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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별점: ★★★☆

 

요즘도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곤 하나? 더구나 실수가 아닌 간호사의 고의로 그렇게 됐단다. 아기가 태어난 것을 너무 기뻐하는 게 화가나서. 그런다고 아이를 바꿔치기를 하냐? 

그런데 그 간호사 운도 좋다.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원하면 벌을 받게 할 수도 있지만 주인공 료타가 이를 취하한다. 

 

영화는 특별한 사건이나 이슈없이 이 잘못된 운명을 긴 시간을 두고 바꿔놓는 것에 집중을 한다. 아이가 받을 충격. 부모의 마음, 바뀐 아이의 상대 부모와의 관계를 별 무리없이 담담하게 보여준다.

새삼 잘 사는데 형제가 없는 집과, 못 사는데 형제가 많은 집 어느 집이 자신이 크는데 유리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영화는 거기까진 다루지 않고 온전히 부모의 마음, 심리 묘사에만 집중했다. 

나중에 료타의 아내가 자신의 아인 줄만 알고 키웠던 아들 케이타가 원래의 부모에게 가고, 자신이 케이타를 점점 잊어가고 있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장면에서 공감이 갔다. 원래 자신의 아이를 찾았음에도 좀처럼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게 괴로워도 하고. 역시 낳은 정 보다 기른 정이 더 앞서는 법일까?

조금은 지루하지만 폭풍 같은 사건을 이렇게 잔잔하게 그리기도 쉽지 않은 것 같은데, 황금종려상인가 뭔가 하는 상을 받았다. 그 연출력이 대단하다 싶다. 의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사전>  ★★★☆

 

가끔 그런 사람이 있긴 하다. 샌님 같이 조신하고, 얌전해서 남이 잘 안 할 것 같은 일을 스스럼없이 해 내는 사람. 그런 사람 보면 묘하게 끌리긴 한다. 나에겐 별로 없는 재주라 그런가.

 

사전 편찬의 작업이 이렇게 지난한 작업일 줄은 이 영화를 보기 전엔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요즘 같이 인터넷 전자 사전이 있는데 종이사전이란 얼마나 가치없는 일일까? 남이 알아주건 말건 의미 있다고 생각한 그 일에 무려 17년을 바친 사나이의 이야기다.

 

그동안 어렵게 하숙집 주인 딸과 결혼을 했고, 자신과 같이 일했던 편찬진들 바뀌고 갈리는 걸 봐야했고, 자신의 상사가 죽는 것도 봐야만 했다. 그동안 새로 생긴 단어들을 편집해 넣고, 작업이 끝나는 날 파티도 한다. 참 조촐한 파티다. 

 

한 작가가 17년 동안 소설을 써서 세상에 내놨다면 역작이니 하며 추켜세울 텐데 그러기도 뭐하다. 도무지 뭐가 행복한 사전이란 말인가. 

확실히 인간의 언어는 진화의 진화를 거듭한다. 예전엔 듣보 보도 못한 단어들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가? 은어 같은 단어가 표준어가 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일본 영화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왜 이런 영화를 못 만드는 걸까 살짝 아쉽기도 했다.

 

오늘 뉴스를 보니 표준어 13개를 추가 시켰단다. '삐지다'(삐치다), '딴지'(딴죽), '개기다'(개개다), '허접하다'(허접스럽다) 등이 포함됐다는데 나머진 또 뭔지 모르겠다.

새삼 사전편찬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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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생'만한 드라마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왜 이리도 재밌는지, 왜 이리도 공감이 가는지.

우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드라마에 끌리게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드라마를 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 드라마를 통해 계약직 사원들이 얼마나 차별을 받는지도 알게 되고, 말도 안 되는 또는 저건 좀 너무하지 않아 하는 부조리를 현실감있게 묘사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엔 계약직이라는 것도 뭔가 사람을 구제해 주기위한 장치로 만들어진 제도였을 것이다. 실업자 또는 한번도 직업을 가져 보지 못한 사람에겐 얼마나 희망이 됐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차별의 문제를 불러왔다. 드라마가 저 정도라면 실제는 더 하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

 

요즘엔 이 차별의 문제 때문에 계약직을 없앤 회사도 있다고 하던데 그게 좋아할만한 일인지 그도 의심스럽다. 계약직이 없어졌다고 각 기업체의 머릿수 제한이 완화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서럽더라도 계약직이 더 난 건 아닐까? 그래도 이력서 쓸 때 한 줄은 더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아, 사람 구실하며 사는 게 왜 그리도 어려운 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대사도 어쩌면 그리도 뭉클한지. 어젠 장그래에게 묘한 열등감을 느낀 장백기가 장그래를 처음으로 이해하는 순간이 다다르면서 작별 인사를 하는데, "장그래 씨와 나의 시간이 다르지만 아무튼 내일 봅시다."하는데 이 멘트가 뭔가 있어 보인다. 

