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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 얘기는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언뜻 떠오르는 건 영화 <쇼생크 탈출>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주인공 앤디가 아내를 살인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지 않는가.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겠는가. 하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잠재울 수 없었던 앤디는 자신의 감방 벽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뚫어서 결국 탈출에 성공하고 자유를 쟁취하지 않던가. 앤디가 탈출하기 전까지 교도소 생활을 하게면서 겪는 부조리와 인간군상을 보는 건 덤이다.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오래전에 읽었던 빅터 프랑크의 <죽음의 수용소> 생각이 난다. 빅터 프랭크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앤디가 더운 날 쉬지도 못하고 짐승 같은 노역을 감당해야 하는 죄수들에게 약간의 휴식 시간과 갈증을 풀어 줄 맥주를 나눠 마시는 장면은 그가 죄수들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는 장면과 비가 쏟아지던 날 탈출에 성공하고 하늘을 향해 한껏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장면과 함께 명장면으로 뽑을 만하다. 또한 그는 그렇게 하므로 사람들을 하나하나 자기편으로 만들지 않는가.


지난 주일 잠시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단막극을 봤다. 장류진 작가의 원작을 드라마화했다. 이 드라마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다.  


초반엔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는 주인공이 겪는 몇 가지 에피소드와 인간군상들을 감각적인 영상과 함께 보여준다. 뭐 나름 나쁘지 않지만 왜  <쇼생크 탈출>이 명화인지 알 것 같다. 제작비의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여기선 주인공의 실존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의지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중반까지 계속 주인공의 시각에서 직장 생활의 답답함과 부조리함만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중반을 넘어가면, 사이트에 거북이알이란 닉네임의 사람이 한꺼번에 지나치게 여러 물품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왜 그럴까 궁금증이 발동한 사장이 주인공에게 물건을 사는 척하면서 그를 만나보라는 특명을 내린다. 주인공은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시키는 일이니 하는 수밖에.  


만나 본 거북이알은 의외로 반듯한 40대 초반의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런 여자가 중고거래 사이트에 물건은 그렇게나 많이 올리다니. 뭔가의 사정이 있겠지 싶기도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이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거북이알은 자신을 순순히 열어 보인다.


그녀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황당하게도 월급을 회사 포인트로 받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녀는 어느 대기업의 문화 기획 파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클래식 마니아인 회장이 러시아의 어느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켜 보라고 한다. 성사시키면 특진이 예약되어 있기도 하다. 그녀는 고진감래 끝에 성사시키고 공식적으로 공연 확정을 알리는 광고를 올렸는데 그게 의외의 결과를 낳고 만다. 즉 그 광고는 회장이 자신의 SNS에 직접 올렸어야 했던 거다. 그것을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올린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덕분에 특진은 물 건너가고 좌천 비슷한 부서 이동을 당한다. 일명 회사 이름을 딴 카드사다. 한 달쯤 지났을 때 회의를 하는데 갑자기 회장이 들이 닦쳐서 회사 포인트가 왜 좋은지 말해 보라고 한다. 그녀는 당당하게 두 배로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회장은 그럼 그 좋은 포인트를 1년간 월급 대신 받으라고 한다.


거북이알은 진짜 월급을 포인트로 받을까 반신반의하고 있는데 진짜 받는다. 이때부터 난 슬슬 감정이입이 슬멀대기 시작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1인 시위라도 해야 아닌가. 그도 그렇지만 과연 이런 또라이 같은 회장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건 확실히 인권 말살이다. 어쨌든 결국 그때부터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꿔야 하는 거북이알의 지난한 여정을 주인공에게 들려준다. 물론 처음엔 황당하기도 하고, 자신이 한 일이 그렇게 죽을 죄였나 세상이 온통 회색빛이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찾고 살기를 모색하는 것이다.


거북이알의 대사 가운데 이런 말이 나온다. 살다보면 정말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 못할 일을 겪게 되지 않냐고. 그때는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된다고. 그게 이상하게도 나의 폐부를 찔렀다. 나는 지금 자발적 백수로 살고 있지만 한때 나도 사람과 부딪히며 일한 적이 있다. 그러면 정말 나의 이성과 상식으론 이해 못할 일을 많이 봤다. 그럴 때마다 난 나의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과연 지금 깨달았던 걸 그때 깨달았더라면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영화 <쇼생크 탈출> 보다 좀 못하긴 하지만 묘하게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작품성에서 <쇼생크->이 당연 갑이지만 현실을 그리는 건 이 드라마가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나라면 앓느니 죽는다고 이건 짐을 싸라는 뜻이구나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직원은 다 돈을 받는데 자기만 포인트로 받는다면 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일일이 현금으로 바꾸는 것도 구차스럽고. 그렇다고 그만둔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살아야 하니 구차스러움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감내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발견한다. 


