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이책을 읽고 뜻이 있어서(읭?) 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미 밝힌 바도 있지만 블로그 활동을 하고 리뷰를 비롯해 이런 저런 낙서 같은 잡글을 많이 쓰다보니 굳이 일기를 따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이책을 읽고부터는 꼬박꼬박 읽기를 쓰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일기 쓰기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내가 오래동안 일기를 쓰지 않은 이유중 하나는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때 누구더러 내 일기장을 치워 달라고 부탁을 하겠는가? 나의 흔적을 가급적 남기지 않거나,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 적게 남겨야 할 것 같고 그렇다면 일기장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볼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진짜 사춘기 때부터 모아 온 일기장이 못해도 내 허리춤 정도까지 올라와 있는데 거의 보지 않고 옷장 바닥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평생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걸 볼 일이 생겼다. 사실 난 지금 자의반, 타의반해서 뭔가를 쓰고 있는 중인데(이거 정말 지겹게 진도가 안 나간다.ㅠ) 갑자기 어제 글이 막힌 것이다. 온전히 기억에 의지해서 쓰려니 글이 자꾸만 꼬이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몇번의 고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마다 일기를 꺼내 볼까 하다가 그냥 넘기곤 했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잘못 기억하는 나도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왠지 그러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 부분은 뭔가 정확한 근거가 필요한듯 해서 결국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보았다. 무려 19년 전. 그러니까 밀레니엄 한 해 전에 썼던 일기장이다.

 

그런데 진짜 낯설다. 내가 정말 이랬었단 말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나는 이 무렵 <발자크 평전>을 읽고 있었나, 본데 나름 꽤 흥미롭게 읽고 있었나 보다. 

 

"츠바이크의 발자크에 대한 애정이 그가 쓴 평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츠바이크)는 참 섬세한 사람이겠구나란 생각이든다. 그리고 발자크를 읽으면, 작가는 모름지기 이래야하지 않나란 생각과. 누가 과연 사람들로부터 역사로부터 사랑을 받을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난 이렇게 천천히 읽어낼 수 있는 책을 얼마나 좋아하게 됐는지?

벌써 이 책을 손에 쥔지가 3주가 지나간다.

아직 반도 못 읽었는데..."           

                                                     -10월 13일-

 

"...... <발자크 평전>을 너무 오래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까지 꼭 한 달이 됐는데, 이제 겨우 반 조금 더 읽었다. 빨리 읽어야겠다.

                                                    -10월 30일-

부지런히 읽으면 이번 주 안에 <발자크 평전>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천천히 읽는 것도 좋지만 게으름 때문이라면 재고해 볼 일이다. 너무 오래 읽으면 오히려 그 흐름을 자칫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이 그랬다.

                                                   -11월 10일-

 

푸하하~ 난 과연 내가 내 책에 무슨 짓을했던 걸까? 지금 하나 기억하는 건 난 그때 <츠바이크 평전>을 무지 지루하게 읽었다는 거다. 우연히 그가 쓴 단편소설 <체스>가 좋아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몇 권인가의 책을 읽었고, 그중 하나가 이 책이다. 너무 꼼꼼히 써서 지루했던 책.

 

일기장을 아직 다 읽지는 않았만 그때 나는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 쓰면서 살았던 것 같다. 누군가는 그랬지. 사람과 그림은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것이 좋다고.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교회라고 해서 다니기 시작했데 그 안을 들어가 보니 부조리한 것들 뿐이고, 온통 분노만이 가득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한 목사에 의해 교회 조직에서 퇴출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니까. 분노와 회의로 점철된 일기가 이 한 권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뎠는지 모르겠다.

 

그때를 견딜 수 있었던 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던 것 같다. 분노가 글을 쓰게 할 거라는 나의 사부의 말은 결코 빚나가지 않았다. 물론 난 교회에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건 그저 내게 주어진 일 뿐이었고, 내가 교회에서 겪고 보았던 모든 부조리들을 글로 쓰겠다고 간간히 그 착상과 구성을 적어 두기도 했다. 하지만 난 지금 그 작품 중 하나도 글로 쓰지 못했다. 쓰다가 포기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예배와 성경 공부 외엔 교회에서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그건 곧 내가 분노할 일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글쎄... 내가 지금 또 어딘가에 소속이 되서 봉사를 하게 된다면 예전 같은 분노가 되살아날까? 하지만 난 이제 분노로 나 자신을 소모시키지 않고 싶다는 것이다. 누구는 분노하라고 했지만 난 할 수만 있으면 분노하고 싶지 않고, 그것을 할 상황이라면 외면하고 피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 시절 미처 다 해결하지 못한 분노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하고 싶고, 해결하고 싶다. 그래서 난 그것을 위해 이 일기장을 펼친 것이기도 하고.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하겠는가.

