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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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의 작품이 읽기가 쉽지 않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작가의 작품을 읽은지가 꽤 되고 그동안 나름 독서 내공을 키워왔으니 이쯤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더구나 사랑에 관한 소설이 아닌가? 그런 마음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연애를 잘하는 방법한 책엔 애저녁에 관심이 없다. 그나마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가 또는 같은가에 관한 책엔 관심이 가지만 그것도 내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사랑을 심리학이나 인문학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도 뭐 나름 나쁘지는 않겠지만 사랑이 과연 그렇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솔직히 인간은, 사랑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어서 그 무엇으로도 증명될 수 없고, 손끝에 닿지 않는 그런 신비스러운 것이길 바라오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사랑은 답이 없는 것. 오직 현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의 이런 다양한 현상을 가장 잘 표현하고 그 과업을 성실하게 이행해 온 건 소설과 영화는 아닐까? 그것들은 해답을 내놓을지는 몰라도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역시 그것에 아주 성실해 보인다. 이승우 작가의 작품의 특징은 대개는 육화되기 보단 관념적이고 사변적이란 느낌을 갖는데  이 작품도 그 예견을 빗나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무슨 사랑에 대한 철학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소설을 가장한 묵직한 에세이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이 말을 칭찬의 의미로만 쓰지는 않는다. 물론 이것이 작가에겐 이룩하고자 하는 문학적 성과에 어느 정도 도달했겠지만 독자와의 소통엔 어느만치 근접해 갔는지 그건 좀 의문이다. 물론 소설가가 꼭 독자와의 소통을 늘 의식해야 하는 것이냐라는 것에 꼭 어떤 책임 의식 같은 건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이 작품에서 오히려 지켜보게 되는 건 사랑이 뭐냐라는 질문 보단 작가의 성찰적 언어가 돋보인다고나 해야할까?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을 위해 그때 그때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어떤 작가가 그러지 않겠는가). 그래서일까? 정말 읽다보면 그랬을 거란 흔적이 느껴진다. 또 그래서 일까? 언어의 질깃질깃한 힘줄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단어나 문장도 그냥 헛투로 쓴 건건 없어 보인다. 언어의 미묘하지만 어떻게 알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곡예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군데군데 받는다. 또 어쩌면 단어의 라임을 이용해 언어의 유희를 모색하는 것도 같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작품은 쉽게 읽혀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어디서 와서 누구의 가슴에 머물며 어디로 가는지 인간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말하려고 하고, 증명하려고 하는 건 인간의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지혜를 갈구하기 때문일까? 이 세상 모든 이야기에 사랑이 안 들어가는 것도 있을까? 이야기는 곧 사랑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는 애증은 아닐까? 이 세상 모든 이야기는 애증에 관한 이야기란 말이다.  

누구는 사랑을 끝내려고 하고, 누구는 그 끝에서 사랑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며, 누구는 자기 집착을 사랑이라고 우기고, 누구는 자유연애를 사랑하는 사람의 대표로 여기기도 하며, 신 앞에 맺어진 사랑만이 진실하고 거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생각해도 사랑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태도만큼은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

분명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생각만큼 그렇게 간단하고 낭만적인 것마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하기를 거부하거나 미성숙을 보이지는 말자. 물론 사랑 끝에 남는 것이 이별의 아픔이 될지 더 성숙한 사랑으로 나가는 것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자아의 완성을 위한 것임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정복의 대상 또는 작업의 완수여서 더 이상 이룰 게 없다고 보는 건 상대를 더 이상 인격으로 보지않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인간으로 아니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사랑에 대한 모험과 수고를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른 동물이나 식물도 그럴진데 사랑을 지능적으로 이용하는 종은 인간밖엔 없는 것 같다. 아니면 아예 너무 어렵고 두렵다고 시작조차 못하는 인간은 또 얼마나 불쌍한 존재랴.