난 포기가 빠르다. 어렵고 힘들겠다 싶으면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포기하고 만다. 견디고 참는 건 내 체질이 아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어떻게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지 알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난 그런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아름다운 건 뭔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다.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같은 날 밤 나는 우연찮게도 박위(이름이 멋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 자식을 낳으면 나도 이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했다.ㅋ)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TV에서 보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그는 꽤 유명한 유튜버다. 그는 지금 30대 중반 정돈데 6년 전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하지만 그는 정말 피나는 노력으로 현재 손은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고 몸을 어느 정도 추스러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자신의 그러한 노력을 너튜브에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차츰 알려져 지금은 엄청난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다. 자신의 방송명이 미라클 TV라고 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다치는 순간에도 한 번도 좌절하지 않다고 한다. 재활에 성공해서 반드시 옛날의 건강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공언한다. 설혹 그러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자살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그의 영상 한 번 보고 죽어야지 하고 보다가 다시 마음을 돌이켜 삶을 선택했다. 과연 기적이다. 정말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사람이 남도 살릴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최근에 쏟아져 나온 비속어 같은 단어들 흑수저니, 헬조선이니,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냥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지어낸 말일뿐이고 그 말에 매어 자신을 소모하거나 불행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은 의외로 낭만적인 존재다.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내는 존재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내 편으로 만드는 영특한 존재인 것이다. 


올해 우리는 그 어느 해 보다 어렵고 힘든 해를 보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불행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내년이 올해보다 나을 거라고 낙관할 수도 없다. 흙을 포클레인으로 파도 부족할 판에 삽도 아니고 숟가락으로 파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설혹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올지라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인간은 어차피 시지프스의 후예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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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5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생크 명작!

전 오늘 폴라 익스프레스 관람중 ^@@^

스텔라 케이님 방에 루돌프 한마리 놓고 가여 ㅋㅋ

¥¥ ★☆★☆
^∩∩^ *Merry*
(●) Christmas
-o--¢-☆★☆★-

stella.K 2020-12-25 18:01   좋아요 1 | URL
이랴, 이랴~ 나 오늘 스캇님한테 루돌프 선물 받았당!!!
아니 쭈쭈쭈 해야하는 건가요?
고맙습니다. 다음 돌아오는 크리스마스까지 잘 키워보겠습니다.ㅎㅎ

폴라 익스프레스는 아직도 안 본 영환입니다.
쇼생크는 정말 명화죠. 두 번 봤나, 세 번 봤나~~ㅋ

희선 2020-12-26 0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한국을 안 좋게 말하기도 하는데,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모든 걸 잃고도 다시 일어서서 잘되는 사람은 아주 적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을 보면 자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은 가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저도 못할 것 같으면 안 해요 그걸 하려면 아주아주 힘을 써야 하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모두가 힘을 내서 잘하기는 힘들어요 이건 어떤 일이든 다르지 않겠습니다 자신한테 맞게 자신대로 사는 게 좋을 듯해요 열심히 하는 사람이 보이면 응원해주면 되죠


희선

stella.K 2020-12-26 15:39   좋아요 2 | URL
자기네 나라를 얉게 보는 건 어느 나라나 비슷하더군요.
프랑스나 독일 뭐 그런 잘 사는 나라의 젊은이들도
자기는 우리나라에서 안 살 거라고 말한데요.
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집 엄마는 다 좋은 분 뭐 그런 거겠죠.
희선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죠.
이 드라마는 만일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주죠.
물론 어떤 의미에선 드라마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혹시 시간되시면 한 번 보세요. 소설을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 보면 정말 응원해 주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20-12-28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펜트하우스, 보고 있어요. 김소연이 연기를 잘해서 연예대상 감이다, 생각했어요.
연기가 몇 단계 오른 듯 느껴지더군요. ㅋ

<일의 기쁨과 슬픔>은 오디오북으로 몇 번이나 들었던 책이에요. 내용이 다 좋더군요.

