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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서의 표준어는 전라도 말이다. 등장인물 중 서울 말을 쓰는 사람은 남자 주인공 황희태와 그 가족들 정도만 쓴다.지금까지 극중 등장인물이 사투리를 쓴다면 그건 극을 재밌게 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는 유명 배우들은 나오지 않는다. 다들 어느 드라마에선가 조연으로 연기했을 배우들만 나온다. 그런 점에서 제작비가 많이 절감되었을 것 이다. 아무래도 시대를 타는 드라마고 80년대 레트로 분위기를 생각하면 굳이 회당 출연료의 정점을 찍는 5성급 배우를 기용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해서 출연진들은 연기를 잘했다. 조연이 주연이 됐으니 얼마나 의욕이 넘쳤을까. 게다가 요즘 젊은 배우들 좀 연기를 잘하는가.


사람이 모방하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사투리 구사가 아닐까 한다. 나도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전라도 사투리를 흉내 내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실제로 서재에서 답글을 달 때 전라도 말을 쓰기도 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를 보는 중(나는 본방이 아니라 VOD로 봤다)에 목포를 처음 여행하기도 했는데 현지에서 듣는 전라도 말이 어찌나 좋던지.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케이블카를 타려고 승강장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먼저 타고 내린 어느 초로의 어르신 한 분이 처음 타 본 양 내려서는 "좋구마!"하는데 웃음이 났다. 전망대 입구에서 주차지도하는 아저씨의 전라도 말씨도 정겹고.



이 드라마의 원작은 <오월의 달리기>란 역사 동화를 각색했다고 하는데 난 아직 읽어 보지 못했다. 원작은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 김명희의 한참 터울 나는 동생 김명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5.18을 알리기 위해 씌여진 것이다. 그것을 드라마에선 젊은 남녀의 핏빛 사랑으로 새롭게 썼다. 하지만 원제가 딱히 와닿지는 않는 느낌이다. 그냥 어느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쓴 거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의 제목도 거의 같은 느낌이긴 한데 우연히 이 드라마가 5.18을 배경으로 했다는 걸 알고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의 미덕이라면, 그런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고 해서 반드시 어둡고 칙칙한 건 아니다. 중간중간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이 많아 크게 부담스럽진 않았다. 애초에 남녀 간의 사랑에 방점을 뒀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특히 세 사람, 명희와 희태, 명희의 친구이자 희태의 약혼녀 수련과의 점점 꼬여가는 운명은 억지스럽지 않고 꽤나 현실적이다. 그만큼 대본이 탄탄하다.


이들의 운명의 얽힘을 보고 있노라면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저리 가라다. 또 못지않게 이들의 부모 역시 서로 질긴 악연으로 얽혀있다. 하긴 비극적 사랑의 원형은 셰익스피어를 원형으로 하지 않는가. 5. 18이 비극적인 만큼 드라마도 결코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그래도 왜 원제가 <오월의 달리기>인지 뒤에 가면 알 것 같다. 5. 18이 터지고 누나를 찾아 광주에 온 명수가 누나를 만나긴 하지만 명희는 동생과 함께 집에 갈 수가 없다. 그때 명희는 혼자서는 집에 가지 않겠다는 동생을 설득해 뒤돌아보지 말고 계속 집을 향해 뛰라고 한다. 과연 그래서 그런 제목이 붙였겠구나 이해가 간다. 하지만 명희는 곧 뒤따라 가겠다는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드라마 말미에 보면 5. 18이 있기 하루 전 성당에서 희태와 명희가 결혼 서약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혼 서약이래봤자 서로를 위한 기도해 주는 것인데 명희가 기도문을 읽는 장면이 가슴이 찡하다. 내용을 옮길 수 없지만(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광주의 아픔을 아픔 그대로 갖고 있지 말고 그것을 밟고 일어서라는 뜻의 기도를 하는데 과연 기도는 그런 것이겠구나 싶다. 우리의 기도는 자칫 우리 자신의 안위와 기복을 위해 빌 때가 얼마나 많은가. 기도는 우리와 공동체의 상처의 치유와 평화를 위해 빌 때야 비로소 기도다워진다는 걸 이 드라마는 명희를 통해 보여준다. 


더 공교로운 건, 이 드라마의 여운이 다 가시기도 전에 광주 5.18 사태를 주도했던 노태우와 전두환 씨가 불과 한 달 차이로 세상을 떠났다. 특히 전두환 씨는 이렇다 할 사과도 없이 세상을 떠나 광주 사태의 피해자들의 공분을 샀다. 그건 정말 사람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죽는 마당에서조차 잘못을 사과할 줄 모른단 말인가. 그 인생이 참 안타깝다 싶다.