 

요즘 난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란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정말 다 읽기가 아까울 정도로 좋은 책이다. 처음엔 무슨 젊은 아빠의 육아 일기 같은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모 방송국 기자의 에세이다. 처음엔 뭐 젊은 사람이 글을 이렇게 잘 써? 시샘이 났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 밖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기는 또 얼마만인가? 새삼 헤아려보게도 된다.

 

 

 

읽다보면 거의 말미에 오은 시인의 '분더킴머'란 시를 만날 수 있다. 잠시 소개를 해 보면,

 

      빛나가면서 빗나갈 때

     뒤쳐지면서 뒤쳐질 때

      (...) 

     눈을 감아도 내가 보인다

                      너희들이 빤히 보인다

                       (....)

                      내 앞에 도래하는 백지상태의 내일 앞에서

 

참고로 분더킴머는 독일어로 '놀라운 것들의 방'이라는 뜻이란다. 즉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려고 자신들의 방에 물건을 수집했는데, 그런 방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오은 시인은 1984년 생으로 지금 한창 치열한 30대를 살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녀가 실제로 지금 치열한 삶을 사는 지 난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시가 실린 시집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그것을 뒷바침 해 주는 것도 같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입니다. 이걸 오은 식으로 읽어볼까요. 분위기를 분(憤) 위기(危機)로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읽어 본다면, 위기를 괴로워하다는 뜻이 되겠죠. 위기를 괴로워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청춘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서른 즈음의 우리는 위기를 괴로워하기를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로 읽으면 어떨까요.  (253~254p)

 

그래. 밀레니엄 한 해 전의 나도 분(憤)위기(危機)를 사랑했던 30대였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그때를 참 잘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고, 위의 글이 선물 같이 읽혀지기도 한다.      

 

결국 난 글을 쓰려면 이 일기장을 토대로 내 빈약한 기억력을 더듬어 쓸 수 밖에 없다. 이 일기장엔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타계 소식도 씌여있고, 고 신해철에 관한 기사를 읽고 쓴 글도 보인다. 내가 그렇게 꼼꼼한 사람이 못 되는데 이런 것도 썼나 신기방기 할뿐이다.  

 

이 일기장이 그나마 내 빈약한 기억력에 힘을 불어 넣어 준다. 다시 써야겠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8-05-0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앞으로도 일기장에 쓰시는 건가요, 아니면 서재에 쓰셔서 저도 읽어볼 수 있게 되는 건가요? ㅎㅎㅎㅎㅎ

아참, 그리고 오은 시인은 남자입니다^-^ 웹툰 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님이랑 비슷하게 생기신ㅎㅎㅎ

stella.K 2018-05-09 14:56   좋아요 0 | URL
스요님 100점!
잘 하셨습니다. 이래야 소통하는 맛이나죠.ㅎㅎㅎㅎ

와, 근데 오은이 남자였어요? 전 여잔 줄 알았어요.
안 알려주셨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ㅋ
이 사람이 그렇게 똑똑하다면서요?
이 책 보고 알았습니다.^^

cyrus 2018-05-0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뷰도 일기라고 생각하면서 써요. 책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감정을 기록하면 머릿속에 남는 게 있거든요. 물론 완전히 기억하진 못해요. ^^;;

stella.K 2018-05-09 14:58   좋아요 0 | URL
그래. 좋아. 그런데 나중에 꼭 한 번 다시 봐봐.
또 다른 너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프레이야 2018-05-08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담아갑니다.
지난 일기장을 읽어보는 기분, 알지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나 봅니다.^^

stella.K 2018-05-09 15:04   좋아요 0 | URL
띠지에 젊은 남자 사진이 있어서
꼭 직장팜의 유아분투기, 뭐 그런 건 줄 알았어요.
근데 진짜 글 잘 써요. 부럽더라구요.ㅠ

