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뜨기 마을 - 전태일 50주기 기념 안재성 소설집
안재성 지음 / 목선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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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성 트로이카>로 유명한 안재성 작가의 작품집이다. 9편의 작품이 실려있고,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작해 최근의 노동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읽다 보면 작가가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구나 싶다. 일정 정도의 형식미를 갖추고 있으면서 서사의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노동 문학에 천착을 해서 그런지 다소 진보적 성향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평소 일제 강점기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라 1부에 해당하는, <이천의 모스크바>나 <두 발 자전거>, 표제작인 <달뜨기 마을> 같은 작품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우리는 일제 강점기를 정치나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시절 그저 막연히 억압받는 백성이 아니라 억압받는 노동자란 좀 더 진보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인상 깊었다. 과연 작가는 어디서 자료를 얻어 이런 글을 쓸 생각을 했을까 좀 놀랍기도 했다. 하긴 사람이 게을러서 그렇지 찾고, 발굴하고, 연구하다 보면 이런 자료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 세 편의 작품들을 읽어 나가면서 새삼 내가 우리나라 노동사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스스로 좀 민망해졌다. 어쩌다 가물에 콩 나기로 노동 문학을 읽기도 하지만 그 역사에 관해서는 딱히 알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과연 그런 자료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저자도 어느 글에선가 그런 얘기를 했지만, 우리나라는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좌익이니 빨갱이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과연 우리나라가 그렇게 봐도 좋을 만큼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잘 대우해 왔던가를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아직도 자본가들의 갑질 논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노동 운동 역시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전태일 열사가 죽은 지 올해로 50년이란다. 또한 그것을 우리나라에선 현대 노동운동의 효시로 보고 있다. 그 이전엔 상놈이 양반에게 이리 밟히고, 저리 밟혔고, 일제 시대엔 일본인에게, 일본이 물러가고부터는 러시아와 미군이, 후엔 몇몇의 독재자들에게 짓밟혔다.


나는 뒷부분에 갈수록 특히 3부 같은 경우 읽을수록 흥미가 반감되는 걸 느꼈는데, 원래 책이라는 게 그런 경향이 없지는 않다. 앞부분에선 긴장감이 느껴지다가도 뒤로 갈수록 맥이 좀 풀린다. 이 책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봤더니, 독자인 내가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작가에게도 일정 부분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노동 문제가 근본적으로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아서는 아닐까를 생각해 본다. 이것을 바라보는 시각, 노동 쟁의의 대처 방법이 딱히 예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이는 노동 현실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뉴스는 연일 코로나 사태로 힘들어하는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보였고, 어느 노동자는 기업을 상대로 고공 농성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 가운데 누구는 이를 심각하게 보고, 누구는 피해자 코스프레한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만 보려고 하지 말고 다양성과 유연한 자세로 사회 문제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노동 문학도 조금 더 진화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수록 작품들은 그 나름으로 의미가 있다. 문학이란 언제나,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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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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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워낙에 책을 오래 읽기도 하거니와 중간에 다른 책을 읽어야 할 경우엔 며칠 또는 몇 주씩 방치해 두기도 했다. 변명 같지만, 그런 게으른 독서가 가능했던 건 미니멀리즘하고  디테일의 강점을 앞세우며, 약간은 지루한 듯 하지만 왠지 보기를 포기할 수 없게 일본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이 책에 배어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영화로는 <행복한 사전>이 언뜻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소설도 영화화하면 좋지 않을까를 내내 생각하면서 읽었다. 아니면 착하면서 실사에 가까운 느낌의 애니메이션이나. 더욱이 건축 설계를 소재로 했다는 게 이색적이기도 하다. 내가 평생 건축 설계에 관한 책을 읽는다면 몇 번이나 읽게 될까. 한마디로 요즘에 보기 힘든 만연체의 문장에 회상 문학이 더해졌다.  


