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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장준혁 현상(강준만)

2007. 3. 14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3/h2007031319245324390.htm


[강준만 칼럼] 장준혁 현상


지난 11일 막을 내린 MBC 주말드라마 '하얀 거탑'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드라마의 무대는 대학종합병원이지만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모든 유형의 조직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마다 이 드라마를 '읽는' 방식이 달랐겠지만, 이렇게 읽어보는 건 어떨까.

이 드라마는 장준혁(김명민)과 최도영(이선균)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돼 있지만, 최도영은 장준혁의 캐릭터를 살리는 대비 효과를 위해 설정된 인물이다. 장준혁은 야망에 불타는 외과의사, 최도영은 양심에 충실한 내과의사다.

장준혁은 후배·제자 의사들을 휘어잡아 '장준혁 마피아'를 조직한다. 장준혁은 그들을 '얘들'로 다루며 강한 '보스 기질'을 발휘하는 반면, 최도영은 서열의식을 초월해 의사를 독립된 인격체로 여긴다.

● 우리사회의 인맥 만들기 전쟁

마피아는 보스에게 충성하면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보장하는 공동체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선 비리도 불사한다. 보스는 그런 전투성 배양을 위해 인간적 유대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그 주요 수단은 술과 특혜 부여다. 보스는 부하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비리를 저질러서라도 끝까지 돌봐준다.

이 드라마는 장준혁을 악(惡)의 편에 설정하고서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반면 선(善)을 대변하는 최도영에게도 인간적 면모가 있으련만 그건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최도영은 늘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 모습으로만 그려질 뿐이다. 그의 인간관계는 어려움에 처한 후배에게 위로만 줄 수 있을 뿐, '해결사' 역할엔 전혀 근접하지 못한다.

장준혁이 암에 걸려 죽음으로써 드라마 막판은 최루성 신파가 되었지만, 그 이전 단계에서라도 장준혁·최도영을 놓고 시청자 인기투표를 했다면, 장준혁이 표를 더 많이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가? 우리의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에서건 자신을 돌봐주는 상관 하나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는 다 나름의 마피아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마피아는 '사람 사는 인정', 남의 마피아는 '추악한 탐욕'으로 보는 이중기준이 심리적 정당화 기제다. 어느 마피아에건 가담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긴 정말 어렵다. 좋은 학벌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마피아 시스템 때문이다.

마피아를 만들지 않고 리더가 되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순 없을망정 유능한 리더가 되긴 어렵다. 자신을 위해 헌신할 참모진을 꾸리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여하한 경우라도 '끝까지 뒤를 봐주는' 심성이 결여된 리더를 위해 충성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리더십의 딜레마다. 어떤 유형의 조직에서건 선거가 깨끗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젠 '보스 정치'가 청산됐다고 주장하지만, 마피아의 구성ㆍ운영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끼리끼리 뜯어먹으며 이익을 배타적으로 향유하는 작태는 여전하다.

● 보스정치의 운영 달라졌을 뿐

장준혁 식 삶이 드라마 특유의 과장법이라는 걸 감안하고 들어간다면, 지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맥 만들기 전쟁'을 '장준혁 현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접대산업·특수대학원·호텔·인터넷 등이 그런 전쟁 특수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직장인의 83.8%가 '인맥은 능력'으로 여기고 있으며, 대학생의 91.5%가 인맥의 중요성을 긍정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마피아 만들기'는 시대정신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강해지는 안전의 욕구는 필연적으로 마피아라는 울타리를 갈구하게 돼 있다. 시청자들이 장준혁에게 돌을 던지기보다는 오히려 공감과 더불어 애정마저 느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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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3-15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슴다~
 

                                            

지난 10주간 동안 나는 이 드라마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물론 이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극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와 인간의 욕망을 이만큼 명징하게 보여주기도 드문 것 같아 주말을 참 많이 기다렸다.