이 책은 단 한 번의 독서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훗날 다시 한 번 정독해 봐야할 것 같다고 숙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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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3-16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념적이고 사변적에서 숙제로 남긴다 까지 읽으며 내겐 좀 어렵겠네 싶다가도 이 궁금증 참을 수 없는 호기심도 슬금슬금 올라옵니다 ㅎㅎ 저는 아직 이 작가님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혹시 ‘식물들의 사생활‘이란 작품의 작가님은 아니실런지요. 아직 이 작품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라는 책에서 프랑스 작가님이 이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라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어요~^^

stella.K 2017-03-17 13:49   좋아요 0 | URL
이전에 제가 읽은 건 ‘생의 이면‘ 딱 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이것도 억지로 읽어서 거의 기억엔 없구요.
그래도 이승우 작가가 꾸준히 책을 낸 덕에 지금은 꽤 팬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분이 좀 무섭기도 해요.
오래 전에 이분에게서 잠깐 배운 적이 있었는데
제 워크샵 작품을 보고 어찌나 뭐라고 하시던지 무안해서 혼났습니다.
유머 감각 거의 제로고 오직 외골수로 소설만 바라보고 사신 분인데
그런 거 생각하면 존경할만 하죠.
독자와 소통하는 글을 쓰면 좋을 텐데 한마디로 소설에 순정을 바치신 분
같습니다. 한 번 슬슬 읽어 보시죠.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서
얻는 것이 있을 수도 있잫아요.^^

2017-03-16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3-17 13: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왜들 작가나 철학자들은 사랑을 어려운 것으로
표현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배풂, 포용, 아량만하는 것도 평생 다 못할 텐데 말입니다.
백날 천날 말로 글로 치대는 사랑 밀가루는 열정이란 행위가
들어가지 않으면 빵이 안 된다...!
과연 지당하시고 훌륭한 말씀입니다.^^

페크pek0501 2017-03-21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제가 열광하던 작가였어요. <생의 이면>을 읽고 반해 버려서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었어요.
여행을 가서도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재우면서 재독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낡은 책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그의 작품 <지상의 노래>를 구입해 읽을 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사랑의 생애>를 더 읽고 싶군요. 아마도... 사랑에 관해 새로운 경지를 보여 줄 듯 기대되네요.

님이 쓴 이 리뷰는 청소되어 반짝이는 마루를 보는 듯 깔끔한 글솜씨가 느껴집니다.ㅋ

stella.K 2017-03-21 13:0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브리핑으로 언니 글을 읽는데
한때 언니가 작가라고 하시는 줄 알았어요.
요즘 눈이 안 좋다보니 이렇게 착각하는 게 많아요.ㅠㅋ

이승우 작가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하는가 본데
저는 아직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어렵기만 하던데...

사실 리뷰도 어떻게 써야하나 좀 막막했는데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청년의사 장기려 -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자, 개정판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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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장기려 박사의 일대기가 공연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늘 그렇듯 나는 우리나라 선각자들 그들의 이름 석 자 정도만 알 뿐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장기려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의학 박사라는 정도밖엔 알지 못한다. 그러다 언젠가 중고 서점을 기웃 거리다 이 책을 발견하고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손에 넣었다. 다소 청소년 위인전기 같은 표지가 조금 그렇긴 한데 작가가 손홍규라고 하니 더 주저할 것도 없었다. 물론 난 아직 손홍규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력은 익히 알고 있었던지라 선택해도 후회는 하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유려하게 장기려 박사의 일대기를 풀어냈다.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와 6. 25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는 아니었을까 싶다. 난세에 영웅이 있다고 하지만 이 시기 기억하고 싶은 몇몇 의인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손양원과 주기철, 김구 등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으면 안 되는 사람들 말이다. 그 가운데 또 기억할 사람이 바로 장기려 박사다.

 