제목이 좋다. 여름은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다. 물론 끈적하고 숨 막히는 한 여름은 나도 힘들지만 상큼한 초여름과 한풀 꺾여 왠지 보내기 아쉬운 늦여름은 붙잡고 싶으리만치 좋아한다. 게다가 주인공 도오루는 어느 설계 사무소에 취직이 됐는데 합숙을 하며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게 왠지 나를 부럽게 만든다. 가끔 가족을 떠나 목적이 같은 사람과 몇 개월을 먹고 자며 뭔가의 작업을 같이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왠지 설렐 것 같다. 물론 팀워크가 좋지 않으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흐름을 봤을 때 그런 건 전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목적이 같으면 성격이 여간 못 되지 않고서야 팀워크가 나쁠 수 없다. 자기 이름을 내건 설계 사무소의 무리이 슌스케가 수장으로 있고, 모인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온화하고 절제되어 갈등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인다. 뭐 그게 작가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명하복을 중시하고 개인보단 전체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상명하복이란 말에 거부감부터 드러낸다. 꼰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앞에선 아부하고 뒤로 뒷담화하는 민족 아닌가. 뭐 그만큼 존경할만한 어른이나 선배가 없어서라고 할 수도 있고, 앞에서 보이는 것과 뒤에서 보이는 것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조직에서 살아 남기는 해야겠고. 


무라이 슌스케라면 나라도 존경할 것 같다. 정말 신뢰와 존경이 뚝뚝 묻어난다. 그렇다고 자신을 알아 달라고 행동을 과장되게 하지도 않는다. 그저 말없이 조용하게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조용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다. 또한 도오루를 비롯한 그 밑에 있는 사람들도 그를 닮았다. 역시 한 조직은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그를 따라가는 것 같다. 슌스케가 도오루에게 하는 말은 그대로 어록으로 만들어도 좋을 듯하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189p)


"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 (286p)     


"고객이 시키는 대로, 납기를 지키기 위해서 일하라는 건 물론 아닐세. 만일 고객이 불평하거나 변경해 달라고 했을 때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주물럭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자네가 잘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그런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라도 늘 시간은 봐 둬야 하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


"설계사무소가 있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시간을 사람 수로 늘리기 위해서이기도 해. 혼자 하면 하루 걸릴 일이 둘이 하면 반나절이면 끝나지. 도서관 설계 같은 것은 나 혼자 하다가는 오 년이 지나도 안 끝나. 내가 자네들한테 맡기는 것도, 자네들이 나한테 맡기는 것도 협동이라는 거지. 제자니 보스니 하는 상하 관계하고는 별개야. 신뢰지, 그렇지 않으면 같이 일 할 수 없어." (287p)


