병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이왕이면 좋게 해석하시길...

빨리 회복되길 바랍니다.

stella.K 2019-09-09 19:53   좋아요 0 | URL
그렇긴 하죠. 맞아요.
그런데 하체 전반이 다 안 좋으니까 운동을 해도 좋은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대체로 걷기 운동이라도 하라고 그러는데
괜히 말 듣다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살도 더 안 빠져요.ㅋㅋ
건강도 한번씩 바닥을 칠 때가 있잖아요. 이러다 또 좋아지는 때가 있겠지
편하게 생각하려구요.
그래도 건강한 사람 보면 부럽지 않을 수가 없어요.ㅠ
고맙습니다.^^

2019-09-11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1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9-11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추석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추석명절 보내세요.^^

stella.K 2019-09-11 19:41   좋아요 1 | URL
앗, 저는 늘 서니님 인사를 먼저 받는군요.
제가 먼저해야할텐데...ㅠ
아무튼 고맙습니다.
서니님도 행복한 추석되십시오.^^

북프리쿠키 2019-09-1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지보수 ! 힘내십쇼 ^^

stella.K 2019-09-14 14:23   좋아요 1 | URL
ㅎㅎ 네. 고맙습니다. 쿠키님도요.^^
 

암 치료 후 5년 생존이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는데,

어떤 사람은 5년 동안 투병하다 천국으로 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나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운 없는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분이 더 사셨으면 좋겠지만,

천국에서는 영원한 완치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고인의 가족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함께 조문 간 B집사가 어머니를 여읜 지 이틀 된 맏딸에게 장례식 끝나면 뭐할 거냐고 묻자

그녀는 대답처럼, 이제 집에 돌아가면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 고인을 땅에 묻고 산 사람은 당장 끼니를 생각해야 한다.

그게 삶이고, 살아 있음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고인을 등지고 얼마나 많은 끼니를 지어먹어야

천국에서 고인을 다시 만날까.

그때까지 끼니를 거르지 말고 오늘이라고 하는 날에 충실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또 하루가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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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8-22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분께서 소천하셔서 조문을 다녀오셨군요.
이제는 천국에 가시니, 이곳의 힘든 일들로부터 편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페이퍼를 다시 읽으면서, 매일 매일 하루를 산다는 것을 조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날씨가 많이 더운데,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열대야는 지나갔다고 하지만, 아직 덥습니다.
stella.K님께서도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9-08-23 14:19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정말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을 해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를 너무 의미없이 보내서 그런 건
아닐까, 이왕 빨리 지나가는 세월이라면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부딪혀 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죠.

요즘엔 통 서재에 글을 못 올리고 있습니다.
가끔 올릴만도 한데 이상하게 못 올리고 있어요.
저 아마도 올핸 서재의 달인 못할 것 같습니다.ㅠㅎㅎ
인터넷 연재 종료 이후 계획한 게 있어서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씌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실 와 주셔서 고마워요.
서니님도 평안히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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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가끔 동네가 싸움판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어디서 싸움이 났다하면 삽시간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 동그랗게 둘러싸고 구경하느라 바글댔다. 세상에서 제일 볼만한 것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정말 볼만해서라기보다 왜 불이 났는지, 왜 싸움이 난 건지 그 원인을 알고 싶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건 우리 집과는 전혀 관련 없을 거란 모종의 믿음 같은 것이 배면에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아뿔싸. 우리 엄마가 싸움의 중심축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 날 피아노를 갔다 오니 우리 집 앞에 한 떼의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웅성웅성 떠들고 있었다. 놀라 냉큼 달려가 보니 엄마가 한쪽 눈 밑이 파여서 빨간 살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싸움의 상대는 며칠 전 우리 집에 한 포대의 밤고구마를 팔았던 아줌마였다.