stella.K 2020-12-28 18:55   좋아요 1 | URL
ㅎㅎ 저는 그 드라마에서 김소연이 너무 표독스럽게 나와서
좀 무섭더군요. 그도 그렇지만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 같아서
초반에 잠깐 보다가 말았어요.
그래도 올해 SBS가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선전한 것 같긴해요.
기억에 남는 건 <낭만닥터 김사부2>랑 <하이애나>가 기억에 남아요.
<앨리스>는 중간쯤 보다 말았어요. SF물은 단막으로 보여줘야지
16부까지 하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못 봐주겠더군요.ㅠㅋ
 

                                     

                       

 

오랜만에 연극을 보았다. 정확히는 스테이지 무비다. 즉 연극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 물론 중간중간 영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올레 틔비 회원 12년쯤 하니 이런 것도 보여준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함부로 공연장 가기도 뭐한데 괜찮은 시도 같다.

 

이 연극은 2인극이다. 황혼의 사랑을 그렸다. 내용은 그냥 고만고만 하다. 젊어서 테일러였던 홀아비가 독립을 한다고 예전에 알던 국밥집 할멈의 집에 들어가 하숙을 하다 사랑하고 사별하게 되는 과정을 사계절에 비유해 그렸다. 연극이란 장르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으니 스케일을 크게하기도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결국 배우의 힘이 작품의 성패를 가른다. 두 노배우의 연기가 볼만하다. 그래서 연극을 배우의 예술이라고 했는가 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본이 좀 아쉽다. 조금 더 디테일하면 좋을텐데.  

 

우리는 노년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늙어서 황혼 이혼하는 경우도 많고 송장 치워주러 결혼하냐, 늙어 무슨 로맨스냐며 거북함을 숨기지 않고 스스로도 위축되어 있다. 하지만 사랑은 나이를 타지 않는다. 노년의 사랑은 죽음이 가깝기 때문에 더 강렬하고 실존적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을 별로 어렵지 않은 대사에 잘 담아냈다. 나중에 할멈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데 그 장면에서 잠시 울컥했다.    

 

비록 TV이긴 하지만 괜찮은 느낌이다. 지금 공연계는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가 되면서 조심스럽게 공연을 재계하는가 본데 언제쯤이면 코로나가 물러가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공연을 보러 다니게 될까 아득한 느낌이다. 미국의 브로드웨이의 살아 있는 전설이란 한 여자 배우는 살면서 별 일을 다 겪었지만 이런 때는 처음 본다고 절망적으로 말하면서 공연계의 도움을 호소한다. 미국이 이럴진대 우리나라 공연계는 오죽할까. 이렇게 스테이지 무비라도 보면 공연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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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0-2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연극연 배우를 눈앞에서 보면서 봐야하는 예술인데... 그쵸. 연극은커녕 극장 간지도 너무 까마득합니다. 공연이나 문화계 사람들도 정말 힘들것 같아요

stella.K 2020-10-23 18:50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연극을 영상으로 찍어 유료 상연하는 극단도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솔직히 연극은 돈 생각하면 못하죠.
연극 한다는 그것 하나 보고 할뿐인데
이런 기업에서 한시적로나마 도움을 준다면 좋을텐데 어떤지 모르겠어요.

페크pek0501 2020-10-23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가 왜 재미가 없는 거지, 하고 보면 디테일 문제였어요. 작가도 건성으로 쓰고 독자도 건성으로 읽게 되어요. 독자를 그 내용에 빠져 들게 하는 핵심적 요소가 디테일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stella.K 2020-10-24 15:31   좋아요 0 | URL
연극이 나쁘진 않은데 좀 아쉽다는 거죠.
그런데도 두 사람이 90분 정도되는 연극을 이끌어 간다는 게
새삼 놀랍더군요. 두 사람의 연기는 정말 괜찮았어요.^^
 