맞아요. 우선 그때의 글씨체와 지금의 글씨체가
변한 게 없어서 놀랐고, 그때 고민하던 걸
지금은 고민하지 않지만 해결이 되서 고민을 안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더라구요.
처음엔 19년 전 나를 보는 것이 놀랍긴 하지만 이내 익숙하더라구요.
역시 나는 나 같습니다.ㅎㅎ

2018-05-08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5-09 15:06   좋아요 1 | URL
전 가끔 궁금했습니다. 일기는 잘 쓰고 계시는지...?
잘 쓰고 계시죠?ㅎ

그렇게 짜내는데 그렇게 잘 쓰신단 말씀입니까? 췟!ㅋㅋ

hnine 2018-05-0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강현 기자는 JTBC 정치부회의라는 뉴스에서 반장을 맡고 있어요. 저는 이분이 팟캐스트 진행할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종료되어서 아쉽지요) 소설도 낸 경력이 있고, 글솜씨가 없을리 없는 경력을 이미 갖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stella.K 2018-05-09 15:09   좋아요 0 | URL
제가 뉴스는 KBS만 보는지라 종편은 잘 몰라요.
그럴 줄 알았으면 정말 볼 걸 그랬습니다.
이 사람 정말 맘에 들어요.
그렇지 않아도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이 책 h님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페크(pek0501) 2018-05-08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내가 이런 글을 썼네, 하면서 저도 제 일기장을 보고 놀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낯설지요.
흔한 말로,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가 되겠습니다.
스텔라 님은 일기를 많이 보관해 놓으셨군요. 잘하신 것 같습니다.

stella.K 2018-05-09 15:16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잘 못 버리는 스타일이라 그래요.
다시 볼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기억이란 게 참 빈약하더군요.
그러면서 기억력 좋다고 자랑하면 안 되겠어요.ㅎㅎ
하지만 기억과 추억 또는 회상은 다른 것이고
설혹 다르게 기억하더라도 그것도 나라고 생각해요.
언니도 일기 많이 쓰셨죠?^^

blanca 2018-05-09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기장에 대한 소회가 스텔라님과 같아 안쓴 지 꽤 되었어요. 그런데 좀 아쉽기도 하고... 아직은 일기에 대한 제 마음이 잘 정리가 안 된 것 같아요.

stella.K 2018-05-09 15:19   좋아요 0 | URL
ㅎㅎ 언제고 다시 쓰세요.
일기는 원래 쓰고 있는 동안은 잘 정리 안 되는 거예요.
그냥 어느 날 문득 잊고 있었던 나를 꺼내 보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조심하세요. 그런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랄지도 몰라요.ㅎㅎ
 

미투 운동이 불일듯 일어나는 과정에서

한 탤런트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말이 많은 것 같다.
누구는 마녀사냥이라고 했다가 삭제했고,

누구는 미투 운동이 음해 세력이 있다고도 하고.
미투 운동을 오히려 지지할 것 같은 사람들이 그러고 나오니까
좀 실망이다.

또 누구는 죽은 자가 비겁하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비난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섣부른 동정도 하고 싶지 않다.
지금 가장 상처 받았을 사람은 유가족들, 특별히 그의 아내와 딸일 것이다.
그들도 여자다.  

 

앞으로 이 보다 더한 일이 생기더라도 미투 운동은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받던)가 죽는 건 이번이 처음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피해를 입고 죽어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처럼 기도가 간절해지는 때도 없는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03-11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12 18:18   좋아요 1 | URL
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한참 뒷걸음질 치게 될겁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남성주의 벽이 두텁다는 걸
실감하게 될 것이고.
선진국일수록 여성이 대우 받잖아요.
상처 받은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ㅉ
 

 

http://v.media.daum.net/v/20180225050302701

 

 

미투 운동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는데 벌써부터 이 문제가 붉어져 나왔다. 이를테면 고은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할 거냐 말 거냐에 관한 논란이다. 삭제를 찬성하는 쪽이야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도 같고, 반대하는 입장에선 작품과 그 사람은 따로 봐야하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다. 나야 이 갑논을박의 현장에 있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있었더라도 뒷목을 몇 번 잡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 보기에 좀 고루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작가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하나의 제의 또는 제사와도 같은 거 아닐까? 유명 작가의 글쓰기 강좌나 작가의 글 쓰기에 관한 고백이 담긴 책을 보면 하나 같이 자기 글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 앞에 자신의 명예와 인격을 걸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작가로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글을 따로 볼 수가 있을까?

