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엔딩 크레딧 이판사판
안도 유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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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맨 마지막 글은 역자의 글 아니라 삼송 김 사장의 글이다. 출판사 사장 말이다. (전에 마포 김 사장 아니었나? 아무래도 삼송으로 이사 가서 고친 모양이다.) 그 글의 제목은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의외로 작가도 모른다"다.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좀 오래된 이야기긴 하지만, 나는 오히려 작가가 되어 책을 내보니까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겠더라.


나의 경우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정리해서 낸 것이긴 하지만 말이 좋아 정리지 책으로 낸다고 하면 그건 거의 새로운 작업이 된다. 뼈대만 놔두고 모든 것을 다 뜯어내고 새롭게 하는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거기엔 새로운 아이디어와 콘셉트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이를 통해 작가가 글만 잘 썼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느 정도 기획력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래서 작가들 중엔 출판 관련 일이나 아예 출판사를 차리기도 하는구나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교정지를 받을 때이다. 작가가 자기 글이 쓰인 교정지를 받는다는 건 잘못된 문구나 오타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솔직히 작가가 이런 일도 해야 하나 0.5초쯤 생각해 본 것 같다. 원고를 넘겼을 때도 이미 여러 번 다듬고 고친 건데 또 고쳐야 하다니. 그런 건 편집자나 교열자가 하는 거 아닌가 했다. 물론 그들도 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데 직접 글을 쓴 사람이 이걸 또 안 할 수 있나. 그만큼 오타를 바로잡거나 문장을 다듬는 건 3중 4중으로 협업한 결과다. 물론 그러고도 막상 책이 짠하고 나오면 오타는 여전히 발견된다. 그때 알았다. 오타는 물귀신과 같으며 오타율 0%의 책은 없다는 걸. 대신 왜 이 문장을 고치지 못했을까 하는 이불킥만 남는다. 어쨌든 그때부터 난 책 읽다가 오타가 발견돼도 그냥 넘어간다. 그전엔 어림도 없었다. 출판사 직원도 아니면서 과부 사정 과부가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뿐인가? 커버 디자인은 어떻게 할 거냐, 어떤 크기로 할 거냐 글씨체는 뭘로 할 거냐, 심지어 페이지도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 책도 그렇고, 삼송 김 사장도 그렇고 페이지는 숫자 몇의 배수로 정해진다며 책의 공식을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대부분의 책의 페이지 수는 백지를 포함해서 16의 배수로 되어 있습니다. <<책의 보물상자>>도 288페이지. 16의 배수죠.(457p)" 이런 식이다. 나의 책도 백지를 포함해 끝자리가 짝수로 끝났다.


게다가 명도니 조도니 막 이런 얘기까지 나오면 이건 좀 나의 한계를 넘어가는 일인 것 같아 그때부터는 '네, 네. 제가 뭘 알겠습니까? 알아서 잘 좀 해 주십쇼.' 굽신거리게 된다. 솔직히 출판사에서도 그런 걸 알려주는 건 그냥 작가를 존중해서지 나의 허락을 받겠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의견 제시는 할 수 있다. 단지 반영이 될 것이냐 아니냐는 어디까지나 제작 측의 소관이다. 사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 하는 건 출판사가 더 똥줄 타는 문제지 작가는 원고만 넘겨주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작가보단 독자였던 때가 더 많으니 아무래도 커버 디자인엔 신경이 좀 쓰이긴 하더라. 아무리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장정이냐에 따라 그 책을 살지 말지가 결정되기도 하니 그건 당연하다. 물론 그 커버에 어떤 문장을 실을 것이냐도 관건이긴 하다.


원고료도 그렇다. 막상 책을 내도 1쇄가 다 팔릴 것 같지도 않고, 누구는 자비 출판도 한다던데 이렇게 원고료까지 받고 내 책을 팔아주기까지 한다니 오히려 원고료는 사양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원고료 대신 자신의 책으로 교환하기도 한다던데 내가 그렇게 주는 돈도 안 받을 만큼 청빈한 사람은 못 되는지라 받았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초짜 작가들이 대부분 취하는 자세 아닐까. 책을 두 번, 세 번 횟수가 거듭될수록 서로 요구하거나 갈등하는 것도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날로그 시절엔 작가는 어느 정도 신비주의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냈다고 하면 여기저기 불려 나가야 한다. 하긴 작가만큼 확실한 마케팅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작가나 그렇지 나 같은 사람은 어디 불러주는 데도 없다. (난 이게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좀 낯가림이 있어서 부담스러웠다. 출판사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겠지만.) 딱 한군데 어느 방송국에 인터뷰 외엔. 그나마 그곳은 출연료는 없었다. 방송국이 좀 후져서 그렇지 그래도 나름 유병한 방송국이었다. 그쪽으로선 오히려 우리 같은 방송국에서 불러 주는 걸 고마운 줄 알아라는 뭐 그런 뜻 같은데 그래도 이건 뭔가 상도덕은 아니지 싶다. 물론 사전에 출판사에서 그 점을 짚어주긴 했다. 인터뷰나 독자와의 만남에 불려 나가면 출연료를 주는 것도 있고 안 주는 것도 있는데 그런 것 때문에 시험에 들지 말라고. (내가 출판사만 아니면 그 방송국을 아주 그냥...) 어쨌거나 그런 것을 볼 때 이 시대의 작가들은 글만 쓰면 안 되고 사람 만나는 걸 기본적으로 좋아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작가가 책을 내 보면 출판에 대해서 막연한 걸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출판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인쇄에 대해선 내가 거의 알지 못했구나.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건 왠지 내 영역 같지가 않아 그냥 네, 네하고 넘어간 게 좀 후회가 된다. 종이책이란 물성을 좋아하니 그때가 아니면 내 책이 어떻게 인쇄되어 나오는지 모르는데 괜히 나댄다는 느낌을 줄까 봐 그것까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책에 대해서 모르는 건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독자라고 생각한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독자는 다시 말하면 책 소비자다. 무엇이 됐든 소비자는 물건의 생산 과정을 속속들이 다 알 필요는 없다. 소비자는 말 그대로 그 물건이 소비만 하면 그만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독자가 책의 생산 과정을 시시콜콜 알 필요는 없다. 독자는 그저 그 책이 좋은지 나쁜지만 판단하면 그만이고, 부지런하면 SNS 같은 곳에 리뷰라도 남기고 그도 귀찮으면 안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바로 이 독자와 출판사의 괴리가 출판 시장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현대 사회는 분업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기 분야 외엔 관심이 없고 서로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현저하게 낫다. 독자 없이 책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책 없이 독자도 없다. 이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해의 문제다. 우리는 모르면 관심이 없거나 쉽게 비난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출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판사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굳이 알리려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책만 만들어 낸다. 그건 아마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갖는 좋게 말하면 장인 정신 그런 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말이 좋아 세계 10위안의 출판 강국이지 출판이 얼마나 외로운 직업인가. 일반 가정에서 도서구입비는 지출 목록에 끼어 본 적이 없다. 그건 누군가의 용돈에서 쪼개서 쓰는 것이지 당당히 이름을 올릴 지출 항목이 아닌 것이다. 또 이것이 출판의 고립를 더 심화시켜 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도 출판 과정에 대해 관심 있고 애정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책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 훨씬 늦게 나왔겠지. 몇 년 전부터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연예 매니저의 일상을 다루는 프로를 보여주면서 연예 매니저란 직업이 급부상했다. 그런 것처럼 출판사도 그렇게 알려졌다면 조금 더 대접받고 출판 꿈나무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렇게 출판의 전 과정을 그것도 소설로 보여주는 책이 이전에도 있었나 싶다. 물론 이 책이 출판 안팎의 인식을 얼마나 바꿔놨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좀 흥미로웠다. 얼핏 들으니 작가의 적지 않은 취재와 집필 과정이 있었던 걸로 안다. 이 책엔 출판인으로서의 애환과 고민이 그대로 녹아져 있다.


