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arthian Tales 어션 테일즈 No.1 - alone
김보영 외 지음 / 아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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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우리나라에 문학잡지의 수가 꽤 되고 얼마 전부터는 특정 장르만을 전문으로 한 문학잡지도 나왔다. 그렇다면 다른 장르의 문학잡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이렇게 SF 문학의 창간호가 나와 주었다. 다양한 문학 전문 잡지가 나온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새삼 이게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을 떠난 사람은 얼마나 억울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디자인이나 만듦새도 뭔가 모를 포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책 책상이나 서가에 꽂혀 있으면 흐뭇해지며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다. 언뜻 보기에 잡지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봐 앞으로 허투루 만들지 않겠다는 이 잡지만의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이나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벌써 오래전에 SF 전문잡지가 나온 것을 생각할 때 많이 늦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아직 마니아층이 그다지 두텁지가 않으니 그럴 것이다. 내가 기준이 될 순 없겠지만 SF에 대한 나의 이력은 어렸을 때 본 TV 시리즈 '스타워즈'와 '스타트랙'이란 양대산맥이 있었고, 만화로는 '은하철도 999'와 '캐산(?)'이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본 영화로는  <인터스텔라>나 <마션>, <반도>(이 영화를 액션물로 구분했는데 내가 볼 땐 SF라고 생각한다) 정도가 얼핏 떠오를 뿐이다. 90년대부터 간간히 드라마도 만든 것으로 아는데 작품성은 몰라도 그다지 흥행을 논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전문작가를 양성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 분야가 발전하려면 문학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 근래 부쩍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SF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잡지만 하더라도 내가 모르는 작가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하긴 문학 전반에서 활동 작가의 수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매체가 증가되었으니 그럴 것이다. 이 잡지도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 시, 만화, 평론, 인터뷰 등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SF를 말하고 표현하는 줄은 몰랐다.  


물론 난 전문가가 아니니 수준이나 성과를 논할 순 없지만 수준을 말하기 전에 일단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이런 잡지가 나와주면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기도 좋고 독자 역시도 다양한 작품을 읽을 수 있어 좋을 것이다. 


좀 놀라운 건 여성 작가들이다. 얼핏 여성 작가들은 SF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물론 전체적인 비중은 그리 크진 않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꽤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하긴 외국만 해도 르귄이나 머거릿 애트우드 여사는 이 분야에선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고 동시에 원로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늦게 시작한 만큼 아직 젊은 분야다. 그만큼 가능성이 많기도 하다. 


그런데 SF의 공식은 디스토피아인가 새삼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들의 분위기가 밝지마는 않다. 느낌도 쇳소리가 많이 나는 것 같고. 하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렸을 때 봤던 SF 만화에서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켜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고 지배하는 암울한 세계를 그린 작품이 있었다 (앞서 말한 '캐산'인지도 모르겠다). 그걸 보면서 덩달아 나도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솔직히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겠는가. 그게 꼭 로봇이 아니고 다른 것을 대입시켜도 말이 된다. 예를들면 산업폐기물 같은 거 말이다. 사람 편하지고 뭔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어느 날 수명이 다하고 쓰레기가 되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AI는 우리의 피부만큼이나 접촉성이 강한 물질이 되었다.  


그래도 이 책에서의 단연 압권은 곽재식의 단편 '백세 포스터 그리기 대회'다. 이 작품은 이제 의학의 발달로 영생을 살게 된 사람들에게 100세만 살자고 권장하는 포스터 대회를 여는 어느 학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풍자적이면서도 빵 터지는 것이 엄지 손가락을 높이 쳐들게 만들었다. 그래도 역시 우울하다. 작품이 아니어도 우린 100세까지 살게된 게 축복이냐 저주냐 말들이 많지 않은가. 이 작품은 그걸 휠씬 뛰어 넘는다. 그나마 우울하지 않게 그렸다는 점에서 곽 작가의 재능에 환호할 뿐이지.  


하지만 SF는 미래에 과학의 발달로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 그런 의미에서 다소 예언적 요소도 있으며(그것이 진짜든 꾸며낸 것이든) 어떻게하면 인류를 인류답게 할 것인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만한 장르도 없지 않나 싶다. 이제 뭐든지 우리가 만들면 세계적이 된다. 그래서 K로 시작하는 분야가 많아졌다. 난 앞으로 SF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K-SF의 무한한 발전을 응원한다. 이제 곧 통권 2호가 나올 모양인가 본데 모쪼록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순항했으면 좋겠다.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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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3-22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분야에서 남성의 수가 여성의 수보다 많은 걸 보면 아직도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남성 중심의 사회예요. 신문만 보더라도 필진의 남성과 여성의 성비는 8대2 정도 된다고 합니다.
SF 분야에선 여성 작가가 많았으면 싶네요. 티브이 드라마 분야가 그나마 여성 작가의 뛰어난 활약이 있었죠.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만든 로봇의 지능이 너무 발달해 우리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ㅋㅋ 이 비슷한 영화를 보기도 했고요. 먼 미래의 일이라서 제가 사는 동안은 일어나지 않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stella.K 2022-03-22 18:20   좋아요 2 | URL
지난 주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 보니까
밀레니엄버그를 다루더라구요.
그제야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웃었죠.
뭐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요?
한 23,4세기쯤 있을까 말까한 일이겠죠.ㅋ
그런 영화 뭐가 있는지 생각 나시면 갈켜 주세요.^^

희선 2022-03-23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직 많지 않을지 몰라도 꾸준히 SF 쓴 사람은 있는 듯해요 새로운 사람도 나오고... 이런 잡지가 나오다니 잘됐네요 아작은 SF 소설을 주로 내는 곳이군요 거기에서 잡지도 만들었군요 이 잡지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희선

stella.K 2022-03-24 18:06   좋아요 1 | URL
머지않은 미래에 sf작가들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울나라는 거의 전인미답의 분야기도하니. 다음 달에 나올 2호도 잘 생겼더군요. 저는 잡지는 별로 성실하게 못 읽는데 그래도 가급적 창간호는 갖고 싶더군요. ㅎ
 