 

물론 그런 말은 한다. 그렇게 따로 보아야 그 사람의 문학적으로 이루어 놓은 업적을 보존할 수 있다고. 근데 그거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상누각 같은 거 아닌가?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자신의 글과 명예를 실추시켰다. 그것을 일반인은 그렇게 보면 안 된다고 하면 그게 설득이 된다고 보는가? 예를들어 아무리 좋아했던 연예인도 그가 성범죄거나 도박중독자라면 그때부터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 법이다. 문화계 인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는 거다. 

 

무엇보다 이런 논의 자체를 작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이다. 그런 논의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거명될 때마다 그는 어디선가 숨어서 그래도 자신이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다고 자위하고 있을지, 어떤 식으로든 지신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이 괴로운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을 토론의 당사자들에게 맡긴다고 체념할지 그 마음을 알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를 줬다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만약에 반대로 그 작가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고 해도 과연 이런 갑론을박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도 여자지만 그것에 쉽게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 새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성주의적 사회인지를 또 한 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과 관련해서 나도 얼마 전 뉴스 인터뷰 영상을 봤는데, 교과서에서 빼자는 쪽은 학부모쪽이었고, 그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니냐고 했던 건 어느 대학 교수였다. 어떤 쪽에 경중을 두게 되는지는 시청자의 판단의 몫이긴 하지만 적어도 학부모를 대표한 쪽은 여자였고, 삭제를 반대하는 쪽은 남자였다. 이걸 반드시 남녀가 사안을 받아들이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남녀의 차이를 떠나 도덕과 양심의 눈, 인간에 관한 예의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미투 운동이 다른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왜 문화계만 벌써부터 면죄부 내지는 예외 조항을 두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같거나 비슷한 분야에서의 성폭력 가해자들도 어부지리로 묻어 가는 건 아닌가? 원래 이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욕망의 금기를 깨고, 인간의 오욕칠정에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쪽은 남자가 아니었나? 그것에 여자를 동조하게 만든 것도 남자고. 그 결과 역학적인 측면에서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는 쪽은 전혀 모르는 남자가 아닌 잘 알고 지내는 남자에게서 나온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누가 해결을 해야 옳은 것인가?

 

미투 운동을 가볍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거야 말로 혁명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불씨를 쏘아 올린 것에 지나지 않다. 이 혁명이 제대로 성공을 할지 안 할지는 지금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어떤 여자는 그런 일을 당해 보지 않아 미투 운동을 마냥 속시원한 마음으로 보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여자들은 크던 작던 그런 기억 하나쯤은 묻고 산다. 나도 매일 미투 운동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알게 모르게 당해왔던 언짢은 기억들이 건드려지고 있어서 괴롭다. 물론 건드려진 건 이번 미투 운동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오랜 세월을 두고 수시로 건드려져 왔고 그때마다 애써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왔을 뿐이다.  

 

글쎄, 이번 고은 사태를 어떻게 봐야할런지 모르겠다. 같은 미투는 아니지만 우린 아직 미당이나 춘원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당대 출중한 지식인이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그들이 일제에 부역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평론가를 제외하고 그들의 문학을 애써 부인한다. 그게 옳은 태도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 사람의 하는 일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다된 죽에 코 빠트린다고 평생 그렇게 훌륭한 글을 쓰고도 사람의 됨됨이 하나가 올바르지 않아 그것을 망치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벌써 2년 정도 된 일이다. 누구라고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내 책이 나오고 한 알라디너를 오프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알라딘 초기 땐 몇 명의 알라디너를 오프에서 만나긴 했지만 이후로는 누구도 만난 적은 없다. 그런데 사실 이 알라디더 몇 년을 두고 한 번씩 나에게 만나자고 했었다. 난 그것을 미루고 미루다 내 책을 계기로 만난 것이다. 특별한 기대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책을 냈고, 그 사람은 읽었으니 작가와 독자의 만남. 또는 같은 알라딘 서재를 쓴다는 동료 의식 뭐 그런 거 외에 무엇이 더 있겠는가?