하지만 차마 재미있다는 말은 못 하겠다. 출판사가 장르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 줄 아는데, 스릴러나 미스터리를 기대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냥 평이한 다큐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오히려 에세이로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중국은 걸상만 빼놓고 모든 것을 요리로 승화시킨다던데 일본은 모든 것을 소설로 승화시키는가 보다. 그 도전정신은 좋은데 재미는 보장할 수 없다. 읽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엔딩 크레딧은 영화가 끝나면 배우를 비롯해 제작자들의 이름이 화면에 스르르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야 영화가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이 엔딩크레딧을 유심히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쨌든 그걸 책 제목으로 썼다. 원래 책에 해당되는 말은 '판권'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가져와 썼다. 솔직히 액면 그대로 판권이라고 했으면 얼마나 팔렸을까 싶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은 무슨 무술의 하나인가 했을지도 모르겠다. 판권이 일상에서 그리 쉽게 쓰이는 단어는 아닐 듯하니 말이다.


나도 책을 사면 판권을 보기는 한다. 하지만 다 보지는 않는다. 출판 연도와 몇 쇄인가를 확인하는 정도다. 작가나 번역가의 이름은 애초부터 나와있는 거고, 출판사 사장 이름이나 이메일, 전화번호 이런 건 언감생심이다. 삼송 김 사장도 이름이 재밌으니까 기억하는 거지 본명을 썼다면 특이하지 않은 다음에야 기억도 못 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영화에서의 엔딩크레딧, 책의 판권을 알 필요가 있을까? 의무는 아니지만 필요는 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생각이 성숙하다면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봄으로 보이지 않게 수고한 사람들을 기억해 주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의 무덤에 가서도 그 사람의 비석에 새겨진 출생연도와 생몰연도를 보며 이 사람이 삶은 어땠을까 사는 동안 행복했을까,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하물며 책을 만드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수고를 독자가 알아 주지 않는다면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셋 중 하나다. 출판에 직접 뛰어들어 보던가, 작가가 돼보던가 아니면 이 책을 읽어보던가. 뭐 세 번째도 나쁘진 않지만 첫 번째는 밑천이 있어야 하는 거고, 나는 두 번째를 권하는 바이다. 고생스럽긴 해도 보람있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런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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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8-30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포스가 느껴지는 좋은 글이네요.
책만 사는 독자 입장이니까 출판 과정이 복잡하겠지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의 손길과 마음들이 갈마드는 공정이라니
이제 부터는 책에 더 애정을 갖으렵니다.
그런 의미로 책 한권 추천 들어갑니다.^^

*김지안 - 네 멋대로 읽어라(리더스가이드)
Sales Point : 70

stella.K 2023-08-30 19:57   좋아요 1 | URL
짓궃으십니다. ㅎㅎㅎ
세일즈 포인트가 70이면 괜찮은 건가요? 저는 숫자는 영.ㅠㅋ
저기 쓰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되니까 비로소 출판사와 공조체제라는 걸
알았죠. 역시 독불장군은 없어요. 다 함께 하는 거지.
그나저나 니르바나님 제가 이 글로 이달에도 당선작이 될 수 있을까요? ㅋㅋ

Conan 2023-08-30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나오는 과정의 복잡함은 가끔 상상해 보긴 했습니다만, 그저 지나가는 생각이었구요 말씀하신대로 발행일, 몇쇄 정도는 확인보곤 합니다. 그런데 가끔 신간을 사보면 발행일이 저한테 배송된 날짜보다 뒤의 날짜인 경우도 봤습니다. 이런건 왜그런지 모르겠더라구요...

stella.K 2023-08-30 20:08   좋아요 1 | URL
아, 저도 그런 거 봤어요. 그냥 혹시 모르니
여유있게내자 뭐 그런 거 아닐까요? ㅋ
그럼 예약판매로 하지 왜 그렇게 하나 모르겠어요.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전에 알라딘에서 책이 인쇄되어 나오는 짧은 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영상을 잘 찍어서 그런지 좋더군요.
역시 책의 백미는 기계에서 나오는 과정 아닐까요?
마치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을 꺼내는 것처럼. ㅎㅎ
갑자기 빵이 먹고 싶어지네요.ㅠㅠ

yamoo 2023-08-31 17: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책이 재미 없을 듯합니다..ㅎㅎ
스텔라 님 재밌는 책을 찾아 읽으셔요~~
이런 책읽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구요..^^;;

stella.K 2023-08-31 19:35   좋아요 1 | URL
역시 시크한 야무님! ㅎㅎ
그럴 줄 몰랐죠. 기대 많이하고 산 책인데...
책 좋아하면 관심 가죠.^^

2023-08-31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3-08-31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은 잘 만든 것 같아 탐이 나더군요. 내용은 그다음이고 책을 처음 받아든 순간 느껴지는 것을 말함이어요. 인물과 사상사에서 출간한 <정치적 올바름>이란 책은 표지가 빳빳해 좋더군요. 볼 적마다 이런 표지를 쓰면 좋겠다 싶어요. 그리고 아쉽게 느껴지는 책이 있는데 종이 질이 좋지 않아 밑줄을 그으면 잘 안 그어지는 책이 있어요. 저렴한 종이를 사용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유명 작가의 책이 그런 책일 때 (얼마나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이러나...하고) 실망스럽지요. 디자인은 유심히 보는 편이 아니에요. 책 내용만 좋다면 굿!!!

stella.K 2023-09-01 13:51   좋아요 1 | URL
아, 언니는 그렇군요. 저는 디자인 좀 따지는 편이에요.
유독 디자인이 조악한 책들이 있더라구요. 그러면 내용 역시도
별로 안 좋더군요.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책이라면(세계 명작 같은)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표지가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하죠.
하긴 전 솔직히 제 책 표지 디자인 좀 마음에 안 들었어요.
하지만 언니 말마따나 내용만 좋으면 굿이지 뭘 바라겠어요.ㅋㅋㅋㅋ

2023-09-01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1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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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오래전에 사놓고 이제야 완독 했다. 

