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의 삶, 사랑의 말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양효실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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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온하다. 이런 책을 읽기는 또 얼마 만인가? 아니 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읽어 온 책들은 얼마나 지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합리적인 이상을 꿈꾸는 책들이었던가. 그야말로 승자의 언어로 장식된 메이저급 책인지도 모른다.

러나 이 책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소외되고, 삐딱하며, 외면당하는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옹호까지 하는 흔치 않은 책이다. 그래서 마이너적이기도 하다.

나는 새삼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 책이 일반인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를 회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세상이 원하는 언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성공지향적이며, 나의 욕망을 자극하며 업그레이드해줄 만한 언어들을 찾고 공유하길 원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나 성공한 사람의 회고록이 그토록이나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과 전혀 반대 선상에 놓여있다. 그러니 이런 책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이 책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좋았고, 인정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사람의 틀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말하려 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분법이 아닌 다양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옳고 그름만을 얘기하려고 하면 세상은 그만큼 좁게 보인다. 하지만 다양함을 인정하고 보면 세상은 그만큼 넓게 볼 수가 있다.

책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가 더 인상적이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했다던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이 생각이 났다. 우리의 사회가 아이들로 하여금 빨리 어른이 되라고 하지만 그런 사회 속에서 어린아이 이길 포기하지 않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빨리 어른이 돼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늘 미래의 어른의 삶에 저당잡혀 있다. 그들의 외모는 어른의 그것을 좇아 하면서 행동은 여전히 어린아이다. 그러면서 정신은 늘 어른이길 강요받고 있으니 그 아이는 정말 아이인가 괴물인가.
 
본문 1장의 '사라지는 아이들을 위하여'를 읽고 있으니 새삼 나도 반항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그 어린 시절로부터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구나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그럼으로 얼마나 빨리 기성세대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편입되어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나에게 어린 시절은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그 시절 나는 허무주의자가 되어 세상은 살아 뭐하나 시큰둥 했을 뿐이지 세상을 거부하거나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지 못했다. 그저 그 시절 내가 한 거라곤 학교를 지독히도 싫어했던 것과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책은 1세대 펑크록 밴드 라몬스의 <I Don't Wanna Grow Up>를 소개하고 있다. 성장을 거부하는 노래다. 가사에 보면 '살아갈 유일한 목적은 오늘이잖아'란 말이 나온다. 이 말이 상당히 의미심장해 보이기는 하다. 사람의 나이가 몇이든 그 나이다워져야 하는데 그러지가 못하다. 그것은 부모 탓인 경우가 많은데 혹시라도 내 아이가 같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늦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나은 행동 패턴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것을 알았을 때의 억울함, 분노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록이 대부분 다 그렇듯 분노와 반항을 표현하기만 할 뿐 새로운 이상향은 제시하지 못한다. 살아갈 유일한 목적은 오늘이라면서 어른에 반항하고 순간의 쾌락만을 강조한다. 그것은 또 허무주의를 낳았고 사람들을 같은 길로 몰아갔다. 발상은 좋으나 그 모습은 기성세대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본 건 영국의 여성 아티스트 사라 루카스다. 그녀는 네 살 때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서 아홉 살부터 하루 두 갑 정도의 담배를 피웠던 헤비 스모커였다고 한다. 그녀는 그야말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온갖 비행을 일삼고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이 이대로 끝장 나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LP 판을 모두 팔아 히치하이킹으로 유럽을 여행하고, 우연히 미술학교에 들러본 것이 계기가 되어 그 길로 아티스트가 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녀가 들어간 골드스미스 칼리지란 곳은 당대 유명한 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서 '잘 그리기 보다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예술가라고 가르치는 곳'이라고 한다. 그녀는 무엇보다 과일, 야채, 계란 프라이를 가지고 성기를 암시하는 표현을 하기로 유명한데, 평생 애증 했을 담배를 가지고도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 보았다. 역시 독특하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으며, 개천에서도 용 나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을 몸소 증명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우린 담배가 백해무익한 것으로서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는데 사라 루카스에겐 구원의 매개물이 되었으니 놀랍기도 하다. 이렇게 저자는 사라 루카스를 소개하면서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려 하거든 피우지 말라고 훈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 주면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조언한다. 오히려 그것이 그 아이로 하여금 담배를 피우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이 담배 피우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실비아 플라스는 그 이름만 들어도 짠하다. 당대 촉망받던 시인이었지만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어갔다. 그녀는 아버지를 개새끼라며 남자를 증오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로부터 보호받기 원했던 여자들의 울분을 과감하게 떨쳐버렸다. 저자는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을 해석하면서 그녀가 단순히 힘없고 쓸쓸하게 죽어간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 냈다.