 

하지만 너무 기대가 없다면 그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 사람 글도 잘 쓰고, 무엇보다 여성을 대변하는 한 인디 잡지에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인지도 모른다는 고백을 하기도 하고 또 그런만큼 가끔씩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글도 올려 여성에 대해 뭔가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그 첫 만남에서 깨졌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고, 그는 술을 잘 마셨다. 아무리 술 기운이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꼭 그럴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여관 가자는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순간 좀 움찔했지만 이 사람은 술이 취한 그야말로 심신미약 상태니 내가 그것에 예민할 필요가 있나 해서 못 들은 척 했다. 하지만 이것도 명백히 성희롱 아닌가?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희롱을 당하고도 그 즉시 반응하지 못한다.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를뿐만 아니라 예민하게 굴어 좋을 건 없으니 거의 대부분은 무시하고 못 들은 척 한다. 하지만 그것이 한 번 쌓이고, 두 번 쌓이면 이것은 남자들로 하여금 그래도 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아무튼 그후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것도 묻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머피의 법칙이었을까? 안 좋은 언쟁들이 몇번인가 겹쳤고, 그러다가도 내가 혹시 오해하고 예민했나 싶어 사과도 하고 가급적 관계를 회복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온라인에서나 전처럼 잘 지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도 그 머피의 마법은 풀리지 않았다. 한 번은 댓글로 대판 싸웠는데 비록 온라인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몇 년 동안 알아왔던 사람이 맞나 싶은 게 싸우는 태도나 수준이 형편없고 야비하기까지 했다. 또 나중엔 화가 단단히 났는지 잔뜩 독이 올라 반말로 일관했다. 실제로 만나서 싸웠다면 내가 한 대 쳐 맞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언어가 공격적이었다. 순간 그때 생각이 난 건 그 사람이 그 인디 여성잡지에 썼다는 잠재적 가해자의 고백이었다. 난 그게 그의 참회록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쓴 의미는 뭐였을까? 

 

아무리 화가나도 그렇다. 반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오프에서 처음 만나던 날 그는 나에게 그랬다. 자신은 상대가 어린 고등학생이어도 절대로 말을 내리지 않는다고. 그게 자랑거리 같지는 않지만 뭐 그만큼 자신이 예의 바르고, 사람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처음 만나는 고등학생에게 그 정도는 누구든지 한다. 중요한 건 화가 났을 때도 자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화가나 반말로 일관했다는 건 그게 자신의 싸움의 법칙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볼 때 헛점을 보여 이미 지는 싸움을 한다는 반증이다. 역시, 그는 전에 자신은 싸움을 하도 많이 해 봐서 어떻게 싸우는지를 안다고 한적이 있다. 자신을 온전히 지키지도 못하면서 누구와 싸워 이기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여태까지 제대로 싸워보기는 한 건가? 다른 말도 많지만 더 이상의 언급은 회피하겠다.

 

요는 사람 마음은 똑같다는 것이다. 자신이 쓴 글이 자신의 삶과 일치하지 않으면 고은 아니야 고은 할아버지가 글을 써도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나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글은 읽지 않는다. 옛날엔 참 많이 즐겨 읽었는데. 그가 무슨 글을 써도 하나도 진심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간간히 글을 올리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솔직히 난 멘탈이 약해서 그런지 작년 내내 이 문제로 혼자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은 그나마 어려운 시간이 많이 지났고, 더구나 미투 운동을 보면서 그와의 일들을 좀 더 많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날까지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아무튼 고은 사태가 어떻게 귀결이나든 대중의 반응은 싸늘할 것이다.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작가가 되려는 자 글의 무게를 견디라고.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02-2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01 19:04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왔나 싶기도 하고.
마치 그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하고
전혀 죄책감도 없이 살아왔더는 게 참...ㅠ

syo 2018-02-2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여기나 저기나.....
알라딘에도 미투 바람이 한 번 몰아쳐야 하는 건 아닐까요.

stella.K 2018-03-01 13:30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점이 좀...
아니면 뭐 저만 그러는 수도 있구요.ㅠ

2018-02-28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3-01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의 글이 무게 있게 다가오네요.

