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초록색 조끼를 입은 세븐일레븐의 사장이 내게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엉겁결에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손에 들린 리더기가 잽싸게 컵라면의 바코드를 읽어낸다. 

"여기 사세요?"

구리색 피부에 살집이 좋다. 나는 컵라면 값 650원과 함께 네, 라는 말을 지불하며 세븐일레븐을 황급히 나온다. 

그런데 그후로 세븐일레븐에 갈 때마다 그 남자는 내가 물건을 사는 족족 말을 걸기 시작한다. 

"학생이세요?"

"네."

"3학년?"

"네."

"여기 K대학?"

"아니오."

"그럼 어느 학교 다녀요?"

나는 대충 학교 이름을 얼버무린다. 그러곤 다음 질문이 설마 '전공이 뭐예요?'는 아니겠지 생각한다. 그가 묻는다. 

"전공이 뭐예요?"

아마 내가 문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그는 자신의 문학관에 대해 열변할 것이고, 미술을 전공한다고 하면 개중 유명한 미술작가를 들먹일 것이며, 이벤트학이나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하면, 또 '그게 뭐 하는 과냐' '언제 생겼냐' '그거 졸업하면 뭐 하게 되냐'등의 질문을 퍼부을 것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는 나를 '안다'라고 말하겠지.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식품공학. 그는 "어유, 그럼 살림 잘하시겠네"라고 농담을 건다. "그럼 언제 졸업....."이라고 남자가 다음 말을 이으려 한다. 그때 만일, 전자레인지가 삐ㅡ 소리를 내지 않았고, 잘 익은 햇반이 내게 무사히 건네지지 않았다면, 그는 내게 '좋아하는 체위는 뭐냐'고까지 물어봤을지 모른다. 내가 세븐일레븐 로고가 새겨진 반투명 비닐봉지를 들고 황급히 나가려 했을 때, 그는 내ㅐ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한 여고생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언니 잘 있어요? 그 시립대 다닌다는....."


나는 그 후로 세븐일레븐에 가지 않는다. -김애란





닉네임을 바꿨다. 내가 닉네임을 바꾸게 될 줄은 몰랐다. 어릴 적 떠나보낸 내 이름과 비슷하다. (고맙게도 엄마가 보내주었다.) 그 이름이 촌스러워서 싫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사정을 알게 된 당시 남자친구가 이름이 뭐길래 그렇게 싫었냐고 집요하게 묻자 "청아"라고 거짓말했다. 당시 이청아 배우가 활동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차라리 '청아'면 낫겠다 생각하고 뱉었다.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뭘 말해야 할까? 너무 오래 고민했다. 결론은 말하고 싶다. 못 견딜 만큼. 그래서 바꿨다. 자유롭게 말하고 싶은데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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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7-10 1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로필 사진땜에 금방 알게 되었는데
전의 이름과 느낌이 완전 달라요 ㅎㅎ
청아~~
일단 목소리가 닮았어요.
달려라, 청아♡♡♡
저는 어릴 적 촌스러운 이름을
그대로 달고 살아요~~

청아 2024-07-10 12:35   좋아요 2 | URL
이름 바꾸고 첫 댓글을 주신 페페님 고맙고 반갑습니다♡♡♡
저보다 촌스럽진 않으실 것 같은데요?^^ 지어주신 할아버지가 저한테 악감정 있으셨나 했는데 엄청 예뻐하셨대요. 그럼 왜그러셨을까요ㅋㅋ 지금은 워낙 흔한 이름이라 예전 이름에 대한 감정이 조금 바뀌었어요.

거리의화가 2024-07-10 1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뀐 닉네임도 참 예쁩니다. 아직 어색하지만 차차 입에 붙겠죠?ㅎㅎ 어릴 때는 제 이름이 싫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불러준 뒤로는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이름은 특히나 경험이 그에 관한 생각을 좌우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제 닉네임이 이미지와 매칭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바꿔보려 했다가 이제는 익숙해지기도 했고 딱히 떠오르는 것이 생각나질 않아 그냥 내버려두고 있네요.

청아 2024-07-11 09:42   좋아요 1 | URL
화가님 예쁘다고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불러줄때까지 기다릴껄 그랬나봅니다. 로멘틱해요!ㅎㅎ
쭉 같은 닉넴으로 하려다가 어제 계기가 있었습니다. 헤헤

잠자냥 2024-07-10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름… 닉네임을 바꾼 사연이 있을 거 같은데…. ㅎㅎ 새로운 시작 아무튼 응원합니다!