엊그젠가 유재석이랑 조세호가 나오는 유퀴즈... 어쩌고하는 프로에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동화작가가 나와서 판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봤다. 중간부터 봐서 구체적인 건 잘은 모르겠는데 그 작가는 작가의 판권이 출판사에 있는 것에 대한 부조리함을 성토했다. 작가는 그저 원고료만 받으면 끝이라는 것. 그 판권이 어떻게 흘러가도 거기에 대해 작가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았나 보다. 하긴 뭐 작가가 글만 쓸 줄 알지 법에 대해 특별히 아는 것도 아니고. (좀 오래된 얘기긴 하지만) 나도 책을 내보긴 했지만 난 그저 출판사에서 먼저 출간 제안을 받은 것이라 무조건 출판사에서 하자는대로 했다. 더구나 출판사 사장이 그전부터 안면이 있고 사람 됨됨이를 알고 있는터라 나한테 해 되는 일을 할 사람은 아니니 그냥 믿고 했다. 무엇보다 내 책이 뭐 크게 대박터트릴 것도 못 되니 그냥  경험이 중요했지 그런 판권 가지고 출판사와 싸울 일이 있겠나 싶어 신경도 안 썼다.

 

근데 그 동화 작가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뭔가를 알고 마음 고생을 했던 것인지 그게 좀 의하했다. 내가 뭘 모르는 걸까... 물론 판권은 좀 문제가 있긴 하다. 판권이 왜 작가에게 있지 않고 출판사에 있는가. 근데 일정 기간 출판사에게 있고 만료되는 거 아닌가? 오히려 작가가 신경 써야하는 건 저작권 아닌가? 책이 나오면 빨리 저작권 등록을 해 자신의 작품이 보호 받도록 하는 것 말이다. 더구나 그림이 있을테니 그건 보호를 받아야 한다.

 

게다가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되고 공연되면서 원작과 너무 많이 달라진 것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사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옛날 나도 그랬으니까. 아, 그렇다고 내 작품이 영화화되거나 공연됐다는 게 아니고, 당시 연출가가 내가 쓴 작품 그대로 하지 않고 뜯어 고쳐서 자기 멋대로 하는데 무시 당하는 것 같고 이럴 것 같으면 작가가 필요없잖나? 정말 욕만 안 했다뿐이지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러니 작가로선 기껏 쓴 작품이 폄훼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김수현 같은 드라마 작가는 연출에도 관여하고 그러지 않나.

 

그런데 이것도 원작자들마다 같은 건 아닌 것 같다. 예를들면 김훈 소설가 같은 경우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되거나 드라마화되면 그건 원작을 기반으로 한 2차 창작물이라고 생각해서 뭘 어떻게 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그럴 땐 저쪽에서 원작료를 지불했을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그 작가는 그걸 받지 못한 걸까? 뭘 가지고 문제가 될 걸까?

 

사실 이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도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막상 부딪혀 보면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작가들이 그런 계약의 문제 때문에 1인 출판사를 차리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언젠가 이슬아 작가  헤엄이란 1인 출판사 내고 찍어낸 자신의 첫 책 위에 올라 앉아 찍은 사진이 무척 인상적이고 부러웠다. 하긴 나도 그 시절 연출가놈하고 싸우기 싫어 연출도 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는데 그 패기는 어디로 가고 나는 이런 글이나 쓰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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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3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5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5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5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09-1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어 보니 유퀴즈를 찾아 어떤 작가
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아마 태생적으로 귀차니즘의 포로라 -

충분한 저작권이 보장되는 것도 많지만
미국의 어느 회사처럼 기존의 저작권
시스템을 고무줄처럼 늘려 주구장창
해먹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stella.K 2020-09-16 18:21   좋아요 0 | URL
유명한 백희나 작가요.
거 보면서 이건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뭐 그렇더라도 작가가
손해 보는 게 더 많을 거예요.
이럴 때 일수록 협회가 똘똘 뭉쳐야 하는데...
진짜 능력만 있으면 1인 출판해 보고 싶어요.ㅠ
 

요즘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면 문득 옛날에 보았던 <쇼쇼쇼>란 프로가 생각이 난다.

유스케가 코로나 때문에 무방청객으로 진행하는 게 꽤 된다. 사실 그 옛날 <쇼쇼쇼>도 방청객 없이 했고 당시엔 그건 너무 당연했었다. 유스케가 무방청객으로 진행하는 거 난 좋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게스트에게만 집중할 수 있으니.  <쇼쇼쇼>가 생각나니 당대 불세출의 명 MC 곽규석 씨도 생각난다. 늘 오프닝 때 안녕하십니까 세 번 정도 하고 '후라이 보이(그는 꼭 이렇게 발음했다)' 곽규석이라고 했다.


최근 드라마 <하이에나>를 봤다.