또한 아방가르드 한 김언희의 시는 실비아 플라스가 아버지를 개새끼라고 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게 폭발하듯 분출하기도 한다. 그녀의 시는 확실히 파격적이며 전복적이기도 하다. 그녀의 시를 읽고 있으면 이것도 예술인가 싶게 아름답지도 않고 오히려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의식을 일깨우고 오히려 분노해 주길 바란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우리의 길들여진 의식을 깨우는 책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다소 읽기에는 좀 쉽지 않은 느낌이다.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 독자들에게 다가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요즘 같은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다른 것을 주장하며, 다른 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비교적 성실하며 진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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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5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작품 모두 사라 루카스라는 아티스트가 만든 거죠? 첫 번째 사진의 작품이 성적 관계로 만나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군요.

stella.K 2017-05-26 12:03   좋아요 0 | URL
책에 의하면 사라 루카스의 작품 경향이 그렇긴 하지만
외설스럽거나 추잡하지 않다는 거야.
상상력이 좋은 것 같아.
그녀도 그녀지만 그녀가 나왔다던 학교가 더 궁금해지더군.
그런대라면 나도 우등생이 되지 않았을까?ㅋㅋ

페크pek0501 2017-05-2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웬일인지 제 장바구니에 있어요.
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어른인 척하며 살다가 죽을 것 같다는... ㅋ

stella.K 2017-05-26 12:05   좋아요 0 | URL
ㅎㅎ 다들 그렇지 않나요?
저도 그래요.
그런데 남이 어른답지 못하면 그건 또 분개한다는 거죠.ㅠ
이 책 좀 어렵긴 하지만 나름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아
괜찮은 것 같아요.
제가 아웃사이더에 관심이 많거든요.
언니도 그쪽 취향이시라면...!ㅋ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 누구나 대통령을 알지만 누구도 대통령을 모른다
강준식 지음 / 김영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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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에 대한 총평을 하라면 이 책은 정말로 잘 쓰인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일종의 역대 대통령들로 본 현대 정치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다. 장면 총리를 포함 12명의 대통령의 공과를 가감 없이 잘 구분해 써 놓고 있다. 덕분에 내가 모르고 있거나 막연히 알고 있는 대통령들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개기가 돼서 나름 이 책에 대한 신뢰가 간다.

 

나 같은 경우 태어난 연대가 그래서 솔직히 박정희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에 대해선 별로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얼마나 관심이 없냐면 나 이전의 대통령은 이승만과 윤보선외엔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에선 다루지 않았지만 과도정부 때 허정 총리가 있었고, 윤보선 이전에 장면 총리가 있었다. 책은 장면 총리가 상당한 젠틀맨으로 묘사가 되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자면 윤보선이나 이승만도 같은 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최규하 대통령까지도. 하지만 정치란 게 그렇게 젠틀해서만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나라 정치사가 몸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그들은 명예롭게 퇴위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사람은 시야가 깊지 못하면 그저 하나의 이미지로 단순화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박정희와 최규하의 대비다. 그 둘은 대통령과 국무총리였다. 날렵한 박정희에 비해 뚱뚱하고 굼떠 보이기까지 한 최규하를 보면서 어린 시절 최돼지란 별명으로 그를 놀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무능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당대 고급진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던 몇 안 되는 공직자였고, 그로인해 뛰어난 외교를 펼쳤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니 그런 별명이 가당키나 한가? 하지만 그가 굼떴던 것도 일견 사실이기도 했다. 너무 시간을 지연시켜 국정을 그르친 사안도 있었다고 보고되고 있으니까. 어쨌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그 사람이 그만한 자리에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란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다.

 

솔직히 그렇게 따지자면 가장 이해 못할 사람은 전두환 대통령은 아닐까? 그만 생각하면 나도 대한민국의 국민이지만 정말로 이해 못할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은 아닐까?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 민주화 항쟁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가? 그로인해 그는 찬탈하다시피 대통령의 자리를 꿰찼다. 아무리 쿠데타가 그렇다고는 하나 어떻게 민족의 살인마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일까?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이건 역사의 수치는 아닐까? 특히 대통령의 자리를 두고도 최규하 대통령과 얼마나 설왕설래가 많았던가?

 

재밌는 건 이 두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양분된 시선이다. 전두환의 입장에서 보면 찬탈이고, 최규하의 입장에서 보면 뺏긴 것이다. 전자의 시각으로 보면 천하의 나쁜 놈이고, 후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리숙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박수도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지 않은가? 책을 보면 대통령의 자리 하나로만 봤을 때 전두환이 빼앗은 것 보단 최규하가 내준 것이 타당해 보인다. 무엇보다 최규하가 대통령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만 아니었어도 그는 조용히 국무총리로서의 임기를 마쳤을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가 서거하자 그는 한 순간 의지가 꺾였다고 책은 전하고 있다. 총리라는 게 대통령 유고시 지도력을 발휘해야할 막중한 자리임에도 그는 그러지 못했고 박정희가 사라지자 한낱 뒷방 노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의 대통령으로서 재임 기간은 8개월이었다. 누가 봐도 고 박정희 대통령 이후 제대로 된 대통령을 세우기 위한 일종의 다리 역할이란 건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자꾸만 전두환이 대통령의 자리를 찬탈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얼마 전에 나온 그의 자서전에도 나온 말인데 자신은 대통령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가지고 엄마와 대화를 나눴을 때도 엄마는 무슨 말을 하냐며 발끈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빗대어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고 설명하자 또 금방 수긍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건 그만큼 한 번 나쁘게 인식되어 버리면 역사를 인식하는 것도 왜곡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쉽게 떼어 내버릴 수 없는 건 그가 경제를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정치를 나라를 지키는 것과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이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전두환만큼 이것에 성실하게 부합했던 인물이 또 있을까? 그것은 또 박정희 대통령과 닮아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점에서 퇴임 후엔 어땠을지라도 재임 기간 동안 훌륭한 통치술을 발휘했던 대통령으로 또한 전두환과 박정희를 드는 것에 이의를 재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그럴 수 있는 것엔 그들이 군 장성 출신으로 훌륭한 용인술에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인 출신의 대통령에게서도, 사업가 출신의 대통령에게서도 없는 군의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감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두 대통령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 부흥은 단순히 용인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그는 경제에 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독선생을 데려다가 매일 하루 세 시간씩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시대에 경제 부흥이란 걸작을 남기게 되었으니 역시 모든 건 그냥 되는 것은 없으며 대통령도 할 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우리가 마지막까지 기억하는 대통령은 전두환이 아니다. 그 점은 또 외신도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기는 부분이기도 한데, 세계 어떤 대통령 치고 재임기간 동안 성장, 물가, 국제수지 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전두환만큼은 이 세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싶은 대통령은 누구일까? 박정희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것엔 이의를 달지 않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만큼은 좀 더 객관적일 필요는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는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 난 인물로서 행동하는 양심이었고, 서민의 표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부엉이바위에서 자신의 몸을 던지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그렇게까지 그를 애틋하게 생각할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통치술은 대부분의 대통령이 다 그러하듯 신통치가 않았다.

