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침에 으레 보는 프로가 <인간극장>이다. 뭐 좋아서 보는 건 아니고, TV를 켜면 하는 게 그거라서 본다. 그렇다고 끝까지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루는 포맷이 거기서 거기라 단조로워 욕하면서 보는 프로다.
그런데 이번 주는 뭔가 다르다. <백발의 연인>을 방송해 주는데, 10대의 꽃다운 나이에 결혼해서 73년을 해로한 부부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올해 94세. 할머니는 87세. 그런데 이분들 서로 위해주고 사는 모습이 여느 신혼부부 알콩달콩 위해주며 사는 모습 못지 않다.
인간은 평균 한 번의 이혼과 두 번의 결혼을 하고 산다고 했다. 그래서 그럴까? 나 역시 한 사람과 평생을 해로하며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이 노부부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그 의문이 쏙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가능하겠구나 싶기도 했다. 그 비결은 먼데 있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고마워요." "사랑해요."를 수시로 하고 산다. 나중에 방송 마지막 날,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엔딩신에 키스신만 따로 편집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 프로도 그 부분만 편집해서 따로 보여주는데 과연 그렇구나 싶었고, 제작진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 마지막회분을 보여주는데 나는 마침내는 울컥하고 말았다. 인생의 진액을 다 쏟고 산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육체는 바람에 흩날리는 한줌 흙처럼 가벼워지고, 그 자리엔 사랑만 남는 것이겠구나 하는,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허허로움과 감동이 뒤범벅이 된 것이다.
이렇게 짧은 세월 사랑만해도 부족한데, 미워하고 사랑도 못해보고 사는 것이 보편적인 인생이라니. 평생 저 노부부마냥 살 수만 있다면 다 쓰러져 오두막에 살아도 여한은 없겠다 싶다.
나중에 한번 더 보고 싶은 프로다.
2. 어제 <두드림> 두번째 시간이 방송이 되었다.
이 프로의 원래 이름은 <두드림>이 아니었다. 원래는 <빅브라더스>로 지난 늦여름, 소설가 황석영이 예능에 출연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으고, 실제로 조영남, 김용만과 송승환이 동반 출연한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끌어 오던 오디션 <탑 밴드>가 끝나고 정식으로 개편에 되면서 <두드림>으로 나온 것이다. 어제는 조영남 대신 신해철이 나왔는데, 미안하지만 개인적으로 조영남이나 신해철이나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자기네들을 좋아하든 싫어하듯 하등의 관심은 없겠지만.
파일럿 프로그램 때 게스트가 소녀시대였고, 사회자로 나선 네 명의 브라더스들이 워낙 횡설수설한 면이 없지 않아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제는 정규 프로로 신설됐으니 어떨까 싶어 앞에 조금 보았다. 앞부분에서 마침 이지성 작가가 게스트로 나왔다. 이지성 작가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 그런 사람을 섭외해서 교양인과 엔터데인먼트를 접목시키는 프로를 하는가 싶어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왠걸, 역시 어떤 프로든 인기나 시청률을 의식하지 안을 수 없는가 보다. 두 파트로 나눠 앞부분엔 이지성 작가를 조금 보여주고, 뒤엔 유명 연예인을 출연시키는 것으로 짰다. 초대손님은 한 사람으로 해서 진행시킬 자신이 없었을까? 말주변 없는 작가들도 있다곤 하지만, 이지성 작가라면 말빨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고, 사회자들 역시 입담에서 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특히 김용만이나 송승환은 몰라도 황석영 씨나 신해철이라면 더더욱. 김승우의 '승승장구'도 한 명인데(물론 관련 게스트가 있지만) 뭐 때문에 초대손님을 셋 씩이나 초대했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지성 작가는 들러리고, 뒤의 알렉스나 최은경 아나운서를 띄우기 위한 전략은 아니었을까 별로 기분이 개운치 않아 보다가 말았다. 이 프로 나와는 그다지 인연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를 제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횐데, 자꾸 구관이 명관이라고 강호동이 눈이 밟힌다.
