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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출연 : 게리 올드만, 위노나 라이더, 안소니 홉킨스, 키아누 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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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7-0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또 퍼가두 되지용??

mira95 2004-07-07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우리 필이 통했나 봐요. 저도 어제 앤 올렸는데...

panda78 2004-07-0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화 느낌의 앤이네요. 좋다.. ^^

플레져 2004-07-07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지 않으면 안될.........와.........앤, 잘 지내는구나...^^

진/우맘 2004-07-0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다이아나도, 안녕?

tnr830 2004-07-0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만화 넘 좋아해요ㅎㅎㅎ
저두 퍼갈께요^^
침대맡에 창문있는 집에서 살고픈 꿈을 꾸었었는데..^^;;
 


‘워터프론트’ ‘代父’ ‘지옥의 묵시록’ 등서 재능 불살라
“연기는 방종을 낳을 뿐” 실제로도 방탕하고 불운한 삶

이동진기자 djlee@chosun.com

 


▲ 대부3(1972년)에서 돈 콜레오네를 연기하는 말론 브랜도.
연기의 깊이에 있어서라면 로렌스 올리비에도 있고, 신화화된 정도로 따진다면 마릴린 먼로도 있다. 그러나 영화라는 새 매체의 첫 백년을 대표할 단 하나의 얼굴을 뽑아야 한다면 단연 말론 브랜도다.

지난 1일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브랜도는 ‘대부’ ‘워터프런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같은 대표작들로 스크린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또렷하게 새겼다. 기존의 양식화된 정통 연기 틀을 깨고 동물적 본능으로 자유롭게 즉흥연기를 일찌감치 펼쳐낸 그는 60년대 로큰롤 열풍을 포함, 지난 세기 대중문화의 폭발적 에너지 자체를 예고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1895년 시작된 영화사(映畵史)에서 20세기가 끝난 날은 2004년 7월 1일이었다.

‘고독한 아웃사이더 영웅’은 그의 발명품이다. 데뷔작 ‘더 멘’(1950) 이후, 오토바이 폭주족으로 등장한 ‘와일드 원’(1953)에서 그가 입은 티셔츠와 청바지, 가죽 재킷은 선풍을 일으키며 젊음의 상징이 됐다. 아카데미 트로피를 안겨준 ‘워터프런트’(1954)로 그는 서른에 최고 배우 자리에 올랐다. 타락한 조합 간부들을 고발하는 부두 노동자 역을 맡아 가슴 속 격렬한 내연(內燃)을 함축한 침묵과 무표정으로 내면 연기의 최고봉을 보여줬다.

‘바운티 호의 반란’(1962) 이후 10년간 긴 슬럼프를 겪은 그를 부활시킨 것은 ‘대부’(1972)였다. 마피아 보스 비토 콜레오네 역을 맡은 그는 약한 듯 쉰 목소리에 강한 카리스마를 담아 선명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 하나를 조각해냈다. 살인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 고양이를 무릎에 앉혀 다정히 쓰다듬음으로써 인물의 이중적 측면을 요약했고, 정원에서 손자와 놀다 불현듯 무너져내리는 연기를 통해 그의 죽음을 긴 여운으로 변주했다. ‘대부’로 다시 아카데미를 받게 되었을 때 그는 할리우드의 아메리카 원주민 묘사 방식을 비판하며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민권운동에서 환경문제까지 그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한 배우였다.



 

 

 

 

 

 

 

‘대부’에서 배우 자신을 숨기는 연기의 정점을 보여줬다면 뒤이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는 정반대 스타일의 최고 경지를 선보였다. 아내 장례식을 앞두고 이름도 모르는 여자와 파괴적 섹스에 몰두하는 남자 역을 맡아 딱 한 번 자신을 온전히 드러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배우로서의 이력을 생생한 즉흥연기 대사에 담아 오랜 세월 묵혀온 한을 폭발시켰다.

그의 삶의 동력은 바로 아버지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 방종하고도 폭력적이었던 아버지는 평생 갈등을 빚으며 아들의 삶에 걷히지 않는 그늘을 만들었다. 그런 아버지 이름이 그와 똑같은 말론 브랜도였다는 것은 뭘 뜻할까. 아들에게 아버지는 냉혹하게 채근하는 세상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그 아들 자신의 인정하기 싫은 그림자이기도 했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내 안에도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토로한 브랜도는 실패한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그는 아들 크리스천이 살인을 저질러 수감되는 것과 딸 셰옌이 자살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그는 모두 아홉 명의 아이를 뒀다. 그러나 한 친구가 “정말로 자식이 몇 명인지는 자신도 모를 것”이라고 했듯, 그는 평생 수많은 여자를 전전했다. 하지만 아무도 진정으로 사랑하진 않았다. 가정 폭력의 희생자였고 알코올 중독자였던 어머니만이 그의 유일한 진짜 애인이었다. ‘지옥의 묵시록’(1979) 때 130㎏까지 불어나게 한 대식증, 수십 년 정신과 의사 신세를 지게 했던 우울증은 그를 망가뜨린 또 다른 괴물들이었다. 그는 “덜 미치려고 애쓰면서 평생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할리우드와 연기 자체를 혐오했다. “연기는 자기 방종을 낳을 뿐인 부랑자의 삶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대가로 보수를 받고 그 결과도 무가치한 것이 된다”고 한 그는 “1년 중 석 달만 연기하면 나머지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 생활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말은 그의 삶에 빨판처럼 붙은 습관적 냉소가 아니었을까. 배역을 통하지 않고는 비명 지르는 법을 알지 못했던 이 음울한 사내에게 연기란 그 자체로 호흡 같은 것이었다. 증오하면서도 되돌아가 껴안지 않고는 버텨낼 수 없는 어떤 것, 그것은 찬란한 재능으로 한 시대를 사로잡았던 거인 말론 브랜도의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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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을 내다봐..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거야..

조용히 귀를 기울여봐..
너의 가슴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거야..

눈을 감아봐..
입가에 살짝 미소가 띠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거야..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 있으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클래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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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통스러운 건 사랑이 끝나서가 아니라
사랑이 계속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보다
아름답습니다..."

"사람에겐 숨길 수 없는게 세 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래요"


- '시월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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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r830 2004-07-06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보진 못했지만
이 말들은 좋은 것 같아요
퍼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