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때 내가 느끼는 건 연민이다.
연민은 내 방식의 사랑이다. 내 방식의 증오이고 소통이다. 어떤 사람은 욕망으로 살고 또 어떤 사람은 두려움으로 살아가듯, 세상 속의 나를 지탱해 주는 건 연민이다.  - P28

그녀는 어릴적의 욕망 - 힘 - 기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공식은 연거푸 되풀이되었다. 어떤 걸 소유하지 않고 느끼기.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가볍고 순수한, 공복의 상태를 유지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건 마치 날아다니면서, 그러니까 발아래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로 지극히 소중한 것을, 이를테면 한 아이를 품에 받아드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그게임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자신이 누워 있다는 것조차느끼지 못했다ㅡ그럴 때면 자신이 자신의 모든 생각들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두려워졌다. 그녀는 바다를 원했고 침대 시트를 느꼈다. 하루가 흘러가고 그녀는 홀로 뒤에 남겨졌다. - P29

그녀는 멍하니 누군가를 떠올렸고ㅡ틈새가 벌어진 커다란 치아와 속눈썹 없는 눈ㅡ
자신의 독창성을 확신하던 그 누군가는 진지한 어조로이렇게 말했었다. 내 삶은 엄청난 야행성이야. 그는 그말을 마치고는 거기 그냥 한밤중의 소처럼 조용히 앉아 있곤 했다. 그는 가끔씩 아무런 논리도, 목적도 없이머리를 까딱이다가 다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는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아, 그래, 그남자는 그녀의 어릴 적 기억 속에 있었고, 그와 함께 떠오르는 건촉촉이 젖은 제비꽃 무리, 지천으로 피어 떨리던…………. - P30

그건 아주 작은 열기였다. 만일 죄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죄를 지었다. 그녀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과오였으며, 그녀는 헛된 존재였다. 그 목소리를 가진 여자는 어디 있었을까? 그저 성별이 여자일 뿐이었던 여자들은 어디 있었을까? 그리고 그녀가 어렸을 때 시작한것들은 무엇을 통해 지속돼왔을까? 아주 작은 열기를통해서. 그 지난 날들이 맺은 결과들은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똑같은 대상을 거부했다가 사랑하기를 천 번쯤반복했다. 어둠과 정적 속에서 보낸 그 밤들, 높은 곳에서 반짝이던 작은 별들. 그녀는 주의 깊은 시선을 머금은 채 어스름 속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흐릿한 흰 침대가 어둠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피로가 그녀의 몸으로 스르르 기어들고, 맑은 정신은 그 문어를 피해 달아났다. 너덜너덜한 꿈들, 환상들의 시작, 오타비우는 다른 침실에서 살고 있었다. 기다림이 가져다주던 나른함은 갑자기 응축되면서 빠르고 초조한 몸동작으로, 침묵의 외침으로 변했다. 그 다음엔 추위가, 그리고 잠이. - P31

어떤 것들에게 소유당하지 않고 그것들을 가질 방법이 있을까? - P45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았고, 그 모든 순간들이 어떤 고난, 혹은고통스러운 경험의 정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순간들에 감사해야 했다. 마치 자신의 바깥으로 벗어난 것처럼, 초연한 태도로 시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 P47

눈을 반쯤 떴다. 저 아래에 바다가, 양철의 물결처럼 반짝거리며, 깊고, 거대하고, 고요한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짙은 바다는 끊임없이 일렁이며 제 몸을 휘감았다. 바다는 고요한 모래밭 너머에, 사지를 뻗고 누워있었다…………. 살아 있는 몸처럼 누워 있었다. 잔물결 너머에 바다가 있었다-바다. 바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조용히 말했다. - P55

음악의 특정한 순간들, 음악은 생각과 같은 범주에 속해서, 이 둘의 진동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음악은 생각처럼 몹시 내밀해서, 그것은 들려올 때에야 비로소 스스로를 드러냈다. 그것은 생각처럼 몹시 내밀해서, 누군가가 그 소리가 지닌 약간의 뉘앙스라도 흉내 내면, 주아나는 어느새 그 음악이 침범당하고 흩어진 느낌을 받고는 놀라곤했다.  - P65

그녀는 희미하게 깨달았다.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더 자유로워지고, 모든 것들에게 더 많은 화가 났으며,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분노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너무도 강력한 사랑이어서 그 열정은 증오의 힘으로밖에 억제되지 않았다. 이제 난 혼자있는 독사야. 그녀는 선생님과의 관계가 진짜로 끝났음을, 그런 대화를 나눈 뒤에 그를 다시 찾아갈 수는 없음을 상기했다 - P94

꿈들은 나를 무의식의 늪에 빠뜨리는 현실보다 더 완전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뭘까?
사는 것? 아니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아는 것? 몹시도 순수한 말들, 작은 크리스털 방울들. 나는 촉촉이 반짝이는 형상이 내 안에서 뒹구는 것을 느낀다.  - P107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고갈된 걸 알았고, 처음으로 고통받았다. 자신이 진짜 둘로 쪼개졌기 때문이었다. 쪼개진 두 부분은 서로를 마주했고, 그녀를 응시했으며, 쪼개져나간 상대가 더 이상 줄 수 없는 것들을 소망했다. 사실 그녀는 늘 둘이었다. 그녀가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이 아는 하나와, 실제로 심오하게 존재하는 하나. 단지 그때까지는 그 둘이함께 작용하면서 구분할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이제그녀의 존재를 인식하는 한쪽이 단독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니, 그건 그 여자가 불행하고 지적인 사람이라는뜻이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지어내려고 생각을 해보려고,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소용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사는 법밖에 몰랐다. - P120