 

우린 나 보다 잘 난 사람에게는 열등감 같은 건 잘 느끼지 않는다. 주로 나 보다 못할 것 같은 사람이 나 보다 인정을 받으면 열등감을 감추는 대신 뭔가 알지 못하는 분노에 사로잡힌다. 그러므로 장백기를 욕하다가도 나도 저런 때가 있지 오히려 이해가 된다. 솔직히 장그래는 흠잡을 구석이 없다.

 

자신의 모자람을 누구 보다도 잘 알고 무조건 노력하는 사람한테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그저 안쓰럽고, 잘 되기를 바라며,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지.

오리려 욕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다. 어제 같은 경우 장백기, 장그래와 함께 인턴으로 일하다 잘린 거 누구더라...? 뺀질이 말이다. 자기가 그 회사에서 잘린 것이 장그래 때문이라고 생맥주집에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며 씩씩거리던 그놈 말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는 스펙을 쌓기위해 장그래 못지 않은 노력을 했을 거란 건 인정하겠다. 그를 보며 세상은 노력해도 안 된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상실감이란 대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장그래에게 뒤집어 씌운다는 게 좀 그렇긴 하다. 그래봐야 장그래는 계약직이다. 있는 사람으로 없는 사람의 그것까지 배 아파한다는 건 좀 너무하지 않는가?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도 그러지 않는가?(나 황희정승 다 됐다.ㅋ)

 

안영이나 장그래를 보며 의욕만 너무 앞서도 안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좋은 사업 아이템인데도 회사는 좋다는데 직속 상관한테는 협박반, 까이는 것 반 접어야할 상황이다. 아무리 장그래, 안영이라도 나중에 5년차되고 10년차 되면 적당주의자 되고 후배 가르친다면서 그들의 선배처럼 될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런 선례가 없다며 계약직에게 사업 지원을 맡기지 못하는 건 또 얼마나 장그래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인가.  드라마는 한 예를 보여주는 거지만 그런 회사가 한 둘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산업이 구조적인 문제를 나을 것이며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젊은애들 기 살려주면 버릇없어진다는 건 도대체 어느 발상인가? 회삿밥 먹고 늙어버린 노땅들이 그렇게 젊은 사람 발목이나 잡아서 나중에 더 나이 먹어 얻을 건 뭐란 말인가. 그래서 젊은 사람이 나이 먹은 사람 싫어한다는 거란 말 밖에 더 듣겠는가? 특히 마 부장은 정말... 

 

그런데 나 개인적으론 감정이입 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한석률이다. 물론 외모는 내가 결코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는 악하지는 않은데 '누구든 당한만큼 갚아 준다주의'의 사람이다. 그게 참 나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드라마에 나온 사람 보고 그렇게 느끼기는 또 이번이 처음은 아닐까?ㅋ). 누구는 그런 성격을 두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정의의 사도쯤으로 말하기도 하겠지만, 그건 그저 다듬어져야 할 인격일뿐이다. 젊어서 그럴 수도 있고, 자기 영역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인정을 받아야 일하는 타입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이 사회생활을 잘 하기란 쉽지 않다. 겉으론 아무 문제없이 사람도 잘 사귀고 차별없는 좋은 성격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옛날 모 협회에서 무임으로 일했던 나의 짧은 간사 시절이 생각난다. 나를 그 협회로 인도했던 분은 처음엔 봉사 정신으로 하는 거라며 쉽게 얘기를 했지만, 달이 나만 쫓아 온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다 나 같거나 나와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그분도 그랬겠지. 나 역시 나의 능력을 잘 모르고 그의 손을 덥썩 잡은 것도 있고. 훗날 협회가 정식 인증을 받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을 때 난 정식 간사에서 제외 됐다. 물론 그때 받은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난 역시 장그래가 아니다. 될 수도 없다. 나 자신을 알았더라면 애초부터 간사 제의는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덕분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어서 꼭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그땐 그분이 참 야속했는데 지금은 감사할 수 있다. 뭐 덕분에 나의 폼나지 않는 이력에 한 줄은 넣게 되지 않았는가? 전 00협회 간사라고. ㅋ 