저도 요즘 미투 운동에 대한 소식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어요.
고은 시인은 소문으로 들었긴 한데 막상 사실이 밝혀지고 나니 놀랍더군요. 어떻게 글은 훌륭한데 사람은 훌륭하지 않을 수 있는 건지 헷갈리더군요.

stella.K 2018-03-01 18:24   좋아요 0 | URL
사람은 겉으로 모른다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고.
사람 참 어려워요.ㅠ
 

며칠 전, 후배와 작은 언쟁이 있었다고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그때 우리는 교보문고를 나와 가까운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고 나오는데도 그 친구는 아직도 뭐가 안 풀렸는지 뜬금없이 자신이 무슨 책을 보니 사람이 화가 나는 건 상대가 화를 나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화를 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란다.   

 

왜 그 말을 하는지에 대해선 역시 구구하게 설명하지는 않겠다. 적어도 그 친구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나에게 투사하고 있었고, 선배인 나에게 그런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친구와의 만남이 썩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약속 시간에 늦었고, 그전부터 나의 뭐 하나 꼬투리 잡아 나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그 친구가 읽었다던 책이 뭔지 모르겠다. 난 그때 누가 쓴 무슨 책이냐고 물어봤어야 했던 건데 그 보단 그 친구의 말본새가 하도 어이가 없어 더 이상 듣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니까. 

 

사실 그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그러니까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화가 나도록 자극한 사람에겐 책임이 없고 화를 낸 사람만이 문제가 있다는 건데, 도대체 그렇게 말한 그 이름모를 책의 이름모를 원저자는 어쩌다 그런 말을 했을까? 뭔가의 맥락이 있었을 것도 같은데 만일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면 난 그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알아 그 위험한 발언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인간은 그렇게 선택이 용이한 존재가 아니다. 특히 오늘 날의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은. 물론 나도 그 얘기를 들어보기는 했다. '인간은 정말 그렇게 생겨 먹어서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이미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말. 이것은 그 옛날 빅터 프랭클이 저 아우슈비츠의 죽음의 수용소 나와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한 것 같긴 하다. 그 친구가 설마 이 위대한 실존주의 정신의학자의 이론이 그 순간 생각나서 그런 건지는 할 길은 없다. 물론 빅터 프랑클의 로고 테라피는 그후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확장시켜 왔을 테니 그중 한 사람이 얻어 듣고 자기식의 해석을 그 친구가 나에게 써 먹었는지도 모르지. 

 

아, 그런데 이건 정말 함부로 써 먹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 말이 어디까지 확대 해석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요즘 미투 운동이 한창이다. 그나마 가해자들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런 무책임한 사이코가 없으라는 법 없다 나는 그렇게 행동한 게 잘못인 줄 몰랐다. 난 병맥히 친근감의 표시를 했을 뿐이다. 상대가 모멸감을 느꼈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그러기로 선택했을 뿐이지 내 책임은 아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못 됐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된다는 말인가?

 

물론 오해하기 좋아하고 유난히 성격 나쁜 사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덮어 씌우려는 음모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과연 그럴 목적이라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것 아닌가. 나의 옳음을 증명하고 상대의 입을 닫게 만드려는 음모를 획책하기 위해 하는 공부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DNA부터가 못 먹고 못 배운 것을 한으로 여기는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런 건 이해할 수 있다. 워낙에 못 먹고 못 살았으니까. 그러나 이제 겨우 잘 살기 시작한 우리 대는 좀 배우는 의미가 남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너와 나의 더 넓고 깊은 소통을 위해, 공동체를 위하고 대변하기 위해 우리의 지식을 쓰여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그 친구는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나왔다. 나는 그 친구에 비하면 나이만 많다는 것뿐이지 하나 잘난 것이 없다. 그런 나를 상대로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했다는 게 영 석연치가 않다. 차라리 그때 내 앞에서 최대한 말을 아꼈다면 오히려 내가 잘못했나 반성했을지도 모른다. 말하기는 더디하고 듣기는 속히 하라고 했는데 나도 그 친구에게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긴 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02-26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6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6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2-27 13:41   좋아요 0 | URL
넵. 고맙습니다.^^
 

어제 오랜만에 강남역 교보문고에 갔다.