그녀는 삶 혹은 죽음이라는 본질을 위해 태어났으니, 그 사이의 모든 것들은 그녀에게 고통이었다.  - P121

무엇보다도, 그 여자는 삶을 이해한다. 삶을이해하지 못할 만큼 지적이지 못하니까. 논리적 사고가 무슨 소용인가…………. 설령 도중에 미쳐 버리지 않고삶을 이해하게 된다 해도 그 앎을 지식으로 보존하기란불가능하다. 삶을 완전하게 소유하고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앎을 하나의 태도, 삶의 태도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그 목소리를 가진 여자의 토대를이루는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게너무 적었다 - P122

그녀를 이토록 불타게 하는 건 무엇일까? 권태…
그래,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에는불이 있었다. 그 불은 심지어 그것이 죽음을 뜻할 때에도 거기 있었다. 어쩌면 이게 삶의 기쁨인지도 몰랐다. - P127

그녀는 다시 작게 되뇌었다. 그녀는 기도가 자신을 구해 줄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기도하고 싶지 않았다. 고통을 무디게 만드는 모르핀 같은 구제책 모르핀처럼 효과를 보려면 계속 복용량을 늘려야 하는 구제책. 아니,
그녀는 고통을 발견하고, 견디고, 그 안에 있는 신비를다 파헤칠 수 있도록 완전히 소유하기를 원했지, 비겁하게 기도를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그 정도로 완전히 지치진 않았다.  - P128

자기 바깥에 있는 신을 찾지 않으면 결국 자연스러운 경로에 따라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자신의 고통을 탐색하고, 자신의 과거를 사랑하고, 자기가 떠올린 생각들 속에서 피난처와 따스함을 찾게 될 터였다.
예술 작품이 되기를 열망하며 태어났지만 결국 흉작기의 반쯤 상한 음식 노릇을 하게 되는 생각들 속에서 아니면 아예 고통 속에 자리를 잡고 그 속에서 자신을 체계화할 위험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악이요 신경 안정제가 될 터였다. - P129

"그래, 난 알아" 주아나가 말을 이었다. "감정과 말의 분리. 이미 그 점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어. 가장신기한 일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이 오면 내가느끼는 걸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느꼈던 게서서히 내가 말하는 걸로 변해 간다는 거야. 아니면 최소한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 나를 행동하게 만드는건 내 느낌이 아니라 내 말들이라고. 그건 정말 확실하다고." - P151

그녀는 너무도 육체적이었으므로 순수한 정신이될 수 있었다. 그녀는 형태 없는 상태가 되어 사건들과시간들의 틈바구니를 순간의 가벼움으로 빠져나갔다.
- P154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고, 그녀는 자신을 더발견하기를 갈망했다. 이제 그녀는 강하게 자신을 불렀으며, 숨 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행복이그녀를 지우고, 또 지웠다………. 벌써 자신을 다시 느끼고픈 마음이 들었다. 설령 고통이 함께 하더라도. 하지만 그녀는 깊이, 더 깊이 가라앉기만 했다.  - P159

단 한 가지 익숙해지지 않은 건 잠뿐이었다. 잠은하나의 모험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생활이 머물던 편안한 명확성으로부터 어둠을 가로지르며 추락하는 일이었다. 매일 밤, 늘 똑같은, 어둡고 서늘한 신비 속으로 죽었다가 새로 태어나는. - P159

난 그를 떠날 거야, 그녀는 다시 되뇌었고, 이번엔 그 생각에서 가느다란 실들이 뻗어 나와 그녀에게 연결되었다. 이제부터 그 생각은 그녀 안에 머물 거였고, 그 실들은 점점 더 두꺼워져서 뿌리를 형성할 터였다. - P177

"그래서 고통을 겪은 시인들의 시는 달콤하고 다정하죠. 반대로 불우한 삶을 산 적이 없는 시인들의시는 고통으로 불타오르고, 저항적이죠." - P181

그, 이 남자 숨겨진 원천에서솟구친 불안감이 그녀의 온몸으로 밀려들었고, 모든세포들을 채웠고, 그녀의 비참한 고독을 침대 아래로밀어내 버렸다. 세상에, 세상에, 그 후, 그녀는 고통스러운 산고를 치르며, 숨을 헐떡거리며, 굴복의 부드러운 기름이 온몸에 부어지는 걸 느꼈다. 마침내, 마침내그는 그녀의 것이었다. - P213

나는 고통이 오케스트라가 내지르는 비명처럼 터져 오를까 봐 늘 두려워해 왔었다. 내가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아는 타인은 아무도 없다. - P246

"그건 천사의 눈물같은거야. 천사의눈물이 뭔지알아? 작은 수선화의 한 종류인데 아주 약한 바람에도 이리저리 굽지. 랄랑드는 밤바다이기도 해.
아직 아무도 해변을 보지 않았을 때의 바다, 아직해가 떠오르기 전의 바다. 내가 ‘랄랑드‘라고 말할때마다 당신은 시원하고 짭짤한 바닷바람을 느끼고, 아직 어둠에 싸인 해변을 천천히, 벌거벗고서걸어야만 해. 그러면 곧 랄랑드를 느낄 거야………….
내 말을 믿어. 나는 바다를 아주 잘 아는 사람들 중하나니까." - P271