김혜수가 소위 말하는 '센 언니'로 나오는데 제법 하더라. 기왕이면 목소리도 따라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여기선 좀 안 어울린다. 주지훈을 아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는 맡는 배역마다 잘 소화해내고 있어서 여기서도 만족스러웠다. 이 둘의 조합은 '센 언니 옆에 섹시(또는 댄디) 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센 언니의 신분상승이 볼만하다. 김혜수가 맡은 정금자는 결코 넘 볼 수도 없는 상류사회를 그 센 언니 이미지로 가뿐히 넘어간다. 그러면서도 결코 자기 이미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도 마이 웨이를 걷는데 콧대 놓은 그 사회는 또 그녀를 얼마나 하찮게 보는지. 당연 처음엔 '네가 감히' 했다가 결국 하나로 동화된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정금자 특유의 이미지와 실력인데 이게 참 현실에서는 0.0000001%의 확률일 거란 말이지. 그래서 드라마겠지만 말이다.    

 

요즘 센 언니에 대해서 과연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고전적 여성스러운 이미지에 비하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돌려대지 않고 스스로는 스스로가 지킨다는 측면에선 센 언니의 이미지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정금자가 자신을 사랑하는 로펌 변호사 윤희재(주지훈)에게 '서초동 도령'이라고 펀치를 날리는데 웃기기도 하지만 머리에 쏙 박힌다. 센 언니에게 잘못 보이면 섹시남은 이렇게 초식남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둘의 케미가 정말 볼만하다. 아직 안 봤다면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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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14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센 언니, 저는 좋은데요. 남자에게 의존적인 약한 여성보다 좋아요.
일단 인간은 독립적인 면이 있는 게 멋져 보이고 편해 보여요.
남보다 자기 자신을 믿고 살면 가장 초라한 밑바닥까진 내려가지 않을 듯합니다.
배신당해서 우는 여성들을 떠올리면 말이죠.

센 여성은 남자들한테 인기가 없을 수 있겠네요. 개인 차가 있겠지만요...

stella.K 2020-09-14 19:17   좋아요 1 | URL
저도 동감입니다. 센 언니는 차버릴지언정 차임을 당하진 않죠.
김혜수가 맡은 역할이 대체로 그런 것 같긴한데
여기선 거의 그런 이미지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지요.
근데 분명 남자들은 좋아하기가 힘들죠.
암튼 한번 보세요. 아주 괜찮은 드라마예요.^^
 

주인공 목해원 역을 맡은 박민영이야 기본은 하는 배우니 따로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 임은섭 역을 맡은 서강준의 발견이 좀 놀라웠다. 솔직히 난 이 배우를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다. 예전에 모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이 좋게 말하면 차도남이고, 나쁘게 말하면 얌체 같은 이미지를 맡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선 참하고 단단한 청년의 이미지를 제법 잘 소화해 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 감정 이입하고 싶었던 캐릭터가 있다면 그건 엉뚱하게도 은섭의 여동생 휘였다. 그 역을 배우 김환희 양이었는데 낯설지 않은데 어디서 봤나 했더니 영화 <곡성>에서다. 악령이 들어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뭣이 중헌디?"를 외쳤던 그 아역 배우가 벌써 커서 여고생으로 나온다. 여기선 엉뚱 발랄하다 못해 4차원 우주소녀로 나온다. 특히 아주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오빠, 언니, 선배라고 부르지만 평소 땐 자기 부모를 제외하고 위아래가 없다. 아무래도 같진 않지만 영화에서의 페르소나를 연기한 듯싶기도 하다. 아무도 휘의 위아래 없는 무개념을 탓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휘의 무개념은 전략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긴 무개념이 문제가 아니라 주제 파악을 못하는 게 더 문제라고 보는데 적어도 휘는 그 정도는 아닌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는 자신이 전따 즉 전교에서 따돌림받는 정도는 알고 있다. 물론 그런 시골 학교에서 전따래 봤자 서울의 웬만한 학교 2, 3개 반을 합친 정도도 안 될 테니 따돌림의 범위가 그리 넓지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괴로워도 슬퍼도 전혀 꿀리지 않은 강인한 멘털과 사회성이 묘하게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얼핏 로맨스물인 건 같지만 여성 서사고, 상처를 치유해 가는 힐링 서사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유심히 본 건 해원이 외가가 있는 장소와 그 안에서 드러나는 비밀과 고백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지치고 힘들면 소울 푸드를 찾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자신이 자신을 위로할 때이고, 사람은 외롭고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그것이 고향일 수도 있고, 어느 산중의 절이나 수도원일 수도 있으며, 별장일 수도 있겠지.