기타 등등의 문학
전성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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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문학집배원을 자처하고 독자들에게 부친 편지들 가운데 엄선해서 책으로 묶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문학을 구독 서비스를 했었던 모양이다. 나도 몇 년 전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젊은 작가에게 구독료를 지불하고 보내주는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다. 그때 정성스럽게 쓴 작가의 글을 보고 꽤 감동한 적이 있다. 나도 이젠 어느새 구세대에 속하는 사람이 되어버린지라 구독하면 신문 밖엔 생각 못했는데 이제 구독은 다양하게 널리 퍼져있다. 그중 문학을 구독한다는 건 놀랍긴 하다. 또 이렇게 문학을 구독한다면 앞으로는 과학이나 다른 분야의 전문 작가도 이런 구독 산업에 뛰어들지 않을까. (내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그렇게 하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쓰기 전에 먼저 읽어야 하는 존재이긴 한가 보다. 이 당연한 전제를 이 글을 읽으면서 또 한 번 확인한다. 저자가 문학집배원 활동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했을까. 작가들이야 2, 3일에 한 권 또는 하루 만에도 책 한 권을 뚝딱 읽어 치우는 존재들 아닌가. 일일이 책을 읽고 그것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꽤 바빴을 것 같기도 하다.  


형식은 이렇다. 읽은 책을 요약하기보단 인상 깊은 내용을 골라 싣고 저자의 생각을 엽서 한 장에 들어갈 길이의 글을 썼다. 그렇게 짧게 쓴 이유가 있어 보이긴 한다. 좋은 글을 음미하고 독자의 생각을 더 깊게 해 보라는 나름의 전략이 있지 않을까. 처음엔 너무 한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런 저자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늘 도톰하고, 글 많고, 눈과 마음도 사로잡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하는 나에겐 좀 아쉽긴 하다. 나는 늘 남의 생각이 궁금한 사람이라서 말이지. 이런 책들을 읽고 저자의 생각은 아주 조금 밝히는 건 독자에겐 배 배신이야, 배신.


그래도 아주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머리말에 나오는 박영근 시인을 어찌 알았을까. 저자는 박 시인이 책을 참으로 아끼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계절마다 발표되는 시, 소설, 비평을 망라하여 꿰고 있고 술에 삭혀 전하는 감상이 일품이라고 했다. 그뿐인가, 박성원의 소설 <하루>를 소개하는 장에서는 짧지만 도회적이면서도 강렬한 구성이 좋았다. 와, 우리나라에 이렇게 쓰는 작가가 있다니. 한 번 그의 작품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저자는 당신의 하루는 어땠냐고 묻기도 한다. 그리고 글 말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내는 하루의 종합은 12억 시간. 지구인들의 하루의 총합은 1600억 시간이라고 알려준다. 뭐 천문학적인 숫자고 시간이라고 밖에는 말 못 하겠지만 그렇게라도 수치로 밝히고 있으니 오히려 현실적이고 개개인에겐 얼마나 귀한 시간일까 감이 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진짜 웃겼던 건, 이정록의 <교무수첩에 쓴 연애편지> 중에서다. 내용은, 이정록 시인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음 해에 모 출판사에서 나눠준 교무 수첩을 고향집에 두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어머니가 뭘 쓰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수첩에 뭘 쓸 만큼 학식이 있으셨던 분도 아니었다. 시인은 군 복무 때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있는데 어머니의 글은 한글 받침이 항상 빠져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시작이 "사라하느 내 아더라" 그러면 시인은 울컥했다. 그런 어머니가 세상 떠나가신 분 그리워 그 교무수첩에 연서를 쓴 것이다. 그게 묘하게 시인의 마음에 질투가 났다 보다. 아버지가 누구한테 연서를 받을 만큼 대단한 분이 아니다. 술주정에 긴 병치례를 하고, 가난한 농사꾼이면서 집안사람에겐 인색하고 남에겐 한 없이 후한 그야말로 집안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가장인데 그런 분을 향하여 연서를 쓰니 신경이 쓰일 밖에.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조용히 이해시킨다.  


한 번은 어머니를 안고 블루스를 추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자신에게 안기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입방아를 놨다고 한다. "어머니, 저한테 남자를 느껴유, 어째서 자꾸 엉치를 뺀대유?" "아녀, 이게 다 붙인 거여.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런 겨. 미친놈. 남정네는 무슨?" 순간 어머니의 볼이 붉어졌다고. 그러면서 "가상키는 하다만, 큰애 니가 암만 힘써도 아버지 자리는 어림도 읍서야." 이 이야기는 사랑받는 일에서만큼은 정말 아버지가 부럽다고 맺고 있다. 


재밌지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은 지가 한참 되었는데도 지금 생각해도 배시시 웃음이 난다. 이런 발견의 즐거움이 없다면 우리가 뭐 때문에 글을 읽겠는가. 이런 글은 예전 같으면 어떻게 발견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긴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건 발견의 기대 때문은 아니겠는가. 평소 쉬거나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무엇을 하는가. 대부분은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고 하겠지. 그럴 때 어느 작가가 보내주는 편지를 받아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일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출판사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이 책은 굳이 안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지구인들의 하루의 총합이 1600억 시간이라고 할 때 저자의 한 통의 편지를 보내는 시간은 1초에도 해당하지 못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쓰고 누군가는 읽으며 뭔가를 생각하게 된다면 그 시간은 또 다른 차원에서 무한대로 증식할 것이다.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작가와 독자가 직접 받는다는 현재성을 누려봤으면 한다. 해 봐서 아는데 나름 묘한 짜릿함이 있다. 작가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당신의 이메일을 보라. 무엇이 들어와 있는지. 거의 대부분 각종 고지서 아니면 연동해 놓은 SNS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 가운데 작가가 보내주는 글 하나쯤 끼어 있으면 그도 나쁘지 않다.  