그는 일제 강점기 부자는 아니지만 아버지가 일본인 밑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해 가난하게는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공부도 아주 뛰어난 건 아니지만 대체로 우수한 편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진로를 고민하다 우연히 친구의 어머니가 의사 한 번 만나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의사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일제 강점기였던 만큼 일본인 의대생들의 차별을 견뎌가며 그들 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 조선 최고의 외과 의사가 되기도 한다. 당시 그는 스승인 백인제 교수 밑에서 의술을 연마하며 폐암 환자의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기도 했는데 그런 이력이면 승승장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에 그 모든 걸 버리고 인술의 길을 간다. 또한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엔 늘 희생하며 사셨던 그의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또한 보이지 않는 그림자였던 아내의 역할이 더해지기도 했고. 그는 나중에 월북해 김일성대학에서 교수가 되기도 했는데 이후에 발발한 6. 25와 그로인한 가족과의 생이별과 월남해서도 연좌제로 인한 고통 등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작가는 당시의 사회 풍경, 장기려 박사의 의사로서의 시대적 고뇌를 생생하게 복원하기도 했는데 특히 일제 강점기가 끝난 직후의 풍경도 꼼꼼하게 되짚어 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희망적이고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전운이 감돌기도 하지만 바로 직전 흥청망청 대는 사회 배경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일본에 복수라도 하듯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일본 여성을 어떻게 농락했는지 말이다. 여담이긴 하지만 전에 이 시기의 일본 여성을 조명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일본이 맹위를 떨쳤다고 해서 그 나라 여성들이 꼭 행복했던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위안부는 이렇게 일본 정부에 항의라도 할 수 있지 그들은 어디 가서 항의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내가 더 이 책을 읽으려고 했던 건 그와 더불어 동시대인으로 함석헌이나 김교신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 책을 읽는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것이기도 하다. 때로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바로 이럴 때다. 내가 실력 있는 사람이 되면 그런 훌륭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날은 그 목적이 변질돼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다는 것이다. 하긴 입신양명을 위한 마음이야 어느 시대고 사람의 하나같은 마음이니 그걸 무조건 나무랄 수만은 없지만 어두운 시대 장기려 박사와 시대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적지 않는 감동을 준다.

 

그는 자신의 둘째 아들과 월남하여 남과 북이 갈라지고 전쟁의 상흔으로 많은 정신적 고통을 당하지만 평생 신앙에 의지하며 독신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작가 손홍규는 장기려의 전기와 수상록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정말 그 이름으로된 기독교 신앙 서적이 눈에 띈다. 슈바이처가 의사면서 신학자인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한데 그도 그랬던 것 같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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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12-29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감각적인 문장의 손홍규 작가 책이네요! 덕분에 알아가요!^^ 한해 동안 감사했어요! 새해에도 복 많이 북 많이 ~~^^

stella.K 2016-12-31 10:56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은 우리 소설 많이 읽으시니까 손홍규 작가를
잘 알고 계시겠군요. 저도 이 책 덕분에 손혼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감사했어요. 그장소님도 새해 복 많이 받고
더욱 행복하세요.^^

[그장소] 2016-12-31 11:21   좋아요 1 | URL
아~ 네.^^ 문장이 좋아서 좋아하는 작가인데 Stella. k 님 포스팅으로 만나니 더 반가워서요!^^
새해 행복 .일. 애정 뭐든 ...희망하시는대로 이뤄지시길!!^^

북프리쿠키 2016-12-29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일본인 밑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관리하는 일을 해 가난하게는 살지 않았다˝는 말이 좀 거북합니다만..

아들은 훌륭하게 컸네요~
손홍규 작가 한분 또 알고 갑니다^^;

stella.K 2016-12-31 11:00   좋아요 1 | URL
그래서 할머니가 그렇게 많이 베풀며 살았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손자가 보고 자란 거고.
나중에 해방되고 아버지가 어떻게 됐는지는 나오지 않고 있어서
좀 아쉽긴해요. 부역자라고 고초를 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할머니 덕에 그걸 피해가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뭐 공부는 어려움없이 한 걸 보면...
작가도 작가지만 나중에 장기려 박사도 읽어보세요.^^

yureka01 2016-12-30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위인 또 한분 만난 느낌이네요..^^..

stella.K 2016-12-31 11:02   좋아요 2 | URL
난세에 영웅이 난다지만 난세에 의인이 나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hnine 2016-12-3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사진이 또 바뀌었네요! 예쁜 심장 사진~ 좌심방 위에 눈이 집중적으로 쌓였어요 ㅋㅋ
한동안 장기려 박사에 대해 방송에서도 나오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이산가족 찾기 즈음인지, 민간인 방북이 이루어지기 시작할때인지...이름이 독특하기도 해서 기억하고 있지요. 손홍규 작가는 소설만 쓰는 줄 알았더니 이런 책도 썼군요.