이 책이 1965년에 초판이 나오고 잊고 있다가 50년 후에 다시 재조명을 받았다지. 그러고 보니 책에도 팔자라는 게 있나 보다. 어떤 책은 거의 나오자마자 주목을 받고 사자마자 읽게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아무리 명작이어도 한쪽으로 쭈그려 있다 늦게 읽게 되는 책이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착한 서사' 장르다. 최근 대표적 작품으로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남아>>가 그렇고, 문학은 아니지만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나(읽으면서 이 영화가 유난히 많이 생각났다) <<8월의 고래>>가 그렇다. 독자를 잡아 끄는 강렬한 무엇은 없지만 잔잔하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이 책을 어느 만치 읽다가 첫 부분을 다시 읽었다. 내용은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 스토너의 출생 연도와 생몰연도, 농과대학을 다니다 문학을 알고 문학에 평생 바치고 가르치다 죽었다는 정도가 전부다. 하다못해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그가 평생 문학과 대학에 기여한 공로를 기억해 중세 문헌을 대학에 기증하겠지만, 후대의 학생들은 그가 누군지 이름은 떠올려 보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호기심을 갖고 알아보려고 하지 않을 거라며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을 하고 있다. 그만큼 그는 쉽게 잊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나는 그 부분을 다시 읽고서야 비로소 이 '착한 서사'를 떠올렸던 것이다. (멍청한 건가? ㅋ)

 

스토너가 우리 보다 조금 잘난 점이 있다면 교수였다는 정도가 되려나? 예나 지금이나 교수는 아무나 되는 건 아닐테니. 하지만 그렇다고 교수 세계에서 뛰어난 업적이나 능력을 인정 받았냐면 그렇지는 않다. 한때 인기 교수가 될 뻔했고 가르치는 걸 좋아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욕심이 없다. 이내 그는 평범한 교수로 남는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아는 누구와도 흡사해 보인다. 또 누구든 그런 사람 한 사람씩은 알고 있지 않나?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아내 이디스와 평생 맞지 않았고, 그나마 딸이라도 가까이 두고 돌보고 싶어 했지만 아내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뿐인가? 그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다. 점잖은 교수 체면에 내연 관계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뿐인가? 제자 하나 잘못 받아들여 곤욕을 치르고 학장과는 평생 앙숙으로 지낸다. 

 

그런 점에서 스토너의 삶은 우리네 삶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세상 누구나의 바람은 좋은 직장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토끼 같은 자식 낳고 평화롭게 사는 거 아닌가. 지극히 평범한 거 같아도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좋은 직장은 다 남의 차지고 지금 다니는 직장도 언제 잘릴지 모르고 다니고 있다, 제대로 갖춘 것도 없어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설혹 결혼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랑도 이루기보다 못 이루고 사는 인류가 더 많다. 누구는 또 이 사실을 얼마나 조롱하며 주눅 들게 만들던가. 더 비참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살아야 하고 살아내야 한다. 

 

누구는 그랬다. 소설은 실패담을 기록하는 거라고. 그것에 동의한다. 우리는 그 실패담을 읽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이러면 안 된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스토너는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아 결국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가 학문적 업적도 뛰어나고, 사랑과 결혼에서도 완벽했다면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냥 부러워하고 존경할 수는 있어도 사랑할 수 없고 그 인생에 공감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별로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나중엔 충분히 긍정해 주고 손뼉 쳐주게 만든다. 스토너를 다시 보라. 그를 앞에서 보면 평범한데 뒤에서 보면 또 그다지 나쁘지만도 않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공부했고 가르쳤으며, 악간의 균열이 없지 않았지만 가정을 끝까지 지켰고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다. 사랑? 앞서도 얘기했지만 사랑은 이루는 사람 보다 못 이룬 사람이 더 많다. 그런 걸 생각하면 짧지만 불꽃같은 사랑도 해 봤다. 긴 사랑을 했다면 완전 나쁜 사람이고 이렇게 주인공으로도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생은 이렇게 삶 쪽에서 보면 형편없어 보이는 거 같아도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나쁘지마는 않다. 누군가가 나를 조롱하고 훼방 놓는 것 같아도 죽음 앞에서는 그것이 하나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어떤 한 사람의 생을 삶의 관점과 죽음의 관점 양면에서  보여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이 작품도 착한 서사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는다고 했"던 그 말을 스토너는 여지없이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꿈으로 가득 찬 설레던 삶을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노인들의 삶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에겐 꿈을 가지며 살라고 해 놓고 당신은 정작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나는 젊고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분들의 삶을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건 얼마나 버릇없는 일이 될까. 

 

그런데 난 아직 노년에 이르진 않았지만 이쯤 살아보니 (꿈은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이루면 되는 것이고) 비록 노인은 많은 꿈을 이루며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 나름의 삶의 의미와 존재 있다는 걸 조금씩 확인하며 살고 있다. 거기 그렇게 살아서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똑같이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누구에겐 많은 위로와 힘이 되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건지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누구는 또 그러지 않던가, 오늘이라는 당신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사람에겐 그렇게도 살고 싶어 했던 날이라고. 이 책은 당신이 위대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못해도 있는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좋다고 말하는 평범한 위대한 책이다.  

 

착한 서사가 주목을 받으려면 문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그래서도 이 책은 주목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근데 번역은 좀 올드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오체나 하게체는 이제 좀 지양해야 할 문체 아닌가. 요즘도 그런 문체를 쓰는 번역가가 있나?)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 봐야 할 것 같고,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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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8-02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얘기하시는 노년의 삶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잘 읽고 갑니다.

stella.K 2023-08-02 11:22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그건 울엄마를 보니 알겠더군요. 또 노년이 주는 편안함, 안정감 뭐 그런 것도 있잖아요. 여전히 불안하고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런 것들을 구축해 나가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니르바나 2023-08-02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가요 명곡이 있습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 모르는 길 위에 인생.
한바탕 꿈같은 세상이란 묘사가 적당한 것이 어릴 때 꿈을 꾼게 마치 엊그제 일 같거든요.
죽고 못살던 사랑도, 잘났다고 나대던 짓도 다 한때 일입니다.
스토너의 삶 같습니다.
더운 날씨에 몸, 마음 조심하세요. 스텔라님^^

stella.K 2023-08-03 12:27   좋아요 1 | URL
아, 더위에 니르바나님도 잘 지내시나요? 저는 근근히 잘 버티고 있습니다. ㅎ
그 노래 알죠. 누구는 소풍으로도 표현하던데 전 그 표현이 좋다 싶어요. 자기 할 일 다하고 가정만 잘 이끌어가도 칭찬받을만한 인생이죠. 뭘 더 바라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3-08-03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토너 완독과 리뷰 완성을 축하드려요.
저는 이 책의 리뷰를 쓰려고 벼르다가 쓰고 나면 진이 빠질 것 같아 오늘 100자평으로 올렸어요.ㅋ
읽다 보면 주인공이 좋아지는 소설이 있는데 스토너가 제겐 그랬어요. 이것도 작가의 능력일 듯.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stella.K 2023-08-03 17:11   좋아요 1 | URL
축하는요, 쑥스럽게ᆢㅋㅋ 그래도 언니 덕분에 읽을 수 있었어요.
스토너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예요. 전 일케 일희일비하지않고 과묵하게 자기할 일 하는 사람이 좋더군요. 바람 피운건 좀 거시기하긴 하지만. ㅋㅋ