 

이 책의 특징은 약간의 동양적 사관을 담고 있는데 관상으로도 대통령의 됨됨이를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상이 시라소니상이라는 것이다. 시라소니가 어떠한가? 무리지어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홀로 다니는 습성이 있다. 즉 그는 천성적으로 소통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된 후 실망스런 행보를 이어갔고, 야당이나 기업인들에게 소위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집고 넘어가야할 것은,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이다. 그것은 20035.18 기념식 당시 식장으로 입장하려다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로 우회해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후 5.18 기념재단 간부로부터 사과는 받았지만 이러다가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란 말이 와전 돼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보도가 되면서 탄핵의 밀미가 되기도 했다고 하니 역시 정계라는 게 살벌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이 비슷한 말을 나중에 박근혜 대통령도 썼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통령의 자리가 역시 쉬운 자리는 아님에 틀림없는가 보다.

 

이왕 박근혜 대통령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녀는 또 어떠했나? 저자는 박근혜 편을 다루기 전에 시대는 다시 왕조시대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이런 징조는 아버지 부시에 이어 아들 부시가 미국 대통령을 할 때부터 감지했는데, 일본에선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가, 중국에선 공산당의 원로의 자식들 모임인 태자당에서 시진핑이, 또한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역시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나 딸이 총리 또는 대통령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징조에 우리나라도 편승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의 카리스마를 그의 딸에게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보고 배운 것이 있을 테니 나라를 잘 일끌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1세와 2세대는 반드시 같으리란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도 그렇게 간단치 않은 삶을 살았겠더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간격으로 양친을 여의고, 하루아침에 내 집 같았던 청와대를 나오고, 믿거라 했던 아버지의 측근들이 자신 한 몸 살겠다고 등을 돌렸으니 그 마음이 어땠겠는가. 그런 와중에 그녀를 거둬줬던 건 최태민이라고 한다. 그것도 그의 꿈속에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도와달라고 부탁을 받아서. 그리고 음지가 양지된다고 IMF는 그녀에겐 기회였다. 갈 곳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입당을 권유 받고 그때부터 정치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도 얻었다.

 

박근혜가 대통령 선거 때 캠프의 좌장을 맡았던 김무성은 어느 날 기자들에게 그녀가 잘 쓰는 말을 공개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하극상, 색출, 근절이라고 한다. 그녀는 누구든 자신을 비판하면 나이가 많던 적던 하극상이냐고 했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나가면 누가 그랬는지 색출하고 이를 근절하려고 하는 영애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오늘 날의 불행한 사태를 빚은 것 아니겠는가? 생각하면 화도 나고 안타깝기도 하다.

 

문득 이쯤 되면 대통령 탓만 하고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대통령을 생각하는 국민의 의식수준도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오늘 우연히 TV를 보니 매 선거 때마다 후보로 나왔던 허경영을 다룬 것 보았다. 물론 그는 허위사실 유포죄 때문에 이번엔 후보로 나오지 못했다. 뭐 워낙에 독특한 사람이라 방송도 그를 가십거리로 밖에 다루지 않았는데,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는 것이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중엔 그가 독특하다는 걸 인정도 한다. 즉 맹목적이지마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를 추종하게 만드는 건 지금까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들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겠냐고 진단한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해서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대표적 인물이 히틀러와 무솔리니라고 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둘 다는 투표에 의해 선출됐다는 것. 이건 정말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글쎄, 청와대의 터가 안 좋은 걸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청와대를 제 집 삼은 대통령마다 나름 시작은 좋았지만 그 끝은 안 좋았다. 물론 그것이 터만의 문제겠는가? 저자는 그것을 대통령의 자리를 개인의 입신영달의 정점으로 간주한 권력자가 너무 많았다고 지적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후보 때부터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대통령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은 있는지 묻고 싶다. 그저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저자는 말미에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첫째,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둘째,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책은 18대 대통령까지 만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앞으로 1920대 대통령을 뭐라고 쓸지 궁금하다. 새 대통령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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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3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5-14 20:34   좋아요 2 | URL
아유, 제 서재가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리뷰 엄청 열심히 썼는데 좋아요가 이렇게 저조하다니.ㅠ
출력하면 A4 6장 분량인데...
제가 요즘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엄청 미워해 씹고 있었는데
벌을 받나 봅니다.
아니면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고 건방졌나요?흐흑~

