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빛일지라도, 우리는 무한 - 변지영 심리×철학 에세이
변지영 지음 / 그린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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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수 없음‘ 그 자체를 피하려는 것이다. 현재의 무한함, 광대함,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억지로생각을 만들어 내어 ‘이러이러하다‘라고 분석하고 이름붙인다. ‘내가 이러이러하다‘, ‘이 관계는 이러이러하다.
‘저 사람은 이러이러하다.
이름 붙이는 순간 그것은 과거, 그것도 전부가 아닌매우 일부 과거를 담고 있는 것이고 지금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 현재는 생각이나 말로 규정할 수 없다.
현재의 나도, 그도, 이 관계도 그러하다. 하지만 모호함,
예측 불가능성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꾸 경험을,
나를, 관계를 생각으로 정리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안될 일을 억지로 하려 하니 생각이 많아지고 괴로워진다. - P-1

매순간은 복잡하고 모호하며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하여 규정할 수 없다. 현재의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경험의 총체이며 시간적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과 함께변화한다. 우리는 현재에 살아가며 현재의 경험이 ‘나‘를만들어 간다. 그런데 현재는 잠재력과 복잡성으로 꽉 찬거대한 허공과 같으므로 나 또한 잠재력과 복잡성으로꽉 차 있는 허공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이것과 저것 사이에 있으며 아직 무언가가 되지 않은 틈들의 연속이다.
그 틈에서 낡은 것은 죽고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삶은오직 현재, 무수한 틈들에 있으며 깨달음이란 다만 그틈을 포착하고 새로 태어나는 일이다. 나는 이러이러한사람, 내 삶은 이러이러하다며 죽은 과거를 끌고 다니는것은 과거를 무한 복제하는 가짜 삶이다. 새로운 경험을차단하기 위해 생각으로 예단하고 분석하는 사람들은익숙한 과거에 안주하고 의존함으로써 현재의 모호함과 복잡성을 회피한다. - P-1

내가 어떠어떠하다고 설명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므로 생각이나 말로 규정되는 순간, 이미지나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의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실시간 일어나는 상호작용이어서 매 순간 변하고 달라지기에 언어로 붙들어 맬 수 없다. 틀 안에 넣는 순간왜곡이며 이내 변하고 달라진다.
관계도 실시간 변하는 상호작용의 연속이며, 내가오직 현재에 살아가듯 관계도 현재에만 살아 있다. 두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에게 귀 기울여 들을 때그들은 지금 진짜로 만나고 있다. 두 사람이 한자리에앉아 있지만 한 사람은 ‘우리의 과거‘를 추억하고 한 사람은 ‘우리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그 둘은 사실상 만남을 회피하는 셈이다. 지금의 만남에 발 담그지 않고 ‘현재‘를 회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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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의 문제는 감정의 문제이며 매 순간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의 문제다. 실시간 경험을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경청하면 피할 것도 없애야 할것도 없다. 듣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왜곡, 갈등, 증상이 일어난다. 경험을 통제하거나 회피하려는 노력이 감정의 문제와 관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듣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볼필요가 있다. 듣기란 수동적인 입력 행위가 아니다. 어떤 말이나 소리를 듣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순간의 반웅과 해석을 포함하는 예측적 행위다. 다 듣기도 전에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추론하면서 마음의 창을 일부 - P-1

닫아 두거나 아예 셔터를 내리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듣는‘ 것은 상대방의 말이나 바깥의 소리가 아니다.
매번 자기를 듣고 있는 것이다. 듣지 않으려 함은 자기와의 단절, 혹은 경험으로부터의 회피이며 그것이 결국 감정적 어려움, 관계의 어려움으로 드러난다. 요약하면, 실시간 경험과 연결되지 않는 것이 곧 감정의 문제이자 관계의 문제다.
관계와 감정을 이해하려면 우리 경험에 들어 있는 모호한 측면을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 알아내려고과거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흐름에 발 담그는것이다. 있는 그대로 함께하는 것, 지금 여기에 머무는것, 현재로부터 도망가지 않는 것이 좋은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 P-1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이끌려 하거나, 안전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의존하고 안주하려 하거나, 자기 틀에 갇혀 변화를 거부하다 보니 상대방을 그대로 보고 듣지 못한다. ‘친한 사이라면, 연인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거나 ‘부부란, 가족이란당연히 이러이러해야 한다‘며 상대방을 통제하고 강요하는 사람은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관계를 맺을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의무의 교환, 기능의 거래를 통해 진짜 관계를 회피한다.
진짜 관계는 통제 밖에 있다. 풀숲으로 날아가는 새소리를 듣듯 어떤 의도나 생각 없이 오가는 상호작용에그대로 마음을 열 때, 그 직접성과 즉시성에 발을 담글때 관계는 살아 있다.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함께 우는것은 아이들에게는 제일 쉬운 일인데 나이 들수록 쉽지않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이 오가느라 그대로 함께하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 실시간의 상호작용에는 새로움과 고유함이 있다. 그런 순간에 마음을 열 수 있으려면 자기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예측과 통제를 포기하고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관계다. - P-1

왜 심리상담이라는 것이 있을까? 왜 사람들은 자신에대한 얘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꺼내려 할까? 전문가가나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알려줄까 봐?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그들은 알고 있으니까 그걸 듣고 나를 바꾸려고?
전혀 그렇지 않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전문가" 같은것은 없다.
삶은 역할, 기능, 과업으로 너무 빨리 지나가고 우리는 가까운 사이에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진실을 느낄 시간이 없었거나 허락되지 않아서, 혹은 불편한 진실보다 편리한 친절이 필요해서, 일상을 대충 잘지내기 위해 우리는 뭔가 결정적인 순간들을 건너뛰며표면을 살아갈 때가 많다.
그 뒤로 소화되지 않는 경험과 감정들이 남는다. 거기에 파묻힌 진실들을 발굴해 자신의 일부를 복원하기위해 우리는 상담을 찾는다. 소화되지 않는 것들, 어딘가에 걸려 있는 것들을 소화하고 싶어서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파편들을 연결해 온전한 전부가 되고 싶어서다. - P-1

