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토크쇼중에 자주 챙겨보게 되는 프로가 토요일 밤에 하는 <이야기쇼 두드림>이다.
처음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보면 볼수록 끌리는 괜찮은 프로 같다.
오늘 조금 더 사랑하는 션
어제는 늦게 이 프로를 보니, 힙합 듀오 <지누션>의 션이 나왔다. 그러니까 난 기억력이 안 좋아 딴짓을 하다 그의 강의 뒷부분부터 보게된 셈이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어 특별히 말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그 시간 참 인상적인 부분들이 있어 적어 본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정혜영이란 사람과 며칠을 살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7년 1개월 29일. 녹화방송이니 그는 지금 7년 2개월하고 며칠째를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수는 2천 며칠이라고까지 정확하게 말한다. 결국 그것은 저 사회자 4명의 야유와 존경을 동시에 받는 반응을 이끌어 냈다. 말하자면 보통 남자들은 그런 거 잘 기억 안하고 사는데 그는 확실히 알고 있으니 그의 쪼잔(?)함에 기가 질렸다고나 할까?ㅋ
그것 말고도 그들은 션이 뭐라고 할 때마다 야유 섞인 환호를 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게 어찌나 웃기던지.
하지만 그로선 그렇게 하게된 계기가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결혼을 하면 자기는 상대 배우자로부터 왕자와 공주 대접을 받게 되길 바라지만 실제로는 상대에게 먼저 공주 대접, 왕자 대접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아내로부터 왕자 대접을 받기 전에 공주 대접을 먼저 해 주자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또한 그렇게 결혼해서 날짜를 세게 된 것은,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란 마음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것은 또 조그만 사건이 계기가 됐는데, 어느 날 그가 탄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이륙이 지연되고 결국 얼마만에 이륙을 하게 됐는데 그 기체 결함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회항을 하는 것을 보면서 결국 그렇게 덮고 그대로 비행을 했다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은 죽을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리면서 갖고 있는 카메라로 아내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를 남겼고, 매일 유언을 남기는 마음으로 날짜를 세고, 오늘은 어제 보다 조금 더 사랑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한다.
생을 의미있게 사는 방법에 관하여
만일 내 남편이 그렇게 나하고 산 세월을 세고 있다면 난 어떤 느낌일까? 먼저 괜찮다고. 그럴 필요 없다고 내가 먼저 말렸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때로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디테일한 것이고, 눈이 먼 것이며, 자신의 자유의지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즉 지금 내 남편이 그렇게 날짜를 세고 있는 것이 당장은 어색하고 불편해도 그날들이 모아지고, 어느 날 뒤를 돌아볼 때 그렇게 나와 함께해 준 날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억해 준다면 고마워 죽을 것 같을 것이다.
우린 하루하루 세월이 가는 것에만 안타까워하고, 세월이 정말 빠르다고 탄식만 할 뿐이지 누구와 무엇을했고, 며칠째 살고 있는지, 남과 어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누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선 도통 관심이 없다.
그래서 말인데 사실은 다소 내성적이고 무뚝한 우리 형부가 작년말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우리집으로 전화를 해 엄마와 통화를 한다. 이건 또 엄마가 사위를 맞아 들인지 25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엄마와 난 그게 또 얼마나 갈까 싶은데 형부는 진짜 작심을 한 모양인지 아직까지 비교적 출석률이 좋다. 오죽했으면 (멋없는 우리)엄마가 할 말도 그다지 없으니 그냥 2,3일에 한번씩 전화하라고 해도 형부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시간이 쌓이면 엄마 자신은 물론이고 형부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요즘 어떻게 하면 이 물 같이 빨리 흘러가는 세월을 움켜잡고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 아닌 고민하면서 살고 있는데 그것에 어제의 션이 어느 정도 답을 준 것 같기도 하다.
내 아이가 방황을하고 있다면...
무엇보다 션은 정말 젊다. 물론 90년대 인기 힙합 가수였으니 젊은 감각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산다고도 볼 수 있지만 꼭 그래서만도 아닌 것 같다. 그가 지금 40대 초반의 나이이고 보면 결코 젊다고 할 수도 없는 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다는 느낌이 드는 건, 그에게선 그 스스로가 즐겁게 살려고 하고, 마치 파티를 준비하는 주인의 마음으로 살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파티를 준비하는 주인의 마음은 어떻게 하면 내 집에 초대된 손님들이 즐겁고 편하게 내 집에 놀다 갈까를 생각할 것이다. 바로 그가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인상을 어제 받아었다.
이렇게 모든 것에서 구김이 없을 것 같은 그도 사춘기 시절 잠시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출도 했다고. 그것을 비집고 사회자 넷중의 하나가 그런 질문을 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네 아이중 하나가 사춘기가 돼서 가출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정말 그럴 리 없을 것이다. 아이들을 구김없이 키우고 있는데 설마!).