stella.K 2016-12-31 14:3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심장으로 보니 정말 그러네요. 왜 그럴까요...?
소피 마르소는 예뻐서 그냥 잠깐 달아 본 거구요.ㅋㅋ

그랬나요? 그런데 전 왜 기억이없을까요...
정말 이름 한 번 들으면 안 잊어먹을 것 같아요.
이런 분 많이 계셔야 할 텐데. 어딘가 찾아 보면 있겠죠?
제2, 제3의 장기려...ㅠㅠ
 
연애 감정
원재훈 지음 / 박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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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은 오래 전 <나는 오직 글 쓰고 책 읽는 동안만 행복했다>를 읽을 때부터 좋아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괜히 선택했나 잠깐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남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후일담 같은 건 읽어 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 질질거림이 싫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애초에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했을까? 그냥 연애 감정이 뭔지 단순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길 바랐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말이다. 물론 난 작가의 이름 하나 보고 선택한 게 더 타당하지만. 표지도 마음에 든다, 그런데 다 읽고 난 느낌부터 얘기하자면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왜 초반에 질질거림이 싫다고 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뭔가 그 사랑에 다가가지 못했고,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어영부영 멀어져간 기억들이 건드려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연애 감정은 아닐까? 지금은 그 때보다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유치하고, 미숙함, 미성숙 뭐 이런 단어로 설명되어질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할 것 같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책은 기꺼이 미숙했던 나와 마주보기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하필 작가는 우리가 한때 불렸던 386 세대들을 그렸다. 물론 연배는 나 보다 조금 앞서긴 하지만.

 

지금의 386 세대는 어떠한가? 다들 50줄을 타고 있고 어떤 이는 60이 코앞이다. 아이들은 막내가 고등학생쯤 되었을 것이고 보통은 대학들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고, 어떤 이는 한번 정도 이혼을 했을 것이며, 한 가지 이상의 병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엊그제도 송년회를 갖다 왔는데 같이 모이기로 한 사람의 형이 뇌종양 판정을 받아서 못 나왔다. 그런데 연배가 그래서인 건지 아니면 의학이 좋아져서 그런 건지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딱 그런 세대의 사람들이 이 책에도 나오는 것이다. 작가는 왜 하필 그런 세대의 사람을 소환한 걸까? 사람은 죽으면 모를까 사랑은 언제 어떻게든 다시 마주하게 되어 있나 보다. 아니 그 보다 자신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산다면 정말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을 한 번쯤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 소설은 바로 그렇게 시작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얼개도 약간 복잡하다. 두 남녀간의 (이루지 못한)사랑에 대해 올곧게 그린 게 아니라 이를테면 주인공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동시에 저 사람도 좋아한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강도나 색깔이 다르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기도 한다. 존경의 의미로. 누구는 순수고, 누구는 정염으로 사랑하기도 한다. 또한 그 순수함이 오히려 정염에 불을 지피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조금은 복잡하다. 하지만 그 글 줄기를 타고 주인공의 고뇌와 철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 교양과 사유가 돋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대단하다 싶다.

 

이 작품은 역동적이면서도 동시에 관망적이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며 모자이크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저변엔 죽음이 깔려 있기도 한데 그래서일까? 이야기가 제법 묵직하다. 읽고 나면 우린 모두 다 온전한 사랑에 이를 수 없는 나약하고 미숙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 사실에 오히려 위로 받는 느낌이다. 주인공이 한때 좋아했고 애인 때문에 불교에 입적한 학교 선배 월명 스님이 그런 말을 한다.

산다는 게 그런 것 같아 갈증이 나는 상태가 반복되거든. 육체보다 영혼의 갈증이 더 심할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의 시절일 거야, 이 갈증이 사라지고 그저 습관적으로 살아가면 그땐 늙은 거지. 젊은 우리는 항상 갈증이 나거든.(201p)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함축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도 같다. 갈증의 시절이니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사랑이 이르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다. 또한 누구는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도 했는데 주인공이 나영을 만나 나누는 대화가 제법 의미심장하다.

...... 어떤 사람은 그자 떠나갈 때 가장 잘 보이는 것 같아.“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다가가기 전과 떠나갈 때 가장 잘 보이는 것.”

