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콘서트에 다녀왔다. 혼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티켓이었다. 그때 나는 연애하기 전이었고 스스로에게 3년이라는 기한을 정해둔 상태였다. 크리스토퍼의 노래는 청하와 부른 노래 달랑 하나 알고 있었는데 무심코 검색했더니 맨 앞쪽 스탠딩 한자리가 남아 있었다. 어랏? 이거 내껀까? 하고 결제했다. 가서 실컷 춤이라도 추자고. 클럽 가본 지도 엄청 오래니까.


건대에서 친구들이랑 밥 먹고 차 마시고 근황을 주고받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가 시간이 되어 먼저 빠져나왔다. 얼마 만이었는지. 잠실 실내체육관은 그다지 변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현금을 미리 준비하지 않아 그 더운 날 얼음물을 이고지고 온 할머니에게 계좌이체를 해 드리고 두 통을 받아들었다. 사람들이 징그럽게 모여들자 입장이 시작되었다. 축제라도 온 듯한 다양한 복장의 인파들. 그런데 막상 콘서트가 시작되니. 뭐야? 스텐딩석인데 사람들이 너무 얌전해. 대다수가 스맛폰으로 현장을, 크리스토퍼를 찍기 바쁘다. 팜플릿에 현장 다 녹화한다고 써 있잖아 이 사람들아? 그러거나 말거나 나 그리고 나랑 같은 별 출신인 듯한 사람들 몇 프로만 띄엄띄엄 춤추고 흥겨웠다. 떼창할 때는 크리스토퍼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앞 사람 뒤통수에 숨었다. 그저 춤추는 게 좋았다. 막판에 취소하고 데이트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언제 또 이 자리에서 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잘했어. 그래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 그 사람을 생각했다. 저 조각 같은 얼굴의 가수를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환호 속에서도 나는 오로지 나의 사랑, 그의 숨결, 목소리를 떠올렸다. 




나는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떠나서는 삶은 삶이 아니라 반죽음이며, 권태이고, 유배이고, 시베리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시베리아에서 여섯 달이 지난 후) 지금 나는 갑자기,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완전히 새롭고 예상치도 못했던 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내 앞에는 이제 전속력으로 비상하는 역사의 날개 아래 가리워져 있던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 밀란 쿤데라, 농담









이건 해줬다. 특정 노래할때 스맛폰 라이트를 크리스토퍼에게 비춰주기! 



끝나자마자 서둘러 젖은 옷을 갈아입고 그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어서오렴...이 책을 기다리고 있지만 두렵기도 하다. 1296쪽...그래도 하나씩 하면 된다고 페럴만이 말했으니까. 괜찮겠지? 

게다가 지적인 그녀와 같이 읽기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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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09-04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재와 무> 책값이 무지하게 비싸지만, 사고 싶은 책이에요. 현대 철학 독서 모임에 참석하고 있어서 실존주의 철학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거든요. ^^

청아 2024-09-05 09:24   좋아요 0 | URL
저도 현대 철학 독서 모임 하고 싶네요. 집 근처에는 제가 찾는 독서 모임이 없어요. 못 찾은건지...사이러스님 빠른 시일내 구매하시게되면 같이 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