역시 분수를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석률이 나의 페르소나는 아닐까 생각하면서, 벌써 1년 넘게 이 인간만큼은 밟아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왜 그런지 생각이 복잡하다. 리더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 어떤 망상에 사로잡혀 그것이 믿음인 양 휘젓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목소리 높여 싸울 수는 없고, 그래서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요즘 읽기 시작한 책이다. 요즘 미생이 인기 있는 것만큼 그것을 키워드로 삼고 책소개를 해 읽고 있는데, 미생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 역시 싸우게 되면 목소리부터 커지는 족속이라 그게 싸움의 가장 안 좋은 자세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 않아도 맨 첫장에 "말로써 이기려 하지 마라"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벌써 그 사람을 말로써 이겨 버렸으니. 

"말로써 흥하기를 바라지 말고, 말로써 망할 것을 두려워 하게. 그렇지 않으면 주변의 분노를 살 수도 있으니 도움이 될 게 없지."(16p)    

그렇다. 모래를 꽉 쥐면 손아귀를 빠져 나간다고 난 말로써 이겼는지는 몰라도 그 사람과 더 멀어졌다. 물론 그 사람은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런 인간류긴 하지만.

 

그래서 싸움의 고수가 돼 보고자 모처럼 읽는데 이런 책류는 또 하도 오랜만에 읽는 것이라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 로버트 그린의 <권력을 경영하는 48법칙>이던가 하는 책을 읽었는데 위의 책과 비슷한 맥락의 책인데 역사적 사건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내가 권력에 엄청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착각하리만큼.

 

그런데 나는 그 보단 역사 이야기가 재밌었던 것이다. 위의 책도 역사적 인물과 그 행적을 다루기는 했지 저자가 중국인인만큼 내가 중국 역사를 잘 아는 것이 아니라 로버트 그린의 책만큼 재미있을런지 잘 모르겠다. 

 

그 보단 난 미생을 보고 있으려니 오래 전 읽다가 조용히 모셔둔 이 책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속이고 짓밟는 인간처럼 더럽고 치사한 인간류가 없지만 그런 인간한테 당하고 씩씩거리는 건 또 얼마나 초라한가. 그러지 않거나 덜 그러기 위해 읽어줘야 할 것 같다.

 

이제 미생도 종반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거 끝나면 꽤 허전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요즘 막장이 아니면 드라마가 아닌 것 같은 세상에서 모처럼 건강하고 위로를 주는 드라마가 있어 좋았다. 제2, 제3의 미생 같은 드라마가 나와 줬으면 좋겠고, 우리의 장그래가 계약직 사원이 됐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줬으면 좋겠다. 그런 뻔한 결말은 제작진이 허락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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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영화가 지닌 미덕은 아무래도 전장에서 피어나는 진한 인간애 때문에 보게되는 것 같다.

러닝타임이 다소 길다는 느낌이 들긴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영화에 감탄하게 만든다. 

감독의 우아하고도 장중한 느낌이 역시 이름값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한껏 중국 여인들의 매력을 잘 살렸다. 아무리 외국인 선교사가 지은 성당을 배경으로 했다지만 없는 게 없어 보인다. 어디서 그렇게 도구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없는 거 빼고 다 있어 보인다. 그게 흠이라면 흠일까?ㅋ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난징을 소재로 했는데 역시 일본을 쉽게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별점: ★★☆

영화가 겉보기엔 참 그럴 듯 한데 가만히 뜯어 보면 참 별볼 일 없어보인다. 보면서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허리우드 영화가 다 그렇지 싶다.

가끔 작가가 등장하는 영화들이 있던데 난 그게 그다지 탐탁치가 않다. 이 영화도 그렇다. 물론 때로 작가의 글이 사람의 인식을 변하게도 하지만 그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글 읽는 것을 좋아하는 줄 아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영화에선 작가가 뭐 대단한 일을 할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좀 오버란 생각이 든다.

영화는 1960년 대를 배경으로 했는데 노예해방 되고도 거의 1세기가 흘렀는데도 인종차별은 여전하다.

