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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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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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차 예쁘게 쓰기는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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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심과 3심에서 피고인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정의는 진실의 편에 있다는 믿음은 나를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계속되었다. 조직적인 2차 가해는 더 심해졌고,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이상한사람이 되어 있었다. 거짓의 파급 속도는 진실보다 훨씬 빨랐다. 한 문장의 무분별한 선동을 주워 담는 데는 수백 개의정리된 문장이 필요했다.  - P10

지난 2년간 많은 분이 함께해주셨지만, 지독히도 고독했다. 죽음을 고민하고 시도하던 그 여러 번의 좌절 속에서 나는 늘 혼자라고 느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적어도그 시간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종잇장 뒤에서 나를 묵묵히지지해주는 누군가와 나긋이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살아내겠다고 아등바등 지내온 시간들이 흰 종이 위의 활자로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위로받았다. 진실과 진심을 담아 있는그대로의 경험과 사실들을 적었다. 용기를 내어 전해드린다. - P11

안희정의 참모진들은 나를 ‘순장조‘라고 불렀다. 왕이 죽으면 왕과 함께 그대로 무덤에 묻히는 왕의 물건처럼,
수행비서는 왕과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행비서는 누구도 모르는 왕의 비밀을 알고, 죽을 때까지 함구하다,
죽음으로 그 입을 끝까지 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조직 내에서 안희정의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차기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안희정의 말은 거스를 수 없는 명령이었다. 조직의 최고 권력자가 사과를 했으니 나는 그저 받아들이고 다시 또 복종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전의 8개월간 굴복적으로 반복되어온 삶의 압축이 바로 2월 25일, 마지막 피해일이었다. - P15

내게 범죄한 그다음 주 안희정은 미투를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투가 한국에서 시작되고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고,
왜 정치인으로서 입장 표명하지 않느냐는 질문들을 사람들에게 받은 지도 비교적 오래된 때였다. - P17

당시 나는 안희정의 개인 이메일과 SNS 메시지를 관리하는 정무비서였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만나고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 업무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허구에 동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업무구조를 잘 아는 동료들조차 이 허구를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재판 내내, 안희정의 성폭행을 증명하는 것보다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들을 탄핵하고 공방하는 게 더 힘들었다. - P20

범죄 피해 사실과 관련된 수행 일정, 출장기록, 영수증, 메시지, 사진 등 관련 자료를 모두 찾아서 제출했다. 그과정에서 내가 당한 범죄는 성폭력뿐 아니라 노동권과 인권침해에까지 이른다는 사실을 하나둘씩 스스로 깨우쳐갔다.
그동안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무기력 속에 침묵을강요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해주는이들 모두가 내가 당했던 일상적 폭력에 분노했다. 어떻게견딜 수 있었냐고 했다. 사소한 일처럼 수시로 가해지는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도, 극심한 고통이었던 성폭력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했었다. 말하지 못한 나날의 피폐한 심정과 상황을, 내가 제출한 증거들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 P51

2018.03.13.

검찰은 충남도청 도지사 집무실과 관사를 압수수색했다. 이날 "제3의 피해 제보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2018.03.14. 

두 번째 피해자 A씨가 서울서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검찰은 충남도청 집무실을 추가 압수수색했다.

2018.03.16. 

A씨 고소인 조사검찰은 두 번째 피해자 A씨에 대해 16시간 고소인 조사를 했다. - P56

후회하지 않는다. 안희정에게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도청에서의 지난 8개월을 마침내 스스로 끝냈다.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를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 눈앞에 더 이상 안희정의 범죄는 없다. 폐쇄된 조직 안에서 느꼈던 무기력과 공포에서도 벗어났다. - P65

안희정에 협조하지 않은 청년들 중 한 사람의 글

안희정의 페이스북사과문 작성 시간이 3월 6일 0시 49분이다. 안희정은 민주원과 그의측근들이 빠져나갈 작전을 짜는 동안 양심 고백을 했다. 
"합의에 의한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입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취합‘의 의미는 나중에 알게 됐다. 나와 친하게 지냈던 S와K는 취합 작업에 동참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국회 경험은 [각각] 입법보조원, 인턴이 전부였지만 한번에 5급 비서관이 되었다. 그 작업에 내가 동참했다면, 뭔가 기대할 수 있었을까?

당시 통화는 이상했다. 준비된 단어 같은 게 있었다.먼저, 다짜고짜 "김지은이 원래 이상했다"고 했다. 새벽 4시에 들어왔다. 바닥에 낙서를 하면서 교태를 부렸다 등등 어떤 이야기를 유도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먼저 하는 말처럼 들렸다. 