이밖에도 밑줄 긋고 곱씹고 싶은 말이 많다. 읽으면서 새삼 건축도 사람이 하는 일이구나 싶다. 무엇보다 건축도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인만큼 사람을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 이 책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승효상이나, 유현준, 김진애 같은 건축가가 나와서 건축의 중요함, 필요성, 철학 같은 것을 일반인에게도 깨우쳐 줘서 다행이긴 하지만 난 솔직히 건축에 대해선 거의 문외한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글이나 그림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고칠 수도 있는데 건축은 그렇지가 않다. 한번 지어 놓으면 못해도 50년이고 100년을 넘길 수도 있다. 쉽게 고칠 수 없다는 얘기다. 물론 중간에 보수도 하고 리모델링도 한다지만 고치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나 같이 가난한 서민은 꿈도 못 꿀 일이라 관심이 없다. 물론 주마간산식으로 무슨 조형물 작품 감상하듯 할 수는 있겠지. 무엇보다 우리 같은 일반인은 건축 설계 보단 도시와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쪽이 더 강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유현준 교수는, 건축이란 말이 아직은 일반 대중에게 익숙한 단어가 아니어서 가급적 도시란 말로 대체해서 쓴다고 했다. 그런 걸 보면 건축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예전엔 건축하는 일이 그렇게 대접받는 직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 그럴까를 생각하면 그것도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당시 일본인들이 대거 우리나라에 들어와 속수무책으로 의식주 전반을 잠식해 들어갔을 것이다. 그 시대야 말로 상명하복에 굴복해야 했으니 무슨 우리나라만의 건축 철학을 담을 수 있었겠는가. 그야말로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건축물은 부동산으로 분류한다. 공공재 보단 사유재산의 개념이 더 많다. 더구나 도시 계획하면 철거민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서글픈 일이 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런 사회학에서나 다룰 법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오로지 건축 설계의 일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연 이런 문학 작품이 이전에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똘똘 뭉쳐 뭔가를 해낼 것만 같은 사무소 사람들은 뜻밖에도 슌스케가 병에 걸리는 바람에 흩어지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슌스케의 나이가 이미 고령이라 언제까지나 건강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야기의 말미는 그로부터 29년이 흐른 후 주인공 도오루가 옛날 슌스케 사무소를 다시 방문하는 것에서 끝나는데 묘하게도 나는 거기서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다. 다시 찾아간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람들 저마다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공간이나 장소가 있다. 도오루에겐 슌스케 사무소가 특별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고, 가히 스승이라고 해도 좋을 슌스케를 만나고, 결혼으로 이어질뻔한 여인을 만났으며 주변 경관도 좋아 오래도록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을 29년 만에 찾았다면 평생 안 찾아볼 생각을 했을 것도 같다. 분명 도오루에겐 꽤 의미 있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분명 좋고 의미 있는 시절이었다고 해서 그곳을 다시 찾아가는 일은 여간해서 잘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서너 정거장만 가면 나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 같이 살았던 동네가 나오는데도 나는 그 시절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지난 달 오랫동안 알고지나 온 지인을 그가 사는 동네에서 만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입학한 초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 지인은 나를 잡아끌듯 그 초등학교에 한번 가 보자고 해서 못 이기는 척 간 적이 있다. 다시 찾은 학교는 소인국의 어느 건물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건물이고 운동장이고 어쩌면 그렇게 아담하던지. 처음 그곳에 갔을 땐 엄청 크고 넓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초등학교를 3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전학을 갔는데, 분명 운동장 한쪽에 큰 수영장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시절 물기 없는 수영장 안에서 체육 수업을 받기도 했는데 다시 찾아가 보니 수영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운동장이 넓지 않고 수영장의 쓰임새가 그리 많지 않아 나중에 메워 버리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 시절엔 학교의 자랑거리였는데. 그렇게 사라져 버리니 내 기억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아 마음 한편이 휑했다.    


그뿐인가, 그때는 교문 앞 길은 탁 트여 있었고, 교문 앞에 문방구가 두 채가 있었는데 무슨 건물만 다닥다닥 붙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얼마나 낯설던지. 문득 왜 사람들이 추억의 공간으로 가기를 주저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가보면 머릿속에서만 어른 거리지 그 공간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괜히 뭔가 추억이 손상된 것 같아 기분이 착잡해지는 것이다.이 책의 주인공도 나와 비슷하지 그렇지 않을까. 인생이 한 번이듯 지나 온 곳 역시 한 번이면 족하다 싶다. 그래도 그 지인 덕에 옛 초등학교도 가보고 모처럼 옛 추억에 잠겨 한참 서로 어린 시절을 얘기했었다. 