모든 건 연결되어 있으니까. 생각의 꼬리가 자꾸 이어지는 거지. 결국 사람과 사랑은 자웅동체의 생명체야.”(238p)

 

잡지 못하고 이루지 못할 때 비로소 보이는 사랑의 실체. 과연 그럴듯한 명제 같다. (물론 인정하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어쨌든 그러고 나니 내 이루지 못한 사랑도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삶을 비극이라 여기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을 시작한다.’ 유명한 시인 예이츠의 말이다. 서문은 첫사랑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사랑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한 지 1년 되는 시점에서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를 잃기도 한다. 어찌 보면 참 사랑과 인연이 먼 사람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그런 것조차도 괜히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말미에 가면 주인공 서문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모습이 서술되어지는데 소박한데도 장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그의 첫사랑 나영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하는데 죽어야 이루어지는 사랑이 쓸쓸하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하다.

 

그렇잖아도 저자는 이 소설을 지금도 가끔 지나간 옛 연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고, 그것을 아예 잃어버린 사람들이 읽는다면 더 좋겠다고 했다. 이런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들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살다가 어느 때가 되면 조용히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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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2-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만 죽음이 저변에 깔려있고, 묵직하다. 그나마 이런 소설류가 저에겐 좀 더 어필하는듯 합니다 ㅎㅎ 원재훈이란 작가 기억할께요^^

stella.K 2016-12-28 13:24   좋아요 1 | URL
쿠키님이라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였으면 저도 안 읽었을 거예요.
글빨 좋은 작갑니다. 영화에 몽타주 기법이란 게 있잖아요.
일명 모자이크 기법.영화 보는 기분도 나고
엣날 기억도 나고. 아무튼 전 좋았습니다.
나중에 함 읽어 보세요.^^

2016-12-28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8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 낭만픽션 4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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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뭣도 모르던 시절, 나는 일본문학을 백치미 같다고 한 적이 있다. 뭔가 있어보이긴 하는데 영혼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때는 지금같이 일본문학이 많이 번역되어 나오기 전이었고, 또 어찌보면 바로 그때가 활발히 번역되기 시작한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키 정도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만일 마쓰모토 세이초를 그때 알았더라면 나는 그런 백치미적 발언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늘 예술가의 삶을 염탐하기 좋아하는 나로선 이책이 처음 나왔을 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난 이게 작가의 삶과 문학세계를 에세이 형식으로 푼 그런 책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일본의 예술가의 삶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며, 그것도 현대가 아닌 헤이안 시대나 에도 시대 같이 옛 시대의 예술인들을 다뤘다는 점에서 작가의 저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각 예술인들의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자신들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설명하거나 표현하는 건 애저녁에 없다. 순전히 예술과 권력 사이에서 고뇌하는 예술인을 그렸다.

첫 장을 피면 운케이라는 대략 1200년대를 살다간 불상 조각가를 만날 수가 있는데, 예술가의 삶을 다룬건지 아니면 무슨 야쿠자 조직을 다룬 건지 조금은 당황스럽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나라 문학의 도제 시스템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런 것을 보면 이 도제의 역사와 뿌리는 상당히 깊은 것이겠구나 하며, 더불어 우리가 아무리 지금의 문학의 도제 시스템을 비판해도 이건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을 것 같다는 일말의 걱정 어린 전망도 짚어보게 된다. 

무엇보다 난 이 책을 통해 예술과 권력의 관계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예술과 권력은 하등의 상관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 그 둘은 너무나 밀접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지극히 개인적일 것 같지만 권력을 갖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권력은 정적을 제거해야 유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최고의 예술만을 추구하겠다는 순수한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은 언젠가 이인자에 의해 제거될 가능성이 높다(그것은 영화 <해어화>나 <아마데우스>를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최고라고 알고 있는 예술품들은 당대 일류가 되지 못한 것이거나 최고의 아류일 가능성 높다는 것이다. 우린 그걸 최고의 작품이라고 좋아라 하는 지도 모르고.