그도 그렇지만 아직도 전두환 씨를 옹호하는 세력이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그들은 전두환 씨의 국립묘지 안장을 촉구했는데 그건 정말 추태란 생각이 든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들이 저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건 상처에 소금을 붙는 격이다. 더구나 전두환 씨의 사망 하루가 채 지났을까, 광주 민주화 사태의 피해자로 지난 40년 동안 육체의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마약성 진통제로 버텨 온 어느 초로의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어쩌면 전두환 씨가 죽기를 기다렸던 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렇게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모쪼록 그분의 명복을 빌 뿐이다.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미덕은 마지막 회다. 세월이 흘러 현재를 보여주는데 드라마 거의 대부분이 그렇듯 마지막은 지난 회에 비해 약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엔딩도 찡하다. 이 드라마는 5.18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또 하나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닐까 한다. 꼭 한 번 보면 좋겠다. 원작과 대본집도 보고. 단 좀 아쉬운 건 계엄군과 시민의 충돌을 보여주는 장면이 너무 어색하고, 임팩트가 약하다. 너무 제작비를 의식했을까.  


황희태 역을 맡은 이도현 배우는 목소리도 좋고 발음이 정확해 다시 한번 보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그보다 더 지켜본 건 다름 아닌 수련의 오빠 수찬(이상이 분)이다. 평소 이상이 배우는 껄렁껄렁한 조연으로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선 제법 소신 있는 젊은 사업가 겸 명희를 짝사랑하는 친구 오빠 역으로 나온다. 이런 역은 주연보다 더 좋게 보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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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1-29 2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드라마 방송 당시 한 회만 잠깐 봤었는데 주인공들 연기에 영 몰입이 안되어 일단 보기를 멈췄었어요.남녀 주인공들을 실은 제가 넷플릭스의 <스위트 홈>에서 연기하는 걸 본 직후에 봐서 더욱 몰입 못했던 것 같아요.
시간 많이 지나서 몰아보기로 다시 봐야지~싶어 미루기만 했네요^^
드라마가 역사 동화를 각색한 건 줄은 몰랐네요...
지금 구경이 몰아보고 있는데 이 드라마 다 보고 나면 오월의 청춘 봐야겠네요^^
전두환의 죽음은 참...더군다나 국립묘지 안장이라니요???!!!!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니 본인이 옳다고 더 굳게 믿었을까요??
참.....에혀....사람이라면....

기억의집 2021-11-30 09:17   좋아요 1 | URL
국묘행은 안 될 거예요. 국묘 되면 침 한번 뱉어주러 가야죠!!!

stella.K 2021-11-30 10:09   좋아요 0 | URL
제작비를 아끼고 인물 중심의 드라마라 보기에 따라선 몰입이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의미는 심박합니다.
저도 봐야할 드라마가 줄줄이어요. 구경이 저도 대기중이죠.

자료 조사 하는데 나중에 이순자 씨가 남편을 대신해 사과했던 모양인데
아주 안하는 것 보다야 낫겠지만 그것 가지고 광주 시민들이 분이 풀리겠어요?
전두환은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끝까지 우릴 실망시키네요.ㅠ

2021-11-30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30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1-11-30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원작이 동화였군요 자세히 못 봤지만 언제가 이 드라마 이야기 조금 본 듯도 합니다 전라도니 모두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겠습니다 이 드라마 보실 때 목포에 가셔서 느낌이 다르기도 했겠네요 자신이 한 잘못을 제대로 사과도 안 하고 죽다니... 그런 거 잘 모르기도 할 듯했습니다 건강이 괜찮았을 때도 그런 생각 안 했겠네요

stella.K 님 십일월 마지막 날 잘 보내세요


희선

stella.K 2021-11-30 11:51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그놈의 권력이란 게 뭔지.
죽을 땐 달라지는 게 사람의 마음인데
전두환은 어쩌자고 그렇게 돌아간 건지...ㅉ

세월 정말 빨라요. 내일이면 벌써 12월이네요.
어쩌면 11월 보내기가 12월 보내는 거 보다 더 어려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물론 막달이라고 센치해지기도 하지만 새해를 기다리는 마음도 있잖아요.
요즘은 다섯시 반만되도 깜깜하잖아요.
난 그게 좀 싫더라구요. 한 6시까지만이라도 환했으면 좋겠어요.
1월이 되면 그 희망이 생겨서 좋더라구요.ㅎ
희선님도 11월 마무리 잘하시기 바래요.^^

2021-11-3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30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슬의생2는 시즌1에 비하면 확실히 좀 김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아무래도 작가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작가가 원톱이다. 물론 서브 작가가 있겠지만 메인 작가가 그것도 의학드라마에서 한 명이 쓴다는 건 아무래도 그렇지 않나.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잘 쓴 대본을 연출이 말아 먹을 수는 있어도 못 쓴 대본을 연출이 살리는 법은 없다고. 드라마의 답은 사랑이라고 결국 슬의생 5인방도 사랑찾기로 귀결나는건가 싶기도 하다.