아무튼 요즘 보기 드문 소설에 보기 드문 문체를 장착했다. 만연체의 느린 문장을 좋아하거나 견딜 수 있다면 기꺼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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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5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6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0-02-16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너무 좋았어요. 특히나 아침에 연필 깎는 장면은 와, 그 묘사가 정말 섬세하더라고요. 스텔라님 모교 찾아가신 얘기 너무 좋네요...저도 3학년까지 다니고 전학갔었는데...

stella.K 2020-02-16 13:55   좋아요 0 | URL
ㅎㅎ 그 장면이 있었나요?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것도 같네요.
사실 이책 처음 봤을 때 끌리긴 했는데 결정적으론 브랑카님 글 보고
읽을 생각을 했죠. 벼르고 벼르다 중고샵에 있길래 최근 읽기 시작했느네
너무 오래 띄엄띄엄 읽은 것 같아요.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꾸만 멀어지는 어린 시절이 아쉽기만 하네요.
브랑카님도 그렇죠?^^
 
보도지침 걷는사람 희곡집 3
오세혁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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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여러 장르가 있지만 희곡은 내놓은 자식 같아 왠지 짠한 느낌이 든다. 일반 독자들도 소설이나 에세이, 시는 읽어도 희곡은 잘 안 읽지 않는가. 나도 한때는 연극  대본을 썼고 지금도 간간히 기회 있을 때마다 쓰고 있긴 하지만 희곡은 잘 읽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리 TV 드라마와 영화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도 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희곡은 공연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헤겔은 희곡은 시와 소설의 특성을 다 갖춘 변증법적 형식이라며 가장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유럽의 이렇다 할 작가들도 희곡을 쓰기도 하고, 독자들 역시 일상적으로 희곡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과연 그런 풍토가 우리나라엔 언제쯤이면 정착이 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희곡집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의 두 번째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연극 연출도 겸하고 있는데 첫 번째 책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고, 두 번째 책은 그로부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작가로서는 엄청 게으른 작가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공연을 해야 하는 연출가의 입장이라면 꼭 게으르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이 공연이 되든 안 되든 꾸준히 쓰는 노력을 한다면 독자들도 언젠간 희곡을 공연용이 아닌 문학의 한 장르로 인식하고 읽게 되지 않을까? 아님 우리나라의 지명도 있는 작가들도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 가끔 희곡도 써 주시던가. 시와 소설의 특성을 함께 두루 갖춘 분야가 희곡이라지 않는가. 보통 우리나라에 알려진 소설가들 그들의 시작은 시였다가 소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젠 그러지 말고 희곡을 경유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가 필력이 있어 보인다. 수록작 모두 수준 있어 보이는데 그중 나는 '괴벨스 극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괴벨스는 알다시피 히틀러가 총애하던 인물이었고, 극은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히틀러의 눈에 띄어 나치 시대를 열어 나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선동가로서 문학 및 예술을 사랑했고 그것을 교묘히 나치 선동에 이용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애자였고 삐뚤어진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 보면 그 자신 스스로가 그랬다기 보단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괴벨스란 인물을 작품 속에서 살려내면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 엮는 솜씨가 제법 근사하다. 작가의 이런 풍자와 비판은 다른 여타의 작품에서도 보이고 있는데 희곡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이런 파편화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에서 예술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기도 한데 과연 예술가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 한 번 작가의 작품을 귀로 들어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맨 마지막 수록작 '분장실 청소'는 연극의 마지막 공연과 함께 철거될 분장실에서의 철거반원과 배우, 가수의 처남 등이 펼치는 일종의 콩트 같은 느낌이기도 한데, 재치도 있으면서 웃픈 연극이기도 하다.      

      

앞서 희곡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요즘은 희곡집들이 꽤 괜찮은 판형으로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일반 독자들도 시야를 넓혀 희곡도 즐겨 읽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추천할만하다.  