이 책 기회되면 읽어 보세요.
제가 분량 때문에 다 리뷰 못한 것도 많은데
이 책 정말 좋아요.^^

서니데이 2017-05-13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오늘 여긴 갑자기 비가 많이 와서 조금 쌀쌀하지만 공기가 좋은 밤입니다.
stella.k 님 따뜻하고 좋은밤되세요.^^

stella.K 2017-05-14 20:03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고맙슴다.
계신 곳이 어딘지...?
여긴 별로 많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었어요.
바람은 4월에 많이 부는데 말입니다.
서니데이님도 오늘 밤 좋은 밤 되십시오.^^

2017-05-14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4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15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통령에 관한 책은 잘 안 읽어요. 그 이유가 어떻게 보면 제 주관적인 편견이기도 해요. 책 속에서 말하는 ‘훌륭한 대통령의 조건’이 문장으로 보면 수긍하지만, 막상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봐요. 독자들이 이 조건에 따라 지도자를 고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실패한 지도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선 지도자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도자뿐만 아니라 지도자와 함께 일했던 정치인들이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물론, 제가 밝힌 생각도 이상에 가까워요.. ^^;;

stella.K 2017-05-15 18:36   좋아요 1 | URL
그건 그럴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그것에 도전해야지 않을까?

사실 이런 책은 저자 자신의 사견이 많이 들어갈 수 있있는 것도 사실이야.
얼마 전 읽은 황상민의 책은 자기 전공인 심리학적 관점
대통령을 분석했다기 보단 그냥 저자 자신이 평소 느꼈던 걸
쏟아낸 것 같아서 좀 아쉬웠지.
그런데 이 책은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난 꽤 재밌게 읽었어.
몰랐던 정치사도 알 수 있었고.
저자가 식견이 대단한 사람 같아.^^

2017-05-15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좋은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 된다
황상민 지음 / 푸른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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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적이 또 있을까?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이 재임 중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는 확실히 충격적이다. 그러면서 정치에 거의 관심이 없었던 나도 기회 있을 때마다 대통령 후보들의 TV 토론을 챙겨보곤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 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선거가 될 것이고, 그 어느 때 보다 투표 참여율이 높을 거라고. 왜 안 그러겠는가? 이전까지 사람들은 후보들을 보고 대충 마음 끌리는 대로 한 사람에게 투표를 하였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대충 알아서 잘 해 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줄만 알았던 대통령들이 대를 거듭할수록 점입가경이다. 이래서야 쓰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위기감, 문제의식은 가져야하는 걸 알겠는데 대통령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그냥 싸잡아서 비난하고, 무슨 문제만 있으면 광화문에 나가 촛불시위나 하면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다하는 걸까?

 

선거 때만 되면 각 후보들마다 앞 다퉈 자서전 내지는 자전에세이들을 출간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고 자신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선전한다. 물론 이 방법이 아니면 자신을 알릴 방법이 없어서 하는 줄은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치자. 그래서 나라꼴이 어찌됐단 말인가? 그런 애국지사가 어디 그 사람 한 사람이겠는가? 그러면 좀 나아져야 할 텐데 갈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물론 아직도 그런 책을 좋아하고 추종하는 사람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책 보다는 이 국가적 위기를 타고 우리는 나라에 대하여 또는 대통령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해야 할 것인가를 얘기하는 책들이 눈에 띄게 많이 나왔다. 이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들 끊다가 당선인이 확정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떤 이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돼서 좋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원하는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그가 잘 해 줄 줄 믿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2, 3년차만 되면 여기저기서 못마땅한 비판의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 국민은 모두가 정치 평론가라고. 정치를 비판할 줄 모르면 대화에 끼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누가 대통령이 되던 지간에 항상 대통령을 저격한다. 그런데 저자가 책에도 언급했지만, 그렇다면 어떤 대통령, 어떤 정부가 되길 바라냐고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년간을 보더라도 대통령의 하나같은 공통점은 처음엔 정말 나라를 구할 영웅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지만 초라한 모습으로 임기를 마치고 나온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한간엔 그런 말도 있었다. 국민들이 정치 평론가가 돼서 하도 욕을 들어먹는 바람에 기가 쪼그라져 나오는 거라고. 그 말도 틀리지는 않겠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국민의 공통분모는 어디서 찾으면 좋을까?

 