청아 2024-07-11 09:44   좋아요 1 | URL
네! 잠자냥님^^ 그 사연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공개될 예정입니다. ㅋㅋㅋㅋ 응원 고맙습니다!

다락방 2024-07-10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옷 닉네임을 바꾸셨군요. 얼른 익숙해질 수 있도록 글 자주 써주셔요!!

청아 2024-07-11 09:47   좋아요 0 | URL
약간 레트로한 느낌이죠?ㅋㅋㅋ 다락방님 고맙습니다 >.<

2024-07-12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4-07-12 12:19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쟝쟝님>.< 이 닉넴이 입에 붙으시도록 오래 사용해볼께요!

cyrus 2024-07-12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아’를 국어사전에 찾아봤어요. 좋은 뜻을 가진 단어였네요. 푸르고 아름다운 눈썹, 미인을 뜻한대요. ‘청아’라는 이름에 과거 이름(미미, 美美)이 겹쳐 있군요.^^

청아 2024-07-12 22:44   좋아요 0 | URL
그런 의미가 있었다니 바꾸길 잘했네요^^ 사이러스님 찾아봐 주셔서 감사해요!!ㅎㅎ

수이 2024-07-13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

청아 2024-07-13 10:33   좋아요 0 | URL
저도 수이님 글쓰기 응원해요!^^

잉크냄새 2024-07-13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구지? 했네요. 미미는 중국어 발음 그대로 해석하자면 달콤함(蜜蜜) , 비밀(秘密)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아 2024-07-13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그런가요? 잉크냄새님 고마워요>♡
 

사랑에 대해 정의 내린 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미시마 유키오가 잘 그려냈다. 야한 장면이 없는데도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몰입해 읽다 보면 덩달아 가슴이 미어진다. ˝이 세상의 열정은 희망에 의해서만 훼손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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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역사상 오랜 난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어낸 러시아 수학자가 있다. 그레고리 페렐만. 100만 달러라는 상금이 걸려 있었지만 그는 수상을 거부했다. 왜 돈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우주의 비밀을 쫓고 있는데 어떻게 백만 달러를 쫓겠는가?" 




오늘, 오래 미루었던 일을 하나 처리했다. 친구는 힘들었겠다 위로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했고 끝마친 후에는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미루었던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하는 친구들. S가 둘 있다. 어떤 선택의 순간 앞에서 이들은 유독 명료해 진다. "와 어떻게 그게 돼?" 나는 매번 신기하다. 그럼 나를 놀라게 한 새로운 상황에 대해 S인 친구가 자신의 입장을 상세히 들려 준다. 들을 때는 나도 그러고 싶어진다. 하지만 막상 선택의 순간이 오면 대체로 난 늘 하던 대로 행동한다. 




  




궁극적인 위협은 외부로부터, 근본주의적 타자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우리 자신의 무기력함과 도덕적 해이, 명확한 가치관과 확고한 참여, 헌신과 희생정신의 결여에서 온다는 비판이다. 지젝은 라캉의 '행위' 개념을 빌려 진정으로 윤리적인 행위가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삶의 과잉'이며, 기꺼이 목숨을 걸 만한 무언인가가 있다는 자각이다. 목숨을 걸 만한 삶의 과잉은 자유, 명예, 존엄성, 자율성 등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러한 과잉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죽기를 각오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과잉'이다. 그런 과잉이 없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게 아닐뿐더러 삶 자체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삶의 과잉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위다. 212



이 대목을 읽으면서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흔히들 '사랑하는 상태'는 정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완전해진 듯한 착각, 상대의 모습에 씌워진 콩깍지,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당장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을 듯한 충만함. 그 사람으로 인해 우주가 가득 찬 듯한 환각, 셀 수 없는 비이성적인 감정들이 쏟아진다. 그러니 정상이 아닌 상태고 지속되어서는 일상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런 '과잉'상태를 겪은 후, '상실'의 순간을 통과해야만 그 중간에 위치한 현실이란 땅 위에 발 딛고 선 자신을 비로소 느낄 수 있다. 이 미친 상황을 경험하지 않고는 얻어낼 수 없는 결론이다. 