 

햄릿이 연극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잊지 말게. 연극은 인간의 영혼을 빛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뭔 뜻인지 알아? 연극을 하기 전에 인간이 되란 소리야.너희들은 연극 하려면 멀었어. 왜냐? 인간이 덜 되었거든. 내가 너희를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으로 만들어 주겠다. - P20

생각하면서 살지 마라. 살면서 생각해라. 시대는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뀐다. 그때마다 시대의 부끄러움도 달라진다. 그때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그럼 너는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이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는 파릇파릇한 놈아. - P23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여. 환난의 파도를 이 손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죽는다는 것은 잠든다는 것 잠든다는 것은 꿈꾼다는 것. 내게 꿈꿀 권리가 없다면 세상의 비난과 조소를 어찌 견뎌낼 수 있을까. 폭군의 횡포, 세도가의 모욕, 사랑의 고통, 무성의한 재판, 관리들의 오만, 세상 곳곳 악취를 풍기며 썩어들어가는 부패, 이 더러운 똥통 같은 세상을 어찌 참아낼 수 있을 쏘냐. 한 자루의 단도면 깨끗이 청산할 수 있을 것을.

주혁들, 박수

이게 바로 독백이야. 마음의 말이지. 일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지. 마음속에 흐르는 생각을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말하는 것이 독백이다. 연극이 위대한 이유는 독백이 있기 때문이야. 일상에서는 한 사람이 긴 시간 동안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말을 하지. - P29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살아가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굴 싫어하거나 경멸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를 냉담하게 만들었으며, 우리의 영리함은 우리를 차갑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은 많이 하면서, 느끼는 건 정말 짧습니다. 우리는 기계보다는 인간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영리함 보다는 친절함과 상냥함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없다면, 인생은 폭력이 될 것이며, 우리 모두 헛되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미워하지 마십시오. 사랑받지 못한 미움일뿐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증오일뿐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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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13 14:4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셰익스피어 정도는 읽으시지 않으셨을까요?
기회되시면 함 읽어 보세요. 시나 소설과는 또다른 맛이 있어요.^^

페크pek0501 2019-11-1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 읽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다 읽었지만 소설에 비해 스피드를 내어 읽을 수 없었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름까지 기억해 가며 읽는 게 부담스러워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희곡 <관객 모독>을 사지 않고 그의 소설로만 두 권을 샀어요.

좋은 희곡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읽어 보겠습니다.

stella.K 2019-11-14 14:27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솔직히 셰익스피어 좀 어려워요. 그런데 왜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고는 희곡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래서도 희곡을 가까이 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희곡은 많이 못 읽어서 감히 추천할 수 있는 수준은 못되구요,
얼마전에 읽은 범우사에서 나온 희곡 안중근도 괜찮고, <현대 명작 단만극 선집>이란 책도 꽤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나혜석의 생애를 다룬 희곡집으로 나온 게 있어 찜해 둔 적이 있는데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북성로의 밤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지리에 관해서는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니어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대구에 북성로가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대구의 4성으로 그러니까,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가 있고 그것은 100여 년 전만 해도 대구 성의 성벽이었다고 한다. 이 대구 성은 조선이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흙으로 처음 축조되었고, 1736년에 돌로 성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그 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1870년에 거의 재축성에 가까울 정도로 대대적인 보수를 하지만 30여 년 뒤엔 일본 상인들이 이를 허물고 4성로를 건설해 그 도로를 따라 점포를 세웠다고 한다.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나카에 도미주로 형제가 북성로에 설립한 미나카이 백화점이고, 소설은 바로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1940년 대,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기 바로 몇 년 전을 그리고 있다. 그때 미나카이 백화점은 대구의 랜드마크였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요즘의 백화점과 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돈데 1940년 대에 정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었을까, 이건 작가의 상상에 의한 은 아닌지 좀 의아스러웠다. 그런 것을 제외하면 소설은 일제 강점기 말을 상당히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만큼 소설은 미나카이 백화점은 화려함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 사는 일본 사람들, 친일파 조선인들, 하다못해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조차 어떻게 허물어져 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사실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의 압제와 독립을 향한 의지 이 두 관점에만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친일과 반일, 매국과 독립 뭐 이런 프레임으로만 보려고 하는 시각이 있었다. 나 개인적으론 이런 관점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줬던 건 <경계에 선 여인들>이란 책이었다. 물론 그것은 일제 강점기를 주제로 한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20세기 초중반의 동아시아 여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연구한 책이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의 여성에 대한 보고서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놀라운 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온 일본 여성들이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나에게 새로운 시야에 눈을 뜨게 만든다. 왜 나는 지배국의 국민들은 무조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난 그들이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이 소설도 보면 미나카이 백화점의 사장 나카에의 딸 아나코 역시 외형적으론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산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다. 그녀는 오히려 같은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그렇다면 소설은 중립적이라 할 수 있다. 노태영이 친일 경찰이 되는데 그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가 나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또한 미나카이 백화점 설립자 나카에 역시 조선인에 대한 지극히 혐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밑바닥엔 자신의 나라 역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겐 오로지 백화점밖엔 없다. 결국 그는 백화점을 구하기 위해 조선인 정주에게 넘기기도 한다. 태영의 동생 치영은 어떤가. 독립운동을 하니 등장인물 중 가장 멋있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인 태영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흔들림이 없이 가장 안정적이고 성실한 인물은 노정주다. 그는 백화점도 인수받았겠다 아나코와의 사랑을 이룰 수도 있었지만 끝내 포기하고 만다.