 

그땐 밤고구마를 먹는 건 큰 행운처럼 여겨졌던 때라 그 아줌마 덕에 그걸 먹게 된 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너무 밤이라 잘못하면 목이 미어 먹다가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이러다 내 아이들 잡겠단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반품을 요구했던 모양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주머니대로 안 된다고 했었던 모양인가 보다. 그러다 뭐 때문인지 기습적으로 돌멩이 하나를 들어 엄마한테 던지더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렇게 맞기도 다행이지 잘못하면 실명이 됐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아줌마는 시장판에서 싸움꾼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아니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처음부터 상대를 말 것이지 우리한테 제대로 된 밤고구마 사 먹이겠다고 하다 이런 엄청난 사단을 벌이다니. 그렇더라도 좀 심한 것도 사실이다. 화가 난다고 사람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돌을 던진단 말인가.

 

그렇게 한바탕 했음에도 성이 안 풀렸는지 엄마와 그 아줌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 2차전 했다. 다행인지 그땐 부천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와 계셔서 싸움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역시 오빠가 빠지지 않았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오빠는 그 아줌마의 뒤에 달라 붙어 머리끄덩이를 잡더니 한 뭉텅이의 머리카락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장난기가 역력했다. 오빠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웃어야할지 말아야 분간이 가질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악에 받혀 이것들아, 이년아.”하면서 쓰러졌는데 순간 신발이 벗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역시 할머니가 좀 웃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는 없고 아무튼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 맘도 나도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만 어렸더라도 잔뜩 겁을 먹고 엉엉 울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그렇게 쓰러져서일까? 싸움은 생각 보다 빨리 끝났다. 요즘 같으면 누군가의 빠른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고 시작도하기전에 끝났을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는 혼이 나간 듯 마루 끝에 걸터앉아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후 언젠가 여름에 수영장을 다녀오다가 차멀미가 나서 시구문 시장에서 택시를 내리자마자 어느 맨홀 뚜껑에 한바탕 토를 했다. 정말 내 일생 그렇게 많은 토를 해 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는 급한 대로 물 한 양동이를 얻으려고 단골 야채 가게를 찾았는데 가는 날이 장난이었을까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예의 그 고구마 파는 아줌마가 여전히 누군가의 머리 끄덩이잡고 싸우는 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 놈의 버릇은 어디 안 가는구나 했단다. 글쎄, 지금 같으면 분노조절 장애라고 이해도 할 텐데 그런 이해가 없던 시절엔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할지 그냥 혀만 끌끌 찼다.

                   

엄마는 세월이 흐르고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하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안 그러겠는가. 나름 점잖은 마나님인데.

 

#엘리제를 위하여

그렇다고 내가 피아노를 단 1도 안 좋아했냐면 그렇지는 않다. 1 정도는 좋아했다. 그건 하논, 바이엘 이런 걸 치다가 피아노 명곡집인가 하는 악보집을 칠 때다. 특히 거기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란 곡이 있었는데 난 그것을 빨리 배우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다. 난 그때까지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물론이고, 당시 선생님께 같이 배웠던 나 보다 나이 많은 언니가 둘 있었는데(그들은 친자매지간이었다) 그들은 피아노를 유창하게 쳤을 뿐 아름답게 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나도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유독 <엘리제를 위하여>는 뭔가 낭만적이며 동시에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조바심을 냈던 것도 당연했다. 물론 선생님은 악보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르치셨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아무데나 내키는 대로 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훑었는데 몇 곡은 뛰어넘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는 없었다. 그런 곡은 재미없다고 생각하신 건지 아니면 가르쳐 받자 내가 따라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지.

 

아무튼 그 곡으로 인해 처음으로 피아노에 의욕을 보였으니 선생님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배운지 얼마 안 돼 선생님은 무슨 사정에 의해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나를 선생님의 친구에게 인계했다. 새로운 선생님도 나쁘진 않았지만 워낙에 내가 피아노를 싫어하니 엄마가 어느 날 결단을 한 것 같았다. 더 이상은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기로. 처음엔 그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정말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되다니. 이제 겨우 의욕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난 좀 아쉽긴 했지만 미련 같은 건 없었다.

결국 내가 처음으로 의욕을 보인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엄마를 위한 내 마지막 헌정 곡이 된 셈이다.