인력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요즘 생각하고 있다. 내가 무슨 노력을 해도 바꿀 수 없는 결국 하고야 마는 일들과 내가 죽어도 할 수 없는 일들. 양 극단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바뀌는 성향,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수없이 많다. 극단은 어떤 면에서 서로를 보완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무언가를 버려야 다른 무언가를 얻을 수 있고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해 봐야 사랑이 그것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척하는 의미라고 생각하지만 극단적인 무엇은 그것의 반대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페렐만이 돈과 명예를 보잘것없는 것으로 대할 수 있는 건 우주의 비밀을 푸는 작업을 최대의 가치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고? 전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최근에 직접 겪고 보니 머리가 좀 어지러웠다. 그뿐이다. 헤헷.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부로에게 겨우 두 켤레의 양말을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졸라대는 배달부에게 볼펜을 주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그럴 수밖에 없지. 사랑하지만 않는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는 일 따위는 쉽게 할 수 있어. 사랑하지만 않는다면.......' 97



  



전쟁으로 눈앞에서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로 인해 실어증, 간질을 앓게 된 동생과 타국의 난민촌에서 살게 된 오마르. 어딘가 생존해 있을지도 모르는 어머니를 원망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며 살아가다가 학교에 들어간다.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조금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고향에 돌아가면 농사를 지을 거라는 생각에 그는 다니지 않았다. 막상 학교에 가보니 불가능할 것 같던 동생과 떨어져 있는 것도 그에게는 가능했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현실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잠시라고 생각했지만 난민촌에서의 생활은 몇 년으로 이어졌고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소수의 사람들은 유엔과의 인터뷰를 통과하면 정식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아 미국이나 캐나다에 정착할 수 있었다. 긴 기다림 끝에 오마르와 동생 하산은 미국으로 가게 된다. 어렵지 않은 영어로 채워져 있어서 수월하게 읽었다. 오마르가 기회를 얻게 된 점은 감동적이었지만, 뒤에 남은 친구들. 특히 오마르 보다 더 똑똑하고 꿈도 명확했던 마리암이라는 여자아이가 부모에 의해 나이 많은 남성과 결혼을 강요당하고 어느새 배가 불러 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딸을 낳았는데 마리암은 절대 자신처럼 살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오마르를 위해 지어준 시는 그런 그녀의 상황 때문에 더 아름답고 슬펐다. 어린 나이에 죽을 뻔한 위기와 끝이 없을 듯한 절망을 경험한 오마르는 자신이 어떤 기회를 얻은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겠지. 그러니 아직도 난민캠프를 찾아가고 그들을 돕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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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6-30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고리 페렐란!
참 멋진 사람이지만 음, 음~~

고민하면 굉장히 힘들 것 같아도
막상 해결하면 뭔가 싹뚝 자른 것처럼 뒤도 안 돌아보게 될 정도로 상쾌할 때가 있더라고요.

우리도 우주의 비밀을 푸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청아 2024-06-30 22:59   좋아요 1 | URL
멋지죠! 최근에 그에 관한 다큐를 찾아봤는데요. 이 사람이 인터뷰를 안 하는데 한국 취재진이 집요하게 찾아가서 알아낸 결과 어떤 연구소에서 ‘충돌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해 조금 실망했어요. 충돌이라니까 무기 개발 쪽이면 어쩌나 싶어서요. 부디 아니길 바랍니다. 돈을 쫓는 사람이 아니니ㅎㅎ

저도 그런 사람이고 싶고 페페님은 저에게 그런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그레이스 2024-06-30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학 있는데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청아 2024-06-30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파인만의 이 책을 어제 샀어요. 페렐만에 대해 쓰다가 그냥 같이 올려본거예요. 레드북 보다 읽기 수월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쟝쟝 2024-07-01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력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죠. 꼭 힘을 들여야 하는 까닭은 아닐텐데요. 너무 마음쓰지 마시기를.

