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슴에 평화가 깃들기를
거기가 당신이 숨을 곳이니.
_로버트 번스(스코틀랜드 시인)
아르망스와 옥타브는 수년간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왔다. 하지만 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반면 한 사람은 그것을 우정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아르망스는 사교계의 속된 욕망을 비웃는 날카로운 지성의 옥타브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녀 또한 그런것들에 관심조차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산도 없고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신 그녀에게 옥타브는 과분한 상대로 여겨졌다. 그래서 마음을 겹겹이 감추고 우정으로 옥타브를 대했다. 옥타브는 결코 사랑따윈 하지 않겠노라 다짐해왔고 그런 감정이 인생에서 하찮고 어리석은 정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아르망스가 있는 저택으로 달려가 스스로 경멸하는 사교파티에 참석했다.
그러나 열정이란 깊이 숨길수록 그 짙은
은밀함으로 표시가 나기 마련이지, 짙은
하늘이 다가오는 폭풍의 사나움을 예고하듯
미처 단속 못 한 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말거든.
게다가 열정은, 위선이 그러하듯
냉정함이나 노여움, 심지어 경멸이나 증오라는
가면을 애써 둘러쓰는 바람에 드러나기도 하지.
문제는 가면 뒤에 숨어봤자 이미 늦었다는 것.
_《돈 후안》 1가- P.95
죽음의 위기를 맞자 더는 감정을 숨길곳도 숨겨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한 옥타브는 아르망스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이 바보같은 젊은 커플은 이런저런 이유로 괴로워하다가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기뻐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 갈등의 씨앗은 누군가의 질투로 또는 미움으로 그들 곁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해피 엔드만 즐기시는 심약한 분들은 읽기를 삼가하시고 어떤 감정의 파고든 견뎌내실 강인한 멘탈의 소유주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인 스탕달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하시길 강력히 추천드린다.
인생의 정수는 가슴으로 느끼는 감정에 있으며, 사랑은 숭고한 만큼 숭고하지 못한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터라, 우리는 긴 세월 속에서보다 단 얼마간의 순간 속에서 더많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P181
아프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또 있다. 프랑스에서 외국인 혐오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때 러시아 출신으로 폴란드에 이주해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하루하루 살아가던 어린 로맹가리는 자존심 강한 어머니가 이웃들과 말다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옆에 불러세우고 이렇게 말하는 창피함을 견뎌내야만 했다.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꺼예요. 위대한 프랑스 작가가 될꺼라고요."p.18
이웃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던 그 꿈은 훗날 이루어졌고 로맹가리가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리기 위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함께 고향을 찾았을 때 어머니는 이미 3년전 돌아가신 후였다. 그녀는 아들에게 계속 보내질 300여통의 편지를 미리 써두었던 것이다. 이 책에는 파란만장했던 로맹가리의 삶의 궤도와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가 작가 본인의 목소리로(글로 옮긴) 담겨있다. 로맹가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담화에서 이같이 밝힌다.
나와 여성들의 관계는 무엇보다 나를 위해 희생한 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숭배였고, 물론 성을 포함한 모든 차원에서 여성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말입니다. 만약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하는 책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p.116
영화 비커밍 제인은 작가를 꿈꾸는 제인 오스틴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있다. 가난한 가정 형편에도 사랑없는 결혼 보다는 작가가 되어 마음껏 글을 쓰고 싶은 제인 오스틴! 그런 그녀에게 도시의 변호사 톰 르프로이가 등장한다.
부유한 귀족 위슬리가 제인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가난하지만 문학에 조예가 깊고 대화가 잘 통하는 르프로이를 사랑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가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걸 확인하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본인의 가족은 물론 그의 가족들, 그의 미래가 몰락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제인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이제 막 서로의 감정을 눈치챘을 때 '훗! 너 나 기다렸지?' 하는 표정으로 제인 앞에 짜잔하고 나타난 르프로이!
미리 이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봤는데도 심장 멈춰버리는 줄!! 이렇게 애틋한데, 너 아니면 다시 없을 사랑이 분명한데 보내야만 하는 사랑이라니...하지만 이런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들 속에는 그렇고 그런 해피엔드는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그런 긴 여운과 감동이 있다. 그래 너와 함께 할 수 없지만 우리는 쭉 함께 살아가는 것과 같아.
https://blog.aladin.co.kr/socker/10392365
이웃 잠자냥님의 완벽한 '아르망스'리뷰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