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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마음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16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평점 :
누군가의 자가용 아래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던 어린 토끼를 구조한 일이 있다. 인근에 위치한 산에서 몇년째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던 토끼 부부의 새끼일 가능성이 높아 보여 산에 둬야 할지 집으로 데려다 보호할지 고민했었다. 결국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고 이것은 나의 어리석은 결정 중 하나가 되었다. 식성 좋은 녀석은 엄청나게 먹었고 엄청나게 쌌다. 가여운 마음에 먹이고 치우고 닦이는 것은 힘들어도 힘들지 않았다. 아픈 노견을 키우던 중이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처음에는 왠지 자신감이 솟아났다. 산책길에 토끼부부를 만나면 이 아이를 데려다 줘야겠다 생각도 했지만 하필인지 운명인지 녀석들은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지쳤다. 생명을 키우는데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나의 지침은 내게도 당황스러웠다. 다른 일과도 엉망이 되고 잠도 제대로 못자다 동물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에서 데려가면 한동안 해당 웹 사이트에 사진이 올라가고 입양자를 기다린다.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안락사를 시킨다는 설명에 나는 멘붕이 왔고 주변에 키울만한 사람들을 찾아봤고 다시 데려올까도 고민했다.
결국 입양은 실패했고 협회에선 마지막으로 내게 다시 전화를 했다. 죄를 고백하는 죄인처럼 "저는 못 키울 것 같아요."라고 힘겹게 말을 꺼냈는데 담당자의 '피식~'하는 비웃음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한동안 멍했던 것 같다. 그 비웃음에는 '그래 너 같은 인간들 한 둘 아니다. 기대 안했다. 너도 똑같아. 책임지지 못하는 인간들.'이란 의미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그 어린 토끼가 가여워 눈물이 난다. 막판에 누군가 키워줄 사람이 기적처럼 나타나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나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듯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 연민의 결과는 비참했다.
<초조한 마음>을 읽으며 그 때 일이 바로 어제처럼 떠올랐다.츠바이크는 안톤 호프밀러와 의사 콘도어를 통해 두 가지 형태의 연민을 그려낸다. 상반된 마음가짐에서 발화한 동요가 어떤 결과를 몰고 오는 지 작가가 할수 있는 소설로의 충고를 완성한 것이다.
<P.191> 내 생각에는 그것은 시인이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대신 남이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철학자가 알려지지 않은 것, 알려질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대신에 이미 오래전에 깨달은 것을 아흔아홉번째로 다시 탐구하는 것과 같은 거죠.
<P.235> 연민이라는 것은 양날을 가졌답니다. 연민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손을 떼고, 특히 마음을 떼야 합니다. 연민은 모르핀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치료도 되지만 그 양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거나 제때 중단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중략...언젠가는 '안돼'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 마련입니다. 그 거절 때문에 환자가 처음부터 도와주지 않은 사람보다도 자신을 더 증오하게 될지라도 그렇게 말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그래요, 소위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연민은 무관심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 의사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잇고, 판사나 법 집행관, 전당포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P.240> 나는 의사로서 끈기 있는 체스 선수가 되어야지 도박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일이 있고 몇 달 뒤 거짓말처럼 산책길에서 빈번하게 토끼 부부를 마주쳤다. 그 때 내 기분은 피해자 부모를 마주한 범죄자에 가까웠다. 내 눈에 그들은 그 아기 토끼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들을 마주칠 때 마다 내 미숙함이 밝은 곳에 보란듯이 노출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 내 모습을 돌아보면 낯설게 느껴진다.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는 것은 마치 다른 사람의 모습을 내가 볼 수 있는 것처럼 객관적인 형태를 띤다.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좋은 의도를 가진 거라면 어떤 형식이든 감정의 고삐를 푸는 것이 용납되어야 할까? 호프밀러의 미숙함은 안나의 연인 브론스키나 까라마조프가의 미챠를 떠오르게도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만나는 이런저런 인물들은 나 자신의 문제점들을 아프게 드러내며 질문한다. <초조한 마음>의 캐릭터들과 그들의 경험, 직업도 상징적인 질문을 향해 가는 열쇠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였다. 츠바이크는 연민의 정의로부터 독자를 점점 몰아세워 인류가 짊어져야 할 하나의 연민, 하나의 질문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