그뿐인가, 작가는 해방 이후 당시의 조선인들이 어떤 식으로 일본인들에게 보복을 했는가도 가감 없이 기술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읽는 이에 따라 다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이란 비록 허구라고는 하나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역사가 진실을 말하는 학문 같아도 그렇지 않고 오히려 편파적일 때가 있다. 그래서 사관이란 말을 써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다. 역사는 사관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 실존에 대해 말해야 한다. 나는 그런 점에서 작가가 충실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글이 안정적이고 나름 사유적이기도 하다.


그것을 통해 작가는 독자를 그 시대에 대해 애정과 통찰을 갖고 보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린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있다. 읽다 보면 결국 남는 건 국가란 무엇이냐란 생각에 머문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힘없는 나라의 국민은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나라면 아무리 조선을 만만히 보더라도 제 나라 백성을 조선으로 이주시키는 일은 안 할 것 같다. 물론 그때는 조선이 일본의 속국으로 영원히 그렇게 살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란 나라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나 그렇게 만만히 볼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설혹 만만히 보더라도 자신의 나라가 패망을 했다면 조선에 사는 자기네 나라 국민들을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물론 그것까지는 소설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나카에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를 볼 때 있는 나라가 부러울 때가 많다. 국민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국가 존립의 이유다. 그래야 문화와 역사가 이어질 수가 있고 세계 어디를 가도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 과연 그 참혹했던 시절을 생각할 때 국가 지도자들은 과연 그 일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묻고 또 묻고 싶다.

 

구한말 또는 개화기에 관심이 많다면 추천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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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08 14:21   좋아요 0 | URL
앜, 그러시군요. 저도 서울 살아도 가 본데 보단 안 가 본데가
더 많으니 어쩌면 좋을까 싶습니다.ㅠ
저도 궁금하긴 하더라구요. 대구 어디에 그 백화점이 있을까?
지금도 있나 아니면 다른 뭐가 들어섰나?
혹시 언제고 북성로 가실 일 있으시면 사진 한 번 올려 주시죠.^^

수이 2019-11-07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화기때 꽤 임팩트 강한 인생을 살았던 거 같아요, 추천해주신 책 읽어볼게요 :)

stella.K 2019-11-08 14:32   좋아요 0 | URL
앗, 수연님의 개화기...? 궁금한데요?^^
이 책 꽤 오래 얻어와 놓고 이제야 읽었습니다.
작가의 책이 몇 권 더 있더군요.
차분하게 글을 잘 썼더라구요. 기회되면 두어권 더 읽고 싶어요.
최근엔 책을 안 내는 것 같은데 아쉽더군요.
꾸준히 내면 좋을 것 같은데...