좋은 상담자는 공감을 잘하는 자도 아니고 이해를 잘하는 자도 아니고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도 아니다.
가장 좋은 상담자는 함께 진실의 순간이 되어주는 자다. 그러려면 상담자는 유능함을 발휘하려는 기대나 욕망이 없어야 한다. 상대를 치유로, 깨달음으로 나아가게하겠다는 의도나 잡생각이 없어야 한다. 오직 매 순간,
그 현재에만 있어야 한다. 그 ‘현재‘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진실에 연결될 때 거기에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아니다. 상담도, 명상도 무한이 무한을 만나는 일이다. - P-1

과거도 미래도 없이만남과 이별만 있을지라도무구한 생애 첫 하늘날아오르는 오래된 날갯짓멈출 수 없듯물처럼 와서 바람으로 가는 우리는길어야 순간이고짧아야 영원이다*
"I came like Water, and like Wind I go. FitzGerald, E. (2009). Rubaiyat ofOmar Khayyám. Oxford University Press. p. 30. - P-1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실제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 그 작은 방이라는 얘기다. 인간은 모두 그 좁은 방안에서 갖가지 꿈을 꾸며 그것을 ‘현실‘이라 믿는다. A는 좋은 사람이고 B는 나쁜 사람이라고, C는 멋진 일이었고 D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 P-1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바라는 것과 피하고 싶은 것, 아름다운 것과 끔찍한 것, 사랑과 미움을 본다. 욕망의 눈으로, 기억의 눈으로 본다. 감각에서 비롯된 감정 뭉치를 기억이라 하고 그것을 미래로 투영해 욕망의 목록으로 간직한다. 욕망은 언제나 기억의 미래 시제다. 기억이 없다면 욕망은 없다. 감정이 없다면 기억이 없고, 감각이 없다면 감정이 없다. 따라서 욕망은 감각 느낌들에대한 판단이자, 편집과 통제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 활동은 꿈처럼 어지럽고 현란하다. 그많은 갈래 중의 일부를, 미미한 일부를 의식하고 사고할수 있을 뿐이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전부 알아내는법은 없다. 의식의 방은 크기도 구조도 제한적이다. 의식은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할 수 있어서 동시에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가 없다. 게다가 그 방은 대체로 잠겨 있다. 자신이 잠갔을 수도 있고, 어쩌다 보니 잠겼을 수도있다. 그래서 다른 방의 사정은 모른다. 각자의 경험이전부다. 감각과 감정의 고유함과 특수성은, 우리 자신을특별한 존재처럼 믿게 만든다. 힘들고 고된 경험에 의미 - P-1

를 부여하려고, 어떤 방향으로 분명 나아가는 것처럼 생각하고 싶어서 자기 서사를 만들어 낸다. 욕망과 기억,
감정과 감각은 그 과정에서 때때로 변하고 재해석된다.
생각은, 변덕스러운 이들을 시중드는 빈약한 집사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믿을 것이 못되고 진실과 거짓도 때에 따라 달라지며, 삶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모두 ‘의식‘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무의식‘
의 관점에서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 진보도 퇴보도 없다. 무의식에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잊어도 무의식은 잊지 않는다. - P-1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무의식이 생긴 거죠? 저는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상담을 하다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말을 한 분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그분의 말이 맞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의식은 있다. 왜 그럴까?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본래 있었다. 거대한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컵을떠올려 보자. 컵에는 바닷물이 찰랑찰랑 담겨 있다. 컵이 먼저 있었을까? 바다가 먼저 있었을까? 컵 안의 물이 먼저일까? 바닷물이 먼저일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순서를 따져 보자면 아마도 바다가 먼저 있고,
그다음 컵이 있고 나서 컵 안의 물, 이렇게 될 것이다.
여기서 바다를 무의식, 컵은 우리의 몸, 컵 안의 물을 의식에 비유하면 흥미로운 면이 보인다.
컵 안의 물이 컵의 크기나 상태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본질적으로 컵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왔다는 것. 그리고 바다는 컵이나 컵의 물보다 훨씬 전에 본래 있었다는 것. 이러한 관점은 우리의 의식(컵의 물)에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무너뜨리게 한다. 마음이나 정신을 순전히 개인의 ‘심리적 - P-1

문제‘로 보고 이런저런 검사를 통해 파악하거나 생각과훈련으로 바꾸고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오해도 불식시킬수 있다. 현대인의 믿음과 달리 마음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개인을 초월하는 현상이다. 무의식과 의식이 얽히는연결의 장이자 관계와 상호작용이다. 뇌신경과학의 연구법과 기술이 아무리 첨예하게 발달한다 해도 마음의전부를 측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조사하는 것은 컵과 컵의 물 수준일 뿐, 바다의 영역까지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을 받거나명상을 통해 무의식에 들어 있는 내용을 모두 의식화할수 있다거나 명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오해에 가깝다. 그렇다면 바다는, 무의식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직접 알아내는 방법이 있을까? 놀랍게도 ‘없다. 그 이유를 매우 논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것이 마테 블랑코의 이론이다. - P-1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난다고 할 때에는그의 일부가 나에게 들어와 제3의 무엇이 되는 것이다.
제1인 나도 아니고 제2인 너도 아니고 제3의 무엇이다.
내가 어떤 이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는 그도 아니고나도 아닌 제3의 무엇을 사랑하는 것이어서그때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제3의 무엇은 제4의 무엇으로, 제5의 무엇으로변이하면서 찾아볼 수 없게 되기에종종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안에 있는 대상들은처음에는 분명 바깥에서 온 것이지만,
이내 각자의 내부에서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변형되면서 서서히 본래의 출처를 잊는다. - P-1