독서 에세이는 이제 너무 많아졌다. 물론 그건 여전히 나의 관심 대상이긴 하지만 일부러 거리를 두고 읽으려고 한다. 읽으면 책에 대한 안목을 키워 줄 테니 좋긴 하겠만 이제 눈도 안 좋고, 집중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있는 책이라도 잘 읽어두자는 쪽이다. 물론 반대로 어차피 책을 읽는 건 한계가 있을 테니 이런 책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는 척하기에 좋지 않은가. 적절한 조화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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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2 20: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정록 시인 이야기 재미있네요. 저는 이 분 의자 란 시 생각나요. 그 시에도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는데 참 따뜻한 분이란 생각 들었어요 ~

stella.K 2022-03-13 20:08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저는 이름은 들어 본 것 같은데 시는 문외한이라...
글을 이렇게 쓴다면 한번쯤 읽어보고 싶기도 해요.^^

얄라알라 2022-03-22 11:30   좋아요 1 | URL
시를 잘 모르는 저이지만, 이정록 시인의 시집 가을철에 읽고 따뜻해했던 기억이 나요
시인의 어머님 말씀을 많이 옮겨다 쓰셔서 더욱 따스했었네요^^

기억의집 2022-03-12 2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엽서 한장으로 압축은 아마 긴 글은 안 읽기때문에 딱 저 정도 분량의 글이 알맞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였을까 싶어요. 저는 문학은 아닌데 김복준교수님(전형사이셨던 분)의 편지 신청해서 받아 읽어요. 교수님의 사적생각도 범죄에 대한 생각도 들어 있어서 편지 서비스 괜찮더라구요!!!

stella.K 2022-03-13 20:11   좋아요 1 | URL
맞아요. 긴 글은 사람들이 안 좋아하죠.
근데 김복준 교수라면 저도 아는 분 같아요.
그분도 그렇게 하시는군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기억의집 2022-03-13 23:42   좋아요 2 | URL
112case.gr8.com 에서 신청하시면 되세요! 저는 이 분 유튭 다 들었는데 정말 좋으세요!!

프레이야 2022-03-12 2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곱슬머리 이정록 시인 좋아해요. 부산에서 강연을 들은 적 있는데 이야기도 참 재미나고 의미있게 하더군요. 시도 참 좋아합니다. 시인의 서랍,에는 그의 시쓰기 마음이 담겨 있어 좋아하고요.

stella.K 2022-03-13 20:14   좋아요 1 | URL
ㅎㅎ 곱슬머리군요. 정말 재미있으실 거 같아요.
금관심입니다. 한 번쯤 읽어 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2-03-12 22: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학집배원이라는 말이 새롭게 들립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하는데 작가들은 정말 책을 많이 읽더라고요.
읽는 능력도 타고난 사람인 것 같아요~~
작가에게 글을 배달받는 일은 두 세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부터는 식상해질것도 같아요^^

stella.K 2022-03-13 20:18   좋아요 3 | URL
ㅎㅎ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책을 항상 끼고 사는 사람 보단
잘 안 읽는 사람에게 이런 유용하죠.
그러다 책을 사 볼 수도 있고.^^

희선 2022-03-14 0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정록 시인 하면 어머니 말씀을 받아 적은 시집이 생각납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이 말 한 것 같기도 한데... 다른 분한테 했을까요 그 시집 제목은 《어머니 학교》네요


희선

stella.K 2022-03-14 15:40   좋아요 2 | URL
아, 그게 그 책에 수록된 건가요?
솔직히 엮은 양반이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놓지 않아서
도대체 어디에 이런 내용이 있는 건가 궁금했어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껍데기는 가라 -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와의 대화 이슈북 1
함세웅.손석춘 지음 / 알마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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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길사)란 책을 읽다 함세웅 신부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더 정확히는 그가 이끌었던 '정의구현 사제단'이다.  사제복을 입은 사제들이 민주화의 중심에 서서 정의를 외치는 모습을 상상하니 뭔가 모를 전율이 느껴졌다. 철없던 시절 신부들이 데모한다고 좋지 않은 눈으로 본 적도 있었는데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러던 중 얼마 전 함세웅 신부가 EBS의 한 대담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나온 것을 알고 VOD를 챙겨 보기도 했다. 


TV에 나온 함 신부는 작은 체구에 단아한 분이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정의구현 사제단을 이끌었을까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지금은 은퇴해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나름 바쁜 일상을 살고 있었고, 신앙으로 단련되서일까 아니면 노년이 주는 여유로움 때문일까 얼굴엔 온유함과 인자함이 감돌았다. 그리고 내친김에 이 책까지 읽었다. 


정의구현 사제단의 공식 명칭은 '천주교 정의 구현 전국 사제단'이다. 1974년 7월 원주교구정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라는 양심선언으로 구속되어 징역 15년형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태동되었다고 한다. 그해 9월 26일 서울 명동성당 기도회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로 시작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사제의 양심에 입각해 교회 안에서는 복음화 운동을, 사회에서는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활동하겠다는 다부진 결기를 밝히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은 정의구현 사제단을 알리기 위한 책은 아니고 지난 2012년 함세웅 신부와 손석춘 언론인과 함께 나눈 정치비평 대담집이다. 말이 정치비평이지 우리나라의 굴곡진 현대사를 몸소 겪어 온 생생한 증언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 현대사를 얘기할 때 당연 역대 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데 각 정권에 대한 비판이 거침없다. 


공교롭게도 그는 초두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한다. 난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나쁜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잠시 대령통직을 정지당했을 때도 왜 그래야 하는 건지 어안이 벙벙했다. 대통령 하다 총 맞고 쓰러지는 일은 있어도 이런 일이 다 있을 수 있나 의아했다. 그러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그에 관한 책을 읽고 거의 통곡하다시피 한 적이 있는데 함세웅 신부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평소 노 대통령에게 직언하기를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대통령은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대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함세웅 신부가 기억하는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너무 폐쇄적이었다는 평가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는 대통령에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너무 비판적이 되거나 아니면 감정적이 되던가. 노무현 대통령의 말로를 생각할 때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함세웅 신부의 말을 놓고 볼 때 자초한 면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또한 지금까지 난 김재규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또 그래야 할 필요성도 못 느꼈고. 이미 지나간 역사 아닌가. 한때는 우리나라에 대통령은 박정희 한 사람 밖엔 없는 줄 알고 살았던 때도 있었다. 그 기간이 독재의 역사이고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 그가 김재규가 쏜 총탄에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저 충격과 비탄의 마음만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속속 드러난 박정희의 정체와 만행은 알겠는데 김재규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죽게 만든 사람 아닌가. 그런데 함 신부는 달랐다.


