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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지음, 김석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9월
평점 :
느와르 영화인데 명언과 은유로 점철된 영화<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은 묻는다.
"저한테 왜그러셨어요?" 피해자들은 항상 궁금해한다. 가해자들이 왜그랬는지 왜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나에게 그토록 해를 끼쳤는지 감옥에 찾아가고 때론 편지로도 질문한다. 관찰자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자들에게 그 답은 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영영 누구도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에리히 프롬은 독일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나치가 정권을 잡은 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몇년전 미국으로 망명했다. 정신분석 전문의였고 유대인이던 프롬은 당시 독일에 있을 때 나치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직접 목도하며 누구보다 궁금했을 것이다. 저들이 저런 짓을 저지르는데도 왜 사람들은 비난하기는 커녕 동조하는지 인류보편의 도덕이라고 생각되는 이치에 반하는 행동을 어떻게 집단으로 버젖이 하고 있는지. 이 대중의 심리에 어떤 배경과 동기가 있는 것인지.
어떤 사회에서나 문화 전반의 정신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의 정신이다.그 이유는,부분적으로는 이런 집단이 교육제도와 학교,교회,언론,극장을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그리하여 자신의 사상으로 인구전체를 가득 채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이 강력한 집단은 신망이 높기 때문에,하층계급은 그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모방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려고 한다. p.123
프롬은 인류가 중세 종교개역을 거쳐 근대를 경험하며 계급. 종교혁명등 시대변화에 따라 반응하는 심리를 분석해 그 답을 찾아간다. 자유를 열망하는 동시에 고독과 불안을 경험하는 모순적인 인간본성이 외부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왔는지 흥미롭게 설명한다. 또한 루터와 칼뱅을 비롯해 히틀러에 이르기까지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특징과 거기에 집단이 반응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의 조화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나는 우리가 우주에 비해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어떤면에서는 우리를 압도하는 동시에 안심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사고 범위를 넘어서는 그 수치나 차원들은 완전히 압도적이다.-쥘리앵 그린 p142
특히 가학과 피학. 사디즘과 마조히즘적 특성이 지배와 피지배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따라가다보면 파시즘과 전체주의 뿐만 아니라 지금의 민주주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히틀러는 당시 상황과 그에 따른 대중의 심리를 잘 이용할 줄 알았고 그런 결과로 역사에 잊지못할 교훈을 남겼다. 파시즘과 민주주의라는 색깔이 전혀다른 듯한 상황안에서도 심리적인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개개인의 주체의식과 스스로에 대한 통찰, 비판의식이 결여된 상황에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역시 -프롬의 비유를 빌려-자동인형일 뿐이며 큰 바퀴의 일부로 맞물려 돌아가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과연 지금 깨어 있는 것인가 잠들어 있는가? 전쟁은 과연 종식되었는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가? 우리는 현재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돌려야 한다. 제대로 된 인식없이는 언제든 어떤 식으로든 개인과 대중은 소수의 억압자들에 의해 압도되고 말 것이다.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의 몫이다. 진정한 자유와 자발성을 사유하는 계기로써 이 책의 일독 이상을 권한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류의 대부분은 자신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강력한 집단에 맞서 자신을 지켜야 했고,모든 개인은 어린 시절에 무력함을 특징으로 하는 한 시기를 거친다. 이 무력한 상태에서 정의와 진실에 대한 감각 같은 특성이 발달하여, 그것이 인간 공유의 잠재력이 되는 듯하다.p.295
존 듀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싸움터는 이곳,우리 자신과 우리 제도의 내부에도 존재한다."p.22
외적 권위로부터 부여받은 자유는 우리의 내적 심리가 자신의 개성을 확립할 수 있는 상태인 경우에만 지속적인 성과가 된다.p.248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르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