사실 어제 아는 후배가 혼자 사는지라 생각나서 명절에 먹었던 빈대떡을 전달해주려고 저녁무렵 만났다. 그런데 밥을 먹는데 작은 언쟁이 있었다.

 

사실 나도 좋은 성격마는 아닐테지만, 그 후배도 직업이 교사인데다 음악 전공이라 조금은 피곤한 성격이다. 그동안은 안 부딪히려고 둥글둥글 농담 따먹기나 하며 잘도 지내왔다. 그러다 어제 잠시 미스테이크가 있었던 것.

 

구구하게 설명은 않겠지만 걔는 이 타임쯤 뭔가를 풀고 가자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좀 넘어 갔으면 좋겠는거고. 그 친구는 워낙에 자아가 강하고 한마디로 오지랖이 넓어 어느 순간 보면 내가 분명 선배임에도 꼭 학생 대하듯 한다. 그래도 그걸 타내지 않고 대충 뭉개며 갔던 건데. 한마디로 말하면 그 친구의 분석적 사고와 나의 전지적 사고가 충돌했다고나 할까?ㅋ

 

암튼 그런 일이 없었으면 바로 밥 먹고 차를 마시러 갔을텐데 뭔가의 하프타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마침 밥을 먹었던 곳이 교보문고와 가까운 곳이라 그곳에서 잠시 기분을 풀고 가자는 것이다. 뭐 그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아, 정말 이곳을 얼마만에 와 보는지 모르겠다. 책을 산다면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거나 중고샵을 이용할뿐 이런 오프라인 서점을 나온다는 건 거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 책 저 책을 만져보고 있는데 마침 한 서가에서 <알쓸신잡 2>에 나왔던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란 책이 눈에 띄었다. 물론 오래 전부터 한 번쯤 읽고 싶기는 하나 역시 난 살 생각은 없었다.

 

난 아무 생각없이 이 책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내 귓가에 속삭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 책 재미있어요." 짬짝 놀라 누군가 돌아보려고 했는데 어느 인상 좋은 젊은 여자가 씩웃으며 나를 스쳐지나 간다. 순간 그전까지 침체된 기분이 뭔가 구원 받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나도 좀 놀랐다. 모르는 여자의 속삭이는 그 한마디가 이렇게 기분을 좋게 만드는 줄은.

 

그렇다면 나는 그런 공중이 이용하는 서점에서 그 여자처럼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책을 낯선 사람이 보고 있을 때 다가가 속삭일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스토커라고 오해나 받겠지.하지만 그 사람이 어제의 나처럼 그런 기분이었다면 또 나 같은 기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 그 책 좋은 책이라고 한마디 하고 지나갔다고 해서 놀라거나 화낼 필요는 없을 것이고, 내가 좀 그랬다고 해서 상대 역시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 여자 인상이 너무 좋아서 한 번쯤 더 보고 싶기는 했지만 워낙에 넓고 사람이 많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인상 좋은 여자가 지나가며 재밌다고 했으니 한 권쯤 살만도 했을 텐데 결국 끝까지 사지 않았다. 나도 독하다 싶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18-02-23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어요.
저도 재미나게 읽었어요^^

저는 도서관에서 이런일을 종종 겪었어요.좀 작은 도서관이었기도 했습니다만 어떤 책을 빌리는데 사서분이나 책을 재미나게 읽은 사람인 것 같은 사람은 친분이 없어도 서슴없이 ‘이 책 재미있어요‘ 조언해 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읽어 보면 반은 맞고,반은 틀리긴 했습니다만...조언해 준 사람이 재밌어 한 부분이 어디였을까?찾아보는게 좀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stella.K 2018-02-24 10:55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 보면 그 여자분도 사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건 맞는 것 같아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ㅋ
어쨌든 그분 인상이 너무 좋아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 그런 계속되는 일상에서 그렇게 누군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툭 한 번 건드려주고 가면 그것도 조그만 활력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더라구요.^^

syo 2018-02-2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교사님들이 보면 오해하기 쉬운 문장이 들어있네요 ㅎㅎ 오래 만나고 있는 제 여친도 교사인데다 음악전공이지만, 조금도 피곤한 성격이 아니랍니다^-^