그때 함 신부는 교도소에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가 슬퍼서가 아니라 드디어 우리나라에 독재가 종식되고 자유가 오겠구나 좋아서. 그는 그것은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폭압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출소 후(그것도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김재규 구명에 나서기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함 신부는 김재규가 상당히 바른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그가 박정희를 살해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박정희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차지철과의 통화를 들으면서부턴 데 둘이 그랬단다. 캄보디아에서는 200만 명을 잡아 죽였는데 여기서는 100~200명만 죽이면 된다고. 그러자 박정희가 그 발포명령을 자신이 직접 할 것이며, 내가 하겠다는데 누가 날 어떻게 하겠냐고 했단다. 단순히 김재규가 박정희를 증오해서가 아니다. 박정희를 살려두면 이 나라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공대처럼 김재규를 도왔던 몇몇과 그 일을 감행했다. 이 사실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도 나온 내용이기도 하다. 이 책에 의하면 박정희는 사생활이 상당히 문란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독재를 해 온 사람의 말로가 그렇듯 박정희의 말로도 별 다르지 않았다는 건 여러 사람에 의해 증언된 바 있으니 과언은 아니겠다 싶다. 


하지만 역시 대한민국은 왕정이 아닌 만큼 그 어떤 식으로도 살인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모양인가 보다. 김재규는 그렇게 사형을 당했어도 앞서 말했던 함 신부를 비롯한 구명을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 김재규의 복권을 위해 힘썼지만 안 됐다고 아쉬워했다. 모르긴 해도 거기엔 박근혜를 비롯한 박정희의 잔당들이 아직 살아 있는데 복권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까 싶다. 그것과 관련해서 함 신부는 지금의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원죄와 군부독재를 청소하지 못한 역사적 죄과 때문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코로나에 온통 휩싸여 이 말이 먼 메아리처럼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고맙게도(?) 이젠 일본이 수시로 그것을 일깨워 주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함 신부는 애초부터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책이 2012년에 나왔던 것을 감안할 때 확실히 그의 말이 맞았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 했다.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굴욕적으로 합의를 이끌었으니 함 신부의 말이 맞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죄다. 보수는 박근혜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함으로 보수의 면모를 보이려고 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오히려 수구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 되었고 역사를 오히려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박정희의 잔당이 아직 건재하다고는 하나 이제 그를 기억하는 사람 보단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보수의 길을 수구에서 찾는 건 너무 시대착오 아닌가. 역사는 진보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러면서 함 신부는 이후 나타난 각 대통령에 대한 공과와 비판을 거침 이어 갔다. 그렇지만 한 가지로 말하는 건 누구의 정부이든 간에 정권을 잡고 나면 후에 안일해지고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문득, 내가 이 책을 좀 잘못 선택하긴 했다. 난 그저 정의구현 사제단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을 뿐인데 웬 대통령에 대한 공과와 비판이란 말인가. 하지만 읽다 보니 지금이 대선인 걸 생각하면 읽기를 잘했단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마음 한편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누구를 뽑아야 하는 것인가. 이런 책은 대통령을 바라보는 눈만 높여놨지 과연 앞으로의 대한민국에 도움이 될 대통령이 누군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사람을 보지 말고 공약을 보고 선택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물론 공약 없는 후보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매일 쏟아내는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서 저걸 임기 내에 다 이루겠다고? 영끌 아니야 악마에게 영혼을 팔 건가 싶기도 하다. 


현대사를 돌이켜 볼 때 과연 우린 대통령을 선출하면 선출할수록 행복했는가? 잘 살게 되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후자 쪽에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과연 대통령 선거가 의미가 있는 건가 회의가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크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공약보다 더 중요한 건 훗날 그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또 역사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느냐는 건데 과연 그게 공약만 이행했다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대 비리가 없는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은 또 몇 가지로 압축되지 않을까. 탁월한 지도력으로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하고, 취임에서 퇴임까지 청렴해 주길 바라는 것 뭐 그런 사소한(?) 건데 과연 이런 대통령이 없단 말인가. 흐흑~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이젠 대통령의 공약 보다 더 중요한 건 그 후보가 과거 어떤 정책을 펼쳤으며 주위로부터 어떤 평판을 들어왔는가가 가산점으로 작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건, 대통령이 누가 됐든 국민보다 앞설 수는 없다. 그래서 나라가 민심이고 민심이 곧 나라라고 했는가 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배출시키는 나라가 아니란 말이다.  지난 세월 민주화에서 대통령 파면까지를 거쳐 오면서 우리는 정치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는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확실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대통령의 도덕성과 청렴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결국 또 지켜볼 일이다.


책이 얇지만 묵직하다. 길쭉한 판형도 독특하고. 몇 년된 책이지만 역사책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읽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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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2-12 16: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러 생각들이 드는 글 입니다.
지나간 순간들은 번쩍임과 아쉬움이 동시에 있는 것 같아요~~
유독 이번 선거는 누굴 뽑을지 고민이 되는데 대한민국의 인재가 이 정도밖에 없는지에 대해 우울해지기도 해요^^

stella.K 2022-02-12 18:24   좋아요 2 | URL
이번 대선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저 역시도 그렇고.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역사적으로 보면 결국
나라를 지키는 사람은 왕도 대통령도 아니었습니다. 국민이었지.
누가 대통령이되든 이것마는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이 후져도 나라는 세계 10권의 경제 대국
아닙니까? 문화적으로도 뛰어나고.
그 긍지가지고 살아야죠.
국민이 정치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도 좋은 나라가 진짜 좋은
나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놈의 특권의식, 관료주의만 없어도 진짜 좋은 나라될 텐데...ㅎ