우리는 결코 삶의 진실 전체를 보지 못한다. 내가 어떤것을 왜 좋아하는지, 왜 싫어하는지조차 정확히 알아낼수가 없다. 무의식의 바다는 의식의 어떤 노력으로도 만질 수 없고 알아낼 수 없으며 바꿀 수 없다. 다만 주어지고 느껴지고 경험될 뿐이다. 감당하기 힘든 사건, 소화가 안 되는 감정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마음의 병을얻기도 한다. 주저앉기는 쉽지만 다시 일어나기는 어렵다. 좌절은 끝이 없고 치유의 길은 너무나 멀다. 무언가의미를 간신히 알아낼 때쯤 또 다른 일들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존재의 의미를 집요하게 알아내고자 한다. 세상을향해 끝없이 다가간다. 이것은 과연 저주일까. 축복일까?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을 보면, 마테 블랑코는 아마도 낭만주의자에 가까운 것 같다. - P-1

"순간의 진실은 오직 될 수 있을 뿐, 알아낼 수는 없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윌프레드 비온은, 진실은 스스로드러나는 것이지 우리가 생각해서 알아내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살면서 무수한 일들을 겪지만, 그중 무엇에 이끌리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의미 있는 사건은 늘 일부에 해당한다.
- P-1

특별한 감정을 일으킨 장면들, 생생하게 기억하거나 오래 생각하는 일들, 비온은 이를
‘선택된 사실‘(selected fact)이라 불렀다.‘ 하지만 엄밀한의미에서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사실들이 나를 선택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를 사로잡는 순간이 먼저 있고, 그에 대한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감정의 언어를 찾는 과정에서 생각들이 잇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마테 블랑코는 감정의 본질을 "나눌 수 있으면서도나눌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부분들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시간적이면서도 무시간적인 것"이라 했다. 뭔가를 표현하려면 생각해야만 하고, 생각은 본래 이것과 저것으로 쪼개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에는 본질적으로 ‘나눌 수 없는 측면이 있어서 결코 명확하게 쪼개지지 않는다. 따라서 생각으로 감 - P-1

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뭔가 누락되거나 보태지는 등필연적으로 왜곡이 발생한다.
모든 정신적 어려움은 경험을 소화하지 못해 일어난다. 무슨 경험인가? 강한 정서적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소화되지 않아서 체한 것처럼 걸려 있다. 가슴이답답하거나 명치가 뻐근하거나 숨 쉬기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화되지 않는 감정을 생각으로 쪼개어 억지로 소화하려고 시도할 때, 우리는 순간에서 이탈한다.
생각이라는 칼로 자르고 잘게 다져 손에 쥘 수 있게 만들려고 할수록 나뉘지 않는, 전부의 순간에서 멀어진다.
신경증, 정신증 증상을 갖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각이 매우 많은데, 어쩌면 소화되지 않는 경험들을 쪼개기위한 필사적인 노력 때문일지 모른다. 나뉘지 않는 것을나누려다 보니 늘 생각에 빠지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멀어지게 된다. 두 눈은 허공을 향하고 두 발은 공중에떠서 잠시도 그냥 있기 어렵다. 심리상담은 대개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소화되지 않는 경험의 맥락들을 탐구하고 함께 재경험하는 것과 지금 여기, ‘순간의 진실‘로 함께하는 것이다. - P-1

그냥 있음(just being)은 느낄 수는 있어도 알아낼 수는 없다. 알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뭔가 일어남(happening)으로 인식한다. ‘있음‘이 무의식의 영역이라면, ‘일어남‘은 의식의 몫이다. 시간도 공간도 없는 불가분의 ‘있음‘을, 의식은 담아낼 수가 없다. 따라서 실재의일부를 사건으로 포착해 자르고 이어 붙여 의미를 만들어 간다. 시공간을 부여하고 부분들로 나누는 생각의 눈에는 ‘있음‘이 ‘일어남으로 보이는 것이다.
모든 관계는 순간의 연결을 꿈꾼다. 연결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있다. 연결의 순간에는 시공간이 없다. 나는 그 세계와 하나로 있다.
우리가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향해 수없이 다가가고 만나고 수많은 잡담을 건네는 이유는 연결의 순간을 위해서다. 순간의 진실이 되기 위해서다. - P-1

우리가 기억하는 누군가는 그 누군가가 아니다. 내안에서 경험하고 이해하고 소화하고 대사한 결과물, 즉다른 무엇이다. 당신이 엄마에 대해, 아빠에 대해, 형제 - P-1

자매에 대해 ‘어떠어떠하다‘고 할 때, 아무리 구체적으로 정확히 이야기해도 그것은 결국 당신 자신에 대한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미 자아의 일부로 합성된 것을의식하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A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요소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내가 인식한 것은 내 정신세계에서 만들어진 고유한 합성물 b다. 관계는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을 아무리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파악할 수 없다. 두 개의 세계가 얽히어 상호작용하면서 각자의 존재를 만들어 가는 끝없는 생성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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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 혹은 책선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명나라 철학자 왕양명이 쓴 <전습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왕양명에게는 쉽게 화를 내고 남을•잘 나무라는 친구 하나가 있었다. 그를 지켜보던 왕양명이 친구에게주의를 주며 말한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는 걸세그저 남을 책망하기만 하면 남이 잘못한 부분만 보고 자기가 그르다는 점은 못 보게 되지. 만약 자네를 돌이켜볼 수 있다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허다하게 많이 보일 테니, 남을 책망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앞으로는 남의 시시비비를 논하려 들지 말게. 남을 책망하거나 비판해야 할 때를 만나면, 그것을 자신의 커다란 사사로움으로 간주해서 없애도록 하게."
충고와 책선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다. 내가 스스로 반성하면서 올바르게 살려고 애쓰다 보면 친구도 감화되기 마련이다. 친구니까 솔직하게 충고한다면서 자신이 항상 옳고 늘 제대로 살고 있는양 거침없이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데, 친구란 함께 밥을 먹고 재미있는 일을 하기 이전에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친구를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 P-1