 

                                                           <기억 수집가- 유년시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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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를 갔다오니˝ - 피아노 학원에 갔다왔다는 말이죠? 그 시대에 피아노를 배웠다면 유복한 집에서 자란 걸로 생각됩니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저도 칠 줄 압니다. 저는 제 친구들 결혼식에서 웨딩 마치를 쳐 줬어요.(남의 서재에 와서 내 자랑질을 하고 있음.ㅋ)

그런데 피아노를 친 지 너무 오래돼서 지금은 못 칠 거예요. 다행으로 여기는 건 피아노 배울 때 왼쪽 손의 손가락도 같이 치니까 오른쪽의 두뇌가 발달했을 거라는 거죠. 대부분 왼손은 잘 안 쓰잖아요. 타자를 처음 배울 때 피아노를 양손으로 치던 경험이 있어서 쉽게 배웠어요. 뭐든 배워 두면 안 배운 것보다 나은 것 같아요. 요즘 부모들이 애들에게 피아노 가르치는 건 피아니스트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두뇌 발달을 생각해서일 거예요. 양손을 쓰고 발은 페달까지 밟고 눈은 악보까지 보니 두뇌가 얼마나 바쁘겠어요. 그만큼 두뇌는 발달하죠. 머리는 쓸수록 발달하니까요.

저도 애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게 했어요. 오른손을 쓰면 왼쪽 두뇌가 발달하고, 왼손을 쓰면 오른쪽 두뇌가 발달하고. 두뇌 한 쪽은 이성과 논리 영역이고 다른 한쪽은 감성, 상상력 영역으로 알고 있어요. 양손을 쓰면 이성과 감성, 다 발달하겠죠. 저는 지금도 왼손을 많이 쓰려고 걸레질도 왼손으로 할 때 많아요.

어머님 싸움. 재밌습니다. 잊혀지지 않을 경험이겠습니다. 저는 불 구경은 재밌는지 모르겠고 - 안타까운 마음에 - 싸움 구경은 재밌을 것 같습니다.
기억수집가. 연재 제목이 좋습니다.
(쓰다 보니 댓글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ㅋ)



stella.K 2019-04-05 14:42   좋아요 0 | URL
긴글 고맙습니다. 저도 제목은 마음에 듭니다.^^

2019-04-04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5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4-0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모 인간이 쓴 ‘창녕‘이라는 제목의 요상한 잡설이랑 느낌은 비슷한데 삼만 배 정도 더 좋네요

stella.K 2019-04-05 14:22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마워요. 제가 스요님으로부터 칭찬도 듣고.
그런데 좋긴 좋은데 구독하실 의향은 없으시고~ㅎ
전에 스요님이 글을 팔기 위해 꼭 책이란 물질적 요소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해서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독자의 눈은 높은 것 같습니다.
감히 작가가 따라 갈 수 없는 높은 곳에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흐흑~


후애(厚愛) 2019-04-15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한 주 되시고 감기조심하세요.^^

stella.K 2019-04-15 14:15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후애님도요.^^

2019-04-21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2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3년도에 태어나 두 달인가, 석달만에 우리 집에 왔습니다.

다롱이라 이름을 붙여줬지요.

원래 요크셔테리어 종이 성격이 좀 수선맞긴 합니다.

그래서 키우면서 남의 집에 민폐가 될까 봐 신경이 많이 쓰였죠.

게다가 수컷이라 사납기도 하고, 억새기도 해 식구들로부터

매를 벌기도 했습니다.

 

개는 마당에서 키워도 실내에선 안 키우리라 다짐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죽을 때 너무 슬퍼서.

그나마 마당에서 키운 개는 손을 덜타니 설사 죽더라도 그 슬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것을 스스로 허물고 안에서 반려견을 키우고 보낸지  30년도 더 되었나 봅니다.

 

녀석도 처음엔 키울 생각이 없었는데

사촌 고모의 딸이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낫는데 누구 줄 사람이 없어 

마침 우리가 개를 키우던 집이니 잘 키워주겠다 싶어 거의 떠 안겨주다시피

하고 돌아갔죠.

온기 있는 생물을 차마 내칠 수 없어 키웠고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6년 전 오빠가 돌아가고 슬픔을 이기느라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녀석이 적잖은 위로가 되기도 했었죠.

엄마는 신앙과 다롱이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는 말을 자주 흘리곤 했습니다. 

 

그랬던 녀석이 어느 새 노견이 되어 눈에 백내장이 끼고,

귀도 멀어 이내 총기도 예전만 같지 않아 졌습니다.

