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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잘 읽힌다. 기본적으로 문장력이 좋다. 사투리와 우리말, 의성어와 의태어의 사용이 맛깔스럽다. 열 살쯤 되는 소녀가 화자이기 때문에 어려운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말들에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게다가 문장과 문장 사이에 능청스러운 유머와 위트를 배치해둘 줄 아는 배려(혹은 내공)가 돋보인다. 이런 능청스러움이 자칫 딱딱하고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내용에 활력을 주고 어두운 분위기를 적당히 눙치는 역할을 해준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 이 소설에는 독기가 잔뜩 담겨 있지만, 독한 현실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백가흠 같은 작가에게서는 잘 보이지 않는 '불행한 삶에 대한 배려'가 있다. (작가의 성향을 미루어 판단하는 것은, 이 작가의 다른 글을 읽은 후로 미뤄두려고 한다.) 한국이라는 곳의 근현대사의 흔적들이 글의 곳곳에 보이는데, 이런 것들을 무리하게 확대하지 않은 것은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읽다 보면 21세기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잊게 될 때가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내가 도시의 안온한 삶에 길들여져버린 탓이 클 테다.)
(좀 많이 과장해서 말하자면) '절름발이가 범인' 수준의 진실이 글의 마지막에 폭로된다. 그러나 이 충격적 진실은 소녀의 이야기를 잘 들었던 이들이라면 얼추 예상할 수 있었던, 그리고 소설의 곳곳에 복선을 깔아 두었던 일이다. 그리고 소녀가 찾던 그 평화에 관한 것과 결말은, 전형적인 성장소설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다. 이것의 가치와 작가의 세계관에 대한 판단은, 역시 이 작가의 다른 글들을 더 읽어보는 게 좋겠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독한 글을 쓰는 재주를 가진 사람의 작품들은 다른 글들을 더 읽었을 때 그 지향점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테니까.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기왕이면 이 책보다는 밝은 내용의 글이면 좋겠고.)
사족. 형상화가 잘 되는 상황과 문장 덕분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몇 개가 떠올랐다. <꽃잎>이나 <박하사탕>을 갖다 대기에는 알레고리가 뚜렷하지 않고, <눈물>은 이 글의 감수성을 담지 못하고, <판의 미로>의 은유보다는 직설적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수식어는, 농담 삼아 '하이틴스펙터클액션판타지코믹잔혹슬래셔로드무비'쯤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