한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들어간다. 세상 쉽게자란다는 식물도 며칠만 햇볕을 못 쬐면 금방 시들시들해진다. 좋은가치는 가뜩이나 싹 틔우기 어려운데, 어쩌다 한번 미루고 미루다가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한번 시도해보는 걸로 그친다면 결과를 얻을수 없는 건 너무도 자명하다.
맹자는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 노력은 반드시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선생님은 환경이 갖추어진 다음에 의미가 있다. 좋은 선생님이 전체일 수는 없다. 전체가 망가졌다면 더 이상 손을 대기 힘들지만, 전체적인 여건이 갖춰졌다면 최고의 성과를 얻을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설거주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우리의 계획이자꾸 실패로 돌아가는 까닭은 많은 경우 설거주 한 명으로 쉽게 뭔가를 해보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 P-1

여러 인문학 강의에서 젊은 수강생들이 인생의 비전이나 삶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분명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예전의 가치관으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동안의 성장 방식, 지금까지 성공한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래서 불안해지고, 그래서 더 빨리 명확한 답을 들으려 한다.
하지만 지극히 특별한 한 개인의 인생의 답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살아온 다른 한 사람에게서 그렇게 쉽고 분명하게 얻어질 리 없다.
그가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해도 그 역시 자신의 신체와 삶에 갇힌개인일 뿐이다.
정말 달라지고 싶고 변화하고 싶다면, 보다 적극적이고 장기적인레이스를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 내 손으로 책을 찾아 읽고, 내 힘으로 생각의 범위를 넓히고 요약해야 한다. 설거주는 재미있고 웃긴 사람이 아니다. 그와 나누는 대화는 분명 수다가 아니다. 삶의 방향을정하는 눈을 틔워줄 책이 저절로 읽힐 리 없다.
그래도 길을 찾아야겠거든 나 스스로 나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은 과감히 집에 두고, 책과 공책을 들고 카페든 도서관이든 가서 일정 시간 자기 자신과 씨름해야 한다. 쉽게 얻은 것은 내 것이 아니기에 쉽게 사라진다. - P-1

"배움을 그쳐서는 안 된다. 청색은 쪽에서 얻지만 쪽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로 만들지만 물보다 차다. (...)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감을 잡지 못하고, 깊은 계곡에 가보지 않으면 땅이 얼마나두터운지 감을 잡지 못한다."
取之於藍而爲之而於. (…)山, 不知天之高也; 不臨深谿, 不知地之厚也,

순자의 권학편

청출어람이 나온 구절.
청출어람의 두 가지 뜻
1. 학문과 배움을 멈추지않으면 자신의 스승을 뛰어넘게 된다.
2. 본래 타고난 능력을 뛰어넘는 깊이와 넓이를 가진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 P-1

순자는 이어서 말한다.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이 얼마나높은지 감도 잡지 못하고, 깊은 계곡에 가보지 않으면 땅이 얼마나두터운지 감도 잡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과 삶에 대해 종종 ‘좌정관천坐井觀天‘, 즉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오류를 범한다. 그 깊이와 넓이를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상상조차 하지 못하면서, 저것도 대단한게 아니라 내가 보는 딱 그 정도의 크기일 뿐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하늘이 높고 넓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신의 알을 깬 사람에게만주어지는 축복이다. 높이 올라가본 사람만이 하늘은 결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 하늘이 높다는 사실을 더 잘 알 것 같은데 높이 올라가본 사람이 하늘을 더 아득하게 느낀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지할 때는 자신이 얼마나무지한지 알지 못한다. 수치로만 따지면 무식한 사람보다 유식한사람이 아는 지식이 더 많겠지만 자신의 무지를 인지한다는 건 본인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유식한 사람이 자신의 무지를 더 잘 안다는 건 세상의 역설 중 하나다. 선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악함을 더 많이 느낀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자신의 부족함을 더 잘 알고, 재주를 연마하는 사람이 자기의 한계를 더 잘 안다. 따뜻한 사람이 자신의 차가운면을 더 잘 알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 자신의 옹졸함을 더 쉽게 깨닫는다. - P-1

생각을 하는 이유는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미래를 미리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얼마나많은가? 물론 정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선의 답은 찾을 수 있다.
바로 책을 통해서다. 책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 인류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다. 넘쳐나는 지혜를 습득하면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 즉 가치관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치관은내가 세상에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만들어준다. 이것이 후회를 줄여준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도 모르는 미래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사람과 미래에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가는 사람은, 시간이 흐른 뒤에후회하는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 P-1

아이들이 산만하면 어른들은 보통 "너는 누굴 닮아 이렇게 산만하니?",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네. 얌전히 있어!", "넌 왜 이렇게 정신이 없니?"라고 야단을 치지만 원래 인간은 산만하다. 인간은 동물이라는 종의 관점에서 볼 때 포식자가 아니라 피식자이기 때문이다.
피식자인 동물 중에 경계가 느슨한 동물이 있던가? 참새도, 토끼도사슴도 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흠칫흠칫 놀란다. 살기 위해서다. 집중한다는 것은 피식자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 집중이 뭔가 ‘누가 잡아가도 모르게‘가 아닌가? 피식자인 인간은 뭔가에 집중하면 곧 먹히는 존재다.
이런 인간이 군집 생활을 하게 되고 유난히 큰 뇌로 유난히 활발하고 치열하게 생각이란 걸 하게 되면서 어느새 생태계에서 최상위포식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집중‘은 그러니까 인간이 특유의 전투능력으로 획득한 전리품이다. 집중해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뢴가에 몰두한다는 건 인간이 생존이라는 전투에서 승리한 대가로 누리게 된 최고의 사치품인 셈이다. - P-1

바른지성인의 한결같은 태도를 말할 때 ‘맺을 결‘을 써서 결여라고 한다. 이것저것 건드리는 건 많은데 아무것도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에게 우리는 "너는 왜 맺힌 데가 없니?"라고 말한다. 스스로 매듭을 짓고, 쉽게 매듭을 풀지 않는 단단함이 있어야 뭐든 이룰 수 있는 진짜 지성인이 된다. 아이의 재능을찾아주겠다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시켜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가지를 파고들어 일정 시간 집중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게 더 중요하다. 유명한 대학을 졸업한 똑똑한 선생님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아이가 한 군데에 맺힐 수 있도록, 뭔가를 할 때 마음을모으고 스스로 마무리 짓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그래서 언젠가는스스로 끝맺을 주제를 자기 힘으로 찾을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기쁨은 정말로 크다. 아이들이 이 기쁨을 느낄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든 스스로 마침표를 찍어보는 경험은 참 짜릿하다. 아이들이 그 짜릿함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운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 P-1

