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고부터는 대출인이 아니라 강연자가 되어 도서관에 출입한다. 열람실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을 흘끔거리며저기가 내 자리인데, 생각하지만 강당의 맨 앞 한가운데로인도된다. 말을 모으지 못하고 말을 풀어놓는다. 아무려나, 강연은 의미가 크다. 세상으로부터 얻은 지식과 지혜를 세상에 되돌려놓는 마땅한 활동이고 그 임무를 나는 보람차게 수행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외부 활동은 내부 활동의 결과다. 책기둥 틈에서 왜 읽는지 목적도 없이,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도 없이, 뭘 써야 한다는 의무도 없이, 그저 책을 무모하게 탐하는 기쁨을 모아두었던 무용의 시간이 없었다면애초에 불가능했을 일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책기둥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생의목격자 양천도서관이 일러준다. 너무 멀리 가지 말 것. 헛수고와 헛걸음으로 우연 앞에 나를 풀어둘 것. 어디를 가야 자기 존재가 피어나는지 몸은 안다. 10년 후 모습을 만들어가기보다 10년 전 모습에서 멀어지지만 않아도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질문에 대한 힌트는 대개 두가지에서 나왔다. 시간 그리고 책. 세월이라고 할 만한 시간이 흘러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책은 좀더 가까웠고 친절했다. 먼저 시간을 살아낸 이들이 쓴 글은 믿을 만한 처방전이 되어주었다. 책을읽다가 ‘이거구나!‘ 하고 인식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주섬주섬 글쓰기를 시도했다. 책으로 삶을 해석하고, 삶으로 책을 반박하며 덩어리진 생각에 질서와 문장을 부여했다. 그렇게 한편씩 글을 완성했다.
K야, 네 연명장치는 무엇이니? 자아찾기니 뭐니 해도 결국사는 건 하루를 거뜬히, 그러니까 무사히 보내는 일 같아. 페루 시인 세사르 바예호 César Vallejo 도 노래하지.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그저 하느 일이라곤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ㅡ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부분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ㅡ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집 곳곳에 책이 있지만 수레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나도 굳이 아이에게 권하지 않는다. 한때는 책 읽으면 똑똑해진다는 신앙에 얽매이는 엄마였는데, 똑똑한 게 자기답게사는 데 도움이 되는지 걸림돌이 되는지 언제부턴가 헷갈린다. 그리고 책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세상과 교감하며 느낄 것은 느끼고 배울 것은 배운다는 걸이젠 안다. 타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지켜보며 자연스레 터득했다.
남들 앞에서 자기 서사를 낭독하기까지의 오랜 시간, 생각의 뒤척임, 단어 선택의 어려움, 자기 부정과 인정의 반복을 견뎌냈다. 나란 존재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랑을 하는가. 얼마나 썼다 지우고 또 써 내려갔을까. 자기를 알아가는노력은 답도 없고 돈도 안 되고 힘에 부친다.
약한 존재들이 기대어 사는 작품을 만드는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를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하다." 찾아 나서는 행위 자체가 나약함이 아니라 강인함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무심결에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뱉기도 하죠. 그런데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나는언행에 대해, 정확해서 신랄하게 느껴지는 비판을 받은 이들은, 거의 이후 수업에 불참했습니다. 이 예견된 실패가 제 오랜 근심이자 숙제입니다. 수업에는 워낙 다양한 삶의 배경과 궤적을 가진 이들이 모이는데, 이러한 생각과 인식의 격차 속에서 어떻게 어울려 공부하고 살아갈까. 자식을 키울 때도 느끼지만 옳은 말은 구체적정황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변화를 일으키기는커녕 마음의 거리를 만들죠. 이게 옳아. 그건 혐오야. 이런 말은 발언자에게는 정의감을 주지만 상대에겐 일단 무안함을 한 바가지 안깁니다. 한쪽이 당황해서 입다물면 대화가 단절됩니다. 내 고민을 듣고 한 학인이 그러더군요. "샘, 생각이 다른데 피곤하게 꼭 같이 배워야 돼요?" 맘 편히 말 통하는 사람끼리 공부하자고요. 그 논리대로 저는 질문했어요. 비슷한정보량과 익숙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끼리 왜 굳이 모여서 공부해야 하느냐고요. 그건 독백이지 토론이 나니라고요. 함께 공부를 해도 심기에 거슬리는 게 없고 이전과 달라지는 게 없으면 서로에게 좋은 공부가 아닐 가능성이 있어요. 사유는 마찰에서 싹틉니다.
빠른 여행자란 자기 발로 가는 사람 ㅡ데이비드 소로. 월든
저도 스무살 무렵에는 도대체 여자가 무슨 차별을 받는다는 건가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결혼과 출산을 거치고, 또글 쓰는 일을 하며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여성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깨졌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변화란 거저오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만드는 것이라고 하죠. 비난으로는 변하지 않고 애씀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애써 글을 쓰고, 누군가 애써 글을 읽고 애써 소개하고요. 남의 말에귀를 열고 질문하고 영향을 받는 것도 애씀이지요.
사실 ‘무력감‘과 관련한 질문은 강연에서 꽤 자주 나옵니다. 독자들이 묻죠. 읽거나 쓴다고 해도 현실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은데 이런 작업을 지속시켜주는 동력이 무엇이냐고요. 그럴 때 저는 답합니다. "세상은 안 바뀌는 거 같지만 제가 바뀌었거든요. 저도 세상의 일부이고 적어도 제몫만큼은 변했잖아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제가 지금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책은 절실한 ‘자기 질문‘이 있을 때라야 자기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2015년에 나온 「변방의 아이들을 저는 이번에 김 선생님이 던진 물음 덕분에 다시 만났습니다. 강연장에서 보이지 않는 아이들, "더 험하게 사는 아이들, 더 억울한 아이들, 스스로 삶을 일구어가야 하는 아이들"(166)의 면면을 책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서와 토론을 성장의 만능 척도처럼 여기던 좁은 생각이 흔들렸으니까 저도 조금은 성장한 거겠죠. ‘어디로 가야하는지‘ 여전히 어렵지만, 질문이 답을 주진 않아도 헤매게 해주고, 그렇게 길을 잃는 동안 다른 삶을 목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됩니다.
히트곡이 하나뿐인 가수는 전국을 다니면서 맨날 같은노래만 하고 살텐데 얼마나 지루하고 쓸쓸할까라는 저의말을 듣던 선배가 그랬습니다. 그게 뭐 어떠니. 어차피 청중은 처음 듣는 노래일 거고 가수는 자기 노래로 거기 온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으니 그거면 가수로서 본분을 다한 거지. 선배의 말에 뜨끔했죠. 당시 제 나이 서른 즈음이었는데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삶을 함부로 말했구나 싶어 급히반성을 하면서도 선배의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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