2023-08-06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6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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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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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선한 면도 있을 텐데 어쩌면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그리도 악하고 교활한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이런 활어회 같은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게 또한 놀랍기도 하다. 하긴 생각해 보면 악만큼 자기 본성에 충실한 존재가 또 있을까. 보통의 작품이라면 인간의 선한 면이나 적어도 인간관계적 측면을 고려한 글을 쓸 수도 있을 텐데 이건 이기적이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성경엔 소돔과 고모라를 음란과 우상숭배로 타락한 도시로 묘사하곤 하는데 모르긴 해도 작가는 평대란 가상의 마을을 그렇게 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마르케스의 '백 년 간의 고독'으로 대표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구현해 낸다. 그래서일까? 어떤 등장인물은 죽었나 싶으면 어느 장면에서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삶과 죽음을 특별히 나누지 않고 언제든지 현실에서의 소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끼워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상상력이 더욱 풍부하고 확장된 느낌이다.   


평대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아귀다툼은 정말 악마적이다. 또 그런 만큼 이야기는 악마적으로 재밌다. 선이라곤 요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얼핏 춘희가 후에 에꾸에게나 혹은 교도소에서 별명이 간호사인 여자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그건 그저 연대의 의미일 뿐이지 그걸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그것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특이하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주요 인물을 남자로 하지 않고 여자로 했다. 남자 작가가 말이다. 뭔가 의도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것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즉 이 이야기는 못 생긴 노파와 금복과 그녀의 딸 춘희의 이야기다. 


특히 난 춘희라는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기도 아니 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악마적으로 자기 본성에 충실한 인물만 보다가 춘희는 뭔가 달랐다. 그건 확실히 작가의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작가가 춘희란 인물을 창조해내지 못했다면 이 작품은 그저 그런 범작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춘희는 적어도 악한 인물은 아니다. (아, 그런 인물이 더 있긴 하구나. 文이라는 금복의 기둥서방 겸 춘희에게 벽돌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 주는 사람과 금복과 의자매를 맺을 정도로 가까운 쌍둥이 자매 정도.) 한마디로 불쌍한 존재다. 금복이 춘희의 아버지는 좋아했지만 그 씨를 받은 춘희는 사랑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춘희는 벙어리에 살이 뒤룩뒤룩 찐 거구다. 그리고 머리가 나쁜 바보라지만 그 보단 자기 세계에 갇힌 자폐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이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건 그녀가 통뼈라는 것. 정말 의학적으로 증명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통뼈는 웬만해서 다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녀는 말을 못 하는 것 때문에 한때 방화범으로 몰려 교도소에 가야만 했고, 거기서 악의 실체와 바닥을 보아야 했다. 하지만 사람이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어서 장군의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 특사로 풀려나고 결국 대화재로 유령의 도시가 된 평대로 다시 돌아온다. 


여기서 춘희를 방화범으로 오인하도록 만든 평대의 대화재란, 금복이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여러 권모술수로 성공한 사업가가 된다. 게다가 여자에서 남자로 전환하기까지 한다. (여기엔 작가의 약간의 그럴듯한 설명과 이 이야기가 마술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썼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 대부분의 말로가 그렇듯, 성공하는 순간 몰락한다고 금복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건 또 창녀인 수련을 자신의 애인으로 삼으면서부터다.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하고 살아야 하는데 한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수련이 금복을 배신하자 삶의 의욕을 잃고 술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금복이 세운 극장(그녀는 칼자국에게서 영화를 접하기 시작해서 나중에 극장까지 세우는데, 작가의 초기 주요작엔 영화판에 관한 이야기를 을 자주 그리곤 했다. 이를테면 이 작품을 비롯해 '나의 삼촌 부르스 리' '고령화 가족'등)에서 누가 흘린 휘발유에 모르고 담배에 불을 붙이다 극장 전체를 불에 태워 금복은 물론 많은 인명 패해를 두고 평대의 대화재라는 것이다. (이것을 영상으로 봤다면 대단했을 것 같다.) 그 화재 이후 춘희는 극장에 와 봤을 뿐인데 경찰은 다른 사람은 다 죽었는데 혼자만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애꿎은 방화범으로 몬 것이다. 게다가 춘희는 말을 못 했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나는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금복의 생애와 최후를 보면서 역시 악의 속성은 속이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거라더니 그것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놀랐다. 그리고 글 쓰기 강의를 들으면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되는데 막상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춘희는 평대의 딸이다. 자신을 잡아다 참혹한 교도소 수형생활을 하게 만든 평대로 저주하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돌아온다. 돌아올 때 그녀는 교도소 수형복을 그대로 입고 있다. 그 마을엔 유일하게 그녀만 존재했기 때문에 다른 옷을 사거나 만들어 입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에 따라 그 옷은 무려 10년 동안 벗지 않아 찢어지고 해질 때로 해진다. 


아무튼 그런 곳을 돌아와 엄마의 가업이자 文 씨에게서 배운 벽돌 굽는 일을 한다. 그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그러다 어렸을 때 잠깐 만난 적이 있는 트럭 운전사가 평대에 오고 정분이나 임신을 한다. 트럭 운전사와 춘희의 관계는 상상하는 것처럼 비인간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람직하다. 그들의 관계의 첫 시작은 춘희가 만든 벽돌을 트럭 운전사가 외지에 팔아 주겠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차츰 춘희에게 옷도 사 주고, 먹을 거며 필요한 가재도구 등을 사주며 제법 부부 행세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트럭 운전사는 춘희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떠난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춘희는 본능처럼 아기를 낳고, 본능적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찾으러 돌아다닌다. 


그나마 훗날 트럭 운전사는 마음을 돌이키고 춘희에게로 향하지만 눈사태로 눈 속에 파묻혀 죽고, 얼마 안 있어 아기도 죽고 춘희도 죽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20년을 훌쩍 뛰어넘어 웬 듣보잡의 한 건축가의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된다. 그는 한 건축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건물을 짓는데 벽돌 때문에 주최 측과 충돌을 빚는다. 그런 과정에서 춘희의 벽돌 제조 방식을 알게 되고 그것이 자신이 찾는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웬걸 인걸은 간데없고 몇 장의 벽돌만이 남아있다. 그게 참 묘한 울림이 있다. 