청아 2024-07-01 22:21   좋아요 1 | URL
네! 쓰고보니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꼭 그런건 아니었어요. 다정한 말씀 감사해요 쟝쟝님😆👍
 

하아...이 책은 너무 난해해서 이번달 책은 쉴래요. ㅠㅠ 대신 다른 페미니즘 책 두 권을..아니구나 며칠 안 남았으니..,한 권을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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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06-22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죠.. 저도 어려워서 꾸역꾸역 읽고 있네요…

청아 2024-06-22 20:13   좋아요 1 | URL
얇아서 주말에 다 읽으려고 했는데 만만치가 않네요. 차라리 <젠더 트러블>을 한번 더 읽고싶을 만큼요..ㅜㅜ

은하수 2024-06-22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제목만 봐도 어렵더라구요. 정체성도 어려운데 횡단의 정치라니.. 딱 봐도 어렵네요.
ㅠㅠ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ㅠ

청아 2024-06-22 21:15   좋아요 2 | URL
번역 때문인지 원래 어렵게 쓰여진건지 모르겠어요.ㅠㅠ 뭘 말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어요. 70페이지정도 읽다가 포기요...@,@

다락방 2024-06-23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었던 문장을 또 읽고 또 읽고..그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하면서 어쨌든 읽고는 있습니다. 이걸 읽는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요. 페이지수 얼마 안돼서 금세 끝내겠거니 했는데 지금 2주째 붙들고 있는데 끝을 못내고 있어요. 하아-

청아 2024-06-23 21:04   좋아요 0 | URL
저도 얇은 책이라 방심했던 것 같아요. 지난달 책 늦게 읽어서 이번에는 후딱 완독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ㅜㅜ
이걸 이미 읽어낸 단발머리님 존경합니다 다락방님 완독하시면 제가 똠냥꿍?에 소주 사드리고 싶네요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6-23 22:13   좋아요 1 | URL
반드시 완독해서 똠양꿍에 소주 얻어먹도롣 하겠습니다!! 😤😤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전반적으로 삶이 짐승 같아진다는 점이다. 강자가 약자에 대해, 부자가 가난한 자에 대해, 남성이 여성에 대해 무자비한 투쟁을 하고 있다. 이는 물론 사회의 부조리가 발현된 것이고, 남성 ㅡ사냥꾼 모델과 남성과 자연 사이의 약탈적이고 지배적인 관계에 기초한 남성 개념이 발현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우리가 본 것처럼,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했다. -356



몇 년 만에 직장이란 곳에 나가려니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일단 면접을 보려면 적당한 옷차림이 필요했고 어느 정도 자기관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화장과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갖추어야 했다. 직장에 다니지 않을 때에는 외출 시 선크림 정도만 발라주고 동네를 벗어날 경우에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눈 화장을 살짝 하곤 했다. 안 그러면 눈이 너무 순둥순둥 해 보여 어딜 가든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느꼈다. 이건 이전에도 한두 번 언급했었던 내용이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마 40대 이후의 여성들은 많이들 이 부분에 공감할 것이다. 첫 월급을 타고 엄마에게 35만 원을 드렸다. 남편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가 노력해 번 돈으로 엄마에게 용돈을 드리고 싶었다. 일하게 된 목적 중 이게 큰 부분을 차지했다. 경제적 독립. 남편은 괜히 직장 다니느라 스트레스받지 말고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읽고 싶은 책 읽으며 살라고. 돈은 자기가 더 벌면 된다고 늘 말한다. 고맙고 든든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나약한 인간으로 만드는 말이었다. 그래서 일을 하게 된 건데...



직장에 다니고 내 힘으로 돈을 번다고 단번에 강인한 인간이 되진 않았다. 필요한 것들이 늘어났고 일하느라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소비도 추가되었다. 화장품 종류는 왜 이렇게 많고 필요한 옷 가지는 왜 끝도 없는 건가. 덕분에 늘어난 카드값은 계속해서 일을 하는 인간으로 묶여 살라고 나를 점점 더 큰 목소리로 다그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읽었다. 자본주의는 계급사회를 굳건하게 유지시키고 있다. 식민지는 형식적으로만 자취를 감추었을 뿐이다. 세상은 갈수록 발전하는 것 같으면서도 빈부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 동력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마리아 미즈는 말한다. 자본축적과 가부장제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서. 남성 사냥꾼의 신화가 어떻게 이 착취 구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노예제도 없이 다수를 침묵시키고 공모하게 하는 방식에 대해서 말이다. 



