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는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듯이 사유를 하면 악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건 오직 선뿐이며, 나는 내가 사유하는 대로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거기에 없는 것을 갈망함으로써 그것과 관계를 맺는다. 이 관계를 드러내어 만천하에 알리고자 사람들은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탐구는 사랑과 갈망의 일종이므로 사유의 대상은 오직 사랑스러운 것들, 즉 아름다움과 지혜, 정의 등일 수밖에 없다."-정신의 삶, 한나 아렌트 P.285
이 말의 의미가 너무 와닿아서 이 부분 읽고 나는 많이 울었다. 오래도록 찾던 아니 내가 찾는 줄도 몰랐던 어떤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이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한나는 노년에 친구 매카시에게 편지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그 시간에 몰두하면 지금의 허무함이 사라진다고 생각해." 라고 전했다. 삶은 허무로 가득하다.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견딜수 없을만큼 거대한 허무를 애써 외면하려는 헛된 노력일지도 모른다. 사유는 그 과정이 사랑과 닮았지만 사랑과 똑같지는 않다. 한나의 말처럼 사랑은 둘 이외에 다른것들에게 관심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에 사랑이 끼어들어선 안된다. 사랑은 맹목적인 성향이 있으니까. 한나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사유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았기에 그 차이를 잘 알았다. 그것은 자신을 끝없이 삼키려 했던 허무와 비탄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편지 잘 받았어. 내가 어떻게 당신의 사랑이, 애인이 될 수 있었는지 알려줘서 고마워. 사랑은 인간이 감내할 가장 큰 시련임을 알고 있을까? 사랑은 유일하게 방법도 없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으며, 한계도 없고, 다른 누군가의 이해도 얻지 못해. 누군가의 사랑이 된다는 건 한마디로 어쩔 수 없이 그 사람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다는 뜻이야.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에 대해 "Amo means volo ut sis"라고 했어.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너이길 바라는 것이라고. p.70ㅡ한나 아렌트에게 전해진 하이데거의 편지
열여덟 살 한나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서른 여섯의 교수 하이데거를 만난다.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막 집필하기 시작했었고 만난지 두 주만에 자신의 마음을 한나에게 전하게 된다. 두 사람은 교수와 제자로 만났지만 서로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위의 편지만 보면 그는 철학자이기보다 사랑에 푹 빠진 로멘티스트다. 비록 그 인연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헤어진 뒤에도 그들 사이에는 끊어낼 수 없는 무언가가 연결되어 있었다. 하이데거에게 가정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당시 두 사람의 관계는 비밀이었고 훗날 한나가 보관해두었던 하이데거의 편지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나는 하이데거와 헤어진 이후 몇번의 결혼과 헤어짐을 반복했고 결국에는 블뤼허라는 한 남자에게 정착하게된다. 독일인 블뤼허는 한나의 정신적 삶을 지지해주었고 하이데거와의 관계도 어느정도까지는 알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블뤼허는 그녀를 구속하려 하지 않았고 열정적인 대화 상대이기도 했다.
한나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살아남았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감당하기 벅찼을것 같은데 그녀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유하며 사랑도 쉬지 않았다. 그 결과물들이 많은 책으로 우리에게 남겨졌다. 특히 정치에 관한 저작들은 21세기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글은 사실 답이 아니라 질문을 수없이 던져준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 질문하며 깨어나기를 독려하듯이. 이 책은 그런 한나의 저작들을 만나기 위한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정치 및 도덕 관련 사안에 사유하지 않는 것은 사회에서 주어진 시간에 정해진 행동 규칙이 무엇인든 맹목적으로 따르라고 사람들을 가르칠 위험이 있다. 우리는 규칙에 익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하는 데 익숙지 않다. (...)자신은 이 점을 알아차리지 못할 텐데, 그건 잠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