같은 죽음이라도 금복은 악의 화신이면서 비극적으로 죽어갔지만 춘희는 모든 어려움을 이기며 생명과 희망을 죽은 후에도 우리에게 전해준다. 약한 것에 강함이 있다고 이것을 남자의 이야기로 했으면 어쩔 뻔했겠는가. 


작가는 서사를 다룸에 있어서도 남다르다. 이를테면 기존의 작가들은 기승전결에 너무 사로잡혀 그 틀에서 만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난 소설을 거의 안 읽었는데 요즘 작가들은 기성 작가와는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하지만 천명관 작가는 확실한 서사에 오히려 뒤에 가서 뭔가의 묵직한 울림을 줘 독자로 하여금 오랫동안 가슴에 감동을 머금게 한다. 


그것은 또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던 만큼 영화의 방식이기도 하다. 왜 영화도 잘 만든 영화는 감동을 최대한 지연시켰다 뒤에 가서 한 방을 터트려주면 관객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한동안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지 않는가. 


작가는 훗날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서 이와 같은 방식을 쓰기도 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감방에 가두는 모순적인 방법을 취하므로 작품의 감동을 극대화시킨다. 사실 이건 말이 쉽지 거의 특기를 넘어 신기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또 신기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왜 그런 작가들 있지 않나, 글 쓰는 게 가장 쉬웠다며 등장인물이 말하면 자신은 그저 받아 적었을 뿐이라던 그 신기의 작가들. 그렇듯 일필휘지로 막힘없이 썼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작가는 시나리오를 썼다 소설로 전향했다. 모르긴 해도 시나리오를 썼을 때 보다 소설을 쓸 때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미 여러 번 다른 글에서 우려먹긴 했지만)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소설은 누구의  예술일까? 답은 나왔다. 작가(소설가)의 예술이다. 우린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 그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천명관 작가가 아닐까 싶다. 소설을 외면하는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겐 좀 자신감을 가져도 좋은 대목이 아닐까 싶다. 


지난봄 우리 문학계에 낭보가 전해졌다. 바로 작가의 이 작품이 영국의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 비록 수상까진 못 갔지만 그런 권위 있는 상에 후보만으로도 적지 않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확실히 외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술적 리얼리즘과 우리나라 현대사를 작가 특유의 문체로 녹여냈다는 점이 찬사를 받게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 개인적으론 먼저 읽은 '나의 삼촌 부루스 리'가 더 영화적으로 썼으며 더 애정이 간다. 

작가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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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7-20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이 달의 리뷰로 당선되기를 기대해봅니다.^^

stella.K 2023-07-20 10:08   좋아요 1 | URL
오, 정말요? 믿쑵니다. ㅎㅎ
사실 어떤 책은 넘 좋은데 리뷰 쓰기가 애매한 책들이 있어요. 특히 소설책들. 이 책도 좀 그랬는데 하나하나 생각을 모았더니 이렇게 썼네요. ㅋ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08-08 2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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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7-20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줄거리는 대충 건너 뛰며 읽었는데두요.
넘 정성들여 쓰신 느낌이 팍 듭니다.^^
작가를 애정하시는 마음이 아주 그냥....ㅋㅋㅋ
시간되면 꼭 읽어봐야겠어요.
상을 타진 못했군요? 아쉽지만 최종 후보까지 올라간 것도 상을 탄 거나 똑같은 영광이겠죠?^^

stella.K 2023-07-20 18:31   좋아요 1 | URL
아주 그냥ᆢ!ㅎㅎ 솔직히 내용은 마음에 드는 건 아녜요. 너무 악한 사람이 많이나오고 하루키처럼 섹스가 넘 많이 나오는 것도 좀 불만이긴 한데 창작 방식은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렇게 아수라장을 만들어 놓고도 끝에 가서는 뭉클한 엔딩도 좋고 능청스러운 개그도 마음에 들고 여러모로 배울게 많은 작가란 생각이 들어요. 책나무님도 어여 읽어보세요.^^

2023-07-20 23: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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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1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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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7 1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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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7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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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7 15: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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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7 15: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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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9 14: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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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9 1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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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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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작가는 한 권도 읽지 않을 수는 있어도 한 권만 읽게 되지 않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나의 삼촌 블루스 리'를 재밌게 읽어서 곧이어 이 책을 읽었다.    


첫 번째 수록작인 '프랭크와 나'는 문학상 수상작이라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이 책에서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남편의 사촌 형이 랍스터 사업을 같이 하자며 그가 살고 있는 캐나다로 시찰을 하러 오라며 남편을 불러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그때부터 아내인 나의 불안은 시작된다. 남편은 착하고 좋기는 한데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경제력은 별로다. 또 그렇게 먼 곳으로 혼자 보내는 건 왠지 불안하고 미덥지가 않다. 한마디로 물가에 내놓은 아아 같다. (이런 사람 집에 한 사람쯤 있지 않나?)


어쨌든 남편은 물 건너에 있으니 매일 전화로 자신의 안부를 전해주지만 그 전하는 말들이 실로 범상치가 않다. 갱단을 만났다고도 하고, 갱단 두목이 자기 사촌 형과 이름이 같은 프랭크라고도 하며 그 두목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자세히 말해주기도 한다. 


또 그러다가 어떤 땐 연락이 두절되기도 한다. 그러니 아내인 내가 겪는 불안은 그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탄다. 더구나 남편을 캐나다로 보낼 때 없는 돈에 오빠에게 꾸기까지 했다. 연락이 두절됐으니 행방불명이면 대책이 없다. 피가 바짝바짝 마를 것이다. 물론 나중에 남편과 연락이 닿고 후에 무사히 귀국해 예전의 일상을 되찾는다.  


나름 재밌고 작가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스타일리시한 면이 느껴져 좋았다. 그러면서 (이국적이라기 보단) 무국적 느낌의 하루키 단편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기시감은 이 작품에서만 느껴지는 건 아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천명관 작가가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게 지난 2천 년 초였으니 아무래도 하루키의 영향을 안 받았을 리 없다.    


기왕 '무국적 느낌'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한국 작가가 썼다고 해서 등장인물을 꼭 한국 이름을 쓰란 법도 없다. 프랭크('프랭크와 나') 토마스(유쾌한 하녀 마리사' '프랑스 혁명사-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 마리사(유쾌한 하녀 마리사') 등 외국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다못해 '더 멋진 인생을 위해-마티에게'는 미국식 이름이 대거 등장(?)하면서 작가의 주특기인 영화 그것도 마틴 스코세이지의 애정을 드러낸다. (근데 내용은 영화와는 별로 관련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일종의 맥거핀 같은 건가?)     