당시 백인 아이들은 거의 흑인 가정부에 의해 자라났다고 한다면 그 상황을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의식 있는 흑인 가정부라면 백인 어린 아기를 돌보면서 알게 모르게 평등사상을 심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그들에 의해 백인들을 고발하는 정도로만 보여진다. 뭐 대체적인 그 시대 상황을 그린 거겠지만 책도 난 영 신통치가 않았는데 영화도 별로였다. 그래도 책과 영화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영화가 훨씬 낫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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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7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08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전쟁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 영화는 왠지 끌려서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일제 시대에 관심이 많은지라.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은 전쟁씬을 정말 잘 찍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전작도 그랬지만 이 영화에선 한층 더 완성된 영상을 보여준다. 

솔직히 이제 좀 전쟁씬은 그만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거의 전쟁씬의 끝판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그래서 강제규 감독은 정말 영화를 찍을 줄 아는 사람이란 생각에 이의를 달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솔직히 약간의 민족주의(?)를 가장한 휴머니즘이 베어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겠다. 이를테면,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의 대결씬이 그것인데 장동건은 오다기리 조를 죽이고 그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그를 죽이지 않는다. 자신을 괴롭힌 일본놈 아닌가? 무슨 마음에선지 탈출을 함께 하며 동지애를 보여준다. 그들은 일본에서나 주종관계였지 제 3국에서는 너나 할 것 없는 포로였던 것이다.

 

만약에 일본에서 이와 비슷한 영화를 찍는다면 그도 비슷한 영화를 찍지 않을까? 조선인을 불쌍해서 살려주는 일말의 정의감을 보여주는 그렇고 그런 영화 말이다. 

하긴, 요즘 일본은 우경화가 극에 달하고 있으니 그런 영화 조차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이 우연히 보게된 사진 한 장이 모티프가 되어서 영화로 만들고, 후에 책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또 정확히는 이 책의 저자 아버지가 간직한 사진 하나가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영화로 만들었다 후에 책으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긴하고, 나 같은 경우 책으로 먼저 것을 나중에 영화로 만드는 건 선호 하지만, 영화에서 책으로 나오는 건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웬지 책으로도 읽고 싶단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다.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주로 많이 그렸는데, 책은 그것 말고도 얘기거리가 더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의 연기가 확실히 볼만하다. 특히 장동건이 조금도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일본어로 뇌까리는 씬이 종종 나오곤 하는데 왠지 멋있다 못해 섹시하다는 느낌마져 든다. 오다기리 조의 연기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영화는 280억이나 들였다는데 개봉 당시는 그다지 성적이 좋지 않아다고 한다. 좀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전에 본 설국열차 보다 좋다고 보는데. 요즘 재개봉 하는 영화도 많던데 이 영화도 언젠가 다시 개봉해서 만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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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1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21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점: ★★★

 

대자연의 풍광과 세월의 유장함을 담았다는 점에선 볼만한 영화인 것 같긴하다. 하지만 역시 동성애는 좀 부담스럽긴 하다. 지금이야 미국도 동성애에 관대한 편이지만 두 주인공이 청춘을 보냈던 7,80년 대 동성애가 받아들여졌을리 만무하다. 

동성애를 옹호했다기 보단 한 순간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평생 이해받지 못한 고독하고, 쓸쓸한 인간의 내면과 관계를 표현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뭐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며 봤다.

 

별점; ★★☆

 

역시 강풀식 감상주의를 비껴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혹시나 했다 역시나로 끝나는 영화다.

특히 영화는 건달 진구를 통해 남자의 야성미를 한껏 뿜어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폭력은 안 된다고 했다가 결국 폭력을 써야할 때 밥들 많이 묵었냐고 묻는 장면은 확실히 감상적이고, 오버고, 영화의 한계를 느끼게 만든다. 

영화는 마치 5. 18의 전라도 광주를 위로하는 듯도 해 보이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런 식의 감상주의가 오히려 또 한 번 광주의 상처를 건드리고, 어디에도 이해받지 못하는 고아 의식을 표현한 건 아닌지, 엔딩으로 갈수록 김이 빠지고 씁쓸함 느낌마저 든다.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지난 세기 우리는 절대로 그런 사람을 대통령에 세우지 말아야 했다. 아무리 그 시절엔 국민투표가 원천적으로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국가가 허락했을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이 나라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한 둘일까마는. 