3. 뒤늦게 <더 뮤지컬>이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드라마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인종이 아니라, 그저 마음에 드는 드라마 한 두편을 집중 감상하는 쪽이다. 기대를 모았던 <뿌리 깊은 나무>가 보면 볼수록 내 취향은 아니다 싶어 대신 <천일의 약속>을 집중적으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김수현 아줌마는 내가 넘지못할 난맥상인 것 같다. 왤케 안 봐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수애를 봐서라도 이러면 안되는 건데, 항상 오늘은 쿡TV로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뒤로 미룬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폭풍적으로 몰아보는 땜빵적 기질도 못되고. 그래도 언젠간 봐야겠지. 난 역시 게으름대마왕이다.
요즘 소일 삼아 뮤지컬 대본 쓰는데 맛 들이는 중이다. 뭐 그렇다고 이 길로 전문적으로 나서겠다는 건 아니고, 지금부터 조금조금씩 써놓으면 언젠가는 써 먹을 때가 있지 않을까 싶어 쓴다. 또 어쨌든 난 지금 좀 심심하기도 하고. 그래서 정말 소일을 삼는다. 그러던 중 이 드라마가 생각이 난 것이다.
솔직히 이 드라마에 대한 누리꾼의 관전평이 돌지 않아 처음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보여주기는 뮤지컬의 세계를 보여준다고는 해도, 또 그렇고 그런 사랑 타령일 것 같아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난 이제 젊은이들 사랑 노름에 찌릿찌릿해 하지도 않을만큼 나이를 먹었다. 앞에서도 보라. 백발의 노부부 사랑이 너무 징해 눈물짓지 않는가.
그런데 이 드라마 보면 볼수록 쏠쏠하다.
무엇보다 만화를 원작으로 했는데, 원작자가 우라나라에 내로라 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었다. 앞으로 드라마가 어떻게 굴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원작이 있는 드라마라면 끝이 후지게 끝나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드라마 출연진이 이색적이다.
구혜선을 제외한다면 배우들이 원래 주연급은 아니다. 야구나 축구로 치자면 2진의 선수들이다. 그나마 그중 최다니엘이 가장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나 지금까지 그 역시 조연을 맡아왔고, 주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 입지를 굳혀가는 옥주현도 웬만큼 따라가긴 하지만 그런 그녀도 TV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뭐라 말할 게제가 못된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몽골 왕자로 나온 박기웅도 지금까지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이 이 드라마를 발판으로 자신의 존재와 입지를 굳히게 될런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할 것 같다. 워낙에 드라마가 안 알려졌으니.
사실 2진의 배우를 쓴다는 것은 모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워낙에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버티고 있는지라 잘하면 도약의 기회지만, 못하면 미친 짓일 것이다. 그래도 뭐 나름 평균 이상은 해내는 것 같아 나쁘지 않다.
일급 배우라 할 수 있는 구혜선도 난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선 곧잘 역할을 잘 소화해 낸다. 그녀를 보면 <커피프린스 1호점>의 윤은혜의 고은찬이 생각이 난다. 아, 그러고 보니 고은비로 나오던데 뭔가 이 부분이 가렵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거였나 보다. 둘이 이미지도 비슷하고. 자매하자면 맞을 것 같다. 그러나 박경림은 어째 좀...
하지만 언제나 주장하는 거지만 이젠 소재 보다 주제를 다양하게 할 때는 아닌가 싶다. 사랑 아니면 할 말이 없는 우리나라 드라마 이것 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젠 애증의 관계도 모자라 삼각, 사각, 오각의 인간관계도 골치 아프다.
4. 쿡TV에서 1000원 할인 행사하길래 대니 보일의 <127시간>을 보았다.
나는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가 참 마음에 든다. <트레인스포팅>도 그렇고, <슬럼독밀리네어>도 그렇고 뭔가 그만이 갖는 좀 엉뚱하면서도 젊은 기의 발산 좋다. 젊으니까 엉뚱하기도 하지 않은가? 아, 근데 이건 따로 리뷰를 쓰는 편이 날 것도 같다. 이 달의 리뷰 당선작안에 들만큼 잘 쓸 자신은 없는데 (알라딘은 어쩌자고 한 달에 10편만 당선작을 뽑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_-;;) 뭔가 할 말이 있어 나중에 리뷰로 써야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이 정도로 마쳐야 할 것 같다.
원래 이 타임에 이런 구질구질한 글이나 쓸 생각도 아니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따로 있었다. 난 항상 이 모양이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