또 그러더니 작년부턴 왕성했던 식욕도 많이 줄더군요.

예전 같으면 한 번에 먹었을 사료를 두 번에 나눠 먹었으니.

그러던 것이 요며칠 전부터는 정말 눈에 띄게 먹는량이 줄었습니다.

평소 녀석이 좋아하던 간식으로 유혹하려고 해도 이젠 냄새만

맡거나 한 두 번 먹는 척만 할 뿐 모든 게 시큰둥합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죽으려면 곡기부터 끊는다는데

이런 상태로 얼마를 버텨줄런지 모르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10년 전쯤 찍었던 사진입니다.

저때는 그냥 장난 삼아 휴대폰으로 찍은 건데

그러고 보니 저 무렵 한 번 잠시 시들시들 앓은 적이 있었죠.

녀석이 죽으면 어쩌나 겁도 나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털고 일어나 얼마나 다행인지.

 

그로부터 10년. 오래 살았죠.

그때 자칫 녀석을 잃을지도 몰랐는데 10년 동안 무탈하게

살았으니 녀석이 언제 죽는다고 해도 더 여한을 두면 안 되는데

사람이든 짐승이든 사별은 정말 힘든 것 같습니다.  

또 이 녀석을 어떻게 보내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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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9-03-07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나 고양이나 키우면서 비슷한 경험을 여러번 해서.... 의학에서 말하는 환상통(phantom pain)처럼 죽고 난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 외출했다 들어오면 뛰어 나와 반겨줄 것 같고 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남은 기간 동안 자주 만져주고 눈 마주쳐 주세요.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댓글. -_-

stella.K 2019-03-07 15:51   좋아요 0 | URL
앗, 야클님! 오랜만이십니다.
잘 지내시죠?

그러게 말입니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키우던 개를 다 정리하고
왔는데 이게 1, 2년새에 잊히는 게 아니더군요.
3년이 가도 허전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더군요.
거의 적응이 됐다 싶을 때 녀석이 우리 집에 왔으니
그도 운명은 아닌가 했어요. 개 키우던 집은 계속 키울 운명.
그래도 크게 안 아프고 갈 것 같은데
순간 순간 자꾸 마음이 무너지네요.ㅠㅠ

서니데이 2019-03-07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댁 강아지가 나이가 많네요.
전에는 잘 몰랐는데, 요즘은 같이 살면 강아지나 고양이도 그 집 가족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 시간을 같이 보냈으니, 헤어질 때 힘든 것 같고요.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요.
stella.K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9-03-07 16:55   좋아요 1 | URL
이 녀석을 아주 많이 사랑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족이란 있으면 불편하고 없으면 허전하잖아요.
뭐 그런 거죠. 녀석이 언제나 건강하게 있을 게 아니라는 건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닥치면 슬퍼집니다.ㅠ

프레이야 2019-03-07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구 불쌍해라. 노견이군요. 백내장이라니ㅜㅜ 저도 지금 백내장이 와 있어요. 2년 되었네요.
정들면 헤어지기 어려운 건 사람이나 마찬가지이겠지요. 함께하는 동안 정 많이 주시길요.

stella.K 2019-03-07 18:20   좋아요 0 | URL
우리도 그럴 때이긴 하죠?
저도 눈이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
눈이 구백냥이라는데
옛날에 눈 좋았을 때가 그리울 때가 많더군요.
요즘엔 의술이 많이 좋아졌으니 적극적인 치료를 해 보심이...
위로의 말씀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9-03-08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정 드는 일이 무서운거죠. 이별은 꼭 있기 마련이니까요.
떠나려는 개도 보내는 이들도 어느 쪽으로 봐도 다 슬픈 일이네요.
많이 쓰다듬어 주시라고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위로가 될 것 같아서요. 고통이 없이 떠나기를 기도해 주세요. 마음이 짠하네요.