지상에 그런 곳이 단 한 군데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자살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바로 해원이 타향에서 지치고 힘들 때 찾은 곳은 외가였다. 하지만 그곳이라고 그녀에게 마냥 좋은 곳은 아니다. 사실 그곳은 해원이 오래전부터 풀지 못한 비밀과 상처를 묻어두고 떠나 온 곳이기도 하다. 결국 해원의 귀향은 그 문제와 마주하거나 해결하는 데 있다. 


사실 고등학교 때 해원은 엄마가 아빠를 죽인 관계로 외가에 맡겨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새로운 학교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다. 아무리 엄마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소문은 나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 소문의 진원이 자신의 베프인 보영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그 배신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이 땐 그런 거 있지 않나? 친한 사이일수록 서로 비밀 하나씩 공유하는 거 말이다. 해원은 보영에게 무슨 비밀을 얘기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해원은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보영에게 얘기함으로 영원한 친구 관계를 보장받으려 한다.   

  

 비밀은 원래 나타나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 마음속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 주위에 가장 친한 사람에게 그 사람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흘려 보라. 그러면 그 친한 사람은 친구를 변호한답시고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술술 불게 되어 있다. 바로 보영이 그덧에 걸려든 것이다. 해원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옹호한답시고 자신만이 알고 있어야 할 비밀을 얘기한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친한 친구를 잃는 치명적 실수가 된다는 걸 나중에 깨닫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그러므로 정말 좋아하는 베프가 있는가? 비밀 공유도 좋긴 하지만 그 친구가 감당 못할 너무 큰 비밀은 말하지 마라. 어쩌면 아니 십중팔구는 그 때문에 친구를 잃을 수 있다. 그나마 여기선 보영이 실수는 하지만 끝까지 해원과 친구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엄청난 비밀을 말해 버리면 오히려 그 말 한 사람이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런 건 생각도 않고 보영이 신의를 저버렸다고 원망하고 냉정하게 구는 건 해원이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한 행동이다.  


그런 만큼 끝까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는 보영이 같은 친구가 오히려 진정한 친구일 수 있다. 물은 건너봐야 그 깊이를 알 수 있고, 사람은 겪어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친구가 그렇게까지 용서를 구하며 다가가려고 하는데 한 번쯤은 용서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겠는가. 나도 누구 못지않게 신뢰 좋아하고 부르짖는 사람이다. 하지만 비밀이 원래 드러나라고 있는 것처럼 신뢰 역시도 깨라고 있는 거라고 하면 지나친 말장난이 될까.


인간관계를 신뢰에만 그 기조를 둔다면 상처는 안 받을 수 있고 그것이 깨졌을 때 할 말이 있겠지만 진실한 관계 더 깊어지는 관계는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신뢰 하나 지켜나가는 것도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는 그것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지만 누구는 그랬다. 사람은 신뢰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보영이 본의 아니게 해원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됐지만 누군가에겐 이해받고 사랑받는 존재일 것이다. 보영의 말대로 신뢰가 깨졌다고 예전을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노력은 해 볼 수 있다. 그래야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한 번 용서해 줬다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때는 그때 가서 또 생각해 볼 일이고, 지금은 용서해 주는 것이 맞다. 사람이 용서해 줘야 할 때 용서해 주지 못하면 그것도 평생 후회로 남는다. 무엇보다 해원이 은섭을 가지지 않았는가. 보영은 은섭에게 사랑을 거절당했다. 해원에게 용서받지 못한다면 불쌍하지 않은가.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건 고백이다. 비밀의 폭로가 누구에게는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하지만(해원과 보영의 경우), 비밀은 누구에겐 고백이 될 수 있다. 그건 해원과 이모의 경우다. 이 이야기엔 반전이 숨어 있는데 해원의 엄마가 그녀의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해원의 이모인 심명여가 죽인 것이다. 그나마 배우자 살인은 상대적으로 형이 짧지만 처제가 형부를 살해했다면 그건 무기다. 그것을 막고자 언니가 자신이 죽인 것으로 하고 대신 형을 산 것이다. 이건 확실히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우발적이든 고의적이든 동생이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건 자신이 매 맞는 아내기 때문이다. 형부에게 언니가 매를 맞는데 그 상황에서 이성적이는 쉽지 않다. 자신 때문에 동생이 살인을 저질렀는데 동생이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마음은 편할 리 없다. 차라리 육체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한 게 낫다. 하지만 그건 언니의 생각이고, 그 사실을 함구하고 언니 대신 조카를 키워야 하는 동생의 마음은 육체는 편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지옥이다. 10년 뒤 그것을 조카에게 고백해야 한다면 조카가 받을 충격은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고백해야 할 때 고백하지 못해 그녀는 병까지 얻었다. 그리고 자신은 병이 나도 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해원의 이모에겐 병이 최악의 은총 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차선의 은총이거나.