이 드라마가 성공적이지 못하는 것은 또 있다. 드라마가 너무 밝다. 드라마는 언제나 인간 내면을 보여줘야 하는데(그런 점에선 '낭만닥터 김사부'는 탁월했다) 거의 대부분 치료 가능한 케이스를 보여준다. 뭐 그만큼 현대 의학이 좋아지고 있으니 굳이 실패한 치료를 보여줄 필요도 없고, 밝은 명랑 드라마니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환자와 보호자들은 하나 같이 의사에게 배꼽인사를 한다. 마치 그들이 생명을 주관하는 신인 양. 게다가 슬의생 5인방뿐 아니라 등장하는 의사들은 하나 같이 친절하고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나라도 그런 의사를 만나면 배꼽인사를 할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라 그렇지 우리가 배꼽인사를 하고 받고하는 관계는 아니지 않나? 인터넷의 발달로 의사를 만나기 전 자신의 병을 조사하고 진찰 때 의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나 안 하나 간을 보지 않나.


물론 나는 지금까지 열정적으로 병원을 다녀보지 않아 의사들이 실제로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대체로 친절하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도 보인다. 일종의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환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혹시 치료 가능한 병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물론 너무 빼면 능력없는 의사로 보일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로 나를 보여줄 것이냐가 고민이긴 할 것 같다. 그러다 환자가 고비를 넘기고 회복하면 그들의 어깨는 한 없이 높아진다.    


또한 의사는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해 내기도 한다. 환자 보고, 학생 가르치고, 논문 쓰고 이것만으로도 머리가 빠질 것 같은데 율제병원은 사랑의 병원이긴 하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알고, 전장에서 피어나는 우정이나 사랑도 남다르긴 할 것이다. 원래 드라마에서 사랑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여지고 있는데 여기선 5인방이니 사랑도 다섯 가지로 보여줘야 한다. 다섯 가지로 보여주려니 작가도 머리 깨나 아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들 5인방의 사랑을 평해 볼까 한다. 개인적으로 김준환과 익순과의 사랑은 가장 드라마에 익숙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이들의 연기는 나름 좋다. 하지만 그냥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정도다. 


그런데 비해 안정원 커플은 개인적으론 가장 짜증 난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라면서 선생과 학생의 관계를 영원히 떨쳐버리지 못할 것만 같다. 조금 편하게 봐주면 오누이 관계 정도? 안정원이 한때는 사제가 되려는 마음도 품었으니 몸에 벤 경건의 모습도 있을 텐데 작가가 그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하긴 초반에 사제인 안정원의 형을 보면 이건 그냥 시트콤이다. 안정원의 상대(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누가 모범생 아니랄까 봐 안경 쓰고 눈만 껌벅거리는 이미지는 끝까지 개선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뭐 병원이란 특성도 있으니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진짜 사랑하는 사이라면 대등한 관계를 보여줘야 하는데. 드라마를 생각한다면 사랑 타령은 접고 원래 마음 먹은 사제의 길로 가는 것으로 좋을 것 같은데 그럴 가능은 1도 없지? 이래서 결론을 알 것 같은 명랑 드라마가 힘들다고 하는가 보다. 이대로 언제고 시즌3을 한다면 난 안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이상적인 건 역시 익준과 송화 커플은 아닐까. 가랑비에 옷 젖듯 친구로 지내다 사랑으로 발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뜨겁게 연애하다 결혼하는 거 난 별로다. 결혼해서도 뜨거울 수는 없다. 자고로 결혼은 친구처럼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둘은 대학 때 사랑을 할뻔 하지 않았나. 그걸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에 이루게 됐으니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신뢰고 친밀함이다. 문제는 익준도 그렇고 송화도 그렇고 흔한 인간형은 아니라는 것.  


엉뚱한 건 양석형-추민아 커풀이다. 이미지에 맞게 곰 같은 사랑을 한다. 특히 11회를 보다 나도 모르게 심쿵한 장면이 있었다. 둘이 영화를 보고 거리를 걷는데 늘 질문이 많은 추민아가 역시 또 질문을 한다. 왜 고백하지 않냐고. 그러자 석형이 꼭 고백을 해야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그럼요 한다. 그러자 석형이 넌 내가 무섭지 않냐고 묻는다. 내가 너의 생각과 달리 나쁜 사람이면 어쩔거냐고. 그러자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팔자려니 하죠. 그리고 덧붙이기를, 걱정 없다고 자신이 좋은 사람이니까라고 말한다.