"산을 쌓는 일을 한번 생각해볼까요? 한 무더기만 더 쌓으면 산이 완성돼요. 그런데 그걸 못하고 그만두잖아요? 산은 완성되지 못하고 끝난거예요. ‘다 끝낼 수 있었는데‘ 같은 건 의미가 없어요. 완성하지 못한건 결국 내 탓이죠. 하지만 반대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땅을 고르겠다고 흙이라도 한 무더기 퍼다 날랐다면 이미 시작한 거예요. 흙 한무더기만큼 땅이 골라진 거고, 그만큼 나는 전진한 거죠."
如山一簧,吾也如地覆一簧,進吾往也
논어 자한편 - P-1

《고문진보》에 당나라 문인인 한유가 쓴 <잡설>이라는 글이실려 있다. 이 글에는 천리마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천리마로 성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천리를 가는 말은 한 번 먹을때 많이 먹어 심지어 곡식 한 섬을 먹어치우기도 한다. 그런데 말을잘 알아보는 백락만 그 말이 천리마여서 그렇게 많이 먹는다는 것을 눈치 챘을 뿐, 아무것도 몰랐던 다른 사람들은 천리마가 많이 먹는다고 타박만 할 뿐 제대로 먹이지 않아서 말이 제 기량을 발휘할수 없었다. 천리마로 자랄 수 있게 훈련시키지도 않고,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충분히 먹이지도 않고, 말이 울어도 그 소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채찍질이나 하면서 ‘천하에 좋은 말이 없다‘고 한탄하면 그게 옳으냐고 한유는 되묻는다.
"세상에 백락이 있은 연후에 천리마도 있는 것이니, 천리마는 항상 있는 것이지만 백락은 항상 있지 않다."
世有伯樂然後,有里馬, 天里馬常有, 而伯樂不常有,

자신의 가능성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의 내면에 있는 천리마의 기상을 발견해줘야 하는 사람이 선생님! - P-1

"그건 유명해지는 거지 통달하는 게 아니네. 통달한다는 건 말이야, 마음이 순수하고 곧으며 정의를 따르고,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잘 따져볼 줄 알며, 상대방의 표정을 주의 깊게 관찰할 줄 알고, 사려 깊게 남보다 자기를 낮출 줄 아는 걸 말하네. 이렇게 하면 사회에서건 조직에서건 반드시 신뢰를 얻어서 뭘 해도 이루어지게 되지. 이게 통달이야.
유명해진다는 건 말이야, 겉으로는 내가 훌륭한 인격자인 양 표정 짓지만 행동은 전혀 딴판이지. 그런데 그렇게 지내면서 자기도 자신에게 속아넘어가는 것이네. 그럼 사람들도 속아넘어가 나라에서도 가문에서도 반드시 유명해지지. 이게 유명해지는 거야."
是聞也非達也。夫達也者,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也者,色取仁而行之不在必在家必통달은 기준을 외부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유명세는 기준을 외부에 둔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를 관찰하며 스스로 따져보고자기를 낮출 줄 알아야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주변으로부터 자연스레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이것이 통달이다. 그러나유명해지고 알려지는 것은 외부로부터 인정만 받으면 된다. 내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든 남들이 잘한다, 대단하다고 말해주면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칭찬에 속아 나중에는 실력을 쌓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싸해 보이도록 자신을 포장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다 쏟게 된다. - P-1

그 어떤 성인도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개념을 만들고 시스템을 만들고 도덕을 논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혼란한 세상을 가슴 아파하며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개인의 인생은 완전히 포기해가면서 법과 제도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교조화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원래의 의도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되어버리는 것이다.
유가에 이런 관용어가 있다. "성인은 다시 태어나도 나의 이 말을옳다 할 것이다." 자신의 말과 주장을 확신하고 또 확신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러나 성인은 이미 죽었고, ‘다시 태어나도‘라는 가정은 증명되지 못한다. 서로 전혀 다른 주장을 하면서 성인의 이름을 들먹인다 해도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성인은 그 주장을 확인해줄 수 없다.
장자가 비관적이었던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어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시스템도 시간이 흐르면 나쁜 사람들이 제멋대로 세상을 쥐고 흔드는 데 쓰일 뿐이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결과다.
하지만 나는 장자에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그 시스템과 도덕이 꼭필요하다고, 그것들이 다시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소수에 불과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남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이롭게 하며 불의에 절대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P-1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영화를 참 좋아한다. 다단계선행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게는 참 의미가 깊다. 한 사람이 세 사람에게 자잘한 도움이 아닌 그의 인생을 바꿀 만한 도움을주고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덕분에 정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면, 삶이 달라진 그 사람이 또 다른 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식으로선행이 확산될 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겠냐는 것이 영화의 메시지다.
영화의 원래 제목은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다. ‘다음사람에게 갚으세요‘ 정도 되겠다. 이렇게 하면 정말 세상이 바뀔 수 있겠구나! 나는 영화에 단단히 설득됐고 결국 이 주장을 믿게 되었다. 이 말을 마음에 담고 지금까지도 가끔 곱씹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 P-1