그녀는 말할 때, 미친 듯이, 미친 듯이지어냈다! 텅 빈 공간만큼 거대한 충만함이 그를 가득채웠고, 그의 고통은 수면 위에 펼쳐진 드넓은 공간처럼 선명해졌다. 왜 그는 늘 그녀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달빛에 잠긴 하얀 벽처럼 망연해지는 걸까? 아니면, 어쩌면 그는 갑자기 깨어나서는 소리칠 수도 있었다. 이여자는 누구지? 이 여자는 내 삶에서 버거운 존재야!
난 도저히………… 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그는 갑자기 겁에 질렸고, 길을 잃은 기분을 느꼈다. - P272

그녀는 자신에게 저주였던 그 이상한 자유, 그녀를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연결시켜 준 적이 없었던 그자유야말로 자신의 본질을 밝혀 주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영광의 순간들이 거기에서 나오고, 미래의 모든 순간들 역시 거기에서 창조된다는것도 알아차렸다. - P316

프로푼디스….....자신의 말을 들어!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가볍게 춤추는 저 덧없는 기회를 잡아. 데 프로푼디스, 의식의 문을 닫아. 처음엔 썩은 물을, 어지러운 말들을 지각하지만, 그다음엔 그 혼란 속에서 순수한 물줄기가 거친 벽을 타고 떨리며 흐른다. 데프로푼디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첫 물결이 다시 밀려들게해 데 프로푼디스…………. 그녀는 눈을 감았지만, 어렴풋한 그늘만 보일 뿐이었다. 생각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희미하고 붉은 윤곽을 지닌 가늘고 움직임 없는형상이 보였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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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2-23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밤중의 소처럼 조용히 앉아 있다....
이 부분 맘에 드는데요?

문체가 좀 읽기 힘들거 같긴 한데 궁금한 책이에요 :)

청아 2023-02-23 14:29   좋아요 1 | URL
응?ㅋㅋㅋㅋ수하님 은근 재밌으심요~♡ 다 읽었는데 밑줄 친 부분만 다시 보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난해한데도 불구하고 이런 문장들이 한번씩 나와서 이틀만에 읽었어요🤭

건수하 2023-02-23 14:31   좋아요 1 | URL
그녀는 바다를 원했고 침대 시트를 느꼈다…

이런 문장도 재밌네요. 역시 읽기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

청아 2023-02-23 14:3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시적인 분위기예요 전반적으로 독특해서 추천하기는 그렇지만 저는 리스펙토르의 책 다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요^^*

2023-02-23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3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3-02-23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 작년 가을에 나오자마자
샀는데 여적 안 읽고 있어서
오늘 가방에 넣어서 개지구
왔는데... 반갑네요.

청아 2023-02-23 16:54   좋아요 2 | URL
아아 매냐님 지금 갖고 계시군요! 개성 있는 작품인데 독후감을 쓰기 힘드네요. 지난 25일에 또 한권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

페크pek0501 2023-02-24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것들에게 소유당하지 않고 그것들을 가질 방법이 있을까? - P45
: 없을 것 같습니다. 공짜는 없는 법. 대가는 치르게 되어 있는 법...이라고 봅니다.

청아 2023-02-24 14:52   좋아요 2 | URL
네! 소유하는 동시에 소유당함을 다시 확인하네요.
이런 말 꽂힙니다. 되도록 덜 소유하기에 관심이 가는건 소유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인것 같네요.
 

나, 일찍 일어나는 사람
많이 걷는 사람 아니던가?

나, 경이에 젖어 걸음 멈추고
푸른 여명 속
지붕들과 나무 꼭대기들 위
완벽한 샛별 바라보지 않았던가?

나무들 위를 지나는 건 그저 바람,
누구에게나 주어진 흔한 것일 뿐인데
바람이 아니라 물살인 듯 흔들리는 나무들,
나, 그 나무들의 떨림 보고 있지 않은가? - P33

소박한 집 위에도 궁전 위에도 같은 어둠이 있어.
악한 사람 위에도 
정의로운 사람 위에도 같은 별들이 있어.
회복될 아이 위에도 회복되지 못할 아이 위에도,
같은 에너지가 흘러,
비극에서 비극으로 어리석음에서 어리석음으로 - P35

그리고 또 하나의 진실ㅡ
가느다란 목구멍으로 피리소리 내는 이 금빛 새를 설령 내가 진화, 파충류, 캄브리아기 바다, 몸의 변화 욕구, 몸의 경이로운 기술들과 노력들, 무수한 생물들, 승자들과 패자들이라는맥락에서 생각한다 하여도 그 본연의 의미, 그 무한한 사랑스러움은 조금도 놓치지 않으리란 것. 내가 가진 재주는ㅡ 세밀한 지식과 완전히 봉인된 불가해한신비를 동시에 고려할 줄 아는 것이니까. - P63