stella.K 2019-03-09 14:34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어제는 생각 보다 많이 먹어서 물론 예전에 비하면
훨씬 적은 양이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더군요.
녀석을 어떻게 하면 잘 먹일까가 저의 집 최대의 고민이 되었어요.
이별을 생각하면 정 들이지 않는 게 좋은데
그게 또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니...ㅠㅠ

cyrus 2019-03-1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를 무지개다리로 보낼 때 느끼는 심정, 저는 그걸 느끼면 한동안 실의에 빠지게 돼요. 그래서 개를 보살필 자신이 없어요. 사개를 끝까지 보살펴주는 분들은 정말 대단해요. 람이든 동물이든 같이 사는 존재라면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건 맞지만, 막상 그런 생각을 하면 슬퍼지네요.

stella.K 2019-03-11 18:0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다.
요며칠은 밥도 잘 먹고 잘 지내는 편 같이라
당장 가지는 않겠구나 안심하고 있는 중이야.
장수견이긴 한데 그래도 한 20년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인데 욕심이겠지?
정말 요며칠은 마음이 되게 무거웠어.ㅠ
 

올해 나를 지배하게 될 단어는.....................................................

 

갱. 년. 기 되시겠습니다. 빰빰밤 빰빠라밤~

 

이거 원. 살다살다 이 단어에 꽂힐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긴 뭐 우리가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어딘가는 조금조금씩 또는 된통 아프면서 살아왔을 겁니다. 그것을 쉽게 잊고 살 수 있는 건 젊다는 이유 때문이었겠죠. 돌이라도 씹어 먹겠다던 그 젊음 때문에 우린 어딘가 조금씩 아파도 금방 금방 잊고 살아왔을 겁니다. 근데 요즘은 어딘가 아프면 암에 걸린 건 아닌가? 올해가 내가 죽을 수인가부터 따지고 앉았습니다. 

 

한 5, 6년 전에 갑자기 어지럼증으로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지인에게 얘기를 했더니 "그거 갱년기에요. 이제부턴 모든 걸 갱년기의 관점에서 이해하세요."

솔직히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렇구나 했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심각해 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김이 빠지던지. 겨우 갱년기 가지고 이 난리법석을...? 그도 그럴 것이, 그땐 아직 갱년기를 논하기엔 좀 이른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뭐 암이나 죽을 수 보단 낫긴 했죠.

 

제가 이걸 쉬 인정 못하는 게 갱년기 증상 중 하나가 요통, 신경통, 관절통 뭐 이런 건데 전 이게 30대 중후 반 무렵에 오기 시작했는데 그 나이에 갱년기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TV에서도 할게 없으면 갱년기 특집을 다루고 있을 때 내 주위의 나와 비슷한 또래 여성들 갱년기를 좀 우습게 보더라구요. "나도 갱년기 되게 무서울 줄 알았지. 그런데 TV는 시청률을 위해 늘 안 좋은 케이스만 다뤄서 그런 거고 그것도 다 견딜만 해요. 그리고 우리 엄마 세대들 다 먹고 사느라 갱년기 모르고 살아왔다고 안 그래요? 그런 것처럼 멋모르고 지나가는 게 갱년기에요." 다 이랬습니다.   

 

그러고 보면 울엄니도 그러긴 하더군요. 난 갱년기의 갱 자도 모르고 살았다고. 옛날에 그런 게 어디있냐며 배부른 여자들의 투정처럼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사실은 맞습니다. 저의 엄미 시절엔 갱년기의 의학적 정의도 제대로 정립되기 전이었을 테니, 아니 적어도 단어만 있었지 이만큼 연구가 활발하진 않았을 테니 기껏해야 스트레스 아니면 나이들어 생기는 병이라고 했겠지요.

 

사실 저의 엄니도 30대 중후반에 요통 땜에 꽤 고생을 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런 것도 유전적 요인 때문일 겁니다. 그러더니 40대엔 두통과 변비로 고생하셨습니다. 또 5, 60대무렵엔 다리가 아프다고 그러고. 그런데 그게 알고 보면 갱년기 증상에 속하는 것들이거든요. 그러면서 난 갱년기 모른다고 딱잡아 떼는 걸 내가 믿다니.  

 

그런데 이런 저도 갱년기에 대해선 아직도 놓치고 간 것이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장 건강은 그럭저럭 쓸만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작년 말부터 이상하게 화장실을 드문드문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정도는 거를 수도 있지만 3일 4일만에 간다는 건 제 인생 역사상 있을 수도 없는 일이거든요. 뭐지...? 싶더군요. 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다니던 교회 청년부 목사님 아드님이 소화기 이상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나도 그런 건가? 아님 암인가? 