그러므로 예술은 순수하고 고독하다...? 뭐 이런 건 고흐 같은 예술가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고, 사실 알고 보면 예술은 일류를 제거한 서슬 시퍼런 칼 끝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일본의 예술은 무사정신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 보아 그들은 예술과 무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문만을 숭상할 줄 알았지 무는 그 보다 못한 것이며, 예술은 더 없이 천한 것으로 여겨오지 않았던가?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 예술이 일본의 그것보다 한참 늦은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사대정신만 죽자고 계승 발전시켜 오지 않았는가. 이 사대정신의 유령은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고.

문득, 우리나라 예술가들에게도 이 무사정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랬다면 늙은 예술인가고, 젊은 예술인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발정난 개마냥 미처돌아가지는 않았을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사정신을 지녔다면 실오라기 하나 흐트러트리지 않았겠지. 늘 절도와 절제를 몸에 익히지 않았을까? 그들이 뿜어내는 예술이란 어땠을지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특히 활복의 정신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정신이기도 하다. 그것을 여지없이 보여줬던 건 다두였던 센 리큐였고.

작가 역시 무사다운 문장의 절도와 절제미가 한껏 느껴진다. 어떻게 당대 예술인 10인방을 한 사람 당 5 내지 6장에 할애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연작으로 엮을 수 있는지 과연 대가다운 경지란 생각이 든다. 나는 한동안 이 작가에게 매료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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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31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제방식도 단점이 많겠지만 장점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좋은 스승을 인연이 닿아 만나고 청출어람할 수 있다면야..더없이 좋겠죠....

stella.K 2016-10-31 15:20   좋아요 1 | URL
그렇죠. 옛날엔 변변한 서당도 없었던 시절이니
도제외엔 어디서 전문지식을 쌓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오늘 날엔 변질이 되서 문제 아니겠습니까?ㄷㄷㄷ

cyrus 2016-10-31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건 무사 정신보다는 선비 정신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사나 선비나 둘 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서 사회 변화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stella.K 2016-11-01 10:53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 맞는 것 같다! ㅎ
 
허랜드 - 여자들만의 나라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5
샬롯 퍼킨스 길먼 지음, 황유진 옮김 / 아고라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표제작 <허랜드>를 읽으면서 새삼 내가 한 번이라도 여자들만의 세상에 대해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내가 고작 생각한 건 이 세상에 남자가 없다면 동성애가 만연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 생각하는 수준이 바닥이다.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여자들이 사라진 남성들의 세계는 더 끔찍하지 않을까? 하긴 내가 여자들만의 세상에 살아 본 적이 없으니 상상불허다.

 

좀 우스운 얘기 같긴 한데, 시나리오를 공부했을 때 조 편성을 했다. 어찌하다 보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여자 수강생들이 몇 명 있었는데 거기에 나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결국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이 하나의 조가 되었다. 난 원래 학교 때부터 조 운이 없긴 했지만 속으로 이건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모르긴 해도 다른 조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여자가 더 잘 아는 법이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놀리듯 막 배정된 우리들에게 아마조네스란 조명을 하사하시려 하는 걸 거부하고 다른 이름으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가 무엇으로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수강 기간 내내 우리가 서로 못 지낸 건 아니다. 나름 잘 지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다른 조의 사람들은 우리 조를 나름 꽤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남자 수강생들이야 뭐 여자들의 모임을 동경할 테니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여자들은 남자들과 썩어 놓으니 불편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자들끼리 있으면 더 끈끈하고 재밌지 않겠냐는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서로 남의 떡이 더 클 거란 상상을 하며, 자기가 속한 조에 대한 불만을 그렇게 표현하는 모양새였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결국 남자들은 어디를 가나 인기가 없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 되는 지도 모르겠다. 같은 남자들끼리도 재미없고, 여자도 싫다고 하니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니 새삼 그때 붙이려다만 아마조네스가 생각이 났다. 아마조네스와 허랜드는 다 여자들만의 세상이란 점에선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 둘의 성질은 판이하게 다르다. 아마조네스는 여성 무사족을 뜻한다. 여성을 무사로 만들기 위해 활쏘기 좋으라고 어려서 오른쪽 가슴을 도려냈다고 하니 좀 무시무시하다. 그들은 자손을 번식시킬 때에도 일정기간 이웃 나라의 남자들과 통정을 하고, 아들을 낳으면 버리거나 죽였다고 한다. 아무리 신화라고는 하나 배면에 완전히 남성을 배제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아마조네스는 진정한 여성 사회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남성화된 여성성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런데 비해 허랜드는 아마조네스 보다 훨씬 더 고도화되고, 치밀하며, 설득력 있다. 무엇보다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 이웃 나라로 원정을 가는 법이 없다. ‘처녀 생식을 통해 아기를 낳으며 낳는 아기마다 딸이다. 그러므로 아들을 낳았다고 잔인하게 죽일 필요도 없다. 또한 그 사회는 철저하게 모성애와 자매애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해 생각할 것은 아마조네스 여성의 무사성과 허랜드의 모성애다.