다시 말해, 언어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다. 만일 언어가 필수적이었다면 단순함을 유지했을 것이며, 늘 존재하는 사랑스러움과 최고조에 달하는 모호함으로 우리를 동요시키지 않았을것이다. 그 길고 흰 뼈 위에서 노래로 변신할 꿈을꾸지 않았을 것이다. - P65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감미로운 피리 존 클레어,
부러진 나뭇가지 에디 휘트먼,
전기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른 크리스토퍼 스마트자살한 나의 삼촌,
강으로 가는 버지니아 울프,
구슬픈 노래 짓는 후고 볼프,
더블린의 짙은 어둠 조너선 스위프트,
다리 위로 올라가, 라인강에 뛰어드는 로베르트 슈만,
존 러스킨, 윌리엄 쿠퍼,
볼티모어와 리치먼드의 음울한 정신병원을 배회하는에드거 앨런 포—

세상의 빛, 나를 품어주오. - P83

넌 젊어. 그래서 모르는 게 없지. 넌 배로 뛰어들어노를 젓기 시작하지. 하지만 내 말을 들어봐.
팡파르도, 곤혹스러움도, 그 어떤 의심도 없이너의 영혼에 직접 말할 테니, 내 말을 들어봐.
물에서 노를 거두어 너의 두 팔을, 마음을, 너의미약한 지성을 쉬게 하고, 내 말을 들어봐. 사랑없는 삶도 있어. 그런 삶은 찌그러진 동전, 닳아빠진 신발만큼의 가치도 없지. 아흐레나 땅에 묻지 않은 개 사체만큼의 가치도 없지. 1마일쯤 떨어진,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이 날카로운 바위를 둘러싸고 안달하며 소용돌이치고요동치기 시작하는 소리 들리면—그 분명한 포효가 들리면 입술에 물안개가 느껴지고 높은절벽을 수증기 내뿜으며 떨어지는 긴 폭포를 예감할 수 있다면 그럼 그곳을 향해 필사적으로노를 저어, 저어. - P155

나의 살과 뼈로 지어진 오두막에 사는 마음 한조각 노래하기 시작했지, 만일 태양이 노래할 수있었다면 그렇게 노래했겠지, 빛이 입과 혀를 가졌다면, 하늘이 목구멍을 가졌다면, 신이 그저하나의 관념이 아니라 어깨와 등뼈라면, 모든 곳에서 모여든, 심지어 불타오르는 머나먼 행성들에서도, 나는 어디 있는가? 지금 거친 말들이 엉겅퀴처럼 빠르게 내게로 와 누가 너의 폭군의몸, 갈망, 탐구, 즐거움을 만들었을까? 오, 호랑이여, 오, 힘든 일이여, 오, 불타는 나무여! 나에게서 떨어져 가까이 와. - P157

친구를 만나러 피사에 갔지. 친구를 만나 화창한 오후를 함께 보냈지. 나는 이 시인을 사랑하고, 그건 여기서든 저기서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내 마음속 정원과도 같지. 그러니 내 사랑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
그래서 난 그 7월 오후 피사에서의 그를 생각해. 그의 친구 헌트가 영국 친구들에 대해 뼈 있는 농담을 하자 그는 웃기 시작했지. 도저히 웃음을 주체할수 없었지. 호리호리한 몸이 흔들리고 긴 다리가 몸을 지탱하지 못해 건물에 기대야만 했지. 그래서 그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석조 건물에 기대어 있었지 어리석음에 가득 차서돌벽을 붙잡고 요란하게 포복절도하며 자신의 몸을움켜쥐었지. 그 농담, 다정함, 지성, 작디작은 금빛꽃처럼 햇살 그 자체처럼 떨어져 내리는 눈부신 행복에 온몸이 산산이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지. 헌트의 경쾌한 목소리, 피사에서 친구와 함께 보내는 단순한 오후. - P167

걸쇠에 손대지 않고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앞길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주목하며 한 걸음 한 걸음내딛지 않고먼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외벽의 돌에 감탄하거나 반하지 않고 안쪽 방을 볼 사람이어디 있을까?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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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2-24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보라색 바탕 위에 흰 글자. 예쁩니다...
뽑아 주신 문장들, 좋네요.

청아 2023-02-24 14:50   좋아요 1 | URL
흰 바탕에 구성이 뭔가 딱딱해 보여서
분위기를 바꿔봤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고립된 섬에 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감이란 언제나 '함께 살아감(living -with)'이다. 성찰하는 것이란 나의 삶만이 아니라 타자들, 그리고 우리가 몸담은 사회와 세계에 대하여 성찰해야 함을 의미한다. ㅡ질문빈곤사회, 강남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다 말았었는데 <질문 빈곤 사회>의 프롤로그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여러 사상가들에게 아직까지도 학문의 초석으로 여겨지는 그리스 철학. 그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는 누구보다 질문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그로 인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는데 '질문'의 관점에서 보니 이건 상징적 사건인 듯 보인다.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이 그로인해 질문한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또 위험하다는 상징 말이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다는 소크라테스도 그로 인해 죽음을 당했는데 일반인들에게 질문이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하지만 질문은 사유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사유는 그런 의미에서 무지의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하는 뼈대가 아닐까.