카알벨루치 2019-11-0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학창시절에 대구의 중심은 동성로였더랬는데 지금은 많이 변한듯 합니다 내가 살았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감을 느끼는 느낌입니다 북성로를 중심으로 소설이 있군요...

stella.K 2019-11-08 14:32   좋아요 1 | URL
앗, 카알님 대구였던가요? 이런...
그동안 알라딘 마을의 대구출신 3 스타 하면 유레카님과 스요님, 시루스로만
기억했는데 이제 그러면 안 되겠는데요? 4 스타로 카알님을 등극시켜
드려야겠어요.ㅎㅎㅎ
옛날에 자신이 자란 동네를 잊지 못하죠. 그래서 그런지 떠나 온 동네를
선뜻 다시 못 가겠더라구요. 너무 많이 변해있을까 봐.ㅠ

카알벨루치 2019-11-09 14:32   좋아요 1 | URL
저 빼고 북프리쿠키님 넣어서 4스타입미다 ㅎㅎㅎㅎ

북프리쿠키 2019-11-0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 오시면 북성로 우동에 연탄불고기 사드리께요 ㅋ

stella.K 2019-11-09 15:2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쿠키님,카일님 스타 아니시라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쿠키님까지 5星이어요.ㅋㅋㅋㅋ

그런데 쿠키님은 북성로를 잘 알고 계시는군요.
거기에 정말 미나카이 백화점이 있었나요?
지금은 다른 게 들어섰을 것 같은데 자리가 어땠는지 궁금해요.
아, 우동에 연탄 불고기라. 5星이 함께 모이는 날 있으면
그날 한 번 뵙죠. 제 닉넴도 별과 아주 상관이 없지는 않으니.ㅋㅋ
 
희곡 안중근 범우희곡선 37
김춘광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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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라 여기저기서 관련된 공연물들이 심심찮게 올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론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 영웅>이 10년 전부터 공연되고 있는데 사실 안중근 의사에 관해서는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오래전 연극으로 공연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김춘광이 쓴 <희곡 안중근>이다.


이 책은 오래전 사놓고 거의 방치하다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최근에야 완독 했다. 솔직히 사놓고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어 중고샵에 팔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뭣 때문인지 그러질 못했는데 역시 책은 읽는 때가 따로 읽는가 보다.    

 

이 책의 초판 발행이 2010년으로 되어 있어서 작가가 정말 그 무렵쯤 출간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아니고 출판사에서 오래된 희곡을 발굴 편집해서 출판한 것이 그해란 말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대사의 어법이 좀 올드하다. 이를테면 어미를 우나 소로 종결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비교적 초창기 텍스트였을 것이다. 뭐 그런 것만 빼면 내용면에선 상당히 충실하게 잘 쓴 대본이라고 생각한다. 


총 4막으로 엮어져 있는데 한 막이 시작할 때마다 그 막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나 느낌을 자세히 적고 있다. 특히 3막 같은 경우엔 다른 막에 비해 짧기도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썼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 걸 보면 작가가 얼마나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썼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알겠지만 안중근 의사는 김구나 윤봉길, 유관순 등과 함께 걸출한 독립운동가다. 작품을 읽으면서 독립운동가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보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데 성공했다. 작품에선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연보를 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문보다는 사냥에 소질이 있었고 나중에 명사수가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런 것만 봐도 독립운동은 그냥 마음만 먹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겠구나 싶다. 언제나 그렇지만 준비된 자가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마을 예배당에 순회 연설을 온 안창호의 연설을 듣고 문명개화와 국권회복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조국 독립에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조국 독립에 헌신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곧 가족을 버린다는 의미다. 그때 안중근에겐 손이 한창 필요한 어린 자녀들이 셋이나 있었다. 극 중 아내가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 큰아들과 함께 만나러 블라디보스토크에 오지만 안중근은 나는 가족이 없다며 싸늘하게 돌려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을 보길 원치 않았다. 물론 나중에 어머니가 지어 준 수의를 받긴 하지만. 당시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가족을 떠났지만 이렇게까지 매몰차야만 했을까, 그렇게 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러기는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 안중근은 가족을 모른다고 했을까. 가족을 끌어안는 순간 자신의 독립의 의지가 꺾일 것을 저어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면 가족들이 어떤 위해를 당할지 몰라 그렇게 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가 된다는 건 역시 보통의 의지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그는 이토 히로부미 즉 일본을 지극히 미워하고 경멸했다. 그 마음은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것 이상을 넘는다. 그래야 죽일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당시 일본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다 싫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은 불특정 다수를 미워했다기보다 특별히 한 사람을 미워했을 것이다. 얼마큼?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리만큼. 그래야 죽일 수 있을 테니. 또한 아무나 죽이지 않았다. 조선 통치의 뇌관이었던 그 사람을 사살해야 일본을 무너뜨릴 수가 있다. 저격을 잘못하거나 일본의 피라미를 죽여봤자 아무도 안 알아주며 오히려 더 큰 화를 입을 것이다. 그러므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일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누군가? 조선통감부의 초대 통감이다. 당시 이 사건은 중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나중에 그가 죽고 나서 사당을 지을 만큼 존경받는 인물이 된다. 