특히 우리나라 드라마가 사랑이나 연애라는 주제에만 함몰되어 징징거리고, 질질거리는 게 영 마뜩지 않았는데, 그것을 탈피하고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난 좀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들이 그것을 벗어나 소재뿐만 아니라 주제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하얀거탑> 이 시작되었을 때 제목이 좀 묘하다싶어 이걸 봐야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김명민이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적어도 1회 방영은 봐줘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첫방영을 봤을 때 범상치 않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이 순수 우리나라 작품은 아니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일본 작가의 작품이고,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된 작품이라는 것에 좀 놀랐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의학 드라마와는 달라 인간의 정치적 욕망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정치적 인간에 대한 혐오감 같은 것이 부담스러웠고, 게다가 카메라의 움직임 조차 그것을 더 극대회 시키니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묘하게도(?) 선악구도를 탈피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따뜻한 피가 흐르며 아킬레스건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중반까지는 정의를 위해 자신의 지위를 과감하게 벗어던진 최도영에게 마구 끌렸지만, 역시 후반에 장준혁이 보여준 인간적인 면들에 연민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좀 웃기지. 종영을 하루 앞둔 나는 TV를 끄고 잠자리에 들으려고 하니 왠지 이 드라마의 장준혁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면서 기적이라는 것도 있으니, 죽을 병에서 다시 살아나 고소취하 하고,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인술을 펼치는 인간으로 마무리 지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멋있는 김명인이 그렇게 죽음으로 내몬다는 건 좀 잔인한 거 아닌가?

그런데 이 드라마는 에누리가 없다. 20부작으로 했으면 딱 20부작으로 끝냈고, 장준혁이를 죽이기로 했으면 죽였다. 우리나라 드라마의 이 조금만 인기있으면 늘리기 방송하는 거 없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장준혁이 같은 인간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정말 그 인간은 매력적이다. 무작정 성공만을 쫓는 파렴치한은 아니었다. 솔직히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시 좀 화가 났는데, 권순일측에서 완강하게 나오니 나중엔, 사람의 생명도 생명이지만 정말 지나친 윤리만을 내세워 실력있는 젊은 의사 죽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실수 없는 인간이 어딨겠느냐? 장준혁이 그 실력으로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살릴텐데...힘없고 무능한 사람이 똑똑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당하랴, 뭐 이런 뒤섞인 감정으로 이 드라마를 봐 왔던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 방송을 지켜본 어제 나는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멋 있는 김명인이 죽어서 울었고, 죽음을 앞두고 애인에게 마지막 전화를 하는 장준혁이 보면서 울었다. 장준혁이 팔팔하고 건강할 땐, "짜아식,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어떻게 토끼 같은 마누라 두고 너마저 그럴 수 있냐?"라고 해야하는 건데 장준혁이 그렇게 아내몰래 바람 피우는 것도 눈감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또 뭐냐? 게다가 죽는 것도 멋있어요. 시신을 기중하기 까지 않은가? 장준혁, 그렇게 멋있어서 어디다 쓸래? 그런데 그건 역시 깔끔하고 신사적인 일본적이란 느낌도 든다. 우리나라 원작을 작가가 썼더라면 나름에 신파가 있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죽음 앞에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하다.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땐 서로 잡아 먹지 못해 으르렁 거리더니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꼬리를 내리고 한 없는 연민을 뿜어낸다. 내가 많이도 울었던 건 바로 이 부분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님 한참이나 오래 전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해서일까?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소식을 들으면 괜히 숙연해진다.

솔직히 어제 방영분은 너무 급하게 마무리 지어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과감한 생략법도 필요하긴 하지만 장준혁의 고통은 실제 말기 암환자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에 얼마 보여지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장준혁이 두 통의 편지를 쓰는 것에서, 왜 우리 드라마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무리 과정을 다룬 드라마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삶은 찰라고 죽음은 영원하다고 말은 하면서 우리 인간의 이야기는 삶 그 자체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다.

캐스팅에 있어서 김명민이나 이선균도 좋았지만, 비교적 처음 보는 조연들(장준혁의 쫄다구들)의 연기가 볼만했다. 거기서 보면 의사 가운이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일까를 심사했던 것도 나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정작 궁금했던 것은 거기에 삽입된 음악이다. 다 아는 일이지만, 이 드라마는 이미 일본에서 드라마화 됐고, 우리가 판권을 사들여 다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야기는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음악은 어떻게 했을까? 그것도 사서 입혔을까? 아니면 우리가 다시 새로 만들었을까? 음악이 하나 같이 좋았던 것으로 봐서 그 "소나무야~ 소나무야~" 부르고 연주했던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일본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아무튼 나는 이런 드라마 또는 이런 소설이 좋다.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니까 너무 욕심내서 아둥바둥 살지 말란 말야. 그러면 뭘해? 다 끝은 죽는 건데. 그냥 욕심 안네고, 남 헷고자 하지 않고 편하고 정직하게 살면 되는 거야." 뭐 이런 식의 뻔한 공식으로 마무리 짓는 거라면 그건 드라마를 너무 얕은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 이상의 뭔가가 더 있지 않은가?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저 책을 사 보고 싶어 근질근질 했다. 언젠가는 한번 읽어보고 싶다. 확실히 드라마와는 나름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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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7-03-12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었죠?
항상 런닝머신 하면서 보는데, 어젠 울면서 달렸어요. ㅋㅋ