한나 아렌트는 '악(evil)'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아렌트에 의하면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다. (...) 소위 '선량한 사람'이 비판적 사유를 하지 않을 때, 왜곡된 정치적 이데올로기 또는 왜곡된 종교적 가치에 의해 '선동'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인류에 대한 범죄'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늘 상기해야 하는 중요한 점이다. ㅡ 질문빈곤사회



'질문하기'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인식 세계를 넓힘은 물론 타자와 세계를 보는 시각 또한 확장했다. 그 결과 다양한 의미의 '포용의 원(circle of inclusion)'을 확대 할 수 있었고 이는 질문하기를 통한 중요한 정신 세계의 발전이다. 이러한 발전은 사회정치적이고 제도적인 발전과 맞닿아 있다. (...) 노예제도의 폐지, 인종에 대한 제도적 차별의 폐지, 여성에 대한 제도적 성차별의 인식과 개선, 성소수자 차별을 넘어서는 제도적 평등의 모색 등 다차원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새로운 질문을 묻기 시작하는 이들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ㅡp.8



한국은 가정교육은 물론 공교육에서도 질문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다. 주입식 교육방식 그리고 그에 따른 입시제도는 질문을 봉쇄하는 문화를 지속시키고 강화한다. 더 나아가서 가족, 친척, 직장, 군대 등 도처에서 작동되는 '장유유서'의 변형된 관계관과 가치관은 가정, 학교, 직장은 물론 사람 간의 위계주의적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p.9





독서라는게 만능은 아니지만 책을 읽기 전에는 제대로 된 질문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질문은 특정한 사람들, 뭔가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거라는 의식이 내 안에 있었고, 동시에 위압감 같은 것이 보이지 않지만 공기중에 떠 있다고 느꼈다. 지금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제기를 하는 것, 어떤 것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글로 써 내는 것은 아직도 용기가 필요하다. 숨겨두었던 것을 사람들 앞에 전시하는 셈이니까. 비판받을 것을 어느정도는 감수해야 하고 이해받지 못함이나 오독도 감안해야 한다.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같다. 어떤 식으로든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많은 면에서 여성들은 그런 두려움이 더 강한것 같다. 감추는 것에 더 익숙하고 능숙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해야 하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침묵은 때로 외부의 힘에 굴복을 의미하니까.





질문의 가능성은 위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프고 경직된 사회일수록 그렇다.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자기 기준 밖의 질문에 예민하다. 그들에게 '질문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그 경계에서 벗어난, 즉 권위가 없는 이들의 질문은 '도전'이고 그 자체로 '문제'시 된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서 우리의 세계는 확장될 수 있다. 사람들이 인지하는 세계는 '전부'가 아니니까. 인간은 볼 수 있는 것들만을 겨우 보고 인지한다고 하지 않나. 품고 있는 질문들이 밖으로 나와 모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어디에서, 어디에서 당신의 영혼은 무너지나요? p .265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글쓰기에 관해 내가 들은 견해 중 가장 무용했던 말은 글을 쓸 때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의 목소리가 작동할 준비가 된 자동 피아노처럼 우리 내면에 숨어 있다는 듯이. 개성과 마찬가지로, 목소리의 존재야말로 세계와 나의 상호작용에 달린 것인데. p.23 . 세라 망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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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23-02-18 2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저에게도 의미 있는 글인데요. 살면서 3번 정도 독서 모임에서 토론 책으로 집중해서 읽었음에도 머릿속에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이건 마찬가지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도 그러한데요. 역시 독서인들은 삶에서 책 내용을 그대로 자주 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이네요.... ㅜㅜ.

청아 2023-02-18 21:06   좋아요 2 | URL
저도 점점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재독할때 새로운 책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요ㅎㅎㅎ
베터님 3번이나 읽어보셨다니 조만간 나머지 부분 다시 도전해야겠어요! <사랑의 기술>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읽고 에리히 프롬에게 반해서 사두었습니다. 미드나 영화에서 기억력이 뛰어나 한 번 읽은 책 페이지까지 기억하는 천재들 보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해요,^^*

페넬로페 2023-02-19 00: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있는데 칼날같은 문장이 많더라고요~~
한국의 현실이 잘 정리되어 있어 좋았어요^^

청아 2023-02-19 09:36   좋아요 3 | URL
오~♡ 페넬로페님도 읽고 계시군요! 네~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어 시원시원 합니다^^*

은오 2023-02-19 14: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매주 질문 5개씩 만들어오는게 과제였던 교수님 수업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게 정말 괴로웠어요..... 진짜 다른 어떤 과제보다도 더 공부하게 만드는 과제 ㅠㅠ 열심히 읽고 생각해야 질문도 생기게 마련이니.... 대충 읽으면 또 그냥 책 내용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질문 있는 학생? 했을때 아무도 대답이 없는건 빨리 수업을 마치고 싶어서도 있지만 공부를 안해서 궁금한 것도 안생겼기 때문입니다 교수님.... 결론: 읽고 머리에 든 게 있어야 질문도 생긴다! 생각하며 읽기 -> 질문 -> 깊은 사유!

청아 2023-02-19 15:46   좋아요 2 | URL
헉...5개씩이라면 적지 않은데요! 과제라면 질적으로도 적절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고통이었을것 같아요. 그래도 덕분에 지금의 은오님이 되신 것 아닐까요? 그 과제가 물론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은오님 나름의 방식으로 읽고 또 생각해서 써 올리신 글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때가 많았거든요. 저에겐 어려운 점인데 내 관점을 가지며 읽고 쓰기로 발전하고 싶어요^^*

새파랑 2023-02-19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질문도


뭔가 알아야 할 수 있더라구요 ㅋ 전 무식(?)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일단 잘모르면 가만히 있습니다 ㅎㅎ

아는게 힘인거 같습니다~!!