저자가 그런 말을 한다. 정치는 결혼과 같은 거라고. 결혼할 때 상대에 대해 콩깍지가 씌는 것처럼 대통령도 그렇단다. 거의 맹목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도 한다. 결혼할 때 무작정 이유 없이 좋아서 결혼하지 말라고.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냐고 말하는 쪽은 주로 낭만주의자나 사랑의 순수함을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좀 합리적일 필요가 있긴 하다. 우리나라가 유교문화권이 되놔서 그런지 자기 욕망을 웬만해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잘 모를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단다. 자기 욕망을 확실히 드러내면 나중에 그 욕망이 바뀌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무엇에 만족했는지 분명히 알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도 그러지 않을까? 그저 막연하게 이미지가 대통령을 잘 할 것 같아서 그런 걸로 투표하지 말고 원하는 바를 확실히 드러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뽑히는 대통령은 전 대통령의 전적이 있어서 그 어느 때 보다 대통령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우린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정치와 대통령을 바라보는 눈이 높아졌다. 그러니 앞으로의 대통령은 얼마나 잘 할 것인지 일거수일투족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맞는 말일까?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면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적어도 국정을 농단하지 않을 것. 소통할 것. 민의가 무엇인지를 무시로 살필 줄만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5년 후 퇴임 때 수고하였노라고 박수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먹고사는 데 열심히 신경 쓸 수 있다면, 적어도 내가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거기에만 초점을 두고 잘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그건 정치인이 정치를 아주 잘한다는 뜻이란다. 그건 맞는 얘기다. 추운 날 열일을 제쳐두고,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지방에서 버스와 기차 타고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게 좋은 나라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다른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은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한다. 뭐 여야가 서로 싸울 거 싸우고, 시정할 거 시정하고 국민을 위해 대신 일해 주는데 무슨 정치 걱정을 하겠는가. 우리도 좀 그래봤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되면 나라에 대한 공이 정치인들에게만 돌아가는 것 같아 좀 그런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문제다. 지도자의 리더십에 문제가 생기면 나라가 붕괴의 위기를 겪을 수 있다. 가끔은 대통령이 이렇게 문제니 대통령은 꼭 있어야 하는 건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 없는 나라도 있단 말인가? 이번에도 후보들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 공략 쏟아내더만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건 과연 대통령되면 다 지킬 건가 의문이다. 그리고 설혹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이 한 말을 지켜 행하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건 복 받은 나라일 것이다. 저자 말마따나 나라를 하나의 큰 기업으로 보자면 국민은 주주다. 어느 기업이든 주주가 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통령이 슈퍼 을이다. 이거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한다. 근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제왕이 들으면 억울하지 않을까? 제왕이라면 제왕이 되는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학문과 덕망을 갖춘 제상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데 박근혜에게 그것을 가르친 스승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말인데, 대통령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나는 새로운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에 아니 입성한 후에도 이것을 공부했으면 좋겠다. 어느 대통령이건 자기 전공과 업적 가지고 권좌를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대통령이 돼서는 끝내 무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다.

 

미국은 우리나라 보다 역사도 짧은데 긍지로 여기는 대통령은 몇이나 배출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뭔가? 추억삼아 얘기할 대통령은 있어도 정신적 사표가 될 만한 위대한 대통령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언제쯤이면 그런 대통령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용두사미의 대통령 보단 처음은 미약하나 후일엔 창대한 대통령이 더 보기 좋은 거 아닌가? 이번에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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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근혜가 드라마 보느라 공부를 했겠어요. ㅎㅎㅎ

예전에 서울국제도서전 때 박근혜가 책을 산 적이 있었잖아요. 과연 박근혜는 그 책들을 읽었을까요? 알라딘이 ‘대통령이 읽는 책‘이라고 홍보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stella.K 2017-05-03 13:50   좋아요 0 | URL
헉, 그런 일이 있었니? 근데 왜 난 몰랐지?ㅋㅋ
알라딘도 참...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들 공부 잘 안하나 봐.
김대중 대통령은 늘 책을 가까이 했다는데 말야.
암튼 박근혜에게 제왕적 어쩌구 하는 거 언어 선택을
잘못 하는 거라고 생각해.
 
여혐민국
양파(주한나) 지음 / 베리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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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사람(물론 남자)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그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지지 광화문 촛불집회가 거의 종반을 향해 가고 있었던 때였다. 그는 촛불집회 초기 때부터 참석했었고, 나는 그때까지 탄핵은 지지했지만 아직 한 번도 참석을 못했기 때문에 집회도 참석할 겸 만나기로 한 것이다. 약속을 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가 되면 내가 안 됐고, 내가 되면 그가 안 되고. 아무튼 그렇게 어렵게 잡은 약속인데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약속이 뒤집어진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 이유가 좀 걸작이다. 그때 내가 무슨 말 끝에 그날 맛있는 것 사 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말 한마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순간 어찌나 어이없고 당황스럽던지.

 

그런데 왜 나의 그 말 한마디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던 것일까?

(그것도 나중에 알았던 건데) 그의 말이, 집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쉬지도 못하고 추위를 무릅써 가며 참석하고 있는지, 하다못해 몸이 불편한 장애자조차도 들것에 실려서까지 참석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그렇게 (속편하게) 맛있는 거나 사 달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에게 나는 그리 친하지도 않은 남자에게 맛있는 거나 사 달라고 아양이나 떠는 개념 없 여자였던 것이다.

 

말이란 원래 앞뒤 문맥을 잘 따져봐야 하는 것이고, 같은 말이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다는 걸 그때 난 새삼 깨달았다. 앞서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밥 먹고 집회에 참석하자고 하기에 난 그저 마무리조로 그 말 한마디를 보탰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개념 없는 여자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 곡을 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그 힘으로 곡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에겐 현 시국이 밥도 편하게 못 먹을 시국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밥 소리나 하지 말지. 모르긴 해도 이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려다 못 구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때 그는 자신의 말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인 내가 느껴야 했던 건 (애석하게도) 그가 바랐던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아니 일치할 수 없었다. 원래 상처 주는 사람은 잘 모른다.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안 주는지. 주면 얼마나 주는지. 받는 사람만 아는 문제다. 만일 정 내키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액면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를 찾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난 참혹하게도 그에게서 맨스플레인을 보았으니까.