암리타 2007-03-1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07-03-1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달님/ㅎㅎㅎ. 러닝머신을 하면서 우실 정도면 그렇게 많이 슬프셨던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흐흐.
암리타님/고맙습니다. 지금 보니 오타가 보이네요. 고쳐야 하는데...ㅜ.ㅜ

외로운 발바닥 2007-03-12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동안 정말 잼있게 봤습니다. 사랑이야기 없는 드라마는 정말 오래간 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뻔뻔하면서도 냉철했던 장준혁의 허무한 죽음을 보면서 숙연해지더라고요. 하얀거탑의 후속 드라마가 또 트렌디 드라마라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마노아 2007-03-1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럼 읽는 기분이었어요. 공감 너무 잘 가요~ 음악은 이시우씨가 담당했어요. 대장금 작곡가구요. 지난해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 사용된 음악을 고스란히 갖다 썼답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이입 엄청 방해되었어요. 금년 5월에 바람의 나라가 다시 무대 위에 오르는데 음악도 그대로 쓸 것인지 두고 볼 일이에요^^;;;

stella.K 2007-03-13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바닥님/^^
마노아님/아, 그렇군요! 전 음악이 참 좋았는데, 마노아님은 이미 아시는 것이니 그럴만도 하네요. 알려 주셔서 고맙슴다.^^

진/우맘 2007-03-13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몽도 하얀거탑도 끝나버렸구나.....드라마 매니아들은 이제 무슨 재미로 살려나.^^;

stella.K 2007-03-1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말이...! 고현정 나오는 히트가 좀 땡기긴 하는데...! 근데 진우맘, 내 말이 조금이라도 동의가 되거든 가끔 추천도 눌러주구 그러우. 내 페이퍼 쓰는 것이 예전만 같진 않지만 추천은 늘 고프다우. ㅠ.ㅠ
 

‘모던 걸’에 홀린 충무로

‘지금’보다 발칙했던 30년대 청춘 시대극 잇따라
개 끄는 걸에 ‘작업’ 거는 보이…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러브신’
‘딴스홀’ 금하자 카페서 춤추기

어수웅기자 jan10@chosun.com 

  • 2000년 9월,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문학동네 간)라는 알듯 모를 듯한 제목의 소설이 출간됐다. 당시 스물여섯의 신인작가 이지형이 다루고 있던 시공(時空)은 1930년대 식민지 경성.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인 조선총독부 서기 이해명과 바람둥이 카페여급 조난실은 대관절 독립운동에는 관심이 없고, 일편단심 연애의 한 길로 전력 투구한다. 대의명분만이 펄펄 살아 숨쉰다고 생각했던 비장한 시대는 이로써 능청스런 뒤집기를 당한다.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이었던 이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인 작가 임철우는 “당혹스런 서울판 ‘오딧세이’”라고 적었다.

    2007년 2월, ‘해피엔드’ ‘사랑니’를 만들었던 정지우 감독은 오는 5월 촬영을 목표로 매일 밤 시나리오 작업에 여념이 없다. 바로 ‘망하거나…’를 원작으로 한 1930년대 낭만 서사극 ‘모던 보이’다. 뿐이랴. 제작사 싸이더스FNH에서 준비 중인 일제시대 최초의 방송국 이야기 ‘라듸오 데이즈’의 원제는 ‘모던 껄’이었다. 박종원 감독은 손예진을 캐스팅해 여간첩 김수임을 신여성으로 되살려낸 ‘낙랑클럽’을 제작 중이고, 최초의 서양식 병원에서 벌어지는 시대 공포극 ‘기담’도 있다. 빛깔과 무늬는 약간씩 다르지만, 김지운 감독이 송강호·이병헌·정우성과 찍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나 송일곤 감독이 기획 중인 ‘연애의 시대’(가제), 그리고 ‘타짜’의 최동훈 감독 머릿속에도 그 시대 발랄한 청춘들에 대한 경쾌한 구상이 있다. 말 그대로 우후죽순. 경성 시절의 표기법으로 ‘모던 뽀이’ ‘모던 껄’들에게 2007년의 한국영화가 매혹당한 것이다.