그나마 국적을 알 수 있는 건 '프랑스 혁명사-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과 앞서 언급한 '더 멋진 인생을 위해-마티에게 정도를 제외하면 짐작하기가 어렵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무슨 프랑스나 프라하의 어떤 여자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작가는 도도하리만치 글쓰기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란 말에 갇히지 않으려는 작가의 어떤 의지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쨌든 상상력이 풍부하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게다가 '프랭크와 나', 표제작 '유쾌한 하녀 마리사', '비행기'의 공통점은 화자나 주인공이 여자다. 가끔 남성 작가가 여자를 또 반대로 여성 작가가 남자를 화자나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보곤 하는데 난 그게 좀 신기하다. 뭐 여러 등장인물의 한 사람으로 그릴 수는 있겠지만 보통의 자신감이 아니면 그렇게 쓸 수 있을까.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쓸데없는 기우란 생각도 든다. 뭐 그러니까 작가겠지만 특히  중편 '비행기'는 50대 여성의 불안하고도 다채로운 심리를 잘 표현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기대하지 않고 읽다 빠져들었다.   


또한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알아채고 남편에 대한 살의와 증오심을 화자의 하녀 마리사의 수다스러움과 유쾌함에 슬쩍 묻어버리는 '유쾌한 하녀 마리사' 역시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잘 쓰지 않는 고백체로 썼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건 '프랑스 혁명사- 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일화를 각색했는데 참신한 시도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난 작가들 너무 자기 창작에만 매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가끔은 각색에도 도전해 봤으면 한다. 


이 이야기는 그 유명한 토마스 칼라일과 존 스튜어트 밀에 관한 이야기다. 거 알지 않나? 토마스 칼라일이 '프랑스 혁명사'를 쓰고 어찌어찌해서 존 스튜어트 밀이 검수해 주기로 했는데 그만 하녀가 그 원고를 불쏘시개로 쓰는 바람에 일순간 재로 날려버렸다는 그 유명한 일화 말이다.


사실 이 일화는 여타의 설교가들이 즐겨 사용화는 예화이기도 하다. 즉 후에 토마스 칼라일은 그 원고를 다시 쓸 수밖에 없었고, 초고 때 보다 훨씬 잘 써서 세계적인 명저가 되었다는 훈훈한 미담으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이 작품에서는 흥미롭게 살이 더 붙는다. 그리고 그 관점을 원고의 주인인 칼라일이 아닌 존의 관점이다. 즉 존이 볼 때 토마스의 원고는 형편없었다. (거기엔 토마스에 대한 시기심도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자신도 바빠 죽겠는데 선배의 원고를 봐주겠다고 해서 그 원고를 집으로 가져온다. 물론 후회하면서. 일종의 공명심 같은 거였겠지. 그런데 하녀가 그런 실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녀의 잘못도 아니다. 왼쪽과 오른쪽을 잠시 착각해서 말한 존의 잘못이었다. 즉 왼쪽(?)의 것이 평소 불쏘시개용 종이 묶음이었는데 말을 잘못하는 바람이 그런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처음엔 남의 원고를 날려 먹었으니 소스라치게 돌란다. 그런데 이내 뒤따라 오는 감정은 묘하게도 잘 됐다는 회심의 미소가 지어진다. 어쩔 것인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그렇지 않아도 자신도 원고를 불쏘시개용으로 쓰고 싶을 정도였는데 그걸 자신의 하녀가 대신해 줬으니 손 안 대고 코 푼 거 아니겠는가.  마침 자신의 집에 온 토마스는 존의 미소를 보고 내가 모르는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냐며 호기심을 드러낸다. 알면 경천동지할 일인데.  


물론 그렇게 초고를 잃을 수밖에 없는 칼라일에겐 비극적인 일이지만 원고는 쓰면 쓸수록 더 좋은 글이 된다는 건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아무리 유명한 철학자라고는 하나 어디 초고만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만들려고 하는가. 그건 완전히 날로 먹겠다는 거지.  아무튼 재미있었다. 주변의 등장인물과 배경을 살려서 이야기가 훨씬 풍성하고 코믹하다. 


'숟가락아, 구부러져라'라는 작품은 확실히 독자에게 작가가 386 세대라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준 작품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찌 보면 386 세대라면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유리 겔라를 아는지 모르는 가로 알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단순한 마술사가 아니었다. 초능력자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숟가락을 구부리는 신공을 펼칠 뿐만 아니라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따라 해 보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정말로 구부러지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이 숟가락이 구부러진 기적을 체험한 사람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기적이 늘 가능한 건 아니라는 것. 그 때문에 그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심지어 집을 나와 노숙자 신세가 된다. 또한 하나밖에 없는 딸에겐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숟가락을 구부린 기적을 잊지 못해한다.


왜 작가는 그때를 소환하는 걸까. 바로 그 386 세대가 오늘날 어떤 삶을 사는지를 작가 특유의 웃픈 현실로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당시 386 세대는 대단했지. 하지만 세월 흘러가면 그냥 추억을 먹고 사는 평범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마침 이 소설을 읽은 즈음 한 TV 프로에서 유리 겔라의 근황을 전하는 방송을 봤다. 역시 한번 초능력자는 영원한 초능력자인가 보다.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그에 대해 열광할 즈음이 미국이나 유럽 같은 데서는 그를 좋게 말해서 쇼맨 정도로 보고 외면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다 운 좋게도 우리나라를 만난 거지. 지금도 자신의 SNS를 통해 다소 황당한 주장을 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대통령 선거 때면 후보로 나와 황당한 공약을 펼쳤던 누가 생각나기도 했다.) 


우린 그때 유리 겔라에 열광했지만 그보다 앞서 프로 레슬링이나 프로 권투에 열광하기도 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린 그렇게 열광할 어떤 존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서 작가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소설 자체가 아니라 소설을 쓰는 시간들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작품은 무슨 대단한 의미보단 정말 이야기의 재미 그 자체에 많은 공력을 들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물론 모든 작품이 다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몇몇 작품은 그저 그런 범작도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작가는 장편에 특화된 작가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작품 속에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그건 일종의 작가의 트레이드마크 같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서 천명관 작가의 발견은 좀 늦긴 했다. 그래서 이제 와 이런 얘기 하는 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내줬으면 좋겠다. 나에겐 어떤 신통력이 있는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알아볼 때쯤에 문을 닫던가, 멀리 떠나던가 그러더라. 이 작가에게만큼은 나의 그런 신통력이 안 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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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7-13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별 넷이로군요?^^
혹시 <고래>는 읽어보셨나요?
전 아직 읽기 전이라 궁금하네요.

stella.K 2023-07-13 17:31   좋아요 1 | URL
네. 지금 읽고 있어요. 왜 부커상 후보에 올랐을까를 생각하며 읽고 있는데 마르께스도 생각이나고. 암튼 잘 쓰긴 했는데 갠적으로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가 젤 좋다는 느낌이어요.^^