 

이 사람뿐이 아니다. 남자들은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던, 페미니즘을 옹호하든 그렇지 않든 맨스플레인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그 상황에서 그 사람처럼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또 그런 그의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의미로든) 자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뭔가의 결기 같은 것도 느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뒤집으면 상대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왕 말나온 김에) 알다시피 같은 시간 서울역에선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죄상이 이렇게 명백한데 어떻게 탄핵을 반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한 가지 깨달았던 건, 모든 것엔 절대적이라 건 없고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죄상을 바라보는 시각조차도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상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선택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을 강요하는 건 얼마나 위험한가? 그것은 또 너와 내가 같은 생각이 아니면 배타적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탄핵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으며 한 가지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이 서로의 다름을 우린 얼마나 인정하고 포용하며 사는 걸까?

 

어쨌든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는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공교롭게도 탄핵을 반대하는 쪽이었다. 그녀는 비교적 확고해 보였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자신도 언젠가 한 번 탄핵지지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지지자들 중엔 정말 지지해서라기 보단 알바들이 대거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등 뒤에서 불평과 앓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그것이 사실이라면 탄핵 반대 측에도 그런 알바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건 아무래도 정치꾼들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이 생각이 났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는 걸까? 문득 그의 나를 향한 맨스플레인도 그렇지만 약속을 뒤집을 만큼 탄핵을 지지했던 그의 투쟁이 숭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좋은 의미는 아니다.)

 

나의 지인은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여자여서 당하는 설움도 있을 거라는 것이다. 그건 거의 절대적여 보였는데, 자신이 여자로 일하면서 남자들에게 당했던 설움을 그런 식으로 투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건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정을 농단한 죄가 가벼울 수 있다는 걸까? 그래서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런 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을 농단한 적은 없는가? 이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는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정 비리를 바로 잡기 위해 박근혜가 필요했다면 그것을 피해갔던 전직 대통령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추위를 무릅쓰고, 장애자로서 들것에 몸을 의지하면서까지 광장으로 모여들었을 때 과연 그들은 어디 있었는가.

 

탄핵 지지자들 중엔 역대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이고도 역사적인 비리와 농단을 생각하면 박근혜를 감방에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다못해 그냥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가택연금 정도도 괜찮은 거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탄핵 반대자들은 아직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러는 건 너무 심하다는 건 당연한 거고. 그밖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면상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나는 정치에 관해선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일까? 어떤 식으로든 정치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보면 좀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어떻게 저렇게 확고할 수 있을까?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기도 한데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선택을 하고 노선을 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대다수의 바람대로 박근혜는 구속이 됐다. 그러면 된 건가? 나는 아직도 마음이 복잡하다.

 

그러던 중 나는 며칠 전, 오랜만에 어떤 책의 저자와의 만남에 다녀왔다. 그것은 이번 국정농단과 탄핵 과정을 최초 보도한 한 명의 방송 기자와 두 명의 작가로 구성된 공동 저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였다. 내가 그 모임에 참석했던 건 거리상 가까워서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밝힌 것처럼 난 아직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어서일까? 왠지 모르게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부조리한 것들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시종 진지함과 유머를 잃지 않았으니 그만하면 훌륭했다고 본다. 공동저자 3인방은 스마트함은 물론이고,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나에겐 아주 좋아 보이지만은 않은 건 뭐 때문일까?

 

그들은 자기네들만 소개 받는 것이 멋쩍었는지 두 명의 저자가 더 있다며 젊은 여성 작가 둘을 더 소개했다. 그들이 같은 테이블에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모르긴 해도 보조 작가였나 보다. 물론 나이가 그 3인방 보다는 어렸으니 같이 앉아 있기가 뭐했나 보지. 자리도 비좁고. 또 어떤 부분 나대지 않는 겸손의 미덕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래서 일의 강도는 그 테이블의 3인방 보다 덜 했을까? 이것도 짐작이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단순히 여자고 나이가 젊었으니 그러고 지나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식으로 언제나 여자는 보조 역할이다.

 

그들은 그 책을 쓰기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유머와 여유로움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특별히 정부수립 이후 현직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헌법에 관련된 책들은 모조리 훑었다는 말에 과연 그들의 열정과 노력은 인정해 줄만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이번 기회에 헌법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는 겸손함도 잊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면 그들이 이번 국정농단과 탄핵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또 방송에서 한 치의 오류도 없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전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번 국정농단을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그 시간 조금이라도 떨어버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깊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건 지금의 혼란스러움은 아무래도 국정농단과 박근혜를 같이 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국정농단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누구도 이것을 피해 가거나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여자라고 해서 봐줘야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법과 제도는 누가 만들었는가? 하다못해 한 나라의 엄중한 헌법조차도. 탄핵 반대자들 중에 그들이 결코 놓지 못하는 프레임 중 하나는 박근혜가 바로 남성들에 의해 만들었을 이 법과 제도에서 작두(?)를 탓다는 것일 게다.