    • ▲ ▲안석영의 만화‘모-던 뽀이의 산보’(1928)

     

    ◆몇 안남은 한국영화의 처녀림

    현재의 충무로가 이 근대의 처녀 총각들에게 반해버린 첫 번째 이유는 “상식과 고정관념의 배반”이다. 창경궁 밤벚꽃놀이에 개를 끌고 산책하는 모던 걸에게 ‘작업’ 걸던 모던 보이, 남산에서 ‘룡산’으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러브신’을 연출하는 풍경, 총독부가 ‘딴스홀’을 허락해주지 않자 카페에서라도 춤을 추는 식민지 시대의 열혈 청춘들. 지금 이곳의 젊은이들과 거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철저하게 낯선 풍경들이다. 또 하나는 “이 시대와 공간이 몇 안 남은 한국영화의 처녀지”(정지우)라는 것. 왕성한 기획력으로 위기를 돌파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온 한국영화의 입장에서 보면 몇 안 남은 매력적인 공간이라는 의미다.

    • ▲ ▲식민지 시대 모던 걸의 날렵한 패션을 보여주는 안석영의 만화‘꼬리피는 공작’(1928).
  •  

    ◆7년의 시간차는 어디서 비롯됐나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사실 1930~40년대 경성이 우리의 경직된 기대와는 달랐음을 알려주는 책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출간됐다. 이지형의 소설은 물론,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2002), 신명직의 ‘모던 뽀이, 경성을 거닐다’(2003), 권 보드래의 ‘연애의 시대’(2003) 등 숱한 인문서들이 그 시절의 모던보이, 모던걸들을 일찌감치 재발견한 바 있다. 그렇다면 활자와 스크린의 시간차는 무슨 까닭일까. 이미 7년 전 소설 판권을 사들였던 정지우 감독은 “당시로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게임이었다”고 했다. 조선총독부와 미스코시 백화점 등 당시의 근대 건축을 재현해야 하는 ‘모던 보이’의 예상 순제작비는 80억 원가량. 요즘 제작비 수준으로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당시는 ‘쉬리’(1999)의 제작비 31억 원에 대해 “너무 많다”고 고함치던 시절이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은 아직도 적지 않다. 그 시절에 비해 놀라울 만큼 진화한 CG 기술과 작업환경이 상대적으로 제작비를 줄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충무로의 우울한 지난해 성적표 탓에 돈 만들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또 유난히 일제시대에 예민한 한국 대중의 정서 탓에, 새롭게 발굴된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뻔뻔스런 면모’가 만장일치의 호응을 이끌어 낼지도 의문이다. ‘라듸오 데이즈’를 제작 중인 싸이더스 FNH의 차승재 대표는 “그 시대라고 모든 국민이 독립운동을 했던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독립운동과 모던보이는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층위가 다른 문제일 뿐”이라며 낙관적 기대를 했다. 이제 빠르면 하반기부터 다양한 얼굴의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하나 둘 얼굴을 내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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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얀거탑속 ‘진부한 설정’ 해부
  • 장준혁 외식은 고급일식 vs 최도영 외식은 피자
  • 조선일보 염강수기자 ksyoum@chosun.com
    조선일보 최보윤기자 spica@chosun.com 
    • 직장인과 남성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MBC 주말드라마 ‘하얀 거탑’. ‘새롭다’는 게 호평의 근거다. 그러나 ‘하얀거탑’은 출세형 인간 장준혁(김명민), 양심의사 최도영(이선균)의 스타일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도식적인 장치’(클리셰)도 적잖이 사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사실 100% 새로운 드라마란 존재하기 어려운 법. 그렇다면 ‘하얀거탑’ 속에 숨은 진부함은 어떤 게 있을까?
    • ◆고학생 vs 의사 집안 출신

      “왜 그렇게 외과과장이라는 자리에 연연하냐”고 말하는 최도영에게 장준혁은 이렇게 말한다. “너처럼 형제가 줄줄이 의사인 놈들은 몰라. 내가 왜 이러는지.” 장준혁은 고교 시절, 점심과 저녁 도시락 두 개를 들고 가면 어머니가 굶을까 봐 도시락 하나만 들고 간 기억이 있는 인물이다.


