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들에서 학생들의 배경 차이(이전의 학업 성취, 점수, 인정, 사회경제적 지위, 교육적 열망), 학교의 선별성, 명성 , 학급 규모, 교육과정, 투입 자원을 통제하면, 그 결과는 단성 학교나 학급이 질적 측면에서 일관해 우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가변 변수가 통제되면, 대부분의 연구는 남녀 공학과 단성학교 간의 성취도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p.157
나는 여중,여고를 나왔다. 여학교 다닌 사람들은 비슷하겠지만 학교를 다닐 때 여자들끼리 다녀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때로는 또래 남학생들과 어울려 다닐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기도 했다. 체육 활동이 끝나고 교실에서 아웅다웅 서로의 땀 냄새를 방향제 삼아 맡을 때는 '남학생들은 냄새가 더 심하겠지?' 하며 조금 안도했던 것 같다. 남자들은 땀 냄새가 더 고약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으니까. 그것도 사람 나름 일 텐데.. 내가 졸업한 학교는 많은 여학교가 그렇듯 여성의 공부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해외 선교사가 세운 곳이었다.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에는 미국에도 1960~70년대 그런 여학교들이 세워졌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후에 남녀 공학이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성별분리를 시도한 학교들이 있었고 이것으로 법적 공방이 이어졌는데 연구 결과는 애초에 의도한 것과 달랐다. 단성학교의 성취도가 '더 좋다'는 증거는 없었다.
여성학을 통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러한 '분리'가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혼성 프로나 여자들끼리 하는 방송도 종종 볼 수 있지만 남자 연예인들끼리만 출연하는 예능 프로부터 스포츠, 음악 경연 등 남성 위주인 경우가 아직 많다. 이게 다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왜 꼭 성별을 분리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의문없이 방송 관계자들의 인식이 크게 개선되기만 기다리는 한 이런 방식은 오래 계속될 것이다. 이게 자연스러운 걸까?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지하철을 지옥철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다. 그때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는데 학교 가려면, 출근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나도 그곳에 몸을 구겨 넣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성추행을 비롯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고 잠시였지만 여성전용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뉴스에 오르기도 했다. 그 방식도 꼬리칸 하나를 여성전용으로 하자는 거였는데 그 한 칸에 여성들이 다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모로 납득이 잘 되지 않는 급조된 아이디어였다. 결국 흐지부지되었지만 당시에는 답답한 마음에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 지하철에서 남녀를 분리하면 어떻게 될까? 어떤 일들이 생길까?
불행한 아이들, 불행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한국 입시교육의 문제를 지적한 김누리 교수의 말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대학 입시로 인한 경쟁이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 입학 시험에만 합격하면 대학은 어디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갈 수 있음. 유럽 여러 나라가 비슷하다고 함. 일본도 그렇게 바꾸고 있는 추세) 아이들은 자유롭게 파티도 하고 연애도 한다고 한다. 그들도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청소년 시기에는 입시 경쟁이 아니라 마음껏 사랑하고 놀고 누려야 하는 것으로 사회가 합의했기에 가능한 모습이겠지 싶어 부러웠다. 하지만 한국 같은 경쟁 사회에서는 남성과 분리된 여성은 함께 어울리는 대상이라기보다는 능력의 척도로 성공의 트로피로 간주되기도 한다. 공부하는 학생들의 이른바 공부자극 글귀 중에는 '3시간 자면 와이프 얼굴이 바뀐다'는 나름 유명한 말도 있으니까. 아마 여학생들에게도 그런 비슷한 말이 있겠지?
인종을 분리하는 것처럼 남녀 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차별을 강화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남성 대다수인 군대에서 일부인 여군을 향한 계속되는 성폭력이라던지 아프가니스탄에서 히잡, 부르카를 써야 하는 여성들이 그러한 외양적 억압과 마찬가지로 일,교육,일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규제를 받는 것등 누군가를 어떤 장소, 권리로부터 배제하는 것은 때로 보호라는그럴싸한 외양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과연 그게 전부 일까? 곱게 포장된 감옥 일 수도 있고 권력을 수월하게 작동하게 하기 위한 연막일 수 있다. 결국 그 포장지 안에 있는 사람의 자유는 억압되고 존엄을 위협할 수 있다. 본래 목적이 어떤 것이든 그 파장과 악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연구 결과가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의문 없이 수용하기만 했던 체제에 질문할 필요를 느꼈다. 조금 미친 생각일 수도 있고 극단적이지만 남녀 화장실 분리나 목욕탕을 구분하는 것도 오히려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이렇게 남녀를 구분하고 성교육은 현실적 궁금증과는 거리가 꽤 있다 보니 몸에 대해 환상을 갖게 되고 금기를 만들고 숨어서 보게 된 것은 아닐까? 유럽에서 혼성 사우나에 (속옷은 입을 수 있는)간 적 있는데 막상 들어가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남자 유치원 선생님이 이상하지 않은 사회. 스포츠도 인종 구분 없이 하게 되었으니 남녀 같이 할 수 있는 야구나 축구가 가능한 사회를 한 번 상상해본다.
남성만 있는 교육프로그램의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은 그것이 성차별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만의 단결심은 "남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여성에 비해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인종차별주의나 동성애 혐오적 태도를 조장하는 '마초적인 기풍'을 만들어낼 수 있다. 스포츠 팀과 남학생 사교 클럽과 같은, 남성만 있는 다른 집단에 대한 관찰 연구는, 여성이 배제된 과정에서 남성 정체성이 형성되면, 남성성은 여성 혐오와 남성 우월주의로 정의되게 된다고 말한다. 통합되기 전, 시타델의 학생들은 여성들을 종종 "돼지"와 "창녀"로 불렀다. p.157
*독일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3가지중(성,정치,생태) 성교육이 첫번째인 이유는 성교육이 가장 중요한 정치교육이기 때문이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약한 자아라고 말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개념에는 자아,초자아,성충동이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초자아가 성충동을 느끼는 자아를 공격하고 이로인해 자아는 죄책감을 느낀다. 죄책감을 내면화한 자아는 권력앞에 굴종하게된다. 이것이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이다. (...)독일교육은 모든 지식의 배후를 읽어내는 통찰력을 기르는 것을 교육이라고 믿는다.-김누리
사유하고 비판하는 인간-차이나는 클라스(김누리 교수편) ㅡ>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