 

그래서 뒤져봤더니 갱년기 증상 중 하나가 변비에 더부룩 답답함이 포함이 되어 있더군요.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마침 몇달 전에 엄마가 변비가 있다고 하여 사 둔 약이 있었는데, 사 놓고나니 당신은 거짓말 같이 변비가 사라지고 정작 제가 그 덕을 보게 생겼습니다. 참고로 변비약은 심할 경우 안 먹는 것 보단 먹는 게 낫긴 하지만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유쾌, 상쾌, 통쾌한 건 아닙니다. 뭐든지 자연스러운 게 좋지 말입니다. 사실 저는 갱년기를 은근히 기다린 것도 사실입니다. 월경을 하지 않게 될 테니. 전 또래보다 오래하거든요. 그런데 앞으론 월경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갱년기 증상과 맞바꾸게 생겼습니다.ㅎㅎ 

 

암튼 그러던 중 모든 걸 갱년기의 싯점에서 이해하라고 충고했던 그 지인을 엊그제 모처럼 만났습니다. 상당히 오랜만에 만났는데 대뜸 나더러 얼굴이 좋아졌다길래 갱년기를 사는 사람이 얼굴이 좋아지면 얼마나 좋아은가 하여 그 얘기를 했더니, 역시 한국인은 한 술의 제왕들인 것 같습니다. 그 지인 한 술 더 떠 자기는 일주일 동안 화장실을 안 간 적도 있다더군요.

 

내가 놀라 "아유, 그러고 어떻게 참았어요? 그런 말 안 했잖아요." 그러자

"제가 원래 참는 거엔 도가 터잖아요."

그래. 그건 인정이다.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데 그 지인은 지금까지 만나면서 얼굴 한번 찡그리는 건 못 봤다. 그게 다 참는 거였다.

"원래 병은 자랑하라잖아요. 모든 걸 갱년기의 싯점에서 바라보라면서. 진작 가르쳐줬으면 이렇게까지 걱정 안 했을텐데."

"글쎄요. 내가 왜 그랬을까요? 호호호."

하긴 우리가 다른 할 얘기도 많은데 고작 만나서 똥 싸는 문제로 시간을 버릴 순 없지 않은가? 게다가 말했다시피 내 주위 사람들은 갱년기 별거 아닌 사람들만 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중에 한 사람이 이 갱년기 싯점 지인이고. 

 

그러더니 나중엔 더 충격적인 얘기도 합니다. 한 4, 5년 전에 모로코 선교 여행을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목 주위가 빨갛게 달아 오른 적도 있었다구요. 리얼리...? 그땐 우리가 지금보다 더 자주 만나고 있을 땐데 그런 말 전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이 모든 걸 갱년기의 싯점에서 보라는 말이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그 지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갱년기의 시점에서 바라봐 줘야하는 건 아닌지.

 

의학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병은 자랑하랬다고 그러다 잘못된 이상한 정보를 접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랑은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덜 외롭고 지나친 걱정을 안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여러분이 겪고 있는 갱년기 증상 있으시면 알려주십시오.

 

사실 이제 시작된 변비가 언제 호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평생 갈런지. 그래도 돌이켜 보면 저의 장도 지금까지 줄기차게 잘도 써 먹었단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나만큼이나 나이들었을 텐데 젊을 때를 생각하면 안 되겠죠. 그냥 수고했다고, 너 탈 나도 된다고 기회 한 번 줘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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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4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4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2-14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카추카합니다. 저는 몇 년 전 갱년기 시작인데 심하지 않고 약한 증상으로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10년은 더 그럴 것 같습니다. 더위를 잘 탑니다. 여름엔 더 덥고 겨울엔 안 춥고 그래요. 원래 추위 잘 타는데 갱년기로 체질이 변한 건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친구가 있으면, 쟤가 갱년기라서 그런가 봐, 하고 봐 줍니다. 사춘기처럼 예민할 수 있거든요. 처음엔 불면증과 함께 시작됐는데 불면증은 없어지더군요. 변비라면 야채, 과일 많이 드시고 몸을 많이 움직이세요. 걷기를 추천합니다. 장 활동을 돕는 차원에서요.