그걸 보는데 새삼 난 누구의 좋은 사람이 되본 적이 있던가 싶다. 누구든 사랑(또는 고백)의 흑역사가 있지 않을까. 즉 고백했다 까이는. 왜 사랑은 꼭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성공하면 좋긴 하지만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시작조차 못하는 사랑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론 실패하면 엄청 아프긴 하다. 하지만 빨리 실패하면 그만큼 빨리 일어나지 않을까. 난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걸 누군가를 몹시 좋아만 하고 고백하지 못했던 그 젊은 날엔 생각도 못했다. 또한 아무리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해도 고백을 해 보는 것과 하지 않는 건 다르지 않을까. 그건 어쩌면 상대 보다는 내 자신을 위해 해 보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데미안>의 알 깨기 같은 거라고 하면 너무 뻔한 대답일까? ㅋ 


어쨌든 추민아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의외의 반전이고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이어도 자기 자신 이상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설혹 그 자리에서 석형의 고백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얼마 후엔 마음을 추스르고 또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않을까.동시에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얼마나 자기 자신과 상대를 옥죄는 것인가. 모르긴 해도 우리가 익준 같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인기있는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이 아니라 유머 감각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유머 감각은 장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물론 노력하면 되지만. 하지만 그게 실제 사람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얼마나 인간적이냐, 따뜻한 마음을 가졌느냐, 얼마나 예의 바른가 뭐 이런 거 아닌가. 그렇다면 석형이 같은 인간형을 만날 확률이 익준 보다는 좀 더 높지 않을까.         

       

분명 시즌2는 1에 비하면 쳐지긴 하지만 슬의생이 추구하는 중심 주제까지는 깎을 생각은 없다. 뭐 병원이 실제로 그렇게 인간적인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는 이상을 담기도 하지 않은가. 드라마 때문에 율제병원 같은 곳이 앞으로도 많아진다면 그도 좋은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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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11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즌 1은 잠깐 본것 같은데 시즌 2는 본적이 없네요 😅 확실히 시즌 1이 인기 있으면 시즌 2는 전편보다는 힘을 못받는거 같아요 ㅜㅜ
이런 이상(?)적인 병원 모습이 일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21-09-12 12:25   좋아요 1 | URL
형만한 아우가 없는 거죠.
저는 2를 그냥 습관성으로 봤습니다.
2를 본 건 이 작품이 처음이지 싶어요.
예전에 <보이스>를 재밌게 봐서 2를 한다기에
기대를 가지고 봤다 그냥 접었죠.
좋다고 하는데 전 좀 질리더라구요.
그런 장르를 즐기지 않는지라.ㅋ

페크pek0501 2021-09-12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는 시간 맞춰 보기가 어려워 주말연속극만 충실히 보게 됩니다.
의학드라마는 한석규 님이 나오는 것 있었잖아요. 그거 흥미롭게 봤었어요.
오늘 주말드라마인 KBS의 광자매는 괜찮았어요. 끝날 때가 되어서인지 잘 짜여져서 지루한 줄
몰랐어요. 어떤 날은 시시했거든요. 후속 드라마의 광고를 본 듯해요. 몇 회 안 남은 듯.
슬기로운~ 도 봐야겠군요. ^^

stella.K 2021-09-13 14:45   좋아요 1 | URL
ㅎㅎ 낭만닥터 김사부요. 맞죠? 조기다 썼는데...ㅋ
그건 시즌2도 좋았어요. 형만한 아우 없다는데 그 작품은 예외더군요.
사실 드라마는 시간도 많이 들죠. 영화는 앉은 자리에서후딱 보는데.
저는 주로 다시보기로 해서 제가 보고 싶을 때 보는데
그것도 시간이 꽤 들더군요. 덕분에 영화를 많이 못 봐요.
영화든 드라마든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 보는 것 같습니다.ㅠ

희선 2021-09-13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학드라마인데 여기 나오는 사람 다섯 사람 사랑 이야기도 다 있군요 그런 거 쓰려면 쉽지 않겠습니다 어느 한사람이 아닌 다섯 사람이 중심인물이기도 해서 다들 사랑도 하게 하는가 보네요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 간호사는 다 좋아요 실제 그런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 제가 잘 모르는 거고 어딘가에는 있을까요 병원에도 거의 안 가면서 의사, 간호사 말을 했군요


희선

stella.K 2021-09-13 14:52   좋아요 1 | URL
ㅎㅎ 건강하시군요. 병원에 안 가면 좋은거죠.
의사나 간호사는 기본적으로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적어도 제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어요.
그리고 아픈 사람 앞에서 불친절할 수는 없겠죠.

의학드라마는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더구나 5톱으로 그들 각자의 캐릭터와 사랑을 쓰려니 힘들겠죠.
이우정 작가 다음엔 누구하고 같이 쓰면 좋겠어요. 안쓰럽더군요.
전 이상하게 드라마든 영화든 감독이 누구냐 보다 작가를 먼저 보게
되더군요.ㅋ
 

처음 이 드라마가 시작됐을 때 생각 보다 별로란 생각이 들어 안 보려고 했다. 그러다 자꾸 좋은 반응이 올라와 다시 열심히 챙겨 봤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8, 9회를 연속으로 보게 됐는데 처음 보는 듯한 장면이 의외로 많아 빨려 들어가듯 봤다. 