세계 경제의 양극화를 추진하는 동력, 즉 자본의 축적과정은 '이거면 충분해'라고 결코 말하는 법이 없는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 이는 그 본질상 무한한 성장, 생산력과 상품과 자본의 무한한 팽창을 추구한다. 이런 끝없는 성장 모델의 결과는 '과개발'현상이다. 즉 암세포의 성장처럼, 착취당하는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이런 착취의 명백한 수혜자들에게도 발전할수록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개발과 저개발'은 따라서 본질적으로 착취적인 세계질서의 양 극단이며, 지구적 차원의 자본축적 혹은 세계 시장을 통해 구분되면서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마리아 미즈



'여성주의 책 읽기'를 이어오면서 여성에 대한 착취가 이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착취 요소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개별적인 문제처럼 보이는 요소들이 패턴이 있다고 느꼈다. 인종차별, 육식, 약자 혐오, 전쟁, 여성 혐오, 경제적 식민지배, 신자유주의의 탐욕, 물질주의 등 어느 것 하나 단독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여성주의의 흐름이 갈수록 그 영역을 확장해 가는 것은 그런 면에서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 마리아 미즈는 그 연관성들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만약 중세 시대 마녀사냥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마녀사냥이 성공적이었고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탓에 지금은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국가마다 얼마만큼 노골적인지, 비가시화되는지 그 양상에는 차이가 있다. 인도에서는 '결혼 지참금' 때문에 여성들이 살해당하고 자살로 위장되고 있다. 유럽의 남성들이 동남아로 성매매 관광을 가고 저개발 국가에서 자급하던 생산물이 과개발국가에서 과잉소비되고 있다. 세계 곳곳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삼고 그 과정에서 무기 업계는 은밀하게 돈을 쓸어 담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원시적 남성 사냥꾼 모델을 기반으로 한 자본축적 패러다임에 기초해 있다.



사냥꾼의 주 도구들은 생명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해치는 것이다. (중략) 무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상-관계는 기본적으로 약탈적이며 착취적이다. 사냥꾼은 생명을 전유하지만, 생명을 생산하지는 못한다.(중략) 무기를 통해 중개되는 자연에 대한 애상-관계는 협력이 아니라 지배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런 지배관계는 남성이 세운 모든 생산관계의 일부가 되어 왔다. 사실 이것이 그들 생산성의 주된 패러다임이 되었다. 자연에 대한 지배와 통제가 없다면, 남성은 자신을 생산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자연물의 전유'는 재산관계를 수립한다는 의미에서 전유의 한 측면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 되었다. '자연물의 전유'는 인관화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착취라는 의미에서 전유의 한 측면이 된 것이다.p.154




소비의 양극화는 뚜렷해지고 있다. 어떤 소비자들은 높은 물가 상승 때문에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마트 폐점 시간이 임박했을 때 세일하는 상품을 사러 가거나 저렴한 빅 사이즈 아메리카노를 선택한다. 반면에 수십만 원짜리 망고 빙수가 호텔 레스토랑에서 인기 메뉴로 떠올랐다. 항공사는 코로나 시기의 불황을 메꾸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 프리미엄 좌석은 그 와중에 더 넓어지고 있고 고급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제 화장실이 딸린 좌석도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일반 좌석은 좁아지고 있다. 뉴스에 종종 오르는 항공기 내 다툼은 단순히 해외여행 인구가 늘어난 탓 만은 아닌 것 같다. 또한 저가 생산물은 어딘가에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노동자들의 말도 안되는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탈출할 방법은 소비자 해방운동뿐이다. 






비행기 좌석의 양극화

https://youtu.be/VV2OA7Z_RDU?list=PLrNiQRPfA1HFm_h-J8DkS74R9r26JhLm2








몇 백씩 주고도 설국열차 뒷좌석...




토지가 없고 가난한 집안의 여성은 우유를 생산하면서도 자신은 거의 우유를 마시지 못했다. (...) 수백 가지의 치즈, 요구르트, 우유제품, 크림 등을 선택할 수 있는 영국, 네덜란드, 독일, 혹은 프랑스 가정주부가 아바마와 같은 여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일반적인 서구 소비자-가정주부는 '우유홍수작전'이전에는 인도의 마을에서 생산된 우유가 그 마을에서도 소비되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다. 이제 인도산 우유가 도시로 수출된다. 서구의 소비자-가정주부는 아바마에 대한 착취가 유럽 공공시장에서 바다처럼 널려 있는 우유와 신처럼 쌓여 있는 버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285