청아 2023-02-19 18:1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그렇죠!!
새파랑님 은근히 핵심을 찌르십니다.^^*



난티나무 2023-02-19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저 책 저 어제 샀어요!!^^

청아 2023-02-19 18:22   좋아요 0 | URL
난해한 편인데 해체적 글쓰기라고 할까요? 리스펙토르만의 색깔을 경험하실 수 있으실거예요.^^*
난티나무님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난티나무 2023-02-19 18:33   좋아요 1 | URL
<달걀과 닭> 읽고 있거든요.^^ 두어 개 읽고 바로 주문! ㅋㅋㅋ 그런데 종이책이라 언제 받을지는 몰라요.🙄

청아 2023-02-19 18:56   좋아요 0 | URL
두어 개 읽고 바로 주문하셨다니 난티나무님 너무 멋집니다~♡ 이 난해함을 이해하셨다는 의미니까요!!
<달걀과 닭>이 급 궁금해지는걸요?^^* 저에게는 <G.H.에 따른 수난>이 있는데요. 부분적으로 읽어봤는데
이 책에도 인상적인 문장들이 있어요!

jtkk9004 2023-02-25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BG
 
자유를 찾은 혀 - 어느 청춘의 이야기 대산세계문학총서 180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김진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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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독일어 책을 항상 내게서 멀리 잡고 있었다. "너는 책이 필요 없어." 어머니가 말했다. "어차피 봐도 넌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런 이유를 대도 나는 무슨 비밀이라도 되는 양 내게 책을 숨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는 내게 독일어 문장을 하나 읽어주고 그 문장을 반복하게 했다. 내 발음이 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듣기에 괜찮다 싶을 때까지 나는 그 문장을 여러번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그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내 발음 때문에 나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절대로 참을 수 없는 게 어머니의 조롱이었기에 나는 노력했고, 그래서 곧 제대로 발음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 어머니는 먼저 내게 그 문장이 영어로 무슨 뜻인지 말해줬다 그러나 뜻 설명은 절대로 다시 해주지 않았다. 문장의 의미를 나는 단번에 기억해야 했다. 그런 뒤에 어머니는 매우 빨리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p.137




<군중과 권력>으로 잘 알려진 카네티의 자서전 시리즈 중 1권이다. 두 살 때부터 16세 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자서전이라기 보다 성장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시작부터 분위기가 위태롭다. 15살 정도의 어린 보모의 품에 안겨 있던 두 살배기 카네티는 아마 보모의 애인이었을 듯한 남자로 부터 혀를 자르겠다는 위협을 받는다. 어린 마음에 꽤나 두려웠을 그는 이후에도 10년간 이 일을 발설하지 않는다. 그의 혀는 시작부터 그렇게 위협 받았지만 가슴은 언어에 사로잡힌다. 불가리아에 사는 스페인계 유대인 사업가의 장남이라는 조건 때문에 스페인어는 물론 불가리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접할 수 있었던 것.  




영국에서의 삶을 원했던 카네티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결국 가업을 잇지 않고 가족을 데리고 영국으로 떠나겠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저주를 내린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대인 사회에서 아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경우는 아주 아주 드문 사례. 그 저주 때문인지 영국 생활 1년만에 어린 카네티의 아버지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그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유산으로 남긴채로. 본래 연극배우를 꿈꾸던 아버지는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와 빈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은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도 둘만의 언어인 독일어로 사랑을 속삭이며 그들만의 추억을 공유했다. 아들에게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제는 크나큰 상실이었지만 독일어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고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사랑의 언어인 독일어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을까 어머니는 카네티에게 한 달간 혹독하게 독일어를 교육을 시킨다. 빈에 있는 학교에 들여보내기 전 자기가 직접 언어를 가르친거다. 아들에게 쉬운 학습 도구인 책 조차 넘겨주지 않고 말이다. 그녀는 '언어는 구술로 익혀야 하며 그 언어에 대해 뭔가를 알고 난 후에야 비로소 책이 무해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p.139 그렇게 어린 카네티에게 고된 한 달이 지난 후 문제집이 주어진다. 이제 그는 마음껏 독일어를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그는 평생을 독일어로만 책을 썼다고 한다. 나는 범생이의 학창시절을 낯설고도 부러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다양한 언어에 친숙했던 가정환경, 독일어로 사랑을 나누었던 부모님. 이런 자극이라면 외국어에 대해 자연스럽게 친밀감과 동경 비슷한 마음을 갖을 수 있었겠지? 누군가에게 뭔가를 하고 싶게 하려면 그걸 즐기는 모습을 보게 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 책이 그 드라마틱한 모범 사례였다. 20세기 전쟁과 인종주의로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서 언어와 문학에 심취했던 한 소년의 삶을 지루할 틈 없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머지 시리즈도 출간되는대로 읽어보고 싶다.