기억의집 2022-02-12 2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이이제이에서 김재규 들었는데.. 김재규가 박정희가 차지철을 엄청 신뢰하면서 금이 간 거라고 하더라구요. 차지철이 진짜 건방이 하늘을 찌를 듯 해서.. 박정희 외에 위아래가 없었다고.. 김재규와 박정희가 사이가 벌어지면서 그 사이를 차지철이 메꾸고.. 김재규가 바른 사람 같지는 않던데.. 혹 시간 나실 때 이이제이 김재규 편 한번 들어보세요. 시끄러울 수 있는데 이동형이 진짜 시끄러워서 정신 사나울 수 있어요!!!

stella.K 2022-02-13 08:08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바른 사람이라면 사람을 죽였겠나 싶더라구요. 그런데도 함 신부는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구요. 정치계 사람들은 알 수가 없어요. 누구는 좋다고 그러고 누구는 나쁘다고 그러고. 그래서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해요.

mini74 2022-02-13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통령이 누가 됐든 국민보다 앞설 수는 없다 는 스텔라님 글 마음에 와닿습니다. ㅠ

stella.K 2022-02-13 18:31   좋아요 1 | URL
아웅~ 고맙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요즘에야 우리나라 현대사에 관심이 생기더라구요. 예전에 제5공화국 같은 드라마 별로였는데 지금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ㅋ

레삭매냐 2022-02-14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희 사촌 형님이 신부님이신데
저희 아버지가 어느 자리에서
정의구현 사제단에 대해 비판하
시면서 슬쩍 형님의 의중을 떠
보셨는데...

형님이 당신도 그쪽이라는 말에
아버지가 식겁하시던 기억이 납
니다 ㅋㅋㅋ

예측불가 역동적인 코리안 완쉐이!

stella.K 2022-02-14 12:39   좋아요 0 | URL
오, 정말요? 대박!
사실 이 책에 의하면 정진석 추기경은 성격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며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도 사제단에 비협조적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어느 단체나 그런 어르신 꼭 있잖아요. 모난돌이 정을 맞을까봐 괜히 겁나는 거겠죠. 사실 그 시절 운동하면 빨갱이 짓 한다고 싸잡았잖아요.😅
 
빨간 머리카락 마담의 숙소 - 할머니의 우아한 세계 여행, 그 뒷이야기
윤득한 지음, 츠치다 마키 옮김 / 평사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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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행은 나와는 별로 인연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을 거의 신봉하며 살았고, 나이 들어선 기회도 없거니와(기회는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만) 관절이 좋은 편도 아니어서 걷는 게 자신이 없다.(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파파 할머닌 줄 알겠다. 그 정도는 아니고.) 그래도 내 인생 가장 젊은 시절에 사람들과 어울려 몇 군데 다녀봤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된다. 그것조차도 없었다면 쓸쓸해서 어찌할 뻔했나. 이런 내가 여행 에세이라고 좋아할 리 없다. 다 염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당장 떠날 수 없는데 무슨 대리만족인가.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읽어야 할 책은 차고 넘친다 그런 거에 마음 둘 세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다.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다. 저자의 나이가 구순이다. 해방을 거친 세대라는 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가 좀 개화기, 구한말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 말하자면 그 시대 신여성이라는 것만으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건 저자가 분명 한국 사람임에도 일본어로 쓰고, 번역을 일본 사람이 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저자가 젊을 때 남편 따라 일본에 정착했다. 그리고 지금도 70년 가까이 일본에 산다. 해방 전에도 국어 말살 정책으로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했으니 한국어와는 별로 인연이 없어 보인다. 그 점은 저자도 언감생심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책은 여행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간략하고 담백하게 쓴 저자의 자서전 같기도 하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게 있다.


저자가 한마디로 당차다. 남편이 재일교포로 사업가로 결혼 초기엔 나름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 하지만 곧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만다. 그땐 이해심이 많은 남편 덕에 미국의 시카고 대학 영화학과에 입학 허가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남편의 사업이 망했으니 호구지책으로 단추 디자인 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의외로 잘 돼 삶의 기반을 다지고 슬하의 자제들도 명망 있는 학자로 키워냈다.


저자는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뭐든 마음먹은 건 해내고야 마는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12년 우연히 TV에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성 가족 성당(사르라다 파밀리아)에서 미사 드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알다시피 그 성당은 아직도 건설 중에 있다. 그해 일부가 완성되어 미사를 드렸던 것이다. 보는 순간 저기를 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무려 여든셋의 나이에 말이다. 더구나 일본인 며느리가 저길 가야 되지 않겠냐고 부추기기도 했다. 저자는 무턱대고 성당이 있는 바르셀로나로 간다.


하지만 보는 것과 다르게 그때 드려졌던 미사는 그냥 성당 내부의 완성을 축하하는 특별 미사며 헌당식까지는 아직도 멀었다는 말을 듣는다. 순간 왜 주일 날 미사를 드리지 않느냐며 실망에 겨워 항의 아닌 항의를 하자 그곳 관계자도 좀 미안했던지 마침 주일 날 서품식 미사가 있는데 거긴 서품자와 직계 가족만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이 하나마나 한 얘기는 저자의 가슴에 활활불을 더 지핀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발길을 돌릴 수는 없다. 그런데 정말 궁하면 통하는 걸까. 마침 서품자의 직계 가족 한 사람이 자신은 사정이 있어 참석할 수 없으니 대신 참석하라고 한다. 여기서 교훈은 역시 되든 안 되든 질러는 봐야 한다는 거다.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말도 잘 안 통하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기왕 왔으니 성당 앞에서 기념사진이나 찍고 주변이나 돌아보고 갔겟지.더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남에게 아쉬운 잘 못하고 사정하는 게 익숙한 체질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부러라도 질러보면 의외의 길이 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미리부터 예단하고 가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자가 서품식 미사에 참여할 확률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훨씬 낫은 확률이다. 0.00001% 확률도 안 된다. 하지만 이건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기적과 같은 것이다. 미리부터 포기할 일이 아니다.