니르바나 2023-07-14 0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생명력은 독자의 발견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스텔라님 처럼 자신의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
작가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니까요.
요즘은 그 가치가 하락했지만 전에는 얼마나 많은 예비작가들이
각 신문의 신춘문예에 응모하며 당선되기를 고대했는지 모릅니다.
좀 과장하면 요즘 로또 복권 당첨처럼 어려운 일이었지요.
사법고시 패스보다 제자의 신춘문예 당선을 높이 평가해주시던
소설가 황순원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stella.K 2023-07-14 10:41   좋아요 2 | URL
맞아요. 안타까운 일이죠. 첫 작품이 마지막 작품인 경우도 많고, 젊을 때 한창 이름을 나렸던 작가도 벌써 5,60줄 타면 작품활동 잘 안하잖아요. 옛날이나 그렇지 요즘 5,60은 원로축에 끼지도 못하는데ᆢ 독자들이 안 봐주면 위축도는 건 사실이지만 언제 독자들 보고 글 썼나요? 그냥 가오 잡고 계속 쓰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저같이 눈에 띄는 날도 있을텐데.ㅎㅎ

물감 2023-07-14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태클은 아닌데요, 저는 고령화가족 한 권만 읽어봤습니다...ㅎㅎㅎㅎ

stella.K 2023-07-14 10:4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럼 나의 삼촌 브루스 리까지만 보세요. 그럼 안 잡아먹지~요. ㅋㅋㅋ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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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니 오래전, 앞으로 소설을 쓸 사람은 필수로 시나리오를 배워야 한다고 하셨던 나의 사부의 말씀이 생각났다. 하지만 난 그때 그 말을 별로 믿지 않았다. 사부는 시작은 소설로 시작했다 후에 시나리오로 전향하신 분이셨는데 그냥 하시는 말씀이려니 했다. 소설은 소설처럼 쓰고,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처럼 쓰는 거지 뭘 새삼스럽게 그런가 싶었다. 그렇다면 소설이 본래 가지고 있는 형태나 의미가 퇴색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게다가 사부가 말씀하시는 건 상업화된 허리우드 시나리오를 가리키는 것일 텐데, 난 허리우드 영화에 대해 약간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그런 저항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사부가 말했던 그 전범(典範)을 보았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사부가 이긴 것이다. 


물론 내 멋대로의 생각이겠지만, 내가 사부에게서 공부했을 때가 2008년쯤 되었던 때다. 그 시절엔 이렇게 소설을 쓰는 작가가 없었다. 그나마 이 작품이 2012년에 나왔으니 2010년대나 들어서 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시기적으로도 나의 사부의 말을 어느 정도 부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알게 된 건데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작가의 또 다른 작품 <고래>가 2005년도 작품이며, 작가는 이미 그 작품에서 그런 시도를 했었다고 한다. (난 아직 이 작품을 읽지 못했다.) 유구무언이다.                   


물론 굳이 소설을 영화처럼 쓰지 않더라도 훌륭한 소설은 많고, 사부의 그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으로 소설을 쓸 소설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영화적 글 쓰기가 뭔지 그 전범을 본 이상 나에겐 개안에 가까운 경험임엔 틀림없다.  


사실 영화적 글 쓰기라는 건 설명하기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소설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쓰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소설을 시나리오의 기법으로 쓴다는 말이다. 


그때 나의 사부는 말씀하셨다. 시나리오 쓰기가 소설 쓰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렵다고. 나는 그 말도 역시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니 사부의 말씀이 완전 이해가 갔다. 흔히 침대를 두고 과학이라고 하는데 영화야 말로 과학이다. 즉 쓸데없이 존재하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처음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시간이 갈수록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뭐 일종의 추리 기법과도 비슷한데 이것이 곧 시나리오다. 


그런데 그 형식을 소설로 썼다면 이게 또 단순히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시나리오는 그 영화의 설계도란 말이 있다. 그래서 작가 특유의 문체 같은 건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차피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니까.) 그냥 누구라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만 쓰면 된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를 소설로 옮긴다고 생각해 보라. 무엇보다 작가 특유의 문체가 살아 있어야 한다. 그 또한 만만한 작업은 아닐 터. 소설 쓰기가 더 어렵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어려운 작업을 천명관 작가는 자꾸 해냈다. 한때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판을 굴렀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구나 싶다. 


물론 앞서 나의 사부가 그런 말씀을 했다고 해서 시나리오 작가 모두 소설 쓰는데 유리할 거라고만 보지는 않는다. 시나리오 작가가 소설을 쓰는 건 또 다른 문제고, 새롭게 공부하고 개척한다는 뜻이겠구나를 이 책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단지 자신이 익힌 시나리오 작법이 이롭게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렇게 생각하면 미안한 얘기지만, 기존의 소설가들은 서사 보단 문체에 집중하고, 주인공 외에 나머지 등장인물은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는데 더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작품을 보면 주인공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에 라이프 스토리가 확실하다. 그리고 그것을 작가는 새끼 꼬듯,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능청스럽게 잘도 엮는다.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 역시 계획이 다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사라진다. 그러니 시나리오 쓰기보다 소설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단역은 있을지 몰라도 하찮게 존재하는 인물은 없다고 한다. 하다못해 엑스트라도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보이기 때문에 쓸데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어떤 인물일지라도 언제 나타났다가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합리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천명관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보여준다. 예를 들면, 내가 기억하기론 도치란 인물이 초반에 나왔다가 가장 먼저 사라지는 인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도치는 그렇게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캐릭터고, 어떻게 최후를 맞고 이야기 바깥으로 사라지는가 확실하게 보여 준다. 또한 토끼는? 마 사장은? 언제 나타나도 평범하게 사라지는지 법이 없다. 


그런 만큼 인물 하나하나도 그냥 대충이 없다. 예를 들면, 오순의 경우도 그렇다. 얼핏 그 이름만 보면 촌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오순이야말로 전갈과 같은 여자다. 그런데 비해 마 사장은 표독스럽지만 내면의 연약함을 가지고 쓸쓸히 죽어간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등장인물의 끝판왕은 역시 주인공 권도훈이다. 어찌 보면 가장 불온하고 연약한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인물처럼 외유내강형의 인물도 없다. 또 주인공답게 최후까지 살아남아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한다. 특이한 건 권도훈은 말이 없다. 그리고 정중동의 사람으로 죽음도 그를 비켜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그리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어떻게 이런 인물을 창조해 낼 수 있을까. 보면 볼수록 놀라운 캐릭터다.  


게다가 이소룡을 추종하고, 원정이란 여자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현대사(1권에서)와 영화사(2권)를 아우르고,  80년대 삼청교육대를 다녀오고, 살인자로 누명을 쓰고 도피 생활을 하지만 오로지 원정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꺼이 영어의 몸이 되며, 결국 그의 바람대로 나이 들어 사랑을 이루는 고진감래, 사필귀정의 인물이다. 