 

사람은 어떻게 키워지느냐에 따라 결국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는데, 날 때부터 무사로 키워지는 것과 어머니로 키워지는 것이 어떻게 다르겠냐는 거다. 무사로 키워진다면 무엇을 위한 무사겠는가. 적들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남성 무사와는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조네스의 여성 무사들은 누구를 적으로 삼았을까? 당연 남성이었겠지. 여성들만이 사는 세상이니 남성들은 얼마나 그 세계가 궁금할까. 만만히 보았을 것이다. 남성성에 정복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지 않은가. 그것으로부터 자기네 부족을 지켜야 하니 당연 더 많은 힘과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허랜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 나라에도 무사들 내지는 군인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국가를 이루는 많은 요소 중 하나로 존재할 뿐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그녀들은 그리 많이 여성스럽지 않고 오히려 중성에 가까우며, 보통 여자 보다 약간 큰 편이라고 한다. 여기서 작가의 상상이지만 깊은 혜안이 느껴진다. 양성의 사회에선 여성성의 원형이 온전히 지켜지기가 어렵다. 그것은 여성이 남성 주류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성을 변형하나 왜곡시키며 발전해 왔을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선 여자 혼자 자신을 지켜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자기를 지켜주는 남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이제이인 것이다. 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공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안 그러려면 남자 보다 몇 배는 더 영리하고 남자다워져야 한다.

 

하지만 허랜드는 기본적으로 모성애를 전제로 하고 있고, 남자들이 없기 때문에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관능이 발달되지 않고 오히려 퇴화되었을 것이다(나는 여자가 힘도 세면서 여성다움을 잃지 않은 건 남성적 사고가 반영된 거라고 본다). 양성의 사회에서는 여성성을 대표하는 것이 관능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여성성엔 그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성애도 있으며 어찌 보면 관능은 상대적인 것인 반면, 모성애가 원형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양성사회에서 모성애를 발휘하며 사는 건 어렵고 점점 축소되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게 단순히 여자가 아기를 낳기 싫어하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엔 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의식으로든, 무의식으로든 알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내 아이를 이렇게 위험하고 오염된 세상에서 키우고 싶은지. 그렇다면 양성 사회에 사는 사람이 허랜드의 사람이 관능이 없다고 안타까워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모성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더 염려해야 하는 것이 맞다.

 

작가는 허랜드에 표류한 세 명의 미국 남자를 통해 허랜드와 자기네 나라의 여성의 실체를 대변하며 의식을 깨운다. “... 그렇다. 그녀들은 어머니들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무기력하고 비자발적인 다산의 어머니들, 모든 땅을 사람으로 가득 채우도록 강요받고, 아이들이 서로 끔찍하게 싸우며 고통 받고 범죄를 저지르며 죽어가게 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지각을 가진 어머니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모성애는 잔혹한 열정, 즉 개인만을 위한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하나의 종교였다.

그들의 모성애에는 우리가 너무도 믿기 힘들어했던 그들의 단결성을 바탕으로 한 무한한 자매애가 포함되어 있다. (121p)“

이것은 단순히 저자가 허랜드의 이상을 설명하기 위해 현대 양성 사회의 여성성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진정한 여성성을 꿰뚫고 있으며, 그런 만큼 현대 여성들의 그것을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가를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랜드는 완벽한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분업화가 잘 이루어졌다. 단적인 예로 양성사회에선 오로지 여자만이 육아를 담당하지만, 여기선 그것의 담당이 국가다. 그것에 대해 표류하게 된 세 명의 미국 남자들은 당황해 하지만, 독자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고 보면 19세가 말의 사람들이다. 그때 무슨 육아 시스템이 발달이 됐겠는가? 그러니 작가가 19세기 여성으로서 얼마나 앞선 생각을 가지고 허랜드를 그렸을지 놀랍다.