저자가 얼마나 당차냐면, 1965년 나이 서른여섯에, 평소 일본에 살면서 일본에 한국의 좋은 점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해 한일협정으로 두 나라의 교류가 활발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 유명한 도쿄 미쓰코시 백화점 6층 전층에 한국관을 한시적으로 열어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당시 전층을 빌린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 그런 만큼 언젠가 우리나라에 와서도 비슷한 전시를 했었는데, 그때 우리는 일본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때라 (지금도 좋은 건 아니지만) 우리가 뭐 그런 쪽바리의 문화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소극적이었단다. 그랬을 때 저자는 물러서지 않고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도공들이 일본에 가서 기술을 전수한 걸 생각해 보라며 일침을 가했단다. 대단하지 않는가.


사실 그런 저자가 누구냐면, 고 육영수 여사의 영어 교사로 한때 의자매처럼 지내기도 했다. 이만하면 인생 견적 나오지 않는가. 대대로 이어 온 소위 빼대있는 양반 가문의 여식이다. 저자의 어머니 또한 예사 분이 아니다. 분명 뼈대 있는 가문의 여식으로 자라지만 아버지가 가난한 양반 가문의 집으로 시집을 보낸다.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했고 남편의 무능함에 죽을 결심을 하지만 그즈음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고 자식의 교육과 남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저자나 저자의 어머니나 퀄리티가 남다르다 싶다.


이 책은 여행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시차의 구애받음이 없이 자유롭게 썼다. 그럼에도 뭔가의 삶의 궤적이 느껴진다. 아무리 가볍게 말해도 참 교양인다운 삶이 느껴진다. 더구나 저자는 여행을 마칠 때마다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를 남긴다. 예를 들면 1971년 저자의 나이 마흔둘에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굴을 먹고 이런 하이쿠를 읊는다.

   얼음덩이리

   부딪치며

  굴을 먹었네

  달팽이 가득

  담겨 서늘한

  은쟁반


또 앞서 미사 한 번 드리겠다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하고 가우디의 삶을 소개하고는,

  가우디의 꿈

 그대로 이루어진

  성당의 바람

  가을 날 햇빛

  가우디의 기도가

  이 미사에


몇 년전 이사카와 다쿠보쿠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책 <한 줌의 모래>란 단카집을 읽은 적이 있다. (단카는 우리나라 시조 같은 것으로 하이쿠와 형식이나 분위기가 비슷하다 .) 좋긴 하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확실한 상황과 분위기를 알고 읽으니 뭔가의 감흥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떻게 하이쿠를 알게 되었을까. 그건 마쓰오 바쇼(1644~1694에도 막부 전기의 시인이다. 아명은 긴사쿠(金作). 홋쿠라 불린 하이쿠의 명인.)를 좋아해서 하이쿠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이쿠의 주요한 특징은 열일곱 자의 엄격한 전형의 틀에 시적 긴장감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이다. 저자는 하이쿠 선생을 직접 찾아가 배웠다고 한다. 그건 머리가 좋거나 문학적 감각이 뛰어나지 않으면 접근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때그때 사물을 관찰하는 센스가 있어야 하고, 공감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하이쿠는 요즘으로 치면 스마트폰 카메라고 순간을 찍어두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그러면서 일본의 소화의 정서를 소개하기도 한다. 하이쿠가 소화 시대 때 꽃을 피웠으니. 저자는 소화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다도와 이케바나라는 일본식 꽃꽂이와 토키와즈란 일본 전통음악 등을 빼놓지 않고 소개하기도 한다. 특히 다도 하면 센노 리큐(1522~1591)를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난 이 책에서 그를 발견하고 좀 반가웠다. 오래 전, <리큐에게 물어라>(문학동네)라는 그의 전기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얼마나 좋던지. 이 책 읽어봤다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았는데 말이다. 저자는 그렇게 다도를 접하면서 우리나라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알겠지만 신라시대 때부터 우리나라 도공들이 대거 일본으로 끌려가 도자기 문화를 꽃피우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사람들 한국말 못 하는 경계인들을 은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한국말을 잘 못했다 뿐이지 알고 보면 우리 보다 더한 (찐)한국인이다. 외국 나가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 건 요즘 일본과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 양국 간의 문제는 문화교류가 아니면 방법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니 나는 저자보다는 아직도 젊은데 생각은 젊지 못하구나 싶다. 여행도 여행이지만 저자의 그 꺾기지 않는 의기와 호기심에 경이와 존경을 표하고 싶어졌다. 물론 난 저자같이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살고 있고 저자만큼 여행을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하는 마음은 늙어서도 언제나 간직하고 싶다. 


사실 이 책은 작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어찌 보면 세밑이라 여러 가지로 마음이 싱숭생숭할 수 있었는데 읽을 수 있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읽는 내내 즐거웠다. 나는 이 책으로 모토가 생겼다. 그건 '늙어도 우아하게'다. 잘 살고 잘 늙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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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1-06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밑에 딱 좋은 책 읽으셨네요 ^^
저도 읽고 싶어져 담아갑니다.
윤득한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내공이 상당한 분인 것 같아요. 제목만으로는 어떤 책일지 전혀 가늠이 안 되는데 스텔라 님 리뷰로 완전 궁금해졌습니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을 놓지 말고 우아하고 팔팔하게 나이들어갑시다요. 수시로 전시도 챙겨 보고 여행도 가고. 센노 리큐는 들어 보았는데 리큐에게물어라,가 있군요. 그것도 찜요.

stella.K 2022-01-06 22:05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제목이 좀... 근데 내용은 정말 좋아요.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고. 편하게 읽혀요. 개화기 어머니나 저자나 양반가문에서 자랐다는데 그래도 그닥 행복했던 건 아닌 걸 보면 참 짠해요. 여자가 행복해야 진짜 좋은 나라라는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신앙이 버팀목이었다는게...😥

기억의집 2022-01-06 2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분 대단하시네요. 나이 아흔에.. 게다가 적극적이시네요. 한국문화를 알리겠다고 홍보도 적극적이고.. 츠치다 마키는 한국어 전공 일본인인가요???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유튭 있는데.. 거기 마츠다 부장이 한국어를 엄청 잘해요. 한일 혼혈인데.. 처음에는 아버지가 일본인이라 일본 국적인데 한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서 오랜 세월 일본 살면서도 한국인같더라고요. 할머니 소개들 읽으니 마츠다부장 생각나네요!!