아무리 인상 좋고 성격 좋은 사람에다, 정말로 좋은 책이라고 해도, 아무 사람 귀에다 대고 ˝이 책 재미있어요˝ 이러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아요. stella.K 님이 만만치 않게 인상이 좋은 분이셔서 그럴 수 있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그나저나 유현준 선생님 의문의 1패로군요 ㅋㅋㅋ

stella.K 2018-02-24 11:41   좋아요 0 | URL
ㅎㅎ오랜만이어요.
그럴 수도 있지요. 오해할 수도.
일종의 그 친구만의 캐릭터 일수도 있는데
음악이 수학적 사고를 요한다고 하잖아요.
수학이 또한 분석적 사고를 요하고.
그 친구가 그런 분석을 잘하죠. 본인이 그렇게 얘기를 했고.
그런 분석을 잘하는 사람이 수용력이 약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땐 제가 그 친구를 대하기가 힘들 때가 있어요.
게다가 항상 나한테는 힘들어 어째 하면서 늘 파이팅이 넘치거든요.
syo님이 여자 친구분과 맞는 건 아마도 코드가 맞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syo님 전에 얼핏 들으니까 이과 계통 전공하셨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음악이 감성적이기도 하지만 하는 입장에선 이성적 사고를 요하니까
항상 글을 감성과 이성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쓰는
님과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ㅋ

제가 가끔 그런 식의 스토킹을 어렸을 때부터 당하긴 했어요.
귀엽다고 넋놓고 있다 볼을 꼬집히거나 커서도 어떤 후배 녀석은 갑자기
불에 뽀뽀를 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거 요즘엔 다 성추행일 수도
있다는 거 아시죠?ㅋㅋ

syo님은 유현준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군요.
전 그냥 괜찮던데...^^

syo 2018-02-24 11:42   좋아요 0 | URL
제 글을 보고 계신 줄도 몰랐는데, 좋은 평까지.
사람 몸둘 바 모르게 왜 그러셨어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저도 유현준 선생님 참 좋아합니다 ㅎㅎㅎㅎ
1패는 stella.K님이 안겨주신 거죠. 결국 안사셨으니까요 ㅋㅋㅋㅋ


stella.K 2018-02-24 12:0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 건가요? 그럼 완전 잘못 알고 있었네요.
제가 이렇습니다.ㅠ
옛날 같으면 샀을텐데 알라딘 적립금이 있으니
현금 쓰기가 싫었던 거죠.ㅋㅋ

저야말로 미안하네요.
가끔 봤으면 봤다고 좋아요도 슬쩍 누르고 가고 그럴 걸.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syo님 제가 글을 올려도
안 읽으시는 것 같아 그만...ㅋ
앞으로 종종 흔적 남길게요.
syo님도 불초소생을 위해 가끔 좋아요 한방을...!^^

서니데이 2018-02-24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분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인상을 남기셨나봅니다.
어쩌면 그 책을 보고 계셔서 반가운 마음이 드셨을지도요.
stella.K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8-02-24 19:12   좋아요 1 | URL
아마도 후자였을 것 같아요.
근데 어느 틈에 저를 봤을까요?
전 그런 줄도 몰랐는데. 후후

서니님도 즐건 주말!!!^^

북프리쿠키 2018-02-2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면 뿌듯하죠ㅎ
저도 그 여자분처럼 한번씩 그런 충동 느낀답니다.~주말 잘 보내세요!

stella.K 2018-02-24 20:0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사실은 저도 그래요.
제가 보기 보단 소심한 성격이라 차마 말을 못하는 거지.ㅋㅋ

쿠키님도 즐건 주말이요!^^

페크(pek0501) 2018-03-01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알라딘에서 자주 봅니다. 그래서 신간인 줄 알았어요.

stella.K 2018-03-01 18:47   좋아요 0 | URL
나온 지 좀 된 걸로 알고 있어요.
혹시 알쓸신잡 2 보셨나요?
책 내용이 많이 언급됐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약간 기대감이 떨어졌어요.
그거 나름 열심히 봤거든요.
물론 저자가 좋은 사람 같아서 봐도 상관은 없겠지만.ㅋㅋ

의정부짱짱맨 2018-03-0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안 샀다는 게 반전이네요ㅋㅋㅋㅋ

stella.K 2018-03-03 18:35   좋아요 0 | URL
그렇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