10년 만에 고백을 하고 모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이냐는 과제가 남았다. 선택한 방법은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쓰는 것이다. 글쎄, 그녀가 천주교 신자였다면 진작에 신부를 찾아가 고백성사라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물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건 확실히 좋은 방법이다. 그것이 세상에 알려질 수도 있겠지. 마침 신명여는 작가다. 지금까지는 익명의 독자가 그녀의 소설을 읽었겠지만 지금은 독자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 그건 조카인 해원이다. 신명여가 이 문제를 잘만 푼다면 그녀는 훨씬 더 좋고 깊어진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그 사건 이후 절필을 하기도 했는데 그 마음 알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는데 무슨 (얼어 죽을) 소설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해원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이모라는 것을 알았을 때 받을 충격도 충격이지만 과연 이모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선 숙제로 남겨 놓는다. 사랑도 쉽지 않은데 용서는 쉽겠는가. 하지만 보영을 생각하면 해원은 둘 다를 용서해야 한다. 이 사람은 용서하면서 저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건 모순이니까. 용서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추앙해마지 않는 도 선생님의 <죄와 벌>의 또 다른 버전 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고전에서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다소 소녀적 감성을 걷어 낸다면 꽤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도 같은데 뭐 이 자체만으로도 나쁘진 않다. 더구나 연출 잘하기로 유명한 한지승 감독의 연출도 보는 내내 좋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소녀적 감성이란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여성 작가의 섬세함으로 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남성다운 선 굵음을 겁내 한 발 물러선 것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론 좋긴 한데 경탄할만한 구석이 없다. 조금 더 치열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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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1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나면 그동안 못 봤던 드라마라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듯하네요.
세세히 쓰셔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니까요.

stella.K 2020-08-15 17:45   좋아요 0 | URL
ㅎㅎ 어쩔 수 없는 스포예요.ㅠㅠ
이 드라마 괜찮았어요. 볼만해요.

지금 저는 <하이에나> 보고 있는데
재밌어요. 주지훈이 되게 웃기게 나오는데 연기 잘 해요.
말하자면 허당 역활인데 김혜수한테 밟히는 캐릭터죠.ㅋ
안 보셨다면 함 보세요.^^

moonnight 2020-08-15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영 참 예뻐요^^ 이 드라마는 못 봤지만 stella. K님 정성들인 설명 읽으니 꼭 본 것 같아요^^

stella.K 2020-08-16 18:54   좋아요 0 | URL
오, 노! 직접 보셔야죠. 이건 그저 제가 생각한 걸 쓴 거구요.ㅋ
휘가 어떻게 우주 소녀인지, 서강준이 연기가 어떤지 보셔야 해요.
박민영은 예쁘고 자연스럽게 연기해서 좋긴한데
얼굴을 좀 많이 고친 것 같다는 생각이...ㅋ
그래도 뭐 연기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긴해요.
웃을 때 정말 예쁘더군요.^^

희선 2020-08-16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밀은 아예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요 보영이 일부러 말한 건 아니었네요 어쩌다가 잘못해서 말하다니... 이모도 참 힘들었겠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는 자신이 갚는 게 훨씬 좋은데, 해원이 엄마가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자신이 대신 감옥에 가다니... 멀리에서 보기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가까이 있는 사람은 그것만 바로 앞에 일어난 일을 생각할 테니...


희선

stella.K 2020-08-16 18:57   좋아요 0 | URL
원작도 좋았고, 대본을 잘 쓰긴 했어요.
겉으론 평범해 보이는데 어떻게 감춰진 이야기를 드러내 보여주는냐가
드라마의 관건이긴 하죠.
정말 사람이 할 말을 못하고 사는 건 고통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