stella.K 2022-01-07 10:03   좋아요 1 | URL
뒤에 보면 저자가 역자를 어떻게 만났는지도 나와요. 아마 기억님이 알고 있는 게 맞을 거예요. 요즘엔 뒤돌아서면 기억이 흐릿해져서 말이죠.ㅠ 전 힘들어서 이분처럼은 못 살것 같고 이분의 정신은 참 존경할만한 것 같아요.🤩

기억의집 2022-01-07 10:11   좋아요 2 | URL
ㅎㅎ 번역가 모르는데.. 저자은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못 하고 번역가 보니 일본인이라… 특이하네 생각했어요!!!

mini74 2022-01-06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 그림처럼 작가님 저런 멋진 패션으로 다니셨을 듯 해요 당차고 나이따윈을 시전하는 추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

stella.K 2022-01-07 10:14   좋아요 2 | URL
그 시대에 미국 유학까지 갈 생각을 했다면 뭐. 사실 공부 때문에 결혼도 안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공부하게 해주겠다고 해서 결혼한 거라더군요. 남편도 그 약속을 지키려했는데 그만ᆢ 교포로 사업가였다면 그 남편도 대단한 집이었을 것 같다능. 👍

초란공 2022-01-06 23: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든 셋에 마음먹은 걸 하는 분이라니요!!!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성격을 가지신 분 같습니다. 몸이 가벼운 분들이요. 여행 좋아하는 아내에게 보여주어서는 안되는 책이군요. ㅋㅋ 저는 집돌이...게다가 무슨 일을 하려고 생각하면 부채도사가 됩니다. 이걸 할수 있을까? 할까 말어? ㅜㅜ

stella.K 2022-01-07 10:16   좋아요 2 | URL
그니까요. 저는 관절이 안 좋아 어디 잘 못 다니는데.ㅋ
아내님껜 보여주지 마시고 몰래 숨어 읽으세요.😅

페크pek0501 2022-01-10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정신만은 전혀 늙지 않는 멋쟁이 분이시네요. 게다가 용기도 대단하시고요.
여행을 많이 다니면 좋긴 할 거예요. 그런데 점점 집 떠나기가 싫으니 문제예요.
여행 좋아하는 이들은 여행을 위해 계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중요한 건 대범해지고 그리고 용기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죠. 나이들수록 저는 소심해져가는 것 같아요. 안전제일주의자가 되어 버리고 모험을 즐길 줄 모르게 되어요.
저자 같은 분이 멋지게 사는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말이죠. ^^

stella.K 2022-01-10 19:23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이어요. 저는 다리가 안 좋아서 어디 다니는 게 자신이 없더라구요.
지난 가을에 가족 여행 간 것도 언니가 차 렌트한다고 해서
간 거거든요. 막상 떠나면 좋은데 떠나기까지의 과정이 좀 그렇죠?ㅎ
하도 안 가니까 그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게 되더라구요.
근데 생각해 보면 힘이 없어 못 가는 것 보다 돈이 없으면 못 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들더군요. 그 잘난 1박2일 갖다오는 것도
수억 깨졌어요.ㅋㅋ
 
초단편 소설 쓰기 - 짧지만 강렬한 스토리 창작 기술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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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모든 것이 짧아지는 추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의 상연 시간은 2시간 가까이 됐고 못해도 한 시간 반이었다. 요즘엔 1, 20분 하는 영화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MZ 세대의 특성을 반영을 했다나 뭐라나. 기성세대 특히 아날로그를 건너 온 세대는 결코 이해 못 할 것 같다. 기왕 돈 내고 보는 거 속된 말로 뽕을 빼고 봐야지 1, 20분이 뭐냐고 화를 버럭 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얼른 보고 다른 걸 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TV 드라마도 그렇다. 예전엔 주말 드라마도 50회를 하거나 그 이상으로 한 적도 많고, 일일 드라마가 100회를 넘기는 건 다반사였다. 지금까지 일일 드라마로 최장을 기록한 건 80년대 초에 방영했던 나연숙 작가가 쓴 <보통 사람들>이란 작품이다. 이건 한국 기네스북에도 올라가 있을 정도다. 2백 회를 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80년대 중반 무렵엔 미니시리즈 붐이 생겼는데 미니시리즈라면서 2, 30회를 할 때도 많았다. 그게 점점 줄어 18회 하더니 지금은 16회를 하는데 최근 12회도 하더라. (여기서 단막극이나 짧게 하는 특집극은 예외다.) 이 추세라면 10회나 8회 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이렇게 사람들은 점점 짧은 것을 좋아한다. 요즘엔 인터넷에서 짤로도 많이 본다지 않는가.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가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데 소설이라고 그 시류를 안 타겠는가. 예전 같으면 손에 잡힐 듯한 시집 판형에 지금은 단편 소설 몇 편 담겨 나온다. 두께도 시집과 비슷하다. 예전엔 감히 상상도 못했다. 솔직히 나는 3백 페이지 내외의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런 책은 마음에 안 찬다. 그렇다고 내용이 없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읽어 보면 꽤 괜찮다.


그런데 더 짧게 쓰는 작가들이 있다. 나뭇잎 한 장에 쓴다 하여 엽편 소설, 손바닥 안에 쓸 만큼 짧은 소설이라 하여 장(掌) 편 소설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김동식은 이 모두를 다 거부하고 '초단편'이라고 했다. 다 같은 건데 이게 더 와닿는다고 한다. 이렇게 짧은 걸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 의아스럽기도 한다. 한 줄 시라고 하는 하이쿠 있는데. 하지만 이것도 엄연한 소설의 한 장르고 그 역사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안다. 기존의 보수적으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들, 특히 긴 장편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던 도스토옙스키가 알면 무덤에서 나오지 않을까? 둘 중 하나겠지. 자신도 써 보겠다고 하거나 경을 치거나.