 

물론 이 말을 간단히 무시해도 좋다. 여자이기 때문에 동정을 받아야 하는 건 여자인 나도 원치 않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짚어 들어가면 정의란 아예 존재치 않는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우린 헌정 사상 그 유래가 없는 일을 겪으면서 (겨우) 헌법의 엄중함을 깨닫는 기회를 가졌다. 어떻게 갖게 된 기회인가? 그것은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도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촉구한다. 어물쩍 덮어갔던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의 재임시절 국정 비리와 농단사건을 헌법이란 이름으로 재수사 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공평한 것 아닌가?

 

,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을 재수사하는 것이 합당하냐 하지 않느냐를 위해 또 헌법 책을 뒤져야하는 것이 두려운가? 오늘 날 한국의 페미니즘은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공동저자 3인방)은 이번 대통령 투표 팁도 더불어 알려줬는데 간단하다.

사실 헌법은 A4 용지 열 몇 장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 헌법 전문은 한 장도 되지 않는다. 누구를 뽑을지는 그 전문을 읽어보고 그것에 적합하거나 조금이라도 근접해 있는 후보를 찍으라고 한다. 쉬운 일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이번 대선에서 100%는 아니지만 98% 이상은 남자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 그리고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국민으로 하여금 헌법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니, 적어도 그것을 바로미터 삼아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며 국정을 잘 운영하고 있는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내 기대엔 좀 못 미쳤다. 사이다 같다고 했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좀 진보적인 느낌이 들어 어느 부분 나도 여자지만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가끔 지하철을 이용할 때가 있다. 타 보면 노약자와 임산부 보호석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그게 없는 것 보단 있는 것이 낫긴 한데 설마 이런 것 가지고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라고 보는 일은 없겠지 싶다. 솔직히 진짜 복지 국가가 되려면 이런 구분은 없어져야 한다. 왜 그런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좌석이 노약자 보호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장애자와 비장애자가 언제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물론 나는 여성을 장애자로 비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 여성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여성학의 전제는 언젠간 없어질 학문이라고 해서 정식 학문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페미니스트가 들으면 화날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성학이란 학문이 학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면 이거야 말로 여성 소외 아니냐며. 하지만 언젠가란 미래형 전제가 있다. 그건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될 때를 말한다. 물론 요원한 일이니 여성학은 웬만해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언제나 유효하다.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때로 급진적이고 전사적인 행동도 취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다 보면 아직도 만연한 반페미니즘과의 충돌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인간 삶의 대전제는 남자와 여자의 조화와 평화로운 공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비록 이 책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워할 수는 없다.                     

 

미소지니(misogyny)가 여성혐오라고 번역되었는데, 번역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한국어로 받아들이면 오해하기 좋은 어감이다. 그러나 미소지니는 실제로 혐오 보다는 ‘차별‘이나 ‘멸시‘에 가까운 의미를 담는다. 따라서 여자가 일삼는 여성혐오란 곧 자기혐오이며, 자기멸시인 것이다.(52p)

딜브레이커(deal-breaker)라는 단어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진짜 아니다., 라며 포기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딜브레이커가 있다. 날 호구로 보고 이용해도 되지만 내 외모를 가지고 놀리면 안 돼. 혹은 술 마시고 날 때리는 건 괜찮지만 바람 피우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 뭐 그런.
대선 후보에게도 당연히 딜브레이커는 있고,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이회창의 경우는 ‘군대‘였다. 아들이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 유권자에게는 딜브레이커였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은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반근혜 대통령의 경우는 최순실이 딜브레이커였다. 아무리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싶어도 대통령이 저렇다면 지지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기준선이다(118~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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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4-28 14:18   좋아요 1 | URL
탄핵을 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더군요.
님의 생각도 맞는 얘기죠.
근데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도 생각이 든다는 거죠.^^

꼬마요정 2017-04-28 14:30   좋아요 1 | URL
아, 그냥 제 관점이구요 ㅎㅎ 폰으로 쓰다가 잠시 딴 일하고 와서 중간 문장 빠졌어요ㅠ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요거 진짜 중요한 문장인데 없어졌네요 ㅠㅠ

cyrus 2017-04-27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페미니즘이 실천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다 같은 목표로 향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점진적 방식을 선호하지만, 상황에 따라 급진적 방식을 선택할 겁니다.

stella.K 2017-04-28 14:38   좋아요 0 | URL
나도 그렇게 생각해.
급진은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지.

와, 근데 다시 봐야겠는데?
상황에 따라 급진을 택하겠다니.
네가 페미니스트였다는 걸 잊고 있었네.흐흐

cyrus 2017-04-29 06:53   좋아요 1 | URL
저를 페미니스트로 바라보지 않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 시선에 신경쓰지 않지만, 페미니즘 관련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와 사회를 개선하려는 과정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야! 페미니스트인지 의심된다‘ 식으로 나오는 반응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stella.K 2017-04-29 15:34   좋아요 0 | URL
그건 그렇지.
그런데 언제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나?
내가 모르는 뭔가가...?!

cyrus 2017-04-30 16:02   좋아요 0 | URL
별 일 아닙니다. ‘남성 페미니스트’라면 겪게 되는 상황입니다. ^^;;

stella.K 2017-04-30 18:14   좋아요 0 | URL
뭔지 짐작이 간다.ㅠ

페크pek0501 2017-04-29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치적으로 (아주 예민하게) 열을 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님이 쓰신 다음의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뭔가의 결기 같은 것도 느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것은 뒤집으면 상대로 하여금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 좋은 글입니다.

stella.K 2017-04-29 15: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평소엔 아무 일 없는 것 같다가도 정치 얘기만 하면 돌변하는.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가 부분데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더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거에 대해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봐요.
한 가족 내에서도 지지하는 후보가 똑같아야 한다는 거
좀 심한 거 아닌가요?
 