그날 밤 꿈에 이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목공을 찾아와 꾸짖는다. 한마디로 ‘네가 뭔데 나를 평가해?‘인데, 모든 쓸모 있는 나무는 그 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 잡아 뜯기고 베어진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쓸모 있는 나무들은 그 잘난 능력 때문에 자신의 삶이 고통당하게 되는 것이네. 그래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중도에 요절하지. 스스로세상 사람들의 공격을 불러들인 셈이라네. 모든 사물이 대개 이렇지.
나는 쓸모없어지기를 추구한 지 오래되었다네. 죽을 고비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지금은 목숨을 잘 보존하고 있으니 이것이 나에게는 큰쓸모라네. 내가 만약 쓸모가 있었다면 이렇게 큰 나무가 될 수 있었겠는가?"
나무는 ‘스스로 쓸모없어지기를 추구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누리는 삶과 타인에게 인정받고 타인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삶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전자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타인에게 인정받아 힘 있는 누군가에게 발탁되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자는 이두 가지는 별개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발탁되어 타인의 요구대로 나의 쓸모를 사용하게 되면 나를 위한 나의 삶이 아니라 타인에게 부림을 당하는 삶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쓸모‘에 관한 발상의 전환이다. - P-1

맹자는 늘 작은 것이 작지 않다고 말한다. 작은 것에 큰 것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맹자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그는 <양혜왕상> 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명의 감수성을 배우고 체득한 자들은 짐승이 살아 있는 것을 고그것이 죽은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그 울음소리를 듣고는 그 고기를차마 먹지 못하죠. 그래서 지도자들이나 지식인들은 생명을 잡는 것이일상이 되어버리는 푸줏간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君子之於禽獸也,見其生,不忍見其死;聞其聲,不忍食其肉,是以君子遠庖廚也.

맹자. 양혜왕 상 편 - P-1

아하! 일단 무릎을 치게 된다. 나의 최선이 너에게도 최선은 아니구나! 새를 사랑한다면 새가 새처럼 살게 해주어야 하듯 나를 사랑•한다면 너와 다른 나를 인정하고, 너를 사랑한다면 나와 다른 너를인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구나 깨닫게 된다. 나는 나답게너는 너답게를 잊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질식시키는 공기가 되는구나…………….
어쩌면 이런 현상이 모둠살이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힘도 세지않고 덩치도 크지 않다. 다른 동물에 비해 가진 능력이 특출난 것도아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그럼에도인간이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은 ‘관계‘를 맺어 ‘사회‘를 형성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관계가 생존 자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서로 같아지려고 휩쓸려 다녔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채워주는 모둠살이를 하면서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커졌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함께하는 삶이 강하면서도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 P-1

그런데 재미있게도, 더불어 살면서 권력 관계와 위계가 만들어지다 보니 평등한 다채로움보다는 힘 있는 자에게 쏠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인간에게만 있는 보편이라는 특성도 이러한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일단 쏠림 현상이 생기니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나타나고, 이런 사람에게 휘둘리는 사람도 등장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름은 틀림이 되고, 함께는 경쟁이 되며, 포용은 배제가된다. - P-1

임금 입장에서는 무척 서운할 수 있다. 말하라고, 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외치고 싶은마음을 이해한다. 다만 새는 스스로에게 ‘새란 무엇인가?‘를 물어야했고, 임금 역시 ‘새란 무엇인가?‘ 자문했어야 했다. 아무리 편안해도내 것이 아닌 인생은 결국 나를 망가뜨리고, 아무리 많은 것을 주어도 그의 것이 아닌 인생은 결국 그를 망가뜨리니까.
"나는 누굴까?", "너는 누구니?" 이 단순한 질문을 우리는 의외로잘 던지지 못하고, 한번 던졌다가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그러나이 질문을 멈추는 순간 관계의 균형이 깨진다. 나를 잃고 너를 잃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고통이 된다. 나와 너의 불행을 끊을 해답은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른다. 이 단순한 질문에서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
"나는 누굴까?", "너는 누구니?" - P-1

"성군의 상징인 순임금은 농부로 살다가 발탁되었고, 상나라 때 훌륭한정승으로 이름이 높았던 부열은 노가다판에서 등용되었습니다. 은나라 말엽 충신으로 유명한 교격은 어시장에서, 제나라 환공을 춘추시대일인자로 만든 관중은 감옥에서, 초나라의 이름난 정승 손숙오는 어느바닷가 구석에서, 진나라 목공이 위세를 떨치게 해준 백리해는 숨어 살던 저잣거리에서 각각 등용되었지요.
하늘이 이 사람들에게 앞으로 크게 쓰기로 마음 먹고, 먼저 마음을 고달프게 하고 육체를 괴롭히며, 굶주림을 겪게 하고 가난을 견디게 하며, 시도하는 일마다 안 되고 어그러지는 사태를 경험하게 합니다. 이건 마음을 분발시키고 참을성을 길러 그가 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잘못을 저지른 뒤에야 제대로 고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괴로움을 느끼고 생각이 한계에 부딪힌 뒤에야 분발해서 확장을 이뤄냅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일이 어그러져서 상대가 자신을 질책하는얼굴과 목소리를 확인한 뒤에야 깨닫게 되지요. (...) 이런 경우를 보고-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걱정과 근심이 사람을 살게 하고, 안일과 즐거움이 사람을 죽게 한다는 것을요."

맹자의 고자하편
우환 사상을 담은 글
어려움을 나의 부족한 점을 바라보는 기회로 삼으라 - P-1

당신은 ‘성실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혹 어른들이 좋아하는 회사가 선호하는 좋긴 한데 딱히 끌리지는 않는, 멋없는 지루한 재미없는, 숨 막히는, 우등생・・・・・・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올바르고 좋지만 인기는 없는 가치, 오늘날 성실은 이런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는 듯하다.
성실이란 개념이 이렇게 인기가 없어진 데는 잘못된 이미지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성실의 ‘성‘은 참됨, 진실됨, 정성스러움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진짜 성실과 "쟤는 참 성실해라고 할때의 성실은 어감에서 차이가 크다는 말이다. 원래 뜻은 진실되고 참되게 뭔가를 한다는 뜻이지만 우리가 성실이라는 말을 할 때는 시킨일, 주어진 일을 곧이곧대로 딴짓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간극은 초점이 바뀌기 때문에 생긴다. 처음에는 일하는 사람의 내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어느새 외부 관찰자의 시선으로 초점이 옮겨가면서 의미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원래 의미대로라면 성실은 참 매력적인 개념이다. 성실이 나의 것이 될 때 이 개념은 내 인생의 길을 열어주는 위대한 가치가 된다.
나에게 다가온 그 어떤 것도 참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대하다 보면, 그 태도가 쌓이고 쌓여 나를 어디까지 성장시킬지 쉽게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 P-1