그 질문이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아찔한지 처음엔 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곰곰 생각하더니, 그렇다면 믿고 기도하고 기다리겠다고 대답한다. 과연 현명한 부모의 대답이란 생각이 든다. 자기 아이에게 방황할 수 있는 권리(?)를 기꺼이 주는 것이다. 물론 자기 아이가 방황하는 것을 보기 좋아하는 부모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생의 한 과정이라면 부모도 받아들여줘야 할 것이다. 중요한 건 부모도 같이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기도하며 기다린다는 것이다. 내 부모가 나를 위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아이는 언젠가 그 방황을 끝내고 돌아 올 것이다. 우리 나라 부모 교육의 문제가 그런 것이 아니던가, 아이들에게 방황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 것. 분명 션은 좋은 아버지고 또 앞으로도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는 파티를 준비하는 집주인 같다
이 프로를 끝까지 본적이 없어 잘 모르겠는데, 어제는 션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끝까지 보게 되었다. 그런데 원래 그래왔는지 특별히 어제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녹화가 다 끝났는데 션은 방청객들에게 만원을 한 장씩 다 돌리는 것이었다.
알겠지만 그는 기부왕이다. 현재 2000명의 아이들에게 계속적으로 기부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무슨 돈이 있어 그렇게 기부를 많이할까 싶기도 하다. 물론 아내가 탈렌트고 자기는 가수니 적지않게 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혜영은 현재 네 아이의 엄마고 그 아이를 돌보느라 드라마는 많이하면 일년에 한 작품 밖에 하지 못하고, 자신도 현재는 가수 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는 또 희안하게도 다 먹고 살고 기부할 수 있도록 길이 열려있다. 하긴 뭐 그 부부의 사회적 이미지가 좋으니 다 먹고 살기 마련이라고 해도 결코 넉넉해서 기부하며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인상적인 건, 그는 결혼해서 매일 하루에 만원씩 모아보자고 했단다. 그랬더니 정말 모아지게 되었고 일년이 지나면 그 모아진 돈으로 어느 자선사업 기관에 기부를 한다고 한다. 과연 기부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님을 그는 몸소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날 방청객들에게 어떤 의도로 만원권 지폐 한 장씩을 나눠줬을지 짐작이 간다. 그날 션에게서 돈을 받은 사람들은 모르긴 해도 커피를 사 먹거나 떡볶이를 사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에게서 받은 만원 한 장을 어딘가에 기부를 했거나 더 얹어서 했을 것이다. 그가 보여준 행동은 작고 단순하지만 굉장한 위력을 가진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래서도 그는 파티를 준비하는 집주인 같다란 말이다.
이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해마다 국민의식 조사라는 것을 한다. 그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 스스로가 우리나라를 굉장히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래도 이번 발표에 의하면 조사 대상자중 15% 정도가 우리나라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누구는 코웃음칠지 모르지만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하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그건 확실히 인식의 문제란 생각이 든다.
그런 뇌실험이 있었다고 한다. 글자를 거꾸로 보여주는 실험. 처음에는 그것이 액면 그대로 거꾸로 보이는데 그것도 자꾸보면 뇌가 그것이 바로인 것처럼 인식을 변환한다고 한다. 그처럼 우리가 긍정적인 것을 보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고, 부정적인 것을 보면 부정적인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저 조자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우라나라가 그래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도 같고, 또 부정적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멀었다고 탄식하고 싶어지는 때도 있다. 그것은 확실히 내가 무엇을 보고 받아들이느냐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어제 같이 션 같은 사람이 나와서 착한 사람으로서의 바른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 그렇게 살아야해 그리고 저런 사람 때문에 세상은 살만해 맞장구치게 될 것이다. 그처럼 두드림 같은 프로에서 션 같은 사람이 나와서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여타 방송에서도 자꾸 좋아지고 있는 얘기를 발빠르게 취재해서 보여준다면 국민이 느끼는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 그야말로 OECD 국가중 자국의 평가가 낮은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사실 나도 기부는 그리 많이 하지 못하는 형편인데 나 스스로가 가진 것이 별로 없다는 이 인식부터 깨야할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의미있는 일에 나 자신을 투신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부에 대한 인식은 좋아지고 있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씌여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안 알려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어찌보면 유교적 관습 때문에 자선한 것에 대해선 후일담을 알려고 하는 것이 자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난 이런 잘못된 인식이 좀 바뀌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의 네 명의 사회자들 너나할 것 없이 기부의 목소리만 높이던데 그게 왠지 역부족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나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 진다. 그래서일까, 어제 TV로나마 션을 만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예쁘게 살아가길 팬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바래본다.
※ 덧붙여, 션은 이책을 아내 정혜영과 함께 쓰면서 궈삶았다고 한다. 인세 나오면 선물을 하겠다고. 그런데 어느 인터뷰에서 인세를 모두 기부하겠다고 했단다. 순간 난처해졌다. 그렇게 공언했으니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면 기부가 울고, 공약을 지키자니 아내가 울고. 그런데 묘안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아내 이름으로된 장학회를 만들어 아내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너무 좋아하더라고. 션은 참 지혜롭고 멋진 사람이다. 기뻐해 주는 그의 아내 정혜영도 못지 않고. 비둘기 같이 사는 사람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