슬의생 5인방의 나이는 40세로 설정되어 있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돌싱으로 설정한 것도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그런데 참 옛날의 40과 지금의 40은 확실히 다르긴 하다. 옛날의 그 나이면 애가 둘 셋쯤 있고, 돈 버느라 허리가 휘고, 드라마에서도 조연 정도로만 나올 텐데 이 드라마에선 40이 이렇게 풋풋할 수 있다니 새삼 놀랍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동창을 세월이 흐른 후 같은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됐다는 설정은 행운이라면 행운 아닐까. 나도 종종 예전에 같이 싸우고 복닦거렸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 일해보면 어떨까를 생각해 본다. 그때가 다시 온다면 싸우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잘 할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뿐이고 다시 만나면 다시 싸우고 복닦거리겠지? 그래도 다시 회춘한 느낌은 들 것이다. 그런 실험을 했다 잖은가. 몸은 70(?)대인데 20대 옷과 화장을 하고 그때 그 시절을 재현한 환경에서 살게 했더니 진짜 20대로 돌아간듯 세포가 젊어졌다고. 


아무튼 오늘 다시 봤더니 슬의생 5인방은 서로 먹는 것을 엄청 챙기더라. 서로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하고,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고, 간식 먹자고 정원에서 모이고. 먹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병원도 전쟁터라면 전쟁터 아닌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상대가 그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해방감을 줄 것 같다. 더구나 집 떠나 혼자 자취하는 사람들은 더하지 않을까. 집이 아니면 혼자 밥 먹는 걸 어색해 하는 나는 오늘 유난히 그 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다음에 언제고 10회를 하면 이어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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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5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 드라마 넘 ㅎ 잘만들죠 넷플릭스에서도 한드는 스토리 영상 연기 모두! 완성도가 높아서 놀랍니다. 아나토미 미드 보다 슬생에 한 표! 🖐

stella.K 2021-09-06 18:38   좋아요 1 | URL
크~ 저는 아직 넷플릭스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답니다.
그건 인터넷으로 보는 거 아닌가요? 뭐 지상파나 종편도 괜찮은 거
많이해서 그거 소화하기도 벅차서리.
제가 이렇게 구식이랍니다.ㅋ
최근에 <괴물> 봤는데 끝까지 쫄깃쫄깃한게 잘 만들었더군요.^^

희선 2021-09-07 0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건 한두 사람만 튀지 않고 다섯이나 앞에 나오는군요 종합병원이니 여러 과가 있기는 하겠습니다 나이도 거의 비슷하고 친구기도 한 사람이 함께 일해서 괜찮을 듯하네요 의사는 제대로 먹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 그걸 알아서 먹는 걸 잘 챙기나 싶기도 합니다

stella.K 님 밥 잘 챙겨드세요


희선

stella.K 2021-09-07 18:40   좋아요 2 | URL
어렵죠. 그도 그렇지만 쉴 때 쉬지 못하고 병원 튀어 들어가는
거 보면 짠해요. 그런 거 보면 의사라는 직업이 뭐 좋은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 의사가 있어 세상은 돌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희선님도 잘 챙겨 드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1-09-07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같이 밥먹자는 말. 그 자체가 따스함을 전해 주어서 저도 그런 말을 즐겨 듣고 즐겨 쓰고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

stella.K 2021-09-07 18:43   좋아요 1 | URL
참 인간적이죠. 사람들은 공수표만 날리는 그런 인사가 뭐가
좋냐고 하지만 그중에도 지키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죠?
그런 인사조차도 안 하는 만남도 많잖아요.ㅋ
 


현직 부장 판사가 쓴 극을은 의구심 반, 질투 반으로 보고 있었다. 난 아직 문유석의 책을 읽어 본 것이 없지만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이 이젠 극본까지 썼으니 그는 악마가 맞는 것 같긴하다.


내가 먼저 이 드라마에서 눈에 들어 온 건 대통령의 이미지다. 자국의 영화건 외국의 영화건 지간에 대통령의 이미지는 대체로 점잖거나 우유부단하거나, 아니면 자나칠 정도로 똑똑하거나 어쨌든 굳이 나쁜 이미지로 그리진 않는다. 그게 주인공이건 조연이건 단역이든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대통령은 파격적이게도 찌질이로 나온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대통령 역을 맡은 배우가 목소리가 진짜 찌질하다. 이런 대통령은 보다가도 처음 본다. 찌질하다 못해 약간 사이코 같기도 하고.