자신의 생의 마지막 날, 마지막 시를 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가 세상을 살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날과 그 시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인도 모른다. 그것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두렵고 낙심돼서 어떻게 살겠는가. 현대에 들어와서 사형수들은 자신이 어느 날, 언제 죽을지 전날까지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만 해도 그게 명시되어 있었는가 보다. 그가 죽은 날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다. 전날 그는 물론이고 세 명의 감방 동료들 즉 우덕순과 조도선, 유동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날이 밝으면 한 사람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그것을 지켜볼 것이다.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으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멀면 또 얼마나 먼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날 그들은 아침 9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조반으로 빵과 삶은 계란, 단무지 한 조각씩을 나눠 먹었다. 그야말로 그들에겐 최후의 조찬이다. 그들이 먹은 것 고스란히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갈 사람에게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식사였을텐데 말이다. 


왜 그에겐 평범한 날들과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적인 행복이 주어지지 않았던 걸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존재라고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민족이 그토록이나 경멸하고 미워했던 사람을 죽였는데 영웅인 양하지는 않더라도 자책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가 자책을 했다는 건 어쩌면 신앙인으로서의 양심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 어쩌면 그가 죽을 때까지 해박한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동양평화론'을 썼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즉 그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경멸과 미움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대의 때문인 것을 증명해 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 '동양평화론'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죽기 바로 직전 "나는 동양평화를 위하여 한 일이니 내가 죽은 뒤에라도 한 . 일 양국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서로 협력해주기를 바란다."며 천주께 기도한 후 순국했다고 한다. 처형이 조금만 늦춰졌다면 완성하지 않았을까. 요즘의 한일 양국 간의 갈등을 생각하면 그의 미완성은 뭔가를 시사하는 것도 같다. 정녕 양국이 평화 공존할 날이 올까.  


아무튼 이만한 정신, 이만한 태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독립운동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작품은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교회가 순교자의 피로 세워졌다면 나라의 독립은 순국의 피로 세워졌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그분들의 희생과 노고를 잊지 않는다면 우린 분명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 가슴속에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한 사람쯤 품지 않고 산다면 그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물로든 공연이나 영상으로든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독립운동가의 삶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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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9-30 19:19   좋아요 0 | URL
쓰진 않았지만, 일본도 일본이지만 우리나라는 왜 제나라도
제대로 못 지키고 사나 싶어요. 사실 그게 더 화가나는 일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앗기지 않고 살아가는 걸 보면
그건 역시 우리나라 특유의 민졳성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이 좋아 독립운동이지 아무나 할 수 있겠습니까.ㅠ

2019-09-29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30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4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4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9-2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이라서 그런지 뮤지컬로 나온 작품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stella,K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9-09-30 19:33   좋아요 1 | URL
서니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셨죠?
또 시작된 한 주도 힘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