<중용>은 거대한 하늘도, 거대한 땅도, 거대한 산도, 거대한 바다도 아주 작은 것들이 모이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지극한 성실험이 거대함을 만들어냈고, 이 거대함은 또 다른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포용의 덕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큰 것이 원래 컸고 대단한 것이 원래 대단했으면 작은 것과 대단하지 않은 것, 평범하거나 보잘것없는 것을 품어주지 못한다. 성실하게 지속하면서 넘어지고 부딪히고 상처받고, 그 시간을 통해 아픔과 함께의 가치를 배우는 와중에자신보다 작고 힘없는 것을 품어주는 덕이 쌓인다. 그래서일까? <중용> 26장은 이런 글로 시작된다.
"지극한 성실은 쉼이 없다. 쉬지 않으면 오래가고 오래되면 결과가 드러난다. 결과가 밖으로 드러나면 세상에 오래 지속되고 오래 지속되면넓고 두터워지고 넓고 두터워지면 높고 밝아진다. 넓고 두텁기 때문에만물을 실어줄 수 있고 높고 밝기 때문에 만물을 덮어줄 수 있으며,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만물을 이루어줄 수 있다."
至,無息,不則久久則徵,徵則悠遠,悠遠則博厚,博厚則高明,博厚所以載物也,高明 所以覆物也,悠久所以成物也 - P-1

결여가 없는 사람은 없고 결여만 있는 사람도 없다. 한문을 번역하는 기관에서 한문 실력이 가장 크게 두드러지듯, 어떤 상황이나 장면앞에 서 있을 때 그 배경 때문에 특정 부분이 가장 부각되어 보이는건 사실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그 부분 때문에 자신이 부족하다 느끼고, 결여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나에게는 한문이라는 결여의 공간에 남들에게는 없는 글을 쓰는 능력, 이해력, 논리력,
상황 파악 능력, 심리학 지식 등이 있었다. 특정 분야에 대한 결여의공간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채워져 있다.
지금 너무나 힘들다면, 혹시 결여에만 너무 신경 쓰고 있는 것은아닐까? 반성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채우지 못하고 완수하지 못한 빈공간을 바라보며, 쫓아가기도 벅찬 세상이라고 실망하고 절망하고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어느 면에서 봐도 비어 있기만 한 공간은 없다. 인간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어서 충분한 노력과 충분한 휴식,
그리고 충분한 성장을 동시에 해낼 수가 없다. 한 부분이 성장했다면다른 부분은 아무래도 소홀했을 것이고, 올해 좀 놀았다면 내년에 열-심히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쌓였을 것이다. 열심히 움직였다면 지금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분명 내공이 쌓였을 것이고, 눈에 보이는성과가 많았다면 당분간은 계획을 줄여도 좋을 것이다. 저력을 쌓는 - P-1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저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여가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어 울겠다 결심할 수 있게 된건지도 모른다. 소리 내어 울었기 때문에 다음 걸음은 세상에 나를드러내 보이는 방향으로 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학은 항상 울고있진 않지만 울면 분명 소리가 난다. 그런데 사방으로 퍼지는 울음소리가 좋다고 내내 울다가는 목이 쉬고 만다. 잘되는 시기도 있고 안되는 시기도 있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 물고기도 물속 깊이 잠겨 있을 때가 있고 물가에서 헤엄칠 때가 있다. 결여와 풍요로움을 동시에 안고 있는 것이다. 높은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이 있고, 패인 곳이 있으면 쌓인 곳이 있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이 세상은 스스로에게 조금은 넉넉하고 후한 결산을 해줘도 괜찮을 만큼 다면적이다. 각자 충분한 부분을 조금씩 덜어내어 부족한 곳을 메울 때 사회가 유지된다. 인간은 개인으로 보면 별것 아닌 동물이지만 사회를 이룬 덕분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타인을 모두 나의 라이벌이나 적으로 간주하면 세상에 결여된 곳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내가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라고 생각하면 서로의 결여가만들어내는 풍요로움이 눈에 들어온다. 나로 인해 네가 너로 인해 내가 온전해진다. 모자라는 것도 넘치는 것도 없게 서로를 돌아보며 산다면, 우리의 결여는 상처와 절망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이 될 것이다. - P-1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고는 한참 동안 묵묵히 앞을 바라보다가 말한다.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그러고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또다시 말을 잇는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말을 멈추고 한참 생각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해낼 수 있어. 그래야하는 거야."
그러고는 또다시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연다.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깨닫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고, 숨이 차지도 않아."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지막 말을 맺는다.
"그게 중요한 거야." - P-1

"군자의 도는 비유하자면 먼 곳에 가는 것은 반드시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하고, 높은 데 오르는 것은 반드시 낮은 데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다."
君子之道辟(譬)如行遠必自邇辟如登高必自卑《중용> 15장에 나오는 말이다. 아무리 원대하고 높은 계획도 가깝고 낮은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눈앞의 작고 낮은 단계에서 시작해 모든 길을 차근차근 걸어야 한다. 물론 머리로는 알지만 최종목표 지점을 올려다보면 너무 높고 멀어서 막막해질 때가 많다. 몇걸음 더 걸어봐도 막막하긴 매한가지일 뿐,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어떻게든 줄여보자는 마음만 든다. 그러나 길은 걸을 때 의미가있는 법이다. 길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동행해야 할 인생의 벗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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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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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확실한 날들을 10년쯤 보내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그어정쩡함이 글쓰기의 동력이었음을. 글 쓰는 일은 질문하는 일이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고 혼란스러워야 사유가 발생한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아이가 잘 큰다는 것과 좋은 엄마가 된다는 건 어떤건지 온통 혼란스러웠고 그럴 때마다 하나씩 붙잡고 검토하며 써나갔다. 쓰는 과정에서 모호함은 섬세함으로, 속상함은 담담함으로 바뀌었다. 물론 글쓰기로 정리한 생각들은 다른 삶의 국면에서 금세헝클어지고 말았지만, 그렇기에 거듭 써야 했다. 어차피 더러워질걸 알면서도 또 청소를 하듯이 말이다. - P-1