이 시절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중요하고 흥분되며 특별했던 것은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었던 저녁 시간과 매번 읽은 내용을 가지고 나눈 대화였다.(...) 내가 결코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인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이 시절부터, 그러니까 열 살 때부터 내 신조가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끌리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는 데에는 이 시절 접한 인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인물들은 어린 시절의 내게 소금과 빵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본질적인 것, 즉 내 은밀한 정신적 삶이었다.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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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2-16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카네티 책이 새로 번역되었군요 제가 전에 읽던 어떤 책에 카네티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기회 되면 페이퍼로 올리겠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청아 2023-02-16 15:17   좋아요 4 | URL
<군중과 권력>읽어보고 싶은데 두꺼워서 걱정입니다.ㅎㅎ어떤 일화일지 궁금해요^^*

2023-02-16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6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3-02-16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제 모습과 태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네요… ^^;;;;;

청아 2023-02-16 19:33   좋아요 1 | URL
난티나무님 함께 책 읽어주는 엄마~^^♡

바람돌이 2023-02-16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말이죠. 뭔가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을 만들어내려면 부모가 좀 이상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뭐 그런 생각이 막 들어요. 왜 훌륭한 작가 중에는 평범한 가정에서 그냥 평범하게 사랑받고 자란 그런 인물이 이토록 드문 것일까요? 결핍이 부족해서인가? ^^;;

청아 2023-02-16 23:02   좋아요 2 | URL
오! 그러네요. 아니면 평범한 경우의 사례는 너무 평범해서 많이 읽을 것 같지 않아 책으로 출간되지 않는 것 아닐까요? 또는 작가들 말처럼 결핍과 고통이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말이죠. 이것도 토론할만한, 생각해볼만한 주제네요^^*

새파랑 2023-02-17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카네티


첨들어봅니다 ㅋ 카네티의 인생이야기가 소설보다 더 소설같네요 ^^

어린애한테 협박하는 나쁜놈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군요 ㅋ

청아 2023-02-17 14:22   좋아요 3 | URL
저도 이번에 첨 알았어요ㅋ
재밌는 일들이 많이 담겨 있었어요 이후 이야기도 꼭 번역되었음 좋겠어요

유모 누나가 건달을 사귀었던것 같아요ㅋㅋ

잠자냥 2023-02-17 14:35   좋아요 1 | URL
유모 누나 건달의 꼬임에 넘어가서 카네티 혀 짤릴 뻔........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3-02-17 14:44   좋아요 2 | URL
아... 만일 그랬음 전혀 다른 클라스의 자서전이
탄생했겠죠?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2-17 15: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국어도 버벅 거리는 저에게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정말 대단해 보여요.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환경도 부럽고요.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요
그 남자, 정말 무서운 말을 하는군요 ㅠㅠ

청아 2023-02-17 15:38   좋아요 3 | URL
능력치의 관점에서 너무나 다른 세상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문학과 언어에 심취하는 모습을 읽는 재미가 있었어요.*^^* 유대인이라 차별받는 장면들도 좀 있었는데 2~3권에는 그런 장면들이 아마 더 늘어날듯 해요. 자서전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싶었어요~^^♡

베터라이프 2023-02-18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중과 권력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일전에 중고서점에서 발견했던 이 책이 너무 두꺼워서 읽을 엄두가 안나더군요 ㅠㅠ 오르테가 이 가세트와 가브리엘 타르드를 떠올리면 꼭 읽어보고 싶긴한데 마음먹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 아침에 라면 하나 뚝딱하고 누워서 미미님 글에 댓글 남기는 중입니다. ^^ 모쪼록 즐건 주말 되소서~

청아 2023-02-18 11:03   좋아요 2 | URL
<군중과 권력> 베터라이프님도 찜해두셨군요! 언급하신 두 학자도 저는 궁금하네요^^
카네티 자서전을 다 읽은 후에 그의 학업적 자취를 더 찾아보니 <군중과 권력>에 관심이 가더라구요. 타인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다고 느꼈는데
사회문제를 어떻게 분석했을지 기대가 큽니다. 저는 점심으로 너구리를 먹어야겠어요ㅎㅎㅎ유쾌한 주말 되시길요^^*

그레이스 2023-02-18 14: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군중과 권력은 제게 있습니다.
이 책도 장바구니로!

청아 2023-02-18 15:18   좋아요 3 | URL
오! 역시 그레이스님👍
이 책도 <군중과 권력>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엄청나게 과대 평가된 책'을 읽기 전에 누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책들은 스스로 구분하고 알아 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구분 하려면 어느 정도 그런 책도 이런 책도 읽어야하는 딜레마가ㅋ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동은의 적 박연진의 남편(하도영)이 비가 오는 날 운전기사와 함께 집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린 하도영에게 운전기사는 선물로 들어온 고가의 와인을 건낸다. 하도영은 100만원 정도 하는건데 맛이 괜찮을거라고 가져가 마시라고 한다. 운전기사는 자신은 와인맛도 모른다고 이런 비싼 와인 마셔 본 적도 없다며 극구 사양한다. 하도영은 ˝그럼 편의점에 가서 치즈랑 만원짜리 와인 한 병을 구입해요. 그리고 집에가서 그 와인과 이 와인을 마셔봐요. 차이가 느껴질겁니다.˝라고 말한다. 와인 맛 잘 모르는 나는 ‘와! 저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군!‘하고 감탄한다. 그런데 비교할 100만원 짜리 와인은 언제 구한담...


뭐든 그런 것 같다. 비교해 보면 차이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비교해 보려면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많이 경험해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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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2-15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께서 재미도 없고 이해도 잘 안된다 하셔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미미님도 같은 느낌을 받으셨나봅니다. 아직 읽지 않은 저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 생각하시고 마음 푸시기 바라요.