      ◆‘최고급 정장 슈트’ 장준혁 vs ‘캐주얼풍’ 최도영

      내과의사 최도영은 인간미 넘치고 극중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이미지로 파스텔톤의 의상을 즐겨 입는 반면, 외과의사 장준혁은 무채색 계열의 셔츠와 화이트 셔츠를 번갈아 입으며 냉정하고 야심만만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정치하는 ‘날라리’ 부인 vs 과묵한 현모양처

      장준혁의 아내(임성언)는 남편보다 의사부인회 회장으로 명인대학병원 실세 부원장 우용길의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로비를 위해 화랑, 미용실을 따라다니며 의사부인 회원들에게 뇌물을 건네느라 바쁘다. 때로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과 노는 장면도 목격된다. 반면 최도영의 아내(윤예리)는 따로 자신의 생활이 없이, 아침·저녁 식사 준비하는 모습만 나온다.


      ◆장준혁의 밤 vs 최도영의 밤

      장준혁의 밤은 숨가쁘다. 외과과장 득표 전략을 짜기 위해, 혹은 의료사고 후 대책을 세우기 위해 장인과 장인이 형님으로 부르는 모사꾼 의사회장 등과 함께 어둑한 일식집에서 식사를 자주 한다. 이어 룸살롱에도 들러야 하고, 정부(情婦)인 희재의 와인바에 들렀다가 다시 병원 직원들과 술을 마시고, 잠은 희재의 오피스텔에서 잔 뒤 아침에 집에 들러 아내에게 “수술이 있었다”는 핑계를 대며 옷만 갈아입고 다시 출근한다.

      최도영의 밤생활은 병원 연구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실험 결과를 분석하거나 집안 서재에서 공부하는 것. 때로 딸의 공작 숙제를 도와준다. 장준혁과 만나는 것 외에 이권 등을 관계로 술집에서 사람을 만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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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맹률 높았던 멕시코에서 그의 벽화는 국민헌장 같은 것
  • [김병종의 라틴 화첩기행/6]
    멕시코 - 디에고 리베라 기념관
  • 김병종·화가 
    •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의 자화상
    • #1.회색 성채 속의 벽화가

      벽은 단절이다. 너와 나 사이에 가로 놓인 금이다. 미안하지만 이 앞에서 이만 돌아서라는 표지이다. 인생에는 시멘트와 벽돌로 된 벽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견고한 벽이 있다. 내가 세운 벽 앞에선 오만해지고 누군가가 세워놓은 벽 앞에선 막막하다. 벽 앞에 서면 우리는 돌아설 준비를 한다.

      벽에 대한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집어버린 사람이 있다. 회색의 콘크리트 벽에 색채의 마술을 건 남자. 벽으로 하여금 살아 꿈틀거리며 생을 긍정하게 만든 한 남자가 있다.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시티에서 디에고 리베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란다.

      과연 그럴까. 초록빛 택시에 올라 디에고 리베라를 외치자 기사는 걱정 말라는 듯 활짝 웃으며 속도를 높인다. 초행의 여행자에겐 흡사 미로처럼 보이는 골목길을 돌고 돌더니 거대한 성채처럼 보이는 기념관 앞에 차를 세운다. 프리다 칼로의 기념관과는 지척이라 했는데 가까운 길을 놔두고 뺑뺑이를 돈 건 아닌가, 싶었지만 침묵할 수밖에. 천하태평인 얼굴로 무어라 빠르게 떠들어대는 그에게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쏟아지는 땡볕 아래 서서 스페인어의 폭포를 고스란히 맞을 일밖에 뭐가 있겠는가. 바벨탑 이후로 모든 여행자는 언어 앞에서 절망한다.