 

나는 전두환이 테러를 그렇게 조직적으로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게 좀 믿기지 않는다. 5. 18을 두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건가? 전두환은 이런 응징이라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원작이나 감독이 염원해서 만든 작품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뭐란 말인가? 영화에서 전두환은 결코 죽지 않는 무슨 불사조라도 되는 양 유유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비록 영화라도 그 시대를 위로 하려면 확실히 하던지, 안 그러면 아예 만들지 말던지 그랬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뭔가를 건드리다 마는 건 재채기가 나오려다 마는 답답함에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부언하자면, 영화에 나오는 임슬옹의 연기는 나름 볼만했다. 처음 영화에 출연한 것일텐데 경찰 복장이 의외로 잘 어울려서일까? 어쨌든 기대되는 연기를 했던 것 같다.          

    

별점:    ★★★☆

 

위의 영화가 전라도 사투리가 질펀하더니, 이 영화 역시 그렇다. 그러고 보니 왜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는 하나 같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일까? 이제야 의문을 품어 본다. 이러다 건달 또는 조폭의 출생지는 전라도는 아닐까? 오해라도 생기면 어쩌나 걱정 아닌 걱정이 든다. 전라도도 건전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도 많을텐데 말이다.  

생각해 보니 언젠가 이 영화를 보다가 말았던 것 같다. 이유는 조폭들의 거친 세계를 다룬 것이 좀 거시기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를 다시 볼 생각을 했던 건 순전히 감독이 좋아서다. 나는 이로써 현재까지 나온 유하 감독의 작품은 다 챙겨본 것 같은데, 내가 감독을 좋아하는 건, 그는 스토리를 조직적으로 이끌어 가는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솔직히 조인성이 보여주는 건달의 이미지는 우리가 익히 봐왔던 인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난 영화 중반을 지나서 조인성의 친구로 나오는 영화감독 지망생인 남궁민에게 쏠렸는데, 그는 영화로 뜨고 싶은 마음에 친구의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자신의 영화에 배치시켰다. 자신의 욕망이 너무 큰 나머지 우정을 배반한 것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이해가 된다.

작가들은 늘 이야기를 가진 자가 승리한다는 착각이라면 착각. 프라이드라면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뜬금없는 일을 당하게 되면 이 경험을 작품으로 만들 수 없을까를 늘 생각하는 족속들이다. 그러니 친구의 이야기를 어찌 글로 쓰고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을까? 더구나 평소에도 건달의 세계를 알고 싶어 몸이 달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치뤄야할 댓가는 혹독했다. 나중에 죽을 위기에도 처한다. 하긴 얼마나 무서웠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조폭의 응징이니 말이다. 하긴 어떤 작가는 정말로 자신이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나쁜 사람이되는 것을 결코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가 죽을 위기를 겪었다는 건 어찌보면 진짜 감독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는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가진 자가 정말 승리하는건 맞는가 보다. 그는 죽을 위기에서도 죽지 않고 있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피의 승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또 영화 속 감독이 아닌 진짜 이 영화를 만든 유하 감독의 이야기는 아니었을지 살짝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조폭들이 끈끈한 의리로 맺어졌을거란 것엔 의심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원래 의롭지 못한 일,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일엔 그런 것이 접착제 역할을 한다. 그래야 서로서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의리, 의리하다 결국 그 의리에 죽고마는 세계가 그 세계은 아닐지? 조인성과 피 보다 더 진한 의리로 맺어졌다고 생각했던 진구가 조인성을 배반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니까 의리 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인 것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그 세계에선 육감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어찌 비열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 어찌보면 사는 것은 '비열한 것'인지도 모른다.

 

별점; ★★★    

 

2001년 개봉작인데, 분위기는 8,90년대를 연상케 한다. 소재주의 영화라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나름 볼만은 하다. 

 

 

 

 

 

별점; ★★★☆

 

이런 영화를 보면 우리나라 영화가 얼마나 기술적으로 발전해 있는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마포대교 폭파 장면은 또 어떻게 만들었을까? 방송국 건물은 또 어떻게 초토화시킨 걸까?

 

영화가 다소 황당하긴 하지만, 중요한 건 역시 주제의식이다. 우린 얼마나 매스컴에 조직적으로 휘둘리며 사는 것일까? 국가 권력의 폭력에 얼마나 맥없이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를 상황속에서 나름 잘 보여주고 있다. 훗날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이젠 별로 말할 필요는 없어보이긴 하지만, 하정우는 정말 실망시키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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