이쯤되면 아무래도 작가의 사상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뭐지...? 현직 대통령에 대해 불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가? 아니 그 보단 원래 사법 개혁이란 미명하에 법조인들과 대통령이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으니 그걸 이런 식으로 냉소라도 하겠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사실 애초에 이 드라마를 볼 생각을 했던 건 주인공을 맡은 지성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니까. 관건은 판사 역을 맡은 지성을 얼마나 악마 같이 나오는가인데 언제나 그렇듯 드라마는 초반의 기선제압이 관건인만큼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괜찮겠나 싶은 의구심이 반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작가는 끝까지 작가여야 하는데 작가가 너무 유명해서일까 주인공이 보여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작가가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주인공 강요한은 어느 순간 악마가 아닌 정의의 사도로 바뀌어 있다. 물론 여기서의 악마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악마가 아니다. 그냥 악랄함의 상징적 표현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변신에 능하고 지략이 뛰어난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가 악마가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드러내는 싯점은 또 다른 주인공 가온이 사고로 강요한(지성 분)의 집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부터다. 그 전까지 가온은 강요한을 끊임없이 의심했는데 강요한의 집에 머물면서 점점 강요한을 신뢰하게 되거나 혹은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또한 그렇게 되면서 이상한 성 같은 강요한의 집은 차츰 천국이 되어간다. 그때부터 드라마는 급격히 힘을 잃고 그렇고 그런 범작이 되어버린다. 요즘의 드라마가 16회분이라는 것을 상정할 때 (한 20년 전에는 18회 20회를 했다. 그것에 비하면 짧아지긴 했지만 지금은 16회분도 길어 보인다. 14나 12회로 줄여도 좋을 것 같은데 제작비를 생각하면 제작측으론 다소 아까운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런 드라마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적대자가 있어 팽팽한 접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웬지 너무 일찍 그 장막을 거두어 들인다. 가온도 생각 보다 일찍 강요한의 편이 되고 그의 조카도 뭔지 원수지간인데 가온의 출연으로 의기투합하게 되고, 쓸만한 적대자로 보였던 최경희 법무부 장관도 지난 주 자살로 종결해 버린다. 최경희 법무부 장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것도 작가의 뭔가의 숨은 의도가 있는가 간파된다.


이제 종반을 치닫는 싯점에서 강요한이 유일하게 남은 적대자는 과거 강요한이 어릴 때 집에서 하녀로 일했던 정선아다. 그랬던 그녀가 어떻게 지금의 '사회적 책임 제단' 대표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인생 유전은 보여주지 않고 그저 단순히 전 대표를 간단하게 죽임으로 그 자리를 이어 받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아무리 디스토피아(말이 디스토피아지 드라마는 그저 만화 같다.)를 그린다곤 하지만 캐릭터가 너무 얄팍하다.   


아무튼 둘이 뭔가 팽팽한 긴장감을 주긴 하지만 정선아는 강요한에 필적할만한 악녀가 아니다. 그것을 가장했을뿐 하녀라는 말에 부르르 떠는 걸 보면 나약하고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도 쓸 줄 모르는 텅빈 뇌를 가진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 정선아를 강요한이 퇴폐시키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더구나 여자 아닌가. 지금까지 작가는 여자를 여자답게 그린 게 없다. 드라마 시청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문유석 작가는 이 드라마를 어떻게 마무리지을건지 궁금하다기 보단 걱정된다. 


모르긴 해도 드라마는 영화 <베트맨> 시리즈를 많이 참고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런 드라마는 꿈동산을 만들어 좋으면 안 된다. 강요한의 환경은 시종일관 지옥이어야 한다. 그 지옥을 끊임없이 헤치고 헤쳐가야 시청자들이 몰입해 보면서 주인공에게 갈수록 신뢰와 애정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때가 없어 보인다. 지성은 무슨 역을 맡아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차경희 역의 장영남의 연기도 훌륭하다. 고로 내 말은 문유석은 판사 일 열심히 하면서 간간히 책 내고 그렇게 지내는 것이 더 낫지 않나 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까지의 글도 그렇고 이건 어디까지나 나 개인적인 생각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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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8-11 1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판사님도 아니고 전업작가님이시래요.
그리고 드라마 첫 작품도 아니랍니다 👍

그레이스 2021-08-11 13:52   좋아요 1 | URL
미스함무라비
재밌게 읽었던 소설입니다
사이사이 법에 관한 지식도 알려주고
좌배석 우배석 ... 이런거 당시 책 처음 나왔을때 읽고 알았어요^^
드라마도 재밌었구요

stella.K 2021-08-11 20:07   좋아요 1 | URL
엇, 언제 또 전업작가로? 근데 아직도 현직 부장 판사로 직함이 뜨길래...
맞아요. 첫 작품이 아니죠.
<미스 함무라비> 저도 드라마를 보려고 했는데 몇회 보다가 말았어요.
끝까지 안 본 걸 보면 재미가 딱히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인가 봅니다.

