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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평점 :
나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일깨워준 사람이 바로 요코야마 히데오 작가다.
만약 그때 <64>라는 소설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블로그도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나는 지금까지 책이 주는 즐거움을 알지 못했을 거로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게 의미가 있는 요코야마 히데오 작가의 신작 <그림자 밟기>를 정식으로 출간하기 전(3월 10일, 정식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에 먼저 읽어 볼 기회가 생겨서 이렇게 서평을 남겨본다.
정통 일본 경찰 소설을 주로 선보였던 그가 이번에는 외도(?)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외도를 했다. 소설 <그림자 밟기>에서는 그의 전공인 경찰이 아닌 바로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한 세계와 심리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물론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전공인 경찰의 모습도 종종 등장한다. 그 잠깐 등장하는 모습에서도 일본 경찰의 생리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역시 그가 경찰 이야기를 할 땐 그 어떤 작가의 글보다 현장감이 있게 느껴진다. 그가 외도했다고 말하는 다른 이유는 평소 리얼리티를 강조한 소설을 쓰던 요코야마 히데오 작가가 이번에는 죽은 이와 대화하는 등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했다는 점이다. 아직 내가 독서끈이 짧아 그의 작품을 모두 읽어 볼 수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판타지는 그가 즐기는 장르가 아니라 생각한다.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마카베와 게이지는 쌍둥이 형제다. 쌍둥이란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려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며, 한 명이 이렇게 할 것으로 생각하면 곧 다른 한 명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같은 얼굴과 체형, 비슷한 성격의 형제였지만, 두 사람의 삶은 크게 틀어졌다. 형 마카베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 법학부에 입학했지만,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해서였을까? 좋아하던 여자의 마음을 형에게 빼앗겨서였을까? 동생 게이지는 입시에 실패하고 뜬금없이 절도에 취미를 붙였다. 게이지에게 실망한 어머니는 집에 불을 질렀고, 그 방화 사건으로 마카베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을 모두 잃게 된다. 죽은 게이지는 차마 형 마카베 곁을 떠나지 못하고 유령(?)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마카베와 게이지, 쌍둥이 형제의 관계는 죽음으로도 막지 못했다.
절대 기억력의 소유자 게이지와 탐정처럼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마카베는 '노비카베'라는 별명으로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을 범죄자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풀어간다. <64>처럼 굵은 줄기를 갖고 있지 않지만, 총 일곱 개의 에피소드는 작은 연결고리를 갖고 이어진다. 동생 게이지는 사건을 해결하면서 형 마카베가 지금의 불안정한 삶에서 손을 털고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조언하는데…….
이번 작품은 <64>처럼 무겁지도 않고 분량도 많은 편이 아니라서 주말에 가볍게 읽기 좋았다. 개인적으로 봄으로 시작해서 이듬해 봄으로 끝을 맺는 이 소설의 계절감 표현은 정말 인상 깊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답을 찾으며 마카베와 게이지 형제의 아웅다웅 다투는 모습 등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색다른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팬으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