소비 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비참한 자발성이다. 최근에 국내로 태무, 알리 등 배송 업계가 들어왔다. 이로 인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택배 물품들을 포장하는 중국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가끔은 이런 현실이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나도 인간이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소비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사드의 소설을 봐도 자본주의와 가학성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소설 속에서 가학적인 변태들은 모두 권력을 쥐고 있다. 정치인, 성직자, 상인.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의 상징인 자본을 가지고 다수의 육체를 탐하고 고문한다. 어쩌면 사드의 소설보다 자본주의 현실이 더 끔찍한 것 같다. 우리는 돈을 받고 착취 당하는 게 아니라 돈을 주고 스스로 착취 당하는 데다 그 사실을 모르니까. 부유한 국가들일수록 그럴듯한 이미지들로 착취당하는 현실을 자기 선택이라 착각한다.



책 후반부에 마리아 미즈는 자급하는 것등 여러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 동네에 쓰레기를 모으는 노부부가 살았는데 노년에 이렇듯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지자체에서 봉사자들을 동원해 쌓인 물건을 분류하고 버려주는데 핵심은 본인이 참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불필요한 물건들이 주 공간을 다 차지해 정작 사람이 생활하기 힘들 정도까지 이르렀는데 이걸 타인이 다 정리해 줘봐야 소용없다는 거다. 얼마 후면 본래대로 돌아간다고. 다시 쌓고 쌓는 삶으로. 그래서 쓰레기가 된 짐들을 치울 때 본인이 참여해야 하는데 마리아 미즈가 말한 자급의 의미도 같은 맥락이라고 느꼈다. 현실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너무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소비자는 생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도덕적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다. 만일 소비자가 보다 능동적으로 생산에 참여할 수 있다면 가사 노동에, 돌봄 노동에 남성들이 더 참여한다면 거기서 변화가 시작될 것이란 이야기. 다만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한지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지구는 더 망가지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는 다수의 자각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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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16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휴 기립박수 칩니다.
오늘 새삼, 미미 님이 얼마나 책을 ‘잘‘ 읽으시는지 감탄하게 되네요.
게다가 읽어본 적 없고 앞으로 읽을 생각도 없는 사드의 소설에 대한 언급도 날카롭습니다. 맞네요. 권력을 쥔 자들이 가학적 변태들이라는 거요. 포르노 역시 그렇죠. 그 안에서 남자가 권력을 쥐고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걸 구매하는 자들도 남자들이니까요. 세상은 그렇게 여상을 성적 대상화 시키고 약자로 굴복시키려 하고요 상품화 되고요.

어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미 님과 여성주의 책을 같이 읽을 수 있어서 참 좋네요.

청아 2024-06-16 23:54   좋아요 0 | URL
무려 28년전에 쓰여진 글인데도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어서 무섭게 다가왔어요.
의사파업도 간호사들의 희생을 볼모로 유지되던 의료계 현실은 싹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리아 미즈의 주장이 그런 한국의 실정까지도 잘 설명해주고 있네요. (그것까지 쓰려다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네! 포르노도 마찬가지죠. 버닝썬 게이트도 N번방도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가학성을 잘 보여주네요.
워낙 좋은 내용이라 꼭 완독하고 싶었습니다. 다락방님 덕분에 이렇게 마리아 미즈를 만났습니다.
다락방님 이번 책도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페넬로페 2024-06-17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친정에 다녀왔는데 고속버스보다 비싼 ktx열차의 실내 환경이 너무 안 좋더라고요.
그래도 일단 빠르고 막히지 않으니 대구에서부터 꽉 차기는 했지만 그래도 적자에다 투자는 안하고~~
그러다 정말 민영화 될 것도 같아 걱정되더라고요.
자본주의의 실체를 보는 듯 했어요.
비행기 사진도 섬뜩하네요.
몇 백 만원도 이제 꼬리칸인가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청아 2024-06-17 10:38   좋아요 1 | URL
페페님😆 막히지 않는 것도 그렇고 저도 버스여행 보다는 열차가 좋은데 민영화 되면 가격이 훨 더 오르겠죠? 요즘은 자본주의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는 듯해요. 비행기는 좌석을 2단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대요. 예시 이미지를 보면 황당한 구조여서 실현될 것 같진 않은데 어찌될지...
페페님 제 글 읽어봐 주셔서 감사해용🙆‍♀️

2024-06-17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17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