청아 2023-02-15 16:13   좋아요 2 | URL
오 아닙니다ㅋㅋㅋㅋ 이 책은 아주 재밌어서 아껴읽는 중인데요. 그림에 나온 것처럼 고전 중에서도 과대평가된 책들에 대해 잘 구분하고 싶다는 의미로 쓴거예요ㅋㅋ 말씀 듣고보니 제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이게 썼네요. 수정하고 싶은데 지금 밖이라 누명 쓴 책에 별점만 줬습니다 ^^*

DYDADDY 2023-02-15 16:27   좋아요 2 | URL
제가 잘못 이해해서 죄송해요. 읽어야 할 책 리스트의 인디케이터가 몇분 계신데 그중에 다락방님과 미미님이 있습니다. 두 분의 평가가 엇갈린다면 직접 맛을 보는 수 밖에 없겠군요. ㅎㅎㅎㅎ

청아 2023-02-15 18:02   좋아요 2 | URL
대디님이 알려주셔서 바로잡았는걸요! 그림만 보고 짧막하게 한 마디 쓰려다보니
제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헷갈리게 적어놓았어요ㅋㅋㅋㅋ 저 이런 오류 지적해 주시는 거 좋아합니다.
저도 대디님 오늘 올려주신 책 한 권 담았습니다.😆

레삭매냐 2023-02-15 1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
반해서, 낭중에 중고책방에
나오게 되면 사서 쟁여 둘까
싶습니다.

두고두고 볼 만한 책입니다.

청아 2023-02-15 17:53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책에 반했습니다!ㅋㅋㅋ
잊을만 할때(아마 읽자마자 그렇겠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짧막한데도 생각꺼리가
주렁주렁 달리네요^^*

2023-02-15 1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5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2-15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인은 정말 잘 모르겠다는 ㅋ 전 위스키도 비싼거랑 싼거랑 차이를 잘모르겠더라구요, 비싼거 마실때는 그냥 기분만좋은? ㅋ

비교도 경험이 받춰줘야만 되는거같아요~!!

청아 2023-02-15 20:17   좋아요 2 | URL
저는 파리 사람들이 건강하고 날씬한 이유가 와인 때문이라길래 늘 한 두병 집에 있어요. 저도 맛은 모르는ㅋㅋㅋ

경험 많은 사람 존경합니다. 나쁜 경험이라도 그 사람이 그걸로 성장했다면! ^^*

은오 2023-02-15 2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근데 또 남이 좋아하는 책도 저에겐 별로인 경우가 있고, 남이 별로라고 해도 저한테는 좋은 책이 있어서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취미든 많이 경험해야 취향과 선호가 선명해지고, 그렇게 되면 고른 게 실패할 확률도 점점 줄더라고요. 이 과정이 재밌기도 한 것 같아요 ㅋㅋㅋ

청아 2023-02-15 20:44   좋아요 3 | URL
그쵸! 남이 별로인데 저한테 좋은 책은 더더 귀하고요ㅋ
그나저나 은오님 글이 뜸하시네요. 바쁘시더라도 한번씩 올려주세요!!😉

scott 2023-02-15 23:16   좋아요 2 | URL
미미님 말씀에 동감!

은오님 서재, 알라딘 댓글 맛집 인뎅 ʚ(>ᴥ<)ɞ

페넬로페 2023-02-15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통 제가 선호하는 경향의 책을 읽어 매번 감동받아요~~
저는 먹는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가성비를 조금 중요시해요.
그러니 좀 멋이 없어져요 ㅠㅠ

청아 2023-02-15 21:05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이 감동하신 책들은 지금껏 저에게도 다 좋았어요! 가성비 갑은 역시 책이죠~♡
알라디너들이 추천한 책

바람돌이 2023-02-16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장면에서 빵 터졌어요. ^^
우리가 100만원짜리 와인은 못 구해도 좋은 명작, 엄청나게 과대평가된 명작 뭐 다 구할 수 있잖아요. ^^
가난한 내게도 언제든 책은 구할 수 있으니 말이죠. ㅎㅎ
오늘 자료로 필요한 책이 있는데 이게 절판인데다 중고도 하나도 없어서 어쩌지 하다가 도서관 검색햇더니 부산 지역 도서관 중 딱 2군데에 있는거예요. 그 중 가까운 곳에 뛰어가서 책 빌려오면서 뿌듯 뿌듯... ㅎㅎ 100만원짜리 와인보다 좋아요. ^^ 물론 이건 제가 100만원짜리 와인을 안 먹어봐서 하는 소리입니다만....ㅠ.ㅠ

청아 2023-02-16 08:1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말씀에 완전 공감입니다ㅎㅎㅎ 100만원짜리 와인 못마셔도 100만원어치 책을 읽으면 되지요ㅎㅎ
게다가 도서관 이용하면 돈도 들지 않는!! ^^*
필요한 책 찾으셔서 다행입니다~^^♡

난티나무 2023-02-16 0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만한 서점 지기 말 넘 좋아요!!!! ㅋㅋㅋㅋ 딜레마 동감!!!! ㅎㅎㅎ

청아 2023-02-16 08:16   좋아요 0 | URL
완전 팩폭이지요?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