페크pek0501 2021-08-12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저자의 <개인주의자 선언>이란 책을 지난 2월에 구매했는데 아직 들춰보지 못했어요. ㅋ
읽다 만 책이 하나 늘어나는 게 싫어서 현재 읽고 있는 책들에 집중하려고요.
저까지 구매할 정도로 유명한 저자가 된 듯합니다. ^^**

stella.K 2021-08-12 19:1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사람 책은 언제고 한 권을 사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요.
근데 극본은 좀 과유불급은 아닌가 싶어요.
전 요즘 도진기의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ㅋ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의 또 다른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 얘기는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언뜻 떠오르는 건 영화 <쇼생크 탈출>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주인공 앤디가 아내를 살인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지 않는가. 얼마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겠는가. 하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잠재울 수 없었던 앤디는 자신의 감방 벽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뚫어서 결국 탈출에 성공하고 자유를 쟁취하지 않던가. 앤디가 탈출하기 전까지 교도소 생활을 하게면서 겪는 부조리와 인간군상을 보는 건 덤이다.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오래전에 읽었던 빅터 프랑크의 <죽음의 수용소> 생각이 난다. 빅터 프랭크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앤디가 더운 날 쉬지도 못하고 짐승 같은 노역을 감당해야 하는 죄수들에게 약간의 휴식 시간과 갈증을 풀어 줄 맥주를 나눠 마시는 장면은 그가 죄수들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는 장면과 비가 쏟아지던 날 탈출에 성공하고 하늘을 향해 한껏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장면과 함께 명장면으로 뽑을 만하다. 또한 그는 그렇게 하므로 사람들을 하나하나 자기편으로 만들지 않는가.


지난 주일 잠시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단막극을 봤다. 장류진 작가의 원작을 드라마화했다. 이 드라마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다.  


초반엔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는 주인공이 겪는 몇 가지 에피소드와 인간군상들을 감각적인 영상과 함께 보여준다. 뭐 나름 나쁘지 않지만 왜  <쇼생크 탈출>이 명화인지 알 것 같다. 제작비의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여기선 주인공의 실존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의지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중반까지 계속 주인공의 시각에서 직장 생활의 답답함과 부조리함만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중반을 넘어가면, 사이트에 거북이알이란 닉네임의 사람이 한꺼번에 지나치게 여러 물품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왜 그럴까 궁금증이 발동한 사장이 주인공에게 물건을 사는 척하면서 그를 만나보라는 특명을 내린다. 주인공은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시키는 일이니 하는 수밖에.  


만나 본 거북이알은 의외로 반듯한 40대 초반의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런 여자가 중고거래 사이트에 물건은 그렇게나 많이 올리다니. 뭔가의 사정이 있겠지 싶기도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이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거북이알은 자신을 순순히 열어 보인다.


그녀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황당하게도 월급을 회사 포인트로 받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녀는 어느 대기업의 문화 기획 파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클래식 마니아인 회장이 러시아의 어느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켜 보라고 한다. 성사시키면 특진이 예약되어 있기도 하다. 그녀는 고진감래 끝에 성사시키고 공식적으로 공연 확정을 알리는 광고를 올렸는데 그게 의외의 결과를 낳고 만다. 즉 그 광고는 회장이 자신의 SNS에 직접 올렸어야 했던 거다. 그것을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올린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덕분에 특진은 물 건너가고 좌천 비슷한 부서 이동을 당한다. 일명 회사 이름을 딴 카드사다. 한 달쯤 지났을 때 회의를 하는데 갑자기 회장이 들이 닦쳐서 회사 포인트가 왜 좋은지 말해 보라고 한다. 그녀는 당당하게 두 배로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회장은 그럼 그 좋은 포인트를 1년간 월급 대신 받으라고 한다.


거북이알은 진짜 월급을 포인트로 받을까 반신반의하고 있는데 진짜 받는다. 이때부터 난 슬슬 감정이입이 슬멀대기 시작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1인 시위라도 해야 아닌가. 그도 그렇지만 과연 이런 또라이 같은 회장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건 확실히 인권 말살이다. 어쨌든 결국 그때부터 포인트를 현금으로 바꿔야 하는 거북이알의 지난한 여정을 주인공에게 들려준다. 물론 처음엔 황당하기도 하고, 자신이 한 일이 그렇게 죽을 죄였나 세상이 온통 회색빛이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찾고 살기를 모색하는 것이다.


거북이알의 대사 가운데 이런 말이 나온다. 살다보면 정말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 못할 일을 겪게 되지 않냐고. 그때는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된다고. 그게 이상하게도 나의 폐부를 찔렀다. 나는 지금 자발적 백수로 살고 있지만 한때 나도 사람과 부딪히며 일한 적이 있다. 그러면 정말 나의 이성과 상식으론 이해 못할 일을 많이 봤다. 그럴 때마다 난 나의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과연 지금 깨달았던 걸 그때 깨달았더라면이다.     