프랑스 시노그라퍼 - 1975-2015 공연.영화.전시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들
뤼크 부크리스 외 지음, 권현정 옮김 / 미술문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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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물에 콩 나기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가는 때가 있다. 조명이 켜지고 배우가 등장할 때까지 그 무대는 온전히 하나의 공간을 보여준다. 그게 어느 집 거실일 수도 있고, 을씨년스러운 어느 바닷가 모레 사장일 수도 있으며, 19세기 어느 귀족의 집이나 중세 어느 성당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런 공연물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런 무대장치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어떻게 쓰이고 변화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공연물(오페라도 마찬가지겠지만)은 종합예술로서 한마디로 예술에 관한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되는 된다. 그러니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위한, 또한 누구를 위한 작품이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작가로 연극에 참여해 본 사람으로서 작품의 가장 첫 작업을 맡은 작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뭐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그런 생각도 그리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이 결국 맨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대상이 누구냐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건 온전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물론 작품이 추구해야 하는 작품성, 예술성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긴 하겠지만 그것의 완성은 결국 배우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써도, 연출가가 아무리 뛰어난 연출을 한다고 해도 배우가 온전히 그 작품과 배역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건 완전한 작품이 될 수가 없다. 물론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배역을 잘 할 수 없다면 그것을 잘할 수 있는 배우를 섭외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최악을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는 프로라는 관점에서 각자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할지를 유기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결론은 그렇게 나올 것이며 그래야 관객이 감동하는 결론도 나올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배우를 위한 예술이라고 했는가 보다.

시노그라피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대디자인 또는 무대장치 등으로 설명될 수 있는 단어다. 그리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시노그라퍼라고 한다.

흔히 우리는 그런 공연물을 볼 때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무대 디자인을 얼마나 눈여겨보는지 모르겠다. 물론 눈여겨 보긴 할 것이다. 아무리 배우가 중요하다지만 어떤 무대에서 공연하느냐에 따라 그 배우가 빛나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당장 요즘의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그렇다. 배우도 배우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무대 세트를 보면 눈을 빼앗길만하다. 그러나 처음에만 그렇지 결국 우리의 관심은 이내 배우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물론 조금 더 관심의 영역을 넓혀서 누가 연출했는지, 누가 작품을 썼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하나의 예의가 되었다.   

이 책은 비록 프랑스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시노그라퍼들의 대략적인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보니 나는 무대 디자이너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분야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분야에 대한 대중서가 나왔다는 건 확실히 흥미롭긴 하다. 하지만 과연 대중에 관심을 끌 수 있는지는 지금으로선 판단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의 시노그라퍼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흥미로울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나라 무대도 못지않게 화려하고 창조적이어서 그것을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은 1975년에서 2015년의 작품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대를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게 옛 시대의 작품들도 요즘에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책은 글은 최대한 절제하고 각각의 시노그라퍼들의 대표작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시노그라퍼란 무엇인지 또는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가를 인터뷰식으로 간략하게 소개해 놨다. 대답이 여러 가지이긴 하다. 누구는 드라마트루기의 관점에서 작품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을 넓혀 가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연출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작업을 한다고 했으며, 어떤 시노그라퍼는 배우를 많이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고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연출을 겸하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대답은 여러 가지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공연이란 커다란 작품을 앞에 놓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겠는가. 관계자들 외엔. 그들은 기꺼이 공연에 녹아들고 스며들어야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자인한 존재들이었다. 공연이 끝나면 없어져야 하는 무대장치다. 공간 예술이라 어디에 영구 보존하기도 어렵다. 장소를 대여하는 것이니 대여 기간이 끝나면 어쨌든 철거를 해야 한다. 보존을 하려면 사진 같은 기록물로 보관하던가 아니면 그 작품이 레퍼토리화해서 어디선가 계속 공연이 되면 그에 따라 그 무대디자인은 함께 갈 수도 있겠지.

이제 좀 시노그라퍼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도 쳐줄 박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작품은 웬만한 미술작품 못지않다. 그리고 상당히 매혹적이다. 이런 무대에서 공연하는 배우는 절로 연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감탄할 정도다. 이왕 연극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작가 같은 거 하지 말고 배우를 하면 좋겠다. 이렇게 배우를 위하는 사람이 많은데 배우는 정말 축복받은 직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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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6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화가들도 전업 화가가 되기 전에 무대 디자인 일을 한 적이 있고, 화가가 돼서도 무대 디자인 일을 했어요. 화가의 손길을 닿은 무대 디자인도 예술로 인정해야 합니다.

stella.K 2017-04-16 18:42   좋아요 0 | URL
정말 사진 보면 그림이야.
그 그림속에서 사람이 살아 움직인다고 생각해 봐.
진작 그림을 배우지 못하고 무대 디자인을 못 배운 것이 아쉽더군.
이 책에 나온 사람과 그의 시노그라피는 빙산의 일각이겠더군.
우리네 같은 사람은 새끼 손가락으로 쿡 한 번 찍어
맛 본 것에 불과해.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