    • 춤추는 선인장, 노래하는 마리아치, 일상의 고통을 춤과 노래 속에 녹여내는 멕시코인의 낙천성
    • 기념관은 그 외양만으로도 자신을 드러내는 법인가. 프리다의 집이 온통 카리브해의 푸른 물빛을 뒤집어쓰고 있는 데 반해 디에고의 기념관은 짙은 회색 현무암으로 지어져 무뚝뚝하고 억센 그의 모습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산사같이 적막한 공간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그 드넓은 마당엔 쨍한 햇빛 속에 귀가 멍멍할 정도의 정적과 고요만이 고여 있다.

      위용을 자랑하는 이 미적 탐식가의 집은 그러나 찾은 이가 나 혼자였다. 하긴 기념비적인 그의 벽화들은 대부분 공공건물에 남아있으니 멕시코시티 전체가 그의 미술관이라 할 수 있겠다.

    • 멕시코 벽화운동의 기수. 마야와 아스텍 신화, 혁명의 이념 등을 수많은 벽화로 남겼다. 코요아칸에 그의 기념관이있다.
    • #2 벽으로 말하게 하라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서자 두터운 살집의 디에고의 커다란 사진이 시야를 압도한다. 누구라도 그 카리스마 넘치는 형형한 눈빛과 부딪치면 그 빛의 그물에 갇혀버리고 말 것 같은 인상이다.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저 남자의 어떤 면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뭇 여인들을 사로잡았을까.

      이젤화를 애들 장난 같은 짓이라고 여겼던 디에고였지만, 실내에는 그의 작업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다. 색채는 사뭇 다르지만 멕시코의 박수근이라고나 할까. 작은 키에 검은 머리와 흑갈색 피부를 한, 대지를 닮은 토착 인디오의 모습들이다. 부당한 일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뼈가 부서지게 일했던 순박한 농민들에 대해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던 디에고는 그들을 불러들여 자기 화면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일찍이 유럽 유학을 떠나 다양한 미술사조를 접했던 디에고는 특별히 르네상스시대의 벽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귀국한 그는 벽화운동에 뛰어든다. 작품을 소장한 자만이 감상할 수 있는 그런 미술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화면처럼 세속이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세계가 아니라 마야문명을 아우라로 삼아 인디오의 삶을 멕시코적인 색채로 표현한 그림들이었다. 그의 벽화는 온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와 애정을 받게 된다.

      문맹률이 높은 멕시코에서 그의 그림은 국민헌장 같은 것이었다. 국가적 슬로건을 그림으로 형상화해서 보는 순간 벼락같이 애국과 민족적 자긍심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했으니까.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궁 안의 벽화이다. 그 벽화는 역대 대통령을 여럿 갈아 치우며 그들을 한갓 스쳐가는 손님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궁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디에고의 벽화였다. 실로 얼마나 많은 나라 안팎의 사람들이 찾아와 그 그림 앞에서 모자를 벗었던가.

      전시장의 한 벽을 남녀노소의 인디오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바라보고 있는 사이 들풀 같은 그들이 스멀스멀 움직이며 일어선다. 바벨탑 이전의 언어로 그들이 토해내는 말들이 내 귓속으로 수런수런 들어온다. …그래도 삶이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힘든 노동 끝에 아내가 구워준 토르티야와 데킬라를 마실 수 있다면 이 생도 견딜 만하지 않은가. 이파리를 가시로 바꾸며 저 선인장들이 뜨거운 태양을 견뎌내듯 산다는 건 어차피 무언가를 견뎌내는 것이 아니던가….

    • 고통스러운 삶을 그리지만 독특한 생명력과 낙천성을 잃지 않는 그의 벽화는 강렬한 생기를 발산한다.
    • #3.벽 위에 남겨진 사람들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어둑신한 실내. 대형 사진 속의 그가 우리에 갇힌 맹수같이 느껴진다. 자기 안의 정열과 태양이 가리키는 대로 거침없이 생을 살다간 남자.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프리다 칼로가 친구에게 보냈다는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배가 고프면 매우 화를 내고, 예쁜 여자라면 아무에게나 칭찬을 해. 그리고 가끔은, 찾아온 여자들과 함께 사라져버려. 그녀들에게 자신의 벽화를 보여준다는 구실로 말이야.’

      그 주체할 수 없었던 리비도의 사내는 이제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만 남아있다. 그를 따르던 수많은 민초들을 벽 위에 고스란히 남겨놓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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