사실 이 드라마는 영화 <쇼생크 탈출> 보다 좀 못하긴 하지만 묘하게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작품성에서 <쇼생크->이 당연 갑이지만 현실을 그리는 건 이 드라마가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나라면 앓느니 죽는다고 이건 짐을 싸라는 뜻이구나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직원은 다 돈을 받는데 자기만 포인트로 받는다면 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일일이 현금으로 바꾸는 것도 구차스럽고. 그렇다고 그만둔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살아야 하니 구차스러움을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감내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발견한다. 


난 포기가 빠르다. 어렵고 힘들겠다 싶으면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포기하고 만다. 견디고 참는 건 내 체질이 아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어떻게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지 알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난 그런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아름다운 건 뭔가를 이루어서가 아니다.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같은 날 밤 나는 우연찮게도 박위(이름이 멋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 자식을 낳으면 나도 이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했다.ㅋ)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TV에서 보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그는 꽤 유명한 유튜버다. 그는 지금 30대 중반 정돈데 6년 전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하지만 그는 정말 피나는 노력으로 현재 손은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고 몸을 어느 정도 추스러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자신의 그러한 노력을 너튜브에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차츰 알려져 지금은 엄청난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다. 자신의 방송명이 미라클 TV라고 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다치는 순간에도 한 번도 좌절하지 않다고 한다. 재활에 성공해서 반드시 옛날의 건강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공언한다. 설혹 그러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그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자살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그의 영상 한 번 보고 죽어야지 하고 보다가 다시 마음을 돌이켜 삶을 선택했다. 과연 기적이다. 정말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사람이 남도 살릴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최근에 쏟아져 나온 비속어 같은 단어들 흑수저니, 헬조선이니,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냥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지어낸 말일뿐이고 그 말에 매어 자신을 소모하거나 불행하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은 의외로 낭만적인 존재다.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내는 존재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내 편으로 만드는 영특한 존재인 것이다. 


올해 우리는 그 어느 해 보다 어렵고 힘든 해를 보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불행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내년이 올해보다 나을 거라고 낙관할 수도 없다. 흙을 포클레인으로 파도 부족할 판에 삽도 아니고 숟가락으로 파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설혹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올지라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인간은 어차피 시지프스의 후예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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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5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생크 명작!

전 오늘 폴라 익스프레스 관람중 ^@@^

스텔라 케이님 방에 루돌프 한마리 놓고 가여 ㅋㅋ

¥¥ ★☆★☆
^∩∩^ *Merry*
(●) Christmas
-o--¢-☆★☆★-

stella.K 2020-12-25 18:01   좋아요 1 | URL
이랴, 이랴~ 나 오늘 스캇님한테 루돌프 선물 받았당!!!
아니 쭈쭈쭈 해야하는 건가요?
고맙습니다. 다음 돌아오는 크리스마스까지 잘 키워보겠습니다.ㅎㅎ

폴라 익스프레스는 아직도 안 본 영환입니다.
쇼생크는 정말 명화죠. 두 번 봤나, 세 번 봤나~~ㅋ

희선 2020-12-26 0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한국을 안 좋게 말하기도 하는데,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모든 걸 잃고도 다시 일어서서 잘되는 사람은 아주 적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을 보면 자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은 가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저도 못할 것 같으면 안 해요 그걸 하려면 아주아주 힘을 써야 하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모두가 힘을 내서 잘하기는 힘들어요 이건 어떤 일이든 다르지 않겠습니다 자신한테 맞게 자신대로 사는 게 좋을 듯해요 열심히 하는 사람이 보이면 응원해주면 되죠


희선

stella.K 2020-12-26 15:39   좋아요 2 | URL
자기네 나라를 얉게 보는 건 어느 나라나 비슷하더군요.
프랑스나 독일 뭐 그런 잘 사는 나라의 젊은이들도
자기는 우리나라에서 안 살 거라고 말한데요.
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집 엄마는 다 좋은 분 뭐 그런 거겠죠.
희선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죠.
이 드라마는 만일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주죠.
물론 어떤 의미에선 드라마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혹시 시간되시면 한 번 보세요. 소설을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 보면 정말 응원해 주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20-12-28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펜트하우스, 보고 있어요. 김소연이 연기를 잘해서 연예대상 감이다, 생각했어요.
연기가 몇 단계 오른 듯 느껴지더군요. ㅋ

<일의 기쁨과 슬픔>은 오디오북으로 몇 번이나 들었던 책이에요. 내용이 다 좋더군요.

stella.K 2020-12-28 18:55   좋아요 1 | URL
ㅎㅎ 저는 그 드라마에서 김소연이 너무 표독스럽게 나와서
좀 무섭더군요. 그도 그렇지만 드라마가 막장 드라마 같아서
초반에 잠깐 보다가 말았어요.
그래도 올해 SBS가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선전한 것 같긴해요.
기억에 남는 건 <낭만닥터 김사부2>랑 <하이애나>가 기억에 남아요.
<앨리스>는 중간쯤 보다 말았어요. SF물은 단막으로 보여줘야지
16부까지 하니까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못 봐주겠더군요.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