소설을 읽다보면 바틀비가 답답하고 불안하다. 제 발로 사무실에 들어갔으면 일은 해야 하지 않나, 안 할 거면 왜 안 하는지 적어도 이유는 말해야 하지 않나,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 모든 걸 안 하고 ‘끝까지 버틴다. 그런 행동에 대한 속 시원한 해명 없이 소설은 장탄식으로 끝난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102)그 허탈함, 황망함, 난감함, 쓸쓸함 속에서 사유가 일어난다(좋은 소설인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을 생각했다. 처음엔 바틀비가 이유도없이 일하지 않는게 이상했는데, 아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을 그토록 열심히 하는 게 이상하다. 바틀비는 왜 자기 생각과 입장을 설명하지 않을까 궁금했다가,
그럼 나는 구구절절 말함으로써 타인을 이해시키고 타인으로부터이해받은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회의가 들었다. 말하는 대로 이해받는다는 믿음이야말로 헛것 아닌가..... - P-1

추상적인 다짐이 아닌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들어 복기해보면자기 감정과 생각. 욕망의 여러 층위와 갈래가 보이고, 나라는 사람은 하나로 정리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자기에대해 섣불리 장담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서 타인도 함부로 재단하기 어려워진다. 조심스러워지는 일은 섬세해지는 일. 그렇게 내 판단을 내려놓고 남의 처지가 되어보는 게 공감의 시작이다.
언젠가 누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서 가장좋은게 뭐냐고. 나는 이 얘기를 들려주었다.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된 점이라고. 저마다 고유한 사정과 한계, 불가피함을안고 살아간다는 걸 알았다고.
그리고 그때 답하지 못한 게 더 있다. 글을 쓰면서 행복이나 희망이라는 붕 뜬 단어를 내 사전에서 지워버릴 수 있었던 점이다. - P-1

에릭 호퍼는 이런 통찰도 내놓는다. "우리는 일이란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 세상에는 모든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190쪽) 일이 의미 있기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몰염치‘라고 했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까지 덧붙이면서, 삶의 유일한 의미는 배움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 P-1

사람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이불을 덮고 죽는다.

박세미 외. 그래, 사랑이 하고 싶으시다고? - P-1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작고 좁은 곳,
무엇도 영원히 숨길 수 없"(184)다. 그런데도 "티를 덜 내고 감정을참고 내 자신을 속이는 게 언제부터 어른스럽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181쪽). 

김혜경 외. 시시콜콜 시시알콜 - P-1

작은 조언도 큰 이론도 자신의 몸으로 영접하지 않은 한 자신의 앎이 되지 않는다

황현산. 잘 표현된 불행 - P-1

 "무엇엔가 멈추어본 아이만이 자기 삶을 만날 수 있다.
자기 삶을 만난 아이만이 자세히 볼 수 있고, 자세히 볼 때 놀라운삶의 경이를 만날 수 있다. (…) 자기를 만난다는 것은 자기 홍을 만나는 것이고 그때 그 무엇에 정신을 팔았다는 말일 것이다."(190)

김영미. 그림책이면 충분하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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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 한 시절 곁에 있어준 나의 사람들에게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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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사람>을 읽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결코 나 혼자서 내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움에는 빛이 있어 어느 날엔 불쑥 울게 되더라도눈물을 닦고 다시 웃을 수 있는 힘을 함께 준다는 것도. - P-1

언젠가 빈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길을 걸어가는데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 친구는 부스럭소리가 나던 아버지의 호주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될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힘을 내서 살아가기위해선, 혼자서도 남은 길을 마저 걸어가기 위해선 따뜻하고단 기억들로 호주머니를 채워놓아야 한다고. 언제든 쓸쓸해지는 날에 손을 집어넣어 내게 남아 있는 것들을 만져보고 꺼내 볼 수 있도록. 그러면 어느 날에는 호주머니 속에서 들리는 부스럭 소리만으로도, 어떤 기억인지 떠올라 조용히 미소 짓는 날이 있지 않을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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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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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지만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걸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런 씁쓸한 지점들을 잘 포착해낸 이야기들!

이연은 섣불리 타인을 판단하는 대신 ‘가능하면 저 사람들처럼 생각하자‘ ‘저들 입장에서 느끼고 즐기며 저 사람들이 되어보자 다짐했다. 그러곤 화장실 거울 앞에서 혼자 그들의 말투와 동작을 따라 하다 관둔 뒤 싱겁게 웃었다. 세상에 주류다운 몸짓과 표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제 모습이 민망해서였다. 다만 이연은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상대에게 직접 가하는 힘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향한 통제력이라 할까. 오랜 시간 ‘판단‘과 ‘선택‘이 몸에밴 이들이 뿜어내는 단단하고 날렵한 기운이었다. 얼핏 사람좋아 보이는 박도 마찬가지였다. 이연은 자신이 대상을 편견없이 대하는 태도에 작은 만족을 느꼈다. 타고난 성정이라기보다 수양의 결과였다. ‘어렸을 땐 정말 타인을 시시콜콜 판정 - P-1

했는데…… ‘지난 세월, 시간의 물살에 깎이고 깨지며 둥글어진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해와 갈등이, 드라마가 생겼다.
최근 들어 배역 스펙트럼이 점점 좁아짐에도 불구하고 이연은배우로서 지금 제 나이와 경험이 싫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연은 인간을 더 연민하게 됐으니까. 이연은 그리스신화 속 영웅이나 현대의 범인 못지않게 ‘그 나머지 사람들을 애정하게되었다.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을 실수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자들을, 변명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약한 이들을 깊이 응시하게 되었다. 우선 이연부터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연은 착한 사람보다 성숙한 사람에게 더 끌렸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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