하지만 좋든 싫든 앞으로는 이런 초단편, 장편, 엽편 소설이 각광을 받을 것 같긴 하다. 노파심인지 모르겠지만 (단편을 포함해) 초단편은 읽으면서 본격 소설을 읽을까 싶기도 하다. 오히려 이런 소설이 징검다리가 돼서 본격 소설을 읽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소설이 성행하던 시절 영화가 나오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을 거라고 했다. 또한 TV가 나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관을 찾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서로의 자리를 조금씩 양보할지언정 지금까지 잘 살아남았고 상보적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그런 것처럼 초단편 소설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걸 읽다 보면 단편도 읽고 중장편도 읽게 되지 않을까. 모든 걸 단정 지어서 말하지 말자. 걱정하지도 말자. 장편이 맞는 작가는 장편을 쓰면 되고, 단편이나 초단편이 맞는 사람은 그렇게 쓰면 되는 거다.


이 책은 '요점만 간단히'라고 정말 초단편 쓰기의 핵심만 뽑아서 쓰긴 했다. 물론 초단편이니 기존 소설 쓰기의 개념과 방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소설 쓰기란 큰 맥락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 저자의 그 유명한 초단편 소설을 읽지 않아서일까? 개념이 와닿지는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오히려 저자의 작품을 읽고 읽었더라면 좀 더 와닿지 않을까.


하나 기억나는 건, 저자는 글을 5분 동안 읽는 것과 쓰는 것이 같은 게 초단편 소설의 특징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리뷰만큼은 호기롭게 초단편으로 써 볼까 했는데 지금까지 쓴 글을 5분 내에 쓰지도 못했거니와 누가 이 글을 5분 내에 읽어 줄까 싶다. 그래도 저자는 초단편을 900편이나 썼고, 그것으로 유명해져 강사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모양인가 보다. 뭐가 됐든 자기 전문 분야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저자의 승승장구를 기원한다.


TMI; 이상하게도 제목이 초단편 소설 쓰긴데 자꾸 초간단이라고 쓰게 된다. 하긴 초단편 소설 읽기는 초간단 독서라고 해야겠지. 아무래도 이 장르에 대해 알기도 전에 편견이 생기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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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2-05 14: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렴풋이 제 기억에 가장 길다고 생각한 ‘보고또보고‘가 떠올라 찾아보니 273부작이네요. <보통사람들> 기록을 깨고싶었던 걸까요?ㅋㅋ당시에는 채널 돌리다가 주제가만 들어도 아주 징글징글했는데ㅋㅋㅋㅋ
짧은 카드뉴스도 인기라던데 저도 장편을 선호해요! 😆
말씀처럼 초단편 소설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인간이 되기를,그래서 더 다양한 책들이 나오고 사랑받기를 저도 바래봅니다~♡

stella.K 2021-12-05 15:03   좋아요 1 | URL
앗, 그랫군요. 당시 보통 사람들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뉴스에 나오고 난리였는데.ㅋ 보고 또 보고는 제가 안 봐서 그런 줄도 몰랐네요. 울나라가 장편이 약하다고 볼멘 소리 많이하는데 장편의 기준도 달라진 거 같습니다. 250페이지 정도만 해도 장편이라고 하니.ㅠ

희선 2021-12-07 0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단편이라 했지만 아주 짧지도 않아요 소설 읽어보니... 글은 쓰는 시간보다 읽는 시간이 덜 걸리기는 하죠 정말 쓰고 읽는 데 똑같이 5분 걸리기도 할지... 저는 손으로 쓰는 걸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컴퓨터 자판은 좀 더 빠를지도...


희선

stella.K 2021-12-07 10:31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작가가 좀 과장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길이가 있나봅니다. 좀 읽어 봐야할 것 같긴한데ᆢ

페크pek0501 2021-12-07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단편이라 해서 관심이 가서 일본 작가의 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어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손바닥 소설인 것 같아요. 보르헤스도 그 시대에 이미 초단편을 썼다고 하죠.
미니 픽션이란 장르도 있는데 비슷하더라고요. 어디 연재하는 걸 읽은 적이 있어요. ^^

stella.K 2021-12-07 18:20   좋아요 2 | URL
의외로 많군요. 전 늘 소설하면 장편을 생각하는데.
단편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초단편이나 엽편은 전 못 쓸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1-07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초단편 소설 앞으로도 많이 써주세요 ^^

stella.K 2022-01-07 18:0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니 뭐 오랜만에 이달의 거시기가 돼서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만 이걸로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구만요.
솔직히 공들여 쓴 건 <소설보다 가을>이였는데 말입죠.ㅋㅋ
새파랑님도 축하혀요~!^^

책읽는나무 2022-01-07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 드려요~ㅋㅋㅋ 왜 웃음이 나오죠??^^
<소설 보다 가을> 그 글도 참 괜찮았는데 말이죠!!
근데 이 글도 괜찮아요. 암튼 축하 드려요^^

stella.K 2022-01-07 20:14   좋아요 1 | URL
오늘은 넉넉한 저녁이잖아요.
적립금도 생겼겠다 무슨 책을 살까 행복한 고민에도 빠지고.ㅎㅎ
책나무님도 축하드립니다.
그 페이퍼 당선될 줄 알았구만요.^^

서니데이 2022-01-07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stella.K 2022-01-08 10:51   좋아요 1 | URL
앗, 고맙습니다. 잘 지내죠? 서니님도 즐거운 주말보내십시오.😊

thkang1001 2022-01-07 2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stella.K 2022-01-08 11:04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thkang1001도 좋은 주말보내십시오.😊

초란공 2022-01-07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는 박경리 작가, 조정래 작가의 작품 같은 대하소설을 구경하기 힘들어질까요?
아니면 욕구와 취향이 극도로 세분화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어요.

stella.K 2022-01-08 11:00   좋아요 1 | URL
후자쪽이 맞을 거예요. 순수문학쪽에선 거의 힘들 수도 있을 것같아요. 한 시대 공동체를 흔들만한 큰 사건이 예전만큼 있어주지 않는 한. 그래도 판타지같은 장르문학은 있잖아요.
초란공님도 축하합니다. 초란공님의 당선작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되더군요. 👍 좋은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2-01-08 0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 축하합니다 주말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2-01-08 11:0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축하해요. 좋은 주말되시길.🤗

thkang1001 2022-01-08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r.K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