통화하는 도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달리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만약 그 말처럼 평소에 이상하게 여겼다면 왜 그런 사람을 큰아들과누나 동생으로 친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일까? - P68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도서관 바닥에 걸터앉아조용히 책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 P72

그곳에서 계약직의 세상을 배웠다. 당시 내가 일했던곳의 계약직은 근무 기간이 끝나면 다른 팀과의 재계약을 통해 근로를 연장하는 식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무기직이 되거나 정규직이 되어야 정상인데, 비정규직으로 순환시키며 일을 시켰다. 

조직의 이익을 위한 변칙과도 같았다. 고용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근로를 연장하는 데는 정규직 선배들의 평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종종 계약이 연장되는 사람과 해지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모두가 생존을 다투는 정글과 같았다. 

나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저 선배들도 저렇게 힘든데, 이제 겨우 햇병아리인 나는 어떻게 해야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한 고민의 나날이었다.

계약직에도 여러 계급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파견직부터 기간제 근로자, 무기직(공무직), 일반 계약직, 전문 계약직, 시간제 계약직, 별정직 등 그 신분이 천차만별이었다. 계약직들 가운데서도 계급 제도는 아주 단단한 피라미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 P74

그런 구조 속에서 계약 연장으로 살아남은 선배와 정규직 선배들이 해준 공통의 조언은 ‘공부‘였다. 전문 학위를따야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며 학업을 권유했다. 그 조언을 듣고 빚을 내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루 업무를 마치면곧장 학교로 가서 공부를 했다. 예술학 석사학위를 통해 생존을 조금 연장할 수 있었고, 행정학 박사과정을 통해 계급을 약간 올릴 수 있었다. 지식과 지혜를 얻기 위한 공부이기보다는 계약직으로서의 삶을 조금 더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분투였다. - P75

불공정함을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곳이 더없이 세상의 부정과 불의를 함축하고 있었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대의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사사로움으로 치부됐다. 때로 용기내어 조직의 문제에 대해 말하면그저 견디라고 했다.
일부 선배들은 "너희들은 대통령 만들러 온거야, 원래 정치권은 이래"라며 폭력을 묵인했고, 또 그들 자신이 가해자이기도 했다. 노래방에 가 여자 후배를 옆에 앉혀 술을따르게 했고, 노래를 부르게 했다. 머리나 뺨을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고, 볼을 비비거나 껴안기도 했다. 술자리를 지키라며 새벽까지 집에 가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 P81

"멍 때리지 마라, 절대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격식있는 자리인지 미리 확인해라, 지위에 맞지 않는 자리를 싫어하신다, 행사 시 앉는 자리에 착석하는 끝까지 봐야 한다,
보안이 필요한 식사는 수행비서 개인 카드로 결제해라 사우나, 미용, 마사지 등 지사의 개인 일과 비용도 수행비서 개인사비로 써라, 지사 가족들의 비용도 수행비서가 부담한다,
현금을 넉넉히 가지고 다녀라, 한도 500만 원짜리 카드를 만들어라, 지사의 식성을 파악해라, 아주 세세한 음식 기호를외워서 맞춰드려야 한다, 얼굴이나 이름을 못 외우니 수행비서가 보조 기억 장치로 있다가 옆에서 알려드려야 한다. 각종 신고서도 수행비서가 써서 챙겨드려라, 경제 용어도 외워라, 못 알아들으면 안 된다, KTX를 탈 때 수행비서 앞에있는 받침대는 지사의 커피와 가방을 놓을 수 있게 펼쳐놓아라, 아메리카노에 각설탕은 1개, 시럽일 때는 2번 펌핑해야 한다, 빵을 사 오라 하면 크루아상이나 따뜻한 플레인 베이글을 사라, 크림치즈와 나이프를 같이 준비해드려라, 가끔 단 것을 찾으시면 그럴 땐 옛날 꽈배기를 사라, 우유는 예전에는 커피우유만 드셨으나 요즘에는 흰 우유를 주로 드신다, ....."

어휴... - P90

안희정은 전지적 상사였다. 특히 비서는 그의 기분을건드리면 안 된다. 기분이 중요하다는 말은 무형화된 권력을구성하는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가 누군가를 자를 때는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는 한마디면 됐다. 특히 별정직은 도지사에게 절대적인 채용과 면직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지사의말 한마디면 바로 해고할 수 있었다. 상사의 기분에 따라 잘릴 수 있었다. 비서의 중요한 역할이 지사의 기분을 맞추는것이라고 인수인계를 받을 때도 여러 번 들었다. 실수로라도기분 나쁘게 하면 안 된다고 당부받았다. 인사권자의 ‘기분‘
이 업무의 핵심이었다. - P90

지사가 말을 하지 않아도 기분을 알아야 했다. 눈빛이나 호흡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충분히 표현할 수있다. 안희정은 침묵만으로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침묵만으로도 불편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지위를갖고 있었다. 문자 연락에 답이 늦으면 바로 "..."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메시지는 내 전임자들에게도 사용하던, 무언의 질책이 담긴 불편한 심기의 표현이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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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차 페미니즘의 해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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