 

선진국의 조건을 여러 가지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중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게, 여권과 아이의 양육이다. 그만큼 발달된 나라일수록 육아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담당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유치원 교사 폭행 사건이나 예산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교사 선발은 갈수록 더 엄격해져야 하고, 고급 인력으로 양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들의 근무 환경이나 재교육의 기회가 봉쇄되어 있으니 그런 일이 자꾸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이 소설은 하나의 허구만으로는 읽혀지지 않았다. 19세기에 쓰인 이 소설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미래에 가능성이 있다는 말기도 하다. 어느 때부턴가 여군이나 여경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힘으로 나라가 지켜진다면 여자들이 남자에게 자신의 안위를 맡기는 일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또한 역대로부터 모든 전쟁이 남자들에 의해 자행되어 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결정권을 더 이상 남자들에게 맡길 수마는 없다고 할 때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볼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와 노인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분별력이 없고 힘이 없으며, 노인은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전쟁의 위협에서 가족을 지킬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될 것이다. 허랜드에서의 처녀 생식이란 것도 오늘날의 시험관 아기의 은유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남성성을 가지고는 설 자리가 가면 갈수록 좁아질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또 남성성을 어느 정도 무력화해야 세상의 평화가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좀 놀랍다. 그렇게 오래 전에 쓰였음에도 세월의 흔적을 하나도 느낄 수가 없다. 그런 작가의 필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할 정도다. 여성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문체에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다. 요즘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는 잘 살아 볼 생각은 안하고 이상한 싸움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 본데 그런 쓸데없는 소모적 싸움은 그치고 이런 책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문제작이고 수작이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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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4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9-05 13:44   좋아요 0 | URL
ㅎㅎ 무슨...
정말 가능할 거 같다니까요. 남자들 정말 정신 차리고
여자들한테 잘 해야해요. 안 그러면 쫓겨나요.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복적인 상상력이군요. 여자들만 사는 나라라...
이 책 재미있겠네요.. 이 리뷰, 뭔가 정성을 들여 쓴 느낌이 듭니다..

stella.K 2016-09-05 13:54   좋아요 0 | URL
이거 이벤트에서 받은 거라서 리뷰를 써야하는데
정말 어떻게 써야하는지 고민 많이했어요.
왜 그렇게 안 써지는 ...
그나마 쉽게 쓰려고 하다보니까 써지는데
가끔 책 내용이 너무 좋으면 리뷰는 못 쓰겠더군요.
뭐 좀 달리 생각해 보던가, 뭔가 까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이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인정을 해 버리게 되거든요.

이 책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볼려구요.
빌려 드릴까요?
그냥 사서 보세요. 곰발님은 책 같은 거 빌려 볼 것 같지는 않아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5 14:48   좋아요 0 | URL
안 읽은 책이 산더미여서 아직 책은 사지 않아도 됩니다.
다, 2년 이상 예약된 상태라.. 이 책 읽으려면 2년 후에나.. ㅎㅎ

cyrus 2016-09-0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해경이라는 중국 신화 모음집에 여인국을 소개하는 글이 있어요. 여인국과 아마조네스는 여자만 사는 유토피아에 대한 남자들의 동경과 판타지가 투영되었어요.

stella.K 2016-09-05 14:13   좋아요 0 | URL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마조네스는 여자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지.
근데 허랜드는 완벽해.
어떻게 19세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줄 쫙쫙 치면서 읽었는데 정작 리뷰에선 하나 밖에 인용을 못했어.ㅋ

니르바나 2016-09-0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지안님^^

첫 저서 <네 멋대로 읽어라>가
알라딘 서재 대문에 금색 트로피를 수상하고 있네요.
블로거 베스트셀러 종합 1위 등극을 축하드립니다!!!

2016-10-15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