다 인간이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걸로... ㅋ

stella.K 2019-02-14 19: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사실 저도 오래 전부터 어딘가가 조금씩 아팠다니깐요.
전 이제 완경이 될 것 같아요. 제 친구들은 벌써 됐거든요.
앞으로 어떤 증세가 나타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잠이 좀 줄었어요. 그러다 없어지는 수도 있군요.
그건 좀 희망적인데요?
고맙습니다. 이 귀한 증세를 공유해 주셔서.^^

서니데이 2019-02-14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애전환기를 맞으셨군요.
갱년기라는 말의 ‘更‘이 다시 라는 의미가 있어서, 2차 사춘기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는 것도요.
얼마전에 보았는데, 중국어로 ‘更好的‘ 이라는 말이 ‘더 좋은‘ better의 의미라고 하더라구요.
stella.K님도 더 좋은 해, 더 좋은 시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저녁이 되니 날씨가 차갑습니다. 저녁 맛있게 드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9-02-14 19:11   좋아요 2 | URL
아, 그렇군요. 그래서일까요?
저의 엄니도 오히려 노인이 되니까 더 좋아지는 것 같더라구요.
기운이 저 보다 더 좋아요. 걸음걸이도 저 보다 빠르고.
좋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2-14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갱년기라...이거 좋아요 눌러요? 말아요? 아....누르지 말까?????ㅋㅋㅋ

stella.K 2019-02-15 13:5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렇지 않아도 저는 좋아요가 저조한 편인데
카알님마저 안 눌러주시면 누가 누른단 말입니까?
잘 하셨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2-15 13:56   좋아요 0 | URL
칭찬 맞죠? 전 이런 칭찬 좋아합니다 좋아요👍👍👍

stella.K 2019-02-15 14:15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럼요.^^

2019-02-14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5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4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5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9-02-15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갱년기를 심하게 했었습니다.
우울증까지 와서 약까지 복용하고요.
거기다 감정 기복이 굉장히 심해지기도 했고요.
근데 아직도 갱년기인 것 같습니다.ㅋㅋ
변비도 여전하고 어지럼증도 있고요.^^;;

stella.K 2019-02-15 14:13   좋아요 0 | URL
후애님 생각 많이했는데...
그런데 후애님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연배가 높으신가 봐요. 과거형으로 쓰시니.
보통 갱년기를 40대 후반에서 50대 중후반으로
잡던데 어떤 의사는 그걸 좀 더 광범위하게
잡더라구요. 그 연령대를 넘어서 주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그렇지 않아도 변비가 추가 됐을 때 좀 우울하더라구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선배들은 조언하더만요.ㅎ

2019-02-15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5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9-02-15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게 된지 한달도 안되어서 약 먹고 쉬고 있어요

stella.K 2019-02-15 14:13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잘 치료되길 바랍니다.^^

하늘바람 2019-02-15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스테라님도 좋아지시기 바래요

psyche 2019-02-16 0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들은 보면 불면증을 제일 괴로워하더라고요. 잠을 못자는게 사람을ㄴ 미치게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정말 잠이라면 누구에게도 듸지지 않는데 잠을 못자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저는 폐경의 증상이 시작된건 한참 전인데 갱년기 증상이 거의 없어서 나는 그냥 넘어가나 했는데 불면증이 슬슬 시작되더니 얼마전부터는 안면홍조도 시작된 거 같네요. 호르몬이 변하는데 아무 증상이 없을 수가 없겠죠. 증상의 강약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잘 이겨냅시다!

stella.K 2019-02-16 14:5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저의 어머니도 오랫동안 불면증이셨죠.
아마 갱년기 때부터 최근까지.
오히려 연로해진 지금이 잠이 조금 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노인분들 잠 없다고 하시잖아요. 그러고 보면
계속 나쁘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 그러다가도 좋아지기도 하고.
뭐가 안 좋아지면 당장 어떻게 될까봐 걱정하고
전에 안 그랬는데 왜 그럴까 하는 마음이 더 안 좋은 영향을
낳는 것 같습니다.
느긋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프시케님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