그런 걸 보면 예전에 보았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나기도 한다. 포레스트가 지능이 떨어지는 인물인지만 미국의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그가 있었고, 무엇보다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인물 아닌가. 모르긴 해도 작가는 이 영화에서 모티프를 얻어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도훈이 끝내 사랑을 이루는 것을 보면서 사랑을 믿지 않는 세상에서 우직한 바보만이 사랑을 이루는구나 하면서 이내 뭉클하기까지 했다. (최고의 사랑엔 최고의 서비스만을 바라지 않는가.) 그러면서 사람이 여러 가지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한 가지만이라도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잘하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연스럽게 믿음과 사랑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불신의 시대에 믿음을 얘기할 수 있을까? 이 세대는 사랑이 가능한가? 예수님도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하시지 않으셨나. 그렇게 묻는다는 건 정말 몰라서가 아니라 통탄하셨기 때문이고, 있기를 바라서가 아닌가. 사랑과 믿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겠는가. 이 이야기는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 도훈이 있을 것만 같고, 없다면 꼭 있기를 바라게 된다. 


천명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그런 말을 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런데도 왜 구원 없는 실패담을 읽는 것일까?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그 불행과 실패 속에서도 여전히 구원을 꿈꾸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하지만 난 읽는 내내 어린 왕자를 탄생시키고 별이 된 생텍쥐페리를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는 생텍쥐페리의 후예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지난 몇 달간 개인적인 일로 꿀꿀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정말 즐거웠고 행복했다. (난 만화책은 사람을 웃길 수 있어도 소설이 이렇게 웃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작가들은 독자들이 좋은 책을 읽으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해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험하고도 지루한 세상에서 재밌는 책을 읽을 수 없다면 그 얼마나 삭막하고 불행한가. 


개인적으로 이렇게 재밌고 훌륭한 이야기가 왜 지금껏 영화화되지 않았던 건지 의아스럽다. 비록 부커스상 후보에서 만족해야 했지만 그런 권위 있는 상의 후보는 또 아무나 하겠는가. 이 기회에 주목을 받았으니 그의 작품이 영화화될 날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이 작품은 소설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텍스트가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조만간 다시 읽어봐야겠다. 

작가의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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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6-27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요즘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영화 관련 단어 중에 <각색>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설을 시나리오화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만큼 예전에는 소설을 영화화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각색을 잘 했던 분이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 작가입니다.
김승옥 작가가 쓴 소설을 읽으면 영화 장면이 그려지는 것을 보면
작가 스스로 나중에는 영화화를 전제로 소설을 쓰시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소설 쓰고 각색하다가 스스로 영화감독도 했지요.
또 다른 인물로 소설가 최인호씨도 같은 경로로
소설가, 각색 그리고 영화감독까지 했구요.
스텔라님이 쓴 천명관의 소설 리뷰가 이 책을 다시 회생시킨 글로 남지 않을까 싶어요.^^

stella.K 2023-06-27 09:49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저도 그 두분에 대해선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근데 워낙 오래된 분들이라 떠올리기가 쉽지않았네요. 그리고 굳이 말하면 두분은 소설가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던 분들이고, 그렇게 시나리오를 간간히 썼던 반면 천명관은 아예 소설로 전향했다는 거죠. 행로도 소설에서 시나리오로 나갈 거 같지만 이분은 시나리오에서 소설로 갈아탔다는 거죠. 리뷰에서도 밝혔지만 그건 또 다른 공부고 작업이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이 소설 정말 재밌었습니다.
참고로 니르바나님께만 말씀 드리는건데 그의 소설집은 별로예요. ㅋ

책읽는나무 2023-06-27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천명관 작가의 소설 중 유일하게 읽었었는데 아주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고래>도 재밌으려나요?
옛날에 독자들 평이 좋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스텔라 님 리뷰를 읽으면서 브루스리 삼촌은 확실히 영화에 나올법한 캐릭터 같단 생각이 듭니다. 소설도 영화 보듯 장면들이 생생했던 것도 같구요. 시나리오 작가가 됐었어도 잘 풀렸으려나요?^^
예전엔 시나리오 같은 소설들이 굉장히 재밌게 생각되어지긴 했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었는지? 잔잔한 인생 이야기가 왠지 더 끌리고 감동스럽게 느껴져 소설 취향이 바뀌어감을 느낍니다.
그래도 <고래>는 꼭 읽어보고 싶네요.
책장에 사다 놓은지가 몇 년째인지????
책등이랑 책장이 바래져 있네요.ㅋㅋㅋ

stella.K 2023-06-27 19:10   좋아요 1 | URL
ㅎㅎ 이마도 천명관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이미 시나리오를 썼다 소설을 쓰는 거거든요.
작품도 여러 권 되고. 나이들면 영화 감독도 영화판을 떠나는데
시나리오 작가라고 안 떠나겠어요?
모르긴 해도 천명관 작가는 소설로 전향해서 성공한 작가는 아닌가 싶어요.
장르소설에선 이렇게 쓰는 작가들이 많을 거예요. 특히 미국 소설가들.
근데 우리나라 순수 문학에서 이렇게 쓰는 작가는 드물지 않나 싶어요.
없진 않겠지만 대중에 알려지기는 쉽지 않겠죠.
저도 <고래>를 얼마 전 적립금 탈탈 털어서 중고샵에서 샀는데
지금 전 그의 소설집을 읽고 있는데 그건 그닥 재미가 있진 않더군요.
그러다 보니 고래는 또 재밌을까? 은근 걱정중이어요.
외국 사람들 우리나라 작품 이상하게 쓴 거 좋아하잖아요.ㅎ
근데 얼마 전 레삭매냐님 리뷰 읽어보니 재밌다고 하셔서 읽어 볼 생각입니다.
천명관 작가는 아마도 30년 안에 무리나라 현대 문학사에 이름을 올릴만한
작가는 아닐까 싶어요. 계속 글을 써 줬으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23-06-29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리하여 천명관 작가의 시대가 탄생하게 되나 봅니다. 신문에 부커상 후보로 나올 때부터 심상치 않다 했어요. 재밌는 소설이라고 하시니 관심이 가는군요.
위즈덤하우스 책이 잘 팔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장사를 잘하는 출판사랄까, 그런 느낌이에요.
책 기획에 공을 많이 들일 것 같은 출판사, 게다가 작가를 보는 안목도 있고 그런 출판사 같아요.
이 책이 4백 쪽이 넘더군요. 두 권을 합하면 8백 쪽이 넘겠군요. 올 여름 더위를 잊으시고 지내시게 만들 소설 같군요. 저도 올 여름은 더위를 잊을 만한 책을 몇 권 쌓아 놨어요. 그나마 책에 빠져 이 더운 여름을 버텨 보려 합니다. 리뷰 잘 읽었어요. 좋군요.^^

stella.K 2023-06-29 19:4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예담이 위즈덤 하우스의 임프린트였네요.
근데 ‘나의 삼촌- ‘도 그렇고 ‘고령화 가족‘은 표지가
별로 맘에 들지 않더군요.
고령화 가족‘만이라도 리커버로 다시 나와줬으면 좋겠어요.ㅎ
전 요즘 그의 소설집 읽고 있는데 앞에 두 편 정도만 좋고
내내 이거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비행기‘란 중편소설은
괜찮더군요. 여성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하며 읽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라는 건 인정해야겠더군요.
장편이긴 하지만 금방 재밌게 읽을 수 있어요.
나중에 함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